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종교개혁과 신학원리
칼빈의 종교개혁과 신학원리
이오갑(그리스도신대 교수, 조직신학)
Ⅰ. 들어가는 말
연구자들에 따르면, 개신교회가 10월 31일을 종교개혁기념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1617년 부터였고, 그 날을 연례적인 기념일로 지키게 된 것은 1668년부터였다. 그것이 10월 31일로 정해진 것은 1517년 만성절 전날인 바로 그 날,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실인가, 진실인가"의 여부를 역사비평적인 관점에서는 밝혀내기 어려운 그 사건의 실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개신교회들이 일반적으로 기념하고 승계하기를 원하는 종교개혁의 축제일로 이미 삼 세기 이상이나 자리를 잡아왔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구자로서, 그리고 개신교정신의 아버지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그는 자신이 직접 비텐베르그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강의나 설교, 저술들을 통해, 필립 멜랑흐톤, 마르틴 부써 등 여러 일세대 종교개혁자들과, 그리고 또한 늦게 종교개혁에 가담한 칼빈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루터의 투쟁과 사상을 기원으로 한, 크게 보아서 하나의 운동,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종교개혁은 뤼시앙 페브르가 복수로서 잘 표현했던 것과 같이 '종교개혁들'이었다고 할만큼, 그 정황이나 원인, 사상적 특징, 경향들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인종적으로 상이한 여러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아니면 시차를 두고, 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그런 사건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을 포괄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개관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항상 그 구체적인 사례들의 다양성과 상이성들에 대한 고려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종교개혁들을 통해 종교개혁을 보며, 역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종교개혁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종교개혁들을 보면, 거기에 어떤 공통적인 원리와 특징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다양한 종교개혁들이 그 원리나 특징들 속에 다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 이유에서, 종교개혁에 접할 때, 그것들 각각의 역사적 상황과 전개과정, 그 사상적, 교회적 특징, 결과들을 각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이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칼빈의 종교개혁을 다루는 일도 그 각론적인 접근에 속한다. 주지하듯이, 칼빈은 1509년 프랑스 피카르디지방의 작은 도시 느와용에서 출생, 소년-청년기에 빠리와 오를레앙 등지에서, 문학과 철학, 법학등을 공부했다. 그는 학생시절에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신사상들에 접하게 되고, 그의 시편주석의 서문이 시사해 주는 바 "급격한 회심(conversio subita)"의 과정을 거쳐 복음주의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1536년 망명길에서 기욤 파렐에게 붙들려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평생의 사역을 통해서,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을 완수했고, 프랑스의 종교개혁에 깊이 개입했으며, 수많은 저술과 편지 등으로써 개혁사상을 독일과 영국, 스코틀랜드, 화란, 헝가리 등 유럽 전역에 전파했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어린 교회들이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각 지역에 깊히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활동과 특히 저술들을 통해서, 그는 개혁교회들과, 더 나가서 개신교회들의 신학적 토대와 체계를 세움으로써, 크게 보아서 루터나 쯔빙글리 등이 시작한 종교개혁을 완성했던 사람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 칼빈의 종교개혁은 어떤 것이었을까? 거기에 다각도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으나, 여기서는 칼빈이 종교개혁을 통해서 주로 투쟁했던 것들이 무엇이었고, 또한 그것이 신학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그 원리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칼빈이 투쟁했던 문제들
빌렘 발케는 칼빈과 급진적인 재세례파들과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 속에서, 16세기의 종교개혁들이 로마 카톨릭교회와 종파운동들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 직면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점은 칼빈 자신이 이미 밝혔던 것이기도 하다. 즉, 칼빈은 1539년 "사돌렛에게 보낸 서간"에서, 자신들이 "서로 매우 다른 것 같은 두 개의 종파… 말하자면 교황과 재세례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점은 칼빈이 그 두 진영에 대항해서 투쟁했다는 사상을 시사해주고 있다. 물론 제네바 내부에서 일어났던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고, 교인들의 훈련을 바르게 하기 위한 투쟁들이나, 또는 여러 논적들과의 신학논쟁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칼빈의 종교개혁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역시 로마 카톨릭교회였고, 그리고 종교개혁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소종파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리고 그 두 진영과의 투쟁은 칼빈의 사상을 크게 특징지어놓는 것이기도 했다.
1-1.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항해서
칼빈은 아마도 1530년대 초반 오를레앙과 부르쥬대학교 재학시 종교개혁 사상을 접했고, 특히 부르쥬 체류시절부터 복음설교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쟝 까디에는 여러 유적이나, 전승들을 토대로 적극적인 젊은 칼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당시의 그의 설교들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단지 그가 "작성했거나, 아니면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는 빠리대학교 총장 니꼴라 꼽의 유명한 1534년 만성절 설교의 내용을 보면서 당시 칼빈과 그의 주변 그룹들의 신학적 경향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보면 이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이해하고 믿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죄의 용서 가운데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이단자니 마귀니 협잡꾼이니 유혹자니 하는 명칭으로 불러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말씀으로써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낳으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써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는 우리의 영을 열어서 우리가 복음을 믿게 하며, …그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견디게 하며, 모든 것을 이겨나가게 하는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프랑스종교개혁의 전사들이 로마 카톨릭교회와 어떤 논점을 가지고 싸웠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것은 어떤 공적이나, 행위들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에 대한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루터사상의 영향을 발견한다. 즉 인간의 종교적 수행이나 도덕적 완성을 통한 의의 획득이 아니라 오직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되고 내적인 평화와 구원을 얻는다는 칭의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종교개혁에 있어서 주요한, 그리고 더 직접적인 논쟁이 되었던 것은 아마도 로마 카톨릭교회의 미사와 성만찬의 문제였던 것 같다. 그 주제는 1534년 어간에 칼빈이 쁘와티에(Poitiers)에 체류하면서 까디에가 "최초의 칼비니스트 공회"라고 표현한 일련의 비밀집회들 중에서 주요한 주제였는데, 특히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방식, 즉 화체설과 그리고 미사를 희생제사로 보는 "교황주의의 타락"이 문제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17일 밤 빠리의 여러 곳에 심지어는 성의 왕실 방문에까지 붙은 이른바 벽보사건이 일어났다. 그 주제도 역시 같은 성찬과 미사의 문제였다. 칼빈은 그들의 주장을 중대한 오류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강요의 서문을 대신한 1536년의 "프랑수아 1세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것들을 규탄했고, 그리고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자신의 성만찬론을 전개하면서 그것을 다시 비판하게 된다.
칼빈이 로마교회의 오류에 대해서 비판하는 문제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요한 것들만 지적해도, 성화상숭배, 면죄부판매, 천상의 또는 불가시적 교회를 교황과 로마교회의 체계와 동일시하는 오류, 성서적인 근거가 없이 마음대로 조작해낸 거짓 성례전들,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말씀과 동등한 위치에 두는 것들이 비판된다.
칼빈은 그런 오류들을 신학논설로써, 설교로써, 성서강의를 통해, 그리고 기독교강요에서 상세하게 규명하고, 참된 성서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이 로마교회와 투쟁했던 것은 단지 어떤 한 두 개의 교리만이 아니라, 그 교회의 교리와 종교 관행들 거의 전체에 대항해서였다. 그는 1539년판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썼다. "그런데 그런 것이 교황권 전체 안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 남아있는 것이 어떤 교회일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말씀의 사역 대신에, 순수하고 밝은 교리를 꺼버리고 질식시켜 버리는 허위로 가득한 왜곡된 통치가 있다. 우리 주님의 거룩한 성만찬 대신에 가증할 신성모독이 있다. 하나님 예배는 거기서 미신의 다양한 형태들로 인하여 완전히 변형되었다. 그것이 없으면 기독교가 존립할 수 없는 교리는 거기서 매장되었거나 내동댕이쳐졌다. 공중의 집회들은 우상숭배와 불경건의 학교들이 되었다."
