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L.I.P은 성경적인가?
T.U.L.I.P은 성경적인가?
평신도를 위한 예정론 12
개혁주의의 구원관은 오대교리( TULIP)에 의존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질문은
논의중에 있는 이 신학 체계가 어떻게 5개의 교리로 공식화되었는가가 아니다., 왜 칼빈주의로 불려졌는가도 아니다. 성경의 지원을 받는 교리인가가 우리의 관심거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신학체계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는 영감되고,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관이 잘못되면 신학은 당연히 인본주의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절대 진리의 변증이 불필요한 다원주의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이 분명하고, 명백한 성경의 선포임을 증명된다면, 그때에 기독교인들은 나의 생각은 뒤로 하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는 한 반론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틀렸고 내가 맞다는 비기독교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조금은 귀잖고, 조금은 지루해 보이지만 TULIP의 증명을 위해서 충분하리만큼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해야 할 것이다(독자들은 이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한정된 지면관계로 필요한 것은 성경구절과 함께 내용을 실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인용구절들은 성경구절만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관련구절과 유명한 저자들의 주석을 통해서 직접 확인하여 주기를 바란다.
모든 인용은 개역 개정판(이번에 합동측 교단에서는 개혁한글판보다는 개혁개정판을 공식 교단 번역판으로 채택을 하였다. 개역한글판이 문제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 현대감각에 맞는 번역판이 개역개정판이라는 취지에서이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5대교리가 각각 분리된 주제아래 다루게 될 것이다. 각 교리를 지원하기 위해서 구절들이 따로 따로 지원되고, 분류될 것이다. 그러나 각 교리들이 어떤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다루어서는 절대로 안 됨을 주지시키고 싶다. TULIP은 성경에서 분리된 것으로, 독립적인 단위로서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구절에서 그들은 하나의 조화를 이루도록, 내적으로 상호연관된 것으로 옷감처럼 짜여져 있다. 그 속에서 버림받은 죄인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경탄스럽게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들 교리들은 분리할 수 없으며 하나는 다른 네 개의 교리들과 관련을 맺고, 네 개의 교리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충분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서로를 상호보완하며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다른 하나와 연관해서 주시하지 않고 떼어놓고 이들 교리들을 판단하는 것은 피카소의 그림들을 여러 부분으로 등분해서 평가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전체적인 관점으로 하나의 교리를 보게 될 것이다.
창1:1절을 성경 66권의 이해를 가지고 보아야만 제대로 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각 교리들을 쪼개어 성경적인 증거들을 판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주의깊게 하나의 체계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교리로서 본다면, 5대교리의 웅장함이 우리들의 눈에 환히 비추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R.C. Sproul과 같은 사람은 “Unknown Graces"라는 책에서 TULIP를 Unbreakable Fivefold Chain이라고 부르며, 하나 하나를 분리해서 다룰 때에 TULIP은 때가 지남으로 시들은 꽃과 같다고 하였다. 하나가 잘못되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다. 그러나 하나가 맞다고 한다면 귀납적으로 다른 나머지도 맞을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참고서적 : 개혁주의 은혜론 R.C 스프롤 CLC
칼빈의 오대교리 에드윈 팔마 개혁주의 신행협회
http://www.hendersonny.org/board/zboard.php?id=theology&no=15
평신도를 위한 예정론 12
개혁주의의 구원관은 오대교리( TULIP)에 의존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질문은
논의중에 있는 이 신학 체계가 어떻게 5개의 교리로 공식화되었는가가 아니다., 왜 칼빈주의로 불려졌는가도 아니다. 성경의 지원을 받는 교리인가가 우리의 관심거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신학체계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는 영감되고,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관이 잘못되면 신학은 당연히 인본주의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절대 진리의 변증이 불필요한 다원주의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이 분명하고, 명백한 성경의 선포임을 증명된다면, 그때에 기독교인들은 나의 생각은 뒤로 하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는 한 반론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틀렸고 내가 맞다는 비기독교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조금은 귀잖고, 조금은 지루해 보이지만 TULIP의 증명을 위해서 충분하리만큼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해야 할 것이다(독자들은 이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한정된 지면관계로 필요한 것은 성경구절과 함께 내용을 실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인용구절들은 성경구절만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관련구절과 유명한 저자들의 주석을 통해서 직접 확인하여 주기를 바란다.
모든 인용은 개역 개정판(이번에 합동측 교단에서는 개혁한글판보다는 개혁개정판을 공식 교단 번역판으로 채택을 하였다. 개역한글판이 문제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 현대감각에 맞는 번역판이 개역개정판이라는 취지에서이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5대교리가 각각 분리된 주제아래 다루게 될 것이다. 각 교리를 지원하기 위해서 구절들이 따로 따로 지원되고, 분류될 것이다. 그러나 각 교리들이 어떤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다루어서는 절대로 안 됨을 주지시키고 싶다. TULIP은 성경에서 분리된 것으로, 독립적인 단위로서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구절에서 그들은 하나의 조화를 이루도록, 내적으로 상호연관된 것으로 옷감처럼 짜여져 있다. 그 속에서 버림받은 죄인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경탄스럽게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들 교리들은 분리할 수 없으며 하나는 다른 네 개의 교리들과 관련을 맺고, 네 개의 교리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충분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서로를 상호보완하며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다른 하나와 연관해서 주시하지 않고 떼어놓고 이들 교리들을 판단하는 것은 피카소의 그림들을 여러 부분으로 등분해서 평가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전체적인 관점으로 하나의 교리를 보게 될 것이다.
창1:1절을 성경 66권의 이해를 가지고 보아야만 제대로 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각 교리들을 쪼개어 성경적인 증거들을 판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주의깊게 하나의 체계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교리로서 본다면, 5대교리의 웅장함이 우리들의 눈에 환히 비추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R.C. Sproul과 같은 사람은 “Unknown Graces"라는 책에서 TULIP를 Unbreakable Fivefold Chain이라고 부르며, 하나 하나를 분리해서 다룰 때에 TULIP은 때가 지남으로 시들은 꽃과 같다고 하였다. 하나가 잘못되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다. 그러나 하나가 맞다고 한다면 귀납적으로 다른 나머지도 맞을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참고서적 : 개혁주의 은혜론 R.C 스프롤 CLC
칼빈의 오대교리 에드윈 팔마 개혁주의 신행협회
http://www.hendersonny.org/board/zboard.php?id=theology&no=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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