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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목회서신 강해, 존 칼빈

목회서신 강해, 존 칼빈, 김동현역, 서울:지평서원, 2000.
 
설교 1 모든 인간의 구원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3-5)

p.11.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전에 한 민족에게만 주어졌던 약속이 지금은 온 세상으로 넓혀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 서한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
벽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을 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차별을
거두어 버리셨습니다.
 

이방인에게도 복음은 전해져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포옹하시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정기간에만 사용하려고 제정했던 그 제도가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우리 모두는 마땅히 저주를 받을 것이고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나타내는 표적이나 증거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 선조들처럼 더 이상 그 약속에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의 구세주가 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도록 권유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민족에 대해서 말하듯이 모든 계층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왕과 장관들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아버지와 같은 선하심을 우리 자신에게만 제한해서도 안되고 어떤
특정한 수의 민족에게 제한해서도 안됩니다.......(p.12) 말을 더 계속하기 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무효화하고 그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려고 노력하는 자들, 즉 사도
바울이 한 이 말을 남용하는 자들의 어리석음, 아니 그 야만성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p.13)그들의 말은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일정한 수의 사람만을 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자기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내버려 두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오는지 아닌지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시다가 모든 자를 받아들이시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그들은 우리의 구원의
기반을 파괴해 버립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매우 가증스럽기 때문에 구원을 상속받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성에 있어 매우 상반되는 점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게는 매우 적대적이어서
반항만 하는 한편 악과 불의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선한 생각을 품기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끌어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복음서에서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신 그 구원의 동참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으로 이끄시는지 또는 그렇지 않으신지 알아봅시다.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 6:44)고 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을 이끌어 내어 복음을 믿고 진실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결론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은 택하시고 저 사람은 내버려두십니까? (p.14)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로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에게
비록 다소 귀중한 것이 있더라도 자기 동료에게 앞설 만한 그 무엇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창조하기 전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는 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이 사람이 저 사람에 앞서서 선택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공정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철두철미 성경에서 완전히 입증된 그것을 받아들입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사용된 허구적인 이성의 그늘에서 우리
자신이 잘못 인도되어 길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언뜻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실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믿음 안에서 깨달음을 받고 구원에 동참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사도 바울의 글을 단지 세 줄만
읽어보아도 사도 바울은 여기서 모든 사람(우리가 이미 보여 주었던
바와 같이 )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모든 민족과
모든 계층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p.16)그런데 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은 영원하다고
합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매우 유익한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귀중하기 때문에 복음을 알도록 부름을 받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깨닫게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것이 우리에게 하나도 없다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저주받은 아담의 후손이고 똑같은 저주를 받게 되어 있으며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불신앙의 어둠에서 끌어내어 우리에게 복음의 빛을 주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했던 봉사나 우리가 지니고 있는 어떤 미덕도 보지
않으시고 다만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지시한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영광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는 자의 부름은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으며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뜻하셨음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p.17)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를 감화시켜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접목시키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양자가 된 참 증거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생명의 유업이 그에게 속해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시기 위해 주신 보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증거 하셨기 때문에 무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으나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지체가 되도록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선택의 교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들의 공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발견하신 미덕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 우리가 선과 악을 행할 수 있기 전에 하신 선택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 원리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택하신 자를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
 

불변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에 대한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빼앗아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29).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고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 중에서 아무도
버리지 않고 구원하고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힘과 권능을 (p18)행사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는 기쁨을 능가하지 않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고 확정짓는 참된 근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와 같이 사단의 먹이가 된 자들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전
생애와 사망 후에 대하여 어떤 보장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가
복음을 믿게끔 불러 모으셨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유
선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p.19)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이 이해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상상하느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과 뜻에 관하여 말할 때 사람이 자기 자신의 행동으로 혼자 배워서 회개할 수 있는지
혹은 그것을 주는 이가 하나님이신지 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모든 사람이 돌이켜 살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이킬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는 것보다도 더 큰 능력일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처음에서 끝까지 기록되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교리입니다.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겔 11:19). 간단히 말하자면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하나님만이 우리를 돌이킬 수 있으며 우리를 그런 방법으로
택하셨으니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를 끌어 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이와 같은 믿음과 천사들 자신도 숭상하는 복음 속에 있는 이 놀라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뚫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잘 살펴봅시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p.20)그것을 계시해
주십니다. 성경의 한 구절을 읽을 때면 사람은 본래 완전한 장님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장을 으레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에게로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신다는 사실로 보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29:4).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분별없이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그 은총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지체와
하나님의 양떼들에게만 내리십니다......(p.21)
 

