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알아야 할 거듭남의 본질
바로 알아야 할 거듭남의 본질(스테판 차녹. 2007. 손성은 옮김
들어가면서
최근의 책들을 중심으로 ‘중생, 교회, 개혁주의 그리고 문화’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연결해서 살펴보자. 즉 거듭남 사람은 어떤 교회에 속하여, 어떤 신앙을 가지고, 세상과 관계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
1. 『바로 알아야 할 거듭남의 본질』(스테판 차녹. 2007. 손성은 옮김. 지평서원)
1.1. 저자 소개:
스테판 차녹 (Stephen Charnock)은 1628년 런던에서 Lancashire 지방의 명문 가문에 출생했다. 아버지 Richard Charnock은 런던의 변호사였다. 14세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하여 훗날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된 William Sancrift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 때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18세에 신사 학위를 받은 후, 어느 가정의 목사로 목회를 시작했고, 시민전쟁이 발발하자 Southwark에서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사역을 했다. 1650년에 옥스퍼드대학교에 대학원 특별 연구생으로 등록하여 Thomas F. Goodwin (1600-1679)과 John Howe같은 청교도의 거목들과 함께 일했다. 1652년 옥스퍼드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656년까지 옥스퍼드대학의 학생감 (proctor)으로 섬긴 후, 아일랜드 총독 Henry Cromwell을 수행하는 전속 목사로 일했다. 1660년에 다른 청교도 목사들처럼 차녹도 목사직 수행을 금지 당했다. 다사다난했던 이 15년 동안 그는 연구에 집중했으며 (출판된 책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 중생론, 거듭남, 하나님의 섭리 등), 목사직이 회복되자 Crosby Hall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1680년 7월 27일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단력과 상상력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열심과 근면이라는 두 바퀴를 가졌던 차녹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복지를 묵상하며 실천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명쾌하면서도 설득력과 십자가 복음에 기초한 감동을 갖춘 탁월한 설교자였던 그는 ‘하나님의 손이 빚은 설교자’라고도 불렸으며, 신학 저술은 청교도뿐 아니라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번역자 손성은 목사는 영국에서 약 10년간 신학 수업과 목회를 한 후, 2008년이래로 부산 삼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1.2. 내용 개관:
원제는 'The new birth II: a discourse of the narrative of regeneration'이다. 1부 ‘거듭남의 목적과 본질에 대한 정의’에서,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다시 사심의 목적은 우리의 거듭남이라고 설명한 후 거듭남의 본질을 정의 한다. 2부 ‘무엇이 거듭남인가’에서 거듭남이 아닌 것들을 지적한 후, 내외적인 변화로서의 거듭남을 설명한다. 3부 ‘새로운 피조물의 본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지니는 생명의 원리와 은혜로운 습관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등을 다룬다. 4부 ‘적용’에서 참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과 영광 중에 완전하게 된다는 소망이 주는 위로 및 자기 점금을 위한 시금석을 다룬다. 마지막 5주 ‘권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새로운 피조물과 여전히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사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자들에게 각각 권면을 준다.
‘거듭남’이란 성령의 효과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위대하고도 엄청난 변화다. 그 변화를 통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원리, 새로운 습관, 하나님의 법, 그리고 신적인 성품이 형성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워하며, 거룩하게 행하고, 영원한 영광을 향하여 자라간다. 거듭난 자에게는 이전에 없던 것이 존재하고, 변화와 창조가 나타난다 (p. 4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인데,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며 사는 것을 목적으로 여긴다 (고후 5:17).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고후 5:16). 거듭나지 않은 자의 관심은 세속적이지만,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살고 있다는 증거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거룩한 삶이다 (p. 30).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격을 가리키는 ‘새로운 피조물’이 살아가는 본질은 믿음과 사랑이다 (갈 5:6; 6:15).
차녹이 거듭남과 관련된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자. 첫째, 영적인 변화인 ‘거듭남’과 영적인 활동인 ‘회심’은 다르다. 거듭남은 하나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며, 회심은 이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듭남으로 우리가 전환할 수 있는 원리를 받고, 회심은 바로 전환하는 것 그 자체이다. 거듭남이 원인이라면 회심은 결과이다. 거듭남에서 인간은 수동적이지만, 회심에서는 능동적이다 (p. 43-44). 둘째, 차녹은 거듭남과 칭의를 구분한다. 거듭남으로 하나님과 동화되고 닮게 되지만, ‘칭의’에 의해 하나님과 화해한다. 칭의는 죄인의 상태에서 의인의 상태로 바뀌는 관계적 변화이다. 거듭남은 죽은 자가 생명을 가진 자로 바뀌는 실제적 변화이다 (p. 47). 칭의가 그리스도 보혈의 직접적인 열매라면, 거듭남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다 (p. 48). 칭의가 저주받음에서 무죄언도로의 변화이며, 거듭남은 오염에서 친교로의 변화이다 (p. 49). 셋째, 차녹은 거듭남과 입양을 구분한다. ‘입양’이 칭의에서 파생되어 하나님과의 화해를 전제로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주는 것이라면, 거듭남은 우리에 자녀됨의 본성을 준다. 넷째, 차녹은 거듭남과 성화를 구분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가지게 되는 습관인 ‘성화’도 거듭남과 다르다 (p. 52).
거듭남은 본성의 파괴가 아니다 (p. 55). 그렇다고 거듭남은 본성 속에 이미 새겨져 있던 그 무엇을 끌어내어 다듬는 것도 아니고,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듭남은 죽어 있는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이며, 무 (無)에서 사람이 창조된 것 같이 새로운 창조이다 (p. 61). 거듭남은 옛 본성에 무언가를 첨가시키는 것이 아니며 (p. 63), 거듭난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지 수선된 (mended) 피조물도 아니다.
거듭남은 모든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은혜에 의한 실제적인 변화이다 (p. 69). 그 변화란 죄로 뒤틀린 기질이 벗겨지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정서로 옷 입는 것이다 (p. 72). 거듭남은 이해력, 의지, 양심, 정서와 같은 전인적인 변화이다 (p. 75). 거듭난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위하여’, ‘으로부터’ 나오는 원리를 가진다 (p. 83). 거듭남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p. 87). 거듭난 자는 내면과 외면이 모두 변화되는데, 요약하자면 자연 대신에 은혜가, 육신 대신에 성령이 역사 한다 (p. 107). 거듭난 자는 죄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에게로 이끌리는 은혜로운 습관 (혹은 내적인 틀; 예. 믿음으로 활성화 되는 사랑, 겸손, 복종, 인내 등)을 가진다 (p. 119).
