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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칼빈의 5대 교리- 무조건 선택

칼빈의 5대 교리- 무조건 선택
(에드윈 팔마의 책을 중심으로)
 
예정, 또는 신적 선택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때, 어떤 이들은 인간이 비인격적인 운명의 손아귀에서 붙들린바 된다는 혐오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으로 이 교리를 이해한다면 다른 어떤 교리보다도 가장 큰 매력과 기쁨을 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용어들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I. 의미
1. 작정(作定, foreordination)
   작정이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작정하신다는 것이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고, 또 그것을 발생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엡1:11) 모든 것을 미리 작정하셨다.(참고,창45:5-8; 행4:27-28; 행6장 참조)
 
2. 예정(豫定, predestination)
   예정은 작정의 일부이다. 작정은 영원토록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고, 예정은 그 작정의 일부로서 인간의 영원한 운명, 즉 천국과 지옥을 말한다. 예정은 선택과 유기의 두 요소로 구성된다.

3. 무조건 선택
   1)선택
   뽑아서 택하는 것을 말한다. 신적 선택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가도록 뽑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의 사람들은 간과되어 필연적으로 지옥행이다.
   2)무조건
   동기나 조건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됨됨이나 성격, 실력, 행위를 근거로 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를 알 수 없다.  

II. 성경적 근거
무조건 선택은 전적 타락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면, 그런데도 어떤 이들이 구원을 얻는다면, 혹자가 구원을 받고 혹자는 유기를 당하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은 완전히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자는 하나님이 살리시고, 어떤 자는 죽은 그대로 버려두신다.

1. 요6:37,39
   이 말씀은 마지막 날에 일으켜질 자들이 성부로 말미암아서 그리스도께 주심이 될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만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수께 보냄을 받은 자가 구원을 받는다. 보냄을 입은 자들은 결코 내어쫓김을 당하지 않는다.

2. 요15:16
   무조건 선택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선택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인간은 그것을 기쁘게 소유한다. 죽은 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한다.

3. 행13:48
   누가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했다. 아주 명확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믿는 자는 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되더라”라고 하는 알미니안 신학자들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알미니안의 선구자인 유니테리안주의나 소시너스는 실제로 이렇게 번역했다. 
 
4. 살후2:13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 언급된 것에 유의해야 한다. “....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말한다. 사랑을 받은 자들은 선택된 자들이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버림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을 자들을 ‘미리 아셨고’(예지) 또 이것을 근거로 그들을 선택하셨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무시한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5. 엡1:4-5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무엇에 의한 조건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한다.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택하신 것이다. 선택과 예정이 “그 기쁘신 뜻대로”되었다는 말에서 더욱 지지를 받는다.

6. 롬8:29,30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미리 아신(예지)’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히브리어나 헬라어 관용에서는 “먼저 사랑하다”를 의미한다. 아담이 하와를 “알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하와의 어떤 특성들에 관해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하와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 절은 알미니안들의 예지에 근거한 예정 개념을 지지하는 구절이 아니다.

7. 롬9:6-26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피조물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만일 알미니안들의 주장처럼 어떤 조건에 의해 인간이 하나님에게 선택된다면 야곱과 에서에 대한 선택은 불공평한 처사로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의 입장에서 피조물의 이의나 반론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다.  

III. 추가 설명
1. 알미니안주의
   알미니안이 구원에 대한 결정적인 사실을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두려고 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고자하는 데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하나님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영역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러나 알미니안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알미니안은, 하나님은 매사를 다 알고 계시며 그리스도를 믿을 자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는 전지하신 분이라 모든 사람의 선택이 무엇일지 영원 전부터 알고 계신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알고 계시고 이것을 근거로 해서만이 자기가 알고 계신 것을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다른 방도란 없게 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는 하나님은 전능하사 만사를 섭리하신다고 말하지만, 반면에 알미니안주의자는 인간이 만사를 주도한다고 말한다.

2. 인간의 자유  
   인간이 자유하다는 이것 때문에 인간은 노예이다. 인간은 선과 악을 공평하게 선택하기가 불가능하다. 알콜 중독자는 자신이 술을 마실 수도, 마시지 않을 수도 있는 외적인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가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알콜의 노예이다. 누구도 마시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그는 오직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한다.
   마찬가지로 비기독교인은 자유하다. 자기의 욕망을 따른다. 그는 정확히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한다. 그는 온갖 악을 행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이기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 즉 죄를 범한다. 중생치 못한 자들은 자유롭기 때문에 노예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다른 하나를 택할 자유의지가 없다. 그는 그리스도를 택하거나 대적할 외적 선택권이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대적하는 길로 나가게 버려두지 않으신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를 빼앗을 수가 없다(요6:37,39).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자유의지가 없다. 하나님도 악을 선택하실 수 없다는 점에서는 자유하지 못하다.

3. 사람은 예정 안에서 원하는 바를 행함
   어떤 사람들은 예정교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한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내가 믿기를 원해도 하나님이 자기를 예정해 주시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을 것이고, 또 믿기를 원치 않는다 할지라도 억지로 천국으로 끌고 가실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지옥에 빠진 자들은 자신이 지옥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즉 사람은 천국과 지옥 어느 한 쪽을 가게 될 것이고, 어느 쪽을 가게 되던 그쪽을 선호하는 마음이 있다.
 
IV. 예정 교리의 실제적 유익
선택에 관한 교리를 믿는 자들에게는 실제로 많은 유익이 따른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항상 조바심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누려야할 감사와 확신을 잃고 사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 그러한가. 

1. 감사와 찬송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셔서 은혜에 참여케 하셨다는 것에 지극한 감사와 찬송이 있게 된다. 어떤 공로가 없음에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은혜가 감격스러운 것이다. 또한 인간의 가변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다.
   칼빈주의자는 구원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고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믿음도 주신 것도 안다. 그리고 자신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변치 않을 것임을 안다(빌1:6). 아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으로 산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5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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