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과학관(수정증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과학관(수정증보)
1859년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이후,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진화론(the theory of evolution)의 문제에 대해 찰스 핫지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이미 『종의 기원』출판 후 3년 만인 1962년에 최초의 짧은 논평을 썼고, 마침내 1874년 『다윈주의란 무엇인가?』(What is Darwinism?)이란 저술을 통해 진화론에 대한 그의 연구와 평가를 집약한다.
핫지는 다윈의 책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연구가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연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진화론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윈주의는 세 가지 구별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진화 또는 모든 식물과 동물의 유기체가 하나 또는 아주 적은 수의 원시균류(primordial living germs)로부터 생겨나고 발전했다는 가정, 둘째, 이 진화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또는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 셋째, 그의 이론의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요소로서 자연선택이 [초자연적 지성의] 설계(design)없이 비지성적인 물리적 원인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의 진화론의 설명원리 가운데 핫지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원리는 바로 세 번째의 원리인 목적론을 거부하는 자연선택의 개념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손에서 떨어뜨릴 때, 그것이 우연이었다고 말하면, 그는 그 사건이 원인 없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고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종이 우연한 생명전개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할 때, 바로 다윈의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책 전체는 목적론에 반대하는 논증이다". 핫지가 다윈의 자연선택에서 목적론적 설명이 배제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주의 창조와 섭리과정에서 지성적 설계를 배제한다면 하나님이 의도와 목적에 의해 창조를 이해하는 가능성을 부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핫지는 다윈이 창조주(the Creator)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에서 초자연적인 목적 개념을 부정한 이유까지 설명한다: "왜 그는 하나님의 지성에 의한 결과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하나님이 식물과 동물의 복잡한 기관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설계의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번에 그것들을 만들었는지 진화의 과정을 따라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윈은 그것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시키는 대신에 설계나 목적개념 없는 설명방식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핫지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개념이 초자연적 설계나 목적의 원리를 방법론적으로 배제할 때, 결국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신학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도달한다. "자연에서 설계의 부정이라는 전체 이론의 결론은 하나님의 부정일 수밖에 없다. 다윈씨의 이론은 자연의 설계를 부정한다". 따라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무신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진화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윈씨 자신이나 그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이 무신론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이론이 무신론적이고 자연으로부터 지성적 설계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의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핫지의 이러한 판단은 성경과 과학이 원칙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다윈의 진화론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providence)를 무시하는 자연주의(naturalism)를 이론의 방법으로 삼을 때,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4. 벤자민 워필드의 과학관
4.1 신학과 과학의 분열에 대한 저항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비교적 연속적이고 낙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찰스 핫지의 상황과는 달리, 그의 후계자 역할을 맡았던 벤자민 워필드는 점점 연속성을 잃고 분열되어 가는 20세기 초반의 신학과 과학 사이에서 프린스턴 변증학의 입장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러한 학문적 추세에 대한 위필드의 저항은 1911년에 발표된 "인류의 고대성과 통일성에 대하여"(On the Antiquity and Unity of the Human Race)이라는 글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 이후 인간의 기원을 인간 이외의 다른 종에서 찾게된 나머지 불확실하게 된 인류의 통일성을 방어하기 위해 과학자들과의 의도적인 논쟁을 벌인다. 그는 더 이상 신학과 과학의 통일성에 대해 낙관론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성경과 과학자들의 견해차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함께 그의 논의를 시작한다. "성경의 진술과 과학자들의 발견사이에 갈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자의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양자사이의 대립은 인위적으로 조장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지나치게] 짧은 기간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인류사를 짧게 해석하는 성경해석은 그 정당성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성경자료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반면에 과학도 지구상의 인간 생명의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기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생명의 역사를 지나치게 장기간으로 보는 해석의 타당성을 엄밀한 연구자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함이 요구된다".
