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사도신경 해석
칼빈의 사도신경 해석
1. Institutio의 상이한 단락에서 나타나는 사도신경
Institutio는 1536-1564사이 칼빈의 생애동안에 라틴어와 불어로 적어도 24번 출판되었다.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Institutio 출판물과 이태리 또는 영어로 번역된 출판물까지 합하면 30번 이상 출판되었다고 볼 수 있다.
Corpus Reformatorum 출판은 라틴어 판을 5가지로 나누어 보면:
1. 1536
2. 1539
3. 1543-1545
4. 1550-1554
5. 1559-1564
불어 판은 3가지로 분류된다. 우리의 논문은 라틴어 판을 근거로 해서 서술했다.
첫 번째 판은 , 6장으로 구성되어있고, 둘 째 판은 17장, 셋 째와 넷 째는 21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섯 째 판은 4권으로 이루어져있으면, 총 80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즉 Institutio는 칼빈에 의해 계속 확장되었다. 그의 해석의 주요 방향은: 첨가하기, 아주 가끔 삭제, 덧붙이기, 그리고 아주 드물게 바꾸기. 여기에다 다섯째판의 Institutio는 완전히 새로운 내적 구성의 질서가 덧붙여졌다. 이와 같은 질서는 특히 사도신경에서도 잘 나타난다.
첫째와 두번째판의 본문에서, 사도신경은 율법이 해석된 그 다음 장에서 나온다. 즉 첫 째 판에서는 제 II장, 둘 째 판에서는 제 IV장에서 나온다. 셋째와 네째판에서도, 사도신경은 역시 율법 해석 뒤에 나오나, 이 두 사이에 ‘맹세’에 대한 글이 들어있다. 그래서 사도신경 해석은 두 본문에서 VI-VII장 에서 나타난다.
1559 판은 Institutio로 하여금 완전히 다른 새로운 내적 질서를 안겨줬다. 이 질서는 사도신경에 대한 논설을 어느 특정한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칼빈은 너무나도 많은 성경 자료를 활용하여, 하나를 이루는 교리문답식 글로써의 사도신경의 일체가 여기는 서 깨진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와같은 기본 원칙으로 나타났다 -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본문 다섯번째판에서 칼빈은 사도신경에 대해서는 Lib.II.Cap.16,18.; “De Trinitate”에 대해서는 Lib.I.Cap.13에서; 창조와 섭리에 대해서는 Lib.I.Cap.14-16.에서 다루었다. 둘 째 논설은 - “빌라도”에서 시작해서 - Lib.II.Cap.12-17에 있으며, 사도신경의 순서에 따라 해석되었다. 성령에 대한 가르침은 Lib.III.Cap.1에 있으며,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나머지 논제에 대해서는 - 역시 부분적으로 사도신경의 순서에 따라 - 제 3 그리고 4 권에서 읽을 수 있다.
2.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의 사도신경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 - 1537의 불어 판이나 1545년의 라틴어 판에서나 - 사도신경은, 1536년의 Institutio에서 10계명의 해석방식과 비슷한 방식을 따른다. 칼빈은 사도신경의 분류에 있어서 전통적인 형태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사도신경을 9개로 나누었다. 두 분류 방식을 비교하여 보면:
전통적 분류
1. 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2.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3.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4. passus sub Pontio Pilatu,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est,
5.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6. ascendit ad co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7.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s mortuos.
8. Credo in Spiritum Sanctum,
9.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10. remissionem pecatorum,
11. carnis resurrectionem,
12 et vitam aeternam.
칼빈의 분류
1. 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2.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3.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4. passus sub Pontio Pilatu,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5. ascendit in coelum, sedet ad dexteram Patris, inde venturus ad iudicandum vivos et mortuos.
