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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나시우스의 그리스도의 신인성에 대한 이해

아다나시우스의 그리스도의 신인성에 대한 이해
 남상수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의 인격, 즉 신성과 인성의 문제는 초대교회 당시부터 신학적 논쟁의 중심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기독론 교리가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으므로 여러 가지 논란이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이단적인 사상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신앙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이 헬라의 영지주의(Gnosticism) 사상이었다. 영지주의 사상이 고대교회의 교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1) 물론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하였지만,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이해에 있어서는 각기 다른 입장들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그가 참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기 위하여는 그의 속죄사역의 필연성으로 말미암아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와 사람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이 두 성품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초대교회의 문제만 아니었다. 교회사를 통해서 많은 이단들이 항상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 하여 사람인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고 종교적이나 도덕적으로 탁월한 성품을 가진 인격으로 묘사하기도 하며, 이러한 경향은 현대의자유주의 신학자들 소위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과 슐라이마허나 트륄취 또는 리츨과 같은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의 본체인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자들이다. 오늘날도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는 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인성교리가 무너지거나 잘못 이해되어지면 하나님의 구원하심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즉 복음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회 신앙은 헛된 것이 된다.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는 십자가 없는 허울 좋은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엔 구원이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사람의 지혜만 있을 뿐이다.
 
이제 본고는 아다나시우스의 기독론적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신인성교리의 이해가 어떤 의의가 있는지를 몇 가지의 논점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다나시우스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바르게 변증하고자 니케아 신경을 수립하였다. 그의 삼위일체 교리 정립에 대한 공헌은 ‘아다나시우스 신조’라 하여 9세기 이후로 알려진 “Quicunpue vult salvus esse"로 시작되는 Symbolum quicunque2)에 잘 나타나있다.3) 이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기독론 교리가 체계화 되어 나타난다.4)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인 것을 논하기 위하여 그는 로고스의 성육신에 관하여 (de incarnatione Verbi)를 저술하였다. 그의 출발점은 요 1:14이었다. 로고스가 인간이 되실 때 한 인간 안으로 들어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다나시우스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로고스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라고 확신했다. 그 말씀의 성육신의 동기는 죄인들의 구원이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사 출생하시고 사람의 몸에 나타나시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셨다(De incarnatione Verbi, 4)5)
 
Ⅰ. 창조의 말씀이 육체를 입으시고 구속주가 되셨다.(요 1:14)6)
 
아다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 자체를 구속사적으로 이해했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동기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멸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셨다는 것이다.7) 아다나시우스의 ‘De Incarnatione Verbi Dei"8)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하나님의 말씀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9)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태초에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그 말씀이신 하나님만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에 적합하며 또 많은 이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에 합당한 분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신 것이다.10) 이렇게 아다나시우스에게서 우리는 창조와 구속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11)
 
특히 아다나시우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이미 성육신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써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었고, 그분은 아버지에게서만  나셨으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아다나시우스 신경(Symbolum quicunque)에 잘 나타나 있다. 아다나시우스 신경(The Athasian Creed)12)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Ⅱ. 성육신의 이유
 
아다나시우스에게 있어서 기독론 교리의 이해는 타락하고 사망 가운데 멸망에 이르게 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13) 로고스가 성육신 하게 된 이유는 그가 우리와 같은 육체를 취하시므로 죽음을 폐하고 구원하기 위함이셨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의 부패의 형벌아래 있으므로 자기 몸을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에 넘기셨다는 것이다.14) 로고스는 인간의 부패가 필요조건으로 죽음 외에는 달리 무효화될 수 없기 때문에, 불사하시는 말씀 자신이 죽을 수 없으므로 죽을 수 있는 육체를 취하시어 모두를 대신해서 죽기로 하신 것이다.15) 그 몸 안에 불사하시는 말씀이 거하시므로 부활의 은혜에 의해서 죽음에서 떠나게 되었고, 그는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바치므로 자기 동료에게서 죽음을 제하고 자기 죽음으로 모든 빚을 다 지불하였다.16) 이렇게 아다나시우스는 성육신을 구원론적으로 다루었다.17)
 
아다나시우스는 당시의 에피쿠르스 학파의 정령숭배적인 유물론이나 영지주의적인 사고방식들에 대해서 반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면서 그 필연성을 설명했다. 고대교부들에게 당시의 에피큐리안이나 스토아학파의 영지주의 사상이 미친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흔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오류를 가진 고대 교부 가운데 대표적으로 오리겐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영혼이 매개체가 되어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졌다고 생각했다.18) 이러한 개념은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the Platonic dualism of Origen)의 영향으로 인간이 영, 혼과 육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삼분설의 입장이다.19) 즉 로고스와 육의 결합을 위해 영혼이 매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신과 육의 중간적 존재이므로 하나님도 받을 수 있다. 오리겐에 있어서 영혼은 이미 신적인 것과 영원 전에 결합되어 있다고 보고 있었다.20) 이러한 오리겐의 사상은 영혼선제설의 개념이었다. “The soul has already been unified from eternity with the divine Logos in complete understanding and love of God.”21)
 