워필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는 지구상에서 생명의 역사를 너무 오래지 않게 파악했던 그 당시의 중도적인 고생물학자나 지질학자, 화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성경과 과학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급진적인 진화론자들을 반박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과학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생명, 특히 지구상에 인간이 지속된 기간을 무제한적으로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태도는 점차로 사라졌고 현재는 중도적 평가를 하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이는데,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 지속된 기간에 대한 중도적 평가는 대체로 만년이나 이 만년 이상을 넘지 않는다". 위필드가 지구의 나이를 최고 4000만년까지 추측한 그 당시의 급진적 지질학자나 비록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상의 생명의 나이를 연장하려고 했던 진화론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온건한 입장을 택하는 이유는 그의 관심이 과학연구의 결과를 가능한 한 성경과 조화시키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그 당시 '생물학적 진화론'(biological Darwinism)과 함께 대두되었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잊지 않는다. "인류의 통일성에 대한 성경과 현대과학 사이의 이러한 동의에 대해 만족하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인종적인 이해관계에서 이러한 통일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경계시의 영향 밖에서는 인간의 통합성의 이념은 매우 약하거나 거의 무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워필드는 신학과 과학의 분열뿐만 아니라, 과학의 이름아래 인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인종적 편견에 대하여서도 신학적인 저항을 했던 것이다.
4.2 섭리의 진화론적 해석 가능성
워필드는 그의 스승인 찰스 핫지의 변증학에 충실하게 자신의 변증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모든 사실은 하나님의 사실이다"라는 핫지의 기본명제에 따라 신학과 과학의 통합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했고 새로운 과학연구의 결과를 신학을 정점으로 하는 지식체계 안에 일관되게 수용하고자 했다. 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실을 귀납적으로 탐구하는 과학이론들이 신학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해석(interpretation)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진화론의 경우, 이미 그의 전임자 A. A. 핫지가 진화론을 "과학적 작업가설"(a working hypothesis of science)과 (자연주의적) "철학"(a philosophy)으로 구분하고 신학이 거부해야 할 대상은 생명전개(evolution)의 가능성을 일반화시킨 철학이론인 진화론이지, 생명의 기원과 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과학적 가설로서의 생명전개의 원리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던 것처럼 워필드는 다윈 진화론이 함의하는 과학적 가설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잠정적인 과학의 성과에 대해 맹목적인 추종과 일방적인 거부 사이의 중간(moderate) 길을 가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핫지 못지 않게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고 진화론이 가져온 과학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위필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창조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 그는 마침내 1915년에 집필된 그의 마지막 칼빈연구인 "칼빈의 창조교리"(Calvin's Doctrine of the Creation)에서 이러한 해석을 펼친다. 그는 칼빈이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에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개념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처음 창조 이후 모든 사건의 중간원인에 해당하는 '제2원인(second causes)을 인정했다는데 주목한다. 워필드는 칼빈이 하나님의 창조를 무로부터 최초의 물질을 만드신 사건뿐만 아니라, 최초로 창조된 근원물질로부터 다른 사물들이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과정까지도 포함시켰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이 모든 과정에 작용하기 때문에 창조는 무목적적인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진화론과는 다른 의미의 '생명전개' '(evolution)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바로 이해했다면 칼빈의 창조교리를 인간의 영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명전개적인 성격(evolutionary one)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최초의 '혼돈 상태의 물질'은 하나님의 절대명령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지만, 아직 아무 형체도 없이 무엇인가가 될 가능성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존재하게 된 모든 사물은 인간의 영혼을 제외하고는 최초의 물질인 이 세계질료(world-stuff)가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원동력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개되어 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동력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칼빈은 우주의 존재와 운동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강력한 유신론자(a high theist), 즉 초자연주의자(supernaturalist)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궁극적 제일원인'(prima causa omnium)이며, 이 말은 세계질료의 창조에서처럼 모든 사물이 그 존재를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이 일차적인 세계질료의 변형조차 직접적인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일어났고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의지에 기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진화론이 아니라, 순수한 생명전개론(pure evolutionism)이다".
