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기독교 사상의 완전한 해설서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기독교 사상의 완전한 해설서
오대희 | 2004. 8.
“원서로 이 책을 정독하기 전에 절대 목회할 생각을 하지 말라.”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선배가 한 말이다. 당시 우리는 신림동 고시원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그 선배는 신학과 고시 사이를 방황하다 결국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신학에 대한 미련이 많아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하고 WBC를 비롯한 영서 주석들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정독한 후, 법조인답게 냉철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곤 했다. 이 책을 대하자면 먼저 그 선배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 선배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마 그 선배가 유독 칼빈을 좋아했던 것도 돌이켜 보면 법조인들이 갖는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설명된 기독교 사상의 핵심들에 매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독교를 강요하는 책이다?
“목사님, 「기독교 강요」가 무엇입니까?” 서평을 쓰려고 다시금 이 책을 잡아들었을 때 교회의 한 청년이 질문해 왔다. 순간 필자는 장난기가 발동해 “응,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를 강요하는 거야, 너도 한번 강요당해 볼래?”하면서 함께 웃었다. 국어사전에는 강요(institute)를 ‘강령이 되는 요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강령을 찾아보면 ‘기본, 목표, 정책, 규정을 정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어로 ‘institute’는 원리라는 뜻도 갖고 있다. 즉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의 핵심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기독교 강요」는 제목만으로도 왜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지 알게 해 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에선 절대 밀리지 않지만, 전혀 읽히지 않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마치 성경이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난센스가 따라다니듯, 이 책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 중요한 책,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전혀 읽히지 않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더 슬픈 것은 요즘 청년들 가운데 이런 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더욱 용기를 내어 「기독교 강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개신교의 신학대전이고 기독교 교리에 대한 완전한 해설서이며, 칼빈의 일생에서 최대의 저술이기도 하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다섯 번이나 집필해 1536년 초판 발행 이후 1559년에 최종판이 발행되었다.
개혁 사상을 체계화한 칼빈 생애 최고 작품
칼빈은 1509년 프랑스 파리 북부 노용(Noyon)에서 제라드 칼빈(Gered Cauvin)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루터와 츠빙글리보다 나중에 태어나 제2세대 종교개혁자라고 불리며, 주로 개혁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공헌했다. 칼빈은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가 현재의 신학대학원과 같은 정규 신학 수업과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이 인정하듯, 그는 뛰어난 설교자이고 23권의 구약 주석과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전체를 주석한 성경 신학자로 영향력을 나타냈으며, 「기독교 강요」는 그의 생애 최고 작품으로 다섯 차례 증보판을 통해 완성했다.
칼빈은 친구 니콜라스 콥의 대학 학장 취임 원고를 작성했는데 거기서 칼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교회의 평화, 모든 학문의 유용성,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을 지지하면서 타락한 교회 질서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황실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게 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로 도피 생활을 했다. 이후 종교적 관용 조처가 내려지자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와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이미 제네바에선 친구 파넬이 종교개혁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가 종교개혁의 완성을 위해 칼빈에게 도움을 요청해와 참여하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 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연결돼 있다.”
「기독교 강요」 제1장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으로 형성돼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아가는 것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길이다.
칼빈은 제1권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담겨 있으며, 더욱 분명한 계시의 방편으로 성경이 주어졌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성경의 권위와 말씀을 통해 성도가 갖게 되는 유익에 대해 설명한다.
제2권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 논리를 펴고 있다. 아담으로 인해 타락하고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인간의 원죄론, 인간의 비참한 상태, 인간에게 주어진 율법과 계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야 할 이유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강요」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칼빈의 5대 강령, 즉 전적 부패(전적 무능), 무조건적 선택, 특별 구속(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총, 성도의 견인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칼빈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 그리고 자유 의지로 인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을 철저히 반박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통해 구원이 이뤄짐을 역설한다. 그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을 갖고 있다.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에선 우리의 믿음과 성도의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다룬다. 이 장에서 칼빈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고,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사역을 하며, 우리가 그토록 많이 사용하면서도 잘 모르고 있는 믿음에 관해 가르쳐 준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기초하며 그 약속들에 의거해 생긴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믿음의 여러 가지 측면들에 대해 세밀하게 밝히면서 성도의 구원의 전 과정을 살펴 준다.
제4권에서 칼빈은 성도의 거룩한 모임인 교회에 대해 설명한다. 터툴리안은 “교회는 어머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칼빈 역시 교회는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로서 연합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당시 종교개혁 때 대두되었던 로마 가톨릭의 문제점과 그가 평소에 가장 강조한 성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논리적 전개에 의한 하나님 중심의 신관
「기독교 강요」와 칼빈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후세가 본받아야 할 점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관에 있다고 본다. 칼빈의 저서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탁월하면서도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과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발견하게 되고, 세상과 많은 가교를 놓고 타협의 여지를 남겨둔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을 대하는 것 같은 경건함과 하나님 중심의 신관은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일 것이다.