칼빈이 볼 때, 로마 카톨릭교회들의 그런 여러 가지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우상숭배(idol trie) 라는 하나의 근본적 오류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우상숭배는 신적인 것, 영적인 것, 영원한 것, 또는 초월적인 것들을 인간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나 욕적인 것, 지상적인 것, 유한한 것들 속에 "가두는 것(enclore, enfermer)", 전자들 "대신(au lieu)" 후자들을 "예배하는 것(ser- vir)", 또는 그 두 종류의 것들을 "혼동하고(confondre)" "뒤섞는 것(m ler)", 또는 그 둘 사이의 "경계를 망각하거나, 침범하는 것(oublier ou outrepasser les limites)"을 의미했다. 그런 관점에서, 가령 로마교회의 화체설은 영원한 하늘의 그리스도의 몸을 지상의 유한한 물질들 속에다 가두어 놓는 것이었다. 또한 미사의 희생설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미사를 통해 매번 되풀이한다고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회적인 죽음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제거해버리는" 즉 구속사건을 인간들의 사건으로 만들면서 신적인 것을 침해하는 그런 오류였다. 칼빈은 그런 식의 카톨릭교회의 우상숭배를 자주,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그런 우상숭배는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신(superstition)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칼빈은 미신이라는 용어를 우상숭배와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종종 그들을 함께 쓰거나, 또는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1549년의 "성만찬 일치신조"에 카톨릭교회의 화체설이 (그리고 루터교회의 공재설 역시) "미신"이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그런 미신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우리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거나 섬기는 것(forger ou seivir notre app tit)", 또는 "우리들의 망상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 발명해내는 것(inventer de Dieu notre fantaisie)" 등으로 나타난다.
칼빈은 1550년의 미가서 설교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우리의 망상에 따라서 하나님 예배들을 만들어내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새로운 어떤 것을 전혀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보십시오, 교황주의자들은 순례를 떠나거나, 우상 앞에서 중얼중얼하는 것이나, 새벽기도절이면 고기를 먹거나 잔치를 벌이거나 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황주의자들이 발명해 낸 하나님 예배들이란 그런 것들입니다…." 즉 기독교강요에서 그가 "사람들이 상상해낸 하나님 예배"라고 표현한 그 미신이 칼빈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신적인 것을 어떤 근거가 없이 마음대로, 즉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준 그 계시를 떠나서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하고 꾸며대는 것이었다. 미신은"우리가 하나님에 관해서 이렇게 저렇게 광적으로 생각하면서 방황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본성은 바른 근거와 방법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기본적인 어떤 제약, 즉 그 "고삐"를 "내던져 버린 후 한도 없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미신은 "오직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의해서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목사들의 직무는" 바로 "말씀으로써 그들을 미신 가운데로 빠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볼 때, 칼빈 자신이 그것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우상숭배는 기본적으로 신적인 것을 지상적인 것과 혼동하는 것, 동일시하는 것, 또는 거기에 가두어놓는 것이었다. 반면에 미신은 신적인 것을 지상적인 것과 분리시켜서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우상숭배가 "혼동(confu- sion)"의 오류였다면, 미신은 "분리(s paration)"의 오류로 파악될 수 있다. 칼빈은 신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들 사이의 "혼동"이나 "분리" 모두를 비판했다. 그래서 빌헬름 니이젤이 지적한 분리나 혼동을 모두 배격하는 "칼케돈 신조의 형식구성"이나 또한 최근에 알리스터 맥그라드가 지적한 바, 칼빈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분리가 아닌 구별(distinctio sed non separa- tio)"이라는 "파라다임"이었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칼빈이 싸웠던 우상숭배와 미신이라는 그런 오류들은 또한 동시대에 특히 재세례파 등 여러 소종파 운동들 속에서도 나타나는 것들이었다. 그 점을 살펴본다.
1-2. 소종파들에 대항해서
칼빈 당시에 종교개혁과 별도로 역시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요청하며 종파운동을 일으켰던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맥닐이나 베인튼이 표현했던 이른바 "종교개혁의 좌익들(Left-Wing of the Reformation)", 또는 윌리엄즈의 표현에 따라서 "급진적 종교개혁(Radical Refomation)"에 속하는 소종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의 운동, 하나의 종파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그들은 재세례파들(Anabaptistes)이나 조명파(Illumin s), 신령파(Spritualistes), 반 삼위일체파(Antitrinitaires), 자유파(Libertins)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려졌으며, 각각의 조직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 종파 안에서도 많은 분파와 경향들이 각각, 또는 혼합되어서 존재하고 있었다. 가령 재세례파들이라고 할 때 그 안에 극단적인 폭력혁명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예수의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는 평화론자들도 있었다. 또는 혁명적 재세례파들이 종말의 환상을 보는 광신적인 조명주의자들처럼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그 종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운동들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보는 더 정밀하고 전문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런 소종파들의 전체를 독립적으로 발제하기 보다는, 칼빈의 저술들 속에 나타난, 즉 칼빈 자신이 문제로 삼았던 소종파들의 경향들과, 그리고 거기에 대한 그의 대응들을 중심으로 주제를 다룬다.
칼빈의 최초의 신학저술은 바로 재세례파들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즉 그가 1534년에 쓴 Psychopannychia가 바로 그것이다. 칼빈은 거기서 사람이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수면상태에 들어간다는 재세례파들의 주장을 성서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근거로 길게 반박했다. 간단히 보면, 칼빈의 요점은, 죽음에 의해서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생전보다 비교할 수 없는 안정과 평안의 상태에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으며, 또한 최후의 심판날까지 소망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재세례파들과 아마도 두 차례, 스트라스부르와 제네바에서 공개토론을 했었다. 그 논쟁의 주제는 주로 유아세례에 관한 것으로서, 신자들의 결단과 의지를 강조하면서 성인세례를 주장하는 재세례파들의 공세에 방어하는 입장이었다고 생각된다. 칼빈에 따르면, 세례는 신자의 결단이나 의지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속의 은혜, 그리고 그와의 사귐과 교류에 대한 표시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거기로부터 제외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을 공개토론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칼빈이 죽기 얼마 전에 회고했던 바에 따르면, 칼빈의 대승리로 끝났고, '사람들이 인근 각지 50리 100리에 이르는 곳으로부터 수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전문적인 신학 주제 이외에도, 칼빈은 재세례파나 소종파들을 자주 언급하며 비판했다. 주요한 것들을 보면, 그들은 신비적이어서, 성서에 기록된 말씀과 별도로, 성령의 활동과 접촉함으로써 자신들이 직접 계시를 얻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서를 내던져버리고 자기에게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어떤 통로가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팽개쳐서, 던져버리고는 다른 불꽃이 효과 있는 것이라고 무모하게 붙들고 있는" 자들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어서, 오랫동안 지켜온 교회의 축제일들이나 주일을 거부하면서 전통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다. 또는 그들은 도덕주의자들로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도덕적인 완성에 이르려고 했으며,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비판했다. 즉 그들은 교회에 불완전한 사람들이 섞여있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았고, 그 결과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거룩하다고 본 자신들끼리 분파를 이루었다.
칼빈은 그런 입장에 대항해서,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통한 계시" 그리고 신자들에게 그 계시를 깨닫고 믿게 하는 "성령의 내적 증거(t moignage int r- ieur du Saint Esprit)"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전통을 과대평가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미신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그리고 "교회의 질서와 정책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고... 훈련과 선한 질서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칼빈은 도덕적 완전을 주장하는 그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원리(principe de l'amo- ur)"와 "공동체의 일치(unit de la communaut )"를 내세우며 관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종파들의 그런 사상이나 행태들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능력 같은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혼동하는 오류, 또는 그 반대로 그 둘을 분리시키는 오류였다. 가령,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죽음으로써 이제는 구원의 문제에 관해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프시코파니키아에서의 문제나, 인간의 의지와 결단, 또는 도덕적 능력, 신적 계시의 포착능력들을 주장함으로써 구원과 계시의 주체인 신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들은 모두 신의 것과 인간의 것을 혼동하는 우상숭배에 속한다. 반면에 기록된 성경의 바깥에서 신적 계시를 포착하려는 것이나, 또 이제까지 이루어진 전통들과 교회를 무시하면서, 그것의 바깥에서, 그것들을 통하지 않고 신에게나 가능한 완전한 자유나 순수집단에 직접적으로 도달하려는 것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분리시키는 미신의 오류였다는 것이다.
