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코케이우스의 언약론
신구약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코케이우스의 언약론
자료출처http://cafe.daum.net/dusonma/3mTf/6796
코케이우스의 언약론은 계시의 명료성, 즉 통찰의 선명과 의식의 판명성에 있어서 차이가 아니라, 은혜언약의 다양한 경륜들 아래에서 객관적 축복들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서의 구원은 신약에서보다 객관적으로 더 협소하였으며, 구약에서 안식일은 역사의 연기 중에(cessatio operis) 있었고 이스라엘에게 아직 참되고 영원한 선(vera et permanentia bona)이 없었으되, 소망의 백성이었고 땅에서의 긴 생을 열망하였으며 여전히 죽음의 공포 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충만한 죄 용서가 없었고 불완전한 용서만 있었고, 동물 희생은 전혀 화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칭의는 불완전하였으며, 신자들의 위로도 약하였고 그들의 양심은 안식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마음의 할례는 참으로 없었고 다만 신약에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서 제공된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구약에는 참으로 모든 것이 현존하였으나 다만 모형과 그림자로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자체의 실재성은 전적으로 부정되지 않았어도 대부분이 그때에 부정되었다. 주관적으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우연에 있어서(in accidentia)뿐만 아니라 실체에 있어서(in substantia)도 구약은 신약과 다른 것이었다는 것이 코케이우스의 주장이다.34)
코케이우스의 잘못은 코케이우스가 은혜언약을 다만 부정적으로 점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이며 계속적으로 발전된 행위언약의 폐지로서 파악하였을 때, 친히 언약론 전체를 근절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언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만 일시적으로 인간적이며 계속 스스로 변하는 종교의 형태이었고, 코케이우스는 개혁주의 신학의 출발점과 기본 선을 잃게 되었다.35)
코케이우스 잘못에 대해서 헤르만 바빙크의 의견을 존중한 김영규 교수의 글에 의하면 "코케이우스의 잘못은 언약론 자체에 있었다기 보다는 성경을 교의학의 원리와 규범으로 삼지 않고 교의학의 대상으로 삼는 성경적 역사적 교의학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성경신학을 전통신학과 대립시키고 언약을 성경과 대립시키며 역사를 이념에 대립시켰다. 그의 방법의 위험성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 언약의 실체를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것 언약의 경륜으로 바꾸고 하나님 자체를 되는 이념으로 바꾸었다는데 있었다"36)고 지적한다.
이와 같이 성경을 어떠한 원리에서 해석하느냐는 그의 신학의 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자료출처http://cafe.daum.net/dusonma/3mTf/6796
코케이우스의 언약론은 계시의 명료성, 즉 통찰의 선명과 의식의 판명성에 있어서 차이가 아니라, 은혜언약의 다양한 경륜들 아래에서 객관적 축복들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서의 구원은 신약에서보다 객관적으로 더 협소하였으며, 구약에서 안식일은 역사의 연기 중에(cessatio operis) 있었고 이스라엘에게 아직 참되고 영원한 선(vera et permanentia bona)이 없었으되, 소망의 백성이었고 땅에서의 긴 생을 열망하였으며 여전히 죽음의 공포 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충만한 죄 용서가 없었고 불완전한 용서만 있었고, 동물 희생은 전혀 화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칭의는 불완전하였으며, 신자들의 위로도 약하였고 그들의 양심은 안식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마음의 할례는 참으로 없었고 다만 신약에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서 제공된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구약에는 참으로 모든 것이 현존하였으나 다만 모형과 그림자로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자체의 실재성은 전적으로 부정되지 않았어도 대부분이 그때에 부정되었다. 주관적으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우연에 있어서(in accidentia)뿐만 아니라 실체에 있어서(in substantia)도 구약은 신약과 다른 것이었다는 것이 코케이우스의 주장이다.34)
코케이우스의 잘못은 코케이우스가 은혜언약을 다만 부정적으로 점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이며 계속적으로 발전된 행위언약의 폐지로서 파악하였을 때, 친히 언약론 전체를 근절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언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만 일시적으로 인간적이며 계속 스스로 변하는 종교의 형태이었고, 코케이우스는 개혁주의 신학의 출발점과 기본 선을 잃게 되었다.35)
코케이우스 잘못에 대해서 헤르만 바빙크의 의견을 존중한 김영규 교수의 글에 의하면 "코케이우스의 잘못은 언약론 자체에 있었다기 보다는 성경을 교의학의 원리와 규범으로 삼지 않고 교의학의 대상으로 삼는 성경적 역사적 교의학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성경신학을 전통신학과 대립시키고 언약을 성경과 대립시키며 역사를 이념에 대립시켰다. 그의 방법의 위험성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 언약의 실체를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것 언약의 경륜으로 바꾸고 하나님 자체를 되는 이념으로 바꾸었다는데 있었다"36)고 지적한다.
이와 같이 성경을 어떠한 원리에서 해석하느냐는 그의 신학의 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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