칼빈은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전적 무능과 부패를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와 도우심을 통한 구원을 설파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도 아르미니안주의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 및 인간의 책임 문제와 더불어 계속 논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칼빈이 말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하고 삶의 경험을 통해 필자의 의지조차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능력 안에서 이뤄진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면 ‘인간은 로봇이냐?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는 무엇인가?’로 논쟁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고 지면도 부족하다. 이런 모든 논쟁의 요소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필자는 칼빈이 주창한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본받기를 원하며, 인간의 전적 무능과 부패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다시금 조명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우리의 신앙 자세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 가혹하리만큼 철저함을 보여 준다. 칼빈의 저서를 읽으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있진 않은지 그리고 필자조차 너무 멀리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구원의 내용들을 조직화하고 논리화하여 설명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물론 신학적으로 이런 부분을 정리한 것을 조직신학이라고 한다. 이 책에선 법학을 전공한 법학도로서 칼빈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불신자들에게 전도하거나 설교를 통해 구원과 하나님에 관해 설명하려고 성경을 연구하고 있지만 말로 풀어내기에 늘 역부족임을 느끼면서도 칼빈의 저서를 대하면 그의 탁월한 설명과 논리적 전개에 감복하게 된다.
「기독교 강요」의 자기화가 관건
서두에서 「기독교 강요」의 중요성과 더불어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을 잠시 언급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로 너무 두꺼우며 주제가 다소 무겁다는 점이다. 둘째로 잘 알진 못하지만 이런 주제들을 피상적으로나마 여기저기서 들은 기억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려고 힘쓴다면 철저한 자기 반성과 자기 정죄가 따른다. 이것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며, 신앙의 순수성과 경건성에 우리의 영혼을 머물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피상적으로 논쟁을 위한 구원의 서정과 은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주장이 이렇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진지하고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말씀의 자기화의 시도들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나 이 책은 좋지만 읽히지 않는 영원한 고서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존 칼빈(Jean Calvin 1509~1564)은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을 공부했으나 가톨릭에서 복음주의자로 회심한 뒤,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해 저술 활동을 하며 종교개혁에 참여했다. 당시 세속화된 교회의 회복과 정치 및 시민 생활 전반에 걸친 개혁을 이끌어 유럽 근대 민주주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섯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기독교 강요」(1559)는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기독교 서적의 고전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 외에 23권의 구약 주석,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나머지 신약에 대한 주석 등 방대한 저술 활동으로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로 자리를 굳혔다
http://blog.daum.net/kkho1105/6234
오대희 | 2004. 8.
“원서로 이 책을 정독하기 전에 절대 목회할 생각을 하지 말라.”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선배가 한 말이다. 당시 우리는 신림동 고시원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그 선배는 신학과 고시 사이를 방황하다 결국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신학에 대한 미련이 많아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하고 WBC를 비롯한 영서 주석들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정독한 후, 법조인답게 냉철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곤 했다. 이 책을 대하자면 먼저 그 선배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 선배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마 그 선배가 유독 칼빈을 좋아했던 것도 돌이켜 보면 법조인들이 갖는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설명된 기독교 사상의 핵심들에 매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독교를 강요하는 책이다?
“목사님, 「기독교 강요」가 무엇입니까?” 서평을 쓰려고 다시금 이 책을 잡아들었을 때 교회의 한 청년이 질문해 왔다. 순간 필자는 장난기가 발동해 “응,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를 강요하는 거야, 너도 한번 강요당해 볼래?”하면서 함께 웃었다. 국어사전에는 강요(institute)를 ‘강령이 되는 요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강령을 찾아보면 ‘기본, 목표, 정책, 규정을 정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어로 ‘institute’는 원리라는 뜻도 갖고 있다. 즉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의 핵심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기독교 강요」는 제목만으로도 왜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지 알게 해 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에선 절대 밀리지 않지만, 전혀 읽히지 않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마치 성경이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난센스가 따라다니듯, 이 책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 중요한 책,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전혀 읽히지 않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더 슬픈 것은 요즘 청년들 가운데 이런 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더욱 용기를 내어 「기독교 강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개신교의 신학대전이고 기독교 교리에 대한 완전한 해설서이며, 칼빈의 일생에서 최대의 저술이기도 하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다섯 번이나 집필해 1536년 초판 발행 이후 1559년에 최종판이 발행되었다.
개혁 사상을 체계화한 칼빈 생애 최고 작품
칼빈은 1509년 프랑스 파리 북부 노용(Noyon)에서 제라드 칼빈(Gered Cauvin)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루터와 츠빙글리보다 나중에 태어나 제2세대 종교개혁자라고 불리며, 주로 개혁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공헌했다. 칼빈은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가 현재의 신학대학원과 같은 정규 신학 수업과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이 인정하듯, 그는 뛰어난 설교자이고 23권의 구약 주석과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전체를 주석한 성경 신학자로 영향력을 나타냈으며, 「기독교 강요」는 그의 생애 최고 작품으로 다섯 차례 증보판을 통해 완성했다.