부르심을 들었다면 마땅히 다가서야
 

하나님의 택하심을 피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남용해서도 안되고 우리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두 마음을 갖게 했다고 말해서도 안됩니다......(p.23)
 

복음은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능력
 

우리가 설령 다른 사람보다 더 귀하다고 할지라도 그들 앞에서 교만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를 택하시고 다른 사람과 구별해 놓으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덕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p.25)
 

구원을 의심치 않는 법을 배워야
 

그러므로 여기에 제시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으니 우리가 확실히
구원받은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법을 배웁시다.......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소수의
구주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제시합니다.......(p.26)
 

우리보다 더 멀리 있는 자 위해 기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권고 받은 바와 같이) 일반적인 사람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그 말은 모든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자들은 하나님에게로
데려오려고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시고 안아 주신다는 사실을
그 만큼 더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27)우리를 불러 주신 이 소명에 위로를 받고
분발합시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절망이 있고 완전히 버림받고 저주받은 비참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멀리 떠난 것처럼 보이는 자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시기를 참고 기다리면서 기도합시다.
 

설교 3 기도의 특권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2:8).
 

불필요한 논쟁은 발로 밟아라

p.58.

정말로 우리는 자신을 우리와 분리시키는 자들과 합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천주교도들은 자기들을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기도로 교제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는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자신들을 떼어 놓은 것을 보아 그들과
우리 사이는 함께 결합시키기에 너무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는 자는 다 도와 주어야 합니다. 서로 화합하여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 자신을
드립시다.
 

설교 5 경건의 비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3:16).
 

죄의 짐을 벗게 하신 유능한 변호인

p.97.

사도 바울은 그는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자주 '입증된'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받아 마땅한 영광을 받으시는 그리스도
 

그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의 뜻은 예수님이 정당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에 의하여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사람들이 재판관이 되고
예수님은 물음에 대답하는 그런 판결이 아닙니다.

그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의 뜻은 예수님이 받아 마땅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우리가 예수님은 정말로 실제 그대로의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교 6 증거할 소명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쫓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8-9).
 
 
하나님 공의 기준은 공정하신 섭리

p.111.

하나님은 모든 공의의 법칙이기도 한 당신의 공정하신 뜻에 의해서 움직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실 때는 우리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결코 조사해 보시지 않으시고 뜻을 세우셨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연유를 하나님 자신에게서 찾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뜻(purpose)이라는 이 낱말은 섭리를 나타낸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교만심 때문에 그들에게는 얼마간의 가치가 있다고 상상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찾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을
찾은 것은 뜻과 은혜(purpose and grace)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자유로운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가 어리석고 완악 하게 되지 않도록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하나님 자신 외에는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 이외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 아무
가치도 없는 우리를 위하여 순수한 은총과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시고 도와주시는 일에 흡족해 하고 계십니다. 더 확실한 증거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이 은혜는 창세 전에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구원은 자신의 덕택이며 또 하나님의 선하심을 (p.112)거절하거나
하나님을 만났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사람의 감각이 정말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매달려 있습니까? 창세 전에 이루어진 선택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 오기에 적합하게 창조되었으며 운명지어졌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자가 무슨 공로를 세웠는가?
 

우리가 지식과 분별력과 선한 욕망을 갖게 된 후에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구원은 이 세상의 어떤 부분도 창조되기 전에 있었던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우리를 부르시거나 나머지 세상과
분리시키실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흐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공로를 치켜세워 하나님께 접근할 준비가
되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면 우리는 놀랄 만큼 잘못 한 게 아닙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은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원리를
폐하려는 자들은 이 세상의 구원을 가능한 한 많이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손상시키며 복음을 무력하게 만들어
파괴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의 기억에서
(p.113)지워버리기 위하여 마귀가 사용하는 가장 적절한 도구입니다. 마귀에게 있어
예정설에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과 예정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분격하는 나머지 허락지
않으려는 자들보다 더 적절한 도구는 없습니다.

만약 천주교도들이 온 세상을 미신과 우상숭배로 오염시켜 성경을 모독하며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말소하고 깎아 내리기 때문에 우리가 천주교도들을
싫어한다면(실은 그들을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을 무력하게 만들고
간접적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그것에 대해서 또는 그것을 전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자들은 훨씬 더 많은 미움을 받아야 합니다.
 

