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관점에서 본 칼빈의 하나님 형상이해 2
3. 하나님 형상의 반사 채널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거울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자동적으로 반사하는가?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칼빈의 경우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도 짐승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문제로 제한한다. 만일 인간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한다고 여긴다면 인간을 기계론적으로 본 결과일 것이다. 매우 놀라운 사실은 칼빈의 경우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 내지 본체를 반사할 경우 채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바로 이 채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미 앞서 W. Niesel은 similitudo개념으로 그 채널을 암시했다. 또 Torrance도 rectitudo개념으로 그 채널이 있음을 암시했다.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러면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는 위에서 W. Niesel과 T.F. Torrance를 통해 칼빈의 경우 인간이 수직적인 차원의 관계와 수평적인 차원의 관계를 지닐 때 하나님의 형상의 역할을 함을 보았다. 사실 모든 칼빈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대로 칼빈의 하나님 형상의 핵심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총체적인 관계에 있다. 칼빈은 인간이란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말씀과 뜻에 의해 무존재에서 존재와 생명에로 계속 부르심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그 존재의 매 순간 소모되고 새로워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즉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의 존재는 무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R. Prins는 칼빈의 경우 의 거룩, 참 지식이 image의 주요 요소들인데 이것들은 성격상 관계적이며 이 세 가지 있어야 하나님과 함께 한다(Prins 36f.)는 발언을 같은 의미인 것이다.
동시에 칼빈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하나님 형상과 연관됨을 지적한다. 토란스가 칼빈을 해석하면서 "인간은 하나님과 그런 교제와 교류를 가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들 간에 교제를 나누고 사회를 이루어 정직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그들의 공동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화 해야한다"(35)라고 한 말이나 "이 목적을 위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 형상의 거룩한 결속에 의해 함께 묶어지며(주석 시 8:5) 하나님 형상의 안에서처럼 서로 간에 교제 안에서만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45)는 말은 매우 맞는 말이다. 칼빈은 이 같은 인간 사이의 관계문제는 이미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사실 속에서 인간의 본질문제로 다룬다. 칼빈은 창 1:27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한 것을 직접 하나님 형상과는 연관시키지는 않지만 인간은 혼자로서는 불완전하며 둘이 하나가 될 때 둘이 보완됨을 말한다(AGES 48). 창 2:21 주석에서는 남 자와 여자가 둘 다 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기 질투가 없이 사랑의 관계를 지니며 서로 보완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 두 부부의 관계는 우리와 하나님의 아들과 가지는 연합과 비슷함을 지적한다(AGES, 73). Oberman에 의하면 칼빈은 재세례파에 대항하여 인간의 본질이 사회적인 성격을 띰을 강조한다. 우리는 칼빈의 하나님 형상론에서 인간이 수직적인 차원과 수평적인 차원에서 장식을 볼 수 있다. 사실 칼빈에 의하면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질 때 인간의 존재의의가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성경의 인간은 이 두 가지 차원 속에서만 살고 있는가? 성경은 여기에 또 하나의 차원을 보탬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적인 차원이다. 우리는 성경의 인간이 세 가지 차원의 관계로 살고 있음을 귀납법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두 가지 명령은 수직과 수평의 차원을 말하는 동시에 시간적인 차원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문화명령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이루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수직적인 차원에 집중한 나머지 이 문화명령 속에 시간적인 요소를 간과해 버리는 것 같다. 헤르만 바빙크는 이런 명령들과 관계하여 수직과 수평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하지만 시간적인 차원은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되 시간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성경은 이 사실을 밝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매우 명백하게 이 세 가지 차원의 관계를 지니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은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았고 그의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았다. 또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살았다. 이런 점은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또 다윗의 삶도 이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가장 두르러지게 나타난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다. 그는 수직적인 차원에서 항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는데 마음을 쏟았고 사람들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눈길은 항상 십자가를 질 순간과 재림하는 사건을 내다보았다. 바울의 삶도 그러했다. 바울은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요약했다. 사실 그의 서신은 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언급했다. 이 세 가지는 그 성격상, 우리가 지상에 머무는 동안, 항상 함께 간다. 결코 서로 떼어질 수 없다.