새로운 피조물인 거듭난 자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영혼을 준비시켜야 하는데 기질 (성향, 의지)적인 면과 활동적인 면에서 준비가 필요하다. 죄의 토양을 떠나 은혜의 토양으로 옮겨지면 처음에는 저항과 어색함이 있지만 결국 새로운 습관이 기질에 정착되면, 옛 습관을 이기면서 역동적이고 지속적이며 자연스럽고 유쾌한 방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p. 132).
새로운 피조물에는 은혜의 법으로서의 ‘마음의 법’이 주어지는데 (롬 7:23),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찬동하며 내적으로 일치하려고 하며 사랑으로 복종하려는 마음이다 (p. 177). 거듭난 자는 자신을 낳은 분이신 하나님을 닮는다 (골 3:10; p. 179). 착함, 의로움, 인애, 공평, 진실, 거룩,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 즉 예수님과 성령을 닮는데 내적인 기질이 유사하다 (렘 9:24; 요 3:6; 엡 5:9; 요일 3:7; p. 181). 행동의 변화를 가지고 오는 도덕적 함양과 모든 면을 변화시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변화를 주는 새 창조는 다르기에 (고후 3:18), 도덕적인 면이 증가한 것을 거듭남의 표지로 볼 수 없다 (p. 212). 생명과 성령의 법 아래로 들어와 하나님의 기쁨이요 영광스러운 존재인 새 피조물의 범죄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p. 224). 새 피조물 안에도 연약함과 부패함이 있는데 점진적으로 극복하게 된다 (p. 242, 245). 새 창조의 효과와 작용을 탐구하고, 나에게 어떤 변화와 열망 (하나님을 닮는 것,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 하나님을 향한 사랑, 기도와 묵상, 죄에 대한 저항)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p. 251).
차녹은 권면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무가치했던 자를 가치 있게 만드셔서 새 피조물 되게 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화롭게 살며,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인 하나님을 닮아가며, 새 피조물의 생명력을 더욱 활기차게 보존하며 (엡 3:16), 자라가야 한다 (p. 279, 303). 차녹은 ‘여전히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사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자들’에게도 권면한다.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직시하고, 명예스럽고 탁월한 다른 상태에 도달하기를 열망해야 한다 (p. 308). 이를 위해서 자신이 사탄의 원수이며, 속에서 나오는 올곧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새 본성만이 행복을 알고 느낄 수 있음을 알고, 가장 낮은 자에게도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로 자격을 주심을 믿어야 한다. 부패함에 대해 민감하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새 피조물의 탁월한 상태를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애써야 한다 (p. 322).
한 대목 소개하기: “신조의 변경, 신학적 의견의 변화가 새 피조물이 되었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로 종교를 바꿨다고 해서 그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통한 교제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자마다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p. 204).
1.3. 적용:
현대 교회와 전도자는 대부분 순간적인 회심의 경험을 전부인양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진정한 거듭남은 그런 것과 다르며, 매우 실제적이고도 포괄적이다. 거듭남의 풍성함과 영광스러움을 매우 실제적이고도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탁월한 책이다.
2. 『1세기 관계적 교회』(프랭크 비올라. 2007. 박영은 옮김. 미션월드)
2.1. 저자 소개:
현재 고등학교에서 심리학, 철학 교사로 일하고 있다. 여가 시간에는 가정교회들을 개척하고 있으며, 교회 생활 컨퍼런스의 강사로도 활약하고,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2.2. 내용 개관:
원제는 'Rethinking the Wineskin' (2001. Present Testimony Ministry) 즉 ‘포도주 가죽 부대를 다시 생각하기’이다. 이 책은 AD 1세기 교회의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쓴 책이다. 신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가족,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 등으로 묘사되는데, 1세기 초대 교회의 특징은 ‘관계성’ (relational)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저자 비올라는 서론을 ‘새 가죽부대의 필요성’으로 시작한 후, ‘교회 집회’, ‘성만찬’, ‘가정집에서 모인 교회’, ‘가족으로 불린 교회’, ‘교회의 리더십’,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범위’, ‘사도적 전통’,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현대 제도권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관계성보다는 건물이나 프로그램 중심의 조직이나 기관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흔하다. 현대 교회는 마치 연기를 내뿜고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세차게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긴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을 직업적인 목사와 직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교회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1세기 교회는 기차보다 훨씬 천천히 움직이면서 서로 대화하고 방향도 자유자제로 바꿀 수 있는 산책에 나선 사람들과 같다. 이를 ‘유기적 교회’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낡은 가죽 부대 (예. 관객/배우 형태의 교회 모임, 목사 일인 체제, 프로그램 위주의 예배 스타일, 거대한 건물, 교역자와 평신도의 구분 등)를 벗고 성경적인 갱신을 필요로 하는 현대 교회는 새 가죽 부대를 필요로 한다 (p. 23).
프랭크 비올라는 초대 교회 집회는 한 편의 설교 중심의 예배라기보다 신자의 상호격려와 권면 (mutual edification)이 중심이었다고 본다 (고전 14:26; 히 10:24-25; p. 31). 초대교회 집회에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상호권면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이것을 핵심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선별적이며 무리가 있다. 더 나아가, 비올라는 이 상호권면을 위해서 집전하는 사람이 없었고, 각인이 영적인 은사를 따라서 성령의 중재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도하셨다고 본다 (p. 35). 비올라의 이 관찰은 결국 그로 하여금 기존 교회의 직분과 제계를 부인하는 쪽으로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 현대 교회는 만인 제사장설을 지적으로만 소유하고 있지,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p. 52).