창세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
 

믿는 자의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아무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고
다만 선하심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되기를 원하는 그 범위 안에서만 이룰 수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보여질 수 있고 선언되어질 수 있는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고난이 헛되고
또한 예수님의 속죄가 세상에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가는 사단과 공모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선택이 폐해지면 복음이 전파 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은
세속적인 복음이거나 마호멧의 교리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도 없고 기독교도
없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유념해야 합니다.

만약 이 교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여기서 말하는 성령도 거짓말쟁이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가 우리 구원의 (p.114)기초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만약 건물의 기초가 붕괴되면 어떻게 지을 수 있고 건물을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어떤 힘으로 싸워야 하며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값비싸게
산 이 유업에 어떻게 이르게 되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방법과 이 건물과 믿음을 완성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이나 어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 위가 아니라 창세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 위에 우리의 뿌리를 내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그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한일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려지고 희생의 가망이 전혀 없던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멸망의
함정에서 우리를 끌어내 주셨으니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빚을 진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지하고 그것으로 온전히
기뻐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세 전의 선택을 부인함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부인
 

만약 우리의 구원이 소멸되어 무용지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제가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이 기반을 굳건하게 붙잡읍시다. 이 교리는 만약 우리가 잘 이용할 수 있으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해
보지 못했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으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만약 우리가 모르면 어떻게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한 말, 즉 우리는 우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우리의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 덕분이며
하나님이 그것을 시작하였으며 우리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고백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입으로 그렇다고 말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으면 여기 기록된 것과 같이
위선에 불과할 것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예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하나님의 구원 교리는 온 세상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이고 철저히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둡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교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접해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늘
위장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늘 가려질
것이라는 뜻입니다.......(p.116)
 

자기 공로에 대한 착각이 하나님의 은총을 흐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어떤 것을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구원을
얻겠다고 혼돈을 일으켜 그들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된 것은
무엇인가 자기들이 갖고 있는 그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총이 흐려지고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결코 묵과되어서는 안 될 신성 모독죄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심을 완전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 까닭입니다. 이 교리에
대해서 더 많은 설명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니 다음에 하기로 합시다.
 

설교 7 선택 교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듯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9-10).
 

사람의 가치를 따지지 않은 하나님의 선택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록에 등록이 되었으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이미 양자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돌릴 이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강탈하지 않으려면 (p.118) 우리는 자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앞에 우리 모든 것을 드립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희미하게 할 트집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비록 창세
전에 사람들을 선택하셨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예견하셨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고 그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택하실
때에 그 사람이 가치가 있을지 또는 가치가 없을지를 보려고 기다리시지 않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런데 궤변론자들은 말하기를 비록 하나님은 지나간 공적은 고려하지
않지만 앞으로 이룰 공적을 고려했다고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흐려 놓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비록 야곱과 그의 형 에서가 선한 일도 악한 일도 하지 않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거절하셨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악한사람이 되고 야곱은 후에 보여 준 바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셨기
때문에 저들은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어리석은 추측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공적을 고려하지 않으셨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의 권위가 떨어졌다 치더라도 그 일은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이성에 비추어 보아도 이 문제는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길을 찾는
사람들은 전혀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밑바닥까지 깊숙히 살펴볼 때에 선한 것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저주를 받지 않습니까? 우리 어머니의 뱃속에서 죄 이외에 가지고 나온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 점에 있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를 당신에게 데려가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p.119)사람에게는 기뻐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알아보시지 않는 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자기의 동료보다 다 낫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시며 전에
우리에게 없던 그 선하심을 우리에게 쏟아 주시고 우리를 천국의 후사로 선택하여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우리를 성령으로 다스리십니다. 기독교 신자는 이 교리 안에서 굳게
결심을 하여 의심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선택을 의심으로 응답하지 말라
 

만약 하나님의 진리가 파괴된다면 기뻐할 사람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친 야수 같아서 성령에 대항하여 싸우고 성경을 폐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사람들보다는 천주교도들에게 차라리 더 많은 정직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주교의 교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선택을 폐하는 그 비열하고 사악한
자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보고 짖어 대는 개나 그 선택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돼지 같은
자들의 교리보다는 훨씬 좋고 거룩하며 성경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배운 것을 꽉 붙듭시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이 우리가 이룩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호감을 사기 위해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원천을 하나님 한
분에게만 두고 그 원천 위에 튼튼히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p.120)무엇을
어떻게 짓든지 간에 그것은 허물어질 것입니다.
 

