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비키의 '칼빈주의' : 칼빈주의 5대 교리 3 - 제한 속죄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 : 칼빈주의 5대 교리 3 - 제한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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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제한속죄
1. 제한 속죄에 대한 성경적 뒷받침
1) 성경적 용어들
- 구속: 구속은 애굽에서의 종 된 생활에 대한 해방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백성들을 해방시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땅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 속죄: 하나님의 진노가 희생 제물의 봉헌으로 말미암아 만족되는 것.
- 대속물: 몸값, 이것이 지불된 사람은 해방된다.
2) 성경적 시제들
- 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을 얻으셨다고 말한다.
- 로마서 8장 29, 30절은 마치 영화가 이미 성취된 것처럼 말하고 모든 구절의 주요 동사들을 부정 과거 시제로 사용한다.
- 에베소서 5장 25-27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신부가 되는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제시하기 위해서 구속하신 것이다.
- 디도서 2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3) 성경적 증언들
- 예수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셨다고 말한다(요 10:11-13). 그리고 특정한 백성들을 향하여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26절)라고 말한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생명을 내놓으셨다(요 11:51,52).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를 위해 죽으셨다(엡 5:25-27, 행 20:28).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마 1:21).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후손을 보고(사 53:10, 시 22편), 불법에서 그의 백성들을 속량하셨다(딛 2:14).
- 요한계시록 5장 9절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 요한복음 17장 9절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특별이 선택된 백성들을 위해 중보하여 기도하신다고 말씀한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성령의 부르심과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두 다 유효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중보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 목적을 성취한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다. 구원에 공헌하고 그것을 적용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행할 능력이 없다.
2. 반론에 대한 대답
1) 본문적 반론
-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1서 2장 2절의 ‘세상’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세상’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kosmos(코스모스)’는 성경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i)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택자들 전체, ii) 유대인 군중들, iii) 모든 종류의 백성들, iv) 인간적인 악한 왕국, v) 창조된 질서 있는 우주, vi) 그저 수많은 사람들 등을 가리킬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7절의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의 의미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심판과 정죄 아래 놓여 있는 세상이다. 요한일서 2장 1,2절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중보가 너무나 완전해서 세상의 죄에 대해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위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적합한’ 또는 ‘관하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헬라어는 예수께서 우리의 화목 제물이신 것처럼 온 세상 역시 동일한 화목 제물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 고린도후서 5장 15절과 로마서 8장 32절의 ‘모든’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고린도후서의 본문은 죽음과 부활의 통일성의 정황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연합된 사람들을 위해 부활하시므로 그의 죽음 역시 동일하게 간주되어야 한다. 로마서의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예정과 택한 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한 말씀이다.
- 신자가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듯한 본문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롬 14:15)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로마서 14장15절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삶에서 동료 그리스도인을 멸망으로 이끄는 길로 가게 만드는 거치는 돌이 되었을 때에 느끼게 될 감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은 참된 구원적 믿음을 소유한 적이 없는 명목상으로 교회 구성원인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벧전 2:8)이었다.
2) 실제적 반론
반론 1. 만일 속죄가 어떤 이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면 어떻게 영광스러운 속죄가 될 수 있겠는가?
첫째, 그리스도께서 아주 소수의 남은 자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가운데서 구속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말한다(계 7:9-17).
둘째, 속죄를 제한하는 것은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알미니안주의자이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속죄가 단지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 흘리심의 유효성을 매우 제한한다. 속죄는 구원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뿐이며,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함으로써 그 다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의 택한 자도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반론 2. 만일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죄인에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칼빈주의는 복음전도의 열정을 꺾어 버리는 교리가 아니겠는가?
첫째, 복음의 내용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 특별한 사람이나 저 특정한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사 이 땅에서 살고 죽고 다시 부활하셨다고 선포한다. 복음의 약속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이다.
둘째, 속죄에 대한 칼빈주의의 견해는 복음전도의 성공을 보장한다. 삼위하나님의 완전한 구속 언약(성부께서 선택하시고 성자께서 구속을 성취하시고 성령께서 적용시키신다.)과 제2아담의 교리(요 17:12; 롬 5:12-19)는 칼빈주의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을 통하여 자신의 시간과 방법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한다(사 55:10,11). 감히 누가 조지 휫필드의 복음 설교에 전도적 열정이 결핍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찰스 스펄전과 윌리엄 캐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조나단 에드워즈, 아사헬 네틀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셋째, ‘도르트 신조’는 이렇게 말한다.
“복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믿는 자들은 멸망당하지 않으며,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약속은 회개하고 믿으라는 약속과 함께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 가운데 복음을 전달하려는 자들에게 반드시 선포되어야 하고, 모든 나라에 차별 없이 공포되어야 한다.”(제2번 5항)
이러한 우주적인 초청은 제한 속죄와 모순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은혜로 말미암아 이 생명수를 취한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 가운데 멸망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3. 귀중한 보혈로 구속을 받음
알미니안주의의 견해는 우주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실패한다. 스펄전은 이러한 알미니안주의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많은 신학자들은 … 속죄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속죄란 단지 다음과 같을 뿐이다. 그들은 베드로가 속죄를 받은 것처럼 유다도 속죄를 받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천국의 구원받은 자들만큼이나 지옥의 저주받은 망령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만족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다. 그들이 실제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이와 같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를 위해 죽으셨다면, 구원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세에 저주를 받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될 뿐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보배로우며 그리스도의 속죄는 조금도 실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한 성공을 이룬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께서는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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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제한속죄
1. 제한 속죄에 대한 성경적 뒷받침
1) 성경적 용어들
- 구속: 구속은 애굽에서의 종 된 생활에 대한 해방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백성들을 해방시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땅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 속죄: 하나님의 진노가 희생 제물의 봉헌으로 말미암아 만족되는 것.
