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나 아볼로나 다 너희 것이요
바울이나 아볼로나 다 너희 것이요
토마스 왓슨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바울이나 아볼로라는 이름은 약한 자나 강한 자나 가릴 것 없이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너희의 것이요“라는 말은 그들의 사역이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세우기 위하여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떤 부분만을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사역이다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교인들이 어떤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한 영혼이 죄로 인하여 심한 고통 가운데 있으면 그 영혼에게 위안의 말씀을 공급해 주는 것이 목사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마치 유모처럼 젖을 먹이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는 말은 목사의 모든 은사, 모든 덕망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임을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독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것은 '자신의 은사를 수건 속에 감추는' 것이 되고 합니다. 사람은 받은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한정시키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유하시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마치 감송향처럼 온 집안에 진동하는 향기여야 합니다. 목사는 가르침이나 삶에서 감미로운 향기를 내뿜도록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갖 유형의 향내로 가득 찬 정원으로 만드는 자여야 합니다. 또한 목사들은 영혼들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해서 비추이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소스톰의 청중들은 그가 강단에 있는 태양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자신들을 비추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생수가 솟아나는 샘터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이 샘물에 독약이 들어가서는 안되듯이 목사들 역시 입이 봉해지거나 닫혀져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사자는 곡식을 쌓아두고 있는 곡물창고이며, 동시에 그 곡식들을 퍼서 내주는 관리인이기도 합니다. 아볼로의 입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떨어지는 꿀송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신성한 꽃들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이 꽃들은 죽지 않는 것들이기는 하나 쉽게 메말라 버립니다. 따라서 아볼로는 반드시 물이 담긴 화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있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입에 부어져야 합니다.
한 성도로서의 바울은 모든 것이 다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목회자로서 바울은 자신의 것이 아니요 교회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부터 다음 세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가 너희의 것’이라면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모두 다 여러분들의 유익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별도 별빛을 내고, 가장 작은 이슬 방울도 촉촉히 적시듯이 가장 연약한 목사일지라도 결코 천사보다 못한 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도 요긴하게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은사들은 다를지라도 모든 사역자들은 다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가장 약한 목사도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을법에 있어서 모든 레위인들이 다 제사에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론의 반열에 선 제사장만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 자들입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들은 법궤를 메고 가는 일을 도왔습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일부는 돌을 날랐고 어떤 이들은 벌목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어쩌면 못만 나르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다 유용하게 사용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 건물을 든든히 세워가는 데 큰 일을 담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역시 영적 건물과 같습니다. 어떤 목사는 돌을 가져오며, 어떤 목사는 남보다 탁월하고 뛰어나며, 어떤 목사는 벌목이나 하는 덜 뛰어난 자일 수도 있습니다. 못질을 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데 필요한 자들인 것입니다.
목회에 있어서 작은 못 하나라도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굳게 붙들려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 증 그 어느 누구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그들 모두가 다 사도가 아니고, 전도자도 아니고,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기억할 것은 '이들 모두가 다 너희 것이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종종 하나님은 그들의 수고에 면류관을 씌우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많은 고기를 그들의 그물에 걸리도록 만드십니다. 비록 다채다능한 자는 아닐지라도 보다 더 충실한 사역자일 수 있습니다. 머리가 비상한 목사가 아니더라도 마음은 누구보다도 뜨점고 열렬한 목사일 수 있습니다. 대사가 메시지를 전할 때 부들부들 떨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을 보면 그는 존귀한 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가 다 너희의 것'이라면 모든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여러분들의 착함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그리스도를 잘 연결시켜주기 위하여 애쓰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바울과 아볼로를 사랑하십시오. 목사의 모든 수고와 기도, 눈물, 해산의 고통 및 사랑의 수고는 다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법 적용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향한 여러분들의 사랑이 표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람을 어떻게 보이시겠습니까?
첫째, 목사를 존경함으로 우리의 사랑을 나타냅시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사신들은 정확히 이야기해서 한가지 업무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너희 가운데 수고하는 그들'을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영을 이 땅에 보내신 것 외에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그의 바울과 아볼로를 보내신 것만큼 더 세상을 존귀하게 여기 신 처사는 없습니다. 열왕들이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도록 양육하는 아버지와 같다면 목사들은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낳은 아버지 입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도록 사용된 도구라면 영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은혜를 가져다 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목사를, 애굽사람들이 목자들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큼도 알아주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애굽인들은 목자들을 몹시 역겨워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는 자들을 알아주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영의 아버지로서 행하는 목회활동을 통해서 그들을 아는 일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주님을 알았으나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대로 배나 더 존경할 자인 히나님의 아들로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사역를 위하여 포도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 있지는 않습니까?
