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언약 속에 있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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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언약 속에 있는 인간
인간의 원래의 상태, 곧 무흠의 상태(status integritatis)에 관한 논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특별히 인간의 종교 생활의 기원과 본질을 고찰함으로써 완결된다. 이 언약은 다양한 명칭 곧 자연의 언약, 생명의 언약, 에덴의 언약, 행위의 언약 등으로 불린다.
A.행위 언약 교리에 관한 역사적 고찰
행위 언약의 교리에 관한 역사는 비교적 짧다. 어거스틴은 그의 주저「신국론」에서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약(testamentum, pactum)으로 망명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잘 알려져 있는 구절인 호6:7로부터 원초의 언약 관계를 추론해 낸다. 스콜라 신학자들의 문헌과 종교 개혁자들의 글에도 후일 행위 언약의 교리를 구성하게 될 모든 요소들이 이미 내포되어 있었으나 아직 교리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죄의 전이(轉移)는 계약적인 의미에서보다는 현실주의적인 의미에서 이해되었다. 톤웰(Thornwell)은 칼빈의「기독교 강요」를 분석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은혜 언약 교리의 발전이 행위 언약 교리의 발전에 선행하였으며, 사실상 그 기초를 놓았다. 성경이 분명히 언약의 형태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평행적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흠의 상태를 일종의 언약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코케이우스의 특징은 그 당시 유행했던 철학적인 신학 연구 방법을 보다 성경적인 방법으로 대체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이 부르만누스와 비치우스였다. 코케이우스와 그의 추종자들만이 행위 언약 교리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부티우스, 마스트리히트, 드 무어 등도 행위 언약 교리를 받아들였다. 위페이즈(Ypeij)와 더르무(Dermout)의 지적에 따르면, 그 당시 행위 언약 교리를 거부하는 것은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소지니주의자들은 행위 언약 교리를 전면 거부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교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피스코피우스, 림보르크, 베네마, 그리고 J. 알팅과 같은 일부 알미니우스주의자들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18세기 중엽 네델란드에서 언약의 교리가 망각되어 갈무렵, 컴리와 홀티우스가 이 교리를 다시 한번 교희의 주목을 받게 했다. 행위 언약 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와 스위스 일치 신조(Formula Consensus Helvetica)에서도 발견된다. 행위 언약 교리가 로마 카톨릭과 루터파 신학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직접 전가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행위 언약 교리의 성경적 기초
행위 언약을 부인하는 자들은 이 언약의 성경적 기초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언약의 요소들은 이미 초기의 서술에 나타나 있다. 언약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그 요소들이 있다면, 이 교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상호 연관성을 밝히고 적절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정당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 쌍방이 거론되어 있고, 조건이 설정되었으며, 순종에 대한 보상의 약속이 명백히 천명되었고, 범죄에 대한 형벌이 제시되었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경우 인간이 동의하고 수납했다는 기록은 없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인간에게 주권적으로 부과되는 특징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절대적으로 주권적인 입장에서 다루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 위하여 인간이 실행해야 하는 조건들을 설정할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연약 관계가 확립되면, 이 순종은 자기 이해의 문제가 된다.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실 때 언제나 조건을 설정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 조건들에 동의 하리라고 기대할 만한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2.영생의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은 불순종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에 명백히 암시되어 있다.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경고는 순종할 경우에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요, 생명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다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아담이 자연적인 생명이 지속된다는 뜻일 뿐,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이요, 아담이 소유한 생명도 바로 이 생명이었다는 반박이 가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실수할 수 있는 생명이다. 만일에 아담이 시험을 통과했다면, 이 생명은 그대로 보존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수할 수 없는 더 고차적인 단계로 올라섰을 것이다. 바울은 롬7:10에서, 계명 즉 율법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명백히 말한다. 하지(Hodge)는 이 절에 대하여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율법은 원래 생명을 확보하기 위하여 고안되었고 번안(飜案)되었다.” 이 점은 롬10:5;갈3:13에서도 명백히 표현되었다.
3.근본적인 은혜 언약은 우리의 확실한 보증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원초적 협약을 실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유롭게 수행하셨다. 그는 자신을 율법아래 두심으로써 구원을 얻는 자들을 구원하셨다. 은혜 언약이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생각할 때 원초적 협약(original agreement)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라면, 원초적 협약은 언약의 성질을 띠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행위 언약의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이제 인간은 원초적 협약의 열매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두 길이 다 생명의 길이다. 하나는 율법의 길이다. “율법의 의를 행하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인간은 이 길을 통해서는 더 이상 생명을 찾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심으로써 영생의 복을 부여해 주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이다.
4.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 칭의의 교리와 관련하여 바울이 롬5:12-21에서 제시하고 있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는 아담이 그리스도와 같이 언약의 머리라는 가정 위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칭의의 본질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어떤 공로에도 의존하지 않고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5.호세아6: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이 해석을 반대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어떤 학자들은 “아담에서”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 해석이 의미하는 바는 아담이라고 불리는 어느 장소에서 어떤 잘 알려진 범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치사가 이 해석을 반대한다. 더욱이 성경은 아담이라는 장소에서 저질러진 범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흠정역은“사람들처럼”이라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데, 즉“인간적인 방법으로”라는 뜻이다.
C.행위 언약의 요소들
1.언약의 당사자들.