여기서 워필드는 이른바 개혁신학의 전통적 교리의 하나인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ta)의 교리를 생명전개의 의미로 해석했음을 보여준다. 위필드는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현대의 과학과 조화 속에서 성경의 진리를 확인하고 변증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창세기 해석은 이미 핫지 시대로부터 지지되었던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또는 '오랜지구 창조론 (old earth creationism)을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워필드는 칼빈을 생명전개의 원리를 인정한 신학자라고 까지 말한다: "의심할 나위 없이 칼빈은 진화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생명전개의 교리(a doctrine of evolution)를 가르친다. 그는 무로부터의 직접적인 창조행위를 보전하는 이외에는 생명전개의 가르침을 반대하지 않는다. 무로부터 직접 창조되지 않은 모든 것은 연이어 전개되었다(evolved). . . . 이 가르침이 질서 지워진 세계의 산출양식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육일을 여섯 기간, 즉 세계의 성장의 여섯 시대로 늘려서 해석해야만 한다. 만일 칼빈이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현대적인 생명전개론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워필드가 현대적인 의미의 생물학적 진화론, 즉 다윈의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입증"(proved)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프린스턴 대학 학장 맥코쉬(McCosh)를 반대하면서 진화론을 하나의 과학적 가설(a working hyperthesis)로 보았다. "문제의 전모를 고려할 때, 우리가 진화론의 극단적 형태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와 생명전개론 사이에 필연적인 적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라는 것과 기적적인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이론도 기독교교리의 커다란 변형과 성경의 권위의 현저한 약화를 가져올 것이다". 핫지가 다윈 진화론의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가져온 무신론적 함의를 부각시킨데 반해, 워필드는 반대로 생명전개론을 통한 창조론과 섭리론의 해석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윈 진화론을 하나의 가설적 이론체계로 보고 무조적인 수용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5. 나가는 말: 구프린스턴의 과학관이 주는 교훈
지금까지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변증학적 입장과 그에 근거한 과학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과학관은 일관된 신학적 입장, 특히 변증학적 입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에게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내는 작업이므로 신학과 근본적으로 대립되거나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과학은 계시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과학의 진리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이 신학과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과학은 자신의 주장을 유보하고 신학의 최종권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구프린스턴의 변증학의 역사적 모습은 이러한 변증학적 원리에 대한 적용이 항상 일치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학과 과학 사이의 상호제약적인 기본입장에 충실한 두 사람의 신학자, 핫지와 워필드가 진화론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던 사실은 구체적인 과학이론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신학과 과학의 차이점를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과학과 신학의 공통점을 더 강조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 주었다. 핫지는 다윈 진화론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과 성경적 창조론의 신적 작정과 섭리에 대한 교리가 결코 조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진화론을 거부했고 워필드는 진화론을 하나의 작업가설로 보면서 성경의 창조교리를 생명전개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놓았다. 그러나 워필드는 다윈의 진화론 모델을 생명역사의 사실들을 밝혀주는 하나의 가설로 인정한 것이지, 이미 확증된 사실에 대한 과학법칙이나 의심할 수 없는 진술로는 보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변증학과 과학관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그 시대의 학문과 과학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통합적인 신학을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신학을 성경계시의 절대성과 경건한 신앙 위에 세우기를 애썼던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졌던 문제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19세기 미국의 지식인 사회가 가진 특정한 철학에 기초하여 일반 학문에 대한 상당한 낙관주의에 머무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경험과 이성을 사용하는 학문들의 연구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기여하는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통합적인 신학의 태도를 추구하는 길이 구프린스톤 신학자들을 되돌아보면서 얻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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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B. Warfield, Studies in Theology. The Works of Benjamin B. Warfield IX N.Y.: OUP, 1991.
