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설교자 캘빈
개혁주의 설교자 캘빈
엘시 A. 맥키 프린스톤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개신교 목사가 된다는 것은 설교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목사와 설교자가 항상 동일시되지는 않았다. 사실 개신교 종교개혁 이전 서구 유럽의 교회는 수세기 동안 목회자의 주요 업무가 성례를 집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제가 설교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정도였다. 물론 중세 후기에는 더 많은 사제들에게 가끔씩 설교가 맡겨졌지만 그때에도 교구 목회자의 업무 내용으로 설교 능력이 요구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설교가 목회자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중요한 변화였다. 이 논문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중세와 근대 초기 상황을 스케치하고, 그 다음에 설교에서 개신교적인 변화를 소개한 후 설교자 존 캘빈을 논하겠다.
개신교 설교 목사의 출현
개신교 설교 목사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중세 교회가 이단이라고 불렀던 왈도파, 롤라드파 혹은 또 다른 무리들은 교구 사제들도 설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성경을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도들이 처음으로 설교가 목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설교자로서 목사의 역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었다.
그 이유로는 전반적으로 교육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많아졌음을 들 수 있다. 더 많은 수의 평신도들이 글을 읽게 되고, 목회자들이 더 잘 교육받게 되면서 목회자와 평신도 둘 다의 기대가 높아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식한 목회자에게 만족할 수 없게 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위해 더 많이 배우기 원했다. 교회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을 기대하게 되었다. 목회자들은 더 많이 교육받았고, 문맹이었던 평신도들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평신도들 중에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실제로 글을 해독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낮았지만 소리 내어 읽는 음독音讀이 일상화되기 시작했기에 출판물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교육과 설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는 데 기여한 한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술적인 것으로 금속활자의 발견으로 인한 인쇄술의 혁신이다. 비록 아시아에서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유럽에서는 15세기에 이르러 최초로 가능하게 되었다. 인쇄술은 전보다 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있는 사람이 루터의 설교에 관해, 또 그가 한 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인쇄된 글들은 이전의 사본들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었는데 이것 또한 사람들의 글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다인쇄의 초판은 언제나 비쌌지만 한 번 판이 짜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싼 가격에 계속 인쇄할 수 있었다.
인문주의 운동의 영향
교육에 대한 강조와 설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능하게 했던 나머지 한 요소는 지적인 변화, 즉 인문주의 운동이었다. 인문주의는 이제까지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정의되어 왔으나 최근 들어 철학이 아니라 교육적 운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인문주의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교육학적 혁명이다. 인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주의가 반격을 가한 당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콜라적 변증법혹은 학교에서 토론하는 방식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중세의 교육방법론은 권위를 배우는 것과 그 권위를 사용하여 토론하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학교육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해석을 수집한 교과서에 집중되었고, 학생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가늠하여 논쟁하는 것을 배웠다. 이 방법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성경 본문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에 많은 교부들과 학자들의 권위 있는 인용문이 둘러싸인 성경이다. 이 인용문들은 신학에서 어떤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일치할 필요는 없었다. 각 인용문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다른 견해들과 어떻게 들어맞는지에 따라서 평가되었으며, 학생들은 제롬과 암브로시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혹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다른 철학자들의 인용문을 수집했다. 그 후 논리적으로나 철학적인 의미에서나 가장 진실했다고 증명되는 학생이 토론의 승자가 되었다. 이것이 중세의 교육방법이었다.
그러나 설교가 목적이라면 주석이 달린 성경은 다른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설교의 목적은 가장 진실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교화가 될 만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거룩하고 참된 것이기에 어떤 것이든지 설교 본문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크리소스토무스가 이 구절에 대해서 한 가지를 말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크리소스토무스와는 상반되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말이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영적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교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헌신 혹은 도덕적 실천에 덕을 끼칠 수 있는 생각을 주는 것이지 성경 본문의 정확한 의미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지나간 교수 방법을 지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보았다.
인문주의자들은 먼저 언어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중세교회의 라틴어가 매우 형편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더 나은 것을 원했고 결국 언어 상태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고대 라틴어 고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라틴어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되었고, 고대 헬라어 문서들을 읽기 위해 헬라어를 배우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히브리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인문주의 학자들은 한두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더 성경의 원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 학자들조차도 헬라어를 몰랐고 히브리어는 더더욱 몰랐다. 그러나 인문주의자들은 고전 라틴어는 물론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문법책과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일했고, 원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중세 교육 실제를 바꾸는 첫 번째 주요 변화였다. 오래된 교과서들은 폐기되었고, 학생들은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원전으로 읽게 되었다.
