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칼빈의 생애 (3)
요한 칼빈의 생애 (3)
칼빈은 자신의 그 체험을 나중에 쓴 「시편 주석」(1557)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처음에는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교황주의의 그 미신들(the superstitions of the papacy)에 너무도 깊이 빠져 들어 있었으므로, 돌연한 회심(subita conversio)에 의해 그처럼 깊은 구렁텅이에서 나를 끌어낸다는 것이 실로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나이에 비해서는 그런 일들에 너무도 강팍했던 나의 마음을 굴복시키시고 가르칠 만한 것이 되게 해 주셨다(docilitas). 진정한 경건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미리 맛보았고, 그것에 관한 지식도 받았으므로, 나는 다른 연구들을 포기한 건 아니라서, 그것들에 계속 힘은 쓰되, 단지 좀 완만히(slackly) 함으로써 이들을 얻고자 하는 열망으로 불타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이 겨우 초심자(beginner)의 경지를 면했을 정도임에도 진정한 교리를 꽤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 모여 들었을 때, 경이로운 충격(wonder-struck)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 해가 다 가기 전의 일이었다.1)
1960년대 이후의 연구는 회심이 점진적이냐(gradual) 혹은 일순간이냐(momental)의 논쟁으로 바뀌게 된다. 어차피 정확한 연대의 설정이 매우 막연하고, 각기 다른 칼빈의 글들에서 회심의 암시가 나타남에 따라서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점차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되어졌다. 맥네일이 생각하는 칼빈의 회심은 “생각과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2) 그의 회심은 점진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들이 나타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카톨릭의 교황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이 없었다면 그는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깨고 카톨릭이 주는 혜택과 위로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회심의 사건은 칼빈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중세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자랑하며 약 1,000년 동안 서구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아직 로마 카톨릭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개혁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모험이었다. 16세기의 개신교는 목숨을 바쳐야만할 박해 속에서 신앙을 형성해 나가며, 전파되었다. 로마 교회에서 돌아서는 것은 단지 한 종교 내에서 강조점이 약간 다른 어떤 종파로 옮겨가는 정도가 아니라, 순교를 각오로 한 중대한 결단이었다. 이러한 신앙은 복음의 진수에 대한 절대 확신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마침내 갑작스러운 회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은밀하신 섭리 가운데 나의 진로를 바꾸어 놓으셨다.”3)
“갑작스런 회심”을 초래한 중요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다보면, 성경의 중요성과 그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직접 듣고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칼빈의 회심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졌으며, 이는 그의 신학의 핵심처럼 성령의 내적인 증거를 통해서 주어졌다. 성경의 절대성과 신적 권위에 대한 놀라운 확신으로 인해서 종교개혁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는데, 이는 다른 어떤 개혁 사상가들보다 칼빈에 의해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다.4)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칼빈의 회심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자신이 회개하는 순간, 이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intervention)이 있으므로 해서 그는 이 진리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다.
길들여진 야생 황소는 이제 그의 주인을 알아보게 되었으며, 제 집을 다시 찾게 된 양은 주인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칼빈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들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성경이, 그 중에서도 로마서와 시편이 얼마나 그의 회심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가 하는 점이다. 어거스틴이 회심할 때 ‘들어서 읽어라’(tolle! lege!)는 소리를 듣고 마주친 부분은 로마서 13:13(딤전 6:16)의 은혜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었다(Confession, 8.12.28-30). 이 말씀의 도전 앞에 일대 전향을 체험하고 그리하여 암부로스 감독에게 가서 세례를 받기에 이른다. 루터의 경우도 로마서 1:17로 인해서 확고한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칼빈의 경우는 어떤 성경 본문이 결정적인 감화를 끼쳤을가? 배틀스 교수는 철저히 칼빈의 초기 저작들을 분석한 후에 로마서 1:18-25이 회심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였다.5) 여기에는 인간의 핑계할 수 없음과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순종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동을 준 구절은 18절과 25절이라고 보았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칼빈의 신학을 사랑하는 문병호 교수는 다음 말씀이 칼빈의 생애와 신학을 가장 잘 반향(反響)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고 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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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ancois Wendel에 의해 그의 Calvi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s Thought (New York, 1963, P. Mairet), pp. 37-38.
2)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p. 106.
3) T. H. L. Parker, John Calvin, p. 163. Parker 교수는 “subita”는 “sudden”(갑작스런)이라기보다는 “unexpected”(예상치 않은)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칼빈의 회심은 일시에 예기치 못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주로 요한 웨슬레의 극적인 회심의 경우와 같이, 일순간에 갑자기 발생하는 예상 밖의 일대 방향전황의 대 사건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회심이라는 낱말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이런 의미로만 사용한다. 그러나 회심이란 항상 갑작스런 사건이 될 필요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학자들 중에는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요한 칼빈의 회심이 이루어 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P. Sprenger, Wilhelm H. Neuser, A. Ganoczy, R. Wallace, A. McGrath, R. Gamble 등.
4) cf. John Murray, Calvin on Scripture and Divine Sovereignty. p.46.
