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The Kingdom Come)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진리의 깃발 45호 발췌 원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The Kingdom Come)
Maurice Roberts / 서창원 역
그리스도인의 삶과 불신자들의 삶 사이에 가장 근본적인 차이 중 한 가지는 장차 올 세상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태도이다. 불신자들은 본능적으로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려 들지도 않고 질문을 받으면 움츠려들기 일수이다. 만일 불신자가 그 문제에 대해서 말하라고 요구받으면 그는 마땅히 이 세상의 일들 속에서 자신이 매우 편안하게 느끼는 친밀한 주제들로 화제를 바꾸는 것을 매우 기뻐한다. 즉 가정 문제나 식구들, 또는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신자의 철학은 항상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삶 자체를 즐기라는 뜻임)이다. 그리고 미래 세계에 대하여 불확실하고 희미한 것들에 대한 토론은 현명하고 똑똑한 철학자들에게 맡기려고 한다. 그러한 현상이 우리들의 손에 전해준 고대 이교도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또한 우리 시대에도 현대 이교도들의 대중가요 속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래 세상에 대하여 오랫동안 머물며 토론하기를 역겨워하는 불신자들의 자세는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도 흥겨움이 없다. 만일 미래가 있다면 지금의 세상의 좋은 것의 절반이라도 좋을 것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이 사는 자들이다. 장례식이나 임종의 시간과 같은 잠간이 나마 경건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 어쩌면 '천국'이나 '평강', 혹은 '영원한 안식' 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신자의 마음속에는 장차 임할 '평강의 나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수고와 슬픔뿐인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훨씬 강하다.
불신자가 장차 올 세상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 세상이 볼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한다. 그들의 마음은 덧없는 쾌락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뿌리는 하나같이 다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현 세상의 안락에 내리고 있다. 그들에게 '소망'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진다는 것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다. 보다 더 재미있고, 경마나 도박 등에 있어서 보다 더 나은 행운을 의미하는 단어일 뿐이다. 이 세상이 주는 웃음의 향연을 좀 더 들이킬 수 있는 더 큰 입을 가진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세상적인 사람의 소망은 무덤 너머에 있는 좋은 것이 아니다. 당장 현실 앞에 있는 좋은 것을 가지는 것이다. 그들의 두 눈은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세상의 것들에 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세상의 것들을 움켜쥐려고 애걸복걸한다. 그들의 야망은 철저하게 육적인 것들이다. 심지어 겉핥기로 나마 종교적인 분위기에 섞여 있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전에 교인이었던 사람이 타락한 후에 직장에서도 은퇴하고 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40년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나는 나를 기쁘게 할 작정이다'.
천국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견해는 전혀 방해받음이 없이 죄의 낙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교회와 관련하여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편에서만 할뿐이다. 가인처럼 그들도 할 수만 있으면 차선책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는 '나와 나의 행복 사이에 끼어드는 자는 누구든지 화가 임할지니라'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내게 설교하는 자는 땅위에 현존하는 나의 천국을 망가뜨리는 자이다'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실제 영적 전쟁사에서 보이는 것들의 절반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다. 영적인 세계는 육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삶은 이 땅에서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훨씬 나은 것이라는 성경적인 가르침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는 세속적인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있다. 이 세상의 힘센 사람들은 조상 니므롯처럼 이 세상에 그들의 바벨론을 건설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와 바벨 탑 사건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부서뜨렸던 것처럼 그들의 작업을 망가뜨릴 때마다 인류에게 교훈해 주시는 것은 마지막 날에 이 세상에 보다 나은 세상을 가져오기 위하여 그 모든 것들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상에 등장한 가이사들, 헤롯들, 나폴레옹들, 히틀러들은 역사가 주는 이 교훈을 결코 읽지 못했다. 그리스도가 없는 눈은 이 세상의 것들 밖에는 볼 수 없다. 빌라도와 같이 그리스도가 없는 통치자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요 18:36) 세상에 대하여 들을 때 농담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는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시대의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소망하고 믿은 세상이다. 성도들은 성찬을 대할 때 그러한 믿음을 표현하였고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증거 하였다"(고전 11:26). 성도들은 신앙고백을 고백하는 가운데서도 그러한 신앙을 잃지 않았다: "나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장사지내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장례를 거행하였다. 성도의 소망은 심지어 사도가 허락하는 것일지라도 만약 그것이 세상적인 것이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한한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견고하며 마침내 하나님을 바라 뵈옵는 분명한 확신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세의 삶을 바라며 사는 것에 비해 성도의 삶은 이 세상 너머의 삶을 바라며 산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것이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인 그리스도와 더불어 엉켜서 사는 것이다. 종교적인 회심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과 동시에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그의 회심에서 이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이며, 즉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이 세상적인 것들에 대하여 금욕적인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의 영혼은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굳게 밀착되었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의이며 꿈이요 넘치는 상급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은혜의 신비로운 시냇물로 공급받는 소망으로 살리심을 받은 자이다. 그 소망은 성도로 하여금 하늘에 있는 보다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한다(히 11:16). 현재 성도의 소망은 땅의 것들을 추구하는 본능보다 더욱 견고해져 간다. 성도는 결국 세상적인 모든 것을 잃게 될 준비를 다하여 마침내 그리스도를 얻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게 된다.