인문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두 번째 큰 변화는 교수방법에 있었다. 어떤 것이 더 진실한지를 증명할 수 있는 논쟁을 위해서 인용문들을 배우는 대신 인문주의자들은 직접 보여주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진리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인문주의자들은 도덕성에 무척 관심이 있었으며, 보통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문맹이거나 반문맹에 해당하는 보통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전통적인 스콜라적 변증법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스콜라적 논쟁들은 단순한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논쟁들은 실제로 보통 교인들에게 구체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다.
인문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이 있을 때 그들을 설득해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교육방법은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설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행동하게 만들었다면, 인문주의자들에겐 그 설교자가 학문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증명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인문주의자들에게 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이 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지 수학적인 증명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신학자들은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확신시키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목사들은 사람들을 권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이것이 캘빈이 설교자가 된 당시 상황이었다.
1. 성경을 원어로 읽기 시작함
많은 인문주의자들이 개신교도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인문주의에 영향을 받아 성경과 설교를 이해하는 방식이 중세의 전통과는 사뭇 달라졌다. 이들에 따르면 원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경을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읽는 것으로써 성경 본문을 둘러싸고 있던 주석을 제거함으로 성경 본문 자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스콜라주의의 해석을 버린다고 해서 성경을 읽기만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문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지성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잘 교육받아야 하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주석을 하려면 단어를 정의하는 사전 외에도 성경 본문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역사적 문서를 알아야 한다. 성경 본문의 상황을 설명해준다는 것은 로마시민권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알아 바울이 자신의 지위에 관해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시며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게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학자들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지의 지리에 관해 쓴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인문주의로 교육을 받은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말씀들이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때로 히브리어 단어가 분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본문 자체가 문자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개혁자들이 문자주의자였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 본문은 분명한 뜻이 있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영적으로 연결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본문이 상충되는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개신교도들은 사전, 역사, 그리고 또 다른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적 단어들의 단순한 의미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2.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인정함
성경에 대한 개신교의 이해를 결정지운 두 번째 요소는 성경은 구원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권위라는 생각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에도 이러한 생각이 있었지만 성경은 여러 가지 권위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권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만큼의 권위를 가진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구전들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오직 교회만이 어떤 것이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본으로 돌아간 인문주의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교회가 말해온 것들이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또 이들은 교회가 성경에 있지 않은 것을 첨가하면서 그것들이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가르쳤음도 발견했다. 개신교도들은 성경이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권위이며,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인간이나 기관도 인간의 구원에 관한 성경의 진리에 아무것도 첨가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인문주의가 설교에 끼친 영향
성경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권위라는 생각은 개신교 설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세 설교는 성경뿐 아니라 교회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었다. 설교자들은 성경 구절을 설명하면서 영적 교화를 위해 특정 주해를 고르거나 다른 선택을 했다. 즉 사도신경, 일곱 가지 악한 죄seven deadly sins, 혹은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seven acts of mercy의 내용들을 설교하거나 교구민들에게 어떻게 고해성사에 임할 것인지, 미사에서 어떻게 경건하게 행동해야 하는지, 금식은 어떻게 하는지, 고해성사를 하고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강론했다. 또한 종 혹은 주인, 아내 혹은 자녀로서 자신의 직무를 어떻게 합당하게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중세교회 설교자들은 성인에 대해 특별히 마리아에 대해 설교하면서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가르칠 수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 혹은 목회자에게 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자들이 이미 행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베풀 기적에 대해 가르쳤다.
이러한 설교 내용 중 일부, 즉 사도신경을 가르치는 것은 개신교도들도 이어받았다. 사도신경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전통적인 주제에 따른 많은 중세 설교들이 성경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개신교도들은 모든 설교는 성경 자체의 본문에 근거해야 하며 그것의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개신교 설교자들은 중세 설교자들과 는 다른 설교 방법을 배워야 했다. 개신교 설교자와 중세 설교자 사이의 확실한 차이는 설교 자료에 대한 생각이다. 개신교 설교자들은 설교는 성경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신교 설교자들은 교리문답에 관한 설교를 제외한 모든 설교는 단순히 성경 구절과 연관된 교화적인 내용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밀착하여 구절구절의 의미를 설명하는 식의 강해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개신교도들이 설교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하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했지만 설교할 본문을 선택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루터교도들 중 일부는, 많은 첨삭이 있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설교를 위한 1년치 성구집lectionary을 계속 사용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일부분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설교할 성경의 순서를 정하고 처음부터 구절구절 설교해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청중들은 매번 전체적인 맥락에서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을 “계속읽기”lectio continua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캘빈이 설교한 방식이다.
