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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경건생활

칼빈의 경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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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칼빈의 경건생활 2004.02.07 07:21
서문
존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에 대한 주해자와 노련한 주석가로서, 또한 미국 공립 학교들의 사실상의 설립자로서 높이 존경을 받아 왔던것이다. 동시에 그는 놀라운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명성을 떨치게 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방대한 체계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하는 가운데서 되어진 것이었다. 실로 그것은 기도의 열매였다 : 왜냐하면 지금까지 순교를 당하고, 개혁을 이뤄가며, 복음을 전파한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기도로 무장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부흥을 얻게 된 것은 그들이 기도함에 있었고,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에 있어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생명력있는 호흡”이며 또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칼빈의 신학적인 저작(著作)들이 그토록 높이 평가되고 있는 반면에, 그의 기도에 대해서 거의 주목을 하지 않아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주석들, 예컨대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밖의 소선지서들의 주석은 원래 강연의 형태로 행해진 것이며, 그의 각개의 것은 어떤 특별한 요구에 의해 되어진 것이다. 그의 강연들이나 기도는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소선지서들의 주석의 서문에, 또한 스웨덴 국왕에 보내는 헌사 가운데서 칼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나 자신의 힘에 있었다면 차라리 나는 이렇게 즉석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청중들의 특별한 이익을 위해서만 의도했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만족을 했을 것입니다.” 존 부데이우스(John Budaeus)는 다른 서문 가운데서 경건한 마음으로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얻고자 기도하는 것은 그에 의해 교훈된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함에 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이것은 그 교훈이 원래 의도하는 바 그대로를 조심성 있게 또한 충실한 상태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기도를 드림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도 역시 이러한 형태를 갖추어 가도록, 말하자면 성경 말씀으로부터 그들의 기도를 이뤄나가는 데에 있어서 바로 이러한 형태로 해나가도록 교훈함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훈을 시작함에 있어서 그는 종종 동일한 형태의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는 그때 그때에 되어지는 새로운 기도를 드림으로 모든 교훈을 끝맺는 데 익숙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으며 또한 그 교훈의 주제에 매우 적절했던 것이다.”
창세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칼빈의 주석은 때때로 그의 말이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극히 겸손하여 자신의 모든 지혜를(바울이 그렇게 표현했거니와)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낮추는 것 이외에, 그 어떠한 이 세상의 지혜로운 자의 노력도 헛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지 않는 한, 이 세상 어디에서고 아무 것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올리워 줄만한 것이 없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는다고 하는 것도 우리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했고 귀로도 듣지 못했으며, 또한 우리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모든 것을 채우며 그의 영적 은혜는 모든 곳에 내린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세상과 천국에 대해 생각함으로, 그 가운데서 하나님과 진정한 지식을 확인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감각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형상으로서 우리는 그 안에서 그의 마음뿐 아니라 또한 그의 손과 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통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그의 손과 발을 통하여서는 그가 우리 앞에 열어놓은 그의 사역들을, 즉 그의 작품을 깨닫게 된다.” 칼빈의 이러한 주석은 사도의 외침과 체험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 함께 일어나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칼빈의 이러한 모든 글은 그가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열렬하게 기도하며 애썼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칼빈을 잘 따랐던 존 녹스(John Knox)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그 위대한 성취의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하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기쁨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믿지 못할 정도의 진보를 할 수 있었음에 우리는 다만 놀랄 뿐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비상한 은혜를 그 속에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섭정(攝政)을 하는 섬머셋(Somerset)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하늘 왕국의 활기에 넘친 삶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 위대한 일은 이미 기록된 말씀을 읽어 나감으로써 이뤄져야 할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듯이(딤후 4:2), 결코 죽어버리지 않은 이 가르침을 생명력이 충만한 가운데서 능력있게 교훈하며 훈계해야만 합니다. 그렇게하여 불신자가 그곳에 들어왔을 때 그는 너무도 압도되고 확신에 차게 되어 드디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도바울이 성경 다른 곳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고저 14장). 전하, 역시 전하께서도 늘 살피셔서 어떻게 생명의 능력과 권능으로 말씀하고 있는가를 아셔야하며,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신실하고 선한 일꾼들로서 자신들을 증거하는지, 또한 자신들의 과장된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말에 나타남으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게 되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나이 어린 왕인 에드워드 6세(Edward the Sixth)에게 보낸 그의 서신은 영원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임금이 된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와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당신께서 생각하심에 대해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바입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왕이 되게 하신 것과, 또한 그분의 대리자로서 당신께서 이제는 영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유지하며 나아가도록 봉사하게 하신 사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섭정가인 섬머셋(somerset)의 Ekfs인 앤 쎄무어(Anne Seymour)는 그에게서 다음과 같은 서신을 받았다.
“확실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내려주신 그 많은 은사 가운데서, 영원한 구원을 베푸시고, 모든 선한 것의 기초가 되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에게로 당신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보다도 의심할 바 없는 것입니다.”