Benjamin B. Warfield, Calvin and Calvinism, The Works of Benjamin B. Warfield V, N.Y.: OUP, 1991.
http://blog.daum.net/kkho1105/2178
1859년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이후,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진화론(the theory of evolution)의 문제에 대해 찰스 핫지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이미 『종의 기원』출판 후 3년 만인 1962년에 최초의 짧은 논평을 썼고, 마침내 1874년 『다윈주의란 무엇인가?』(What is Darwinism?)이란 저술을 통해 진화론에 대한 그의 연구와 평가를 집약한다.
핫지는 다윈의 책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연구가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연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진화론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윈주의는 세 가지 구별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진화 또는 모든 식물과 동물의 유기체가 하나 또는 아주 적은 수의 원시균류(primordial living germs)로부터 생겨나고 발전했다는 가정, 둘째, 이 진화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또는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 셋째, 그의 이론의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요소로서 자연선택이 [초자연적 지성의] 설계(design)없이 비지성적인 물리적 원인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의 진화론의 설명원리 가운데 핫지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원리는 바로 세 번째의 원리인 목적론을 거부하는 자연선택의 개념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손에서 떨어뜨릴 때, 그것이 우연이었다고 말하면, 그는 그 사건이 원인 없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고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종이 우연한 생명전개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할 때, 바로 다윈의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책 전체는 목적론에 반대하는 논증이다". 핫지가 다윈의 자연선택에서 목적론적 설명이 배제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주의 창조와 섭리과정에서 지성적 설계를 배제한다면 하나님이 의도와 목적에 의해 창조를 이해하는 가능성을 부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핫지는 다윈이 창조주(the Creator)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에서 초자연적인 목적 개념을 부정한 이유까지 설명한다: "왜 그는 하나님의 지성에 의한 결과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하나님이 식물과 동물의 복잡한 기관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설계의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번에 그것들을 만들었는지 진화의 과정을 따라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윈은 그것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시키는 대신에 설계나 목적개념 없는 설명방식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핫지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개념이 초자연적 설계나 목적의 원리를 방법론적으로 배제할 때, 결국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신학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도달한다. "자연에서 설계의 부정이라는 전체 이론의 결론은 하나님의 부정일 수밖에 없다. 다윈씨의 이론은 자연의 설계를 부정한다". 따라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무신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진화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윈씨 자신이나 그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이 무신론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이론이 무신론적이고 자연으로부터 지성적 설계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의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핫지의 이러한 판단은 성경과 과학이 원칙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다윈의 진화론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providence)를 무시하는 자연주의(naturalism)를 이론의 방법으로 삼을 때,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4. 벤자민 워필드의 과학관
4.1 신학과 과학의 분열에 대한 저항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비교적 연속적이고 낙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찰스 핫지의 상황과는 달리, 그의 후계자 역할을 맡았던 벤자민 워필드는 점점 연속성을 잃고 분열되어 가는 20세기 초반의 신학과 과학 사이에서 프린스턴 변증학의 입장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러한 학문적 추세에 대한 위필드의 저항은 1911년에 발표된 "인류의 고대성과 통일성에 대하여"(On the Antiquity and Unity of the Human Race)이라는 글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 이후 인간의 기원을 인간 이외의 다른 종에서 찾게된 나머지 불확실하게 된 인류의 통일성을 방어하기 위해 과학자들과의 의도적인 논쟁을 벌인다. 그는 더 이상 신학과 과학의 통일성에 대해 낙관론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성경과 과학자들의 견해차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함께 그의 논의를 시작한다. "성경의 진술과 과학자들의 발견사이에 갈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자의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양자사이의 대립은 인위적으로 조장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지나치게] 짧은 기간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인류사를 짧게 해석하는 성경해석은 그 정당성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성경자료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반면에 과학도 지구상의 인간 생명의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기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생명의 역사를 지나치게 장기간으로 보는 해석의 타당성을 엄밀한 연구자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함이 요구된다".
