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요한 크리소스톰

요한 크리소스톰
 
크리소스톰의 대부분의 교리문답적인 설교들은 1955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설교들은 안토이네 웬거에 의해 그리스도의 아토스 산에 있는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다른 3개는 1909년에 러시아에서 출판되었었다. 그 이전에 오직 요한의 2가지 교리문답적인 설교만이 알려졌다. 그 중에 하나는 러시아 출판물이다. 요한의 4가지 설교는 그가 388년에 지원자들에게 교훈을 준 부분을 포함한다. 390년에 새롭게 발견된 설교문에서는 요한이 계속 성직을 수행하고 있다. 교리문답의 직무는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나뉘어져 있었다. 그의 설교들은 오직 안디옥의 문답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부분이었다.
스트브로니키타의 가르침은 요한의 사역이다. 웬거는 크리소스톰의 설교의 표지라고 여겨지는 특징적인 표현들을 지적한다.
그의 언어의 풍성함과 강직한 성격, 표현의 풍부함, 당시의 정치적이고 사회적 삶에 대한 이야기, 이론적인 신학을 넘어선 도덕적인 숙고들의 탁월성, 목회적 사역에 집중하는 것의 우선성, 마지막으로 지칠줄 모르는 열변.
하킨스는 또한 요한의 “거의 변화되지 않는 발전의 방법”에 대해 지적한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로 구성된다. (a) 비유를 통해 관련된 것을 자주 확증하고 지지한다. (b) 대부분 바울의 본문을 통해 성경을 확증한다. (c) 사고의 발전을 통해 결론을 더욱 발전적으로 다룬다. 이 두 특징들은 크리소스톰의 주일 설교의 특징들과 일치한다.
그의 교리문답적인 설교는 우리가 이미 논의했던 설교와 충분히 얼마나 다른가? 이 설교들은 시작하면서 성구들에 대해 한구절씩 해석하지 않는다. 이 설교들은 때때로 세례를 준비하는 문답자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해진다. 그러나 요한의 가르침은 다른 세 교리문답적인 설교자들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의 주제의 대부분은 주기도문, 세례에 대한 신조, 세례 의식에 집중된다. 요한은 오직 그의 설교에 일부분에서 세례 의식의 요소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그 강조점도 의식 자체에 있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권면에 더 두고 있다.
우리는 요한의 더 긴 연속 설교들의 주제를 다루면서 그의 교리 문답적인 설교의 특징을 보게 된다. 그 설교는 390년에 행해졌다. 첫째로 지원자들을 환영하고 열정적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도전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옷차림과 징조와 맹세, 보이는 것들에 관한 설교자의 특정한 관심을 보여준다. 다른 설교들과 같이 최초의 의식에 대한 분석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초심자들에게 비유로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혼보다는 사단과의 싸움에 대해서 말한다. 세례는 출애굽에 비유된다. 네 번째로 초심자는 그의 행동이 빛이나야 한다. 비유를 통해 밝고 깨끗한 옷으로 연상시켜 설명한다. 다섯 번째는 초심자들이 부드러움과 사치와 술취함에서 절제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절제하는 것을 존중하도록 설명한다.
여섯째로, 교회를 빠지고 전차 구경을 가거나 경기 등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통렬히 비난한다. 일곱째는 모든 교훈들이 주어진 마르튀리온에서 순교자들의 축제에 관하여 설교한다. 마지막 교훈은 몇가지 목적들을 돕는다. 이 모든 것은 크리소스톰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들을 닮지 않은 비법들이 다른 세 교리문답 설교가에 의해 전수된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
요한의 교리문답적인 설교는 테오도르의 그것과는 다르다. 테오도르는 그의 오랜 친구이며, 디오도르의 제자이자 성직자였다. 그들 가운데 두명은 안디옥에서 동시에 초심자를 교리문답으로 교육했음에 틀림없다. 둘다 위대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재능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요한은 그 자체의 목표로 성경 해석에 있어서 테오도르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알렉산드리아의 풍유적 해석을 반대하고 문자적 해석을 하는 안디옥의 전통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또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렉산드리아의 기독론은 우리 주님의 인성과 신적 본성의 연합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렇게 강조함으로서 자주 그의 충만한 인성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안디옥의 기독론은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철저히 확증한다. 동시에 그것은 그의 신성에 어떻게 인성이 연합되는가를 아는 것에서 어려움을 준다.
테오도르의 가르침은 요한의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가르침과 같이 교리적이었다. 신경에 관한 10개의 가르침, 주기도문 1개, 성례 5개. 그것들 중에 3분의 2는 신경에 관한 것이었고 신학적인 강조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래의 논쟁자들은 그의 설교를 듣는 누구도 그들의 믿음에 실수가 없기를 바랬다. 그의 목회적 돌봄은 과도하게 나타난다. “그의 문체는 매우 흩어지고 반복하고 그의 설교들은 자주 설교를 읽는 것보다는 예식에 관한 정보를 탐구한다.” 이러한 경우가 너무 많아서 에드워드 야놀드는 그의 번역에서 반복되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지적하면서 삭제했다. 테오도르의 설교집은 성례에 관해 88쪽을 할애한다. 다른 세사람은 같은 주제에 관해 모두 합쳐서 97쪽을 할애한다. 데오도르의 설교집은 네스토리안 교회의 교리문답 교과서가 되었다.
