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 : 칼빈주의 5대 교리 1 - 전적 타락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 : 칼빈주의 5대 교리 1 - 전적 타락
 blueknif.egloos.com/4711583 0 comments

4장 인간의 전적 타락
기독교에 대해 배우는 사람들은 선택과 구속의 계획이라는 중등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지혜롭고도 옳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동일한 접근 방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나는 이러한 진리들이 더욱 명백하고도 분명하게 선포되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나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모두 믿으며, 이 교리가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이것들을 믿고 배워야 한다고 굳게 확신한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역사적 기독교이다.
-제프리 토마스(Geoffrey Thomas)
여기서부터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1. 알미니안주의자의 도전과 도르트 총회의 반론(칼빈주의 5대 교리)
알미니안주의자의 신학적 도전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다섯 가지 신학적 도전으로 다음과 같이 그들의 믿음을 제시했다.
① 조건적인 선택
그들은 선택이 하나님께서 태초에 누가 그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선택받을 것인지를 알고 계신다는 의미의 예지적 신앙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엄밀히 말해 선택은 주권적이지도 않으며 우리의 공로를 배제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② 우주적 속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동등하게 구원을 이루셨지만 신자만이 그 유효함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것 자체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③ 부분적인 타락
그들은 인간이 심각하게 타락했지만 완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믿음과 회개에 대한 복음의 초청에 응하거나 응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고 말한다. 결국 죄인들은 그들의 선택으로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성령에 의해 거듭나는 것이다.
④ 항거할 수 있는 은혜
그들은 인간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내적이고도 은혜로운 부르심을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그에 응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한정되고 통제되는 것이다.
⑤ 은혜의 상실
알미니우스는 신자가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르트 신조’(1618)가 제정될 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성도의 궁극적 견인 교리를 부정했다. 그들은 신자가 계속해서 믿지 않는 한 절대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도르트 총회의 대표자들은 알미니안주의의 가르침이 복음의 주요 두 가지 핵심을 위협한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죄인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는 영광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항거할 수 없는 무적의 은혜 안에 있는 신자의 안전과 보증이다.
도르트 총회의 대표자들은 ‘도르트 신조’ 안에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부인과 거절에 담긴 모든 의미들을 철저하게 논박했고, 구원론적 칼빈주의라 불리는 칼빈주의 신학의 정수를 제시함으로써 구원에 관한 주요 칼빈주의적 교리들을 진술했다. ‘도르트 신조’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진술한다.
① 주권적 은혜의 계획(무조건적인 선택)
② 주권적 은혜의 유효성(제한 속죄)
③ 주권적 은혜의 필요성(전적 타락)
④ 주권적 은혜의 적용(불가항력적 은혜)
⑤ 주권적 은혜의 보존(성도의 견인)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공헌 가운데 하나인 ‘칼빈주의의 구원론’을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 5대 교리들은 칼빈주의적 구원의 계획에서 가장 논쟁적인 국면을 훌륭하게 변호하고 변증한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19세기 이후 개혁주의 구원론을 요약하고 교훈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은 ‘튜울립(TULIP)’이라는 두문자어를 통하여 아주 쉽게 외울 수 있다. 이것은 ‘도르트 신조’의 순서와는 다르다.
① Total depravity(전적 타락)
②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인 선택)
③ Limited atonement(제한 속죄)
④ Irresistible grace(불가항력적인 은혜)
⑤ 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

여기서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첫 번째 요점인 전적 타락을 간략하게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개 장에서는 나머지 요점들,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에 대해 강해할 것이다.
 
2. 인간의 전적 타락
성경은, 타락한 인간도 물론 외적으로 선한 행위를 할 수 있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절대로 참된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요 3:1-8; 롬 8:8 참고).
칼빈주의자들은, 전적타락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지옥에 가야 마땅할 죄과와 부패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이 죄과와 오염을 지울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이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해서 교훈하는 다섯 가지 핵심 요점을 반드시 이해해야만 한다.
 
1) 표준에서 이탈한 죄악
성경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하나님에 대한) 불법이라”(요일 3:4)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죄는 우리의 행위와 태도와 본성으로 하나님의 도덕법을 준수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하거나 되지 말아야 할 존재가 되는 것(실행의 죄),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되지 않는 것(태만의 죄), 그 모두가 되인 것이다.

죄에 대한 모든 다양한 용어 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표로 정하신 과녁에 이르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 것
둘째, 의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 불신앙적이며 불경건한 자가 되는 것.
셋째,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는 것.
넷째, 죄과와 관계하는 것.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
다섯째, 의식적인 배반 행위.
여섯째,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을 반대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왜곡을 저지르는 것.
일곱째, 특별히 하나님께 심판받을 정도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를 저지르는 것.
 