워필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는 지구상에서 생명의 역사를 너무 오래지 않게 파악했던 그 당시의 중도적인 고생물학자나 지질학자, 화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성경과 과학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급진적인 진화론자들을 반박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과학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생명, 특히 지구상에 인간이 지속된 기간을 무제한적으로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태도는 점차로 사라졌고 현재는 중도적 평가를 하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이는데,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 지속된 기간에 대한 중도적 평가는 대체로 만년이나 이 만년 이상을 넘지 않는다". 위필드가 지구의 나이를 최고 4000만년까지 추측한 그 당시의 급진적 지질학자나 비록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상의 생명의 나이를 연장하려고 했던 진화론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온건한 입장을 택하는 이유는 그의 관심이 과학연구의 결과를 가능한 한 성경과 조화시키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그 당시 '생물학적 진화론'(biological Darwinism)과 함께 대두되었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잊지 않는다. "인류의 통일성에 대한 성경과 현대과학 사이의 이러한 동의에 대해 만족하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인종적인 이해관계에서 이러한 통일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경계시의 영향 밖에서는 인간의 통합성의 이념은 매우 약하거나 거의 무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워필드는 신학과 과학의 분열뿐만 아니라, 과학의 이름아래 인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인종적 편견에 대하여서도 신학적인 저항을 했던 것이다.
4.2 섭리의 진화론적 해석 가능성
워필드는 그의 스승인 찰스 핫지의 변증학에 충실하게 자신의 변증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모든 사실은 하나님의 사실이다"라는 핫지의 기본명제에 따라 신학과 과학의 통합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했고 새로운 과학연구의 결과를 신학을 정점으로 하는 지식체계 안에 일관되게 수용하고자 했다. 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실을 귀납적으로 탐구하는 과학이론들이 신학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해석(interpretation)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진화론의 경우, 이미 그의 전임자 A. A. 핫지가 진화론을 "과학적 작업가설"(a working hypothesis of science)과 (자연주의적) "철학"(a philosophy)으로 구분하고 신학이 거부해야 할 대상은 생명전개(evolution)의 가능성을 일반화시킨 철학이론인 진화론이지, 생명의 기원과 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과학적 가설로서의 생명전개의 원리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던 것처럼 워필드는 다윈 진화론이 함의하는 과학적 가설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잠정적인 과학의 성과에 대해 맹목적인 추종과 일방적인 거부 사이의 중간(moderate) 길을 가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핫지 못지 않게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고 진화론이 가져온 과학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위필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창조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 그는 마침내 1915년에 집필된 그의 마지막 칼빈연구인 "칼빈의 창조교리"(Calvin's Doctrine of the Creation)에서 이러한 해석을 펼친다. 그는 칼빈이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에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개념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처음 창조 이후 모든 사건의 중간원인에 해당하는 '제2원인(second causes)을 인정했다는데 주목한다. 워필드는 칼빈이 하나님의 창조를 무로부터 최초의 물질을 만드신 사건뿐만 아니라, 최초로 창조된 근원물질로부터 다른 사물들이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과정까지도 포함시켰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이 모든 과정에 작용하기 때문에 창조는 무목적적인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진화론과는 다른 의미의 '생명전개' '(evolution)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바로 이해했다면 칼빈의 창조교리를 인간의 영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명전개적인 성격(evolutionary one)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최초의 '혼돈 상태의 물질'은 하나님의 절대명령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지만, 아직 아무 형체도 없이 무엇인가가 될 가능성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존재하게 된 모든 사물은 인간의 영혼을 제외하고는 최초의 물질인 이 세계질료(world-stuff)가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원동력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개되어 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동력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칼빈은 우주의 존재와 운동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강력한 유신론자(a high theist), 즉 초자연주의자(supernaturalist)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궁극적 제일원인'(prima causa omnium)이며, 이 말은 세계질료의 창조에서처럼 모든 사물이 그 존재를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이 일차적인 세계질료의 변형조차 직접적인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일어났고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의지에 기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진화론이 아니라, 순수한 생명전개론(pure evolutionism)이다".
