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클라우니 [교회] 제 2 장 하나님의 백성
에드먼드 클라우니 [교회] 제 2 장 하나님의 백성
제 2 장 하나님이 백성
박 석 화
지금까지 내려온 이야기 중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에덴동산에서 여인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에서 시작 된다. 이 이야기는 맹세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계속된다. 교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시작된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하실 것인지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어떠한 존재가 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점점 충만하게 드러내신다.(아브라함 - 출애굽 - 시내산 언약 - 다윗 - 바벨론 포로- 선지자들을 통한 회복의 약속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부활 - 오순절 성령 강림 - 새 언약 교회)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회중과 몸이요 성령의 교통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성례중시주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교회를, 재세례파 교회는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교회를, 오순절 교회는 성령의 교통으로서의 교회를, 제2차 바티칸 공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의 포괄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용어를 재사용하였다.
성경적인 교회론을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적 접근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계시의 역사 속에서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교제로 형성된 메시아의 교회가 된다. 성령의 오심은 아브라함에 대한 언약을 성취하고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씨로 만든다. 그리스도의 몸은 성령의 오심 속에서만 그 실체를 충만히 드러낸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에서만 죄인들을 새 언약의 피로 뿌림을 받아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회중
‘에크레시아’라는 용어는 헬라어 구약 성경에서 카알을 번역한 말로 모여 있는 무리를 묘사한다. 이는 모두 ‘회중’(회집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보다는 실제로 모여 있는 무리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교회라고 불리는 것은 다른 모든 그룹이 그렇듯이 단지 함께 모이기 때문인가? 예수님은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실 때 다분히 구약적인 의미로 사용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과 언약을 맺기 위하여 그들을 시내산 앞으로 부르시던 그 위대한 ‘하나님의 총회’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앞에 모여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온 무리였다. 하나님의 회중은 그 분의 ‘거룩한 자들’을 모두 포함한다.(천군, 천사, 지상의 성도들,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 그 회중 가운데 예배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에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기 땅에서 모이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계신 그 곳에서 모이기 때문이다.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와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이 계신 회중으로 올 때 주님 역시 성령에 의하여 우리 회중에게 오신다.
주님의 참된 회중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 즉 가정 교회로, 도시 교회로, 보편 교회로 따우이에 나타난다. 심지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두세 명이라도 그분의 능력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하심
자신의 회중을 시내산에서 시온으로 옮기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원칙을 가르치신다.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러 오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다.(성막, 성전)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고 하나님은 거룩하셨기 때문에 장막의 설계에는 경계선지 준비되었다. 하나님은 장막 뒤편에 거하셨는데, 이는 죄악의 진영으로부터 상징적으로 분리된 곳이었다. 그러면서 장막은 또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였다.(대속의 피, 제사장들을 통해서) 성막, 그리고 그 이후의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죄에 대한진노가 희생 제물을 통하여 진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의 건축은 또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후사로 택하였음을 선언하셨다. 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이 그들의 것임을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스라엘을 다른 모든 나라와 구별하였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족속이었다.
하나님의 택하심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시내산에 언약의 회중으로 모으셨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소유로 선언된 것이다. 그들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이 택하신 족장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로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선택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선택된 자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땅위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하여 복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자신의 구원을 모든 족속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용하기 위하여 먼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유일한 자질은, 연약함, 어리석음, 무가치함이며, 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그런 위치를 부여한 것이다.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언약을 파기하였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비웃는 것을 비통히 여겼다. 이후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대참사를 겪는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두시고, 남은 자들을 새롭고 정결케 하실 것이다. 또한 구속은 하나님의 순전한 자비로 인하여, 열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참된 종,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의 완전한 순종과 구속의 고난을 통하여 새 언약이 새워지는 것이다. 또한 그 언약의 다른 측면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 종이 왕야 할 뿐만 아니라 주께서 또한 오셔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의 이야기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aFf/68
제 2 장 하나님이 백성
박 석 화
지금까지 내려온 이야기 중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에덴동산에서 여인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에서 시작 된다. 이 이야기는 맹세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계속된다. 교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시작된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하실 것인지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어떠한 존재가 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점점 충만하게 드러내신다.(아브라함 - 출애굽 - 시내산 언약 - 다윗 - 바벨론 포로- 선지자들을 통한 회복의 약속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부활 - 오순절 성령 강림 - 새 언약 교회)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회중과 몸이요 성령의 교통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성례중시주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교회를, 재세례파 교회는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교회를, 오순절 교회는 성령의 교통으로서의 교회를, 제2차 바티칸 공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의 포괄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용어를 재사용하였다.
성경적인 교회론을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적 접근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계시의 역사 속에서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교제로 형성된 메시아의 교회가 된다. 성령의 오심은 아브라함에 대한 언약을 성취하고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씨로 만든다. 그리스도의 몸은 성령의 오심 속에서만 그 실체를 충만히 드러낸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에서만 죄인들을 새 언약의 피로 뿌림을 받아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회중
‘에크레시아’라는 용어는 헬라어 구약 성경에서 카알을 번역한 말로 모여 있는 무리를 묘사한다. 이는 모두 ‘회중’(회집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보다는 실제로 모여 있는 무리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교회라고 불리는 것은 다른 모든 그룹이 그렇듯이 단지 함께 모이기 때문인가? 예수님은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실 때 다분히 구약적인 의미로 사용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과 언약을 맺기 위하여 그들을 시내산 앞으로 부르시던 그 위대한 ‘하나님의 총회’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앞에 모여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온 무리였다. 하나님의 회중은 그 분의 ‘거룩한 자들’을 모두 포함한다.(천군, 천사, 지상의 성도들,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 그 회중 가운데 예배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에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기 땅에서 모이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계신 그 곳에서 모이기 때문이다.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와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이 계신 회중으로 올 때 주님 역시 성령에 의하여 우리 회중에게 오신다.
주님의 참된 회중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 즉 가정 교회로, 도시 교회로, 보편 교회로 따우이에 나타난다. 심지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두세 명이라도 그분의 능력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하심
자신의 회중을 시내산에서 시온으로 옮기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원칙을 가르치신다.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러 오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다.(성막, 성전)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고 하나님은 거룩하셨기 때문에 장막의 설계에는 경계선지 준비되었다. 하나님은 장막 뒤편에 거하셨는데, 이는 죄악의 진영으로부터 상징적으로 분리된 곳이었다. 그러면서 장막은 또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였다.(대속의 피, 제사장들을 통해서) 성막, 그리고 그 이후의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죄에 대한진노가 희생 제물을 통하여 진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의 건축은 또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후사로 택하였음을 선언하셨다. 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이 그들의 것임을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스라엘을 다른 모든 나라와 구별하였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족속이었다.
하나님의 택하심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시내산에 언약의 회중으로 모으셨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소유로 선언된 것이다. 그들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이 택하신 족장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로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선택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선택된 자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땅위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하여 복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자신의 구원을 모든 족속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용하기 위하여 먼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유일한 자질은, 연약함, 어리석음, 무가치함이며, 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그런 위치를 부여한 것이다.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언약을 파기하였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비웃는 것을 비통히 여겼다. 이후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대참사를 겪는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두시고, 남은 자들을 새롭고 정결케 하실 것이다. 또한 구속은 하나님의 순전한 자비로 인하여, 열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참된 종,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의 완전한 순종과 구속의 고난을 통하여 새 언약이 새워지는 것이다. 또한 그 언약의 다른 측면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 종이 왕야 할 뿐만 아니라 주께서 또한 오셔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의 이야기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aFf/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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