은혜를 어처구니없이 버리는 인간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결합시킴으로써 기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직접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는 법을 배웁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속에서 (p.121)우리의 택함을 꼭 보아야 하는 참 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황하고
걱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름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전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가 이르지도 못한 하나님의 섭리를
펼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으며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하심을 자랑해도 좋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부인하는 자들은 복음을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에게로 인도하려고 우리 앞에 제시하신 모든 것을 묵살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우리가 활용하기에 적합하고 알맞은 방법을 묵살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열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그
부름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과 결합시켜야 합니다.

성경은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물론 우리가 (p.122)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우리의 선택을 증명해 주시고 싶을 때 우리를 부르십니다.
 

선하시고 신실한 증인, 성령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게 되며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고 복음의 믿음 안에서
우리를 깨우쳐 주신 것이 전에 있던 영원한 예정설을 폐하려는 것이 아님을 여기서
유념해야 합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 중에서 신자가 아닌 사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것을 악용하여
믿음이 원인이라고 곧 우리 구원의 첫 번째 원인이라고 합니다.

(p.123)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것을 중간 원인이라고 했다면 정말로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에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그러나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이 믿음을
인간의 자유스러운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여 신성 모독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주었지만 받는 사람은 적어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새롭게 변화시키기 전에는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고 우리의 믿음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에 의해서 은밀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왜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사도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구원의 약속을 받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예정설을
반대하는 자들은 미련하고 무식하며 만약 그들이 어떤 일을 분명하고 똑똑하게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단이 그들의 눈을 빼내어서 모든 이성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p.124)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보물과 무한한 부를
누릴 수 있는 동참자로 삼으셨는데 그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 주심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셨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말할 때 거기에
더 고차원의 원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선택으로 나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무엇인가 탈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선택은 밀봉된 편지 속의 약속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음에 있는 말을 기억해 둡시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도록 만드실 만큼 그렇게 은혜로우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마음을 활짝 여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선택되었음을
기록하는 것과 거의 같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다는 사실과 천국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원리 위에
굳건히 설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충분히 감사해야 하며 (p.125)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가지고 올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칭찬을 받을 만한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선택은 밀봉된 편지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 자체 안에 즉 그 본질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음과
믿음으로 우리를 당신에게로 부르실 때에 하나님은 선택의 증거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승인되었고 성령이
확인한 이 증서는 화평을 동반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증거가 있을 때에 이것은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들과 하나됨으로써 같은 사랑 받아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이것에 전혀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복음 안에
갖고 있는 그 증거를 확고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당신의 선택된
자녀들 중에 우리의 이름을 등록하지 않으셨다고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 사실을 혼자만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아니시면 (이미 우리가 보여 준 바와 같이)우리는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죽은 사람과 같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안내자가 되시면 예수님에게는 모든 지체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 사랑을 받게 할 (p.126)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의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에 접목되어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 우리가 이 교리에 의해서 유익을 올바르게
얻으려면 이 교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는 창세 전에(before the world began) 주셨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며 무엇 때문에 구원을 받았으며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싶으면 우리는 자연의 원칙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확보했는지를 알지 못하거나 의심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며 당신의 섭리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서
당신에게로 불러 주셨고 선하심과 아버지의 사랑의 표증을 우리 가슴속에 넣고 역사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그런 확신이 우리에게
있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드리셨고
성령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하셨다는 사실을 전파하라고 시키셨을 때에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음을 알았으므로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깁시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다는 확실한 표적이며 그것이 전에
우리를 선택하심에 따라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주요한 원인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아담으로 인하여 우리가 길을 잃고 버려진 것을 보시고 우리를 구출하시겠다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p.127)마음이 단순한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려고 이같이 말하는 얼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인류를 구속하기로
정했기 때문에 따라서 이것은 모두에게 보편적이라고 말합니다......(p.128)
 

복음을 외면하는 자, 그냥 내버려 둠
 

이제 여기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다른 말에 대해서 몇 가지를 유의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도 못하고 우리에게 이를 수도 없습니다.
 

허락한 것 이외를 알려 함은 외람
 

하나님이 오랫동안 비밀로 해 왔던 것을 공개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의도를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이 은혜가 지금
우리에게 공개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떻게요?