예루살렘의 키릴
만일 교리 문답적인 설교의 원형적인 모범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장 적게 알려지 설교가의 것일 것이다. 키릴은 호모우시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정통 기독론을 표현하기 원했던 것 외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키릴은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하려는 해인 313년 경에 태어났다. 따라서 키릴의 삶과 사역은 제국의 그늘 아래 있었다. 콘스탄틴이 요청한 니케아 공의회로 인해서 그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신학적 문제 뿐만 아니라 키릴의 교회의 상태는 그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것 중에 하나이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새로운 믿음에 대한 호의의 표시로서 거룩한 땅 특별히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웠다. 키릴은 거기에서 사역지이기도 했다. 거룩한 도시에서 자라면서 335년에 키릴은 집사로 임명되었다. 10년 동안 봉사했다. 그가 감독이 되기 전에 성직자로 5년을 더 봉사했다. 키릴은 여러번 추방당했다. 가장 마지막이자 가장 길게 367년에서 378년까지 추방당하기도 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가이사랴 교회에 복속되는 문제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가 열리기 전에 키릴은 아버지와 함께 나누신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키는 용어를 조정했다. 그리고 그 회의의 명예로운 참가자가 되었다. 그는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5년 뒤에 죽었고 그의 교리문답적인 설교들과 몇몇의 저작들을 남겼다.
이러한 설교들은 특별한 관심을 지니는데 그 설교들이 행해진 장소 때문이다. 신성한 땅에 대한 관심은 적어도 사르디스의 멜리토 시대에 뻗어나갔다. 313년 후에 기독교에 대한 제국의 지원으로 인해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특별히 예루살렘에 대한 콘스탄틴의 건축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건축 계획의 중심부는 복잡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또 다른 장소에 대한 가까운 접근을 가능케 해주었다. 그곳은 콘스탄틴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장소는 십자가가 진짜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곳은 아나스타시스라고 불리우는 원형의 건물이(헬라 단어로 부활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곳에서부터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위에 건립되었다. 다음은 성벽 안 뜰, 거룩한 십자가의 안마당이었다. 그 모퉁이에 갈보리 언덕의 바위, 골고다 위에 서있었다. 위로 12발자욱 가면 쇠창살로 닫겨져 있었다. 이것은 Ad Crucem (십자가에서)으로 알려져있다. 십자가는 십자가 처형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곳에 가까이 서 있었다.(Ante Crucem, "십자가 앞에서"). 그 뒤에 예배당은 “십자가 뒤에서”로 불려졌다. 안마당은 아나스타시스와 함께 서쪽 벽을 나누고 있었다. 그것의 동쪽벽은 주 교회 마르튀리온의 반각형 부분 뒤에 서있었다. 헬레나는 십자가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은 동굴 위에 세웠다. 콘스탄틴에 의해서 세워진 예루살렘의 다른 교회는 시온이었다. 시온은 전통적으로 최후의 만찬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장소에 세워졌다. 그곳은 감람산 위에 있었고 승천의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했다. 그 교회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가르치셨다는 동굴 위에 세워졌다.
키릴이 죽은지 20년이 못되어, 에게리아(Egeria)라고 불리우는 스페인 수녀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일들이 벌어진 장소들을 보기 위해 그 거룩한 땅에서 3년 동안 노력했다. 그녀는 스페인에 돌아와서 그녀의 체험의 절반 정도를 다른 수녀들을 위해서 기록했다. 그 기록은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들에서 매일 관찰한 의식”을 묘사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이 기록의 내용에는 입회 지원자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이 포함되었다. 그녀의 성지 방문은 키릴의 죽음 이후에 발생한 일이지만 상황들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교부들의 설교에 대한 드문 목격자이다.
사순절의 40일 동안에, 세례를 위한 그러한 준비는 아나스타시스(Anastasis)에서 이른 아침에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의식이 끝날 때에 감독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그들은 마르튀리온(Martyrion)으로 옮겨서 감독이 사순절 동안에 성경에 대해 가르치는 강론을 전할 때에 감독의 자리 주위에 있었다. 5주 후에 그들은 신경을 받았고 감독은 한 구절씩 설명한다. 이 매일의 과정은 3시간동안 진행되었고 그 의식을 위해 오전 9시에 아나스타시스로 찬송을 부르며 돌아오면서 끝났다. 성례 주일이 되기 전 토요일에 세례 문답자는 감독에게 암송으로 그들이 배운 신경을 보여주었다. 성례 주일의 정교한 예식들은 가르침들을 더 제시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주일 동안 감독은 그들이 막 경험한 새로이 입문한 세례와 성찬 예식을 설명해 주었다.