6. Credo in Spiritum Sanctum,
7.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8. credo remissionem pecatorum,
9. credo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이러한 상이한 분류 방식은, 칼빈이 - 전체 교회 교리처럼 - 역시 중세 전통의 사도신경의 해석을 자유롭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도신경의 그 유효함과 정당성은 12 사도들이 그것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순수하고 논리적인으로 조명하길 원해서, 여기서 전통적인 분류가 불필요해진 것이다.
3. 사도신경의 4 분류 방식
제네바 교리문답에서 보았던 9개의 부분은 여러 Institutio 판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전형적인 것은 바로 4개의 논설로 나누는 것이다.
칼빈이 이러한 분류를 만든 것이 아니라, - 아우구스티누스를 첨가하면서 -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에 대해서 말하기로 했으며, 그것을 짧게 표현하기 위해 사도신경이 기록되었으며, 이 사도 신경은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앞의 세 번째판 부분은 성삼위일체에 관한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일체는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의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넷 째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자라나는 열매와 우리의 경건한 소망의 대상에 관한 것이다.”
앞의 세번째판 부분은 단지 삼위일체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창조, 섭리, 구원, 속죄 그리고 부활.
1559년부터 - Institutio의 5번째 본문이 전에 출판된 것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내적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 사도신경에 관한 논설을 하나의 특정한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질서가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4 권의 책”은 사도신경의 4부분을 온전히 나타내는 듯 하다! 1559의 Institutio와 그 이후 출판된 책에서, 각각 첫 권에서는 창조주로써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 두번 째 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자로써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번 째 권에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그로 인해 어떤 열매가 우리로부터 자라나고, 그로 인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넷 째 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초대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외적 도구나 도움을 다룬다. 우리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4개의 논설로 나타난 - 예전에 교리문답식 일체였던 - 사도신경은 Institutio의 다섯번째판에서 새로운 하나의 질서의 원칙이 된 것이다.
4. 사도신경에 대해서 칼빈은 직접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이 신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쉽게 배울 수 있다; 사도신경 안에 바로 핵심적인 것이 쉽게 기록되어있으며, 가톨릭 (전체) 교회가 동의하는 믿음의 기본 틀이 있다.”
이 해석은 1539 판에서 확대되었고 첫째-넷째판 본문에서 사도신경 해석의 서론이 된다. 1559 판과 그 이후의 판에서 사도신경의 순서는 단지 두 번 째 논설의 해석만이 언급된다. 즉, 빌라도의 심판 부분에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부분까지의 해석에서만 언급된다는 것이다. 해석은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그래서 사도적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이와 같이 올바른 순서로 기록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온전한 구원의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모든 생애동안 순종한 것이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리지 않는다.”
같은 판에서 우리는 사도신경의 근원에 대한 짧은 요약을 읽을 수 있다. 긴 인용문은 또한 칼빈이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까지 나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지켰다: 이것은 몇 마디로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우리 구원의 핵심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할 것을 명백히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이 신앙고백을 ‘사도적’이라고 부르지만, 특별히 그 저자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교부들은 모두 입을 모아 사도들이 썼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은 이것이 사도들에 의해 공동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어쩌면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이 사도신경을 충실하게 보여주며, 이것을 통해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신앙고백이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즉 사도의 시대 이래로 공개적이고 일반적인 신앙고백으로 전수되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 어디서 왔든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은 어차피 어떤 특정 인물이 자신의 이름으로 편찬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신자들로부터 거룩한 존엄성을 얻고 있다. 우리가 유일하게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하다: 신앙고백은 우리의 믿음이 근거로 하는 전체 역사를 명백하고 올바른 원리에 따라 가르쳐주며, 이것은 또한 번복될 수 없는 성경의 근거로 증명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것을 알면, 신앙고백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머리 쥐어짜며 생각하거나, 저자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 누구의 입으로 이야기하고 누구의 손으로 쓰는지를 확실히 안다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성령의 진리를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5. 동정녀 마리아에 나시고
조항을 각각 살펴보며, 우리는 칼빈이 전통적인 길을 걷지 않은 3 가지 논제를 찾았다. 그 첫 번째 논제가 바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이다.
