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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신앙감정론_제1부 감정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3.

신앙감정론_제1부 감정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3.
자료출처http://blog.naver.com/taelinj/30096717908

제1부 감정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1. 감정이란 무엇인가
2. 감정은 참된 신앙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3.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적용

3.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적용
 
제시된 명제에 대한 증거들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는 몇 가지 추론적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따라서 우리는 모든 신앙감정을 믿을 수 없거나 실체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의 오류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이 시대 이 땅에는 이런 오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최근의 영적 대각성기에 위대한 신앙감정을 가졌던 것처럼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올바른 성향을 보여 주지 못하였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졌을 때에 많은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체험한 높이 고양된 감정들이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기쁨과 열정으로 강력하게 고무되고 사로잡혔던 것 같은 사람들이 잠시 후 에 개가 그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참된 믿음은 신앙감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믿음을 잃게 되었다. 우리는 쉽게, 한 편으로는 당연하게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게 된다. 얼마전에 우리는 다른 극단에 치우쳐 있었다. 그 때에 우리는 그 본질과 근원을 조사해 보지도 않은 채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검토하지도 않은 채, 높이 고양된 모든 신앙감정들을 참된 은혜가 탁월하게 역사한 결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아 종교적 대화에 몰두하고 뜨거움과 진지함으로 가득 차서 자신들을 표현하는 듯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조사해 보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탁월하게 경험하 사람들이라고 너뭄나 쉽게 결론을 내렸다. 이런 극단적 상황은 3,4년 전에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모든 신앙감정들을 구분하지 않고 높이고 찬양하는 대신에,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고 거부하는 경향이 만연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단의 교묘한 술수를 보게 된다. 사단은 신앙감정들이 크게 유행하는 것을 보았고,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감정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과 그 감정들이 참된 것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고 잘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가짜 감정들을 섞어 버리고 알곡 가운데 가라지를 뿌려 놓으면 자신의 목적을 가장 잘 이룰 수 있음을 알았다. 사단은 이렇게 하면 많은 영혼들을 기만하고 영원히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과 그들을 치명적인 방황 속에 빠져 들어가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점차 모든 신앙을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이런 가짜 감정들이 나쁘다는 결과들이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스러운 모습이라고 크게 찬탄받았던 어떤 감정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이 분명해졌을 때, 마귀는 일의 방향을 바꾸어 종교적인 일에 관계된 모든 감정들이 결코 존중되어야 할 것들이 아니며 오히려 해로운 것이기에 피하고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는 믿음을 유포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마귀는 이렇게 하는 것이 모든 신앙생활을 생명없는 단순한 형식으로 만드는 길이며, 경건의 능력과 모든 영적인 일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해 버리는 길이고, 참된 기독교를 완전히 말살해 버리는 길임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참된 신앙에는 감정 이외에 다른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참된 신앙은 대부분 감정에 내재하기 때문에 감정이 없이는 참된 믿음도 있을 수 없다. 신앙감정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강력하게 생기를 불어넣는 구원사역의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이 감정만 있는 곳에 참된 믿음이 없는 것처럼 신앙감정이 없는 곳에 참된 믿음은 없다. 진리를 이해시키는 빛이 있는 곳에는 심령 속에 열정적인 감정이 작용하나, 차가운 빛은 없이 뜨거운 열정만 있는 심령에는 신령하거나 하늘에 속한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뜨거운 열정이 없이 차가운 빛만 있는 곳, 즉 머리는 개념들과 사변들로 가득 차 있지만 심령은 뜨거움이 없이 차디찬 상태로 있다면 그 빛 속에는 신적인 것이 존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지식은 신적인 것들에 대한 참된 영적 지식이 아니기 때무이다. 만일 신앙에 속한 위대한 일들을 바르게 이해하면 심령은 반드시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한히 위대하고 중요하며 영광스럽고 놀라운 일들을 자주 듣고 읽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영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영적으로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들의 심령이 신적인 일들에서 강하게 인상을 받아 크게 감동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신앙감정들을 경시하는 것은 사람들의 심령을 극도로 굳어지게 하는 것이며, 사람들을 어리석고 무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게 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팽배해 있는 신앙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두려운 결과들을 만드는 듯하다. 그것은 죄인들의 심령을 더 강퍅하게 만들고 있으며 많은 성도들에게서 은혜를 약화시키고 있고, 믿음의 생명력과 힘을 제약하고 잇으며 하나님의 율법의 효과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을 무감각함과 무정함의 상태로 묶어 놓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최근에 이 땅에서 이루신 특별한 역사를 비열하고 저급하다고 생각하게 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든 신앙감정들을 경멸하고 얕잡아 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심령 속에서 모든 참된 믿음을 제거하는 것이며, 그들의 영혼을 철저하게 파멸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고상한 감정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자기 안에 고상한 감정들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신앙감정이 풍부하지 못한 사람은 확실히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신앙감정이 없다는 이유로 경멸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런 감정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가짜 감정들이 있고, 진짜 감정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이 그가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 신앙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참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올바른 길은 모든 감정들을 거부하거나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들을 구분하여 어떤 것은 승인하고, 그것과 다른 것은 거부하는 것이다. 밀과 밀의 껍질을 분리하는 것이고, 금과 이물질을 분리하는 것이며, 귀중한 것과 무가치한 것을 분리하는 것이다.
 