성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강력하지만 신비로운 음성이다. 심지어 삼층천에 갔다 온 사도 바울 조차도 이 세상에서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볼뿐임을 인정하고 있다(고전 13:12). 성령께서 그의 말씀과 그의 내적인 감동으로 우리를 확신시키시는 것은 우리가 여행할 왕국은 가장 뛰어난 장소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그렇게 믿도록 설득되어지는 것은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어떻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는 전적으로 하늘의 실체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고 그 나라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롬 8:25).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님에 의해서 이 기도문이 가르쳐진 이래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고백되어 왔는지! 이 기도는 매일 성취의 때를 향하여 전진되는 기도문이다. 모든 진실 된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 기도는 예언적인 기도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있다. 곧 그 나라의 임함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될 것이며 그 왕은 자기의 진실한 모든 성도들을 그들의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들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그 하늘나라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마 8:1). 모든 성경은 다음의 메시지와 명백하게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주께서 속히 오시리라."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더 알게 되는 즐거움을 누림과 같이 그의 나라가 마침내 임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이 기쁨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그 온전한 나라에서 우리의 마음을 만족케 할 신비로움이여!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비로움, 성육신 한 주님에 대한 신비,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백성들과의 연합의 비밀들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려진 비밀들이 그 날에는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보듯 볼 것이다(고전 13:12). 하나님의 영원한 칙령의 완전한 지혜로움, 그의 섭리의 완전한 지혜로움, 그의 성도들과 모든 죄인들과 함께 하는 그의 길의 완전한 지혜가 다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항해하여 도달할 그 나라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나라의 모든 거주민들은 거룩하고 신실하며 선한 자들이다. 그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그들의 왕에게 하나같이 충실했던 자들이었다는 기록을 가진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한 자들일 것이다. 곧 임하게 될 이 나라는 죄의 가장 작은 오점도 알지 못하며 사단의 가장 작은 간계도 전혀 없는 곳이다. 그곳에는 장례식도 전혀 없는 곳이다. 그 나라는 누구도 병들었다고 말하는 자가 없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는 자도 한 사람도 없는 곳이다. 고통의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전쟁의 소음도 없고, 오로지 기쁨의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것이며 매사에 복이 넘쳐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겪었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은 다 잊게 될 것이며 모든 죄악은 영원히 사함을 받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원수들을 가지고 있다면 원수들이 성도를 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또는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한 잔을 마시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막아 나서는 그들의 계획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신자들도 이 나라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단과 그의 졸개들은 이 나라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그들이 그토록 성도들을 괴롭히고 이 나라에 진입하려는 신자들을 핍박하는 일은 수고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천국이 진짜 있다는 한 가지 중요한 증거는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나라는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참으로 많은 수고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죽을 때 알 수 없는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다. 매우 똑똑한 학자들에게 천국은 오직 현실적인 종말에 불과한 것이다. 요정의 나라에 불과하다. 강직한 정치가들에게 천국은 대중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천국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가계시고 그의 백성들이 그와 함께 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실체이다. 나와 여러분이 함께 들어갈 실제의 나라인 것이다! 아멘!