5) F. L. Battles, Calculus Fidei: Some Ruminations on the Structure of the Theology of John Calvin(Grand Repid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1978), pp .5-6. Institutes 1536, pp. xvl-xvll.
http://blog.daum.net/kkho1105/2223
칼빈은 자신의 그 체험을 나중에 쓴 「시편 주석」(1557)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처음에는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교황주의의 그 미신들(the superstitions of the papacy)에 너무도 깊이 빠져 들어 있었으므로, 돌연한 회심(subita conversio)에 의해 그처럼 깊은 구렁텅이에서 나를 끌어낸다는 것이 실로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나이에 비해서는 그런 일들에 너무도 강팍했던 나의 마음을 굴복시키시고 가르칠 만한 것이 되게 해 주셨다(docilitas). 진정한 경건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미리 맛보았고, 그것에 관한 지식도 받았으므로, 나는 다른 연구들을 포기한 건 아니라서, 그것들에 계속 힘은 쓰되, 단지 좀 완만히(slackly) 함으로써 이들을 얻고자 하는 열망으로 불타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이 겨우 초심자(beginner)의 경지를 면했을 정도임에도 진정한 교리를 꽤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 모여 들었을 때, 경이로운 충격(wonder-struck)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 해가 다 가기 전의 일이었다.1)
1960년대 이후의 연구는 회심이 점진적이냐(gradual) 혹은 일순간이냐(momental)의 논쟁으로 바뀌게 된다. 어차피 정확한 연대의 설정이 매우 막연하고, 각기 다른 칼빈의 글들에서 회심의 암시가 나타남에 따라서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점차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되어졌다. 맥네일이 생각하는 칼빈의 회심은 “생각과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2) 그의 회심은 점진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들이 나타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카톨릭의 교황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이 없었다면 그는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깨고 카톨릭이 주는 혜택과 위로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회심의 사건은 칼빈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중세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자랑하며 약 1,000년 동안 서구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아직 로마 카톨릭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개혁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모험이었다. 16세기의 개신교는 목숨을 바쳐야만할 박해 속에서 신앙을 형성해 나가며, 전파되었다. 로마 교회에서 돌아서는 것은 단지 한 종교 내에서 강조점이 약간 다른 어떤 종파로 옮겨가는 정도가 아니라, 순교를 각오로 한 중대한 결단이었다. 이러한 신앙은 복음의 진수에 대한 절대 확신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마침내 갑작스러운 회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은밀하신 섭리 가운데 나의 진로를 바꾸어 놓으셨다.”3)
“갑작스런 회심”을 초래한 중요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다보면, 성경의 중요성과 그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직접 듣고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칼빈의 회심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졌으며, 이는 그의 신학의 핵심처럼 성령의 내적인 증거를 통해서 주어졌다. 성경의 절대성과 신적 권위에 대한 놀라운 확신으로 인해서 종교개혁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는데, 이는 다른 어떤 개혁 사상가들보다 칼빈에 의해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다.4)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칼빈의 회심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자신이 회개하는 순간, 이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intervention)이 있으므로 해서 그는 이 진리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다.
길들여진 야생 황소는 이제 그의 주인을 알아보게 되었으며, 제 집을 다시 찾게 된 양은 주인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칼빈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들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성경이, 그 중에서도 로마서와 시편이 얼마나 그의 회심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가 하는 점이다. 어거스틴이 회심할 때 ‘들어서 읽어라’(tolle! lege!)는 소리를 듣고 마주친 부분은 로마서 13:13(딤전 6:16)의 은혜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었다(Confession, 8.12.28-30). 이 말씀의 도전 앞에 일대 전향을 체험하고 그리하여 암부로스 감독에게 가서 세례를 받기에 이른다. 루터의 경우도 로마서 1:17로 인해서 확고한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칼빈의 경우는 어떤 성경 본문이 결정적인 감화를 끼쳤을가? 배틀스 교수는 철저히 칼빈의 초기 저작들을 분석한 후에 로마서 1:18-25이 회심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였다.5) 여기에는 인간의 핑계할 수 없음과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순종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동을 준 구절은 18절과 25절이라고 보았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칼빈의 신학을 사랑하는 문병호 교수는 다음 말씀이 칼빈의 생애와 신학을 가장 잘 반향(反響)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고 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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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ancois Wendel에 의해 그의 Calvi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s Thought (New York, 1963, P. Mairet), pp. 37-38.
2)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p. 106.
3) T. H. L. Parker, John Calvin, p. 163. Parker 교수는 “subita”는 “sudden”(갑작스런)이라기보다는 “unexpected”(예상치 않은)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칼빈의 회심은 일시에 예기치 못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주로 요한 웨슬레의 극적인 회심의 경우와 같이, 일순간에 갑자기 발생하는 예상 밖의 일대 방향전황의 대 사건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회심이라는 낱말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이런 의미로만 사용한다. 그러나 회심이란 항상 갑작스런 사건이 될 필요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학자들 중에는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요한 칼빈의 회심이 이루어 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P. Sprenger, Wilhelm H. Neuser, A. Ganoczy, R. Wallace, A. McGrath, R. Gamble 등.
4) cf. John Murray, Calvin on Scripture and Divine Sovereignty. p.46.
5) F. L. Battles, Calculus Fidei: Some Ruminations on the Structure of the Theology of John Calvin(Grand Repid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1978), pp .5-6. Institutes 1536, pp. xvl-xv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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