여기서 워필드는 이른바 개혁신학의 전통적 교리의 하나인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ta)의 교리를 생명전개의 의미로 해석했음을 보여준다. 위필드는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현대의 과학과 조화 속에서 성경의 진리를 확인하고 변증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창세기 해석은 이미 핫지 시대로부터 지지되었던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또는 '오랜지구 창조론 (old earth creationism)을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워필드는 칼빈을 생명전개의 원리를 인정한 신학자라고 까지 말한다: "의심할 나위 없이 칼빈은 진화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생명전개의 교리(a doctrine of evolution)를 가르친다. 그는 무로부터의 직접적인 창조행위를 보전하는 이외에는 생명전개의 가르침을 반대하지 않는다. 무로부터 직접 창조되지 않은 모든 것은 연이어 전개되었다(evolved). . . . 이 가르침이 질서 지워진 세계의 산출양식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육일을 여섯 기간, 즉 세계의 성장의 여섯 시대로 늘려서 해석해야만 한다. 만일 칼빈이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현대적인 생명전개론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워필드가 현대적인 의미의 생물학적 진화론, 즉 다윈의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입증"(proved)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프린스턴 대학 학장 맥코쉬(McCosh)를 반대하면서 진화론을 하나의 과학적 가설(a working hyperthesis)로 보았다. "문제의 전모를 고려할 때, 우리가 진화론의 극단적 형태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와 생명전개론 사이에 필연적인 적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라는 것과 기적적인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이론도 기독교교리의 커다란 변형과 성경의 권위의 현저한 약화를 가져올 것이다". 핫지가 다윈 진화론의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가져온 무신론적 함의를 부각시킨데 반해, 워필드는 반대로 생명전개론을 통한 창조론과 섭리론의 해석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윈 진화론을 하나의 가설적 이론체계로 보고 무조적인 수용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5. 나가는 말: 구프린스턴의 과학관이 주는 교훈
지금까지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변증학적 입장과 그에 근거한 과학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과학관은 일관된 신학적 입장, 특히 변증학적 입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에게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내는 작업이므로 신학과 근본적으로 대립되거나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과학은 계시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과학의 진리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이 신학과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과학은 자신의 주장을 유보하고 신학의 최종권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구프린스턴의 변증학의 역사적 모습은 이러한 변증학적 원리에 대한 적용이 항상 일치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학과 과학 사이의 상호제약적인 기본입장에 충실한 두 사람의 신학자, 핫지와 워필드가 진화론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던 사실은 구체적인 과학이론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신학과 과학의 차이점를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과학과 신학의 공통점을 더 강조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 주었다. 핫지는 다윈 진화론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과 성경적 창조론의 신적 작정과 섭리에 대한 교리가 결코 조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진화론을 거부했고 워필드는 진화론을 하나의 작업가설로 보면서 성경의 창조교리를 생명전개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놓았다. 그러나 워필드는 다윈의 진화론 모델을 생명역사의 사실들을 밝혀주는 하나의 가설로 인정한 것이지, 이미 확증된 사실에 대한 과학법칙이나 의심할 수 없는 진술로는 보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변증학과 과학관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그 시대의 학문과 과학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통합적인 신학을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신학을 성경계시의 절대성과 경건한 신앙 위에 세우기를 애썼던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졌던 문제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19세기 미국의 지식인 사회가 가진 특정한 철학에 기초하여 일반 학문에 대한 상당한 낙관주의에 머무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경험과 이성을 사용하는 학문들의 연구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기여하는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통합적인 신학의 태도를 추구하는 길이 구프린스톤 신학자들을 되돌아보면서 얻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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