2. 칼빈신학의 주요 원리
그같은 종교개혁자로서 칼빈은 로마 카톨릭교회나 소종파들의, 그리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종교개혁 내부에도 역시 존재하고 있었던,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나 미신들과 투쟁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이나 사상의 여러 내용들은 그런 오류에 대한 대항이라는 측면을 갖는다. 실제로 그의 사상의 중요한 몇 개의 강조점들이 모두 사람들의 그런 잘못에 대한 처방, 혹은 해결책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칼빈 신학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점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서로만" 그리고 "신자들의 자기부정과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칼빈 신학에서 어떤 교리이거나 형식이기보다는, 방법이나 내용에서의 하나의 특징, 원칙, 혹은 어떤 지향점을 나타내주는 것들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원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앞의 논점과 관계해서, 첫째 원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신적인 것을 유한하고 물질적인 또는 인간적인 어떤 요소에 가두고, 그것과 동일시하는, 당시에 만연했던 우상숭배와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풍조 앞에서, 칼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신성, 그의 초월, 자유, 존엄, 주권, 불가역성(irreductibilit ), 처분불가능성(indisponibilit ), 즉 그의 사상에 신중심적 강조점을 매겨주는 요소들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하나님의 주권(Souverainet de Dieu)"이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표현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원리 "오직 성서로만"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상상하고, 꾸며대고, 만들어내고 하는 그런 또 하나의 오류인 미신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종식시키고자, 칼빈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 계시와 그 계시의 결과들, 특히 성서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과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두 가지 요청 앞에 서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신과 우상숭배의 성벽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자기부정과 개혁을 매우 강조했다. 칼빈은 사람들이 미신과 우상숭배를 중지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그것들을 더 이상 안하는 인격, 그것을 완전히 떠나서 참된 신앙과 예배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일이 중요했다. 그것은 곧 신자들의 지속적인 자기부정과 변혁을 의미했다. 칼빈은 그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칼빈신학에서 제외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칼빈에 따르면, 신자의 자기부정, 그리고 끊임없는 개혁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가능하다. 그것으로써 신자는 언제나 다시금 자신을 버리고, 개혁함으로써 최후의 완성을 향해 열려있는 종말론적 삶을 살게 된다. 그 점은 "신자들이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개혁"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그 세 가지 원리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2-1.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
빠리신학대학의 앙드레 뒤마는 제네바대학에서 개최된 칼빈 종교개혁 450주년 기념강연회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원리가 "미신적 우상숭배와 싸우는 영적 전쟁판에서… 그것들이 강한만큼 단호하고 강력한 병기"라고 말했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특징은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비판하면서 그들을 거기로부터 구해내는 도구라는 의미이다.
주지하듯이, 칼빈의 저술을 읽어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나, 주권과 같은 초월적인 요소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같은 제네바 강연회에서 몽?y리에의 앙드레 구넬이 그 점을 잘 표현해주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나, 중복되는 지역이나, 침투 가능한 통로가 나타나지 않는다. 거리서 쯔빙글리에게까지 소급되는 개혁교회의 옛 명제인 finitum non capax infiniti, 즉 '유한은 무한을 포함하지 않는다'가 확인된다. 유한은 무한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적인 것의 외부에, 그리고 낯선 것으로서 남아 있다. 확실히 거기에서 만남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혼합들(amalgames)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 혹은 물질적인 것들 사이에 어떤 중복이나 혼합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당연히, 지상적인 어떤 그림이나, 형상이나, 인물들을 신격화하고 그것들에 예배하는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를 거부한다. 칼빈이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던 것은 그만큼 당시 카톨릭교회나 소종파들 속에서 우상숭배적인 오류들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칼빈이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다고 하더라도, 갸녹지가 말했던 것처럼, 그가 그 개념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신학적 정의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주로 실천적이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말했다. 가령 잘 알려진 1542년 제네바 교리문답을 보면 이렇다. "[문]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제일가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것입니다. [문] 왜 그렇습니까? [답]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해서 세상에 둔 것이 우리들에게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자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으로써 그분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인 실천만이 인간들이 접근가능한(accesible) 또는 처분가능한(disponible) 피조세계의 어떤 대상을 숭배함으로써 사실상 자기들 스스로가 신이 되는, 전통적으로 교만이라고 표현되었던 그런 무한한 자기상승의 범죄를 끊어놓는 일이었다.
칼빈은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주권을 매우 강조했다. 칼빈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지고한 하나님(Dieu souverain)"이다. 그는 인간의 시야에, 인간의 이해범위 안에 들어오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은 알 수 없다'고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본질은 계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서 "피조물과 어떤 공통부분도, 어떤 닮은 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두뇌로써 상상하는 모든 것을 무로 돌려버리는" 심판주이며,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들을 구별해야만 하는" 즉 사람들에게는 없는 초월자이다. 스토페르가 칼빈의 설교들을 분석하면서 지적했듯이,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진실로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비교, 모든 유비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우리의 두뇌로써 그분을 깨달을 수도, '가둘 수'도 없다."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그런 지고한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그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며, 그의 권능과 영광을 예배하게 된다. 그렇게 지고한 하나님의식을 가진 사람은 겸비한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우상을 만들어 내거나, 그런 데 가서 경배하는 일은 전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을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의 형상이나 그림이나 자연물이나 인물 같은 그런 유한한 것들과 혼동하거나, 그런 것들 속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신을 자신들의 처분권 속에 두고 좌지우지하는 우상숭배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칼빈이 제시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신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방식을 따름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다.
2-2.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
칼빈에 따르면, 지고하고 초월적인, 즉 오직 그 분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오셔서(descendre)", "낮추셔서(s'hum- ilier)", 또는 "적응하셔서(s'accomoder)" 인간들에게 자신을 계시했다. 그래서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포착할 수 있고, 그렇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칼빈의 계시론을 간단히 그 요지만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즉 자연과 인간, 이루어나가는 역사,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말씀들로써 다양하게 계시한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이룬 다양한 작품(oeuvre)을 통해서만, 즉 로잔느 대학의 삐에르 지젤이 말했던 바, "주어진 실제(r el donn )"를 통해서만 인간들을 향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은 언제나 그 "주어진 실제"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즉 "주어진 실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경험하며, 그것에 따라서 신을 성찰하고, 예배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칼빈은, 사람들이 신의 계시를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sa guise)", 자기의 "망상(fantaisie)"이나 "몽상(reverie)"에 따라서, "구미(gout)"에 맞게 상상하고, 규정하고, 만들어놓는 미신을 배격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에게 놓여진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와 역사를 통해서, 또 인간들의 여러 법이나 조례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과 뜻을 계시했지만, 타락한 인간이 "완고함(rudesse)"과 "왜곡(infirmit )"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직접적이고,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백성들에게 말씀했고, 또한 직접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써 "인간의 구원에" "유익하고(utile)" "필요한(n cessaire)"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신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한 지식을 그 말씀들을 기록한 성서를 통해 "밝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신자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면 그는 무엇보다도 성서에 말씀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존해야 한다. 칼빈 자신은 신명기 설교들 중 한 곳에서 말했다. "우리들 자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분에게 마땅한 영예를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안내자로서 그분의 말씀을 가져야 하고, 성경 안에 있는 그분의 진리로써 우리가 똑똑해져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계시들 중에서, 칼빈 자신이 가장 강조했고, 그리고 자신의 독자들을, 또는 청중들을 항상 그리로 집중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서였다. 그 "성서 안에 있는 진리"를 떠나서 다른 데 가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언제나 우상숭배로 귀착되는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더글라스가 지적했듯이, 원시교회의, 그리고 중세기 초기에도 많은 신학자들이, 그들도 역시,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주석가들이었다. 그들 역시 성서의 중요성과 권위를 매우 강조했고, 그것을 토대로 신학적인 논의를 전개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또 칼빈이 그들과 다른 점은 "오직 성서로만"이었다고 하는 점이다. 즉 과거의 카톨릭 교회는 성서의 권위와 그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교회라는 또 하나의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두 개의 권위를 병렬로 배치하거나, 또는 관행적으로 성서를 교회의 권위에 예속시켰다. 그러나 칼빈은 오직 성서만이 유일한 신적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그것과 동등하게, 혹은 그것보다 우위에 두었던 데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교회는 성서를 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 세워진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교회가 또는 신자들이 성서와 별도로 존재하는 교회의 결정들이나 칙령들, 전승들, 관행들을 신앙과 종교생활의 근거로 삼는 것은 미신, 또는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격상시키는 우상숭배나 다름이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자신들의 정신을 미신들의 포로로 만들어 놓는 일에 습관이 붙은 무지한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거기서(성경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신성을 느끼므로..." "우리의 판단과 지성을 거기에 복종시킨다..."
칼빈이 성서를 강조했던 것은 또한 소종파들과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카톨릭 교회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소종파들 역시 성서와 별도로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주장하면서, 성서의 권위를 파괴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서와 성령의 관계를 밝혀놓았던 것은 바로 그들의 주장과 행태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간단히 말하면,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기 때문에, 성경 이외의 다른 말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령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확증하고, 깨우쳐줄 뿐 거기에 어떤 새로운 것을 부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어떤 유익을 얻고자한다면 그럴수록 더욱 성서를 읽고, 그것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2-3. 신자들의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개혁
칼빈은 단지 로마교회나 소종파들의 우상숭배와 미신이라는 오류들과 싸우는 것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런 오류들을 인간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죄로서 파악했다. 즉 그것들은 유한한, 그리고 특히 죄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죄인이 평화와 안정을 되찾으려는 여러 가지 방식의, 그러나 잘못된 행위들의 일환으로 나타난다.
칼빈의 저술들에 나타난 바를 고려해 보면, 우상숭배와 미신을 야기하는 인간들의 죄와 그 심리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그 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죄론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상숭배와 미신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는 점만을 밝히는 것으로써 만족한다.