성만찬이 초대 교회 모임에서 중요했는데, 거대한 교회당이 아니라 한 가족으로서 교제에 적합한 소박한 가정집에서 열렸다 (p. 73). 이 주장은 비올라에게 있어서 교회 조직과 제도 측면에서 가정교회의 필요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가정 집회의 목적은 성도의 양육이었다고 본다.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인가 아니면 결과를 낳고 일이 잘되면 좋은 것이라는 성공을 목표로 하는 실용적인 경영 마인드로 움직이는 복잡한 대기업에 가까운가? (p. 87). 초대 교회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복수의 장로/감독들에 의해 치리되었다 (행 14:23; 약 5:14). 예수님 한 분의 권위 하에 여러 사람들이 직분을 공유하는 조직이었다. 목사 제도는 성경적이지만, 종적인 계급 체계를 따른 담임목사 1인의 전횡과 부패를 막을 체계를 성경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p. 113). 비올라는 현대 교회 예배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본다 (p. 121).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p. 135).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질서가 필요하기에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조직과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와 투표도 필요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즉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존재 한다 (엡 1:22-26; 3:8-13). 하나님은 교회당이라는 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돌들인 성도를 통해서 이 목적을 이루신다 (p. 138). 교회의 구조 (가죽부대)는 이 목적 (포도주)을 구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 성향이나 개인주의 그리고 분파주의와 같은 것은 이 목적 실현의 걸림돌이다. 조직과 교리를 통해서 교회 일치 운동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유기적인 영적인 일치와 연합은 가능하다 (p. 166). 가정교회는 지역의 교회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p. 189).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상적인 교회의 포도주와 가죽부대를 우리 마음대로 바꾸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p. 207). 1세기 가죽부대를 구식이라고 폐기처분 하지도 말고 현대 문화에 예속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영적인 심층적인 의미를 찾고 적용하고 필요하다면 현대화시켜 그리스도의 생명의 포도주를 맛보아야 한다. 물론 우리에게 전수된 사도적 신앙에서 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구원의 복음, 성례, 구제, 교회의 정의와 존재 의의 및 목표 등).
비올라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현대의 화려하고 깔끔한 세속적인 백화점식 교회와 구멍가게처럼 보일지라도 소박한 그리스도 중심의 교제가 있는 가정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p. 221).
비올라는 주중의 셀 그룹과 (더 중요한 상부 조직인) 주일의 지역 교회의 모임이라는 2중 체제를 비판 한다. 왜냐하면 비올라는 셀 조직이 ‘비성경적인 성직자 제도’를 전혀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p. 228). 비올라는 교회 리더십의 탈성직자화를 통해서 모든 성도가 주체로서 참여하는 교회를 제도권적 페러다임과 다른 성경적 페러다임의 핵심으로 본다 (p. 243). 제도화된 교회의 렌즈를 통해서 신약 성경을 바라보지 말고, 성령의 렌즈로 교회론을 정립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다시 개혁되어야 하듯이, 인간 전통의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를 부지런히 갈아 경작해야 한다 (p. 242).
한 대목 소개하기: “성경의 강조점은 포도주에 집중되어 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포도주는 그것을 쏟아 부어 담을 수 있는 가죽부대 (교회 구조, church order)를 필요로 한다. 만약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가죽부대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의 포도주는 조금씩 새어 나와 종국에는 다 없어질 것이다” (p. 203).
2.3. 적용:
이 책의 주장은 현대 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면에서 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교회의 제도를 무시하는 듯한 전복적 입장은 경계해야 한다. 초대 교회와 현대 교회의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감안하여, 우리는 과연 어떤 포도주 가죽 부대를 갖추어 할 지 고민하도록 만든 책이다.
3. 『칼빈주의, 라스베가스 공항에 가다』(리챠드 마우. 김동규 옮김. 2008. SFC)
3.1. 저자 소개:
1941년생으로, Houghton College (B.A), Western Theological Seminary (M. Div), Alberta University (M.A), 시카고대학교 (Ph.D)에서 공부했다. 1968년부터 17년간 Calvin College에서 기독교 철학을 가르쳤다.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의 방문교수도 역임했다. 1985년 이래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기독교 철학 및 윤리학을 가르쳤다. 1993년부터 풀러신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개혁주의적 성향의 복음주의자로 분류되는데, 특별히 기독교입장에서 보는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가 이단 몰몬교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등 에큐메니칼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3.2. 내용 개관:
2004년 Zondervan에서 출판되었다. 리차드 마우 박사가 이 책을 집필한 계기는 Calvin College 졸업생인 폴 슈뢰더가 제작한 'Hardcore'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 핵심)라는 영화를 본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Jake van Dorn이라는 경건한 칼빈주의 장로와 Niki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불신 여성이 라스베가스 공항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제이크 장로에게는 포르노 사업에 연관된 딸이 있었는데, 딸을 찾기 위해서 라스베가스에 왔다가 헛수고를 한 후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서 라스베가스 공항 탑승 대기실에 있던 참이었다. 제이크와 니키 두 사람이 칼빈주의의 핵심 5대 교리라 할 수 있는 'TULIP' (Total depravity, Unconditional election, Limited atonement, Irresistible grace, Perseverance of the Saints)을 두고 대화하던 중 예정론에 있어서 니키가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은 단절되고 말았다.
마우 박사는 바로 이 예정론을 언급하지 않고도 어떻게 라스베가스와 니키로 대변되는 불신자에게 칼빈주의를 소개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책의 순서는 ‘하드코어 튤립’, ‘칼빈주의자란 호칭’, ‘순전한 (mere) 칼빈주의’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됨), ‘칼빈주의의 암초’ (여기서 예수님이 전 인류가 아니라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Limited atonement가 논란이 됨), ‘고통과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고통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자비롭고 슬픔에 찬 눈으로 바라보시는 고통 받는 주권자이심), ‘선택받은 이후’ (구원 받은 기쁨에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한 사명을 깨달아 봉사하라. 이 점이 TULIP에 명시되지 않음), ‘단 한 평도 남김없이’ (자유대학교 교수 취임 강연에서 아브라함 카이퍼가 제시한 문화관.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왕되심), ‘관대한 선택’ (여기서 이 책의 저자 마우는 풍성하고 관대한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혈통적 유대인의 매우 폭 넓은 구원과 같은 지나친 확대해석을 하는 것 같음), ‘라스베가스의 슬픔과 희망’ (새예루살렘의 모조품인 라스베가스가 신기루를 추구하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상실과 슬픔 속에머물 수밖에 없음), ‘제이크의 실수’ (Jake장로가 TULIP대신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1문을 가지고 Niki에게 전도하는 것이 접촉점을 확보하여 효과적 이었을 것임. Jake는 Niki의 필요와 관점에서 출발하는 편이 좋았음), ‘한 여행객의 고백’ (교만하고 배타적인 닫힌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는 한계가 있음. 성경적 진리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지만 칼빈주의자는 다양성으로부터 배워야 함), ‘기억을 지키는 사람들’ (칼빈주의자는 오래된 개혁주의 가르침과 격언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풍성하게 살아야 함)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심지어 동료 칼빈주의자들과도 세부적인 교리의 쟁점에서 무례하고 교만한 모습을 자주 내비침으로써, 겸손과 온유를 결여하고 있다 (p. 19).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벨직신앙고백, 그리고 도르트 신경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파’라고도 불리는 ‘칼빈주의자’라는 호칭은 조나단 에드워드가 처음 사용했다 (p. 24). 칼빈주의자는 종종 열정과 감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TULIP에 근거하여 전도할 때조차 칼빈주의자들은 제한 된 구속과 예정론을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칼빈주의자들이 이런 비판을 극복하고 라스베가스와 Niki와 같은 죄악 세상과 소통하려면 TULIP대신에 생사 간에 유일한 위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 1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온정적이며 효과적이다 (p. 166).