http://cafe.daum.net/ciak/6KEc/397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The Kingdom Come)
Maurice Roberts / 서창원 역
그리스도인의 삶과 불신자들의 삶 사이에 가장 근본적인 차이 중 한 가지는 장차 올 세상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태도이다. 불신자들은 본능적으로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려 들지도 않고 질문을 받으면 움츠려들기 일수이다. 만일 불신자가 그 문제에 대해서 말하라고 요구받으면 그는 마땅히 이 세상의 일들 속에서 자신이 매우 편안하게 느끼는 친밀한 주제들로 화제를 바꾸는 것을 매우 기뻐한다. 즉 가정 문제나 식구들, 또는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신자의 철학은 항상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삶 자체를 즐기라는 뜻임)이다. 그리고 미래 세계에 대하여 불확실하고 희미한 것들에 대한 토론은 현명하고 똑똑한 철학자들에게 맡기려고 한다. 그러한 현상이 우리들의 손에 전해준 고대 이교도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또한 우리 시대에도 현대 이교도들의 대중가요 속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래 세상에 대하여 오랫동안 머물며 토론하기를 역겨워하는 불신자들의 자세는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도 흥겨움이 없다. 만일 미래가 있다면 지금의 세상의 좋은 것의 절반이라도 좋을 것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이 사는 자들이다. 장례식이나 임종의 시간과 같은 잠간이 나마 경건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 어쩌면 '천국'이나 '평강', 혹은 '영원한 안식' 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신자의 마음속에는 장차 임할 '평강의 나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수고와 슬픔뿐인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훨씬 강하다.
불신자가 장차 올 세상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 세상이 볼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한다. 그들의 마음은 덧없는 쾌락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뿌리는 하나같이 다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현 세상의 안락에 내리고 있다. 그들에게 '소망'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진다는 것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다. 보다 더 재미있고, 경마나 도박 등에 있어서 보다 더 나은 행운을 의미하는 단어일 뿐이다. 이 세상이 주는 웃음의 향연을 좀 더 들이킬 수 있는 더 큰 입을 가진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세상적인 사람의 소망은 무덤 너머에 있는 좋은 것이 아니다. 당장 현실 앞에 있는 좋은 것을 가지는 것이다. 그들의 두 눈은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세상의 것들에 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세상의 것들을 움켜쥐려고 애걸복걸한다. 그들의 야망은 철저하게 육적인 것들이다. 심지어 겉핥기로 나마 종교적인 분위기에 섞여 있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전에 교인이었던 사람이 타락한 후에 직장에서도 은퇴하고 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40년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나는 나를 기쁘게 할 작정이다'.
천국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견해는 전혀 방해받음이 없이 죄의 낙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교회와 관련하여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편에서만 할뿐이다. 가인처럼 그들도 할 수만 있으면 차선책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는 '나와 나의 행복 사이에 끼어드는 자는 누구든지 화가 임할지니라'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내게 설교하는 자는 땅위에 현존하는 나의 천국을 망가뜨리는 자이다'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실제 영적 전쟁사에서 보이는 것들의 절반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다. 영적인 세계는 육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삶은 이 땅에서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훨씬 나은 것이라는 성경적인 가르침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는 세속적인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있다. 이 세상의 힘센 사람들은 조상 니므롯처럼 이 세상에 그들의 바벨론을 건설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와 바벨 탑 사건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부서뜨렸던 것처럼 그들의 작업을 망가뜨릴 때마다 인류에게 교훈해 주시는 것은 마지막 날에 이 세상에 보다 나은 세상을 가져오기 위하여 그 모든 것들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상에 등장한 가이사들, 헤롯들, 나폴레옹들, 히틀러들은 역사가 주는 이 교훈을 결코 읽지 못했다. 그리스도가 없는 눈은 이 세상의 것들 밖에는 볼 수 없다. 빌라도와 같이 그리스도가 없는 통치자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요 18:36) 세상에 대하여 들을 때 농담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는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시대의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소망하고 믿은 세상이다. 성도들은 성찬을 대할 때 그러한 믿음을 표현하였고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증거 하였다"(고전 11:26). 성도들은 신앙고백을 고백하는 가운데서도 그러한 신앙을 잃지 않았다: "나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장사지내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장례를 거행하였다. 성도의 소망은 심지어 사도가 허락하는 것일지라도 만약 그것이 세상적인 것이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한한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견고하며 마침내 하나님을 바라 뵈옵는 분명한 확신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세의 삶을 바라며 사는 것에 비해 성도의 삶은 이 세상 너머의 삶을 바라며 산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것이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인 그리스도와 더불어 엉켜서 사는 것이다. 종교적인 회심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과 동시에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그의 회심에서 이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이며, 즉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이 세상적인 것들에 대하여 금욕적인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의 영혼은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굳게 밀착되었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의이며 꿈이요 넘치는 상급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은혜의 신비로운 시냇물로 공급받는 소망으로 살리심을 받은 자이다. 그 소망은 성도로 하여금 하늘에 있는 보다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한다(히 11:16). 현재 성도의 소망은 땅의 것들을 추구하는 본능보다 더욱 견고해져 간다. 성도는 결국 세상적인 모든 것을 잃게 될 준비를 다하여 마침내 그리스도를 얻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게 된다.