(1)자연적인 관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자연적인 관계가 수립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관계는 토기장이와 질그릇, 절대적 주권과 그 같은 주장을 할 수 없는 주체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자연히 율법 아래 있으며,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율법을 범했을 때 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율법을 지켰다고 해서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본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거리는 서로의 교제가 차단된 듯이 보이게 하지만, 인간은 분명히 그와 같은 교제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교제의 가능성은 이미 창조시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 안에 제시되었다. 이 같은 자연적인 관계 안에서 아담은 인류의 조상인 것이다.
(2)언약 관계. 그는 인간의 차원으로 낮아지셔서 자신을 친구로 계시하셨으며, 인간이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증진 시킬 수 있게 하셨다. 자연적 관계에 덧붙여서 하나님은 적극적인 명령을 세우심으로써 은혜 가운데 언약 관계를 확립시키셨다. ①아담은 인류의 대표적인 머리로서 모든 후손들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②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가를 결정짓기 위해서 일시적인 시험을 받았다. ③그는 순종할 경우에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을 보장받았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배려에 의거하여 일정한 조건적인 권리를 획득했다. 이 계약에 근거하여 아담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을 위하여 순종의 방법을 통한 영생을 얻었다.
2.언약의 약속.
행위 언약에 의하여 주어지는 위대한 약속은 영생의 약속이다. 성경에 아담에게 영생이 약속되었음을 보여 주는 명시적인 기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형벌의 경고가 주어졌다는 사실은 그 약속도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주의 말씀은, 아담이 먹는 것을 억제했다면 죽지 않고 죽음의 가능성을 넘어서 끌어올림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암시된 약속의 의미는, 순종할 경우에 아담에게 그 이전과 같이 평범한 자연적인 삶을 계속해서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의미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여기 주어진 약속은 최고의 상태에까지 발전된 영구적인 복락과 영광이다.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여전히,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선에서 악으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죽음의 법칙에 복종할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 행위 언약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은 아담을 제약하고 있던 모든 생명의 제약을 제거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그의 삶을 최고의 완전성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이다. 롬7:10에서 계명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바울이 말했을 때,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생명을 의미한다. 행위 언약의 원리는, 이 일들을 행하는 자는 그로 인하여 산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성경에 여러 번 반복된다.(레18:5;겔20:11,13,20;눅10:28;롬10:5;갈3:12).
3.언약의 조건. 행위 언약의 약속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약속의 조건은 절대적으로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기도 하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은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순종의 시험임이 명백하다. 아담의 시험이 순정한 순종의 시험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연스러움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아담에게 인식된 명령에, 어떤 의미에서는 독단적이면서도 공정한 명령을 부가하셨다. 이처럼 율법의 요구는 하나의 초점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해결 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의 판단에 따를 것인가라는 점이다. 바빙크는 이렇게 말했다.“아담에게 제시된 하나님의 시험적 명령은 다음과 같은 논법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하나님의 능력이냐 자기 자신의 생각이냐, 절대적인 복종이냐 자립적인 탐구냐, 믿음이냐 의심이냐 하는 것이다.”
4.언약의 형벌. 여기서 경고되고 있는 형벌은 죽음이다.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죽음은 육체적이고 영적인 영원한 죽음을 포함한다. 성경에 나타난 근본적인 죽음의 개념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하며, 그로부터 초래되는 몸의 해체, 비참 그리고 저주를 뜻한다. 근본적으로 죽음이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요, 영적인 비참함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요, 마침내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러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몸과 혼의 분리 및 그로 인한 몸의 해체도 포함된다. 분명한 것은 형벌의 시행이 최초의 범죄 직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형벌의 완전한 시행이 즉각 뒤따르지 않고 보류되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즉각 은혜와 회복의 경륜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5.언약의 상징. 혹자는 생명나무만을 제시하기도 한다. 성경의 지지를 받는 유일한 견해인 것 같다. 이 열매는 어떤 방법으로든 생명의 선물과 관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생명의 상징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아담이 약속을 어겼을 때, 이 상징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3;22은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D.행위 언약의 현재 상태
1.알미니우스주의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이 법적 계약은 아담이 타락할 당시 폐기 되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약속은 취소되고 약정은 파기되었다. 약정이 없는 곳에 의무가 있을 수 없다. ②인간의 순종이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도 소정의 의무를 완수하도 록 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임이 판명된 이상 하나님은 인간의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③부패한 피조물에게 거룩하고 분열됨이 없는 사랑을 요구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함과 위엄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이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충분한 은총의 도움을 힘입어 이 법을 지킬 수 있다.
2.개혁주의의 입장. 심지어 일부 개혁파 신학자들까지도 법적인 언약이 폐기되었다고 말하면서 이에 대한 증거를 히8:13에서 찾는다. 일반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부분은 어떠한 인간의 법적 입장의 변화도 율법의 권위를 폐기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요구하신 순종의 요구는 인간의 타락과 그 파멸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종결된 것은 아니며, 죄의 삯은 여전히 사망이며, 완전한 순종은 언제나 영생을 약속하고 있다는 점들이다. (1)행위 언약은 폐기되지 않았다. ①하나님과 인간의 자연적 관계가 이 언약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 그렇다. 인간에게는 언 제나 완전한 순종의 요구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②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와 형벌에 관한 한 그렇다. ③조건적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 한 그렇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거두실 수도 있었다. 그 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레18:5;롬10:5;갈3:12).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이 후에 아무도 이 조건에 순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2)행위 언약은 폐기되지 않았다. ①은혜 언약 아래 있는 자들을 위한 새로운 긍정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한에 있어서 그렇 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단순히 무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보자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그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②영생을 얻는 수단으로서 그렇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이 언약은 그 힘을 상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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