한 대목 소개하기: “선택되고 그래서 그 사실에 기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사명에서 봉사하라고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이 부분이 튤립을 넘어서야 하는 지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삶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그분의 주권을 드러내는 언약공동체에 참여하게 하신다” (p. 105).
3.3. 적용: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드코어를 견지하되 지혜롭게 전파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리차드 마우는 우리에게 따뜻한 접촉점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마우는 칼빈주의자에게 2%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4. 『문화신학』(케빈 벤후저. 2009. 윤석인 옮김. 부흥과 개혁사)
4.1. 저자 소개:
1957년생으로, 현재 미국 일리노이의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의학 연구교수로 있다. 2009년 가을에는 Wheaton College교수로 섬길 예정이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 (M.Div)와 케임브리지대학교 (Ph.D)에서 공부했다. ‘폴 리꾀르의 철학에 나타난 성경 네러티브: 해석학과 신학 연구’라는 주제의 박사학위 논문은 Nicholas Lash의 지도하에 수행된 학제간의 연구이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에서 1990-1998년까지 9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가장 주목 받는 차세대 복음주의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는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이자, 미술과 문학 애호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제일신학』등이 있고, 『신학적 성경 해석 사전』등을 편집 했다.
4.2. 내용 개관:
원제는 'Everyday Theology' (Baker. 2007년) 즉 ‘매일 하는 일상 신학’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서론인데, ‘문화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2부에서는 다양한 문화 텍스트 (예. 대형 슈퍼마켓, 록 음악, 세계 인권선언, 대형교회 건축양식, 영화 Gladiator에 나타난 소망)를 통한 ‘문화 텍스트 읽기의 실제’를, 3부에서는 다양한 ‘문화 동향 (예. 분주함의 비즈니스, 블로그, 능력 증대를 위한 인간개조주의, 테마장례식)을 해석하기’, 마지막 4부에서는 ‘이론에 머물지 않는 해석을 위한 마지막 제언’을 서술한다.
하나님이 문화에 어떻게 관여하시는지에 대한 연구로 정의할 수 있는 ‘문화신학’ (everyday theology, cultural theology)은 성도가 일상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곧 일상에서 발생하는 일들 (그리고 그 이유)을 파악하고 주변환경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p. 20).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표적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마 16:1-3). 즉 시대의 표적과 관련된 문화를 판독할 줄 알아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하는 행동과 달리, 자발적으로 하는 모든 일을 일컫는데, 인간의 자유가 객관적으로 표현된 영역이다 (p. 30-31).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문화라고 한다면, 사회는 우리가 거주하는 ‘주택’이다. 일종의 생활 방식으로서의 문화는 의미의 그물망이요, 해석이 필요한 의미 있는 기호들이 서로 연결된 체계다 (p. 35). 문화는 의사를 전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신념-가치-유행-관습 등을 재생산하여 퍼트리며,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고 양성 한다 (p. 41).
문화는 신념 체계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지대가 아니기에, 신학적 반성을 필요로 한다 (p. 50). 성도가 문화적 문맹 상태에 있다면 영적 건강에 해롭다. 문화와 접촉하여 사는 교회는 문화를 해석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서 하시는 일을 전달하고 재생산하고 장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복음을 유능하게 전하고 수행하려는 성도는 성경과 문화 모두를 해석하는 법을 꼭 배워야 한다 (p. 54).
본문을 해석할 때 ‘저자-본문-독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듯이, 문화를 이해하려면 세 요소 즉 ‘생산자-문화상품-소비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도는 이 세 요소를 ‘창조-타락-구원’이라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면서, 어떤 유형의 문화인지, 그 문화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p. 76). 그 후에 복음의 가치와 진리를 구체적인 문화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교회는 세상 문화를 단순히 거부할 수 없다. 오히려 성도는 문화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행위의 주체로서, 세상 문화 위에 자신의 특유한 표시 (예. 십자가)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 (p. 90). 성도에 의해서 거듭난 문화는 하나님 나라의 촉진제가 된다.
한 대목 소개하기: “우리는 기독교 성경이 아닌 다른 텍스트가 투영하는 허구 세계가 아니라, 성경이 전시하는 현실 세계에 거주해야 한다. 세계의 몽유병 환자들이여, 깨어나라!” (p. 49)
4.3. 적용:
문화가 표현하고 구체화하는 주제 (예. 테마 결혼식)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사해야 한다. 이 때 성경 사전을 이용하여 성경 본문을 통하여 그 주제 (결혼)를 파악하면서, 주제와 관련된 여러 범주 (서약, 자녀, 이혼, 성생활 등)로 분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 후 종합적으로 ‘창조-타락-구원’이라는 성경의 구원 역사라는 안경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즉 결혼은 어떻게 시작되어 변질되었고, 오늘 날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p. 403-409).