2. 만일 참된 신앙이 대부분 감정에 있다면 감정들을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경향성을 지닌 수단들을 힘써 구해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런 책들, 그렇게 말씀을 설교하는 것, 그렇게 성례전을 집행하는 것, 기도와 찬양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에배하는 것은 사람들의 심령에 깊은 감정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수단이므로 힘써 추구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혜의 방편을 통해 이와 같은 목적을 이루고자 했고, 이런 은혜의 방편들을 가장 탁월하고 유익한 것으로 인정하고 환영했다. 그러나 최근의 지배적인 흐름은 이상항 방향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높이 인정을 받고 찬사를 받았던 기도와 설교의 방식을 이제는 병적인 것으로 치부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방식이 대중들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혐오스럽게 여기게 되었으며 불쾌감과 경멸감만을 자아내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일반 사람들이 공적인 연설에서 감정적인 연설들을 높이 평가하는 극단에 빠졌다면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극단에 빠져 들어간 것 같다. 당연히 연약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서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들의 영혼에 참된 유익을 주지 못하는 수단들도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방편들이 감정을 자극할 수는 있더라도 은혜로 말미암는 감정이나 은혜를 향하는 감정을 자극하지는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믿음에 속한 일들을 바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 그 방편들을 본성에 적합하고 참된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그 방편들이 은혜로 말미암는 감정을 더 많이 일으키게 되며 그럴수록 그 방편들은 더 나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3. 만일 참된 믿음의 대부분이 감정 안에 있다는 것이 옳다면, 우리가 믿음에 속한 위대한 일들 때문에 감정이 더 이상 자극받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당혹스러워해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적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난미께서 인간에게 감정을 줏니 목적은 그들에게 영혼의 모든 다른 기능들과 원리들을 주신 목적과 같다. 그 목적은 감정들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큰 목적 즉 사람의 본분에 봉사하게 하시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신앙을 갖는 일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감정을 신앙에 속한 일이 아닌 다른 일들에 사용하고 소진하고 있는지! 귿르의 세속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일 때문에 외면적인 쾌락을 위해, 명예와 명성을 위해, 인간관계를 위해 그들의 소망은 강렬해지고 욕망은 타오르며 그들의 사랑은 불이 붙고 열정은 강렬해진다. 이런 일들에서 그들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쉽게 감동되며, 깊은 인상을 받고 큰 관심이 생기며 감정이 매우 강하게 자극되고 깊이 빠져들게 된다. 세속적인 실패로 인한 슬픔 때문에 많이 우울해지며,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으로 인한 기쁨 때문에 크게 흥분된다. 하지만 영원한 세계에 속한 일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감동되지 못하고, 무감각한지! 이런 영적인 일들에 대해 그들의 심령은 얼마나 굳어져 있고, 강퍅해져 있는지! 귿르의 사랑은 얼마나 냉랭하고, 그들의 갈망들은 얼마나 미지근하며 그들의 열정은 얼마나 식어 있으며, 그들의 감사는 얼마나 부족한지! 어떻게 그들은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당신이 무한히 사랑하시는 아들 에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의 무한히 높고 깊고 길고 넓은 사랑에 대해 그리고 죽음의 고통과 피 섞인 땀과 크고도 쓰라린 울부짖음과 피가 철철 흐르는 심장으로 드러난, 죄 없으시고 거룩하시며 온유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의 비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마땅히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할 원수들을 구원하여 영원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앉아서 듣고도 그 마음이 냉랭하고 굳어지며 무감각하며 무관심할 수 있는지! 이 일이 아니라면 우리의 감정을 적절히 사용할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무엇이 감정적인 작용을 더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에 우리의 감정을 생생하고도 활력 있게 쏟아 놓을 수 있겠는가? 이 일보다 더 중요하고 더 위대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더 놀랍고 위대한 어떤 다른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또는 이 일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지혜로우신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또 적절한 경우에 우리가 조용히 앉아 있기를 원하시겠는가? 이 복음이 진리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든 사용해야 한다면 그리고 만일 창조주께서 감정을 인간 본성의 일부로 만드실 때 헛되고 쓸모 있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면, 감정은 감정의 작용이 가장 합당하게 쏟아야 할 대상을 향해 발휘되고 행사되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것들만큼 우리의 찬탄과 사랑의 대상으로서 합당하고 우리가 진지하게 바라는 갈망의 대상으로서 합당하고,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불타오르는 열정의 대상으로서 합당한 것을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가? 복음에 속한 일들은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기에 가장 적합하게 선포되었고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합당하게 제시되었다. 복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우리의 찬탄과 사랑의 대상이 될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성육신 하시고, 무한한 사랑이 있으시며, 온유하시고 자비하시고 또 죄인을 위해 죽으신 구속주의 얼굴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하나님의 여린 양이 가지신 겸손. 인내. 온유. 복종. 순종. 사랑. 긍휼 같은 모든 미덕들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그런 미덕들은 구속주의 감정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시련을 통과했고, 최고도로 실천되었고 가장 밝게 나타났다. 심지어 구속주께서 말로 다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이 큰 마지막 고난 속에 있을 떄에도 구속주께서는 우리를 향한 순전한 사랑과 긍휼로 그 모든 것을 견디어 내셨다. 또한 우리 죄의 혐오할 만한 본질이 감정을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구속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통해 우리 죄의 치명적인 결과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의로우심으로 나타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가 가장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당신께서 무한히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품고 계신 당신의 아들에게 우리의 죄를 그렇게 처참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엄중한 두려움과 하나남의 정의의 엄격성과 엄밀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한 당신의 영광스러운 경륜과 우리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통해 우리 심령의 가장 깊은 부분을 가장 크게 움직이고, 우리의 감정을 가장 자극적이며 강력하게 움직이도록 모든 일을 계획하면서 섭리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더 이상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티끌같이 낮아지고 수치스럽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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