언약의 두 가지 인치심, 즉 세례와 성찬예식으로 인봉된 목회사역이 아닙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설교자 없이는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바울과 아볼로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비록 그들은 도구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의 맡은 시역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둘째, 여러분은 목사의 사명의식을 더욱 견고히 해줌으로써 여러분의 목사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특별히 목사가 교묘하게 억울한 비웃음을 당한다든지 중상모략을 당할 때 힘이 되어줌으로 목사를 향한 성도의 사랑 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행할 때에 여러 분의 목사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목사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주십시오 그들의 편에 서십시오 콘스탄틴대제는 목사를 매우 존귀히 여긴 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게 목사들을 비난하는 상소가 올라오면 언제나 그는 그 상소문들을 읽기보다는 불에 태워버렀다고 합니다. 애굽사람이 만든 법에서는 만일 사람이 도둑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도 그를 구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목사가 목사로서의 명예를 앗아가는 도둑들의 조소에 처해 있는 것을 볼 때 그 소굴에서 목사를 구해내도록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의 목회자들을 깎아내리려고 애쓰는 무리들을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목사는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이기에 여러분은 그들이 안심하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을 온전히 세우기 위하여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가 너희의 것'이라면 그들은 여러분의 신앙을 온전히 세우기 위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사역을 통해서 유익을 얻도록 애써야 합니다. 즉, 그들의 말씀과 가르침에서 유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여러분에게로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에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통해서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들은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덕을 세운다' 또는 '유익을 위한 것이다' 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하면, 즉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믿으면 말씀으로 변화되어진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준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과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로 이끌림 받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말씀은 형판에 부어진 날이나 은으로부터 얻어진 메타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선포된 말씀의 형판에 내맡겨 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뿌려진 씨가 영적인 것이듯이 우리의 심령도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별이 꽃들로부터 꿀을 빨아 올리듯이 우리도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벌은 자신의 벌집에서 꿀을 만들어 법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귀한 진리를 빨아들일 때 우리 마음의 벌집에서 그 진리를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꿀에 의하여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바울과 아볼로의 수고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힘쓰도록 합시다. 잘 듣는 청중은 요단강에서부터 나온 나아만장군처럼 말씀의 사역으로 치유되는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깨끗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된 것처럼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심령이 고침을 받아 새롭게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봤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들은 말씀으로 인하여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심령은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암브로스는 야곱의 우물가에 죄인으로서 물 길러 온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이 집에 돌아갈 때는 한 여선지자로 변하여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로 하여금 죽은 침상을 향하여 말하게 하지 마십시요. 풀무불이 타올라 납덩이가 녹아 내리게 하십시오. 목사들은 자신의 온 정력을 기울여 주의 말씀을 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들에게 지옥으로 가라고 설교하지 않는 한 그들의 수고가 어떤 일을 이루는지는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장하는 것을 열매로 보지 않는 한 목사의 수고가 잘되고 있는 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목사의 즐거움이란 성도들에게서 발견되는 열매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열매들은 주님 안에서 성도 자신들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자라도록 힘쓰십시오 어떤 이는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말씀을 들음으로 더 악해지기도 합니다. 풀리니 교부는 자꾸 도망치려는 물고기를 보면서 말하기를 '악한 이들은 더욱더 악한 것으로 윤기를 더해간다' 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죽은 마음으로 치닫습니다. 탐욕과 배교를 일삼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를 보면 순교사를 기록하는 것보다 배교사(背敎史)를 기록하는 것이 훨씬 용이한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매일 지옥을 향하여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여러분 자신들에게 내리는 성령의 이슬 아래에서 자신이 잘 자라도록 하십시오. 목사로 하여금 허공에 외치는 자들이 되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혀가 집필자의 편이 되어 쓰려고 할 때 성도들의 마음은 글씨가 쓰여지지 않는 기름기 묻은 마음이라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은혜 안에서 자라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생각할 때 심령 속에 메마른 구석이 있다고 생각되면 고치려고 애쓰십시오 사람들이 말씀 사역 안에서 성장하도록 애를 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목사의 큰 영광입니다. 목사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칭찬의 서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자신의 영광이요 면류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목사는 달리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울에 의하여 심겨진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에 대하여 들을 때 그것이 바울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에 복을 주신 것이라는 분명한 증명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성장 자체가 바울의 즐거움이며 면류관이기에 그 어떤 서신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자신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걸어다니는 편지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이것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목사에게는 없습니다. 목사가 목회지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나 떠날 때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성도들을 보는 것이야말로 큰 영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진보를 사람들에게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바울과 아볼로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돈독하게 도와주는 자들입니다. 만일 그들이 밤새도록 땅을 갈았는데 여러분들에게서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하였다면 여러분들은 사단이 쳐놓은 그물에 잡혀있는 고기들이 아닌지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http://blog.daum.net/kkho1105/5228