칼빈은 친구 니콜라스 콥의 대학 학장 취임 원고를 작성했는데 거기서 칼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교회의 평화, 모든 학문의 유용성,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을 지지하면서 타락한 교회 질서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황실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게 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로 도피 생활을 했다. 이후 종교적 관용 조처가 내려지자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와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이미 제네바에선 친구 파넬이 종교개혁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가 종교개혁의 완성을 위해 칼빈에게 도움을 요청해와 참여하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 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연결돼 있다.”
「기독교 강요」 제1장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으로 형성돼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아가는 것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길이다.
칼빈은 제1권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담겨 있으며, 더욱 분명한 계시의 방편으로 성경이 주어졌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성경의 권위와 말씀을 통해 성도가 갖게 되는 유익에 대해 설명한다.
제2권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 논리를 펴고 있다. 아담으로 인해 타락하고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인간의 원죄론, 인간의 비참한 상태, 인간에게 주어진 율법과 계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야 할 이유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강요」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칼빈의 5대 강령, 즉 전적 부패(전적 무능), 무조건적 선택, 특별 구속(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총, 성도의 견인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칼빈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 그리고 자유 의지로 인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을 철저히 반박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통해 구원이 이뤄짐을 역설한다. 그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을 갖고 있다.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에선 우리의 믿음과 성도의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다룬다. 이 장에서 칼빈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고,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사역을 하며, 우리가 그토록 많이 사용하면서도 잘 모르고 있는 믿음에 관해 가르쳐 준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기초하며 그 약속들에 의거해 생긴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믿음의 여러 가지 측면들에 대해 세밀하게 밝히면서 성도의 구원의 전 과정을 살펴 준다.
제4권에서 칼빈은 성도의 거룩한 모임인 교회에 대해 설명한다. 터툴리안은 “교회는 어머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칼빈 역시 교회는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로서 연합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당시 종교개혁 때 대두되었던 로마 가톨릭의 문제점과 그가 평소에 가장 강조한 성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논리적 전개에 의한 하나님 중심의 신관
「기독교 강요」와 칼빈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후세가 본받아야 할 점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관에 있다고 본다. 칼빈의 저서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탁월하면서도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과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발견하게 되고, 세상과 많은 가교를 놓고 타협의 여지를 남겨둔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을 대하는 것 같은 경건함과 하나님 중심의 신관은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일 것이다.
칼빈은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전적 무능과 부패를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와 도우심을 통한 구원을 설파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도 아르미니안주의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 및 인간의 책임 문제와 더불어 계속 논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칼빈이 말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하고 삶의 경험을 통해 필자의 의지조차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능력 안에서 이뤄진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면 ‘인간은 로봇이냐?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는 무엇인가?’로 논쟁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고 지면도 부족하다. 이런 모든 논쟁의 요소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필자는 칼빈이 주창한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본받기를 원하며, 인간의 전적 무능과 부패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다시금 조명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우리의 신앙 자세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 가혹하리만큼 철저함을 보여 준다. 칼빈의 저서를 읽으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있진 않은지 그리고 필자조차 너무 멀리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구원의 내용들을 조직화하고 논리화하여 설명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물론 신학적으로 이런 부분을 정리한 것을 조직신학이라고 한다. 이 책에선 법학을 전공한 법학도로서 칼빈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불신자들에게 전도하거나 설교를 통해 구원과 하나님에 관해 설명하려고 성경을 연구하고 있지만 말로 풀어내기에 늘 역부족임을 느끼면서도 칼빈의 저서를 대하면 그의 탁월한 설명과 논리적 전개에 감복하게 된다.
「기독교 강요」의 자기화가 관건
서두에서 「기독교 강요」의 중요성과 더불어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을 잠시 언급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로 너무 두꺼우며 주제가 다소 무겁다는 점이다. 둘째로 잘 알진 못하지만 이런 주제들을 피상적으로나마 여기저기서 들은 기억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려고 힘쓴다면 철저한 자기 반성과 자기 정죄가 따른다. 이것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며, 신앙의 순수성과 경건성에 우리의 영혼을 머물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피상적으로 논쟁을 위한 구원의 서정과 은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주장이 이렇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진지하고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말씀의 자기화의 시도들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나 이 책은 좋지만 읽히지 않는 영원한 고서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존 칼빈(Jean Calvin 1509~1564)은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을 공부했으나 가톨릭에서 복음주의자로 회심한 뒤,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해 저술 활동을 하며 종교개혁에 참여했다. 당시 세속화된 교회의 회복과 정치 및 시민 생활 전반에 걸친 개혁을 이끌어 유럽 근대 민주주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섯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기독교 강요」(1559)는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기독교 서적의 고전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 외에 23권의 구약 주석,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나머지 신약에 대한 주석 등 방대한 저술 활동으로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로 자리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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