1536년의 글에서, 우리는 이것에 관하여 몇 문장을 읽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기적적이고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동정녀의 몸에 잉태하였다. 동정녀로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으며,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가장 비참한 죽음에 맡기고, 자신의 피를 속죄물로 드렸다.”
이것은 함축적이며, 전통적인 요약이다. 칼빈은 이후의 출판물에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동정녀로부터 태어난 사건을 하나님 아들의 인성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그러나 1559년 판에 새로운 논증들이 추가된다. 이와 같은 것은 그러나 이미 1539년 판에서 이야기된 것이다: “축복의 약속은 하늘의 씨앗이나 인간의 형상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의 씨와 관련 있다.” 이 문장은 1559년 Lib.II.Cap.13.3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덧붙여지며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 또는 다윗 허리의 열매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여성들이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씨앗이면서 처녀로부터 나았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를 거쳐 또한 다윗의 씨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매우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녀의 씨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은 마치 Boas가 라합에서 태어났다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마태는 또한, 마리아를 그리스도께서 그저 통과해야할 하나의 터널과 같은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 그리고 또한 다윗의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분의 탄생을 일반적인 탄생과 구별짓는다.”
즉: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칼빈에게 있어서 중세 후기 신학의 의미에서의 원죄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원죄에 대해서 Lib.II.Cap.1에서 논쟁한다.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구약성경에서의 예언의 성취다. 이것은 하나님 아들의 “신적 본성”에 관한 증거는 되지 못 한다. 즉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신적 본질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바로 ‘탄생’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에 속한 것이며, 구약성경의 예언에 관해서 이것은 아브라함 안에 믿음에 주어진 약속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6. 음부로 내려가셨음
“그분께서 지하세계로 내려가신 것은, 그분께서 중재자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그분의 의를 우리의 이름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그분께서 하나님에 의해 깊은 곳으로 빠지게 되고 하나님 심판의 무서움과 엄격함을 겪으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음부로 내려가셨다’라는 말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 지옥의 연못이라는 이름을 가진 특정 장소로 갔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옛 동맹관계에 있던 조상들이 마치 감옥에 갇혀있고, 그분께서 문을 힘으로 제압하여 그들을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이며, 아무리 위대한 증인들이 이것이 옳다고 주장할지라도, 이것은 결국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1559년에 다음과 같이 더 덧붙여진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감옥과 같은 곳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 구원에 관하여는 칼빈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잠이 들어버린 자들에게 그분의 성령의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나는 기꺼이 인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단지 소망 가운데 맛보았던 은혜가 세상에 계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끔 해주기 위함이었다... 이것으로 그 시대 이전에 죽었던 신자들이 그래도 우리와 함께 같은 은혜를 나누고 있으며, 불경건한 자들은 또한 그 어떤 구원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것이 더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음부로 내려가셨음”에 대한 더 신뢰할만한 칼빈의 설명은,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겪어야할 영혼의 고통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그분께서 단지 자신의 육체만 속죄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저주받고 잃어버린 인간이 당해야할 끔찍한 고통들을 자신의 영혼이 겪게끔 하여 더 값진 희생을 치르신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도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 음부행의 문제에 관하여 다른 문장을 좀 살펴보자: “Descensus에 대한 가르침은 신학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그 중요한 중심에 기독교 신학의 여러 길이 엉켜져있다... Descensus에 관한 전통적인 신약성경 입장의 해석에 관하여 해석자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붙잡을 수 있다: 죽음의 나라에서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능동적인 구원의 효력에 대해서 명확하게 언급된 바는 없다.”