키릴의 설교들은 의식들이 정해놓은 것을 넘어서는 설교 자체에 대한 관심을 지니 있다. 그 설교들은 문답자의 엄숙한 입회에 관해 선교리문답(Procatechesis)과 함께 시작한다. 처음의 두가지 교훈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지원자들에 대한 권면으로 준비하는 것들이다. 세 번째는 세례에 대한 논의이다. 의식에 관한 세부적인 설명을 하는 그런 종류의 가르침은 아니지만 그 가르침은 부활절 때에 입회를 돕게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10개의 교리들”에 관한 4번째 강론에 요약되어있다. 믿음에 관한 5번째 강론은 믿음의 체계와 영적인 성향 둘 다에 관해 말한다. 그 강론은 세례에 대한 신경을 제한된 형식으로 요약함으로서 신앙 체계의 공평성을 가지고 마쳐진다.
6번째부터 18번째까지 강론은 신경을 한 구절씩 설명하는 것에 충실하다. 문답자는 종려 주일 전날에 감독 뒤에서 신경을 암송한다. 부활절까지 더 이상의 가르침은 주어지지 않는다. 월요일에 성례의 원칙을 전수하는 5개의 강론들이 시작된다. 어떤 학자들은 비법을 전수하는 강론들이 키릴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의 그 관구 계승자인 요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교리문답적인 설교가 행해졌는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에 그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특별히 적어도 한세기 동안 예루살렘에서 키릴의 교리문답적인 강론이 모범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논쟁은 어떠한 차이점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만일 그렇게 보일려면 키릴은 그가 처음으로 강론을 전했을 때 여전히 성직자였을 것이다.
그 설교들은 진정한 교훈들(homilies)이었다. 그 설교들 각각이 설교가 행해지기 전에 가르침으로 읽혀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강론이 시작될 때에 인용된 본문들은 5세기 예루살렘의 어법을 반영한 두 개의 아르메니아 성구집에 당시에 할당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성구집들은 설교의 주제를 요약하지만, 설교의 기초를 둔 진정한 본문들은 신경의 조항들과 세례와 성찬 의식의 요소들을 설명한 것이었다. 설교자는 하나의 영향을 주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엮어주는 좋은 기술을 잠깐 보여준다. 또한 각 설교들을 사람들이 헌신하도록 하는 호소로 바꾸어주는 수사학적 효과들로 인한 확실한 결과들이 있었다. 각각의 그 가르침들은 권면적인 결론을 가지고 있었고 송영으로 마쳐졌다. 예루살렘에서 에게리아(Egeria) 만큼 입회하는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받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쉬운 것이다.
밀란의 암브로즈
초대 교회에서 암브로즈 만큼 많이 알려지고 그렇게 적게 이해된 된 사람은 거의 없다. 사후에 그 사람에 대해 알려진 사건들로부터 감동을 주려는 전기 작가들은 즉각적으로 반대 해석들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는 압도적으로 많다. 압브로즈의 아버지는 압브로즈가 때어난 339년에 재판관으로 집행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 년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암브로즈와 그의 형제 사튀루스(Satyrus)가 명문 가문의 자식들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서 전형적인 교육이었던 수사학을 배울 수 있도록 로마로 그의 가족들을 데려온다. 로마에 그들이 머무는 동안 암브로즈보다 열 살 많은 누이 마르셀리나(Marcellina)는 교화 리베리우스(Liberius)에 의해 성스러운 처녀로 받아들여졌다. 암브로즈는 귀족 사회로부터 나온 최초의 교부로서 사실 그는 기독교 가정에 태어난 최초의 라틴 교부이기도 하다. 그들의 교육이 마쳐진 365년에 그 두 형제는 시르미움의 집정 장관의 궁전에서 법관이 되었다. 시르미움은 일뤼리아의 핵심 지역이자 동서가 만나는 곳이었다. 5년 후에 암브로즈는 아이밀리아(Aemilia)와 리구아리아(Liguaria)의 집정관(Consularis)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사령부는 밀란(Milan)에 있었는데 그곳은 자주 서방의 제국 통치의 중심지였다.
밀란의 교회는 그들의 감독 아센티우스가 374년 죽을 때까지 아리안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어떻게든 그 정통교회는 그들의 후계자들을 선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폭동으로 그 일이 무산되었다. 통치자는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나타나서는 환호성으로 갑가지 후임자를 선출하였다. 그는 다른 명령 체계를 통해 임명되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성직에 임명되기 전에 세례도 받아야만 했었다. 감독으로서 그는 강력하게 아리안과 전통적인 로마 종교에 맞섰다. 그는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나온 이교도의 승리의 여신 제단을 상당히 많이 제거하였다. 그리고 그는 황제의 어머니가 아리안의 회중들을 위해서 밀란에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테오도시우스가 폭동이 일어나 데살로니가의 7천명의 시민에 대한 학살 명령을 내렸을 때에 암브로즈는 그가 성찬식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기 전에 그에게 공적인 참회를 요구하였다. 암브로즈는 교회사 속에서 많은 다른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그는 ‘성례 찬송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왜냐하면 그 분야에서 그가 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방 교회의 네 명의 교사 중에 한명이다.