성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강력하지만 신비로운 음성이다. 심지어 삼층천에 갔다 온 사도 바울 조차도 이 세상에서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볼뿐임을 인정하고 있다(고전 13:12). 성령께서 그의 말씀과 그의 내적인 감동으로 우리를 확신시키시는 것은 우리가 여행할 왕국은 가장 뛰어난 장소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그렇게 믿도록 설득되어지는 것은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어떻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는 전적으로 하늘의 실체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고 그 나라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롬 8:25).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님에 의해서 이 기도문이 가르쳐진 이래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고백되어 왔는지! 이 기도는 매일 성취의 때를 향하여 전진되는 기도문이다. 모든 진실 된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 기도는 예언적인 기도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있다. 곧 그 나라의 임함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될 것이며 그 왕은 자기의 진실한 모든 성도들을 그들의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들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그 하늘나라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마 8:1). 모든 성경은 다음의 메시지와 명백하게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주께서 속히 오시리라."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더 알게 되는 즐거움을 누림과 같이 그의 나라가 마침내 임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이 기쁨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그 온전한 나라에서 우리의 마음을 만족케 할 신비로움이여!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비로움, 성육신 한 주님에 대한 신비,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백성들과의 연합의 비밀들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려진 비밀들이 그 날에는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보듯 볼 것이다(고전 13:12). 하나님의 영원한 칙령의 완전한 지혜로움, 그의 섭리의 완전한 지혜로움, 그의 성도들과 모든 죄인들과 함께 하는 그의 길의 완전한 지혜가 다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항해하여 도달할 그 나라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나라의 모든 거주민들은 거룩하고 신실하며 선한 자들이다. 그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그들의 왕에게 하나같이 충실했던 자들이었다는 기록을 가진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한 자들일 것이다. 곧 임하게 될 이 나라는 죄의 가장 작은 오점도 알지 못하며 사단의 가장 작은 간계도 전혀 없는 곳이다. 그곳에는 장례식도 전혀 없는 곳이다. 그 나라는 누구도 병들었다고 말하는 자가 없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는 자도 한 사람도 없는 곳이다. 고통의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전쟁의 소음도 없고, 오로지 기쁨의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것이며 매사에 복이 넘쳐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겪었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은 다 잊게 될 것이며 모든 죄악은 영원히 사함을 받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원수들을 가지고 있다면 원수들이 성도를 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또는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한 잔을 마시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막아 나서는 그들의 계획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신자들도 이 나라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단과 그의 졸개들은 이 나라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그들이 그토록 성도들을 괴롭히고 이 나라에 진입하려는 신자들을 핍박하는 일은 수고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천국이 진짜 있다는 한 가지 중요한 증거는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나라는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참으로 많은 수고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죽을 때 알 수 없는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다. 매우 똑똑한 학자들에게 천국은 오직 현실적인 종말에 불과한 것이다. 요정의 나라에 불과하다. 강직한 정치가들에게 천국은 대중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천국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가계시고 그의 백성들이 그와 함께 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실체이다. 나와 여러분이 함께 들어갈 실제의 나라인 것이다! 아멘!
http://cafe.daum.net/ciak/6KEc/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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