논설의 분류에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다: 음부로 내려가신 부분은 어디에 포함되는가? 전통적인 분류에 따르면: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 나온 칼빈에 따르면: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즉 여기서의 신학적인 문제는: “죽음 이후의 Descensus는 고통일 수가 있는가? 승리이어야 하지 않은가?” 루터에서는 양쪽의 요소들을 둘 다 볼 수 있다. Melanchton은 오직 승리적인 Descensus 해석을 한다. Zwingli에게 있어서 이 표현은 그저 “ex humanis abire”를 의미한다. Bullinger는 모든 거룩한 족장들을 향한 구원의 효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주여행 시대와 과학적-코페르니쿠스적인 세계관에 있어서 이것은 시대 착오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념은 비신화적 과정에 있어서 이미 끝난 것으로 보아야되지 않은가? 이것은 이미 매말라버린 유물이 아닌가?”
이미 종종 그랬듯이, 우리는 칼빈의 가르침이 XX.세기의 개혁신학과 여전히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7. 육체의 부활
1536년 Institutio의 글에서 육체의 부활이 짧고 그리고 근본적으로 설명된다: “그 전에 생명을 다한 자들은 자신의 육체를 다시 취할 것이다; 그 육체가 벌레에 의해 먹혀졌든지, 이 세상에서 살인을 당했든지, 흙이 되었든지, 또는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 파괴되었든지 간에. 그 때 살고 있는 자들은, 그들 육체의 썩는 성질이 없어지게 될 것이고,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불멸의 본성으로 넘어가고, 경건한 자들은 생명의 영광에, 버림받은 자들은 죽음으로 추방될 것이다.” 이 말은 1539년에서 1559년 판까지 별 특별한 확장 없이 지속된다. 그러나 새로운 체계에서 마지막 부활에 대한 해석이 Lib.III.Cap.25에서 자세하게 설명 되어있다. 칼빈은 예전의 해석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한다: “이미 썩어서 찢겨진 우리의 육체가 때가 이를 때 다시 일어날 것을 믿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은 두 가지 방책을 제시해준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모범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이 두 보조수단에 대해서 설명하고 난 후 이것에 대한 부정을 논박한 뒤, Peter Caroli와의 논쟁을 가리키며 말한다: 육체의 부활, 그러나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그 사이의 상태에 관한 문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바 된 영혼을, 이 부실한 삶에서 육체를 얻는 그저 간단한 입김으로 여기는 것은 아주 끔찍한 오류다. 신성이 가장 밝게 빛나고 불멸의 놀라운 특성들이 나타나는 그 일부분에서 이러한 은사를 빼앗고, 육체를 영혼보다 더 빛나는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계속하여 우리는 육체, 영혼 그리고 정신과의 관련성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육체를 보존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에 육체, 영혼 그리고 역시 정신에게도 해당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전으로 부음 받은 우리의 육체가 부활에 대한 희망도 전혀 없이 썩어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는 부활의 종류에 대해서 아주 짧게 이용하겠다: “그 본질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그 육체가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질은 다를 것이다. 이와 같이 속죄물로 드려진 그리스도의 육체가 다시 일어섰지만, 그 육체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치 다른 육체와 같았다.”
육의 부활은 오늘날까지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한다: 이것은 하나의 경험이(그리스도는 재외지만) 아니라,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한다: “나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8. 요약
칼빈의 사도신경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에 칼빈의 작품에서 사도신경은 마지막 Institutio 판을 위한 교리문답식 일체에서 하나의 중심적인 기본원칙으로 발전해 나간다.
칼빈에게 있어서 사도신경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도들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의 진리를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것에 있다. “sola Scriptura”라는 원칙을 보면 다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사도신경이 복음 속에서 하나의 바깥 세상의 또다른 이물질로 구성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은 여기서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나중에 나온 Institutio 판에서, 우리는 초기 때의 칼빈의 극단주의적인 면이 보다 더 약해지고, 해석 자체가 보다 더 다방면적이고 더 조화를 잘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앞에서 드러낸 것들을 보면, 칼빈이 여전히 XX.세기의 개혁신학과 여전히 상호작용을 하고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입면제일 원문보기 글쓴이 : 서봉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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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stitutio의 상이한 단락에서 나타나는 사도신경
Institutio는 1536-1564사이 칼빈의 생애동안에 라틴어와 불어로 적어도 24번 출판되었다.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Institutio 출판물과 이태리 또는 영어로 번역된 출판물까지 합하면 30번 이상 출판되었다고 볼 수 있다.