사도 바울은 이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에게 공개되었다고 말할
때에 우리가 만족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성자의 은혜에 맡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이상 또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구름 위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찾아본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유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아는 이유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을
확인하려면 우리는 이것들에서 조금도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독생자의 성육신을 통해서만 우리를 사랑하셨고 택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동참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설교 8 말씀의 순수한 전파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2:16-18).
 

독한 창질은 초기에 잘라내라
 

p.140.

가장 위대한 박사들이라고 인정받기를 바라며 여러 해 동안 또한 전 생애를 그것에
바친 사람들까지도 쓸데없고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을 볼 때면 통탄스럽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의 뜻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들을 타락으로
이끌어 갈 뿐입니다. 마치 마귀는 모든 교훈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언어를
놀라운 정도로 교묘하게 만들어 정말 그럴싸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금하였던 것에 반대되는 일을 하려고 음모를
꾸민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야만적이고 알지도 못할 망령된 말로
바꾸는 자는 그만큼 변명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쾌락을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락거리로 만들고 그것으로 기분전환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헛되고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가르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오와 논쟁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우리가 신봉하는 종교에 의심을 품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립니다.

(p.141)그러므로 우리는 그만큼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의 순수성을 계속해서
유지시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명령하신 바를 실행하고 교회를 마귀의 도구인 이런 괴질에서
정결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독초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마땅히 제거해야
 

사도 바울이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지적한 때에 옴이 오른 양같이 옴을 모든 양떼에
전염시킬 그들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어서 모든 사람이 그들에
대해 알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서도 그것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배신자가 아닙니까?

바른 길을 벗어난 가르침을 일으키려고 돌아다니며 교회 안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악인이야말로 사기꾼이 아니고 그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그러한 자를 발견하고도 모른
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위험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고서도 그에게 주의하라고 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만약 육체의 생명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하여 우리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면 영혼의 생명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려고 노력하는 (p.142)자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그릇된 교훈의 씨를 뿌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멸하게 합니다.

이 짖어대는 개들, 이 타락한 염소들, 게걸든 여우들이야말로 죄를 짓고 교회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이상하게도 용납해 줍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과 불화를 해야 하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그들이 절망에 빠지도록
그들을 덮어버려야 합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온유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의로운 항쟁은 바로 자비로움 때문
 

하지만 한 사람을 아낀답시고 많은 사람에게 경고하는 대신에 그들을 저버리는 일이
과연 자비로운 일입니까? 우리는 독초들이 우리 가운데서 자라서 그들이 우세해져 거기에
있는 선한 씨앗들이 깡그리 마르게 하거나 완전히 죽어버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단은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독약과 괴질을 가지고 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탐식하고 파멸시키려고 하는 게걸든 여우들이 하나님의 양떼를 괴롭히고 핍박하는
것을 봅니다. 이 때 우리는 한 마리의 여우에게 자비를 베품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
주님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시는 연약한 양과 어린양을 멸망하게 해야 합니까?

과오나 그릇된 교훈으로 교회를 괴롭히는 악한 자를 보게 될 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를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순진한 사람들이 잘못 인도되어 파탄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그들에게 경고해 주어야 합니다. 제가 말하거니와 이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주님은 악한 자를 널리 알려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식별하게 하시고 그들의 경건하지
못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십니다.

사도 바울은 참견을 잘하는 사람이나 건달들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멀리하려고 지시했습니다. 손에 검을 들고 (p.143)있는 자, 매우 악하게 된 자들, 평화롭고
화평한 생활을 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한 자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그들과 화평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괴롭히는
자들을 알아내어 그들을 멀리함으로써 우리 이웃들이 상처를 입는 것을 예방하도록
노력합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공연한 적 (우리는 천주교도들을 지명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여 우리가
그들의 과오와 미신에 말려들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순한
복음의 믿음에서 돌이키려고 하는 자들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혼돈으로
몰아넣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가라지를 뿌려서 이 교훈을 증오 속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으로 번민하게 합니다.
 

악인을 용납함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
 

어떤 자들은 악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방탕한 생활을 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벗어버립니다. 또한 세상을 악행과 악담과 패설로 채워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밟아버리려고 노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모든 사람을 혼란으로 빠뜨리려고
노력하는 술주정뱅이와 술고래들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이것들에 대항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조심하고 경계하자고 말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반대로 그러한 비행을 날카롭게 징계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그것에
눈짓을 하며 못 본 체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찬성하고 지지까지 해 줍니다.