그의 많은 저작들 중에 대부분은 강론으로 그가 교정한 연속 설교들이다. 그는 본래 사상가는 아니였지만 그는 영향력있는 사사상가였다. 해석 부분에서 그는 동방 교부들의 저작을 읽고 헬라어를 알았던 당시의 몇 안되는 서방 감독들 중 하나였다. 그 자신의 관심들은 우선적으로 실천적인 것 - 당시의 서방 교회의 두드러진 태도였던 - 이었다. 헬라 교부들에 대한 그의 연구는 그로 하여금 몇 안되는 그의 서방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방에서의 신학적인 논쟁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주었다. 따라서 그는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의 열렬한 주동자가 되었다. 암브로즈는 알렉산드리아의 성경 해석에 의해 매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완강한 풍유 해석자가 되었다. 그는 또한 그의 저작에서 많은 설교자들과 같이 헬라와 로마 철학에 의존하지만 그의 근원으로서 거의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그의 설교의 특징에 대한 평가들은 다양하다. 이런 논평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접적이고 간결한 진술들이 산재한 주기적인 긴 문장들로 특징지워진 그의 수사학적 문체는 자연과 성경과 고전에서 끌어낸 심상들로 풍성하다.” 그러나 또한 출판 전에 행해진 설교의 편집은 그의 설교들이 전달되었을 때에 어떠한 형식이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앙겔로 파레디(Angelo Paredi)와 같은 호의적인 평론가조차도 설교 편집 과정에서 제거된 것이 틀림없는 “생기있는 항목과 자발적인 의견들”을 놓친다. 그 결과로 그는 말한다. “그의 설교는 분출하고 넘쳐흐르는 거품을 잃은 채로 너무 오래 서있는 샴페인 잔과 같다.”
그러나 현재 목적은 전체적으로 그의 설교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의 교리문답적인 설교에 집중할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주제이다. 왜냐하면 그의 전집 전체가 성례의 두가지 집전법과 예비 문답자들에게 가르치는 신경에 관한 설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는 키릴과 데오도르와 같이 주기도문이나 신경에 관한 교훈들을 세부적으로 남기지 않았지만, 암브로즈는 예비 문답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사순절 설교를 행했다. 그의 석의적 연속 설교들 중 일부는 교리문답적 설교였다. 그 설교들은 다른 교부들에 의해 나누어졌다.
성례에 관한 그의 두 저작은 설교문들이 전달되고 그 강론들이 편집되었을 때에 그의 설교들(homillies)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왜냐하면 성례론(De Sacramentis)에 관한 설교가 행해졌을 때에 6개의 설교가 속기로 기록한 사본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신비론(De Mysteriis)에 대한 강론은 같은 종류의 또 다른 연속 설교로부터 편집되었다. 그 두 설교의 사상은 매우 유사한데, 둘 다 성경을 인용하고 그 인용한 구절들에 놀랄만한 풍유적 해석을 가함으로서 암브로즈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준다. 성례론에 관한 속기로한 기록은 “응집력의 부족...잦은 반복...서투룬 문제”로 특징지워진다. 많은 학자들은 오토 팔러(Otto Faller)와 버나드 보테(Bernard Botte), 헨리 채드윅(Henry Chadwick)이 그 설교의 참된 특징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저작으로 그것을 생각했다. 야놀드(Yarnold)는 말한다. “이런 반쯤은 즉흥적으로 하는 설교에서 암브로즈는 자주 논리적인 순서를 벗어나 배회했다” 그리고 야놀드는 그의 논증들이 그가 설명하려고 할 때 때때로 너무나 직관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 대한 극단적인 예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설교에서 나타난다. 그 설교들은 성찬에 관한 견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다른 주제를 취하기 전에 한 주제를 마치지 못하고 주기도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설교를 마친다.
우리는 두 번째 설교에서 이러한 효과들에 관해 무언가를 볼 수 있다. 그 설교는 세례에 관한 비유들로 시작한다. 이방인이나 유대인들 모두 정결 규례를 가진 것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세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벳세다 연못의 치유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도록 이끈다. 그 본문은 전날 읽었지만 설명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암브로즈는 요한복음 5장 4절에 대한 기독론적 해석을 행한다. 그 본문은 4복음서에 최상의 사본은 아니다. 다음으로 물가에 도달은 첫 번째 사람만 치유된 것에 대해 풍유적 해석이 따라 나온다. 그는 물가로 인도할 사람이 없는 병든 자의 연약함에 대해서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보자가 없는 것으로서 설명한다.
