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발드 알렉산더
1. 아치발드 알렉산더
1812년에 설립된 프린스턴 신학교의 최초 교수였던 아치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1772-1851)는 저명한 목사요 부흥사였다. 알렉산더는 버지니아주 랙싱턴 근처에서 태어나 리버티 홀 아카데미(현 워싱턴 앤드리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직후에 그레이엄(William Graham) 밑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794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그로부터 2년 뒤에 햄프턴 시드니대학의 학장이 되어 10년간 학장직을 맡았다. 1807년 초에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교회인 필라델피아 파인스트리트교회 목사가 되었다. 1812년 소집된 총회는 프린스턴신학교 설립을 가결하였으며, 알
렉산더를 그 신학교의 초대 교수로 선출하였다.
그는 프린스턴에 온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후계자인 찰스 하지는 선생을 너무나 존경해서 아들 이름을 아치발드 알렉산더 하지라고 했을 정도이다. 하지의 아들도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다.
알렉산더는 당시의 신학 풍조 속에서는 개혁 신앙을 올바른 전통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앙을 돕는 이성 그리고 광신이 아닌 신앙 체험이 그의 이상이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낭만주의를 거쳐서 자유주의 세력이 팽창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부흥회 운동이 한창이었다. 자유주의나 부흥회운동이 인간의 의지나 감정을 강조하는 주관적인 신앙을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는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선포할 책임을 느꼈다. 그의 시대에 신자가 된 사람들은 신앙 체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관적인 체험과 교리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해줄 필요를 느꼈다. 그는 이 일을 아주 실제적으로 해결했다. 즉 신앙의 체험을 교리에 복종시키도록 요구하였다. 체험이 제멋대로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알렉산더는 프린스턴 신학이 추구하는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 그것은 당시의 회의적 이성주의나 감정에 치우친 부흥회주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신앙의 열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유주의나 감정주의 어디에도 빠지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의 객관적인 요소와 개인이 경건 생활에 적용하는 주관적 요소의 긴장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주관적인 이성이나 감정은 반드시 객관적인 성경의 권위에 의지해야만 했다. 아무리 체험이 분명하고 생생해도 그것은 항상 성경에 의해서 옳고 그름을 시험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절대로 이성과 부조화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최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밝혀진 정확무오한 진리의 교리를 받아들일 때이다. 그것이 이성이 주어진 최대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의 자유주의의 도마 위에서 잃어버려져 가고 있는 성경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성경의 완전 영감을 주장하였다. 성경은 그 내용이 사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성경의 기적들은 모두가 사실이고 진실이다. 과학적으로 볼때도 너무 정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 덧붙여져서 성경은 영감을 받아서 기록된 특별한 책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성경 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의 영감은 그들이 잘못하지 않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기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사실들을 기록한다. 아기가 뒤뚱대며 걸음마를 옮길 때 그 바로 뒤에서 아기를 따라가며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는 아버지를 생각해 보라. 이때 성령은 그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인간일 뿐인 성경 기자가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진실성과 영감은 서로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기자는 관찰을 통해서 당시의 사건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기억 속에 분명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사건을 기술할 때쯤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정확이나 실수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 내용이 틀림이 없으려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영감을 받지 않고 쓰거나 말하는 것처럼’ 그들 스스로의 문체나 표현 방법을 그대로 가지고 성경을 기록하였다. 영감은 지식이나 글, 어느 면에서나 인간의 실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정확성, 틀림없는 정확성’ 이것은 어떤 기록에서나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바로 그 정확성이 성경에 적용된 것이다.
알렉산더는 위와 같이 성경의 완전 영감을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 앞에 성경의 권위를 바로 세웠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2179
1812년에 설립된 프린스턴 신학교의 최초 교수였던 아치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1772-1851)는 저명한 목사요 부흥사였다. 알렉산더는 버지니아주 랙싱턴 근처에서 태어나 리버티 홀 아카데미(현 워싱턴 앤드리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직후에 그레이엄(William Graham) 밑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794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그로부터 2년 뒤에 햄프턴 시드니대학의 학장이 되어 10년간 학장직을 맡았다. 1807년 초에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교회인 필라델피아 파인스트리트교회 목사가 되었다. 1812년 소집된 총회는 프린스턴신학교 설립을 가결하였으며, 알
렉산더를 그 신학교의 초대 교수로 선출하였다.
그는 프린스턴에 온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후계자인 찰스 하지는 선생을 너무나 존경해서 아들 이름을 아치발드 알렉산더 하지라고 했을 정도이다. 하지의 아들도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다.
알렉산더는 당시의 신학 풍조 속에서는 개혁 신앙을 올바른 전통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앙을 돕는 이성 그리고 광신이 아닌 신앙 체험이 그의 이상이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낭만주의를 거쳐서 자유주의 세력이 팽창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부흥회 운동이 한창이었다. 자유주의나 부흥회운동이 인간의 의지나 감정을 강조하는 주관적인 신앙을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는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선포할 책임을 느꼈다. 그의 시대에 신자가 된 사람들은 신앙 체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관적인 체험과 교리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해줄 필요를 느꼈다. 그는 이 일을 아주 실제적으로 해결했다. 즉 신앙의 체험을 교리에 복종시키도록 요구하였다. 체험이 제멋대로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알렉산더는 프린스턴 신학이 추구하는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 그것은 당시의 회의적 이성주의나 감정에 치우친 부흥회주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신앙의 열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유주의나 감정주의 어디에도 빠지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의 객관적인 요소와 개인이 경건 생활에 적용하는 주관적 요소의 긴장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주관적인 이성이나 감정은 반드시 객관적인 성경의 권위에 의지해야만 했다. 아무리 체험이 분명하고 생생해도 그것은 항상 성경에 의해서 옳고 그름을 시험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절대로 이성과 부조화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최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밝혀진 정확무오한 진리의 교리를 받아들일 때이다. 그것이 이성이 주어진 최대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의 자유주의의 도마 위에서 잃어버려져 가고 있는 성경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성경의 완전 영감을 주장하였다. 성경은 그 내용이 사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성경의 기적들은 모두가 사실이고 진실이다. 과학적으로 볼때도 너무 정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 덧붙여져서 성경은 영감을 받아서 기록된 특별한 책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성경 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의 영감은 그들이 잘못하지 않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기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사실들을 기록한다. 아기가 뒤뚱대며 걸음마를 옮길 때 그 바로 뒤에서 아기를 따라가며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는 아버지를 생각해 보라. 이때 성령은 그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인간일 뿐인 성경 기자가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진실성과 영감은 서로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기자는 관찰을 통해서 당시의 사건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기억 속에 분명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사건을 기술할 때쯤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정확이나 실수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 내용이 틀림이 없으려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영감을 받지 않고 쓰거나 말하는 것처럼’ 그들 스스로의 문체나 표현 방법을 그대로 가지고 성경을 기록하였다. 영감은 지식이나 글, 어느 면에서나 인간의 실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정확성, 틀림없는 정확성’ 이것은 어떤 기록에서나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바로 그 정확성이 성경에 적용된 것이다.
알렉산더는 위와 같이 성경의 완전 영감을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 앞에 성경의 권위를 바로 세웠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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