Corpus Reformatorum 출판은 라틴어 판을 5가지로 나누어 보면:
1. 1536
2. 1539
3. 1543-1545
4. 1550-1554
5. 1559-1564
불어 판은 3가지로 분류된다. 우리의 논문은 라틴어 판을 근거로 해서 서술했다.
첫 번째 판은 , 6장으로 구성되어있고, 둘 째 판은 17장, 셋 째와 넷 째는 21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섯 째 판은 4권으로 이루어져있으면, 총 80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즉 Institutio는 칼빈에 의해 계속 확장되었다. 그의 해석의 주요 방향은: 첨가하기, 아주 가끔 삭제, 덧붙이기, 그리고 아주 드물게 바꾸기. 여기에다 다섯째판의 Institutio는 완전히 새로운 내적 구성의 질서가 덧붙여졌다. 이와 같은 질서는 특히 사도신경에서도 잘 나타난다.
첫째와 두번째판의 본문에서, 사도신경은 율법이 해석된 그 다음 장에서 나온다. 즉 첫 째 판에서는 제 II장, 둘 째 판에서는 제 IV장에서 나온다. 셋째와 네째판에서도, 사도신경은 역시 율법 해석 뒤에 나오나, 이 두 사이에 ‘맹세’에 대한 글이 들어있다. 그래서 사도신경 해석은 두 본문에서 VI-VII장 에서 나타난다.
1559 판은 Institutio로 하여금 완전히 다른 새로운 내적 질서를 안겨줬다. 이 질서는 사도신경에 대한 논설을 어느 특정한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칼빈은 너무나도 많은 성경 자료를 활용하여, 하나를 이루는 교리문답식 글로써의 사도신경의 일체가 여기는 서 깨진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와같은 기본 원칙으로 나타났다 -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본문 다섯번째판에서 칼빈은 사도신경에 대해서는 Lib.II.Cap.16,18.; “De Trinitate”에 대해서는 Lib.I.Cap.13에서; 창조와 섭리에 대해서는 Lib.I.Cap.14-16.에서 다루었다. 둘 째 논설은 - “빌라도”에서 시작해서 - Lib.II.Cap.12-17에 있으며, 사도신경의 순서에 따라 해석되었다. 성령에 대한 가르침은 Lib.III.Cap.1에 있으며,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나머지 논제에 대해서는 - 역시 부분적으로 사도신경의 순서에 따라 - 제 3 그리고 4 권에서 읽을 수 있다.
2.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의 사도신경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 - 1537의 불어 판이나 1545년의 라틴어 판에서나 - 사도신경은, 1536년의 Institutio에서 10계명의 해석방식과 비슷한 방식을 따른다. 칼빈은 사도신경의 분류에 있어서 전통적인 형태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사도신경을 9개로 나누었다. 두 분류 방식을 비교하여 보면:
전통적 분류
1. 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2.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3.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4. passus sub Pontio Pilatu,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est,
5.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6. ascendit ad co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7.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s mortuos.
8. Credo in Spiritum Sanctum,
9.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10. remissionem pecatorum,
11. carnis resurrectionem,
12 et vitam aeternam.
칼빈의 분류
1. 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2.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3.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4. passus sub Pontio Pilatu,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5. ascendit in coelum, sedet ad dexteram Patris, inde venturus ad iudicandum vivos et mortuos.
