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예정(豫定)과 예지와의 관계

예정(豫定)과 예지와의 관계
 
예정과 예지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차이 없이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 단어가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다룬다. 그 이유는 이 두 단어에 신학적인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예정이란 그들의 사고 구조 속에는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미 정하여졌다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예지는 인간을 그들의 생각에 우선을 차지하게 함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 것을 조사하고 나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예지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구경꾼일 수 밖에 없고, 예정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견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예정은 모든 것이 이미 정하여져 있고, 예지는 모든 것이 정하여지지 않는 것처럼 생각들을 한다. 과연 그런가?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예지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하여지지 않는 것을 예지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오류이기 때문이다( Logical fallacy). 하나님이 예지하시는 것은 성질상 예정되어 있는 것과 같이 확정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정이 사건들을 확정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지는 사건이 확정적인 것을 전제로 한다.
한 가지 물어보자! 만일 미래의 사건이 예지되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과 반대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아무 사건이나 그것이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혹은 다른 방법에 의해서든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으면 예지되기가 어렵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예지와 예정에 대한 선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주권을 돌려드릴 것인가에 대해서 신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만 남아있는 것이다. 미래사건을 지혜가 자비가 풍부하신 성경적인 하나님에게 돌릴 것인가, 아니면 맹목적인 자연법칙에 돌릴 것인가? 이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이 우리 앞에 놓은 주사위이다.
소시니안파와 유니테리언파는 한 번도 정통교회에서 인정을 받은 적이 없지만 최소한 그들의 주장을 보면 일관성과 정직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유행동자의 행동을 예지하신다는 예지를 주장하려고 하였지만 서로 충돌하는 것을 교리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예지도 부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만일 영원 전에 인간의 행동이 불확정적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먼저 그 사건이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은 어떤 계획도 없이 이 넓은 우주를 다스리는 주먹구구식의 동네 골목 모퉁이에 있는 가게 주인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지가 예정과 대립될 수 없고, 대립될 수 없다면 창세전에 모든 것이 확정되었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절대예정론을 피할 수 없다. 절대예정론은 하나님을 은행에 balance를 맞추지 못해서 쩔쩔매는 분이 아니라 모든 우주를 주관하는 영원하신 주인으로 모시려는 하나님을 본래의 보좌에 앉게 하려는 인간의 적은 정성이다.
참고서적: Systematic Theology  R.L. Dabney   Banner of Truth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David N. Steele   P&R
         칼빈주의 예정론   뵈트너/김남식   도서출판 베다니
         칼빈주의 5 대교리   에드윈 팔머  개혁주의 신행협회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5690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