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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마을 이근호씨가 말하는 김성수 목사.

십자가마을 이근호씨가 말하는 김성수 목사.| 김성수목사 신학알아보기
soma|조회 7692|추천 0|2012.05.19. 16:07

아래 글들은 이근호씨가 김성수 목사를 평가한 내용들입니다.

교단에서 제명된 분을 목사라고 부르기가 얹잖아 "씨"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니 이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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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woorigarak.org/sub05/01.html?wr_id=30

내용: 다시 설명을 하면, 여기에 이렇게 선이 있는데, 여기에서 살아있는 것이 힘이 든다고 여긴다고 하면, 그래서 이렇게 힘든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가? 그들은 살아있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을 두고서 죽음의 세계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들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인데, 즉 자기가 이렇게 살아있듯이, 이렇게 살아있는 평지 위에서 죽음은 무엇이라고 여기는고 하니, 자기만 없어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 김성수 목사님의 경우에는 !!

이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까, 제가 어느 목사의 설교를 평하면서 그런 말을 했는데, 그 분의 경우에는 구원받기 이전의 틀을 구원이후에도 그대로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즉 개혁주의 신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깨놓고 말하겠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전화해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목사님, 김성수 목사님과 목사님 설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라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답변을 하면서, 이러한 것은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올렸으면 좋겠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김성수 목사는 어떤 사람인고 하니, 처음에 박영선 목사에게 같이 있으면서, 성령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말씀을 지켜서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하는, 그런 박영선 목사의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에 매료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박영선 목사의 스타일대로 했는데,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그 다음부터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말씀을 주신 것은 성령의 은혜로 주신 것이니, 그러니 말씀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그런 개혁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설에는 이근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그것은 본인의 입으로 확인된 바가 없으니 모르겠고 말이다.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박영선 목사를 따르지 않고, 개혁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가 보기에는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성령을 받았으니, 그러니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새로운 자기 결심이 생기게 되는데, 그렇다면 자기는 무엇만 확인하면 되는가? 성령을 받고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여기면서 실제로 살아보니, 분명히 성령을 동원하고 은혜를 동원했는데, 그런데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OH, MY WIFE ??

그래서 그분이 여기에 무엇이 추가했는고 하니, 성령을 받고 말씀을 지키지 못하니, 항상 '자기 부인'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주여, 제가 말씀을 지킨다고 했는데, 제대로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 라고 하는 것을 추가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를 능가하는 온전한 복음적인 삶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김성수 목사의 설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출발을 어디에서 했는고 하니, '구원론' 이라는 것이다. 즉 기존의 그 구원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 부인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죄다" 라고 일러주는 것이 성령의 몫인데, 그런데 그 양반은 자기가 해보니 안 되니까, 그것이 성령의 몫이 아니라, "저는 부족합니다.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는 것을 추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자기 구원론에 계속해서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설교가 좋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 주님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데, 주님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영선 목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해봐도 그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하, 나를 부인하면 주께서 해주시는구나" 라고 하는데, 그래서 저는 그것을 두고 "도를 닦는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양반이 불교와 동양철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으니,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동양철학적인지, 그것을 미처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의 주장이 이미 동양철학에 다 있는 것인데 말이다. 즉 자기 속에 있는 신성을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의 표현대로 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 있으면 성령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은 어디에서 오는가? 십자가에서 오시는데,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즉 주님의 주되심을 위해서 우리가 동원되었음을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구원의 위해서 십자가가 필요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부인도 필요하고, 성령도 필요하고 말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자꾸만 한다는 말인가? 자기 구원을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받지 못했으니, 일단 무엇이라도 자꾸만 해보자는 식인데, 자기 부인에 또 자기 부인을 거듭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개혁주의마저도 능가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이근호 목사의 설교와 똑같아 ??

그런데 그것을 두고 이근호 목사의 설교와 똑같다고 하는데,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똑같단 말인가? 만약에 그분이 지금이라도 십자가뿐이라고 하면 왜 강추를 하지 않겠는가? 십자가 마을에다 그 교회배너로 도배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과연 십자가뿐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곳에 모이는 자들은 모두 다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자기들의 완벽함과 철저함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분,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가 다 알아서 합니다.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라고 하면, 그들은 모두 다 떠나고 만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들의 행함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김성수도 역시 똑같네" 라고 하면서 떠나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 구원을 받으려면 이런 행함이 있으면 됩니다" 라고 하는 뭔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말 그대로 주님인데, 그런데 목사가 그만 주인이 되어서 주님을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예수는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그렇다면 이근호 당신의 말대로, 즉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 신앙생활도 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래서 저를 보고 '영지주의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 라고 하면 무조건 영지주의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그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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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또한 십자가 마을에 올라와 있는 이근호씨의 김성수 목사에 대한(또는 설교에 대한) 평가입니다.