따라서 오리겐은 그리스도가 영혼을 통하여 육과 결합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 되실 수 있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영혼이 말씀과 완전히 연합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이고 하나님의 칭호로 불리우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울 수 있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혼이 신성(로고스)과 육체의 연합을 이룸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오리겐은 보았다.22)
 
이러한 오리겐의 사상은 결국 인성이 신화(deificatio)되어간다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그를 믿는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모방자로서 그의 신적 본성에 동참할 수 있다고 하여 후기 헬라교회의 구원을 인간의 신화로 보는 길을 열게 되었다.23) 결국 오리겐은 신적 로고스와 인간의 육체가 합치는 로고스-육(Logos-sarx)의 기록론을 제시하여 인간 영혼을 부인하여 영혼을 로고스와 육체의 매개적 존재로 내세워 구원을 신화(deificatio)의 문제로 보는데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목적은 범죄로 타락하고 멸망에 처하게 된 인류를 하나님 앞에서 죄의 값을 치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얻게 된 이 의를 전가시켜 주시기 위함이다. 아다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을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금 죽음의 법을 무효화하고 부패되어 가는 인간을 부패하지 않는 것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24)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이유이다.
 
아다나시우스는 플라톤과 에피쿠르스 학파를 비판하면서 그리스도는 인격적 창조자시며 모든 만물을 의지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오리겐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문제를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보게 된 것이다.25)
 
구원론의 문제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문제이다. 성육신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ⅰ. 대속을 이루기 위하여는 참 사람(Truly Man)이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사람이 아니라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이 죽음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의 존재는 반드시 참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죄를 위한 속죄사역과 죽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대한 값을 치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천사가 할 수 없고 다른 어떤 존재가 될 수 없다. 오직 흠 없는 참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ⅱ. 대속을 이루기 위하여는 참 하나님(Truly God)이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구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성립될 수 없다. 죄인들의 이와 같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적인 능력이 아니면 수행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죄인들의 구원의 문제는 진리와 공의의 문제요, 능력의 문제이므로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떤 피조물도 감당 할 수 없다. 오직 그 모든 것의 절대적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죄인들의 구속이 진리대로 공의롭게 영원히 단번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그는 반드시 참 하나님이셔야 한다. 이러한 중보자라야 죄인들에게 합당한 것이다.
 
ⅲ. 구원을 이루는 것은 신성(god-head)인가 인성(humanity)인가?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는 참 하나님(Divinity)과 참 사람(humanity)이 위격적으로 연합(hypostatic union: the union of humanity and divinity)된 존재여야 한다. 만일 예수의 인성만을 놓고서 그를 그리스도라 할 수 있는가? 반대로 예수의 신성만을 놓고서 그를 그리스도라 할 수 있는가? 참 사람과 참 하나님의 두 성품이 만일 한 위격으로 연합되어 있지 않는다면 그런 존재는 있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죄와 부패와 타락과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의 구원이 진리대로 이루어지려면 참 하나님으로서 신성과 참 사람으로서 인성이 한 위격으로 연합된 존재여야 한다. 이렇게 한 위격 안에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진 인격적 존재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그분,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 안에서 연합된 인격체(unitas in unio)로서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이와 같은 속성교통(communicatio idiomatum)의 원리 안에서 이해되어지는 그리스도야 말로 구속의 중보자로서 합당하다. 따라서 사역의 주체는 성(nature)이 아니라 인격(Person)이다.
 
Ⅲ. 성육신의 방식
 
영지주의(gnosticism)의 이해와는 달리 아다나시우스는 로고스가 주체가 되어 마리아의 태에 한 육체를 만드셨음을 말한다.26) 또한 로고스가 그 육체를 성전으로 삼았다고 강조한다.27) 그는 만물을 조성자(Artificer)이며 전능한 존재이지만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육(Sarx)을 자기에게 성전으로 마련하셔서 그것을 자기의 도구로 삼고 그 육(Sarx) 안에 나타나시고 거주하셨다.28)
 
즉 아다나시우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의 문제에서 주체는 로고스이셨으며, 그 창조의 말씀이 친히 자신의 육체를 준비하셨고, 마리아의 태중에서 신비한 신인의 연합을 통하여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중보적 존재가 필요했는데, 아다나시우스는 이것을 영지주의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창조와 구속의 중보로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일본질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해되어질 때 죄인의 참된 구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로고스 자신이 취하신 성육신이라도 그의 초월적 신분은 변하지 않는다.29) 그는 여전히 몸을 가지셨지만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그의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통치하고 계신다.30) 그러나 로고스가 육체와 연합되어 있어도 신성은 육체와 함께 혼합되거나 혼동되거나(inconfusedly) 변화나(unchangeably) 분열(undivisibly)이나 분리가(inseparably) 없이 위격적으로 연합되어 존재하시는 것이다.
 
