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릴백의 언약신학&세대주의 비평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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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며칠전에 피터 릴백의 글을 읽고 정리해둔 내용입니다. 아래의 율법의 기능에 대한 토론들을 보고서, 오해의 단초가 어디서 발생하고 있는지가 감지되어, 아래의 글을 권해 드립니다.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언약신학과 세대주의적인 측면에서 이해를 해보면, 우리의 인식을 더욱 넓고 깊게 들여다 볼수 있는 통찰을 줄수 있을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구약과 신약을 어떠면에서 연속과 불연속으로 볼것인가?에 따른 관점이 율법이 신약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느냐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언약신학은 구약까지도 생명의 연속적인 통일성안에서 보기 때문에, 율법의 기능이 좀더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방법적인 측면에서만 불연속으로 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지내던 그동안의 생명의 체험과 지식만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기 보다는 좀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보려는 관점의 변화가 더욱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결과가 될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언약신학과 세대주의에 대한 글을 읽고서 정리(하나로) 강의1) 칼빈의 언약적 해석학과 이에 따른 적용이 어떻게 세대주의 해석학에 대조되어 있는가 1.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의 차이점들 # 세대주의 -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 - 하나님의 백성은 둘임 - 전천년왕국 - 하나님의 왕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음 (전적으로 미래적) # 언약신학 : -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임 - 하나님의 왕국은 이미 도래했음, (전적으로 미래적이지 않음) * 앞으로 더 훌륭한 것이 도래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리고 아직 아니'(already and not yet)이다. #t세대주의 -19C말 영국의 폴리머스 , 존 넬슨 다비의 가르침을 받아 시작 #언약신학 -초대교회부터 -어거스틴 : 구약은 숨겨진 신약이다. 신약은 드러난 구약이다. : 성경전체가 예수에 관한 것 -쯔빙글리 :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은 <언약>이라는 결론 -1534년, 헨리 불링거 : 유일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 또는 언약에 관하여 -언약신학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토대가 된다. # 언약공식 -칼빈 :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백성은 단수임) -창세기17장, 레위기26장, 에레미야32장, 에스겔36장, 고후6장, 히8장, 계21장 -에레미야31장 : 옛 언약과 새 언약 #칼빈 : 언약은 언제나 본질에서 동일하지만, 경륜에서는 그것이 구별 된다 1. 세상의 시작부터 같은 율법과 같은 교리 2. 그리스도는 언약들의 중재자이시다. 3. 둘 다 칭의의 은혜를 말한다. 4. 성례전은 양쪽에서 동일하게 중요하다. 5. 양쪽 모두 영생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6. 양쪽에 적용되는 일반적 언약의 공식은 영생을 포함한다. #비계가 있는 건물의 예 -건물이 건축될 때에 그 주위에 비계가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건물이 완성되면 비계는 해체되고 제거되는데 더 이상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구약 시대에는 은혜의 언약이 동물 제사, 관례들과, 음식에 관한 법, 그리고 대제사장 등으로 실행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메시야를 세상에 오도록 하는데 사용된 비계와도 같다. 현재는 그가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구원 사역을 다르게 실행하시는데 더구나 구약의 언약에 대한 경륜은 끝났다. 그러므로 그것의 가시적 기호와 습관, 즉 비계가 제거되었다 # 다른 경륜 가운데서도 변화되지 않는 실체의 이중 강조를 설명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할례와 세례는 아주 다른 경륜이지만 그 실체는 매우 동일하다. 둘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사실을 밝힌다.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경륜에 대한 차이에 대한 칼빈의 관점
# 구 언약 - 그리스도 전 1. 물질적이며 일시적 복은 영적 복을 나타낸다. 2. 형상과 의식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3. 구약의 율법은 죽이는 문자이다. a. 구약 율법은 엄밀한 의미에서 저주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 율법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b. 구약 율법은 넓은 의미에서 복음을 포함시키는데, 그리스도의 약속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4. 구 언약은 속박과 두려움으로 특정지어진다. 5. 구 언약은 이스라엘에 한정된다.
#새 언약 - 그리스도 후 1. 영적 복에 대한 직접적 묵상 2. 그의 성육신으로 온전히 계시되신 그리스도 3. 신약 복음은 살리는 영이다. a. 새 언약에서 율법은 복음에 속한 성령에 의하여 마음에 새겨졌으며, 죄의 용서를 수반하여 일어난다. b. 새 언약의 복음은 세상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험한 것이다. 4. 새 언약은 자유와 신뢰로 특정지어진다. 5. 새 언약은 모든 백성에게 확장되어진다. 우리가 언약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우리는 언약의 공식의 상관성, 언약의 실체와 경륜, 그리고 언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언약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역사에 따라 언약의 경륜이 다르지만 언약의 실체는 성경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연속성을 강조한다.