칼빈에 따르면, 죄인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임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느낀다. 죄인은 지고하고 무한한 하나님 앞에서 유한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또한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왜곡되고 타락한 자신을 깨닫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즉 그의 계시로부터 - 그것이 일반계시이건 특별계시이건 -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죄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에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면에 의해서 하나님을 보며, 동시에 자신을 봄으로써, 죄인은 자신이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과, 더욱이 죄에 의해 더럽혀져 있는 왜곡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로 들어간다. 그 현실은 죄인에게 있어서, 그가 이제까지 가져왔던 교만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버리라는 하나의 요청을 의미한다. 그러나 "완고하고", "왜곡된" 죄인은 그런 현실에 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요청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을 도리어 왜곡시켜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 몇 가지 방법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상숭배와 미신이다. 우선, 우상숭배는 그런 식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을 한번 드러났던 어떤 매개물이나, 또는 인간이 볼 때 위대하거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물이나 인물, 기타 어떤 물질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에 제한시켜버리는, 즉 칼빈의 용어로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죄인은 더 이상 자기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들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신을 대체해버림으로써, 자기들이 사실상 스스로 신이 되고 세계의 중심이 되는 왜곡된 현실을 구성한다. 그 방식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교만과 자기중심적 욕망들을 보존할 수 있고, 충족시킨다.
반면에, 미신은 하나님의 계시방식으로써 신을 이해하지 않고, 그것과 관계없이 자신들 임의로 상상함으로써, 참 하나님, 즉 유한성과 죄성을 인정하라고 요청하며 다가오는 하나님 대신에, 자신들의 현상태를 전혀 개의치 않는, 편안하기만 한 거짓 하나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죄인들은 자신들의 왜곡된 상황을 강화,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미신과 우상숭배에 관한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다른 데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이유로써 죄인들은 자신들을 더 이상 벗어나지 않는, 자신들에게 더 이상 명령하지 않는, 그리고 자신들과 언제나 좋은 사이인 다른 어떤 하나님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죄인들은 불안하게 하는 하나님을 그들 자신들 속에 있는 어떤 것, 예를 들면 신관념이나 또는 어떤 물질적인 것들로써 대치시켜 버린다. 그 결과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수중에 있는 하나님, 그래서 꼼짝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며, 자기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칼빈은 죄인들의 그런 행태가 "일탈된 종교의 미친 욕망(affection folle de la religion d r gl e)"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오성의 뻔뻔스러움과 과도함이, 그의 은혜를 획득하고자 새로운 명예와 예배들을 발명해서 그에게 올리는 일에 너무나 기울어져 있으므로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 일탈된 종교의 미친 욕망은 , 그것은 우리의 정신 속에 자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언제나 그 마각을 드러내왔으며, 또 현재에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의를 획득하려는 어떤 방법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에게 있어서 그런 욕망은, 위의 인용문도 지적하듯이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칼빈은 그것이 심지어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속함을 입은 신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았다. 즉 그런 욕망과,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미신과 우상숭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방인들에게서, 또한 당시에 무엇보다도 로마 카톨릭교회와 소종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들" - 칼빈 자신과 그를 따르는 제네바의 신자들에 의해서도 또한 저질러지는 죄였다.
그는 요한복음을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도 역시 매일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욕적인 안목으로써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큰 장애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분 안에 있는 찬탄할 만한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일들을 이용하려고 하고,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붙들고 있는 엉터리들인 만큼, 우리들은 우리의 사악한 감각으로써 그분 안에 있는, 그리고 그분의 교리 안에 있는 것 모두를 더럽혀놓고 있으며,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으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급기야는 복음을 경시하게 하는 많은 잘못된 상상력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괴물들을 상상해내서 복음을 지긋지긋하게 하며, 그 괴물 같은 모습을 한 복음을 미워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의적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런 욕망을 "길들이거나", "착고를 채우거나", 또는 "버려야 한다". 그것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신앙과 중생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런 욕망의 포기를 통해서 신자들은 지고하고 존엄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의 주권 앞에 복종하며, 그리고 계시와 성서의 말씀을 통해 알려지는 하나님을 알고 그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칼빈은 그 점을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개요(la somme de la vie chr tienne)"인 "자기부정(renoncement nous-m me)"으로써 말했다. "…인간이 자기의 정신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거짓과 허영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선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투쟁이 있어야 할까?… 자기를 부정하는 것 말고,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칼빈에 의하면, 자기부정은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고, 하나님 예배를 향한 길을 걸어가게 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특히 "미신들뿐만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외심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불경건"과 "세상적인 욕망들(cupidit s mondaines)"인 "두 가지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죄와 죄를 향한 욕망을 끊어버림으로써, 미신과 우상숭배를 벗어나고, 그 결과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따르는 일은 언제나 그 자기부정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칼빈의 관점이다.
그런데, 칼빈에게 있어서 자기부정은 한번으로써 영원히 끝나는 그런 유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자들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언제나 또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의 지속적인 요청이었다. 칼빈은 자기부정을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의 삶으로써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십자가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본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가져가는 방향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그리고 "겸손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에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어 우리로부터 비롯된 모든 신뢰심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유용한 것으로서, "이 생애 속에서 영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경험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자신을 맹목적으로 만들어 놓는 자기사랑이 제거되어서, 우리가 우리자신의 약함을 올바르게 알고, 우리에 대한 바른 감정을 가지며, 그래서 우리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이득이 아니다. 우리의 신뢰심을 하나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전적인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들은 영광스러운 최후까지 견디어 나간다. 우리가 그의 약속들 가운데서 그가 참되고 신실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의 은혜 안에서 계속 나아간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칼빈의 전통에 서 있는 교회들이 "개혁파(r for- m 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본다. 사실상 칼빈 자신도 "개혁한다(r former)"는 말과 그와 유사한 말들을 종종 했다. 주지하듯이, 개혁한다는 말은 reformer, 즉 '다시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다.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든다(former)", "다시 만든다(reformer)", 또는 "적합하게 만든다(conformer)", 그리고 그것들과 유사한 "고친다(corriger)"라는 용어들을 매우 자주 사용했다. 그 점은 칼빈이 하나님의 "말씀에", 또는 "하나님의 형상에" 알맞게 "개혁되는 것"이 신자들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보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신자들이 자기부정을 통해서 언제나 자신을 개혁해나감으로써 최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신자들의 삶을 그려냈다. 만일 우리가 칼빈과 칼빈전통에서 있는 교회들의 독특성(sp cificit )을 지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점이 아닐 수 없다. 즉 그의 교회는 어떤 교리나 제도, 형태를 갖고 있는가 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든지 간에, 현재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을 통해 자신을 향상 개혁해 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존재의 특징과 의의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칼빈이 해석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따르는 교회들은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Ⅲ.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의 신학은 그가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부딪혔던 문제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특히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 그리고 재세례파들을 중심으로 한 소종파들과의 투쟁의 과정에서 그의 신학이 정리되고 분명해졌다.
그렇게 형성된 칼빈의 신학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서로만" 그리고 "신자의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개혁"이라는 세 가지 원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 원리들은 로마교회와 소종파들의 오류인 우상숭배와 미신을 종식시키고, 참된 예배와 신앙, 그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방향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칼빈은 당시의 우상숭배와 미신이 인간의 보편적 죄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았다. 즉 어느 시대,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범하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과의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되어야 하는 과제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참된 한 분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고 그에게만 영광을 돌린다는 원리,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되 오직 그분의 계시에 따라서만 한다는 성서중심의 원리, 그리고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와 신앙을 위해, 언제나 다시 일어나는 우상숭배와 미신의 죄된 욕망과 싸우며, 그런 자신을 벗어버린다는 자기부정과 자기개혁의 원리들도 언제 어디서나 요청되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를 볼 때, 참된 복음의 정신과 신앙이 과연 우리에게 살아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율법주의, 권위주의, 이기주의, 사이비 신비주의, 맘모니즘, 물량주의, 상업주의, 과업주의 등등 수많은 죄와 오류가 주님의 몸인 교회를 더럽히고 있다. 바로 그 현실이 새로운 종교개혁을 요청하고 있다. 개혁은 피상적이고, 형식적일 수 없다. 그것은 참된 하나님과 복음의 의미를 깊이 깨달으며, 그것을 그 뿌리와 원리에서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개혁은 다른 어느 누구를 향한 외침이기에 앞서, 바로 나 자신, 바로 내 교회로부터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그리고 참된 개혁은 한번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계속되는 영구적인 개혁이다. 즉 개혁이 우리 자신들의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의 종교개혁과 신학에서 우리는 그런 점들을 배운다고 믿는다.