6. Credo in Spiritum Sanctum,
7.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8. credo remissionem pecatorum,
9. credo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이러한 상이한 분류 방식은, 칼빈이 - 전체 교회 교리처럼 - 역시 중세 전통의 사도신경의 해석을 자유롭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도신경의 그 유효함과 정당성은 12 사도들이 그것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순수하고 논리적인으로 조명하길 원해서, 여기서 전통적인 분류가 불필요해진 것이다.
3. 사도신경의 4 분류 방식
제네바 교리문답에서 보았던 9개의 부분은 여러 Institutio 판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전형적인 것은 바로 4개의 논설로 나누는 것이다.
칼빈이 이러한 분류를 만든 것이 아니라, - 아우구스티누스를 첨가하면서 -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에 대해서 말하기로 했으며, 그것을 짧게 표현하기 위해 사도신경이 기록되었으며, 이 사도 신경은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앞의 세 번째판 부분은 성삼위일체에 관한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일체는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의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넷 째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자라나는 열매와 우리의 경건한 소망의 대상에 관한 것이다.”
앞의 세번째판 부분은 단지 삼위일체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창조, 섭리, 구원, 속죄 그리고 부활.
1559년부터 - Institutio의 5번째 본문이 전에 출판된 것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내적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 사도신경에 관한 논설을 하나의 특정한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질서가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4 권의 책”은 사도신경의 4부분을 온전히 나타내는 듯 하다! 1559의 Institutio와 그 이후 출판된 책에서, 각각 첫 권에서는 창조주로써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 두번 째 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자로써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번 째 권에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그로 인해 어떤 열매가 우리로부터 자라나고, 그로 인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넷 째 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초대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외적 도구나 도움을 다룬다. 우리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4개의 논설로 나타난 - 예전에 교리문답식 일체였던 - 사도신경은 Institutio의 다섯번째판에서 새로운 하나의 질서의 원칙이 된 것이다.
4. 사도신경에 대해서 칼빈은 직접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이 신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쉽게 배울 수 있다; 사도신경 안에 바로 핵심적인 것이 쉽게 기록되어있으며, 가톨릭 (전체) 교회가 동의하는 믿음의 기본 틀이 있다.”
이 해석은 1539 판에서 확대되었고 첫째-넷째판 본문에서 사도신경 해석의 서론이 된다. 1559 판과 그 이후의 판에서 사도신경의 순서는 단지 두 번 째 논설의 해석만이 언급된다. 즉, 빌라도의 심판 부분에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부분까지의 해석에서만 언급된다는 것이다. 해석은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그래서 사도적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이와 같이 올바른 순서로 기록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온전한 구원의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모든 생애동안 순종한 것이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리지 않는다.”
같은 판에서 우리는 사도신경의 근원에 대한 짧은 요약을 읽을 수 있다. 긴 인용문은 또한 칼빈이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까지 나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지켰다: 이것은 몇 마디로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우리 구원의 핵심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할 것을 명백히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이 신앙고백을 ‘사도적’이라고 부르지만, 특별히 그 저자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교부들은 모두 입을 모아 사도들이 썼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은 이것이 사도들에 의해 공동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어쩌면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이 사도신경을 충실하게 보여주며, 이것을 통해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신앙고백이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즉 사도의 시대 이래로 공개적이고 일반적인 신앙고백으로 전수되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 어디서 왔든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은 어차피 어떤 특정 인물이 자신의 이름으로 편찬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신자들로부터 거룩한 존엄성을 얻고 있다. 우리가 유일하게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하다: 신앙고백은 우리의 믿음이 근거로 하는 전체 역사를 명백하고 올바른 원리에 따라 가르쳐주며, 이것은 또한 번복될 수 없는 성경의 근거로 증명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것을 알면, 신앙고백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머리 쥐어짜며 생각하거나, 저자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 누구의 입으로 이야기하고 누구의 손으로 쓰는지를 확실히 안다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성령의 진리를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5. 동정녀 마리아에 나시고
조항을 각각 살펴보며, 우리는 칼빈이 전통적인 길을 걷지 않은 3 가지 논제를 찾았다. 그 첫 번째 논제가 바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이다.