# 우리는 성경을 논리적으로 정리된 조직신학이 아니라 하나의 구원의 역사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에 대한 조직 신학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신론" 또는 "교회론"이라는 이름의 성경적인 책을 준 것이 아니다. 성경은 구원 역사이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를 드러낸다. 계속 펼쳐지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지닌 특성은 모든 이야기가 마쳐질 때 까지 비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신비한 일, 놀라운 일, 얽힌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유기적인 계획은 진보적으로 밝혀진다 # 여기서 "유기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화원을 가꾸려면 반드시 씨앗이 필요하다. 그가 씨앗을 쳐다보면 그 씨 안에 이미 꽃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만일 전에 그 씨앗을 전혀 보지 못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추측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씨앗이 유기적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성장한 나무의 모습을 갖출 모든 것이 이미 그 씨앗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처음부터 지속되어온 성경의 방식이다. #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에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 인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부활과 승리가 최종적으로 이뤄질 때까지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부활과 승리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 언약 신학은 구약은 하나님의 유대백성을 위한 것이고 신약은 하나님의 이방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세대주의적 의견을 거부한다. # 그 대신 언약신학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치는데, 그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나 믿음으로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
#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에 대한 약속이 아직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것이 교회가 휴거되면 생길 것이며, 7년간의 환란이 지난 후에야 마침내 왕국이 도래할 때에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땅에 대한 약속이 사실상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 바울은 모든 땅에 관한 약속과 모든 구원에 대한 약속에대한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려고 한 것이다. # 여기의 요점은 언약 안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땅에 대한 약속은 마치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내 백성으로 삼고자 너를 구원했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나의 진실되며 최종적인 약속의 땅인 하늘의 땅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는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결론부분에서 우리가 하늘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가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이로써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날 때 팔레스타인에 있는 땅을 찾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 대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건설하시고 제작하신 한 도시를 사모하였다고 하였다. 언약 신학자는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네 그리고 아멘"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성경을 읽는 법이라고 분명히 하였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오독하게 된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성경을 읽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 언약의 공식은 - 언약의 실체를 반영하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언약의 경륜은 그가 오시고 하늘에 오르신 후의 것과 상이하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으로 올라가신 후 그는 왕국의 시대를 시작하시며 그의 백성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주셨다. - 하나님의 왕국은 오순절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왕국은 현재 이곳에 존재하나, 아직도 완전히 이곳에 있는 도래한 것이 아니다. 왕국은 벌써 이곳에 있으나,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다. - 척콜슨(Chuck Colson)은 이것을 '공격 개시일 침공'(D-Day invasion)으로 비교 - 독일을 점령할 것으로 확신 , 긴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화, 유기적인구원을 말하고 있음)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령을 부으심, 그리고 언약 생활의 신약 시대의탄생은 왕국의 시작이다. 언젠가 사탄의 "제3제국"은 무너질 것이다. 왕국이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 성도들도 그곳에 속해 있으나 온전한 왕국이 반드시 임할 것이다. 예수의 왕국은 벌써 이곳에 도래하였다(마태복음 12:28; 13:40-43; 사도행전 1:3; 28:31; 골로새서 1:13; 계시록 1:6을 보라). # 하나님의 바로 그 언약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은혜언약의 구원하시는 유익들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development)하고 있는 점에서 볼 수 있다. 다음 사항을 고찰해 보자: 이번에는 영원히 그리고 없어지지 않도록 그가 한번 제정하신 그 언약을 설명하도록 하자. 이 언약이 최종적으로 확증되고 그리고 실증함으로 되어진 이 언약의 성취는 그리스도이시다.
# 우리가 그들(유대인들)과 함께 들은대로 복음의 언약, 그 유일한 기초는 그리스도이시므로 누가, 그렇다면, 감히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킬수 있겠는가? 그 사도(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옛 언약)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인이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마땅히 끝나도록 되었고 그리고 폐기되도록 되었다고 주장 한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맺으신 새 언약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칼빈에게 있어 언약과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연관성은 칼빈이 이 둘(언약과그리스도)을 병렬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음에서 볼 수 있다. 언약은 그리스도를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는 언약의 기초이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약속은 그리스도를 그 언약들의 기초로 가진다.