다음으로 나아만의 깨끗케된 이야기, 그 이야기는 전날 논의된 것인데 세례에 대한 모형으로 보여진다. “당신은 한가지 종류의 세례를 가집니다. 홍수 사건은 또 다른 세례이며, 우리 선조들이 홍해에서 세례받은 것은 세 번째 부류의 세례입니다. 물이 동할 때 당신은 물가에서 네 번째 세례를 받습니다.”(성례론 2.9). 이러한 세례에 대한 비유는 이 설교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두 번째 기름부음을 포함하여 그 예식에 삼위일체의 임재와 그 예식의 효과, 예식 자체에 관한 논의로 인해 따라나온다. 그러나 그의 공적 설교에 대한 분별력 있는 비평을 어거스틴은 그가 제국의 수사학 선생으로 밀란에 처음 갔을 때에 암브로즈의 단어들에 집중해서 “매달렸다.” “그의 설교는 파우스투스(Faustus)의 설교보다 덜 힘이있고 적게 달래주지만 나는 그의 설교의 유쾌함과 박학함에 즐거웠다.” 사본에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결론
이러한 4가지 예들은 교리문답적인 설교의 다양한 것들이 짧은 기간 동안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성인들을 교육해서 결국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으로 나아가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다. 연속 설교들은 보존되지 않았지만 많은 설교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설교들은 교리 문답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석적인 설교들이다. 그 시기는 특별하며 교리문답적인 설교 형태가 드물게 반복되는 때였다. 이러한 초기의 예들은 앞으로의 세기에 자주 나타나야 하는 회심과 헌신을 요청하는 설교들로 기독교 신앙이 가르쳐져야 할 필요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교는 정규적인 주일 설교와 함께 설교로 불려 질 수 있다. 그리고 복음전도 설교, 교리문답적인 설교는 기독교 설교 사역에 있어서 세 번째 중요한 설교 형태를 형성한다.
교리문답적인 설교를 하는 4명을 생각하면서, 설교사의 중요한 변화는 비평없이 지나갔다. 라틴어로 최초로 설교했던 암브로즈는 고려되어야만 했다. 지금부터 종교개혁 때까지 우리는 오직 서방교회의 설교 사역을 연구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한가지 이유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위대한 사람들의 뛰어난 요소들이 동방 교회의 설교에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4세기 중반으로부터 헬라 기독교 웅변의 황금기를 구성하는 5세기 초에 이르는 두 세대들... 대단히 많은 헬라 설교는 그레고리와 요한을 모방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저작들로부터 모든 본문과 문장과 구절들에서 지식의 원천을 찾는다. 그들의 성취는 결코 비교되거나 다른 것과 동등할 수 없다. 이미 5,6세기에 그 영향력이 감소된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이 서방교회의 설교에 관해서 말했던 유사점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주된 이유는 기독교 설교의 전역사가 그렇게 짧게 연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영국의 설교자들을 위해서 설교사의 연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서방 기독교계로 제한될 것이다.
FOR FURTHER READING
Kelly, J. N. D. Golden Mouth: The Story of John Chrysostom: Ascetic, Preacher, Bishop.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5.
Paredi, Angelo. Saint Ambrose: His Life and Times. Translated by M. Joseph Costelloe.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4.
St. John Chrysostom: Baptismal Instructions. Translated and annotated by Paul W. Harkins. ACW, no. 31. Westminster, Md.: Newman Press, 1963.
St. John Chrysostom: The Homilies on Genesis 1-17. Translated and edited by Robert C. Hill. FC, vol. 74.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86.
Westerhoff, John H., III, and O. C. Edwards Jr., eds. A Faithful Church: Issues in the History of Catechesis. Wilton, Conn.: Morehouse-Barlow, 1981.
Wiles, Maurice. "Theodore of Mopsuestia as a Representative of the Antiochene School." In From the Beginnings to Jerome. Vol. 1 of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Bible. Edited by P. R. Ackroyd and C. F.
Evans, 489-51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Yarnold, Edward. The Awe-Inspiring Rites of Initiation: Baptismal Homilies of the Fourth Century. Slough: St. Paul Publications, 1972.
 
 
 

Notes
1. 천지창조 6일(Hexaemeron)과 시편에 관한 바실의 설교들은 예외이다.
2. 약 700여 개의 교훈(homilies)들이 남아있다. 다른 종류의 설교는 100개가 넘는 다. 이 숫자들은 요하네스 쿠스텐(Johannes Quasten)에 의해 집계된 것이다. The Golden Age of Greek Patristic Literature from the Council of Nicaea to the Council of Chalcedon, vol. 3 of Patrology (Utrecht: Spectrum, 1960; Westminster, Md.: Newman Press, 1960), 433-59.
3. 그 전집의 6번째 권은 요한에게 할애되어 있다. 그의 모든 저작이 포함된 the PG의 18권을 취한다. 그 저작들은 다른 어떠한 헬라 교부들 것보다 요구되었다.