또 하나님의 형상으로 요약될 수 있는 율법도 이 세 가지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십계명은 1-3계명은 수직적인 차원의 계명이다. 제 4계명은 시간적인 차원을 내포한다. 또 5-10계명은 수평적인 차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십계명의 해석인 산상보훈도 이런 식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율법의 요약인 큰 계명도 수직과 수평을 말하면서 이 두 가지가 지켜질 때 미래의 상태를 내다 본다. 성경이 추구하는 인간은 이 세 가지 차워의 관계를 지닌 존재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정립될 때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이라는 거울에 반사되려면 이 세 가지가 설치되어야 된다는 말이다. 즉 이 세 가지 차원이라는 채널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반사된다는 말이다. 사실 칭의 문제나 성화문제는 이 세 가지 차원의 관계로 해석이 명확하게 되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을 처음으로 교의학에 도입한 인물이다.이 삼직분이야말로 인간의 존재의의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아담에게도 이 세 가지 직분을 분석할 수 있고 나아가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가 지적한대로(31-32문) 기독인들의 삶에도 이 세 가지 직분이 적용될 수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제사장직분은 믿음의 차원에, 교회에 은총을 베푸는 왕의 직분은 사랑의 직분에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고 백성들의 갈 길을 제시하고 책망하는 선지자 직분은 소망의 차원에 일치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삼직분으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것은 인간의 이 세 가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칼빈이 이 삼차원을 하나님 형상을 해석하는데 적용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짐작하기로는 그 당시 칼빈에게 있어서는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수직적인 관계가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고로 거기에 매달렸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삼차원을 표현하는 입체적인 좌표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채널을(삼차원의 관계) '관계적 하나님 형상'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사실상 칼빈이 의도한 하나님 형상은 바로 이것으로 풀이된다. 콜부뤼게와 에드와드 뵐이 의미하는 '하나님 형상의 상태'는 사실상 관계적 하나님 형상을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경우 이 관계적 형상론을 명확하게 열거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칼빈의 신학이 삼차원의 관계를 완전히 간과했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신학이 성경에 근거한 신학이기 때문에 그가 비록 명확하게 삼차원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신학 전반은 이것과 관계한다고 본다. 이 문제는 다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패러다임 변화의 열매
위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칼빈의 신학 체계에 어떤 의의를 지닐까? 이 패러다임의 변화는 인간을 해석할 때 네 가지 상태로 해석하도록 암시한다. 칼빈은 매우 명백하게 '상태 변화'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형상을 발산하는 상태를 전제하고 "우리가 첫 사람들 안에서 우리의 원래의 상태로부터 타락했다"고 할 때, "아담이 그 원래의 상태에서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할 때 그리고 "생명에서 죽음으로 전락했다"거나 "창조주의 율법으로부터 타락했다" (III,6,3,[4])라고 할 때의 표현도 분명히 상태를 바꾼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또 타락하여 떨어진 그 상태에 대한 묘사도 하나님의 형상이 비정상적으로 되었음을 매우 언급하며 또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잘 묘사한다. "후손까지지 끌어들여 같은 불행에 잠기게 만들었다"고 할 때(II,1,5) 그리고 죽음에 대한 표현은 이 비참한 상태를 묘사한다. 즉 칼빈의 죽음에 대한 이해도 그의 하나님 형상이해와 상태 개념과 더불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여기에도 파라다임의 변화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오버만에 의하면 칼빈은 성경이 정죄하는 사망을 무존재(nonbeing)의 한 형태인 임상적인 죽음 또는 존재론적인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고(266) 심리학적인 차원에서 불행하고 비참한 삶(miseria) 그 자체로 이해했다(267)고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결과, 특별히 여기서는 오관이 마비된 몸에 비유하여 인간의 영적인 비참한 상태를 말한다. 동시에 칼빈은 죽음을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어떤 실체로 이해하는 동시에속박된 상태를 나타낸다.
또 이런 사망의 상태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상태가 바꾸어지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는 로마서 8:21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완전한 상태로 회복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라고 표현했다. 칼빈은 구원을 하나님 형상의 회복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우리가 회심 한 이후에 처한 상태는 이 회복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중생, 회개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Inst III,3,9[4]) 한 칼빈의 말은 하나님의 형상의 모든 상태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칼빈은 고후 3:18을 주석하면서 이런 과정은 거친 인간은 마침내 영광의 완전한 상태에 이름을 말한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거울 속에서처럼 열린 얼굴로 보다가 그와 동일한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Inst III,2,20[5]).