우리는 죄악이 온 땅을 뒤덮은 것을 보게 되며,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곡해하고
무효화시키며 하나님의 교회를 의혹 속으로 몰아 넣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을 보고서도 마치
이것들을 전혀 보지 못한 (p.144)것처럼 숨겨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가 기독교인임을
마음껏 자랑해도 되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일에 호의를 보인다면 우리 가운데는
기독교인들보다 마귀가 더 많이 있다는 이야기밖에 안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을 잘 살펴봅시다. 만약 우리가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병들게 함으로 선한 교훈의 빛을 가리거나 폐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들이 하는 일을 밝혀서 모든 사람이 보게 하여 그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합시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일들에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에게는 배반자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나 교회의 구원에 대한 열의가 없는 자가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한다면 우리는 죄악의 공공연한 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범죄 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가능한 한 죄악들을
저주하여 그것이 우리를 장악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우리들보다 우위에 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경멸하는 자는 마귀에게 줘버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던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금수와 같이 무식하게 된다는 것은 이상해 보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모욕하여 비웃고 경멸하는 자들은 어떻게 보복하셨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시는 분별력을 갖지 못하게 하고 모든 (p.146)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도록 그들을 유기상태로 내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하나님의 진리를 신봉했던 자들이 짐승과 같이 되어서 이성을 잃는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높여서 우리들로 하여금 그 권능을 느끼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경멸하는 자들을 마귀에게 내 주어서 마귀들로 하여금 그들을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하는
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던 자가 하나님께 순종하던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을 보면
분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 주는 계기로 삼읍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남용하거나
더럽히거나 위장하거나 망령되게 하는 것을 참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짝 주위를 기울여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거울로 여깁시다. 훌륭한 기독교인으로 손색이 없던
사람들도 타락하여 그들 안에 죄악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되고 좋지 않은 말을 사용하게
되며 그들의 생활에는 부정한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우리 앞에 놓아두신 것을 알았으니 그것이 주는 경고를
받아들여 복음의 단순성을 깨닫고 지켜서 사단의 제물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설교 9 견고한 터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2:19).
 

p.151.

앞에서 사도 바울이 탈선해버린 자들에 관하여 이야기한 말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로 인하여 믿는 자들이 동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한 그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교회의 기둥처럼 보이는 자들이 타락하는 것을 볼지라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옳은 길에서 벗어나서 우쭐대는 것이 본성이므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넘어짐, 안타깝지만 놀라운 일 아님
 

그러므로 그들이 경건하지 않거나 사악해질지라도 우리는 놀라서는 안됩니다. 반면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p.152)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하시어 당신의
선택된 자녀 중의 하나로 삼으신 그 은혜 위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몇 가지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던 자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것을 보게 되니 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교회를 쇠퇴케 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부흥토록 하는 열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며 그들이 멸망해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그 영혼들을 멸망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인의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당신의 교회를 지켜 주신다는 원칙에 우리들은 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비록 그 교회가 우리가 바라는 만큼 성장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만족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은 모두 완전하게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비록 한 때나마 우리와 결합되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타락자들로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당초부터 우리의 지체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일천 번 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꽉 잡고
게시는 당신의 선택받은 자녀 중의 하나가 멸망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공인하신 대로 우리
구원의 보호자이시며 선택하신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지킬 임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한 말의 뜻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한 말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The foundation of God standeth sure, having this seal, the lord
knoweth them that are his).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사항을 강조했는데 여기서 알아봅시다. (p.153)먼저 신앙이 가장
강한 것처럼 보였던 자가 뒤로 물러서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하나님의 왕국을 아주
멀리하여 불신자가 되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교회가 몰락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이렇게 해서 줄어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세토록 견고하신 하나님의 터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든 확실한 기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시며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여깁시다. 하나님께서 시편 72편에서 해와 달이 있는
한 세세토록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귀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들을 흩뜨리는 것을 보거나 장래가 촉망되는
여러 가지 증거를 보여 주었던 자들이 탈선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 세계를 통틀어서 거의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 없었을 때에도 그것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빛을 주시기 40년 전에는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었습니까? 종교의 모든 빛이 이
세상에서 말살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숨겨진 터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의 수는 적었지만 당신께서 원하시는 그런 놀라운 방법으로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터는 견고히 서 있느니라(the foundation of God standeth sure)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날 것같이 생각되는 그런 환난을 당할 때에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이 터(foundation)를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알아볼 수 있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교회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p.153)입니다. 선지자 엘리야 시대에 일어났던 일을 봅시다. 그는 열왕기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19:14).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는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않은 사람이 칠 천 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면서 엘리야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히 말살되거나 없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
터를 확고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택한 자의 생활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은 비록 하나님의 터가 견고하게 서 있을지라도 그것은 다 써서
봉인한 한 통의 편지와 같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기(the Lord knoweth them that are his)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를 비천하게 만드시고 우리의 눈을 멀게 하셔도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에게
감추어졌더라도 그것을 견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그것을 알리지 않으실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섭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임을 알고 계신다면 설혹 사람들이
반기를 들어 우리를 속이려 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속임을 당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전히
당신의 섭리 안에서 결정하신 일을 이룩하실 것입니다.