제네바 최고의 설교자 캘빈
캘빈은 처음부터 목사나 설교자가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사실 캘빈의 타고난 성품은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조용한 학자가 어울린다. 그가 제네바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에는 공적인 사역에 대한 그의 주저함이 잘 나타나 있다. 윌리엄 파렐William Farel은 그런 캘빈에게 공적 사역이 캘빈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시켰다. 처음에 캘빈은 성경을 가르쳤으며, 곧 설교도 하게 되었다.
루터의 경우 비록 매주는 아니지만 수시로 설교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 대부분은 교수였고 교구목사로는 몇 년 만 봉사했다. 한편 캘빈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교수면서 목사였는데 아플 때나 교회를 위해 특정 사명을 가지고 출장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설교의 정규 스케줄을 어기지 않았던 제네바 최고의 설교자였다.
1. 캘빈의 설교 스케줄
보통 그는 매주 두 번, 즉 아침과 오후에 설교했다. 주중에는 매일 격주그가 성경 강의를 하지 않을 때로 설교했다. 보통 캘빈은 성 피에르St. Pierre 교회의 설교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전 생애 동안 세 개 교구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주일 아침에는 항상 성 피에르교회에서 설교했고, 오후에는 적어도 처음 몇 년 동안 강 건너에 있던 성 제베 St. Gervais교회에서 설교했다. 이때 성 피에르교회에서는 다른 설교자가 설교했다.
성 피에르교회는 큰 빌딩으로 대부분 주중 예배 때는 교회가 차지 않았다. 그러므로 도시의 오래되고 중심 부분에 있는 성 피에르와 성 맥델리인St. Magdeleine 교구는 공생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 교구에 속한 교인들은 교리문답 수업과 성만찬시를 제외하고는 어느 교회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예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 한 번 제네바 중심가에서의 예배는 충분했고,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던 기도의 날인 수요일 예배를 제외한 매일 예배는 성 맥델리인 교회에 모이는 것으로 충분했다맥델리인교회는 세 교회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역자 주.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제네바에는 주일날 예배가 네 번, 주중 예배가 한두 번 있었다. 캘빈의 설교 스케줄은 보통 성 피에르와 성 맥델리인교회를 중심으로 짜여 있었는데, 주일 아침 8시에 성 피에르교회, 오후 3시에는 성 제베교회에서 설교했다. 1553년경 이후에는 오후에도 성 피에르교회에서 설교했다. 주중 예배가 드려지는 월, 화, 목, 금, 토요일에는 성 맥델리인에서 설교했는데 겨울에는 아침 7시에 예배가 시작되었고 여름에는 아침 6시에 시작되었다. 수요일에는 기도의 날 특별기도 예배로 성 피에르 교회에서 아침 8시에 모였다. 1559년 중반에는 종교난민들의 유입으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여 주중 예배도 성 피에르교회에서 드려야 했기 때문에 캘빈은 성 피에르교회에서 주일 예배와 주중 예배 설교를 했다.
2. 캘빈의 설교 형태
우리가 기록을 갖고 있는 기간의 설교에 의하면 캘빈은 주일에는 신약 혹은 시편을 설교했고, 주중에는 구약, 때로는 시편을 설교했다. 비록 어떤 때는 1550년대 초반처럼 아침에는 사도행전, 오후에는 시편을 강해하기도 했지만 생애 후반부에는 주일 아침과 오후에 같은 책으로 설교했다. 캘빈의 설교 형태는 “계속읽기”였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구절들을 설명하는 설교였다. 그러나 성탄절 전후 주일이나 부활절 전주와 같은 특별한 주일에는 강해 시리즈를 중단하고 그리스도의 탄생, 고난, 승천, 성령강림 등을 다루었다.
캘빈은 헬라어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을 강단에 가지고 올라가 한 시간 동안 최대한 구절들을 번역하면서 설교했다. 구약의 경우 설교 본문은 보통 5~9절 정도였지만 두 절의 본문으로 행한 설교도 두 편예를 들어 십계명 중 하나 있고, 한 번은 훨씬 더 많은 구절을 가지고 설교하기도 했다. 신약의 경우 몇 구절만 가지고도 여러 개의 설교가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번에 2~5절 정도씩 다루었다. 캘빈은 회중들이 가르침과 적용을 이해할 때까지 필요한 것에 대해 설명했다.