이제 우리는 하나님 형상론이 기독교 강요 전체에 걸쳐 나오는 이유가 칼빈의 신학사상이 인간론 특히 '하나님 형상'을 중심으로 열거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 강요가 외형상 그 구조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으로 열거되었기 때문에(제 1권 창조주 하나님, 제 2권 구속의 하나님, 제 3-4권이 구원의 하나님) 이 두 가지 도식을 합하면 기독교 강요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의 신학 전체가 이런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식은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시키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열거해 준다.
III. 맺는 말
1.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의 하나님 형상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적 차원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관계는 수직, 수평 그리고 시간 이 삼차원의 관계와 더불어 계속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성경의 인간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명확하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의 하나님 형상론은 이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한다.
2. 칼빈의 하나님 형상관은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현대인들에게 반성을 요구한다. 현대인들은 생명공학의 발달로 유전인자 내지 DNA를 조작하여 심지어 현재의 인간을 초월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인간의 자율성은 한 층 더 심화될 것이다. 2003년에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여 사전에 질병을 고치고 2050년에는 인공자궁이 널리 사용되며 용모와 지능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창조주로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 할 것이고 자기의 이런 능력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필요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자율성). 인간은 이런 능력으로 행복한 세상을 건설할 것으로 볼까? 사실 혜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치명적인 위험을 알고 있다. 그래서 1997년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29차 총회에서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186개 회원국 전원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이 선언문에는 유전 연구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한 번 연구되고 공개된 것들은 언젠가는 히틀러와 같은 미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어 인류를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이 극대화되는 바로 거기에 이런 위험이 온다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칼빈의 하나님 형상론은 이런 인간의 자율성으로 비롯된 모든 악에 대항하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독교라는 종교단체를 지키기 이전에 '인간을 지키는 운동'의 결정적인 처방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현실문제와 연관하여 칼빈의 관계적 하나님 형상론은 계속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3. 이미 살펴본 대로 칼빈의 하나님 형상론은 인간의 창조, 타락, 구원, 그리고 회복까지 과정을 설명하는데 매우 좋은 도식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도식이 그의 기독교강요의 뼈대를 이루며 나아가 그의 신학 전체의 뼈대가 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이 발산되는 상태와 그 영광을 상실한 상태를 보여주고 동시에 이것이 고쳐지고 회복되는 상태도 암시하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인간문제는 인간의 고장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처방을 가하는 것이 가장 순리적인 것이다. 칼빈의 하나님 형상론이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가 위의 네 가지 상태에 대한 이해와 또 그가 가한 처방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그의 주석을 현대 주석과 비교하여 연구하는 일은 또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16세기에 칼빈이 이해하고 주석한 부분을 20세기라는 다른 상황에서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칼빈의 주장을 가장 잘 이어 받은 학파는 독일과 오지리의 콜부뤼게와 그의 학파(에드와드 뵐)인 것 같다. 이들의 신학은 인간문제를 다룰 때 매우 명백하게 하나님 형상이 발산되는 인간의 상태, 거기서 타락한 상태인 육을 말하는 동시에 육의 상태에서 구원을 받은 상태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상태, 그리고 완전히 회복된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칼빈과 이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칼빈의 경우 '버첼렘'의 '버'라는 전치사에 무관심하고 이런 상태를 말한 반면에 콜부뤼게의 학파는 이 '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상태를 논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출발점이 다를지라도 칼빈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 점을 이들이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이들이야 말로 칼빈을 잘 이해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위의 네 가지 상태가 성경적인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하나님 형상 안'의 상태와 '그리스도 안'의 상태 사이를 등식화한 콜부뤼게 학파의 주장은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칼빈은 이 두 상태 사이를 연관시키는 것을 도외시했다.
또 영미 계통의 Gordon J. Spykman의 새로운 교의학 시도 "Reformational Theology, A New Paradigm for Doing Dogmatics"(Eerdmans, 1992)은 칼빈의 이런 관심을 정식으로 도식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사실 이 도식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수단이 될 것이다.
4. 만일 누가 이데올로기적인 신학의 안목으로 바르트의 관계적 하나님 형상론에 대해 알레르기성 반응을 한 나머지 칼빈의 하나님 형상론을 존재론적으로만 이해하고 관계론적인 형상론에 대하 이해가 없다면 그는 칼빈의 신학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신학은 로마 카톨릭 신학에 가깝지 않으면 이단적인 신학사상을 가졌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이단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론적인 아니면 범신론적인 사고방식에 빠진 데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가 다른 종교가 다른 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관계적 형상론을 부정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왜곡된 보수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이런 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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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거울의 관점에서 본 칼빈의 하나님 형상이해|작성자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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