4. Pope Pius X, Acta sanctae sedis (1908), 594-95.
5. J. N. D. Kelly, Golden Mouth: The Story of John Chrysostom: Ascetic, Preacher, Bishop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5), 4. For the rationale for the dates Kelly accepts for John"s early life, see Appendix B, 296-98. The sources for John"s life are Palladius"s Dialogue on the Life of St. John Chrysostom, and the church histories of Socrates (6.21-23, 7.25-45), Sozomen (8.8-28), and Theodoret (5.27-36).
6. 켈리에 의하면 흔히 생각된 것처럼 사령관은 아니었다. Golden Mouth, 4-5.
7. 황제 디오클레티안은 제국을 관구로 불려지는 12개의 행정 구역들을 나누었다. 오리엔 지역은 현대 터기 지방의 홍해로부터 남동부 지방으로 뻗쳐있는 지역이다.
8. 리바니우스(Libanius)의 탁월함으로 보려면 다음 책을 보라 George Kennedy, Greek Rhetoric Under Christian Emperor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3), 150-63.
9. O.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tkirchlichen Literatur, as cited by Kelly, Golden Mouth, 7 n. 4.
10. Sozomen, Hist. Eccl., 8.2. Quoted in Kelly, Golden Mouth, 8.
11. Kelly, Golden Mouth, 15-16.
12. Ibid., 18-20. 요한이 풍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안디옥 학파의 성경 해석에 헌신한 것은 그가 디오도르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13. 20년 후에 요한은 그의 ‘성직론’(On the Priesthood’)에서 이 체험을 기록한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이 일반적인 대화 형식으로 비현실적인 구도에서 이 이야기를 여기는 반면에 켈리(Golden Mouth, 27-28)가 역사성을 고려한 것은 설득력있는 근거이다. 그가 또한 그 두 사람이 주교보다는 성직자로 임명된 것으로 그 순서를 주목한 것은 옳다.
14. 실피오스(Silpios) 산의 지도에 대해서 다음 책을 보라 Kelly, Golden Mouth, 303.
15. Ibid., 39.
16. 창세기 설교집에 과한 그의 번역서 서론에서(The Homilies on Genesis of St. John Chrysostom), FC, vol. 74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86), 6, 로버트 힐(Robert C. Hill)은 이것들이 요한이 집사였던 기간에 행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당시에 감독이 집사에게 설교하도록 그의 권위를 위임하는 것을 의심한다.
17. Kelly, Golden Mouth, 57.
18. 이것이 켈릭 책의 7장의 제목이다., Golden Mouth.
19. 그러나 대감독, 대주교(archbishop, patriarch)라는 칭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20. 지난 세기에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에서 나타난 모세의 초상화는 동방 정교회의 성인 축제일들을 위한 의식서들에서 기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Ibid., 106.
21. Kelly, Golden Mouth, 55-71, 83-103, 128-44; Kennedy, Greek Rhetoric Under Christian Emperors, 241-54; R. A. Krupp, Shepherding the Flock of God: The Pastoral Theology of John Chrysostom, American University Studies, series 7, Theology and Religion, vol. 101 (New York: Peter Lang, 1991), 51-69; Geoffrey Wainwright, "Preaching as Worship" and "The Sermon and the Liturgy," GOTR 28 (1983): 325-49.
22. Hill, St. John Chrysostom, 10.
23. Ibid. 그래서 호의적이고 통찰력있는 비평가인 존 브러더스(John A. Broadus)는 말했다. 19세기 말의 구성이 단단히 이루어진 강해 설교와 크리소스톰의 설교들을 비교하는 것은 오해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기도 모임은 더 나은 유비를 제공해준다. "St. Chrysostom as a Homilist," NPNF1 13:6.
24. Hom. Matt. 1.5-7.
25. Ibid., 1.6.
26. Ibid., 3.5.
27. Hom. Acts 1.
28. Hom. 1 Cor. 2.1.
29. Hom. Col. 1.
30. The root meaning of theoria의 원래 의 is의 원래 의미는 시각(sight)이다. 같은 어원의 동사가 본다, 살피다, 관찰하다, 지각하다, 알아차리다, 경험하다로 확장되었다.
31. Robert M. Grant and David Tracy, A Short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2nd ed., rev. and enl. (Philadelphia: Fortress, 1984), 66.
32. Maurice Wiles, "Theodore of Mopsuestia as a Representative of the Antiochene School," in From the Beginnings to Jerome, vol. 1 of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Bible, ed. P. R. Ackroyd and C. F. Eva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489-510.
33. G. L. Prestige, Fathers and Heretics: Six Studies in Dogmatic Faith with Prologue and Epilogue (London: SPCK; New York: Macmillan, 1940), 120-49.
34. Graham Neville, trans. Saint John Chrysostom: Six Books on the Priesthood(London: SPCK, 1964).
35. Broadus, "St. Chrysostom as a Homilist," NPNF1 13:v. 케네디(Kennedy)는 말했다. “그가 우선적으로 작가가 아니라 웅변가라는 것과 그가 다양한 지적 능력을 가진 회중들에게 말했다는 사실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는 회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핵심을 강조해야만 했다” See Greek Rhetoric Under Christian Emperors,252.