3. 캘빈의 설교 신학
설교의 신학은 캘빈의 주석에 나타난 것과 같다. 그러나 학문적인 세부 사항과 적용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의 설교들은 주석에서 설명한 의미를 제공하지만 헬라어나 히브리어 단어들, 혹은 강의나 주석에서 발견되는 주석의 역사나 학문적인 논쟁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캘빈은 결코 그가 아는 것들을 자랑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석에서는 독자들이 어려워하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주석의 독자들은 대개 목사들이었는데 그들은 신앙을 수호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문제가 되는 논쟁을 잘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에서는 회중들을 위해 목회적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다루었다. 캘빈은 항상 실제적 혹은 실천적practical 설교가였다. 또 같은 본문을 놓고 볼 때 그의 설교는 주석보다 훨씬 긴데 그 이유는 회중들에게 가르침이 적용되려면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캘빈의 성경 해석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항상 원문을 읽고 그것을 충실하게 설명한 후 독자나 청중들이 믿고 행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고 동기부여를 하며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캘빈은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설명한 후에 반복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적용을 첨가하고 있다.
4. 캘빈의 설교 실제
캘빈의 설교를 직접 읽지 않고서 그의 설교를 온전히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창세기 21: 33~22:2까지에 나타난 아브라함에 대한 강해설교에서 두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하겠다. 이 본문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전에 아브라함이 겪었던 많은 시험을 묘사한다. 첫 번째 인용문은 설교의 초반부인데 캘빈은 회중들에게 당일의 설교가 어제 설교와 연속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떻게 그랄의 왕아비멜렉에게 공물을 주었는지 보았습니다. 이제 모세는 평화로움을 맛보며 엄숙하게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의지로 그 땅을 다스리는 자에게 자신을 복종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도록 강요받거나 몰리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구받기 전에 스스로 한 것입니다.1
캘빈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약속되어진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당한 방황과 고통을 말하고 있다. 당시 캘빈은 제네바에 살고 있던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남의 나라에 체류하는 자들의 상황에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캘빈은 이 메시지를 자신의 회중들에게 적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로부터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몸과 영혼에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 고통이 끝나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를 전보다 더한 강도로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강하게 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수십만 배 더한 절망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 지금 아브라함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단순히 우리로 하여금 그의 덕목들에 존경을 표하고 그것들을 찬양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너무 허약해지지 않도록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이끌리도록 유순하게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다스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애착들은 죽어져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취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2
캘빈의 설교를 통해 캘빈은 인생을 불행한 것으로 생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이유를 어떻게 그의 회중들에게 설명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시험을 견딜 때 하나님이 어떻게 믿는 자들을 강하게 하시는지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타진하고 시험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인내하면서 또 사탄과 세상의 모든 공격에 용맹하게 대항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경험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더 큰 확신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가 생길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우리의 피난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유지될 것이며 끝 날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약해봅시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 안에 넣어주신 은사들이 사용되어 그의 능력, 권세, 선하심과 지혜로우심이 사람들 가운데 드러나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실 영화를 받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그에게 드릴 때 그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3
캘빈은 성경 본문이 자신과 회중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제네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끔찍한 시험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의 시험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 설교를 들으면 그들은 자신들이 시험을 견디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되는지, 또 자신들이 견디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캘빈 설교의 예로서 구약 설교를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을 설교하는 것은 개혁주의캘빈을 따르는 전통-역자주 전통의 독특한 표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전통 교회처럼 신약성경에 집중했는데 개혁주의 전통은 구약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에 집중했다. 시편 강해와 십계명 설교는 캘빈의 설교들 중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것들이다. 신명기와 욥기 설교는 목회서신과 에베소서 그리고 공관복음의 일부와 함께 그의 생전에 인쇄되었다.
캘빈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유일한 권위인 성경을 강해한 개신교 설교자였다. 또한 캘빈은 성경의 정경성과 성경의 모든 책을 구절구절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개혁주의 설교자였다. 캘빈은 주석가로서 신학자로서 특별한 은사를 가진 설교자였기에 그의 설교의 내용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캘빈은 설교의 상당량이 설교한 그대로 보관된 매우 특별한 설교자다. 이 사실은 이전 역사에서도 그렇고 당시 다른 개혁자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설교는 캘빈이 목사로서 한 중요한 일들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의 성경 연구의 열매로서 매일 매일 회중들을 목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유명한 개혁자를 목사로 설교자로 기억해야 한다. 그는 매일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까지 성경 전체의 책을 다루되 구절구절을 해석하면서 그것들을 보통 사람들의 교육과 교화에 적용시킨 설교자였다.
* 번역: 이정숙(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회사 교수)
1. Elsie Anne McKee ed., trans. John Calvin: Writings on Pastoral Piety (Mahweh, NJ: Paulist Press, 2001), 137.
2. 앞의 책, 144.
3. 앞의 책, 145.