1536년의 글에서, 우리는 이것에 관하여 몇 문장을 읽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기적적이고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동정녀의 몸에 잉태하였다. 동정녀로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으며,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가장 비참한 죽음에 맡기고, 자신의 피를 속죄물로 드렸다.”
이것은 함축적이며, 전통적인 요약이다. 칼빈은 이후의 출판물에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동정녀로부터 태어난 사건을 하나님 아들의 인성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그러나 1559년 판에 새로운 논증들이 추가된다. 이와 같은 것은 그러나 이미 1539년 판에서 이야기된 것이다: “축복의 약속은 하늘의 씨앗이나 인간의 형상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의 씨와 관련 있다.” 이 문장은 1559년 Lib.II.Cap.13.3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덧붙여지며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 또는 다윗 허리의 열매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여성들이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씨앗이면서 처녀로부터 나았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를 거쳐 또한 다윗의 씨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매우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녀의 씨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은 마치 Boas가 라합에서 태어났다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마태는 또한, 마리아를 그리스도께서 그저 통과해야할 하나의 터널과 같은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 그리고 또한 다윗의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분의 탄생을 일반적인 탄생과 구별짓는다.”
즉: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칼빈에게 있어서 중세 후기 신학의 의미에서의 원죄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원죄에 대해서 Lib.II.Cap.1에서 논쟁한다.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구약성경에서의 예언의 성취다. 이것은 하나님 아들의 “신적 본성”에 관한 증거는 되지 못 한다. 즉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신적 본질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바로 ‘탄생’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에 속한 것이며, 구약성경의 예언에 관해서 이것은 아브라함 안에 믿음에 주어진 약속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6. 음부로 내려가셨음
“그분께서 지하세계로 내려가신 것은, 그분께서 중재자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그분의 의를 우리의 이름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그분께서 하나님에 의해 깊은 곳으로 빠지게 되고 하나님 심판의 무서움과 엄격함을 겪으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음부로 내려가셨다’라는 말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 지옥의 연못이라는 이름을 가진 특정 장소로 갔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옛 동맹관계에 있던 조상들이 마치 감옥에 갇혀있고, 그분께서 문을 힘으로 제압하여 그들을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이며, 아무리 위대한 증인들이 이것이 옳다고 주장할지라도, 이것은 결국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1559년에 다음과 같이 더 덧붙여진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감옥과 같은 곳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 구원에 관하여는 칼빈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잠이 들어버린 자들에게 그분의 성령의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나는 기꺼이 인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단지 소망 가운데 맛보았던 은혜가 세상에 계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끔 해주기 위함이었다... 이것으로 그 시대 이전에 죽었던 신자들이 그래도 우리와 함께 같은 은혜를 나누고 있으며, 불경건한 자들은 또한 그 어떤 구원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것이 더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음부로 내려가셨음”에 대한 더 신뢰할만한 칼빈의 설명은,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겪어야할 영혼의 고통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그분께서 단지 자신의 육체만 속죄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저주받고 잃어버린 인간이 당해야할 끔찍한 고통들을 자신의 영혼이 겪게끔 하여 더 값진 희생을 치르신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도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 음부행의 문제에 관하여 다른 문장을 좀 살펴보자: “Descensus에 대한 가르침은 신학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그 중요한 중심에 기독교 신학의 여러 길이 엉켜져있다... Descensus에 관한 전통적인 신약성경 입장의 해석에 관하여 해석자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붙잡을 수 있다: 죽음의 나라에서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능동적인 구원의 효력에 대해서 명확하게 언급된 바는 없다.”