http://blog.daum.net/kkho1105/2442
이오갑(그리스도신대 교수, 조직신학)
Ⅰ. 들어가는 말
연구자들에 따르면, 개신교회가 10월 31일을 종교개혁기념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1617년 부터였고, 그 날을 연례적인 기념일로 지키게 된 것은 1668년부터였다. 그것이 10월 31일로 정해진 것은 1517년 만성절 전날인 바로 그 날,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실인가, 진실인가"의 여부를 역사비평적인 관점에서는 밝혀내기 어려운 그 사건의 실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개신교회들이 일반적으로 기념하고 승계하기를 원하는 종교개혁의 축제일로 이미 삼 세기 이상이나 자리를 잡아왔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구자로서, 그리고 개신교정신의 아버지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그는 자신이 직접 비텐베르그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강의나 설교, 저술들을 통해, 필립 멜랑흐톤, 마르틴 부써 등 여러 일세대 종교개혁자들과, 그리고 또한 늦게 종교개혁에 가담한 칼빈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루터의 투쟁과 사상을 기원으로 한, 크게 보아서 하나의 운동,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종교개혁은 뤼시앙 페브르가 복수로서 잘 표현했던 것과 같이 '종교개혁들'이었다고 할만큼, 그 정황이나 원인, 사상적 특징, 경향들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인종적으로 상이한 여러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아니면 시차를 두고, 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그런 사건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을 포괄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개관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항상 그 구체적인 사례들의 다양성과 상이성들에 대한 고려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종교개혁들을 통해 종교개혁을 보며, 역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종교개혁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종교개혁들을 보면, 거기에 어떤 공통적인 원리와 특징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다양한 종교개혁들이 그 원리나 특징들 속에 다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 이유에서, 종교개혁에 접할 때, 그것들 각각의 역사적 상황과 전개과정, 그 사상적, 교회적 특징, 결과들을 각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이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칼빈의 종교개혁을 다루는 일도 그 각론적인 접근에 속한다. 주지하듯이, 칼빈은 1509년 프랑스 피카르디지방의 작은 도시 느와용에서 출생, 소년-청년기에 빠리와 오를레앙 등지에서, 문학과 철학, 법학등을 공부했다. 그는 학생시절에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신사상들에 접하게 되고, 그의 시편주석의 서문이 시사해 주는 바 "급격한 회심(conversio subita)"의 과정을 거쳐 복음주의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1536년 망명길에서 기욤 파렐에게 붙들려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평생의 사역을 통해서,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을 완수했고, 프랑스의 종교개혁에 깊이 개입했으며, 수많은 저술과 편지 등으로써 개혁사상을 독일과 영국, 스코틀랜드, 화란, 헝가리 등 유럽 전역에 전파했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어린 교회들이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각 지역에 깊히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활동과 특히 저술들을 통해서, 그는 개혁교회들과, 더 나가서 개신교회들의 신학적 토대와 체계를 세움으로써, 크게 보아서 루터나 쯔빙글리 등이 시작한 종교개혁을 완성했던 사람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 칼빈의 종교개혁은 어떤 것이었을까? 거기에 다각도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으나, 여기서는 칼빈이 종교개혁을 통해서 주로 투쟁했던 것들이 무엇이었고, 또한 그것이 신학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그 원리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칼빈이 투쟁했던 문제들
빌렘 발케는 칼빈과 급진적인 재세례파들과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 속에서, 16세기의 종교개혁들이 로마 카톨릭교회와 종파운동들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 직면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점은 칼빈 자신이 이미 밝혔던 것이기도 하다. 즉, 칼빈은 1539년 "사돌렛에게 보낸 서간"에서, 자신들이 "서로 매우 다른 것 같은 두 개의 종파… 말하자면 교황과 재세례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점은 칼빈이 그 두 진영에 대항해서 투쟁했다는 사상을 시사해주고 있다. 물론 제네바 내부에서 일어났던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고, 교인들의 훈련을 바르게 하기 위한 투쟁들이나, 또는 여러 논적들과의 신학논쟁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칼빈의 종교개혁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역시 로마 카톨릭교회였고, 그리고 종교개혁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소종파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리고 그 두 진영과의 투쟁은 칼빈의 사상을 크게 특징지어놓는 것이기도 했다.
1-1.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항해서
칼빈은 아마도 1530년대 초반 오를레앙과 부르쥬대학교 재학시 종교개혁 사상을 접했고, 특히 부르쥬 체류시절부터 복음설교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쟝 까디에는 여러 유적이나, 전승들을 토대로 적극적인 젊은 칼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당시의 그의 설교들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단지 그가 "작성했거나, 아니면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는 빠리대학교 총장 니꼴라 꼽의 유명한 1534년 만성절 설교의 내용을 보면서 당시 칼빈과 그의 주변 그룹들의 신학적 경향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보면 이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이해하고 믿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죄의 용서 가운데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이단자니 마귀니 협잡꾼이니 유혹자니 하는 명칭으로 불러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말씀으로써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낳으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써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는 우리의 영을 열어서 우리가 복음을 믿게 하며, …그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견디게 하며, 모든 것을 이겨나가게 하는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프랑스종교개혁의 전사들이 로마 카톨릭교회와 어떤 논점을 가지고 싸웠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것은 어떤 공적이나, 행위들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에 대한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루터사상의 영향을 발견한다. 즉 인간의 종교적 수행이나 도덕적 완성을 통한 의의 획득이 아니라 오직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되고 내적인 평화와 구원을 얻는다는 칭의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종교개혁에 있어서 주요한, 그리고 더 직접적인 논쟁이 되었던 것은 아마도 로마 카톨릭교회의 미사와 성만찬의 문제였던 것 같다. 그 주제는 1534년 어간에 칼빈이 쁘와티에(Poitiers)에 체류하면서 까디에가 "최초의 칼비니스트 공회"라고 표현한 일련의 비밀집회들 중에서 주요한 주제였는데, 특히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방식, 즉 화체설과 그리고 미사를 희생제사로 보는 "교황주의의 타락"이 문제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17일 밤 빠리의 여러 곳에 심지어는 성의 왕실 방문에까지 붙은 이른바 벽보사건이 일어났다. 그 주제도 역시 같은 성찬과 미사의 문제였다. 칼빈은 그들의 주장을 중대한 오류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강요의 서문을 대신한 1536년의 "프랑수아 1세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것들을 규탄했고, 그리고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자신의 성만찬론을 전개하면서 그것을 다시 비판하게 된다.
칼빈이 로마교회의 오류에 대해서 비판하는 문제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요한 것들만 지적해도, 성화상숭배, 면죄부판매, 천상의 또는 불가시적 교회를 교황과 로마교회의 체계와 동일시하는 오류, 성서적인 근거가 없이 마음대로 조작해낸 거짓 성례전들,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말씀과 동등한 위치에 두는 것들이 비판된다.
칼빈은 그런 오류들을 신학논설로써, 설교로써, 성서강의를 통해, 그리고 기독교강요에서 상세하게 규명하고, 참된 성서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이 로마교회와 투쟁했던 것은 단지 어떤 한 두 개의 교리만이 아니라, 그 교회의 교리와 종교 관행들 거의 전체에 대항해서였다. 그는 1539년판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썼다. "그런데 그런 것이 교황권 전체 안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 남아있는 것이 어떤 교회일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말씀의 사역 대신에, 순수하고 밝은 교리를 꺼버리고 질식시켜 버리는 허위로 가득한 왜곡된 통치가 있다. 우리 주님의 거룩한 성만찬 대신에 가증할 신성모독이 있다. 하나님 예배는 거기서 미신의 다양한 형태들로 인하여 완전히 변형되었다. 그것이 없으면 기독교가 존립할 수 없는 교리는 거기서 매장되었거나 내동댕이쳐졌다. 공중의 집회들은 우상숭배와 불경건의 학교들이 되었다."