엘시 A. 맥키 | 20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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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 A. 맥키 프린스톤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개신교 목사가 된다는 것은 설교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목사와 설교자가 항상 동일시되지는 않았다. 사실 개신교 종교개혁 이전 서구 유럽의 교회는 수세기 동안 목회자의 주요 업무가 성례를 집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제가 설교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정도였다. 물론 중세 후기에는 더 많은 사제들에게 가끔씩 설교가 맡겨졌지만 그때에도 교구 목회자의 업무 내용으로 설교 능력이 요구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설교가 목회자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중요한 변화였다. 이 논문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중세와 근대 초기 상황을 스케치하고, 그 다음에 설교에서 개신교적인 변화를 소개한 후 설교자 존 캘빈을 논하겠다.
개신교 설교 목사의 출현
개신교 설교 목사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중세 교회가 이단이라고 불렀던 왈도파, 롤라드파 혹은 또 다른 무리들은 교구 사제들도 설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성경을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도들이 처음으로 설교가 목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설교자로서 목사의 역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었다.
그 이유로는 전반적으로 교육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많아졌음을 들 수 있다. 더 많은 수의 평신도들이 글을 읽게 되고, 목회자들이 더 잘 교육받게 되면서 목회자와 평신도 둘 다의 기대가 높아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식한 목회자에게 만족할 수 없게 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위해 더 많이 배우기 원했다. 교회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을 기대하게 되었다. 목회자들은 더 많이 교육받았고, 문맹이었던 평신도들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평신도들 중에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실제로 글을 해독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낮았지만 소리 내어 읽는 음독音讀이 일상화되기 시작했기에 출판물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교육과 설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는 데 기여한 한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술적인 것으로 금속활자의 발견으로 인한 인쇄술의 혁신이다. 비록 아시아에서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유럽에서는 15세기에 이르러 최초로 가능하게 되었다. 인쇄술은 전보다 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있는 사람이 루터의 설교에 관해, 또 그가 한 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인쇄된 글들은 이전의 사본들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었는데 이것 또한 사람들의 글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다인쇄의 초판은 언제나 비쌌지만 한 번 판이 짜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싼 가격에 계속 인쇄할 수 있었다.
인문주의 운동의 영향
교육에 대한 강조와 설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능하게 했던 나머지 한 요소는 지적인 변화, 즉 인문주의 운동이었다. 인문주의는 이제까지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정의되어 왔으나 최근 들어 철학이 아니라 교육적 운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인문주의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교육학적 혁명이다. 인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주의가 반격을 가한 당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콜라적 변증법혹은 학교에서 토론하는 방식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중세의 교육방법론은 권위를 배우는 것과 그 권위를 사용하여 토론하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학교육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해석을 수집한 교과서에 집중되었고, 학생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가늠하여 논쟁하는 것을 배웠다. 이 방법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성경 본문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에 많은 교부들과 학자들의 권위 있는 인용문이 둘러싸인 성경이다. 이 인용문들은 신학에서 어떤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일치할 필요는 없었다. 각 인용문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다른 견해들과 어떻게 들어맞는지에 따라서 평가되었으며, 학생들은 제롬과 암브로시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혹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다른 철학자들의 인용문을 수집했다. 그 후 논리적으로나 철학적인 의미에서나 가장 진실했다고 증명되는 학생이 토론의 승자가 되었다. 이것이 중세의 교육방법이었다.
그러나 설교가 목적이라면 주석이 달린 성경은 다른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설교의 목적은 가장 진실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교화가 될 만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거룩하고 참된 것이기에 어떤 것이든지 설교 본문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크리소스토무스가 이 구절에 대해서 한 가지를 말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크리소스토무스와는 상반되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말이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영적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교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헌신 혹은 도덕적 실천에 덕을 끼칠 수 있는 생각을 주는 것이지 성경 본문의 정확한 의미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지나간 교수 방법을 지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보았다.
인문주의자들은 먼저 언어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중세교회의 라틴어가 매우 형편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더 나은 것을 원했고 결국 언어 상태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고대 라틴어 고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라틴어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되었고, 고대 헬라어 문서들을 읽기 위해 헬라어를 배우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히브리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인문주의 학자들은 한두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더 성경의 원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 학자들조차도 헬라어를 몰랐고 히브리어는 더더욱 몰랐다. 그러나 인문주의자들은 고전 라틴어는 물론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문법책과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일했고, 원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중세 교육 실제를 바꾸는 첫 번째 주요 변화였다. 오래된 교과서들은 폐기되었고, 학생들은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원전으로 읽게 되었다.
