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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칼뱅의 교회와 자유

칼뱅의 교회와 자유
                                                                                                                                  박건택 교수(총신 신대원 역사신학)
1.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1.1. 인문주의자 입장에서의 종교적 관용—「세네카 관용론 주석」
칼 뱅의 관심사는 루터와는 달리 자유가 정의와 관계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자유는 사랑과 관계했다. 하지만 칼뱅은 츠빙글리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구원 문제로 초점이 확대되기 때문에, 회심 이후에도, 여전히 그의 자유는 정의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의의 실천은 그 이념인 사랑을 떠나서 이뤄질 수 없다.
1.2. 루터와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자유와 사랑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
<속사람의 자유>
그 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유인이 되기 때문에 율법을 포함하여 만물로부터 그리고 만물에 대하여 자유롭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의와 구원을 위해 어떤 행위도 필요치 않다. 이것은 율법, 의식, 공로 등에 맞서는 신앙의 능력이다. 신앙은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고, 신앙은 우리를 의롭게 하여 의식과 공로에서 자유롭게 하며, 신앙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한다.

<겉 사람의 자유>
참된 자유인인 그는 이번에는 만물에게 예속되는 일에 있어서 자유를 행사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겉 사람으로서 그는 즐겨 율법, 의식, 선행을 준수하되 그것 자체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에 따라 행한다. 이것은 결국 이웃을 위한 것인 바,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이웃 안에서 사는 것이다.

<자유와 사랑의 변증법>
그는 한편으로, 자유란 말을 오해하여 그것을 지나치게 남용하면서 모든 의식들, 전통들, 인간의 법규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을 지적한다 (“신앙의 자유에 대한 말을 듣는 즉시 그 자유를 육체에 대한 하나의 기회로 바꾸어서 이제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허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의식의 준수에만 의존하며 신앙의 본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지적한다. 루터는 먼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마음껏 일관되게 행사할 것을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는 고기를 먹고 금식을 중단하며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그들이 가장 큰 죄로 생각하는 다른 것들을 행하는 것이 좋다.” “폭군들과 완고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불경건하고 그들의 법령들이 의를 위하여 무익하며 또한 그들이 법령들을 만들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 앞에서 끊임없이 일관되게 당신의 자유를 행사하라.”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신앙의 자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 신앙이 약하고 고지식하며 무지한 사람들에 대해서, 루터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사랑으로 행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아무도 해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섬기라는 사랑의 명령이다.” 그는 그들을 참된 자유에 대한 가르침으로 구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자유의 투쟁과 사랑의 실천은 변증법적으로 나타난다.
1.3. 종교개혁자 입장에서의 교회 분리—니고데모파와의 관계
회 심이후 칼뱅은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어 개혁 교회에 가담한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의 자유는 외양적 일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 진리에 있었다. 진리를 상징하는 징표들이(예를 들어 미사) 너무 부패해서 그 의미를 잃었을 때 그것은 응당 폐기되어 마땅하다. 그런 부패 의식에 참여하면서 신앙을 지키겠다는 니고데모파에게 칼뱅은 전적 포기와 순교를 권면했다.
1.4. 네 종류의 니고데모파
니 고데모파의 첫 번째 그룹은 "명성을 얻기 위해 복음을 설교한다고 떠벌이고, 백성에게 그 맛을 조금 보여주어 달콤한 말로 녹이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칼뱅의 눈에 이들의 의도는 "복음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뚜쟁이 질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항상 입에 “교화”라는 말을 담고" 있으나, 그들의 본을 따라 이웃을 우상숭배로 끌어들인다. 칼뱅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예배를 높이기 위해, 모든 우상숭배를 없앰으로써 죽음에 뛰어들기는커녕,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요리사로 삼아 식사 준비나 잘 하려고 하는 설교자들"이라고 요약한다.