칼빈이 볼 때, 로마 카톨릭교회들의 그런 여러 가지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우상숭배(idol trie) 라는 하나의 근본적 오류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우상숭배는 신적인 것, 영적인 것, 영원한 것, 또는 초월적인 것들을 인간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나 욕적인 것, 지상적인 것, 유한한 것들 속에 "가두는 것(enclore, enfermer)", 전자들 "대신(au lieu)" 후자들을 "예배하는 것(ser- vir)", 또는 그 두 종류의 것들을 "혼동하고(confondre)" "뒤섞는 것(m ler)", 또는 그 둘 사이의 "경계를 망각하거나, 침범하는 것(oublier ou outrepasser les limites)"을 의미했다. 그런 관점에서, 가령 로마교회의 화체설은 영원한 하늘의 그리스도의 몸을 지상의 유한한 물질들 속에다 가두어 놓는 것이었다. 또한 미사의 희생설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미사를 통해 매번 되풀이한다고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회적인 죽음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제거해버리는" 즉 구속사건을 인간들의 사건으로 만들면서 신적인 것을 침해하는 그런 오류였다. 칼빈은 그런 식의 카톨릭교회의 우상숭배를 자주,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그런 우상숭배는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신(superstition)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칼빈은 미신이라는 용어를 우상숭배와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종종 그들을 함께 쓰거나, 또는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1549년의 "성만찬 일치신조"에 카톨릭교회의 화체설이 (그리고 루터교회의 공재설 역시) "미신"이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그런 미신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우리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거나 섬기는 것(forger ou seivir notre app tit)", 또는 "우리들의 망상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 발명해내는 것(inventer de Dieu notre fantaisie)" 등으로 나타난다.
칼빈은 1550년의 미가서 설교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우리의 망상에 따라서 하나님 예배들을 만들어내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새로운 어떤 것을 전혀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보십시오, 교황주의자들은 순례를 떠나거나, 우상 앞에서 중얼중얼하는 것이나, 새벽기도절이면 고기를 먹거나 잔치를 벌이거나 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황주의자들이 발명해 낸 하나님 예배들이란 그런 것들입니다…." 즉 기독교강요에서 그가 "사람들이 상상해낸 하나님 예배"라고 표현한 그 미신이 칼빈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신적인 것을 어떤 근거가 없이 마음대로, 즉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준 그 계시를 떠나서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하고 꾸며대는 것이었다. 미신은"우리가 하나님에 관해서 이렇게 저렇게 광적으로 생각하면서 방황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본성은 바른 근거와 방법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기본적인 어떤 제약, 즉 그 "고삐"를 "내던져 버린 후 한도 없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미신은 "오직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의해서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목사들의 직무는" 바로 "말씀으로써 그들을 미신 가운데로 빠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볼 때, 칼빈 자신이 그것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우상숭배는 기본적으로 신적인 것을 지상적인 것과 혼동하는 것, 동일시하는 것, 또는 거기에 가두어놓는 것이었다. 반면에 미신은 신적인 것을 지상적인 것과 분리시켜서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우상숭배가 "혼동(confu- sion)"의 오류였다면, 미신은 "분리(s paration)"의 오류로 파악될 수 있다. 칼빈은 신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들 사이의 "혼동"이나 "분리" 모두를 비판했다. 그래서 빌헬름 니이젤이 지적한 분리나 혼동을 모두 배격하는 "칼케돈 신조의 형식구성"이나 또한 최근에 알리스터 맥그라드가 지적한 바, 칼빈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분리가 아닌 구별(distinctio sed non separa- tio)"이라는 "파라다임"이었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칼빈이 싸웠던 우상숭배와 미신이라는 그런 오류들은 또한 동시대에 특히 재세례파 등 여러 소종파 운동들 속에서도 나타나는 것들이었다. 그 점을 살펴본다.
1-2. 소종파들에 대항해서
칼빈 당시에 종교개혁과 별도로 역시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요청하며 종파운동을 일으켰던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맥닐이나 베인튼이 표현했던 이른바 "종교개혁의 좌익들(Left-Wing of the Reformation)", 또는 윌리엄즈의 표현에 따라서 "급진적 종교개혁(Radical Refomation)"에 속하는 소종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의 운동, 하나의 종파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그들은 재세례파들(Anabaptistes)이나 조명파(Illumin s), 신령파(Spritualistes), 반 삼위일체파(Antitrinitaires), 자유파(Libertins)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려졌으며, 각각의 조직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 종파 안에서도 많은 분파와 경향들이 각각, 또는 혼합되어서 존재하고 있었다. 가령 재세례파들이라고 할 때 그 안에 극단적인 폭력혁명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예수의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는 평화론자들도 있었다. 또는 혁명적 재세례파들이 종말의 환상을 보는 광신적인 조명주의자들처럼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그 종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운동들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보는 더 정밀하고 전문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런 소종파들의 전체를 독립적으로 발제하기 보다는, 칼빈의 저술들 속에 나타난, 즉 칼빈 자신이 문제로 삼았던 소종파들의 경향들과, 그리고 거기에 대한 그의 대응들을 중심으로 주제를 다룬다.
칼빈의 최초의 신학저술은 바로 재세례파들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즉 그가 1534년에 쓴 Psychopannychia가 바로 그것이다. 칼빈은 거기서 사람이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수면상태에 들어간다는 재세례파들의 주장을 성서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근거로 길게 반박했다. 간단히 보면, 칼빈의 요점은, 죽음에 의해서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생전보다 비교할 수 없는 안정과 평안의 상태에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으며, 또한 최후의 심판날까지 소망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재세례파들과 아마도 두 차례, 스트라스부르와 제네바에서 공개토론을 했었다. 그 논쟁의 주제는 주로 유아세례에 관한 것으로서, 신자들의 결단과 의지를 강조하면서 성인세례를 주장하는 재세례파들의 공세에 방어하는 입장이었다고 생각된다. 칼빈에 따르면, 세례는 신자의 결단이나 의지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속의 은혜, 그리고 그와의 사귐과 교류에 대한 표시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거기로부터 제외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을 공개토론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칼빈이 죽기 얼마 전에 회고했던 바에 따르면, 칼빈의 대승리로 끝났고, '사람들이 인근 각지 50리 100리에 이르는 곳으로부터 수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전문적인 신학 주제 이외에도, 칼빈은 재세례파나 소종파들을 자주 언급하며 비판했다. 주요한 것들을 보면, 그들은 신비적이어서, 성서에 기록된 말씀과 별도로, 성령의 활동과 접촉함으로써 자신들이 직접 계시를 얻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서를 내던져버리고 자기에게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어떤 통로가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팽개쳐서, 던져버리고는 다른 불꽃이 효과 있는 것이라고 무모하게 붙들고 있는" 자들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어서, 오랫동안 지켜온 교회의 축제일들이나 주일을 거부하면서 전통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다. 또는 그들은 도덕주의자들로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도덕적인 완성에 이르려고 했으며,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비판했다. 즉 그들은 교회에 불완전한 사람들이 섞여있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았고, 그 결과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거룩하다고 본 자신들끼리 분파를 이루었다.
칼빈은 그런 입장에 대항해서,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통한 계시" 그리고 신자들에게 그 계시를 깨닫고 믿게 하는 "성령의 내적 증거(t moignage int r- ieur du Saint Esprit)"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전통을 과대평가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미신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그리고 "교회의 질서와 정책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고... 훈련과 선한 질서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칼빈은 도덕적 완전을 주장하는 그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원리(principe de l'amo- ur)"와 "공동체의 일치(unit de la communaut )"를 내세우며 관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종파들의 그런 사상이나 행태들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능력 같은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혼동하는 오류, 또는 그 반대로 그 둘을 분리시키는 오류였다. 가령,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죽음으로써 이제는 구원의 문제에 관해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프시코파니키아에서의 문제나, 인간의 의지와 결단, 또는 도덕적 능력, 신적 계시의 포착능력들을 주장함으로써 구원과 계시의 주체인 신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들은 모두 신의 것과 인간의 것을 혼동하는 우상숭배에 속한다. 반면에 기록된 성경의 바깥에서 신적 계시를 포착하려는 것이나, 또 이제까지 이루어진 전통들과 교회를 무시하면서, 그것의 바깥에서, 그것들을 통하지 않고 신에게나 가능한 완전한 자유나 순수집단에 직접적으로 도달하려는 것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분리시키는 미신의 오류였다는 것이다.