# 처음부터 새 언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옛 언약도 기독교적이다. 따라서 구약의 조상들도 그리스도를 가졌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포함한다. 율법의 목적(end)은 그리스도와 영원한 생명이다. 사실 옛 언약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그것(옛 언약)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텅 빈 쇼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언약의 궤, 구약의 예식들 그리고 옛 언약의 점진적 계시 모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 그리스도의 도래는 옛 언약과 연속선 안에 서 있는 새 언약을 예고하고 있다. 구속주의 오심은 옛 언약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에 그가(그리스도) 그것(옛 언약)을 새롭게 하고 계속하게 한다. 그는 그것을 새롭고 그리고 영원하도록 하신다. 옛 언약을 성취하고 확증하심으로,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고 결코 멸하지 않는 언약을 가져 오셨다. # 창세기 15장 # 우리는 창세기 15장 6절에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의로 여겼다"고 읽는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에 의한 칭의라고 부른다. - 아브람은 다른 종류의 동물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머리 위에서부터 코와 몸통을 지나 꼬리에 이르기까지 자르고, 그리고 다음에 그 조각들을 땅 위에 놓았다. 이것은 참으로 한 berith, 자름 곧 피의 제물이다. 이 강렬한 이미지는 고대의 관습이었다. 이것이 언약을 맺는 방식이었다. - 언약을 맺으려면, 동물을 죽이고, 그 사체 가운데를 걸어가며,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우리가 막지나 걸어간 짐승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은행과 저당 계약(a mortgage covenant)을 이렇게 맺고 싶어 할까? 피로 서명을 해서 말이다. 여기서 약속은 불순종에 대한 제재(sanction)와 연결되어 있다.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방금 죽인 동물처럼 될 것이다. # 동물들의 사체들 가운데를 지나간 것은 연기 나는 화로와 타오르는 화덕뿐이었고, 아브람은 거기에 끼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아, 나 홀로 이 언약을 세운다. 나 홀로 너에게 의로움을 가져다준다. 나 홀로 이 약속을 성취한다. 너는 그것을 할 수 없다. 너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네가 그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셨다.
#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기를 그만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네가 의롭게 되도록, 나는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죽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 이런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단독으로 말씀하신다. "나는 네 하나님일 것이고, 너는 내 백성일 것이다." 네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될 때, 너는 거지가 내미는 믿음의 손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너는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만 이 언약 안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언약 안에 있다. (그것은)오직 은혜에 의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하여 오직 성경 안에서만 보여지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 창세기 17장 # 이 언약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브람아,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be blameless)."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쪼개진 동물들 사이를 지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너는 이제 내 앞에서 행하되 흠이 없어야 한다. 너는 베리트가 될 것이다. 너는 충성스러운 제물(loving sacrifice)이 될 것이다. 네 몸이 할례의 언약 가운데 잘릴 것이다." # 따라서 언약 제물은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아브람이 될 것이다. 확대해서 해석해 보면, 할례로써 마음의 할례, 옛 본성의 제거로 인도될 것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이 되어야 할 존재였다. 그는 이제 하나님과 동행할 것이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부른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들은 또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걸어갈 것을 배워서, 바울이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말하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언약 제물로서, 아브람은 그의 몸을 살아있는 제물로 주님께 올려야 했다. # 그러나 새로운 언약은 두 번째 커다란 유익을 제시한다는 점을 주목하라. 첫 번째는 우리가 이신칭의라고 부르는 죄 용서이다. 언약의 두 번째 유익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그들의 마음에 쓰인 하나님의 율법 안에 존재하는 성화이다. 그렇게 새 언약은 두 가지 커다란 복 칭의와 성화 을 준다. # 너무 많은 경우 세대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이 성화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로부터 분리하고 있다. 이것은 성장과 성숙에 대한 표현이지 하나님의 구원계획 부분은 아니다. 칼빈이 명칭한 duplex gratiae 혹은 이중 은혜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시며 성화시키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선언한다. # 당신은 오른 손과 왼손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두 손은 지금 새 언약의 두 축복들을 나타낼 것이다;
성화, 나는 나의 법을 당신의 가슴에 기록할 것이다; 칭의, 나는 당신의 죄들을 용서할 것이다.
