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핑크
아더 핑크
오늘은 아더 핑크(Arthur Pink, 1886년 4월 1일~1952년 7월 15일)의 유명한 한 편지에 대해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더 핑크는 기독교 복음전도자이며 성경학자로서 철저한 칼빈주의를 지향하고 청교도적 삶을 강조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영국 노팅험에서 태어난 그는 성경을 통해 교훈하는 부모님의 말씀으로 견신(見神) 또는 접신(接神)론(theosophy)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에게 결정적 개종을 이끌었던 말씀이 바로 잠언 14:12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성경 말씀 중심으로 자라난 핑크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무디 성경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기 위해 이민해 왔습니다. 1916년 버라 러셀(Vera E. Russell)과 혼인한 후 콜로라도 주, 캘리포니아 주, 그리고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1925년~1928년 호주에서 두 달 간 목회 경험을 쌓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미국으로 다시 이주해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켄터키,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목회했습니다. 1922년 『성경연구』(Studies in Scriptures)라는 잡지를 통해 기독교인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영국으로 돌아가서 저서활동을 재개합니다. 192년 7월 15일 스코틀랜드의 스토노웨이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더 핑크는 가끔 이상하리만큼 어떤 곳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접론적 배경에서 개종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는 청교도 신앙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와 복음적 활동은 그렇게 성공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저서들은 그렇게 잘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연구』 잡지도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는 스코틀랜드 작은 마을에서 글을 쓰고 고독하게 지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것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세상이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죽음으로 몰았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고 뽐내는 이 세상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이 당시에 위대한 기독교인들 가운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핍박 자체라고 그는 여겼습니다.
칼빈주의를 고수하면서 교회들 내에 유행하고 있는 아르미니안주의를 늘 경계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는 구원에 있어 사람들의 자유적 선택을 강조하지만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주장합니다. 또 설교 후에는 절대로 교인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았습니다"라 고 하며 인사를 건낼 때 자신이 교만해질까봐, 그래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이 가로챌까 싶어서 그랬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 늘 정직한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 멀리 은둔하며 살면서도 아더는 성경연구에 관해 관심을 쏟았습니다. 여러 문의들에 대해 답변을 썼습니다. 일주일에 40통 이상의 답장을 썼습니다.
1937년 오늘 그는 한 답신 안에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그리스도의 임박성도 그분의 멀리 계심도 우리의 일시적인 일들을 규정하지 못합니다. 오직 영적 준비만 위대한 일입니다.
1952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더가 설립했던 성경연구 자료들은 인쇄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십만의 기독교인들이 그의 저서들을 접하고 사랑합니다. 그가 늘 했던 말들입니다.
현대 신학의 ― 신학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몰라도 ― 그 흐름은 창조주의 영광보다도 피조물의 신성시(deification)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Savior)십니까? 라고 묻는 것보다 그분이 진실로 참으로 당신의 구주십니까? 라고 물어봅시다. 만일 그분이 당신의 주님(Lord)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당신의 구주(Savior)심이 분명히 아닙니다.
어떤 것도 너무 위대하고 어떤 것도 너무 형편없어 주님의 손을 의탁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주옥과 같은 핑크의 글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114
오늘은 아더 핑크(Arthur Pink, 1886년 4월 1일~1952년 7월 15일)의 유명한 한 편지에 대해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더 핑크는 기독교 복음전도자이며 성경학자로서 철저한 칼빈주의를 지향하고 청교도적 삶을 강조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영국 노팅험에서 태어난 그는 성경을 통해 교훈하는 부모님의 말씀으로 견신(見神) 또는 접신(接神)론(theosophy)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에게 결정적 개종을 이끌었던 말씀이 바로 잠언 14:12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성경 말씀 중심으로 자라난 핑크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무디 성경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기 위해 이민해 왔습니다. 1916년 버라 러셀(Vera E. Russell)과 혼인한 후 콜로라도 주, 캘리포니아 주, 그리고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1925년~1928년 호주에서 두 달 간 목회 경험을 쌓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미국으로 다시 이주해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켄터키,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목회했습니다. 1922년 『성경연구』(Studies in Scriptures)라는 잡지를 통해 기독교인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영국으로 돌아가서 저서활동을 재개합니다. 192년 7월 15일 스코틀랜드의 스토노웨이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더 핑크는 가끔 이상하리만큼 어떤 곳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접론적 배경에서 개종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는 청교도 신앙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와 복음적 활동은 그렇게 성공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저서들은 그렇게 잘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연구』 잡지도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는 스코틀랜드 작은 마을에서 글을 쓰고 고독하게 지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것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세상이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죽음으로 몰았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고 뽐내는 이 세상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이 당시에 위대한 기독교인들 가운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핍박 자체라고 그는 여겼습니다.
칼빈주의를 고수하면서 교회들 내에 유행하고 있는 아르미니안주의를 늘 경계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는 구원에 있어 사람들의 자유적 선택을 강조하지만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주장합니다. 또 설교 후에는 절대로 교인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았습니다"라 고 하며 인사를 건낼 때 자신이 교만해질까봐, 그래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이 가로챌까 싶어서 그랬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 늘 정직한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 멀리 은둔하며 살면서도 아더는 성경연구에 관해 관심을 쏟았습니다. 여러 문의들에 대해 답변을 썼습니다. 일주일에 40통 이상의 답장을 썼습니다.
1937년 오늘 그는 한 답신 안에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그리스도의 임박성도 그분의 멀리 계심도 우리의 일시적인 일들을 규정하지 못합니다. 오직 영적 준비만 위대한 일입니다.
1952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더가 설립했던 성경연구 자료들은 인쇄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십만의 기독교인들이 그의 저서들을 접하고 사랑합니다. 그가 늘 했던 말들입니다.
현대 신학의 ― 신학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몰라도 ― 그 흐름은 창조주의 영광보다도 피조물의 신성시(deification)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Savior)십니까? 라고 묻는 것보다 그분이 진실로 참으로 당신의 구주십니까? 라고 물어봅시다. 만일 그분이 당신의 주님(Lord)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당신의 구주(Savior)심이 분명히 아닙니다.
어떤 것도 너무 위대하고 어떤 것도 너무 형편없어 주님의 손을 의탁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주옥과 같은 핑크의 글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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