- 대속물: 몸값, 이것이 지불된 사람은 해방된다.
2) 성경적 시제들
- 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을 얻으셨다고 말한다.
- 로마서 8장 29, 30절은 마치 영화가 이미 성취된 것처럼 말하고 모든 구절의 주요 동사들을 부정 과거 시제로 사용한다.
- 에베소서 5장 25-27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신부가 되는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제시하기 위해서 구속하신 것이다.
- 디도서 2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3) 성경적 증언들
- 예수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셨다고 말한다(요 10:11-13). 그리고 특정한 백성들을 향하여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26절)라고 말한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생명을 내놓으셨다(요 11:51,52).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를 위해 죽으셨다(엡 5:25-27, 행 20:28).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마 1:21).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후손을 보고(사 53:10, 시 22편), 불법에서 그의 백성들을 속량하셨다(딛 2:14).
- 요한계시록 5장 9절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 요한복음 17장 9절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특별이 선택된 백성들을 위해 중보하여 기도하신다고 말씀한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성령의 부르심과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두 다 유효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중보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 목적을 성취한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다. 구원에 공헌하고 그것을 적용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행할 능력이 없다.
2. 반론에 대한 대답
1) 본문적 반론
-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1서 2장 2절의 ‘세상’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세상’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kosmos(코스모스)’는 성경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i)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택자들 전체, ii) 유대인 군중들, iii) 모든 종류의 백성들, iv) 인간적인 악한 왕국, v) 창조된 질서 있는 우주, vi) 그저 수많은 사람들 등을 가리킬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7절의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의 의미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심판과 정죄 아래 놓여 있는 세상이다. 요한일서 2장 1,2절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중보가 너무나 완전해서 세상의 죄에 대해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위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적합한’ 또는 ‘관하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헬라어는 예수께서 우리의 화목 제물이신 것처럼 온 세상 역시 동일한 화목 제물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 고린도후서 5장 15절과 로마서 8장 32절의 ‘모든’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고린도후서의 본문은 죽음과 부활의 통일성의 정황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연합된 사람들을 위해 부활하시므로 그의 죽음 역시 동일하게 간주되어야 한다. 로마서의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예정과 택한 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한 말씀이다.
- 신자가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듯한 본문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롬 14:15)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로마서 14장15절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삶에서 동료 그리스도인을 멸망으로 이끄는 길로 가게 만드는 거치는 돌이 되었을 때에 느끼게 될 감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은 참된 구원적 믿음을 소유한 적이 없는 명목상으로 교회 구성원인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벧전 2:8)이었다.
2) 실제적 반론
반론 1. 만일 속죄가 어떤 이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면 어떻게 영광스러운 속죄가 될 수 있겠는가?
첫째, 그리스도께서 아주 소수의 남은 자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가운데서 구속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말한다(계 7:9-17).
둘째, 속죄를 제한하는 것은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알미니안주의자이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속죄가 단지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 흘리심의 유효성을 매우 제한한다. 속죄는 구원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뿐이며,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함으로써 그 다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의 택한 자도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반론 2. 만일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죄인에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칼빈주의는 복음전도의 열정을 꺾어 버리는 교리가 아니겠는가?
첫째, 복음의 내용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 특별한 사람이나 저 특정한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사 이 땅에서 살고 죽고 다시 부활하셨다고 선포한다. 복음의 약속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이다.
둘째, 속죄에 대한 칼빈주의의 견해는 복음전도의 성공을 보장한다. 삼위하나님의 완전한 구속 언약(성부께서 선택하시고 성자께서 구속을 성취하시고 성령께서 적용시키신다.)과 제2아담의 교리(요 17:12; 롬 5:12-19)는 칼빈주의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을 통하여 자신의 시간과 방법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한다(사 55:10,11). 감히 누가 조지 휫필드의 복음 설교에 전도적 열정이 결핍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찰스 스펄전과 윌리엄 캐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조나단 에드워즈, 아사헬 네틀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셋째, ‘도르트 신조’는 이렇게 말한다.
“복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믿는 자들은 멸망당하지 않으며,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약속은 회개하고 믿으라는 약속과 함께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 가운데 복음을 전달하려는 자들에게 반드시 선포되어야 하고, 모든 나라에 차별 없이 공포되어야 한다.”(제2번 5항)
이러한 우주적인 초청은 제한 속죄와 모순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은혜로 말미암아 이 생명수를 취한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 가운데 멸망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3. 귀중한 보혈로 구속을 받음
알미니안주의의 견해는 우주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실패한다. 스펄전은 이러한 알미니안주의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많은 신학자들은 … 속죄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속죄란 단지 다음과 같을 뿐이다. 그들은 베드로가 속죄를 받은 것처럼 유다도 속죄를 받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천국의 구원받은 자들만큼이나 지옥의 저주받은 망령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만족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다. 그들이 실제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이와 같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를 위해 죽으셨다면, 구원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세에 저주를 받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될 뿐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보배로우며 그리스도의 속죄는 조금도 실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한 성공을 이룬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께서는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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