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서평-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서평-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서평 논문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마이클 호톤 지음, 김재영 옮김, 나침반, 1996)
류향석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호톤(Michael Scott Horton)은 캘리포니아의 ‘누가 개혁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장로교 목사이다. 그는 복음주의를 새롭게 개혁하려는 단체인 “기독교 개혁 연합회”(Christian United for Reformation)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미국의 복음주의가 잘못되고 있다고 외치는 개혁의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복음주의자인 바로 그가 미국 복음주의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어서, 이 책은 더 한층 강한 설득력을 준다. 이 책은 미국 내 복음주의가 현대 문명과 어떻게 타협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미국을 중심으로 이 책이 기술되었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교회가 미국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한국을 방문하고 처음 느낀 소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첫째는 공기가 너무 오염되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모든 것이 미제일색(美製一色)이라는 것이었다. 거리의 간판만 보고는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그들의 주관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을 감안해도, 사실은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왔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특히 한국은 역사적으로 경제, 군사,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 아래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의 영향에 벗어나기는커녕 점점 더 종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은 경제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증권시장에서는 “미국증시가 재채기를 하면 한국증시는 독감에 걸린다” 말이 나돌 정도다.
특히 기독교는 더욱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순교하면서까지 희생했던 나라로서 미국이나 한국 모두 서로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미국의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지금까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요즘은 무비판적으로 미국의 물량주의 기독교를 그대로 받아들여 목회에 적용하는 자가 앞서가는 목회자로 인식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문화가 다 옳은 것은 아니므로 그들의 문화의 단점까지 직수입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제 한국은 기독교 전파 100주년 이상된 국가로서 현재 많은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국가로서 미국의 오염된 복음을 말씀으로 제대로 여과하여 성경적에 기초한 복음을 더욱 발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본 서는 미국의 직접 영향 아래 있으면서 선교에 열심인 한국교회와 개인에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의 초기 청교도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이 청교적 신앙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이 1630년대 입교인이 되기 위하여 외적인 증거를 요구한데서 비롯된다. 결과적으로 도덕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662년에는 성찬이 중생의 여부와 관계없이 품행이 단정한 사람에게 모두 개방하게 되었다. 이미 기독교는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시민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이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보다는 인간의 잠재력을 더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유니테리언 보편주의,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와 혼합됨으로 되돌아 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가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던 건국 초기의 청교도적 복음주의가 갈수록ꡐ인간의 의지와 지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침식돼 기독교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행복을 위한 종교로 전락했다.
참고로 저자는 미국이 문명화, 공업화가 됨으로 기독교가 세속화 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비젼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업화가 되기전 건국 초기부터 고백적 정통주의 입장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변모된 기독교는 한마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인간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되었다. 그 이후 실용주의와 혼합하여 더욱 인간 중심적이 되었다. 2차 대각성 운동시에 이미 그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이미 그 때부터 실용주의적 복음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실용성이 없는데도 실용적 복음으로 되어야 하니 복음은 변질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존재하게 되었고 기도도 테크닉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시민종교, 생활과 윤리종교 수준으로 격하됐고 위로부터의 은혜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더 의존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질되고 있는 복음이 소비자 중심주의와의 결합하게 되었고 미국의 물질적 풍요, 소비자 중심주의는 신앙조차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예수는 상품, 죄인은 소비자, 복음 전도자는 상품포장과 마케팅 대리인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쾌락주의, 나르시시즘(자기도취), 그리고 물질주의와 결합을 하게 되었다. 미국 사회는 유례없는 물질의 풍요와 함께 쾌락주의가 만연해 있고, 풍요로움이 오히려 복음과 영성을 훼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복음은 건강과 재물과 행복의 복음이 됐고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과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형국이 돼버렸다고 호튼은 주장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호튼은 ꡒ우리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구원자를 선포하고 있다ꡓ(p. 143)고 분노를 나타내며 대형쇼핑센터로 가는 소비자의 자세로 교회에 가고 있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 때 “구세주를 값싼 상업주의자들의 손에서 구출해 낼 때” 라고 강변한다.
이렇게 변질된 기독교는 한마디로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성향이 짖은 사적인 종교로 되고 말았다. 이 주관주의 뿌리는 계몽주의, 직관적 개인주의, 낭만주의, 초월주의, 실존주의를 거치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리에 신격화된 인간이 들어서게 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개인을 신으로 받드는 뉴에이지로의 이교도로의 복귀를 모색하게 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예를 저자는 어디부터 오순절 운동이고 뉴에이지 미신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면서 신오순절주의를 든다. 결국 신앙은 공동체의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결단문제로 변해버렸다. 결코 공동체의 유익보다 자기 개인의 영적인 유익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청교도들의 신앙과는 너무나 멀 리가 있다. 저자는 이제는 복음주의자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도록 자성할 때라고 외치고 있다.



본 서를 읽어가면서 필자(제출자)의 신앙이 순수한 하나님의 섬김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온갖 세상 풍조와 주의에 물들어 버린 신앙과 믿음을 생각해 볼 때 새로운 회개와 개혁이 정말로 필요할 때임을 통감한다. 평소에 그래도 기복주의 문화에는 물들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는 이제 이것이 자신의 이기주의적 삶을 이끌어 가고 있었음을 반성한다. 빨리 공동체 영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미국의 현실을 보고 통탄하는 소리에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된다. 한국교회는 또 하나의 이교적인 요소인 샤마니즘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 문제는 미국의 교회보다 더 심각함을 깨닫아야 한다. 한국 교회의 현주소는 한국 전통의 샤마니즘과 미국의 물량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종교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의 심층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샤머니즘이고, 일상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의 양키 문화가 아닐까? 미국의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한국교회는 더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복사상이 기초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기복 사상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잘못된 점과 한국정통문화가 끼치고 있는 기복문화를 걸려내고 제거해야되는 의무를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저자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고 하여 미국것은 잘못이고 유럽것은 옳다라는 생각으로 받아들려서는 안된다. 저자의 깊은 뜻은 인가의 문화에 대한 경종이 것이다. 미국이든 독일이든 한국이든 인간의 문화는 타락해가기 마련이다. 인간의 문화는 상대적인 것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항상 개혁하는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다. 항상 깨어있는 정신
인간의 문명은 언제나 상대적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문명이라도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뜻에 맞은 적이 없다. 인간은 부패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변질되었을 때 사용하시지 않았으며, 오늘날 미국도 하나님 앞에서 변질되면 마찬가지며 한국교회도 그리고 개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주장, 주의 그리고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이지 못한다. 항상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 놓고 철저히 상대화시켜 성령을 통해 개혁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은 상용하실 것이다.
 
http://cafe.daum.net/sbseed/AvH/16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