2. 칼빈신학의 주요 원리
그같은 종교개혁자로서 칼빈은 로마 카톨릭교회나 소종파들의, 그리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종교개혁 내부에도 역시 존재하고 있었던,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나 미신들과 투쟁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이나 사상의 여러 내용들은 그런 오류에 대한 대항이라는 측면을 갖는다. 실제로 그의 사상의 중요한 몇 개의 강조점들이 모두 사람들의 그런 잘못에 대한 처방, 혹은 해결책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칼빈 신학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점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서로만" 그리고 "신자들의 자기부정과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칼빈 신학에서 어떤 교리이거나 형식이기보다는, 방법이나 내용에서의 하나의 특징, 원칙, 혹은 어떤 지향점을 나타내주는 것들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원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앞의 논점과 관계해서, 첫째 원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신적인 것을 유한하고 물질적인 또는 인간적인 어떤 요소에 가두고, 그것과 동일시하는, 당시에 만연했던 우상숭배와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풍조 앞에서, 칼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신성, 그의 초월, 자유, 존엄, 주권, 불가역성(irreductibilit ), 처분불가능성(indisponibilit ), 즉 그의 사상에 신중심적 강조점을 매겨주는 요소들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하나님의 주권(Souverainet de Dieu)"이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표현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원리 "오직 성서로만"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상상하고, 꾸며대고, 만들어내고 하는 그런 또 하나의 오류인 미신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종식시키고자, 칼빈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 계시와 그 계시의 결과들, 특히 성서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과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두 가지 요청 앞에 서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신과 우상숭배의 성벽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자기부정과 개혁을 매우 강조했다. 칼빈은 사람들이 미신과 우상숭배를 중지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그것들을 더 이상 안하는 인격, 그것을 완전히 떠나서 참된 신앙과 예배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일이 중요했다. 그것은 곧 신자들의 지속적인 자기부정과 변혁을 의미했다. 칼빈은 그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칼빈신학에서 제외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칼빈에 따르면, 신자의 자기부정, 그리고 끊임없는 개혁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가능하다. 그것으로써 신자는 언제나 다시금 자신을 버리고, 개혁함으로써 최후의 완성을 향해 열려있는 종말론적 삶을 살게 된다. 그 점은 "신자들이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개혁"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그 세 가지 원리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2-1.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
빠리신학대학의 앙드레 뒤마는 제네바대학에서 개최된 칼빈 종교개혁 450주년 기념강연회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원리가 "미신적 우상숭배와 싸우는 영적 전쟁판에서… 그것들이 강한만큼 단호하고 강력한 병기"라고 말했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특징은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비판하면서 그들을 거기로부터 구해내는 도구라는 의미이다.
주지하듯이, 칼빈의 저술을 읽어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나, 주권과 같은 초월적인 요소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같은 제네바 강연회에서 몽?y리에의 앙드레 구넬이 그 점을 잘 표현해주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나, 중복되는 지역이나, 침투 가능한 통로가 나타나지 않는다. 거리서 쯔빙글리에게까지 소급되는 개혁교회의 옛 명제인 finitum non capax infiniti, 즉 '유한은 무한을 포함하지 않는다'가 확인된다. 유한은 무한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적인 것의 외부에, 그리고 낯선 것으로서 남아 있다. 확실히 거기에서 만남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혼합들(amalgames)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 혹은 물질적인 것들 사이에 어떤 중복이나 혼합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당연히, 지상적인 어떤 그림이나, 형상이나, 인물들을 신격화하고 그것들에 예배하는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를 거부한다. 칼빈이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던 것은 그만큼 당시 카톨릭교회나 소종파들 속에서 우상숭배적인 오류들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칼빈이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다고 하더라도, 갸녹지가 말했던 것처럼, 그가 그 개념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신학적 정의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주로 실천적이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말했다. 가령 잘 알려진 1542년 제네바 교리문답을 보면 이렇다. "[문]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제일가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것입니다. [문] 왜 그렇습니까? [답]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해서 세상에 둔 것이 우리들에게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자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으로써 그분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인 실천만이 인간들이 접근가능한(accesible) 또는 처분가능한(disponible) 피조세계의 어떤 대상을 숭배함으로써 사실상 자기들 스스로가 신이 되는, 전통적으로 교만이라고 표현되었던 그런 무한한 자기상승의 범죄를 끊어놓는 일이었다.
칼빈은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주권을 매우 강조했다. 칼빈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지고한 하나님(Dieu souverain)"이다. 그는 인간의 시야에, 인간의 이해범위 안에 들어오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은 알 수 없다'고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본질은 계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서 "피조물과 어떤 공통부분도, 어떤 닮은 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두뇌로써 상상하는 모든 것을 무로 돌려버리는" 심판주이며,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들을 구별해야만 하는" 즉 사람들에게는 없는 초월자이다. 스토페르가 칼빈의 설교들을 분석하면서 지적했듯이,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진실로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비교, 모든 유비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우리의 두뇌로써 그분을 깨달을 수도, '가둘 수'도 없다."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그런 지고한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그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며, 그의 권능과 영광을 예배하게 된다. 그렇게 지고한 하나님의식을 가진 사람은 겸비한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우상을 만들어 내거나, 그런 데 가서 경배하는 일은 전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을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의 형상이나 그림이나 자연물이나 인물 같은 그런 유한한 것들과 혼동하거나, 그런 것들 속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신을 자신들의 처분권 속에 두고 좌지우지하는 우상숭배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칼빈이 제시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신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방식을 따름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다.
2-2.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
칼빈에 따르면, 지고하고 초월적인, 즉 오직 그 분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오셔서(descendre)", "낮추셔서(s'hum- ilier)", 또는 "적응하셔서(s'accomoder)" 인간들에게 자신을 계시했다. 그래서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포착할 수 있고, 그렇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칼빈의 계시론을 간단히 그 요지만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즉 자연과 인간, 이루어나가는 역사,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말씀들로써 다양하게 계시한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이룬 다양한 작품(oeuvre)을 통해서만, 즉 로잔느 대학의 삐에르 지젤이 말했던 바, "주어진 실제(r el donn )"를 통해서만 인간들을 향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은 언제나 그 "주어진 실제"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즉 "주어진 실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경험하며, 그것에 따라서 신을 성찰하고, 예배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칼빈은, 사람들이 신의 계시를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sa guise)", 자기의 "망상(fantaisie)"이나 "몽상(reverie)"에 따라서, "구미(gout)"에 맞게 상상하고, 규정하고, 만들어놓는 미신을 배격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에게 놓여진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와 역사를 통해서, 또 인간들의 여러 법이나 조례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과 뜻을 계시했지만, 타락한 인간이 "완고함(rudesse)"과 "왜곡(infirmit )"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직접적이고,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백성들에게 말씀했고, 또한 직접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써 "인간의 구원에" "유익하고(utile)" "필요한(n cessaire)"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신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한 지식을 그 말씀들을 기록한 성서를 통해 "밝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신자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면 그는 무엇보다도 성서에 말씀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존해야 한다. 칼빈 자신은 신명기 설교들 중 한 곳에서 말했다. "우리들 자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분에게 마땅한 영예를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안내자로서 그분의 말씀을 가져야 하고, 성경 안에 있는 그분의 진리로써 우리가 똑똑해져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계시들 중에서, 칼빈 자신이 가장 강조했고, 그리고 자신의 독자들을, 또는 청중들을 항상 그리로 집중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서였다. 그 "성서 안에 있는 진리"를 떠나서 다른 데 가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언제나 우상숭배로 귀착되는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더글라스가 지적했듯이, 원시교회의, 그리고 중세기 초기에도 많은 신학자들이, 그들도 역시,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주석가들이었다. 그들 역시 성서의 중요성과 권위를 매우 강조했고, 그것을 토대로 신학적인 논의를 전개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또 칼빈이 그들과 다른 점은 "오직 성서로만"이었다고 하는 점이다. 즉 과거의 카톨릭 교회는 성서의 권위와 그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교회라는 또 하나의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두 개의 권위를 병렬로 배치하거나, 또는 관행적으로 성서를 교회의 권위에 예속시켰다. 그러나 칼빈은 오직 성서만이 유일한 신적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그것과 동등하게, 혹은 그것보다 우위에 두었던 데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교회는 성서를 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 세워진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교회가 또는 신자들이 성서와 별도로 존재하는 교회의 결정들이나 칙령들, 전승들, 관행들을 신앙과 종교생활의 근거로 삼는 것은 미신, 또는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격상시키는 우상숭배나 다름이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자신들의 정신을 미신들의 포로로 만들어 놓는 일에 습관이 붙은 무지한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거기서(성경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신성을 느끼므로..." "우리의 판단과 지성을 거기에 복종시킨다..."
칼빈이 성서를 강조했던 것은 또한 소종파들과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카톨릭 교회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소종파들 역시 성서와 별도로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주장하면서, 성서의 권위를 파괴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서와 성령의 관계를 밝혀놓았던 것은 바로 그들의 주장과 행태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간단히 말하면,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기 때문에, 성경 이외의 다른 말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령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확증하고, 깨우쳐줄 뿐 거기에 어떤 새로운 것을 부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어떤 유익을 얻고자한다면 그럴수록 더욱 성서를 읽고, 그것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2-3. 신자들의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개혁
칼빈은 단지 로마교회나 소종파들의 우상숭배와 미신이라는 오류들과 싸우는 것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런 오류들을 인간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죄로서 파악했다. 즉 그것들은 유한한, 그리고 특히 죄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죄인이 평화와 안정을 되찾으려는 여러 가지 방식의, 그러나 잘못된 행위들의 일환으로 나타난다.
칼빈의 저술들에 나타난 바를 고려해 보면, 우상숭배와 미신을 야기하는 인간들의 죄와 그 심리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그 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죄론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상숭배와 미신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는 점만을 밝히는 것으로써 만족한다.
