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 : 칼빈주의 신앙고백서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 : 칼빈주의 신앙고백서
http://blueknif.egloos.com/4701725

Calvinism_confessions.zip (주요 7개 신앙고백서)

초기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신앙고백문을 만드는 데 헌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신앙고백들이 단지 인간의 불완전한 통찰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임시적인 성격을 지닌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신앙고백의 권위는 오직 본질적인 고유의 권위를 소유한 성경으로부터 연원되어야 하며, 반드시 성경에 종속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이 가장 선호하고 열렬히 지지하는 일곱 개의 신앙고백서들은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이다.

 

벨직 신앙고백서(1561)

현존하는 일곱 개의 신앙고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벨직 신앙고백서’의 주요 저자는 귀도 드 브레(1522-1567)이다. 16세기에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협력자인 스페인 왕 필립 2세에게서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561년에 드 브레는 동료 목사들의 도움을 받아 ‘개혁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적 교리들을 고백하는 것으로서 법률을 준수하는 준법 시민이 되는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결국 드 브레는 1567년에 순교하였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1566년에 앤트워프 종교 회의를 통해 개정되었고 네덜란드 국가 종교 회의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추후에 개정된 이후 도르트 종교회의(1618-1619)는 ‘벨직 신앙고백서’를 개혁주의 교회들의 모든 성직자들이 동의해야만 하는 교리적 표준서로 채택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독일 팔라틴 지역의 선제후 프레드릭 3세의 요청으로 하이델베르그에서 작성되었다. 이 경건한 왕자는 젊은이들과 목사들과 교사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인 28세의 자카리우스 우리시누스와 프레드릭을 위한 궁정설교가인 26세의 카스파 올레비아누스에게 개혁주의 요리문답을 준비하라는 사명을 맡겼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1563년 1월에 열린 하이델베르그 종교 회의에서 승인되었고 이후 제4판이 오랫동안 이 요리문답의 공식 본문으로 간주되었다. 도르트 종교 회의를 통해 인가된 네덜란드어판은 이 제4판을 번역한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여호와의 날’로 언급되어 있는 한 부분을 한 해 동안 매주일 설교할 수 있도록 5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다. 또한 다른 신앙고백서들보다 더 많은 증거 본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비범한 권세와 아름다움, 공인된 대작’인 이 요리문답의 129개의 질문과 대답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로, 참된 신자의 위로에 관한 감동적인 개론 이후, 제3문-제11문에서는 죄와 비참의 경험을 다룬다. 둘째로, 제12문-제85문은 사도신경과 성례에 대한 상당한 분량의 강해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속과 믿음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86문-제129문은 주로 주기도문과 십계명의 연구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참된 감사(롬 12-16장)를 다룬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바젤 종교 회의(1568)와 엠든 종교 회의(1571)와 도르트 종교 회의, 헤이그 종교 회의(1586)를 통해 승인되었고, 네덜란드의 공식적인 세 가지 신조 가운데 하나로 채택되었다. 특히 도르트 종교 회의에서는 의무적으로 이 요리문답을 매주 설교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요리문답은 성경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책보다도 더 널리 보급되었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는 1562년에 하인리히 불링거의 개인적인 고백과 증언의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팔라틴 왕국의 선제후인 프레드릭 3세가 개혁주의 신앙의 강해서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자, 불링거는 그에게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의 사본을 주었다. 그러자 프레드릭은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할 것을 명하였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실제로 30개의 장과 2만여 단어에 육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개혁주의 신학의 치밀한 교과서와 같다. 내용은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칼빈주의적인 조직신학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도 실제적이며 경건한 문제들 역시 관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도르트 신조(1618-1619)

1618-1619년 네덜란드에서는 다섯 가지의 주요 교리 논쟁에 대하여 도르트 종교 회의가 열렸다. 이것이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국가 총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르트 신조’는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62명의 네덜란드 대표자들 이외에도, 영국과 스위스와 독일과 다른 다섯 개 국가에서 27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것이다.

‘도르트 신조’는 알미니안 주의의 발흥으로 야기된 네덜란드의 심각한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열렸다. 라이든 대학의 신학교수인 야곱 알미니우스(1560-1609)는 몇 가지 중요한 요점에 대하여 칼빈주의자와는 매우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가르쳤다.

1. 예지적 믿음에 근거한 선택

2. 그리스도의 속죄의 우주성

3. 자유의지와 인간의 부분적 타락

4. 항거할 수 있는 은혜

5.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가능성

 

도르트 종교회의는 이 논쟁적인 교리들에 대하여 다음의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제시했다.

1. 무조건적인 선택과 구원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다. (무조건적인 선택)

2.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구원의 효력은 택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제학 속죄)

3.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타락하고 오염되어서, 구원에 대하여 자유의지를 행사하거나 거기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전적 타락)

4.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은혜가운데 불가항력적으로 택자를 부르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불가항력적 은혜)

5.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 노력할 때 연약함으로 인하여 고난당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세상 끝날까지 인내하게 하시고 보존하신다. (성도의 견인)

‘도르트 신조’는 사실 3과 4를 하나의 항목으로 하여 네 가지 항목만을 제시한다.

 

‘도르트 신조’는 3대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가운데 교회 총회가 작성한 유일한 신조이며, 당시 모든 개혁교회들의 견해를 제시한 신조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의 신학자들은 세계에 산재한 모든 장로교회들을 교훈하고 지도하는 일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던, 교회 역사상 참으로 전무후무한 기념비적인 문서를 만들어 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소요리문답’과 함께 장로교주의에 관하여 칼빈의 ‘기독교 강요’보다 훨씬 더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언약 신학에 대해 중요한 견해를 제시한다. 총 33장으로 구분되는 이 신앙고백서는 신적인 지식의 근원인 성경에서 시작하여 상당한 분량의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과 창조섭리, 타락의 문제를 다루고(2-6장), 은혜 언약과 그리스도의 사역, 구속의 적용 문제를 다룬다(10-18장). 한편 ‘성령’이라는 주제를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아 스콜라주의적 문사를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약자 교리(12장)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다루어 스콜라주의적이지 않은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교회론과 성례(25-29장), 그리고 마지막 종말(32-33장)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계명과 자유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세심한 견해가 담겨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1648)

‘소요리문답’은 107개의 지문과 단답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식은 대체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따르면서도 그 신학적 정의는 좀 더 간결하고도 단순하다.

‘소요리문답’에서는 첫 번째 문답의 훌륭함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또한 강조되는 중요한 특징은 사람의 제일되는 이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를 때에 성취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 깊고도 상세한 십계명 주해(제41-81문답)가 이어진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1648)

‘대요리문답’은 총 196문답으로 되어 있으며, 많은 답변들이 100단어 이상의 여러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다섯 개의 질문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제6문-제90문은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며, 나머지 제91문-제196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무에 관해 설명한다.

 

로버트 갓프리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17세기 청교도들은 가장 사려 깊고 경건하며, 기독교회 역사상 가장 심오한 성경의 학생들이었다.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는 그들의 이러한 노력의 요약과 추출물과 같다.”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