인문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두 번째 큰 변화는 교수방법에 있었다. 어떤 것이 더 진실한지를 증명할 수 있는 논쟁을 위해서 인용문들을 배우는 대신 인문주의자들은 직접 보여주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진리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인문주의자들은 도덕성에 무척 관심이 있었으며, 보통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문맹이거나 반문맹에 해당하는 보통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전통적인 스콜라적 변증법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스콜라적 논쟁들은 단순한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논쟁들은 실제로 보통 교인들에게 구체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다.
인문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이 있을 때 그들을 설득해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교육방법은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설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행동하게 만들었다면, 인문주의자들에겐 그 설교자가 학문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증명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인문주의자들에게 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이 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지 수학적인 증명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신학자들은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확신시키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목사들은 사람들을 권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이것이 캘빈이 설교자가 된 당시 상황이었다.
1. 성경을 원어로 읽기 시작함
많은 인문주의자들이 개신교도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인문주의에 영향을 받아 성경과 설교를 이해하는 방식이 중세의 전통과는 사뭇 달라졌다. 이들에 따르면 원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경을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읽는 것으로써 성경 본문을 둘러싸고 있던 주석을 제거함으로 성경 본문 자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스콜라주의의 해석을 버린다고 해서 성경을 읽기만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문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지성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잘 교육받아야 하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주석을 하려면 단어를 정의하는 사전 외에도 성경 본문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역사적 문서를 알아야 한다. 성경 본문의 상황을 설명해준다는 것은 로마시민권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알아 바울이 자신의 지위에 관해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시며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게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학자들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지의 지리에 관해 쓴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인문주의로 교육을 받은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말씀들이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때로 히브리어 단어가 분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본문 자체가 문자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개혁자들이 문자주의자였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 본문은 분명한 뜻이 있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영적으로 연결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본문이 상충되는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개신교도들은 사전, 역사, 그리고 또 다른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적 단어들의 단순한 의미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2.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인정함
성경에 대한 개신교의 이해를 결정지운 두 번째 요소는 성경은 구원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권위라는 생각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에도 이러한 생각이 있었지만 성경은 여러 가지 권위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권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만큼의 권위를 가진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구전들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오직 교회만이 어떤 것이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본으로 돌아간 인문주의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교회가 말해온 것들이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또 이들은 교회가 성경에 있지 않은 것을 첨가하면서 그것들이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가르쳤음도 발견했다. 개신교도들은 성경이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권위이며,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인간이나 기관도 인간의 구원에 관한 성경의 진리에 아무것도 첨가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인문주의가 설교에 끼친 영향
성경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권위라는 생각은 개신교 설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세 설교는 성경뿐 아니라 교회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었다. 설교자들은 성경 구절을 설명하면서 영적 교화를 위해 특정 주해를 고르거나 다른 선택을 했다. 즉 사도신경, 일곱 가지 악한 죄seven deadly sins, 혹은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seven acts of mercy의 내용들을 설교하거나 교구민들에게 어떻게 고해성사에 임할 것인지, 미사에서 어떻게 경건하게 행동해야 하는지, 금식은 어떻게 하는지, 고해성사를 하고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강론했다. 또한 종 혹은 주인, 아내 혹은 자녀로서 자신의 직무를 어떻게 합당하게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중세교회 설교자들은 성인에 대해 특별히 마리아에 대해 설교하면서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가르칠 수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 혹은 목회자에게 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자들이 이미 행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베풀 기적에 대해 가르쳤다.
이러한 설교 내용 중 일부, 즉 사도신경을 가르치는 것은 개신교도들도 이어받았다. 사도신경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전통적인 주제에 따른 많은 중세 설교들이 성경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개신교도들은 모든 설교는 성경 자체의 본문에 근거해야 하며 그것의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개신교 설교자들은 중세 설교자들과 는 다른 설교 방법을 배워야 했다. 개신교 설교자와 중세 설교자 사이의 확실한 차이는 설교 자료에 대한 생각이다. 개신교 설교자들은 설교는 성경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신교 설교자들은 교리문답에 관한 설교를 제외한 모든 설교는 단순히 성경 구절과 연관된 교화적인 내용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밀착하여 구절구절의 의미를 설명하는 식의 강해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개신교도들이 설교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하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했지만 설교할 본문을 선택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루터교도들 중 일부는, 많은 첨삭이 있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설교를 위한 1년치 성구집lectionary을 계속 사용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일부분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설교할 성경의 순서를 정하고 처음부터 구절구절 설교해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청중들은 매번 전체적인 맥락에서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을 “계속읽기”lectio continua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캘빈이 설교한 방식이다.