출처:http://crossvillage.org/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board02&sselect=wr_name&stext=%BC%AD%B5%BF%C8%C6&page=1&wr_id=1393



내용:

교회사이트 한 곳을 링크합니다 "십자가마을 복음" 과 차이점을 비교해주세요이름 : 서동훈(IP:211.186.119.125)

미국 남가주 서머나교회

설교자 김성수 목사

아래 사이트에 접속하면 설교파일이 많이 올라져 있으니 들어보시고 이곳 십자가마들과 비교해서 평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myrnachurch.com/public/index.asp?CurrentCatID=C21816389174699231&ChangeSetID=default

 이근호 (IP:117.♡.164.12)10-07-26 20:50 
어떤 설교가나 성도의 고백을 평할 때는, 십자가의 피의 공로와 은혜가 그 사람에게 전달되어서 그 입을 통해서 십자가의 피의 능력만이 나오고 있는가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애써고 노력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면 성령의 개입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내 말과 전도함이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그렇다면 설교 자체가 사람의 지혜를 거부하는 내용으로 전개되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이 만약에 성도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십자가의 피의 능력에서만 나왔음을 그 설교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겁니다. (고전 1:18) 김성수 목사의 설교 중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2010년 7월 25일의 설교)에 관한 설교를 하나 들어보았습니다. 출발점이 어디에서는 가를 유념하며 들었습니다. 즉 설교자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됨을 인식하는 가운데 '거지와 나사로'라는 주제를 가지고 교인들 앞에 서고 있느냐를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김성수 목사가 생각하는 죄라는 것이 무엇이며, 김성수 목사가 생각하는 은혜, 혹은 복음이라는 개념안에 과연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담겨 있는 지를 살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바리새인을 비롯해서 각양 종교인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자기 부인'을 성사시키려는 자들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 부인'을 시도하는 그 바탕과 근거가 과연 십자가 피 능력인가 아니면 자기 반성인가를 살피는 겁니다. 만약에 '자기 반성'이라면 그동안 자신이 버려야 할 것들을 나열하게 마련이고 이제는 그런 사고방식 반대편에 자신을 포진시키면서 지난 날의 삶을 질책하는 설교나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나'라는 육신이 마땅히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반대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처럼 "십자가 능력으로 인하여 나는 이미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식으로 산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고백이 진정 성령받은 성도의 일반적인 성향입니다. 이 성향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해석한다면 과연 김성수 목사와 같은 논조와 의견을 개진할 것인가를 봐야 합니다. 즉 김성수 목사는 자기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것이 진정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그 설교를 통해서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들의 종교적 열성으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2. 돈을 무시하는 것이 돈을 정복하는 것이니 제발 더이상 이 세상 살면서 돈에 굴복되지 말고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3. 자신들은 평소에 늘 지금 당장 죽음이 임했다고 여기면서 살면서 그 순간에는 오로지 십자가 복음으로만 영원히 살 수 있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그런데 과연 이런 기대가 사도 바울의 기대하는 바가 동일할까? 김성수 목사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 복음과 같지 않는데 그 원인을 바로 출발 자체가 십자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간들의 의도적 종교성을 파헤치고 그 한계점을 출발점으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논리학에서 말하는 '변증법적 논리구조'입니다. 반대의 한계를 지적하므로서 그 반대와 반대가 되는 것이 곧 선한 영역임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저것은 안돼, 저것은 틀린거야"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제 귀에는 설교 내내 유사 십자가 복음을 설교하고 있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십자가 피 복음으로 출발점으로 하여 '거지와 나사로'를 설교하면, '거지와 나사로' 이야기 자체가 율법으로 전환됩니다. 즉 사건의 형식으로 주어진 율법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 복음에 의하면 율법이란 모든 자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롬 3:19) 다시 말해서, 그 어느 인간도 이 '거지와 나사로'라는 사건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가 없게 됩니다. 즉 "우리는 거지가 됩시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부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입니다"가 됩니다. 우리가 거지 나사로보다 부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김성수 목사가 긴 설교 시간동안 애써서 지적한 그런 인간적인 오류 때문이 아니라 부자 역할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성수 목사의 사상의 결정적인 과오는, 죄인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이 소개하는 그리스도가 같을 수가 없다는 사실의 중요함 놓치고 있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점을 결코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김성수 목사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십자가 복음을 받아드려야 한다"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의 전부는 예수님의 주되심에 있다"입니다. 따라서 김성수 목사는 '거지나 나사로' 설교에서는 도저히 '예수님의 주되심'의 차원과 제대로 연결지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께서 원하시는 바, "예수님의 주되심"이 증거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유용성을 우리 소지합시다"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즉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 산다"라는 사실이 곧 죄인에서 나오는 죄의 발로라는 점을 김성수 목사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겁니다. 김성수 목사가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은 여전히 개혁주의 신학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십자가 복음과의 차이점입니다. 

바라기는 저의 이 설교평을 김성수 목사의 사이트에 올렸으면 합니다. 그의 소견이 궁금합니다.
 서동훈 (IP:120.♡.175.187)10-07-27 00:16 
설교 속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증거되어져야 되는데 아무리들어도 주의 영이 증거하는 예수그리도가 도출되지 않는 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평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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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청지기의삶 · 2013-09-30 22:04
    참 그럴싸하게 말놀이를 합니다. 십자가면 된다고했는데.... 그 십자가를 이해 하지 못하는 바보 멍충이네요. 예수님께서 왜 그십자가를 지시고 그렇게 피흘리셨는지를 모르면서....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를 높이려는 바보 멍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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