토마스 왓슨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바울이나 아볼로라는 이름은 약한 자나 강한 자나 가릴 것 없이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너희의 것이요“라는 말은 그들의 사역이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세우기 위하여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떤 부분만을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사역이다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교인들이 어떤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한 영혼이 죄로 인하여 심한 고통 가운데 있으면 그 영혼에게 위안의 말씀을 공급해 주는 것이 목사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마치 유모처럼 젖을 먹이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는 말은 목사의 모든 은사, 모든 덕망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임을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독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것은 '자신의 은사를 수건 속에 감추는' 것이 되고 합니다. 사람은 받은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한정시키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유하시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마치 감송향처럼 온 집안에 진동하는 향기여야 합니다. 목사는 가르침이나 삶에서 감미로운 향기를 내뿜도록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갖 유형의 향내로 가득 찬 정원으로 만드는 자여야 합니다. 또한 목사들은 영혼들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해서 비추이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소스톰의 청중들은 그가 강단에 있는 태양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자신들을 비추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생수가 솟아나는 샘터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이 샘물에 독약이 들어가서는 안되듯이 목사들 역시 입이 봉해지거나 닫혀져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사자는 곡식을 쌓아두고 있는 곡물창고이며, 동시에 그 곡식들을 퍼서 내주는 관리인이기도 합니다. 아볼로의 입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떨어지는 꿀송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신성한 꽃들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이 꽃들은 죽지 않는 것들이기는 하나 쉽게 메말라 버립니다. 따라서 아볼로는 반드시 물이 담긴 화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있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입에 부어져야 합니다.
한 성도로서의 바울은 모든 것이 다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목회자로서 바울은 자신의 것이 아니요 교회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부터 다음 세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가 너희의 것’이라면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모두 다 여러분들의 유익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별도 별빛을 내고, 가장 작은 이슬 방울도 촉촉히 적시듯이 가장 연약한 목사일지라도 결코 천사보다 못한 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도 요긴하게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은사들은 다를지라도 모든 사역자들은 다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가장 약한 목사도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을법에 있어서 모든 레위인들이 다 제사에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론의 반열에 선 제사장만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 자들입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들은 법궤를 메고 가는 일을 도왔습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일부는 돌을 날랐고 어떤 이들은 벌목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어쩌면 못만 나르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다 유용하게 사용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 건물을 든든히 세워가는 데 큰 일을 담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역시 영적 건물과 같습니다. 어떤 목사는 돌을 가져오며, 어떤 목사는 남보다 탁월하고 뛰어나며, 어떤 목사는 벌목이나 하는 덜 뛰어난 자일 수도 있습니다. 못질을 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데 필요한 자들인 것입니다.
목회에 있어서 작은 못 하나라도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굳게 붙들려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 증 그 어느 누구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그들 모두가 다 사도가 아니고, 전도자도 아니고,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기억할 것은 '이들 모두가 다 너희 것이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종종 하나님은 그들의 수고에 면류관을 씌우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많은 고기를 그들의 그물에 걸리도록 만드십니다. 비록 다채다능한 자는 아닐지라도 보다 더 충실한 사역자일 수 있습니다. 머리가 비상한 목사가 아니더라도 마음은 누구보다도 뜨점고 열렬한 목사일 수 있습니다. 대사가 메시지를 전할 때 부들부들 떨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을 보면 그는 존귀한 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가 다 너희의 것'이라면 모든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여러분들의 착함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그리스도를 잘 연결시켜주기 위하여 애쓰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바울과 아볼로를 사랑하십시오. 목사의 모든 수고와 기도, 눈물, 해산의 고통 및 사랑의 수고는 다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법 적용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향한 여러분들의 사랑이 표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람을 어떻게 보이시겠습니까?
첫째, 목사를 존경함으로 우리의 사랑을 나타냅시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사신들은 정확히 이야기해서 한가지 업무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너희 가운데 수고하는 그들'을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영을 이 땅에 보내신 것 외에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그의 바울과 아볼로를 보내신 것만큼 더 세상을 존귀하게 여기 신 처사는 없습니다. 열왕들이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도록 양육하는 아버지와 같다면 목사들은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낳은 아버지 입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도록 사용된 도구라면 영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은혜를 가져다 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목사를, 애굽사람들이 목자들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큼도 알아주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애굽인들은 목자들을 몹시 역겨워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는 자들을 알아주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영의 아버지로서 행하는 목회활동을 통해서 그들을 아는 일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주님을 알았으나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대로 배나 더 존경할 자인 히나님의 아들로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사역를 위하여 포도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 있지는 않습니까?