제네바 최고의 설교자 캘빈
캘빈은 처음부터 목사나 설교자가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사실 캘빈의 타고난 성품은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조용한 학자가 어울린다. 그가 제네바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에는 공적인 사역에 대한 그의 주저함이 잘 나타나 있다. 윌리엄 파렐William Farel은 그런 캘빈에게 공적 사역이 캘빈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시켰다. 처음에 캘빈은 성경을 가르쳤으며, 곧 설교도 하게 되었다.
루터의 경우 비록 매주는 아니지만 수시로 설교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 대부분은 교수였고 교구목사로는 몇 년 만 봉사했다. 한편 캘빈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교수면서 목사였는데 아플 때나 교회를 위해 특정 사명을 가지고 출장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설교의 정규 스케줄을 어기지 않았던 제네바 최고의 설교자였다.
1. 캘빈의 설교 스케줄
보통 그는 매주 두 번, 즉 아침과 오후에 설교했다. 주중에는 매일 격주그가 성경 강의를 하지 않을 때로 설교했다. 보통 캘빈은 성 피에르St. Pierre 교회의 설교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전 생애 동안 세 개 교구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주일 아침에는 항상 성 피에르교회에서 설교했고, 오후에는 적어도 처음 몇 년 동안 강 건너에 있던 성 제베 St. Gervais교회에서 설교했다. 이때 성 피에르교회에서는 다른 설교자가 설교했다.
성 피에르교회는 큰 빌딩으로 대부분 주중 예배 때는 교회가 차지 않았다. 그러므로 도시의 오래되고 중심 부분에 있는 성 피에르와 성 맥델리인St. Magdeleine 교구는 공생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 교구에 속한 교인들은 교리문답 수업과 성만찬시를 제외하고는 어느 교회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예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 한 번 제네바 중심가에서의 예배는 충분했고,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던 기도의 날인 수요일 예배를 제외한 매일 예배는 성 맥델리인 교회에 모이는 것으로 충분했다맥델리인교회는 세 교회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역자 주.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제네바에는 주일날 예배가 네 번, 주중 예배가 한두 번 있었다. 캘빈의 설교 스케줄은 보통 성 피에르와 성 맥델리인교회를 중심으로 짜여 있었는데, 주일 아침 8시에 성 피에르교회, 오후 3시에는 성 제베교회에서 설교했다. 1553년경 이후에는 오후에도 성 피에르교회에서 설교했다. 주중 예배가 드려지는 월, 화, 목, 금, 토요일에는 성 맥델리인에서 설교했는데 겨울에는 아침 7시에 예배가 시작되었고 여름에는 아침 6시에 시작되었다. 수요일에는 기도의 날 특별기도 예배로 성 피에르 교회에서 아침 8시에 모였다. 1559년 중반에는 종교난민들의 유입으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여 주중 예배도 성 피에르교회에서 드려야 했기 때문에 캘빈은 성 피에르교회에서 주일 예배와 주중 예배 설교를 했다.
2. 캘빈의 설교 형태
우리가 기록을 갖고 있는 기간의 설교에 의하면 캘빈은 주일에는 신약 혹은 시편을 설교했고, 주중에는 구약, 때로는 시편을 설교했다. 비록 어떤 때는 1550년대 초반처럼 아침에는 사도행전, 오후에는 시편을 강해하기도 했지만 생애 후반부에는 주일 아침과 오후에 같은 책으로 설교했다. 캘빈의 설교 형태는 “계속읽기”였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구절들을 설명하는 설교였다. 그러나 성탄절 전후 주일이나 부활절 전주와 같은 특별한 주일에는 강해 시리즈를 중단하고 그리스도의 탄생, 고난, 승천, 성령강림 등을 다루었다.
캘빈은 헬라어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을 강단에 가지고 올라가 한 시간 동안 최대한 구절들을 번역하면서 설교했다. 구약의 경우 설교 본문은 보통 5~9절 정도였지만 두 절의 본문으로 행한 설교도 두 편예를 들어 십계명 중 하나 있고, 한 번은 훨씬 더 많은 구절을 가지고 설교하기도 했다. 신약의 경우 몇 구절만 가지고도 여러 개의 설교가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번에 2~5절 정도씩 다루었다. 캘빈은 회중들이 가르침과 적용을 이해할 때까지 필요한 것에 대해 설명했다.
