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마을 이근호씨가 말하는 김성수 목사.
아래 글들은 이근호씨가 김성수 목사를 평가한 내용들입니다. 교단에서 제명된 분을 목사라고 부르기가 얹잖아 "씨"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니 이해바랍니다. ================================================================================================================ 출처: http://www.woorigarak.org/sub05/01.html?wr_id=30 내용: 다시 설명을 하면, 여기에 이렇게 선이 있는데, 여기에서 살아있는 것이 힘이 든다고 여긴다고 하면, 그래서 이렇게 힘든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가? 그들은 살아있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을 두고서 죽음의 세계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들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인데, 즉 자기가 이렇게 살아있듯이, 이렇게 살아있는 평지 위에서 죽음은 무엇이라고 여기는고 하니, 자기만 없어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 김성수 목사님의 경우에는 !! 이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까, 제가 어느 목사의 설교를 평하면서 그런 말을 했는데, 그 분의 경우에는 구원받기 이전의 틀을 구원이후에도 그대로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즉 개혁주의 신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깨놓고 말하겠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전화해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목사님, 김성수 목사님과 목사님 설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라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답변을 하면서, 이러한 것은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올렸으면 좋겠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김성수 목사는 어떤 사람인고 하니, 처음에 박영선 목사에게 같이 있으면서, 성령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말씀을 지켜서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하는, 그런 박영선 목사의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에 매료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박영선 목사의 스타일대로 했는데,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그 다음부터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말씀을 주신 것은 성령의 은혜로 주신 것이니, 그러니 말씀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그런 개혁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설에는 이근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그것은 본인의 입으로 확인된 바가 없으니 모르겠고 말이다.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박영선 목사를 따르지 않고, 개혁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가 보기에는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성령을 받았으니, 그러니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새로운 자기 결심이 생기게 되는데, 그렇다면 자기는 무엇만 확인하면 되는가? 성령을 받고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여기면서 실제로 살아보니, 분명히 성령을 동원하고 은혜를 동원했는데, 그런데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OH, MY WIFE ?? 그래서 그분이 여기에 무엇이 추가했는고 하니, 성령을 받고 말씀을 지키지 못하니, 항상 '자기 부인'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주여, 제가 말씀을 지킨다고 했는데, 제대로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 라고 하는 것을 추가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를 능가하는 온전한 복음적인 삶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김성수 목사의 설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출발을 어디에서 했는고 하니, '구원론' 이라는 것이다. 즉 기존의 그 구원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 부인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죄다" 라고 일러주는 것이 성령의 몫인데, 그런데 그 양반은 자기가 해보니 안 되니까, 그것이 성령의 몫이 아니라, "저는 부족합니다.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는 것을 추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자기 구원론에 계속해서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설교가 좋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 주님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데, 주님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영선 목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해봐도 그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하, 나를 부인하면 주께서 해주시는구나" 라고 하는데, 그래서 저는 그것을 두고 "도를 닦는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양반이 불교와 동양철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으니,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동양철학적인지, 그것을 미처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의 주장이 이미 동양철학에 다 있는 것인데 말이다. 즉 자기 속에 있는 신성을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의 표현대로 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 있으면 성령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은 어디에서 오는가? 십자가에서 오시는데,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즉 주님의 주되심을 위해서 우리가 동원되었음을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구원의 위해서 십자가가 필요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부인도 필요하고, 성령도 필요하고 말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자꾸만 한다는 말인가? 자기 구원을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받지 못했으니, 일단 무엇이라도 자꾸만 해보자는 식인데, 자기 부인에 또 자기 부인을 거듭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개혁주의마저도 능가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이근호 목사의 설교와 똑같아 ?? 그런데 그것을 두고 이근호 목사의 설교와 똑같다고 하는데,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똑같단 말인가? 만약에 그분이 지금이라도 십자가뿐이라고 하면 왜 강추를 하지 않겠는가? 십자가 마을에다 그 교회배너로 도배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과연 십자가뿐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곳에 모이는 자들은 모두 다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자기들의 완벽함과 철저함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분,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가 다 알아서 합니다.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라고 하면, 그들은 모두 다 떠나고 만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들의 행함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김성수도 역시 똑같네" 라고 하면서 떠나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 구원을 받으려면 이런 행함이 있으면 됩니다" 라고 하는 뭔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말 그대로 주님인데, 그런데 목사가 그만 주인이 되어서 주님을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예수는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그렇다면 이근호 당신의 말대로, 즉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 신앙생활도 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래서 저를 보고 '영지주의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 라고 하면 무조건 영지주의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그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 아래 글 또한 십자가 마을에 올라와 있는 이근호씨의 김성수 목사에 대한(또는 설교에 대한) 평가입니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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