# 당신의 힘센 손이 칭의의 손이 되도록 하라. 만일 만약 당신이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을 칭의의 손이고 그리고 왼손은 성화의 손이다. 만일 당신이 왼손잡이라면, 왼손이 칭의의 손이고 그리고 오른손은 성화의 손이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두손으로 칭의와 성화 관계에 관한 네가지 중요한 원리들을 배우기를 바란다. 이 원리들은; # 구.동.떨.순 1. 칭의와 성화는, 당신의 손들처럼, 구별되어야 한다. - 로마카톨릭교회 : 의롭게되어지는 방법은 성화되어짐에 의한다고 주장하는데 있다. 카톨릭주의는 만일 혹자가 선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고 선포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가톨릭주의자와 정반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도 오른손과 왼손을 혼동하거나 혹은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고 있다. * 이 견해에서 혹자가 "만일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이 내가 거룩하게 되는 방법이다. 만일내가 믿기만 하면 나는 어떤 일도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혹자가하나님 앞에 필요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고 선언하면 때로는 (그것을) '쉬운 신앙주의(easy believeism)'라고 불렀다. 2. 칭의와 성화는, 당신의 손들처럼, 동시적으로 주어진다. - 인간들은 동시적으로 나오는 오른손과 왼손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언약의 축복들을 가져오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하나의 완결된 행위로 (여기심 같이)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우심 안에서 우리를 옷 입히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어짐을 선포하시고, 그는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다. - 성령의 이 은사와 함께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살도록 거룩하게 되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과정을 시작하신다. 성령의 성화사역은 계속되어지는 과정으로 진행되어지는 동안, 동시에 그리스도 안의 우리를 용서하심과 칭의가 시작된다. 언약의 이 두 유익들은 동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이 서로 다르므로 그것들을 구분하여야 한다. 3. 칭의와 성화는, 당신의 손들처럼, 떨어질 수 없다.(분리될수없다) - 도덕폐기론자(liber- tine)는 "나는 그저 용서만 받으면 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예수라는 신용 카드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 율법주의자 : "나는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 자신의 도덕적 갱신으로 충분히 선해질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자를 우리는 바리새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도 도덕폐기론자와 같다. 단지 다른 점은 그들은 그 (언약의) 반대편 손을 자르는 것을 구한다는 있다. 그러나 그 은혜언약의 두 손은 분리될 수 없다. 4. 칭의와 성화는, 당신의 손들처럼, 논리적으로 순서적이다. - 은혜 언약의 두 유익은 논리적으로 순서적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언약의 한 유익이 주도적이고 다른 것은 종속적이다. 이것 역시 우리의 두 손과 같다. 만일 오른손잡이면, 오른손이 왼손 위에 주도적인 손이고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점은 칭의가 항상 성화 위에 주도적이고 그리고 성화는 항상 칭의에 의존적이고 그리고 종속적이라는 것이다. - 칼빈은 칭의를 집의 기초로 비교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화를 그 기초 위에 세워진 구조물로 비유했다. 따라서 성화의 집은 항상 칭의의 기초에 의존되어 있다. - 칼빈 "종속적인 것은 반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칼빈의 언약교리는 언약의 축복들이 믿는 자에게 수여된 후에 율법이 복음에 반대되도록 용납하지 않는다. 칭의와 성화는 구원의 신적 유익들의 필요한 구성요소들이다. 이 둘은 "동시에" 수여된다. 그럼에도 그 둘 사이에 묵과해서는 안 되는 논리적 순서가 존재한다.
"영"이 율법의 "의문"에 더하여 짐으로, 믿는 자는 순종의 참된 의로움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움에 종속하는 의로움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반대적인 의로움은 아니다. 칼빈은 이 원리를 그의 "트렌트 회의에 대항하여"에서 단언한다. # 언약적 윤리관 첫째, 언약신학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완전히 미래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선포한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앞으로 오고 있고 현재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무리로 자신을 간주하며 자신들만을 주로 돌보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세상의 문화로부터 분리된 자신들의 모임에 초대하는 것이 될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종종 강조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이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휴거시키는 것을 바랄뿐이며 그 때에야 모든 것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편 언약신학은 휘발유가 없는 때에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만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전체를 염두에 두고 계신다. # 언약신학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그리고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는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와 시기를 위해 미래를 보기 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언약신학의 윤리적 비전이다. # 언약신학은 예수께서 그의 재림에 대해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인다. 우리 주께서는 아버지 외에는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모른다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추정하는 것보다 우리는 주께서 재림하시기까지 그를 섬기는 일에 사로잡혀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바쁘게 일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 다가가야 한다.