(p.155)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에 천사와 같던 자들이 옳은 길에서 타락하는 것을
보았을 때 태만하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생활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또한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비웃고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계율을 어기는 위선자들과 같이 기독교라는 이름의 너울을 그릇되게 써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담겨 있는 내용을 실천합시다. 즉 만약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는 그의 자녀라고 고백하려면 우리는 불의에서 떠나야(depart from iniquity)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세상일과 세상의 교활함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p.156)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믿음 주시는 이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까? 우리가 창조되기 전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에서 특별히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가장 알려진 것,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까지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당신의 천국의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동참자로 만드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후에 우리가 하나님께
용납되고 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변덕스럽고 물거품 같은 우리
 

이렇게 해서 복음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공개한 모든 것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받은 것이 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이고 우리가
아직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을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며 우리들을 더 높게 올려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음을 통해 당신에게로 이끌어 주셨지만 우리는 우리
구원의 원천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에 하나님의 은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그
사랑이 우리에게는 숨겨져 왔고 하나님께서 (p.157)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는 데 크게
서두르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선택된 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터는 견고하게 서 있다(the foundation of God
standeth sure).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 터를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덕과 견주었으며 그가 말한
이 확실성을 연약한 우리의 환경과 견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변덕스럽고 또한
물거품 같은 줄을 알기에 우리의 확실성은 우리 자신에게나 우리의 천성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서 확실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만 달려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방법으로
보관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얼마나 복되고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이 사악하게 되는 것을 본다면 내 자신을 위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그와 똑같구나! 그러나 나는 비록 약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확실하시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자들보다 강하고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뽑혀
 

이런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는다면 우리는 크게
당황하게 될 것이고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힘에 의해서
지탱되고 유지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라도 멸망하기 마련이라고 경고했습니다.

(p.158)그러나 하나님의 강력한 힘을 아무도 당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확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을 책임지셨으며 우리가 예수님의 손에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마귀가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하고 또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며 우리가
십만 번이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손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발을 잘못 디뎌 복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게될 때 우리는 각성을
하고 조심합시다. 사도 요한이 요한 일서 2장에서 한 말을 잘 음미해 봅시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나려 함이니라(요일2:19).
 

하나님께서는 위선자들이 사악하다는 것을 아시나 얼마동안은 우리와 같이 있도록
내버려두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가 복음을 배반할 때 사람들이 그들의 배은망덕으로 인해
혼란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된 교훈을 비탄해
하며 하나님과 맞서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 한사람을 벌판이나 정원에 심은 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공개적인 적이 되는 자는 그 나무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받고 싶어하는 위선자들이
벌판이나 정원에 심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p.159)그러나 그 나무들은 하나님께서
심은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뿌리를 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택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 재능으로 쟁취하지 못할 믿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가장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 삼지 않으시고 그들을 생명의
유업으로 선택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뽑혀야 합니다.

만약 어떤 한 사람이 복음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보십시오! 그 사람이
타락했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장애물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시다(하나님의 원수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저주하는 자들 말고).
거만하거나 거드름을 피우고 건전한 교훈을 감수하지 못하며 거절한다면 그들이 바로
장애물이 됩니다.