언약의 두 가지 인치심, 즉 세례와 성찬예식으로 인봉된 목회사역이 아닙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설교자 없이는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바울과 아볼로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비록 그들은 도구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의 맡은 시역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둘째, 여러분은 목사의 사명의식을 더욱 견고히 해줌으로써 여러분의 목사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특별히 목사가 교묘하게 억울한 비웃음을 당한다든지 중상모략을 당할 때 힘이 되어줌으로 목사를 향한 성도의 사랑 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행할 때에 여러 분의 목사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목사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주십시오 그들의 편에 서십시오 콘스탄틴대제는 목사를 매우 존귀히 여긴 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게 목사들을 비난하는 상소가 올라오면 언제나 그는 그 상소문들을 읽기보다는 불에 태워버렀다고 합니다. 애굽사람이 만든 법에서는 만일 사람이 도둑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도 그를 구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목사가 목사로서의 명예를 앗아가는 도둑들의 조소에 처해 있는 것을 볼 때 그 소굴에서 목사를 구해내도록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의 목회자들을 깎아내리려고 애쓰는 무리들을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목사는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이기에 여러분은 그들이 안심하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을 온전히 세우기 위하여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가 너희의 것'이라면 그들은 여러분의 신앙을 온전히 세우기 위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사역을 통해서 유익을 얻도록 애써야 합니다. 즉, 그들의 말씀과 가르침에서 유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여러분에게로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에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통해서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들은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덕을 세운다' 또는 '유익을 위한 것이다' 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하면, 즉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믿으면 말씀으로 변화되어진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준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과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로 이끌림 받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말씀은 형판에 부어진 날이나 은으로부터 얻어진 메타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선포된 말씀의 형판에 내맡겨 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뿌려진 씨가 영적인 것이듯이 우리의 심령도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별이 꽃들로부터 꿀을 빨아 올리듯이 우리도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벌은 자신의 벌집에서 꿀을 만들어 법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귀한 진리를 빨아들일 때 우리 마음의 벌집에서 그 진리를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꿀에 의하여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바울과 아볼로의 수고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힘쓰도록 합시다. 잘 듣는 청중은 요단강에서부터 나온 나아만장군처럼 말씀의 사역으로 치유되는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깨끗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된 것처럼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심령이 고침을 받아 새롭게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봤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들은 말씀으로 인하여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심령은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암브로스는 야곱의 우물가에 죄인으로서 물 길러 온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이 집에 돌아갈 때는 한 여선지자로 변하여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로 하여금 죽은 침상을 향하여 말하게 하지 마십시요. 풀무불이 타올라 납덩이가 녹아 내리게 하십시오. 목사들은 자신의 온 정력을 기울여 주의 말씀을 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들에게 지옥으로 가라고 설교하지 않는 한 그들의 수고가 어떤 일을 이루는지는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장하는 것을 열매로 보지 않는 한 목사의 수고가 잘되고 있는 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목사의 즐거움이란 성도들에게서 발견되는 열매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열매들은 주님 안에서 성도 자신들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자라도록 힘쓰십시오 어떤 이는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말씀을 들음으로 더 악해지기도 합니다. 풀리니 교부는 자꾸 도망치려는 물고기를 보면서 말하기를 '악한 이들은 더욱더 악한 것으로 윤기를 더해간다' 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죽은 마음으로 치닫습니다. 탐욕과 배교를 일삼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를 보면 순교사를 기록하는 것보다 배교사(背敎史)를 기록하는 것이 훨씬 용이한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매일 지옥을 향하여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여러분 자신들에게 내리는 성령의 이슬 아래에서 자신이 잘 자라도록 하십시오. 목사로 하여금 허공에 외치는 자들이 되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혀가 집필자의 편이 되어 쓰려고 할 때 성도들의 마음은 글씨가 쓰여지지 않는 기름기 묻은 마음이라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은혜 안에서 자라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생각할 때 심령 속에 메마른 구석이 있다고 생각되면 고치려고 애쓰십시오 사람들이 말씀 사역 안에서 성장하도록 애를 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목사의 큰 영광입니다. 목사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칭찬의 서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자신의 영광이요 면류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목사는 달리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울에 의하여 심겨진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에 대하여 들을 때 그것이 바울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에 복을 주신 것이라는 분명한 증명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성장 자체가 바울의 즐거움이며 면류관이기에 그 어떤 서신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자신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걸어다니는 편지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이것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목사에게는 없습니다. 목사가 목회지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나 떠날 때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성도들을 보는 것이야말로 큰 영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진보를 사람들에게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바울과 아볼로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돈독하게 도와주는 자들입니다. 만일 그들이 밤새도록 땅을 갈았는데 여러분들에게서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하였다면 여러분들은 사단이 쳐놓은 그물에 잡혀있는 고기들이 아닌지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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