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
Ⅱ. 죤 위클리프
6. 종교개혁자로서의 등장
그는 이제 그가 강사가 되었던 루터 워드(Lutter Worth)에서 설교를 하고, 옥스퍼드(Oxford)에서 강의를 하며, 교황권의 남용과 오류에 대해 보다 더 직접적인 공격을 하고 이제는 단순히 형식과 의식들 속에만 형식적으로 남아있고 없어져 버린 기독교의 진정한 정신을 선포하는 등의 일을 하는 확고한 개혁자로서, 보다 담대하게 부각되었다. 그는 성경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사상의 다이나마이트를 가지고 악몽처럼 인간의영혼을 괴롭히고 유럽을 노예화한 거대한 영적 독제체재의 심장부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7. 이룩한 실재적인 일들
그는 철저히 실천적인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상을 활용시키기 위해 그는 보다 효과적인 일들을 이루어 놓았다. 그는 '걸식 수도사'라는 이름 하에 조잡한 모직의 옷과 거친 적갈색 겉옷을 걸치고 오직 '순수한 복음'만을 외치며 순회하는 설교자들의 무리를 훈련시키기 시작하였고 많은 대중들은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서 진리를 들었다.
8. 위클리프를 향한 비난
이 새로운 가르침이 교황의 대리인들에게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1377년 그는 런던의 감독인 코오트네이(Courtenay)에 의해, 그의 교리들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대주교 교구회의에 나타나도록 호출되었으나 그 회합은 무질서 속에 깨어졌다. 이단의 진술들이 그의 글들 속에서 발췌되어졌고 비난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세력있는 친구들에 의해 그의 주장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섰던 것이다. 그의 적들에 의해 협박되어지는 대신에 그는 그것의 내적인 핵심이며, 최후의 거점인 화체설 교의를 포함한 교황권의 전체 조직을 공격해 나아갔다.
9. 역사 속의 새로운 일
그는 역사의 새로운 것을 결정했다.그는 평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했다. 그린(Green)은 "사람의 훌륭한 재능을 운명짓는 변형에 의해 그 학자는 논설의 저자로 변형되어 갔다"라고 했다. 그는 수도사들에 대해서 유우머와 재치가 넘치는 영국식 표현으로 논설을 쓰고 또 썼다. 로마의 연대기 기록자는 그 논설을 읽고 투덜거리기를, "봄철의 풀잎 같이 그의 펜 아래에서 꽃봉오리가 맺어졌다"라고 했다.
http://blog.daum.net/kkho1105/6351
Ⅱ. 죤 위클리프
6. 종교개혁자로서의 등장
그는 이제 그가 강사가 되었던 루터 워드(Lutter Worth)에서 설교를 하고, 옥스퍼드(Oxford)에서 강의를 하며, 교황권의 남용과 오류에 대해 보다 더 직접적인 공격을 하고 이제는 단순히 형식과 의식들 속에만 형식적으로 남아있고 없어져 버린 기독교의 진정한 정신을 선포하는 등의 일을 하는 확고한 개혁자로서, 보다 담대하게 부각되었다. 그는 성경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사상의 다이나마이트를 가지고 악몽처럼 인간의영혼을 괴롭히고 유럽을 노예화한 거대한 영적 독제체재의 심장부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7. 이룩한 실재적인 일들
그는 철저히 실천적인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상을 활용시키기 위해 그는 보다 효과적인 일들을 이루어 놓았다. 그는 '걸식 수도사'라는 이름 하에 조잡한 모직의 옷과 거친 적갈색 겉옷을 걸치고 오직 '순수한 복음'만을 외치며 순회하는 설교자들의 무리를 훈련시키기 시작하였고 많은 대중들은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서 진리를 들었다.
8. 위클리프를 향한 비난
이 새로운 가르침이 교황의 대리인들에게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1377년 그는 런던의 감독인 코오트네이(Courtenay)에 의해, 그의 교리들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대주교 교구회의에 나타나도록 호출되었으나 그 회합은 무질서 속에 깨어졌다. 이단의 진술들이 그의 글들 속에서 발췌되어졌고 비난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세력있는 친구들에 의해 그의 주장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섰던 것이다. 그의 적들에 의해 협박되어지는 대신에 그는 그것의 내적인 핵심이며, 최후의 거점인 화체설 교의를 포함한 교황권의 전체 조직을 공격해 나아갔다.
9. 역사 속의 새로운 일
그는 역사의 새로운 것을 결정했다.그는 평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했다. 그린(Green)은 "사람의 훌륭한 재능을 운명짓는 변형에 의해 그 학자는 논설의 저자로 변형되어 갔다"라고 했다. 그는 수도사들에 대해서 유우머와 재치가 넘치는 영국식 표현으로 논설을 쓰고 또 썼다. 로마의 연대기 기록자는 그 논설을 읽고 투덜거리기를, "봄철의 풀잎 같이 그의 펜 아래에서 꽃봉오리가 맺어졌다"라고 했다.
http://blog.daum.net/kkho1105/6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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