크래머(Cranmer)는 그의 동료이자 함께 수고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칼빈으로하여금 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와 더욱 가까이 연합하기 위하여 종교회의를 개회하도록 권했다. 그래서 칼빈은 자신이 이를 승힌했음을 다음과 같이 통보했다. “봉사를 하기 위하여 만일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면, 나느 결코 수많은 바다를 건너는 일이라 할지라도 마다 하지 않고자 합니다.”
그는 화렐(Farel)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캔터베리의 대주교는 내게 왕에게 더욱 자주 편지하는 것 이외에는 내가 유익하게 할 수 잇는 일이란 없을 것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만일 내가 재정적으로 충분한 여유만 있다면 그것은 내게 큰 기쁨을 줄 것입니다.”
영국의 망명자들이 메리 여왕(Queen Mary)의 박해에 의해 대륙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칼빈을 따르던 사람들도 칼빈과 함께 활동했다. 칼빈은 그들이 제네바(Geneva)에 오는 것을 환영했고, 이와 같이 자기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우리는 영국이라고 하는 나라에 관하여 염려해야 할-심지어는 괴로워해야할-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건보다 나를 더 실망시킨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자베스(Elizabeth) 여왕이 등극하자 칼빈은 여왕에게 이사야서를 주석한 책을 한권 바쳤는데, 그 가운데서 그는 복음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당신께 호의를 얻음으로 나의 일을 쉽게 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당신의 친절한 협조로 인해 정통적인 책들이 자유롭게 또한 기꺼이 영국에 퍼뜨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한 당신의 주요 관심사가 신앙을 촉진시킴에 있다하는데, 이것은 부끄럽게도 태만한 상태에 빠져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택하신 독생자에 의하여, 또한 거룩한 성도들에 의하여 이땅의 모든 왕들에게서 마땅히 요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고귀하신 여왕께서도 이 놀라운 일에 대하여 예외이실 수 없는 것이며, 모든 경건한 자들이 말씀을 거역할 때에 그들의 머리 위에 임하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왕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도록 하나님의 권한 밑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 이 일을 부끄러움 없이 해 내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그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놀라운 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 대하여 말한대로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거룩한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위대한 개혁가의 염원은 붓쳐(Bucer)에게서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영국이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의 입장에 서 있기를 바란다. 또한 그 나라에서의 모든 일이 그리스도게서 세우신 그 모든 규칙을 따라 되어지기까지 기도할 것이다.”
칼빈의 기도는 놀랍게도 응답되었다. 영국은 개혁의 요새가 되었다. 스페인의 무적 함대가 패배함으로 이제 영국은 바다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 당시의 해상권(海上權)은 카톨릭에서 신교의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것은 그 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영국의 청교도 운동은 칼빈주의에 그 핵심을 두고있다. 그 결과로 웨스터민스터 신앙지침과 칼빈주의 신조의 가장 완전한 것이 “첫 번째 신교회의”에 의해서 공식화 되었고 영국의회에서 채택되었다. 그린(Gree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왕정복고 이후에 도덕적이며 영적(靈的) 측면에 있어서의 영국 역사의 과정은 신교의 역사였다.” 칼빈주의 자들의 대부분은 영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쉐이프 박사(Dr. Schaff)도 이렇게 말한다. “양 대륙에 있는 앵글로 색슨(Anglosaxon) 민족에 대한 칼빈의 영향은 영국 본토인의 영향보다 더욱 큰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남작부인인 분센(Bunsen)의 찬사를 인용하고 있다. “칼빈의 좋은 점은 그 자신에 있으며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와 미국을 강하게 만든 도구의 역할을 하였다.”
칼빈 번역 위원회(Calvin Translation Society)는 52권의 그의 저서들을 방대하게 펴냄으로 영국의 언어를 풍부하게 했다. 그들의 번역은 간단한 편집을 위하여 다시 수정되었는데, 이것은 주로 소선지서에 대한 주석이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에서 발견된 수백번이 넘는 그의 강의와 기도들은 모두가 교훈적이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명기에 대한 칼빈의 설교 중에서 색다른 영어 번역으로부터 취한 교훈과 그의 설교의 마지막에 되어진 그 밖의 유사한 모든 것들은 경건한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우리의 죄를 시인합시다. 그리고 이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함으로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 맡깁시다. 그리하면 이제 우리는 가나안 따으로 그의 백성들을 이끌어간 모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늘로 끌어 올리시기 위하여 이땅에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천국으로 인도를 받으며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지혜를 멀리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에게 의탁하며 은혜를 간구함으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과 이 세상의 모든 나라에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칼빈은 자신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늘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곤 했었다.
“주여,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또한 우리 자신들의 신앙의 발전을 위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더욱 봉사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우심을 깊이 깨닫도록 인도하여 줍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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