우리의 모든 생명이 본성상 불경한 자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을 넘어섰으며 죄악을 범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고 그분을 대적했으며,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싫어하시는 일을 쉽게 행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고’(사 53: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롬 3;23) 된 것이다.
우리는 본성상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롬 8:7)가 되었고 하나님을 향하여 적극적이고도 미친 듯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품은 자였으며,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딛 3:3)였다. 우리의 동기가 전혀 순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죄를 범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2) 근본적인 영적 타락
전적 타락은 근본적으로 내적이며 영적인 타락이다. 아담 안에서 심각하고도 비극적인 타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우리의 영적 타락 말이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두 가지 주요한 영향을 받았다.
첫째, 아담에게 내려진 죄의 선고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기에 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롬 5:18)라는 말씀을 통하여 이 부분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둘째, 우리는 아담의 죄의 더러움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죄인이 되었다. 다윗이 시편 51편 5저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껏해야 우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의, 즉 가장 최고의 선한 행실과 의로운 행위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다만 ‘더러운 옷’(사 64:6), 즉 넝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부패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타락의 깊이를 희미하게 감지하고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다. 존 번연(‘천로역정’의 저자)은 자신의 영적인 부패를 잠시 보고서 영국에 있는 그 어떤 사람의 마음이든지 그것과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나쁜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아주 나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가 훨씬 더 악하고 심각하다. 우리가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성경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로마서 3:9-20절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러한 상태(‘원죄’)가 실제 범죄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도 무거운 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원죄와 나쁜 마음이라는 샘 근원으로부터 우리의 실제적인 죄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3) 비극적인 전체적 타락
전적 타락은 죄가 비극적으로 포괄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죄가 우리 인간의 모든 국면에 지독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의 영적 생명이 심각하게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의 모든 국면이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인격의 그 어느 부분도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지성과 양심과 감정과 야망과 의지와 우리 영혼의 요새들이 모두 다 본성적으로 죄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전적 타락이 절대적인 타락은 아니다.
이 세상은 지옥이 아니다. 전적 타락은 불신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전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것 가운데 전적으로 선한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이나 양심을 전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으로 인하여 인간은 여전히 가족적인 애정을 표현할 수 있고 시민으로서의 의무들을 행할 수 있다. 그는 영웅적인 일을 할 수도 있고 육체적인 담력을 나타내 보일 수도 있으며 위대한 자기 부인을 보여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본성의 모든 국면에 있어서 여전히 부패한 죄인이며,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그 어떤 선한 행실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4) 노예적인 무능력
전적 타락은 무능력을 의미한다.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은 없으며 인간 삶의 다른 모든 국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로마서 6장 16절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위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죄의 종이었다고 말한다. 죄가 바로 당신의 주인인 것이다. 죄가 당신의 주인 노릇을 하며 당신을 통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언제나 당시니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와 같이 전적 타락은 도덕적 무능력을 수반한다. 우리는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무기력하며, 우리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인식할 수도 없고 회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할 능력도 없다.
칼빈은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의지를 심어 주시기 전까지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자연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죄로부터 돌아서라는 복음과 계명의 말씀을 수없이 듣는다 할지라도,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 회심할 수도, 그것을 준비할 수도 없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9장 3절 참고).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당신을 영적 사망에서 건져 주시고 멀어 버린 눈을 열어 주시고 닫힌 귀를 듣게 하시며, 당신을 묶고 있는 죄악의 사슬을 끊어 주시기 전까지 당신은 여전히 죄의 종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 하더라도 당신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죄의 중독과 끊임없이 싸우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죄의 중독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5)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타락
전적 타락은 죄의 마지막 결과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바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죄를 위해 일하고 봉사한다면, 당신은 죄의 삯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도덕 법칙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우리 모두에게 육체적 사망(몸과 영의 분리)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즉 영적 사망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하고 그분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영적 사망이 있다. 즉, 우리의 영혼과 몸이 조금의 일반은총도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사망이 있는 것이다.
 
영적 사망은 지옥이다. 지옥은 엄숙하고도 심각한 실재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죄는 더 이상 극악하고 비열하게 묘사될 수 없는 극이다. 죄와 타락은 영적 어리석음과 미친 짓의 절정이다. 이러한 우리 죄와 타락의 심각성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복음적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을 높인다. 이에 대하여 이안 해밀턴(Ian Hamilton)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마음속에 잔존하는 교만에 도전한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그리고 본성적으로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이 공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더 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전적 무능력이라는 진리에 직면할 때 매우 깊이 겸손해진다. 이것은 존 칼빈이 제네마에서 만든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 즉 진리이다. 우리가 이 진리에 설복당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교만을 때려눕히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교훈해 줄 것이다. 이것은 칼빈주의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고 인간을 인간 되게’ 말하는 또 다른 표현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성경적 기독교의 시금석이다.”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