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제10회 아시아 칼빈학회 주요논문 ] 종교개혁자들에게 배우자

[제10회 아시아 칼빈학회 주요논문 ] 종교개혁자들에게 배우자
 
한국에 장로교회가 세워지고 2007년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벌써 한국의 개혁주의적인 교회들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변적이며 모호한 측면이 많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칼빈과 개혁주의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한 명의 칼빈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칼빈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숙고해 볼 때, 한국 교회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종교개혁은 중세 말의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면서, ‘근원으로’(ad fontes)의 정신으로 성경과 교부에게 호소해 왔다. 교부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루터는 상대적으로 교부를 덜 중시했으나, 개혁파였던 츠빙글리나 부써, 그리고 칼빈은 성경 다음의 권위를 가지고 교부들을 존중했다.
칼빈과 교부와 관련해서는, 레인(A. Lane) 스미스(Smits) 그리고 판 오르트(Van Oort) 랑어 판 라펜스바이(Lange van Ravenswaaij) 등의 연구를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들은 칼빈의 은총론 예정론 교회론 등에서 어거스틴을 중요하게 취급했다. 그러나 그 뿐 아니다. 키프리안, 크리소스톰, 그레고리 대제, 버나드, 공동생활 형제단 등과 칼빈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현재까지의 서양 칼빈 학계에서 중요한 조류를 형성해 왔다. 왜 그럴까? 서양의 개신교회는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보다 역사적인 안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제 100년을 넘긴 한국 교회는 거기에 비하면 아직도 너무나 젊고 어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앞으로 한국 교회가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려면 종교개혁자들에게 배우자. 그들은 교부들의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교회의 역사적 의미를 확고히 했던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했던 시대 가운데 하나로 인식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16세기 역사를 이끌어 갔다. 따라서 이들 종교개혁 인물들이 어떤 신학적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매우 필요하다. 칼빈의 예정론과 교회론에 있어서 마틴 부써(M. Bucer)가 칼빈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판 엇 스페이꺼르(W. Spijker)의 연구는 거의 고전이 되었다. 부써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해서, 칼빈과 멜랑흐톤(Melan-chton)의 관계에 대한 맹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세계칼빈학회 회장 셀더하위스(H. Selderhuis)의 연구도 중요하다. 한편 최근 칼빈의 원자료를 근거로 칼빈을 루터와 츠빙글리의 신학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얀서(W. Janse) 박사의 연구도 세계 학자들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칼빈의 신학에 존재하는 어거스틴에 대한 이해와 멜랑흐톤과의 연관성에 대한 라펜스바이(L. Van Ravenswaaij)의 연구도 언급할 만하다.
이런 연구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한국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 역사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개혁교회의 큰 선생(Doctor Ecclesiae)인 칼빈조차도, 당대의 종교개혁자들과 부단히 서신을 교환하면서 자신의 신학과 목회에 대한 비전을 나누어 왔다는 점이다. 200년을 계획하는 한국 장로교회가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을 더 깊이 연구한다면, 한국 교회는 그 역사적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주의는 평신도들에게도 중요하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삶에 대한 가르침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신앙인을 양성하기 위해서, 칼빈주의의 기초부터 시작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장로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칼빈주의적인 세계관을 정립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삶 속에서 역사의식 있고 책임의식 있는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공동체는 결코 쇠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2007-10-16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5916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