나오면서
이상의 4권은 ‘중생, 교회 칼빈주의, 기독교와 문화’라는 우리 삶의 기본적인 4요소를 각각 다룬다. 중생한 자는 초대 사도적 신앙의 정신을 따른 성경적 교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성경에 가장 일치하는 칼빈주의 교회에 속한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고 변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http://blog.daum.net/kkgodgod/11793558
들어가면서
최근의 책들을 중심으로 ‘중생, 교회, 개혁주의 그리고 문화’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연결해서 살펴보자. 즉 거듭남 사람은 어떤 교회에 속하여, 어떤 신앙을 가지고, 세상과 관계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
1. 『바로 알아야 할 거듭남의 본질』(스테판 차녹. 2007. 손성은 옮김. 지평서원)
1.1. 저자 소개:
스테판 차녹 (Stephen Charnock)은 1628년 런던에서 Lancashire 지방의 명문 가문에 출생했다. 아버지 Richard Charnock은 런던의 변호사였다. 14세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하여 훗날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된 William Sancrift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 때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18세에 신사 학위를 받은 후, 어느 가정의 목사로 목회를 시작했고, 시민전쟁이 발발하자 Southwark에서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사역을 했다. 1650년에 옥스퍼드대학교에 대학원 특별 연구생으로 등록하여 Thomas F. Goodwin (1600-1679)과 John Howe같은 청교도의 거목들과 함께 일했다. 1652년 옥스퍼드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656년까지 옥스퍼드대학의 학생감 (proctor)으로 섬긴 후, 아일랜드 총독 Henry Cromwell을 수행하는 전속 목사로 일했다. 1660년에 다른 청교도 목사들처럼 차녹도 목사직 수행을 금지 당했다. 다사다난했던 이 15년 동안 그는 연구에 집중했으며 (출판된 책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 중생론, 거듭남, 하나님의 섭리 등), 목사직이 회복되자 Crosby Hall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1680년 7월 27일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단력과 상상력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열심과 근면이라는 두 바퀴를 가졌던 차녹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복지를 묵상하며 실천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명쾌하면서도 설득력과 십자가 복음에 기초한 감동을 갖춘 탁월한 설교자였던 그는 ‘하나님의 손이 빚은 설교자’라고도 불렸으며, 신학 저술은 청교도뿐 아니라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번역자 손성은 목사는 영국에서 약 10년간 신학 수업과 목회를 한 후, 2008년이래로 부산 삼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1.2. 내용 개관:
원제는 'The new birth II: a discourse of the narrative of regeneration'이다. 1부 ‘거듭남의 목적과 본질에 대한 정의’에서,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다시 사심의 목적은 우리의 거듭남이라고 설명한 후 거듭남의 본질을 정의 한다. 2부 ‘무엇이 거듭남인가’에서 거듭남이 아닌 것들을 지적한 후, 내외적인 변화로서의 거듭남을 설명한다. 3부 ‘새로운 피조물의 본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지니는 생명의 원리와 은혜로운 습관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등을 다룬다. 4부 ‘적용’에서 참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과 영광 중에 완전하게 된다는 소망이 주는 위로 및 자기 점금을 위한 시금석을 다룬다. 마지막 5주 ‘권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새로운 피조물과 여전히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사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자들에게 각각 권면을 준다.
‘거듭남’이란 성령의 효과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위대하고도 엄청난 변화다. 그 변화를 통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원리, 새로운 습관, 하나님의 법, 그리고 신적인 성품이 형성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워하며, 거룩하게 행하고, 영원한 영광을 향하여 자라간다. 거듭난 자에게는 이전에 없던 것이 존재하고, 변화와 창조가 나타난다 (p. 4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인데,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며 사는 것을 목적으로 여긴다 (고후 5:17).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고후 5:16). 거듭나지 않은 자의 관심은 세속적이지만,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살고 있다는 증거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거룩한 삶이다 (p. 30).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격을 가리키는 ‘새로운 피조물’이 살아가는 본질은 믿음과 사랑이다 (갈 5:6; 6:15).
차녹이 거듭남과 관련된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자. 첫째, 영적인 변화인 ‘거듭남’과 영적인 활동인 ‘회심’은 다르다. 거듭남은 하나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며, 회심은 이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듭남으로 우리가 전환할 수 있는 원리를 받고, 회심은 바로 전환하는 것 그 자체이다. 거듭남이 원인이라면 회심은 결과이다. 거듭남에서 인간은 수동적이지만, 회심에서는 능동적이다 (p. 43-44). 둘째, 차녹은 거듭남과 칭의를 구분한다. 거듭남으로 하나님과 동화되고 닮게 되지만, ‘칭의’에 의해 하나님과 화해한다. 칭의는 죄인의 상태에서 의인의 상태로 바뀌는 관계적 변화이다. 거듭남은 죽은 자가 생명을 가진 자로 바뀌는 실제적 변화이다 (p. 47). 칭의가 그리스도 보혈의 직접적인 열매라면, 거듭남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다 (p. 48). 칭의가 저주받음에서 무죄언도로의 변화이며, 거듭남은 오염에서 친교로의 변화이다 (p. 49). 셋째, 차녹은 거듭남과 입양을 구분한다. ‘입양’이 칭의에서 파생되어 하나님과의 화해를 전제로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주는 것이라면, 거듭남은 우리에 자녀됨의 본성을 준다. 넷째, 차녹은 거듭남과 성화를 구분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가지게 되는 습관인 ‘성화’도 거듭남과 다르다 (p. 52).
거듭남은 본성의 파괴가 아니다 (p. 55). 그렇다고 거듭남은 본성 속에 이미 새겨져 있던 그 무엇을 끌어내어 다듬는 것도 아니고,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듭남은 죽어 있는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이며, 무 (無)에서 사람이 창조된 것 같이 새로운 창조이다 (p. 61). 거듭남은 옛 본성에 무언가를 첨가시키는 것이 아니며 (p. 63), 거듭난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지 수선된 (mended) 피조물도 아니다.
거듭남은 모든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은혜에 의한 실제적인 변화이다 (p. 69). 그 변화란 죄로 뒤틀린 기질이 벗겨지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정서로 옷 입는 것이다 (p. 72). 거듭남은 이해력, 의지, 양심, 정서와 같은 전인적인 변화이다 (p. 75). 거듭난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위하여’, ‘으로부터’ 나오는 원리를 가진다 (p. 83). 거듭남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p. 87). 거듭난 자는 내면과 외면이 모두 변화되는데, 요약하자면 자연 대신에 은혜가, 육신 대신에 성령이 역사 한다 (p. 107). 거듭난 자는 죄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에게로 이끌리는 은혜로운 습관 (혹은 내적인 틀; 예. 믿음으로 활성화 되는 사랑, 겸손, 복종, 인내 등)을 가진다 (p. 119).
