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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칼빈의 5대 교리 중에서- 전적 타락

칼빈의 5대 교리 중에서- 전적 타락
(에드윈 팔마의 책을 중심으로)
전적인 타락에 관한 오해들이 있으므로 이 교리의 부정적인 면을 먼저 설명하고, 다음에 긍정적인 면을 논해 보고자 한다.
 
I. 부정적인 면
1. 완전한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타락’이라는 말은 ‘전적’이라는 발과 복합되어 마치 인간을 극악무도한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전적 타락’이라는 말은 ‘완전한 타락’이라는 의미가 다르다. ‘전적 타락’은 인간 스스로 무엇을 행하려 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언제나 불의와 관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스스로 선을 행하거나 선을 창출할 수 없다는 말이다.
 

2. 상대적인 선의 완전한 무능이 아니다.
   중생하지 못한 자라고 해도 상대적인 선은 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버트 슈바이처는 성경적 기독교를 부인하였음에도 그의 자비로운 행위는 정통 신자들을 부끄럽게 했다. ‘선’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적 의미의 선이지 시민 일반적 선과는 다르다.
*잠깐! 도덕의지의 면에서 에드워즈의 <의지론>은 다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II. 긍정적인 면
 

1. 적극적으로: 오직, 그리고 항상 죄를 범한다.
   자연인은 상대적인 선을 행할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죄악을 범하는 존재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참고, 롬3:10-18; 시51:5; 렘17:9; 창6:5)라고 말한다.
 

2. 소극적으로: 전적 무능력이다.
   전적 타락이라는 표현보다는 전적 무능력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자연인의 전적인 무능력은 3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1)선을 행할 수 없다.
   벨직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 역시 “모든 인간들은.... 구원의 합당한 선에서 무능하다”라고 성경적인 입장을 취한다.
   2)선을 깨달을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도 없지만, 선을 깨달을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루디아는 바울이 빌립보 강가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신 후에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행16:4). 그때까지 총명은 가려져 있었다.
   3)선을 바랄 수 없다.
   선을 행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으며, 선을 바랄 수도 없다. 목표는 가졌다 할지라도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6:44, 65). “아무도....”, 이것은 보편적이고 전적인 무능력이다.
 

   전적 타락은 “인간이 죄로 인하여 죽었다”(엡2:1, 5)는 사실에 기초한다. 죽어있는 존재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능력 있는 존재에게 자신을 의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는 인간은 죄로 인해 완전히 죽은 존재임을 부정한다. 마치 죄인의 상태를, 깡패들에게 다구리를 맞아서 갈빗대가 3개가 부러지고, 이빨이 대여섯 대가 부러지고, 다리가 골절이 된 상태의 존재로 본다. 그래서 엉금엉금 기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와 같다.
   알미니안주의자는 중생치 못한 자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얻어 예수님께 자기 자신이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따라 구원을 요청하면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주체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척 하면서도 그 공로의 일부를 자기의 것으로 가로채기 하고 있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5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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