두 번째 그룹의 니고데모파는 고상한 최고 서기관들로서, 아마도 이들은 설교권이 없는 성직자들이거나 교회의 고위 행정직원들인 이들은 "복음을 가지고는 있으나, 이로 인해 자기들 멋대로 사는데 방해되지 않는 한, 복음에 대해 부인네들과 즐겁게 여흥으로 한담하는 것에 만족하는" 자들이다. 칼뱅은 이들과 더불어 한담을 즐기는 세속 권력의 고위층과 사교계의 부인들을 같은 부류에 포함시킨다. 이들 모두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민감하고 그 조류를 따르는 자들로 여겨진다.

세 번째로 칼뱅은 복음은 있으나 행동이 없는, 다시 말해 "기독교를 철학으로 바꾸는" 다수의 학식 있는 자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들은 "어떤 좋은 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보고" 있으나, "그런 일에 전념할 마음이 없다." 행동은 기독교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을 가르는 또 다른 기준으로서, 이때의 인문학은 복음의 원수가 된다. 어쩌면 칼뱅 자신이 속해 있었던 이 부류에 그는, 변호사, 판관, 의사, 철학자와 문학가, 그리고 신학자를 들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류는 평신도들인 "상인들과 평민들"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대부분이 생활의 안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누가 자신들을 불안케 하려고 하면 불쾌해 한다." 비록 이들이 앞의 세 부류보다 단순 솔직하여, "진리를 거역할 핑계를 조금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편리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니고데모파들을 흉내 낸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들을 불쾌하게 할 경우, 그들은 처음에는 분개하다가, 나중에는 거부하기에까지 이른다.

칼뱅은 이 네 종류의 니고데모파들을 한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약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고 그의 말씀에 어느 정도 경의를 보이나, 그래도 아직도 하나님의 영광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고, 또 세상과 자신의 삶을 잊는 것임을 알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요약한다.
2. 개혁파 교회의 제도적 특징
2.1. 네 직분 제도—민주적 제도인가?
칼 뱅의 교회론의 제도적 특징은 목사, 교사, 장로, 집사라는 네 직제에 있다. 이것은 평신도가 교회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직자의 대표와 평신도의 대표가 어우러지는 의회제이긴 해도 세례교인이 투표에 참여하는 현대적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장로도 시의회 의원이 주를 이뤘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성숙을 전제한다.
2.2. 개신교 내부의 분열의 부당성—재세례파와의 관계
이 와 같이 교회도 사회의 한 구성 요소인 한, 시민 공동체와의 관계가 불가피하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공동체만을 주장하는 재세례파의 입장을 칼뱅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공동체란 이유로 교회에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
3. 교회의 자유와 책임
3.1. 국가의 간섭과 교회의 독립/자유
성 경에 기초한 말씀의 자유로운 표현을 방해한 교회의 권세에서 참 교회를 해방시킨 칼뱅은 정치권력의 손에 그 교회를 넘겨줄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칼뱅의 교회론의 특수 표지들 가운데 하나는 분명 자유다.” 교회의 자유를 위한 이 투쟁이 너무도 격렬해서 사람들은 칼뱅이 제네바에 신정정치를 세우려 한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우선 교회의 불가견성이 모든 정치적 제도화의 시도에서 교회가 절대적으로 자유함을 보증한다. 하지만 무형 교회를 강조한 루터의 종교개혁이 결국 세속권이 교회를 지배하는 독일 교회의 방식을 낳았고 스위스 개혁파 교회들도 다소간 그런 영향 하에 있었다. 칼뱅의 제네바 초기 사역 실패는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제네바로 다시 돌아온 칼뱅이 유형 교회를 세우면서 만나야 했던 세력은 민족주의 교회를 빙자하여 정치적 입지를 확보한 “자유파 당”이다. 위에서 본대로 칼뱅은 이들과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처럼 칼뱅은 정치권력에서 교회를 자유롭게 하기를 원했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교회의 자유를 얻기 위해 때로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결정하도록 요구했는데, 이것이 개혁파 교회의 승리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네바에서 교회가 국가 권력이 된 적은 없다.