그래서 제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가르침을 받지
않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자니라. 그러나 너희는
그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도록 경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 피택되거나 선택된 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 안에는 거룩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 속에서 반역함을 보았다고 해서 당황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손으로 심겨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가르침이 우리에게 유익이 (p.160)되게 할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먼저 믿음은 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밝혀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였지 우리의
재능이나 덕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셔서 양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이
은총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은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면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특별하고도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당신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 인류의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만큼 더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아니면 버림받은
자가 되느냐를 구별지어 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혼란과 범죄를 볼 때 그리고 시작을 잘 했던 자가 중도에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때 사람은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기쁘게 양자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충분한 확실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해질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선택에 호소합시다.

만약 사람들이 타락하게 되는 것을 보거나 전 교회가 파멸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터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사람의 뜻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p.161)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을 만들 수도 없고 또한 자기들 자신을 개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서 나왔습니다.

비록 그 건물의 윗 부분이 허물어진 것처럼 보이며 기둥이 보이지 않고 그 건물의
형태와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터를 견고하게 지켜 주실
것이니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선택교리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섭리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억지로
파악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우리에게 숨겨져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것의 인위적인 은폐는 필수적인 위안을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닙니까?
마귀들이 우리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데에는 우리로 하여금 이 조항을 보지 못하도록 감추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변함없는 창세 전의 선택
 

반역자와 위선자가 많은 세상 특히 사람들이 자기들 손으로 기적을 일으켜 보겠다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그와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서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선택을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로
삼지 않거나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돌보아 주실 것을 의심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복음과 관련해서 우리와 한 약속을 어기신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p.162) 이것이 복음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을 파멸하기 위해 사단이 고안 할 수 있는
중요한 목적이며 또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과 그 졸개들에게
구애받지 말고 우리의 방패가 되는 이 무기를 굳게 잡읍시다.

하나님의 선택 안에서 견고해지며 그것을 가치 있게 만듭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영혼의 구원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신경을 많이 씁시다. 우리는 이러한 교리를
우리에게 숨기려고 하는 자를 우리의 영원한 적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마귀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을 빼앗으라고 독려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권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Let every one that nameth the name of Christ depart from
iniq-uity).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에게 결코 변함이 없으며, 환난
중에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불안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며 그에게 달려가서 하나님이 불러 주신 일에 부지런히 임해야
합니다.
 

불의에서 떠나 주의 이름을 부르라
 

자신의 구원을 전적으로 믿고 있는 신자들과 태만하고 부주의하여 아무리 해로운 것도
자기들을 넘어뜨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방해물과 같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달려가게 만들 위험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 번 교육을 받게 되면
그 교훈에 대해서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떤 (p.163)비바람이나
폭풍도 자신들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워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공격에 대해서 계속 감시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필요할 때에 그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 드립니다. 그들은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회개와 그들 안에
성령의 은총을 더하여 주실 것과 그들에게서 환난을 제거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합니다......(p.164)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의심치 말라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모든 부정한 것에서 씻기어 있지 않으면 기독교인으로 불려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중의 하나라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요
백성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불의에서 떠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도둑이면서 왕자의 종이라고 했다면 그는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름을 사칭했기 때문에 두 배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거룩함과 모든 의로움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드님을 보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가진 우리가 자신들을 숨기며 우리의 온갖 더러움을 덮으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행동은 무서운 신성 모독죄이기 때문에 가장 엄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점으로 가득 찬 불쌍한 죄인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고 우리 안에는 악한 결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데는 어떤 괴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올바르게 살기를 바라고 죄를 미워한다면 비록 우리가
주춤거리더라도 우리의 계획이 선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의
뜻에 순종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올바른 마음 자세입니다. 예수임께서도
우리를 올바른 자로 평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셨으며 우리에게 죄 값을 청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비록 완전하지 (p.165)못하고 그들에게 많은 죄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 속에 있는 선함이 자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남용하여 그것으로 우리의 죄를 가리는
너울을 만든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권능을 욕되게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떼어놓으신 선택
 

그러므로 기독교(christianity)라는 말의 뜻을 잘 살펴봅시다. 그 뜻은 하나님의
아들의 한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의로움에 있어 그리스도께 집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동참자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셔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불의에 맡기고 자기들의 악한 욕망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모두 기독교인의 이름을 도용하는 악한 종이며 배반자들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볼 때와 처음 시작을 옳게 했던 사람이 그렇게
않게 되는 것을 볼 때 비록 사람 안에는 악함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확고한 하나님의 터는 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자를 알고 계시고 그들을 확실히 지켜 (p.166)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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