새로운 피조물인 거듭난 자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영혼을 준비시켜야 하는데 기질 (성향, 의지)적인 면과 활동적인 면에서 준비가 필요하다. 죄의 토양을 떠나 은혜의 토양으로 옮겨지면 처음에는 저항과 어색함이 있지만 결국 새로운 습관이 기질에 정착되면, 옛 습관을 이기면서 역동적이고 지속적이며 자연스럽고 유쾌한 방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p. 132).
새로운 피조물에는 은혜의 법으로서의 ‘마음의 법’이 주어지는데 (롬 7:23),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찬동하며 내적으로 일치하려고 하며 사랑으로 복종하려는 마음이다 (p. 177). 거듭난 자는 자신을 낳은 분이신 하나님을 닮는다 (골 3:10; p. 179). 착함, 의로움, 인애, 공평, 진실, 거룩,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 즉 예수님과 성령을 닮는데 내적인 기질이 유사하다 (렘 9:24; 요 3:6; 엡 5:9; 요일 3:7; p. 181). 행동의 변화를 가지고 오는 도덕적 함양과 모든 면을 변화시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변화를 주는 새 창조는 다르기에 (고후 3:18), 도덕적인 면이 증가한 것을 거듭남의 표지로 볼 수 없다 (p. 212). 생명과 성령의 법 아래로 들어와 하나님의 기쁨이요 영광스러운 존재인 새 피조물의 범죄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p. 224). 새 피조물 안에도 연약함과 부패함이 있는데 점진적으로 극복하게 된다 (p. 242, 245). 새 창조의 효과와 작용을 탐구하고, 나에게 어떤 변화와 열망 (하나님을 닮는 것,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 하나님을 향한 사랑, 기도와 묵상, 죄에 대한 저항)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p. 251).
차녹은 권면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무가치했던 자를 가치 있게 만드셔서 새 피조물 되게 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화롭게 살며,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인 하나님을 닮아가며, 새 피조물의 생명력을 더욱 활기차게 보존하며 (엡 3:16), 자라가야 한다 (p. 279, 303). 차녹은 ‘여전히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사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자들’에게도 권면한다.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직시하고, 명예스럽고 탁월한 다른 상태에 도달하기를 열망해야 한다 (p. 308). 이를 위해서 자신이 사탄의 원수이며, 속에서 나오는 올곧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새 본성만이 행복을 알고 느낄 수 있음을 알고, 가장 낮은 자에게도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로 자격을 주심을 믿어야 한다. 부패함에 대해 민감하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새 피조물의 탁월한 상태를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애써야 한다 (p. 322).
한 대목 소개하기: “신조의 변경, 신학적 의견의 변화가 새 피조물이 되었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로 종교를 바꿨다고 해서 그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통한 교제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자마다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p. 204).
1.3. 적용:
현대 교회와 전도자는 대부분 순간적인 회심의 경험을 전부인양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진정한 거듭남은 그런 것과 다르며, 매우 실제적이고도 포괄적이다. 거듭남의 풍성함과 영광스러움을 매우 실제적이고도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탁월한 책이다.
2. 『1세기 관계적 교회』(프랭크 비올라. 2007. 박영은 옮김. 미션월드)
2.1. 저자 소개:
현재 고등학교에서 심리학, 철학 교사로 일하고 있다. 여가 시간에는 가정교회들을 개척하고 있으며, 교회 생활 컨퍼런스의 강사로도 활약하고,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2.2. 내용 개관:
원제는 'Rethinking the Wineskin' (2001. Present Testimony Ministry) 즉 ‘포도주 가죽 부대를 다시 생각하기’이다. 이 책은 AD 1세기 교회의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쓴 책이다. 신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가족,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 등으로 묘사되는데, 1세기 초대 교회의 특징은 ‘관계성’ (relational)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저자 비올라는 서론을 ‘새 가죽부대의 필요성’으로 시작한 후, ‘교회 집회’, ‘성만찬’, ‘가정집에서 모인 교회’, ‘가족으로 불린 교회’, ‘교회의 리더십’,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범위’, ‘사도적 전통’,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현대 제도권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관계성보다는 건물이나 프로그램 중심의 조직이나 기관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흔하다. 현대 교회는 마치 연기를 내뿜고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세차게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긴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을 직업적인 목사와 직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교회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1세기 교회는 기차보다 훨씬 천천히 움직이면서 서로 대화하고 방향도 자유자제로 바꿀 수 있는 산책에 나선 사람들과 같다. 이를 ‘유기적 교회’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낡은 가죽 부대 (예. 관객/배우 형태의 교회 모임, 목사 일인 체제, 프로그램 위주의 예배 스타일, 거대한 건물, 교역자와 평신도의 구분 등)를 벗고 성경적인 갱신을 필요로 하는 현대 교회는 새 가죽 부대를 필요로 한다 (p. 23).
프랭크 비올라는 초대 교회 집회는 한 편의 설교 중심의 예배라기보다 신자의 상호격려와 권면 (mutual edification)이 중심이었다고 본다 (고전 14:26; 히 10:24-25; p. 31). 초대교회 집회에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상호권면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이것을 핵심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선별적이며 무리가 있다. 더 나아가, 비올라는 이 상호권면을 위해서 집전하는 사람이 없었고, 각인이 영적인 은사를 따라서 성령의 중재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도하셨다고 본다 (p. 35). 비올라의 이 관찰은 결국 그로 하여금 기존 교회의 직분과 제계를 부인하는 쪽으로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 현대 교회는 만인 제사장설을 지적으로만 소유하고 있지,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p. 52).