교회의 자유를 위한 칼뱅의 투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행동과 말씀의 자유로서, 훗날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모든 인간의 기본권이 된다. 다른 하나는 정치권력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영권과 세속권은 서로 뗄 수 없는 두 제도로서 각기의 역할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담당하는 교회는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외적인” 다시 말해 물질적인 영역에 머물도록 한계를 지어준다. 그렇다고 칼뱅에게 교회의 자유가 재세례파의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재세례파의 무저항의 분리주의에도 칼뱅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같은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들은 복음과 정치적 요소를 구분할 줄 몰랐다. 이와 같이 “자유파 당”이 종교를 정치에 굴복시키려 했다면 재세례파는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를 폐기시키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 말해 모든 정치적 제도에서 교회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려 했다. 오히려 신령 자유파는 국가에 대해서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세례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유파가 그들의 영적 무정부 상태에 따른 도덕적 처신에 대한 절대적 자유를 천명한다면 재세례파는 이 무정부 상태를 정치․사회적 삶으로까지 확대시킨다. 칼뱅의 자유는 교회를 대변하는 자유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유이다. 이런 점에서 목사는 하나님의 법과 정의를 위반하는 위정자에게 훈계할 수 있는 것이다.
3.2. 교회의 사회적 책임—리베르탱파와의 관계
재 세례파와 리베르탱자유파가 칼뱅의 종교개혁의 진행에 던진 문제는 동일하다. 칼뱅은 초기에 이들을 재세례파라는 이름으로 묶어 취급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 문제와 관련한다. 칼뱅의 자유는 윤리적 책임을 동반한다. 그런데 재세례파와 자유파의 이원론적 구조는 그리스도인이 사회 질서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을 제거한다. 육과 세상에 속한 것에서의 분리와 신앙 세례에 의한 공동체 강조(재세례파)는 하나님의 일반 섭리를 부인하는 것이 되며 이 섭리의 주축이 되는 국가와 가정(자연적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데로 나가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국가의 인물이 될 수 없으며 불신자와의 결혼(mixed marriage)에서 임의의 별거가 가능해진다. 또한 중세적 경제 구조로의 회귀는 재산의 공동 소유를 지향하게 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영적으로 되는” 것은 세상의 선악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영적인 인물은 세상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한다. 그에게 더 이상 선악은 없다. 선악의 구별이 없는 사회는 무질서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개혁자가 이 두 종파에서 본 위해한 요소였다. 윤리적 책임을 갖지 않는 영성 추구는 언제나 분파적 성향을 드러낸다.
4. 개혁파 교회와 종교적 자유의 한계
16 세기는 종교 불관용의 시대였다. 즉 한 지역에 한 종교만이 인정되는 시대였다. 둘 이상의 종교가 공존하는 관용 사회는 근대 사회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얻어질 결과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칼뱅과 제네바 사회는 세르베투스와 같은 이단 사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사실 세르베투스는 그 시대에 서부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발붙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형을 시키는 것은 충분히 비난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어짜피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칼뱅도 자기 시대의 아들이었다. 우리가 이 사건을 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은 당시의 종교를 정치이데올로기로서 이해하는 방식이다. 국가는 정치이데올로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을 어기는 자는 정치사범이 되고 처벌을 면할 수 없다. 다만 오늘날은 종교와 정치이데올로기가 구분될 뿐이다.
5. 결론 : 창조와 복음의 관계 속에 있는 교회
기독교인은 복음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창조질서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진정 복음대로 산다면 신앙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신자 역시 부패한 인간이기 때문에 복음대로의 삶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대교회와 같은 현상이 교회사 속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공동체가 죽은 그루터기에서 새순처럼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은 복음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특수 경우들을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교회공동체는 시민공동체의 일환으로 산다. 그 목표는 바른 제도를 세우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교회정치는 신앙공동체의 높은 이상에서 늘 점검되어야 하면서 동시에 시민공동체의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교회정치는 세상 정치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없다
[출처] 칼뱅과 교회와 자유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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