3. 캘빈의 설교 신학
설교의 신학은 캘빈의 주석에 나타난 것과 같다. 그러나 학문적인 세부 사항과 적용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의 설교들은 주석에서 설명한 의미를 제공하지만 헬라어나 히브리어 단어들, 혹은 강의나 주석에서 발견되는 주석의 역사나 학문적인 논쟁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캘빈은 결코 그가 아는 것들을 자랑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석에서는 독자들이 어려워하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주석의 독자들은 대개 목사들이었는데 그들은 신앙을 수호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문제가 되는 논쟁을 잘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에서는 회중들을 위해 목회적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다루었다. 캘빈은 항상 실제적 혹은 실천적practical 설교가였다. 또 같은 본문을 놓고 볼 때 그의 설교는 주석보다 훨씬 긴데 그 이유는 회중들에게 가르침이 적용되려면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캘빈의 성경 해석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항상 원문을 읽고 그것을 충실하게 설명한 후 독자나 청중들이 믿고 행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고 동기부여를 하며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캘빈은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설명한 후에 반복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적용을 첨가하고 있다.
4. 캘빈의 설교 실제
캘빈의 설교를 직접 읽지 않고서 그의 설교를 온전히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창세기 21: 33~22:2까지에 나타난 아브라함에 대한 강해설교에서 두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하겠다. 이 본문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전에 아브라함이 겪었던 많은 시험을 묘사한다. 첫 번째 인용문은 설교의 초반부인데 캘빈은 회중들에게 당일의 설교가 어제 설교와 연속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떻게 그랄의 왕아비멜렉에게 공물을 주었는지 보았습니다. 이제 모세는 평화로움을 맛보며 엄숙하게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의지로 그 땅을 다스리는 자에게 자신을 복종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도록 강요받거나 몰리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구받기 전에 스스로 한 것입니다.1
캘빈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약속되어진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당한 방황과 고통을 말하고 있다. 당시 캘빈은 제네바에 살고 있던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남의 나라에 체류하는 자들의 상황에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캘빈은 이 메시지를 자신의 회중들에게 적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로부터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몸과 영혼에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 고통이 끝나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를 전보다 더한 강도로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강하게 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수십만 배 더한 절망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 지금 아브라함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단순히 우리로 하여금 그의 덕목들에 존경을 표하고 그것들을 찬양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너무 허약해지지 않도록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이끌리도록 유순하게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다스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애착들은 죽어져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취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2
캘빈의 설교를 통해 캘빈은 인생을 불행한 것으로 생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이유를 어떻게 그의 회중들에게 설명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시험을 견딜 때 하나님이 어떻게 믿는 자들을 강하게 하시는지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타진하고 시험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인내하면서 또 사탄과 세상의 모든 공격에 용맹하게 대항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경험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더 큰 확신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가 생길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우리의 피난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유지될 것이며 끝 날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약해봅시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 안에 넣어주신 은사들이 사용되어 그의 능력, 권세, 선하심과 지혜로우심이 사람들 가운데 드러나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실 영화를 받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그에게 드릴 때 그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3
캘빈은 성경 본문이 자신과 회중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제네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끔찍한 시험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의 시험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 설교를 들으면 그들은 자신들이 시험을 견디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되는지, 또 자신들이 견디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캘빈 설교의 예로서 구약 설교를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을 설교하는 것은 개혁주의캘빈을 따르는 전통-역자주 전통의 독특한 표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전통 교회처럼 신약성경에 집중했는데 개혁주의 전통은 구약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에 집중했다. 시편 강해와 십계명 설교는 캘빈의 설교들 중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것들이다. 신명기와 욥기 설교는 목회서신과 에베소서 그리고 공관복음의 일부와 함께 그의 생전에 인쇄되었다.
캘빈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유일한 권위인 성경을 강해한 개신교 설교자였다. 또한 캘빈은 성경의 정경성과 성경의 모든 책을 구절구절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개혁주의 설교자였다. 캘빈은 주석가로서 신학자로서 특별한 은사를 가진 설교자였기에 그의 설교의 내용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캘빈은 설교의 상당량이 설교한 그대로 보관된 매우 특별한 설교자다. 이 사실은 이전 역사에서도 그렇고 당시 다른 개혁자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설교는 캘빈이 목사로서 한 중요한 일들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의 성경 연구의 열매로서 매일 매일 회중들을 목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유명한 개혁자를 목사로 설교자로 기억해야 한다. 그는 매일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까지 성경 전체의 책을 다루되 구절구절을 해석하면서 그것들을 보통 사람들의 교육과 교화에 적용시킨 설교자였다.
* 번역: 이정숙(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회사 교수)
1. Elsie Anne McKee ed., trans. John Calvin: Writings on Pastoral Piety (Mahweh, NJ: Paulist Press, 2001), 137.
2. 앞의 책, 144.
3. 앞의 책, 145.
엘시 A. 맥키 | 20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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