# 그리스도의 나라는 인간존재의 시간과 공간에 침투하시고 깊이 다가오셨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의 나라의 복음이 온 땅에서 전파되어야 하고 그 때에야 마지막이 온다고 가르치셨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와 복음전도자로 부름받았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영원한 말씀으로 변하는 세상을 바꾸어야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전진할 것이다. # 세대주의적 윤리관 # 세대주의에 의해 창출되는 윤리관은 언약신학에 의해 발생되는 윤리관과 다르다. #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앞으로 오고 있고 현재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무리로 자신을 간주하며 자신들만을 주로 돌보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세상의 문화로부터 분리된 자신들의 모임에 초대하는 것이 될것이다. # 이러한 접근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종종 강조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이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휴거시키는 것을 바랄뿐이며 그 때에야 모든 것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세대주의자에게 휘발유가 없다는 것은 휴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세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시기를 산정하기 위해 신문읽기에 집중한다면 나는 더 이상 세대주의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참으로 요구해야 할 질문은 설사 휘발유가 없더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 언약신학 - 언약신학은 성례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전체 공동체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 -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한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바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자 개인이 천국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 대조적으로, 개인적 구원의 즐거운 소망을 축소시킴이 없이, 언약신학은 여호수아와 함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길 것이다"고 단언한다. 언약신학은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집합적 특성을 인식하고 있다. 구약으로부터 세대사이 에 표현된 언약공식, "나는 너희의 하나님과 너희 이후 너희 자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의 천대에 이르기까지." 이 구약 약속들이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는 것에 근거하여 칼빈과 언약신학은 특별히 유아세례에 표현된 대로 언약의 집합적 특성을 단언하였다. # 칼빈은 유대인들과 함께 언약이 새 언약 시대에로 계속된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고 역설한다. 칼빈에게 있어 그러한 부인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넓히는 것보다 좁히는 것을 내포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자녀들 역시 그들이 그의 언약의 상속자들로 되어 있고그리고 경건치 못한 자들의 자녀들로부터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씨라고불려졌다. 동일한 이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도 거룩하다고 고려되어진다 그리고 비록 한편만 믿는 부모에게서 출생하였다 할지라도, 사도의 증거에 의하여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의 불결한 씨와 다르다.
이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직 후 외적 성례에 의하여 유아들에게도 검인하라고 명령하셨음으로,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증거하지 않고 검인하지 않는 무슨 핑계를 제시할 수 있겠는가?
구약의 자녀나 신약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동일한 언약적 약속에 의하여 거룩한 씨이다. 따라서 유아세례는 할례와 마찬가지로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칼빈은 구약의 언약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새언약 시대의 믿는 자들을 단지 예시한다는 핑계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이것은 그렇게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은 기독교인 믿는 자와 그들의 자녀들 역시 포함하기 때문이다. 유아세례에 대한 칼빈의 논증에 비판은 언약의 유일한 표증은 할례인데 그것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언약은 그 표증이 폐기되었음으로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칼빈의 대꾸는 표증의 변경이 언약을변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오래 전에 폐기된 할례가 아닌 다른 상징에 의해 그의 언약을 확증하는 것을 명령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나를 대항하여 반대하지 말라. 이에 대하여 준비된 대답이 있다. 구약시대에는 그의 언약을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할례를 제정하셨다. 그러나 할례가 폐기된 후에는 그의 언약을 확증하기 위한 동일한 이유(유대인들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아직도 유효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항상 부지런히 무엇이 둘에게 보편적이고 그리고 무엇이 우리에게 떨어졌는가를 살펴야 한다. 언약은 보편적이고 그리고 그것을 확증하는 이유도 보편적이다.
다만 확증하는 방법이 다르다-그들에게는 할례이었던 것이 우리에게는 세례로 대치되었다. 만일 할례에 대한 대치가 없다면, 그렇다면 칼빈의 마음은,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증가시키기보다는 실제로 모호하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세대주의 - 성례들을 좀더 개인적인 의미로 경향이 있다는 주목하자 - 세대주의의 개인주의적인 경향은 세상을 점점 험악해져 갈 것이라는 신념과 병행한다. 아직도 추구해야 할 칼빈의 언약적 사상과 관계된 몇 개의 영역이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이 성경 해석과 그리스도 안의 구원의 유익, 그리고기독 윤리와 교회의 성례전의 삶을 구약으로부터 신약까지의 구원 역사에서 시종일관 드러난 하나님의 유일하며 영원한 은혜의 언약의 중요한 표현으로 여겼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려 한다.
비록 칼빈은 세대주의 자체와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언약에 관한 그의 이해는 세대주의의 기본적인 명제들을 직접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언약의 은혜를 누리는 신약 시대, 칼빈 탄생 500주년도 포함되어 있는 이 시대에, 언약을 성경적, 언약을 신학적 수고의 중심적인 원리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자.
칼빈은 시편 25:10에서 주석한 것처럼 자신을 분명히 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언약 안에서 견뎌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일 것이라고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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