36. Kennedy, Greek Rhetoric Under Christian Emperors, 248. Cf. Sister Mary Albania Burns, Saint John Chrysostom"s Homilies on the Statues: A Study of Their Rhetorical Qualities and Form,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atristic Studies, vol. 22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30).
37. On the Priesthood, 5.5.
38. George A. Kennedy, Classical Rhetoric and Its Christian and Secular Tradition from Ancient to Modern Times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45.
39. 지난 8주간 안디옥에서 사순절 기간 때에.
40. Kelly, Golden Mouth, 74.
41. 그의 최초의 결정은 그 동상들이 있던 도시들을 빼앗는 것이었다. 극장과 경기장, 공공 목욕탕들을 문닫게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빵공급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42. 21개의 설교 중에 첫 번째 설교는 폭동 전에 설교되었다.
43. Kelly, Golden Mouth, 72-82.
44. 동상에 관한 설교는 학자들에 의해서 많은 다른 방식들로 해석되어져 왔다. See, e.g., David Hunter, "Preaching and Propaganda in Fourth-Century Antioch: John Chrysostom"s Homilies on the Statues" in Preaching in the Patristic Age: Studies in Honor of Walter J. Burghardt, S.J., ed. David G. Hunter (New York: Paulist Press, 1989), 119-38; Peter Brown, Power and Persuasion in Late Antiquity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2), 106; and Averil Cameron, Christianity and the Rhetoric of Empire: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iscourse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136-37.
45. Kennedy, Greek Rhetoric Under Christian Emperors, 247.
46. NPNF1 9:331.
47. Ibid., 9:335.
48. Ibid., 9:343.
49. See part 2, chapter 7, below.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음을 훈련하면서 갖게된 방법들의 경향에 관해서 다음 책을 보라. A Faithful Church: Issues in the History of Catechesis, ed. John H. Westerhoff III and O. C. Edwards Jr. (Wilton, Conn.: Morehouse- Barlow, 1981).
50. 이것들에 어거스틴이 경쟁자들에게 한 주기도문에 관한 4가지 설교를 더할 수 있다.(Sermons on Selected Lessons of the Gospels, 6-9, NPNF1 7:274-89).
51. 이 연속 설교의 서론과 이러한 형식으로 설교된 설교들에 관한 예를 보려면 다음을 보라. Edward Yarnold, The Awe-Inspiring Rites of Initiation: Baptismal Homilies of the Fourth Century (Slough: St. Paul Publications, 1972); see also Leonel L. Mitchell, "The Development of Catechesis in the Third and Fourth Centuries: From Hippolytus to Augustine" in Westerhoff and Edwards, A Faithful Church, 49-78. 야놀드의 저작은 네 설교자 각 각의 교리문답적인 설교를 볼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그는 어떤 형태의 전체 본문도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For that, see St. John Chrysostom: Baptismal Instructions, translated and annotated by Paul W. Harkins. ACW, no. 31 (Westminster, Md.: Newman Press, 1963); The Works of Saint Cyril of Jerusalem, 2 vols., trans. and intro. Leo P. McCauley and Anthony A. Stephenson. FC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69); or St. Cyril of Jerusalem"s Lectures on the Christian Sacraments: The Procatechesis and the Five Mystagogical Catecheses, ed. F. L. Cross (1951; reprint, Crestwood, N.Y.: St. Vladimir"s Seminary Press, 1986); St. Ambrose: Theological and Dogmatic Works, trans. Roy J. Deferrari. FC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63); Theodore of Mopsuestia, Commentary on the Nicene Creed, ed. and trans. A. Mingana (Cambridge: Woodbrooke Studies 5, 1932); Theodore of Mopsuestia, Commentary on the Lord"s Prayer and on the Sacraments of Baptism and the Eucharist, ed. and trans. A. Mingana (Cambridge: Woodbrooke Studies 6, 1933). On the theology of these four series of catechetical homilies, see Enrico Mazza, Mystagogy: A Theology of Liturgy in the Patristic Age, trans. Matthew J. O"Connell (New York: Pueblo, 1989).
52. John Chrysostom, Huit Cat?h?es Baptismales. SC, no. 5 (Paris: Cerf, 1957).
53. A. Papadopoulos-Kerameus, Varia graeca sacra (St. Petersburg, 1909). 이 책은 스트브로니키타 사본 중에 네 번째 설교를 포함한다. Cf. Paul W. Harkins, St. John Chrysostom: Baptismal Instructions, 10, 201 n. 14.
54. PG 49:221-40.
55. 이것들은 하킨스의 번역 순서와 반대로 나탄나다. 390 시리즈는 설교 1-8을 포함하고 368 시리즈는 설교 9-12를 포함한다. 날짜는 물론 불명확하다.
56. Cited in Harkins, St. John Chrysostom: Baptismal Instructions, 14.
57. Ibid., 205 n. 1. 하킨스는 단어들이 전형적인 요한의 것이라고 말한다. 58. Mitchell, "The Development of Catechesis in the Third and Fourth Centuries," 66.