칼빈에 따르면, 죄인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임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느낀다. 죄인은 지고하고 무한한 하나님 앞에서 유한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또한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왜곡되고 타락한 자신을 깨닫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즉 그의 계시로부터 - 그것이 일반계시이건 특별계시이건 -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죄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에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면에 의해서 하나님을 보며, 동시에 자신을 봄으로써, 죄인은 자신이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과, 더욱이 죄에 의해 더럽혀져 있는 왜곡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로 들어간다. 그 현실은 죄인에게 있어서, 그가 이제까지 가져왔던 교만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버리라는 하나의 요청을 의미한다. 그러나 "완고하고", "왜곡된" 죄인은 그런 현실에 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요청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을 도리어 왜곡시켜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 몇 가지 방법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상숭배와 미신이다. 우선, 우상숭배는 그런 식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을 한번 드러났던 어떤 매개물이나, 또는 인간이 볼 때 위대하거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물이나 인물, 기타 어떤 물질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에 제한시켜버리는, 즉 칼빈의 용어로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죄인은 더 이상 자기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들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신을 대체해버림으로써, 자기들이 사실상 스스로 신이 되고 세계의 중심이 되는 왜곡된 현실을 구성한다. 그 방식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교만과 자기중심적 욕망들을 보존할 수 있고, 충족시킨다.
반면에, 미신은 하나님의 계시방식으로써 신을 이해하지 않고, 그것과 관계없이 자신들 임의로 상상함으로써, 참 하나님, 즉 유한성과 죄성을 인정하라고 요청하며 다가오는 하나님 대신에, 자신들의 현상태를 전혀 개의치 않는, 편안하기만 한 거짓 하나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죄인들은 자신들의 왜곡된 상황을 강화,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미신과 우상숭배에 관한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다른 데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이유로써 죄인들은 자신들을 더 이상 벗어나지 않는, 자신들에게 더 이상 명령하지 않는, 그리고 자신들과 언제나 좋은 사이인 다른 어떤 하나님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죄인들은 불안하게 하는 하나님을 그들 자신들 속에 있는 어떤 것, 예를 들면 신관념이나 또는 어떤 물질적인 것들로써 대치시켜 버린다. 그 결과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수중에 있는 하나님, 그래서 꼼짝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며, 자기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칼빈은 죄인들의 그런 행태가 "일탈된 종교의 미친 욕망(affection folle de la religion d r gl e)"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오성의 뻔뻔스러움과 과도함이, 그의 은혜를 획득하고자 새로운 명예와 예배들을 발명해서 그에게 올리는 일에 너무나 기울어져 있으므로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 일탈된 종교의 미친 욕망은 , 그것은 우리의 정신 속에 자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언제나 그 마각을 드러내왔으며, 또 현재에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의를 획득하려는 어떤 방법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에게 있어서 그런 욕망은, 위의 인용문도 지적하듯이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칼빈은 그것이 심지어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속함을 입은 신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았다. 즉 그런 욕망과,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미신과 우상숭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방인들에게서, 또한 당시에 무엇보다도 로마 카톨릭교회와 소종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들" - 칼빈 자신과 그를 따르는 제네바의 신자들에 의해서도 또한 저질러지는 죄였다.
그는 요한복음을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도 역시 매일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욕적인 안목으로써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큰 장애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분 안에 있는 찬탄할 만한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일들을 이용하려고 하고,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붙들고 있는 엉터리들인 만큼, 우리들은 우리의 사악한 감각으로써 그분 안에 있는, 그리고 그분의 교리 안에 있는 것 모두를 더럽혀놓고 있으며,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으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급기야는 복음을 경시하게 하는 많은 잘못된 상상력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괴물들을 상상해내서 복음을 지긋지긋하게 하며, 그 괴물 같은 모습을 한 복음을 미워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의적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런 욕망을 "길들이거나", "착고를 채우거나", 또는 "버려야 한다". 그것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신앙과 중생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런 욕망의 포기를 통해서 신자들은 지고하고 존엄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의 주권 앞에 복종하며, 그리고 계시와 성서의 말씀을 통해 알려지는 하나님을 알고 그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칼빈은 그 점을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개요(la somme de la vie chr tienne)"인 "자기부정(renoncement nous-m me)"으로써 말했다. "…인간이 자기의 정신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거짓과 허영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선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투쟁이 있어야 할까?… 자기를 부정하는 것 말고,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칼빈에 의하면, 자기부정은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고, 하나님 예배를 향한 길을 걸어가게 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특히 "미신들뿐만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외심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불경건"과 "세상적인 욕망들(cupidit s mondaines)"인 "두 가지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죄와 죄를 향한 욕망을 끊어버림으로써, 미신과 우상숭배를 벗어나고, 그 결과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따르는 일은 언제나 그 자기부정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칼빈의 관점이다.
그런데, 칼빈에게 있어서 자기부정은 한번으로써 영원히 끝나는 그런 유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자들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언제나 또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의 지속적인 요청이었다. 칼빈은 자기부정을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의 삶으로써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십자가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본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가져가는 방향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그리고 "겸손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에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어 우리로부터 비롯된 모든 신뢰심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유용한 것으로서, "이 생애 속에서 영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경험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자신을 맹목적으로 만들어 놓는 자기사랑이 제거되어서, 우리가 우리자신의 약함을 올바르게 알고, 우리에 대한 바른 감정을 가지며, 그래서 우리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이득이 아니다. 우리의 신뢰심을 하나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전적인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들은 영광스러운 최후까지 견디어 나간다. 우리가 그의 약속들 가운데서 그가 참되고 신실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의 은혜 안에서 계속 나아간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칼빈의 전통에 서 있는 교회들이 "개혁파(r for- m 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본다. 사실상 칼빈 자신도 "개혁한다(r former)"는 말과 그와 유사한 말들을 종종 했다. 주지하듯이, 개혁한다는 말은 reformer, 즉 '다시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다.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든다(former)", "다시 만든다(reformer)", 또는 "적합하게 만든다(conformer)", 그리고 그것들과 유사한 "고친다(corriger)"라는 용어들을 매우 자주 사용했다. 그 점은 칼빈이 하나님의 "말씀에", 또는 "하나님의 형상에" 알맞게 "개혁되는 것"이 신자들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보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신자들이 자기부정을 통해서 언제나 자신을 개혁해나감으로써 최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신자들의 삶을 그려냈다. 만일 우리가 칼빈과 칼빈전통에서 있는 교회들의 독특성(sp cificit )을 지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점이 아닐 수 없다. 즉 그의 교회는 어떤 교리나 제도, 형태를 갖고 있는가 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든지 간에, 현재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을 통해 자신을 향상 개혁해 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존재의 특징과 의의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칼빈이 해석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따르는 교회들은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Ⅲ.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의 신학은 그가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부딪혔던 문제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특히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 그리고 재세례파들을 중심으로 한 소종파들과의 투쟁의 과정에서 그의 신학이 정리되고 분명해졌다.
그렇게 형성된 칼빈의 신학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서로만" 그리고 "신자의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개혁"이라는 세 가지 원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 원리들은 로마교회와 소종파들의 오류인 우상숭배와 미신을 종식시키고, 참된 예배와 신앙, 그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방향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칼빈은 당시의 우상숭배와 미신이 인간의 보편적 죄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았다. 즉 어느 시대,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범하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과의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되어야 하는 과제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참된 한 분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고 그에게만 영광을 돌린다는 원리,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되 오직 그분의 계시에 따라서만 한다는 성서중심의 원리, 그리고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와 신앙을 위해, 언제나 다시 일어나는 우상숭배와 미신의 죄된 욕망과 싸우며, 그런 자신을 벗어버린다는 자기부정과 자기개혁의 원리들도 언제 어디서나 요청되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를 볼 때, 참된 복음의 정신과 신앙이 과연 우리에게 살아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율법주의, 권위주의, 이기주의, 사이비 신비주의, 맘모니즘, 물량주의, 상업주의, 과업주의 등등 수많은 죄와 오류가 주님의 몸인 교회를 더럽히고 있다. 바로 그 현실이 새로운 종교개혁을 요청하고 있다. 개혁은 피상적이고, 형식적일 수 없다. 그것은 참된 하나님과 복음의 의미를 깊이 깨달으며, 그것을 그 뿌리와 원리에서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개혁은 다른 어느 누구를 향한 외침이기에 앞서, 바로 나 자신, 바로 내 교회로부터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그리고 참된 개혁은 한번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계속되는 영구적인 개혁이다. 즉 개혁이 우리 자신들의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의 종교개혁과 신학에서 우리는 그런 점들을 배운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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