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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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제 2의 제네바 개혁(1541-1550)

7) 제 2의 제네바 개혁(1541-1550)
스트라스부르그 사람들이 칼빈을 제네바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칼빈을 소개했다.
“필적할 이 없는 이 사람, 주님의 드문 도구인 이 사람이 마침내 당신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와 비교하여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면,
우리 세대는 그와 필적할만한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칼빈>, 111.
1541년 9월 13일 화요일, 칼빈은 시의회 의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제네바로 돌아왔다.
칼빈을 호위하기 위해서 호위 부대가 파견되었다.
가족 수송을 위한 마차가 스트라스부르그까지 왔으며 칼빈을 위한 상느완느 거리의 고급 주택이 마련되었다. 파커, <존 칼빈의 생애와 업적>, 171.
 칼빈은 자신이 다시 돌아온 것은 제네바를 섬기기 위해서이며 이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개혁하고 규칙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은 제네바의 종으로 기꺼이 헌신할 것임을 시의회 의원들에게 다짐했다. Calvini Opera(Corpus Reformatorum), 21, 282.
또 “정부가 의견을 같이 하지 않는 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규정하고 있는 초대교회 때와 같은 모습의 교회로는 유지해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결국 그는 시의회의 동의를 얻어 “교회에 대한 칙령”(ecclesiastical ordinances)을 완성했다.
교회에서 삶 전체를 위한 법을 제정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이 칙령은 주로 목회적 기능의 견지에서 작성되었다.
칼빈은 이 칙령에서 질서정연한 교회는 목사(pastors)와 교사(doctors)와 장로(elders)와 집사(decons)가 있어야 하며, 교회의 임무는 기록된 대로 복음을 선포하고 성례를 올바르게 집행하며 성도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훈련시키며 고통 당하는 자들을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예배는 주일에는 세 교구의 교회인 성 삐에르, 라 마들레느, 성 베드로 교회에서 각각 새벽과 9시 예배를 드리고 성 삐에르와 베드로 교회에서는 3시에 또 예배를 드렸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요리문답 공부는 각 교회에서 정오에 하기로 했다.
이 밖에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도 세 교회에서 각기 예배를 드렸다. 정당한 이유 없이 주일예배에 참석치 않은 자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LCC, 77.
칼빈은 주일 오전과 오후에 설교했고, 주중에도 세 번(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한 번)씩 설교를 했다. 주일 오전에는 복음서를, 오후에는 시편을, 주중에는 구약을 가지고 강해설교를 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 말”이다.
그래서 설교란 하나님께서 설교자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입”(the mouth of God)인 것이다.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교회 개혁―교회의 규율을 제정하고 시행한 것―은 그의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이다. 이런 칼빈에 대해 Rud Staehelin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교회를 존재하도록 만든 이 사람의 신앙의 영웅적 대담성과 불굴의 의지력과 엄청난 자기 부인으로 인해 기독교 교회사에 있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 시대가 시작된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
그의 이런 능력과 굳건함의 비결은 자신의 전 존재와 행위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틸켈베르거, <하나님의 사람 칼빈>, 129-130, 각주 117에서 재인용.
칼빈은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이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의 전 생애를 아낌없이 바친 사람이었다.
존 낙스는 제네바 개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감히 그리고 떳떳이 말한다면 이곳은 사도시대 이후로 지상에 존재했던 그리스도의 학교들 가운데 가장 완벽한 곳이다.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전파했지만 생활과 종교가 그처럼 신실하게 개혁된 곳을 나는 아직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다.” 죤 T. 맥닐, <칼빈주의 역사와 성격> 전성구, 양낙홍 공역(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0), 204.
1559년 3월 5일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의 개교식을 성베드로 교회에서 가졌는데 칼빈 자신이 직접 학칙을 제정한 이 학교는 신학부와 철학부로 구성되었다.
이 아카데미의 설립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증진시키는 일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이 학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와 봉사자를 길러내는 곳이었다.
제네바에서 교회 개혁을 하는 동안 칼빈은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겪었다. 당시 고국 프랑스에서는 계속해서 프로테스탄트들을 핍박하고 화형에 처했다.
그 중에 제네바에서 칼빈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던 다섯 젊은이들이 프랑스에서 자신의 개혁 신앙을 고백했다가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강구했던 칼빈은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이 편지는 칼빈의 신앙과 신학사상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당신들 안에 하늘 아버지의 권능이 힘있게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그분께서 너무나 명백하게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역사를 온전히 이룰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어떤 불안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과 함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양자로 선택되어 상속에 들어가리라는 확신을 당신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그의 독생자를 위한 순교자로 지명하셨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영혼이 항상 내 수중에 있나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율법을 나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라는 다윗의 말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라도 당신들의 목숨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당신들의 생명이 복음의 증인이라는 귀중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이제는 복음의 증인으로 죽는 것은 주님께서 얼마나 당신들을 소중히 여기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땅이 숨기고 있던 피를 드러내고, 우리가 이 썩어 가는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몸을 입고 일어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 우리들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가 다름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로 핍박받고 조롱받고 있다는 이 확실한 보증으로 우리 모두 위로를 삼읍시다.
지금은 단지 희망 속에서만 소유하고 있는 모든 축복들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모여 완전히 즐기게 될 그 날까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온 세상을 이 세상에 속한 자랑거리들과 더불어 경멸할 만한 충분한 이유인 것입니다. 스티켈베르거, <하나님의 사람 칼빈>, 161.
자신들의 선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지 얼마 안되어 다섯 청년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에 처해지기 전에 그들은 시편 9편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형제여! 용기를, 용기를” 하면서 죽어갔다. <하나님의 사람 칼빈>, 160.
순수한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칼빈주의자들은 하나씩 둘씩 죽어갔다
http://blog.daum.net/kkho1105/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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