성만찬이 초대 교회 모임에서 중요했는데, 거대한 교회당이 아니라 한 가족으로서 교제에 적합한 소박한 가정집에서 열렸다 (p. 73). 이 주장은 비올라에게 있어서 교회 조직과 제도 측면에서 가정교회의 필요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가정 집회의 목적은 성도의 양육이었다고 본다.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인가 아니면 결과를 낳고 일이 잘되면 좋은 것이라는 성공을 목표로 하는 실용적인 경영 마인드로 움직이는 복잡한 대기업에 가까운가? (p. 87). 초대 교회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복수의 장로/감독들에 의해 치리되었다 (행 14:23; 약 5:14). 예수님 한 분의 권위 하에 여러 사람들이 직분을 공유하는 조직이었다. 목사 제도는 성경적이지만, 종적인 계급 체계를 따른 담임목사 1인의 전횡과 부패를 막을 체계를 성경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p. 113). 비올라는 현대 교회 예배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본다 (p. 121).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p. 135).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질서가 필요하기에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조직과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와 투표도 필요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즉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존재 한다 (엡 1:22-26; 3:8-13). 하나님은 교회당이라는 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돌들인 성도를 통해서 이 목적을 이루신다 (p. 138). 교회의 구조 (가죽부대)는 이 목적 (포도주)을 구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 성향이나 개인주의 그리고 분파주의와 같은 것은 이 목적 실현의 걸림돌이다. 조직과 교리를 통해서 교회 일치 운동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유기적인 영적인 일치와 연합은 가능하다 (p. 166). 가정교회는 지역의 교회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p. 189).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상적인 교회의 포도주와 가죽부대를 우리 마음대로 바꾸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p. 207). 1세기 가죽부대를 구식이라고 폐기처분 하지도 말고 현대 문화에 예속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영적인 심층적인 의미를 찾고 적용하고 필요하다면 현대화시켜 그리스도의 생명의 포도주를 맛보아야 한다. 물론 우리에게 전수된 사도적 신앙에서 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구원의 복음, 성례, 구제, 교회의 정의와 존재 의의 및 목표 등).
비올라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현대의 화려하고 깔끔한 세속적인 백화점식 교회와 구멍가게처럼 보일지라도 소박한 그리스도 중심의 교제가 있는 가정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p. 221).
비올라는 주중의 셀 그룹과 (더 중요한 상부 조직인) 주일의 지역 교회의 모임이라는 2중 체제를 비판 한다. 왜냐하면 비올라는 셀 조직이 ‘비성경적인 성직자 제도’를 전혀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p. 228). 비올라는 교회 리더십의 탈성직자화를 통해서 모든 성도가 주체로서 참여하는 교회를 제도권적 페러다임과 다른 성경적 페러다임의 핵심으로 본다 (p. 243). 제도화된 교회의 렌즈를 통해서 신약 성경을 바라보지 말고, 성령의 렌즈로 교회론을 정립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다시 개혁되어야 하듯이, 인간 전통의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를 부지런히 갈아 경작해야 한다 (p. 242).
한 대목 소개하기: “성경의 강조점은 포도주에 집중되어 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포도주는 그것을 쏟아 부어 담을 수 있는 가죽부대 (교회 구조, church order)를 필요로 한다. 만약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가죽부대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의 포도주는 조금씩 새어 나와 종국에는 다 없어질 것이다” (p. 203).
2.3. 적용:
이 책의 주장은 현대 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면에서 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교회의 제도를 무시하는 듯한 전복적 입장은 경계해야 한다. 초대 교회와 현대 교회의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감안하여, 우리는 과연 어떤 포도주 가죽 부대를 갖추어 할 지 고민하도록 만든 책이다.
3. 『칼빈주의, 라스베가스 공항에 가다』(리챠드 마우. 김동규 옮김. 2008. SFC)
3.1. 저자 소개:
1941년생으로, Houghton College (B.A), Western Theological Seminary (M. Div), Alberta University (M.A), 시카고대학교 (Ph.D)에서 공부했다. 1968년부터 17년간 Calvin College에서 기독교 철학을 가르쳤다.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의 방문교수도 역임했다. 1985년 이래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기독교 철학 및 윤리학을 가르쳤다. 1993년부터 풀러신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개혁주의적 성향의 복음주의자로 분류되는데, 특별히 기독교입장에서 보는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가 이단 몰몬교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등 에큐메니칼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3.2. 내용 개관:
2004년 Zondervan에서 출판되었다. 리차드 마우 박사가 이 책을 집필한 계기는 Calvin College 졸업생인 폴 슈뢰더가 제작한 'Hardcore'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 핵심)라는 영화를 본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Jake van Dorn이라는 경건한 칼빈주의 장로와 Niki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불신 여성이 라스베가스 공항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제이크 장로에게는 포르노 사업에 연관된 딸이 있었는데, 딸을 찾기 위해서 라스베가스에 왔다가 헛수고를 한 후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서 라스베가스 공항 탑승 대기실에 있던 참이었다. 제이크와 니키 두 사람이 칼빈주의의 핵심 5대 교리라 할 수 있는 'TULIP' (Total depravity, Unconditional election, Limited atonement, Irresistible grace, Perseverance of the Saints)을 두고 대화하던 중 예정론에 있어서 니키가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은 단절되고 말았다.
마우 박사는 바로 이 예정론을 언급하지 않고도 어떻게 라스베가스와 니키로 대변되는 불신자에게 칼빈주의를 소개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책의 순서는 ‘하드코어 튤립’, ‘칼빈주의자란 호칭’, ‘순전한 (mere) 칼빈주의’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됨), ‘칼빈주의의 암초’ (여기서 예수님이 전 인류가 아니라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Limited atonement가 논란이 됨), ‘고통과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고통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자비롭고 슬픔에 찬 눈으로 바라보시는 고통 받는 주권자이심), ‘선택받은 이후’ (구원 받은 기쁨에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한 사명을 깨달아 봉사하라. 이 점이 TULIP에 명시되지 않음), ‘단 한 평도 남김없이’ (자유대학교 교수 취임 강연에서 아브라함 카이퍼가 제시한 문화관.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왕되심), ‘관대한 선택’ (여기서 이 책의 저자 마우는 풍성하고 관대한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혈통적 유대인의 매우 폭 넓은 구원과 같은 지나친 확대해석을 하는 것 같음), ‘라스베가스의 슬픔과 희망’ (새예루살렘의 모조품인 라스베가스가 신기루를 추구하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상실과 슬픔 속에머물 수밖에 없음), ‘제이크의 실수’ (Jake장로가 TULIP대신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1문을 가지고 Niki에게 전도하는 것이 접촉점을 확보하여 효과적 이었을 것임. Jake는 Niki의 필요와 관점에서 출발하는 편이 좋았음), ‘한 여행객의 고백’ (교만하고 배타적인 닫힌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는 한계가 있음. 성경적 진리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지만 칼빈주의자는 다양성으로부터 배워야 함), ‘기억을 지키는 사람들’ (칼빈주의자는 오래된 개혁주의 가르침과 격언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풍성하게 살아야 함)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심지어 동료 칼빈주의자들과도 세부적인 교리의 쟁점에서 무례하고 교만한 모습을 자주 내비침으로써, 겸손과 온유를 결여하고 있다 (p. 19).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벨직신앙고백, 그리고 도르트 신경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파’라고도 불리는 ‘칼빈주의자’라는 호칭은 조나단 에드워드가 처음 사용했다 (p. 24). 칼빈주의자는 종종 열정과 감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TULIP에 근거하여 전도할 때조차 칼빈주의자들은 제한 된 구속과 예정론을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칼빈주의자들이 이런 비판을 극복하고 라스베가스와 Niki와 같은 죄악 세상과 소통하려면 TULIP대신에 생사 간에 유일한 위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 1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온정적이며 효과적이다 (p. 166).