논설의 분류에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다: 음부로 내려가신 부분은 어디에 포함되는가? 전통적인 분류에 따르면: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 나온 칼빈에 따르면: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즉 여기서의 신학적인 문제는: “죽음 이후의 Descensus는 고통일 수가 있는가? 승리이어야 하지 않은가?” 루터에서는 양쪽의 요소들을 둘 다 볼 수 있다. Melanchton은 오직 승리적인 Descensus 해석을 한다. Zwingli에게 있어서 이 표현은 그저 “ex humanis abire”를 의미한다. Bullinger는 모든 거룩한 족장들을 향한 구원의 효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주여행 시대와 과학적-코페르니쿠스적인 세계관에 있어서 이것은 시대 착오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념은 비신화적 과정에 있어서 이미 끝난 것으로 보아야되지 않은가? 이것은 이미 매말라버린 유물이 아닌가?”
이미 종종 그랬듯이, 우리는 칼빈의 가르침이 XX.세기의 개혁신학과 여전히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7. 육체의 부활
1536년 Institutio의 글에서 육체의 부활이 짧고 그리고 근본적으로 설명된다: “그 전에 생명을 다한 자들은 자신의 육체를 다시 취할 것이다; 그 육체가 벌레에 의해 먹혀졌든지, 이 세상에서 살인을 당했든지, 흙이 되었든지, 또는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 파괴되었든지 간에. 그 때 살고 있는 자들은, 그들 육체의 썩는 성질이 없어지게 될 것이고,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불멸의 본성으로 넘어가고, 경건한 자들은 생명의 영광에, 버림받은 자들은 죽음으로 추방될 것이다.” 이 말은 1539년에서 1559년 판까지 별 특별한 확장 없이 지속된다. 그러나 새로운 체계에서 마지막 부활에 대한 해석이 Lib.III.Cap.25에서 자세하게 설명 되어있다. 칼빈은 예전의 해석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한다: “이미 썩어서 찢겨진 우리의 육체가 때가 이를 때 다시 일어날 것을 믿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은 두 가지 방책을 제시해준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모범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이 두 보조수단에 대해서 설명하고 난 후 이것에 대한 부정을 논박한 뒤, Peter Caroli와의 논쟁을 가리키며 말한다: 육체의 부활, 그러나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그 사이의 상태에 관한 문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바 된 영혼을, 이 부실한 삶에서 육체를 얻는 그저 간단한 입김으로 여기는 것은 아주 끔찍한 오류다. 신성이 가장 밝게 빛나고 불멸의 놀라운 특성들이 나타나는 그 일부분에서 이러한 은사를 빼앗고, 육체를 영혼보다 더 빛나는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계속하여 우리는 육체, 영혼 그리고 정신과의 관련성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육체를 보존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에 육체, 영혼 그리고 역시 정신에게도 해당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전으로 부음 받은 우리의 육체가 부활에 대한 희망도 전혀 없이 썩어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는 부활의 종류에 대해서 아주 짧게 이용하겠다: “그 본질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그 육체가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질은 다를 것이다. 이와 같이 속죄물로 드려진 그리스도의 육체가 다시 일어섰지만, 그 육체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치 다른 육체와 같았다.”
육의 부활은 오늘날까지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한다: 이것은 하나의 경험이(그리스도는 재외지만) 아니라,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한다: “나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8. 요약
칼빈의 사도신경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에 칼빈의 작품에서 사도신경은 마지막 Institutio 판을 위한 교리문답식 일체에서 하나의 중심적인 기본원칙으로 발전해 나간다.
칼빈에게 있어서 사도신경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도들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의 진리를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것에 있다. “sola Scriptura”라는 원칙을 보면 다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사도신경이 복음 속에서 하나의 바깥 세상의 또다른 이물질로 구성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은 여기서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나중에 나온 Institutio 판에서, 우리는 초기 때의 칼빈의 극단주의적인 면이 보다 더 약해지고, 해석 자체가 보다 더 다방면적이고 더 조화를 잘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앞에서 드러낸 것들을 보면, 칼빈이 여전히 XX.세기의 개혁신학과 여전히 상호작용을 하고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입면제일 원문보기 글쓴이 : 서봉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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