성육신 후에도 로고스가 몸 안에 계셨지만, 그의 신적 본질은 육체에 한정되지 않았으며31) 몸에 계시는 동안 다른 곳에도 계셨다.32) 그가 지상의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만물을 통치하시고 보존하셨다.33) 또한 그는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시며 친히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심으로써 임마누엘의 약속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는 육체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셨다. 로고스는 사람이 되셨으나 그의 신적 존재와 본질은 육체와 함께 하면서 만물에 생명을 주고34) 아들로서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결 론
 
이제 본고는 아다나시우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아다나시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 신적 본질이 하나님의 로고스로서 영원부터 창조의 말씀이셨다. 그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며, 그를 통하여 만물이 있고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로 인하여 존재한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들 가운데 그 말씀이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온 우주에 앞서 나셨고, 참 신이시며, 참 빛이시며, 참 신 가운데 신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고, 성부 하나님과 같은 본질(de substantia Patris)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신 분이시다.35)
 
이렇게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은 하나님의 로고스로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동일본질(호모우시온)이시며 영광과 권능과 지식이 동일하시다.36) 로고스(본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모두 아시며, 아버지도 아들을 모두 아시며, 성령을 또한 모두 아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시며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다.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 로고스께서 이제 육체를 입으시고 사람 가운데 거하시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인간들을 신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가 되셔서 죄인들의 모든 죄과를 벗겨버리시고 자기 몸으로 친히 화목제물을 삼으셔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이 구속의 사역은 인성으로만 아니요 신성으로만 아니다.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 안에서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서 이루심이다.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속성교통은 상호침투하나 혼동되지 않으며, 분리되거나 혼합되지 않는다.37) 로고스의 신성은 여전히 신적 본질을 갖고 계시며 만물 위에 계시며 또한 그 가운데 계신다. 그러함에도 그리스도의 육체는 신성에 의하여 여전히 취하여져 위격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이 위격적 연합에서 신성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으나 인성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위격적 연합이 이루어진 후에 그리스도의 중보직은 영원하므로 이 속성교통 또한 영원한 것이다.
 
죄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사람이 아니거나 하나님이 아니시면 이 구원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두 성품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개혁주의 속성교통 교리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본다. 본고는 아다나시우스의 기독론을 살펴보면서 다시금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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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Volume One”. by Aloys Grillmeier, S.J. Translated by John Bowden. JOHN KNOX PRESS ATLANTA. p.310.
2) SYMBOLA CECUMENICA Ⅳ. SYMBOLUM ATHANASIANUM.  The Athasian Creed. P.67.
3) 서철원. 교리사. 총신대출판부. 서울. p.423.
4) SYMBOLA CECUMENICA., p.68. 29번부터 기독론에 대해서 논한다.
5) 서철원., p.423.
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7) ST.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Translated and Edited by A Religious of C.S.M.V. p.26, 33(de incarn 8)
8) Ibid.
9) Ibid., p.28.
10) 서철원., p.425.
11) ST.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p.27(De incarn. 1-3.). 34.
12) The Athasian Creed. p.66.
13) 서철원., p.424.
14) Ibid.
15) Ibid.
16) “ST.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p.35(De incarn. 9).
17)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Volume One”. by Aloys Grillmeier, S.J. Translated by John Bowden. JOHN KNOX PRESS ATLANTA. p.313. "Athanasius obviously regards the Logos as the real personal agent in those acts which are decisive for redemption, the passion and death of Chirst."
18)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Volume One., Aloys Grillmeier. p.146.
19) 서철원. p.419.
20)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Volume One., Aloys Grillmeier. p.146.
21) Ibid.
22) 서철원. p.420.
23) Ibid. p.420.
24) ST.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p.35(De incarn. 9).
25) Ibid,, p.26-27(De incarn. 2).
26) Ibid,, p.46(De incarn. 18).
27) Ibid., p.34(De incarn. 8, 9, 20)
28) 서철원., p.426.
29) Ibid.,
30) Ibid.,
31) ST.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p.45(De incarn. 17).
32) Ibid.,
33) Ibid.,
34) Ibid.,
35) SYMBOLA CECUMENICA Ⅳ. Symbolum Nicaenum. A.D. 325. p.60.
36) Ibid., p.62.
37) Ibid.,
 
[출처] 아다나시우스의 그리스도의 신인성에 대한 이해|작성자 말씀사랑
http://blog.naver.com/trinity137/8006371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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