한 대목 소개하기: “선택되고 그래서 그 사실에 기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사명에서 봉사하라고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이 부분이 튤립을 넘어서야 하는 지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삶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그분의 주권을 드러내는 언약공동체에 참여하게 하신다” (p. 105).
3.3. 적용: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드코어를 견지하되 지혜롭게 전파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리차드 마우는 우리에게 따뜻한 접촉점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마우는 칼빈주의자에게 2%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4. 『문화신학』(케빈 벤후저. 2009. 윤석인 옮김. 부흥과 개혁사)
4.1. 저자 소개:
1957년생으로, 현재 미국 일리노이의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의학 연구교수로 있다. 2009년 가을에는 Wheaton College교수로 섬길 예정이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 (M.Div)와 케임브리지대학교 (Ph.D)에서 공부했다. ‘폴 리꾀르의 철학에 나타난 성경 네러티브: 해석학과 신학 연구’라는 주제의 박사학위 논문은 Nicholas Lash의 지도하에 수행된 학제간의 연구이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에서 1990-1998년까지 9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가장 주목 받는 차세대 복음주의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는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이자, 미술과 문학 애호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제일신학』등이 있고, 『신학적 성경 해석 사전』등을 편집 했다.
4.2. 내용 개관:
원제는 'Everyday Theology' (Baker. 2007년) 즉 ‘매일 하는 일상 신학’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서론인데, ‘문화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2부에서는 다양한 문화 텍스트 (예. 대형 슈퍼마켓, 록 음악, 세계 인권선언, 대형교회 건축양식, 영화 Gladiator에 나타난 소망)를 통한 ‘문화 텍스트 읽기의 실제’를, 3부에서는 다양한 ‘문화 동향 (예. 분주함의 비즈니스, 블로그, 능력 증대를 위한 인간개조주의, 테마장례식)을 해석하기’, 마지막 4부에서는 ‘이론에 머물지 않는 해석을 위한 마지막 제언’을 서술한다.
하나님이 문화에 어떻게 관여하시는지에 대한 연구로 정의할 수 있는 ‘문화신학’ (everyday theology, cultural theology)은 성도가 일상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곧 일상에서 발생하는 일들 (그리고 그 이유)을 파악하고 주변환경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p. 20).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표적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마 16:1-3). 즉 시대의 표적과 관련된 문화를 판독할 줄 알아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하는 행동과 달리, 자발적으로 하는 모든 일을 일컫는데, 인간의 자유가 객관적으로 표현된 영역이다 (p. 30-31).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문화라고 한다면, 사회는 우리가 거주하는 ‘주택’이다. 일종의 생활 방식으로서의 문화는 의미의 그물망이요, 해석이 필요한 의미 있는 기호들이 서로 연결된 체계다 (p. 35). 문화는 의사를 전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신념-가치-유행-관습 등을 재생산하여 퍼트리며,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고 양성 한다 (p. 41).
문화는 신념 체계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지대가 아니기에, 신학적 반성을 필요로 한다 (p. 50). 성도가 문화적 문맹 상태에 있다면 영적 건강에 해롭다. 문화와 접촉하여 사는 교회는 문화를 해석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서 하시는 일을 전달하고 재생산하고 장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복음을 유능하게 전하고 수행하려는 성도는 성경과 문화 모두를 해석하는 법을 꼭 배워야 한다 (p. 54).
본문을 해석할 때 ‘저자-본문-독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듯이, 문화를 이해하려면 세 요소 즉 ‘생산자-문화상품-소비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도는 이 세 요소를 ‘창조-타락-구원’이라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면서, 어떤 유형의 문화인지, 그 문화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p. 76). 그 후에 복음의 가치와 진리를 구체적인 문화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교회는 세상 문화를 단순히 거부할 수 없다. 오히려 성도는 문화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행위의 주체로서, 세상 문화 위에 자신의 특유한 표시 (예. 십자가)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 (p. 90). 성도에 의해서 거듭난 문화는 하나님 나라의 촉진제가 된다.
한 대목 소개하기: “우리는 기독교 성경이 아닌 다른 텍스트가 투영하는 허구 세계가 아니라, 성경이 전시하는 현실 세계에 거주해야 한다. 세계의 몽유병 환자들이여, 깨어나라!” (p. 49)
4.3. 적용:
문화가 표현하고 구체화하는 주제 (예. 테마 결혼식)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사해야 한다. 이 때 성경 사전을 이용하여 성경 본문을 통하여 그 주제 (결혼)를 파악하면서, 주제와 관련된 여러 범주 (서약, 자녀, 이혼, 성생활 등)로 분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 후 종합적으로 ‘창조-타락-구원’이라는 성경의 구원 역사라는 안경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즉 결혼은 어떻게 시작되어 변질되었고, 오늘 날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p. 403-409).
나오면서
이상의 4권은 ‘중생, 교회 칼빈주의, 기독교와 문화’라는 우리 삶의 기본적인 4요소를 각각 다룬다. 중생한 자는 초대 사도적 신앙의 정신을 따른 성경적 교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성경에 가장 일치하는 칼빈주의 교회에 속한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고 변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http://blog.daum.net/kkgodgod/1179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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