59. Ibid., 70. 각 설교의 형식은 ‘종합’함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성례 의식에서 되어지는 행위들에 관해 논의되어진 이야기들을 말한다. 설교의 구성은 그 주제에 관한 그렇게 많은 각주를 함으로서 종합된 본문에 주석들로 되어 있다.
60. Yarnold, The Awe-Inspiring Rites of Initiation, 74.
61.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부활절 전후로 강론된 그 설교들 사이에는 약간의 변형이 존재한다. 요한과 데오도르는 그들의 문답자들에게 그들이 세례받기 전에 가르친다. 반면에 키릴과 암브로즈는 먼저 경험하고 후에 설명하는 것이 그들에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명 모두 청중들이 성찬식에 참여할 때까지는 성찬식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연기하였다.
62. 키릴의 신학적 입장에 관해서 다음 책을 보라. Anthony A. Stephenson and Leo P. McCauley, introduction to The Works of St. Cyril of Jerusalem, especially 34-60.
63. Ibid., 17-21.
64. 이 모든 것들은 십자군에 의해 세워진 교회의 거룩한 무덤 안에 지금 봉해져 있다.
65. 둘러싸인 바위는 산돌로 형성된 무덤의 벽들보다 약간 더 남기려고 잘라졌다.
66. 나는 지금 교회법상으로가 아닌 지리학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67. 이 문장들의 대부분의 삽입구는 논쟁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대부분의 학자들의 주요한 의견을 대표한다.
68. Peregrinatio, 24, trans. and annotated by George E. Gingras in Egeria: Diary of a Pilgrimage, ACW (New York: Newman Press, 1970), 89.
69. 예루살렘 교회는 주일 뿐만 토요일에도 금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순절의 40일 기간은 8주를 넘어섰다. 에게리아가 매일 가르침들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키릭의 연속설교는 오직 2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좋은 해석은 문답자가 헬라말을 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시리아 말을 하는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강론이 두 번 두어졌다는 것이다.
70. 5주후라기 보다는 5번의 강론으로 즉시 전달된 교훈들에 있어서 에게리아의 보고서와 키릴의 가르침은 약간의 불일치가 나타난다.
71. Peregrinatio, 45-47. 예루살렘과 밀란에서는 안디옥과는 달리 세례가 견식있는 사람이 경험하기 전에는 가르쳐지지 않았다. 초신자(disciplina arcani)에게 지식을 허락하지 않는 전통과 그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가르침이 실제화되지 않는 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72. 따라서 앙겔로 파레디와 요셉 코스텔로이(Angelo Paredi- Saint Ambrose: His Life and Times, trans. M. Joseph Costelloe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4])는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빛 안에서 암브로즈에 관한 모든 것을 해석한다. 반면에 닐 맥클린(Neil B. McLynn -Ambrose of Milan: Church and Court in a Christian Capital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4])은 가장 최악의 빛으로 그것을 본다. 좋은 연구서를 보려면 다음을 참고하라. Hans von Campenhausen, Men Who Shaped the Western Church, trans. Manfred Hoffman (New York: Harper & Row, 1964), 87-128.
73. 전문가는 얼마나 그들이 귀족적이었는가에 대해 논쟁한다. 그러나 가장 회의적인 사람도 로마의 기득권의 변방에 그들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74. Lewis J. Swift, "Ambrose," in EEC, ed. Everett Ferguson et al. (New York and London: Garland, 1990), 30.
75. Paredi, Saint Ambrose, 258. 맥클린은 성경적 권위를 가정했기 때문에 그의 설교들이 성경적인 인상을 주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그의 설교들에서 그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서 배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See Ambrose of Milan, 238-40.
76. 신경에 관한 설교는 신경에 관한 설명(Explanatio symboli)으로 불려졌다. 신경(symbol)은 신조에 관한 용어이다. 신경의 전달은 traditio symboli로 알려졌다. 감독 뒤에서 그 신경을 암송하는 것은 reditio symboli로 불려졌다.
77. Mitchell, "The Development of Catechesis in the Third and Fourth Centuries," 72.
78. Maria Grazia Mara, "Ambrose of Milan, Ambrosiaster, and Nicetas," in The Golden Age of Latin Patristic Literature from the Council of Nicea to the Council of Chalcedon, vol. 4 of Patrology, ed. Angelo di Berardino, intro. Johannes Quasten, trans. Placid Solari (Westminster, Md.: Christian Classics, 1986), 172.
79. Yarnold, The Awe-Inspiring Rites of Initiation, 103 n. 17.
80. 암브로즈는 유대인의 규례보다 그리스도인의 성례가 더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 See, e.g., de Sac. 4.9.
81. Augustine, Confessions 5.13.23, NPNF1, 88.
82. Kennedy, Greek Rhetoric Under Christian Emperors, 255-56
http://blog.daum.net/kkho1105/2432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