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정치예루살렘 공의회와 일반교회 치리회와의 관계
교회정치예루살렘 공의회와 일반교회 치리회와의 관계 박 윤 선 목사
파수꾼 88호(1959년 7월호) 부산고려신학교
행 15장을 보면, 기독자도 할레를 받아야 된다는 문제로(다시 말하면 교리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과 그 밖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있는 사도들과 장노들로 더불어 의론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에 기준하여후대의 기독교 각파에서 치리회의 원리를 위요하고 서로 논쟁 하였다. 로마교회는 예루살렘 공의회의에서 베드로를 수반으로 하여 논쟁 하였다고 생각하여 법황 주의의 정치가 옳다고, 영국 국교에서는 여기서 예루살렘교회감독 야고보가 지도자적 입장을 취하였다고 하여, 감독국의 정치가 옳다 한다. 위에 두 교파에서 생각하는 견해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옳치 않다. 이에 주요하게 연구할만한 의견들은 회중교의 의견과 장노교의 의견이다. 회중교는 얘루살렘 공의회가 후대의 교회 정치에 관계하는 바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대론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도 중심의 희의였으니, 사도가 없는 후대엔 상관없다 한다. 그러나 장 장노교는 말하기를, 예루살렘 공의회 원리에 기준하여 장노교 정치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이제 회중교와 장노교의 논쟁을 생각하여 보자.
1. 예루살렘 공의회에 모였던 사도들과 장노들의 처지
장노교는 말하기를, 이 때에 사도들과 장노들은 서로 같은 처지에서 같은 권한을 가지고 회의를 하였다고 한다. 사도들은 영감(靈感)에 의하여 명령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다만 장노들로 더불어 함께 의론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사도나 장노의 차별이 없이 동등 지위에서 의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회중교는 말하기를, 그때에 사도들이 사도의 권위로 그 회의에서 처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장노교의 견해처럼 사도행전 15장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2. 교회 권세의 규준(規準)
교회의 치리회는 무엇에 기준하여 그 권세를 가지는가? 그것은 오직 성령에 기준한다. 예루살렘 공의회서 나타난 대로, 베드로는 그때 교리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에 기준하였고, 야고보는 구약 선지자의 말에 기준하였다. 그런고로 교회치리자의 권위는 성경에만 기준 한다고 생각된다. 이 점을 지적함에 있어서 컨닝함은 야고보의 방식을 명시(明示)된 원리로 생각하였다.
3. 교회 직분들의 권위
예루살렘 공의회를 보면 교회의 문제건에 있어서, 교직자들만이 의논 하였다. 이렇게 교회의 치리는 교직자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는 조건적이다.
(1) 그들의 권세는 교회 일에만 관계된 것이며, 또한 권세를 쓰는 것이 아니고 다만 봉사적 의미에서 사역하며 그리스도에게 종속할 뿐이다.
(2) 교회 직분들이 작정한 것은, 무오유한 절대적의 것은 아니다.
(3) 직분들의 성경 해석은 독점적인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분들의 작정한 것이 확실히 잘못된 것이 판명 되기 전에는 평신도로서 반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집이나 개인적 유익을 위하여 치리회의 작정을 반대 하여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말하기를,
치리회의 작정은
① 하나님 말씀으로 되어야 하며, ② 그것이 성경과 부합하며 순종하여야하며
③ 그것이 성경과 부합하는 경우에는 누구든지 그것을 합법적의 것으로 알찌니
곧,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생각하여 경외함으로 받아야된다고 하였다.
4. 평신도들의 처지
행 15:12과 22을 보면, 일반 신자들의 무리는 그 회석에 있기는 있었으나, 회원 자격으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다만 그 회에서 하는 일에 찬성하는 정도였다. 헨델센과 길레스피라는 두 학자에 의하면, 교회 역사 상에서 볼 수 있는대로, 웨스트민스트 신경 작성 원리들이 개혁자들보다 민주주의적이 못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 신자의 무리는 교회 치리에 있어서 권리를 못가지는 원리를 그들이 더욱 고조 하였다는 말이다.
5. 교회 치리회의 층등(??)에 대하야
행 15장은 확실히 하회가 상회에 종족할 것을 가르친다. 안디옥 교회는 그때 교리상 쟁의를 예루살렘에서 뭏일 공의회에 상고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장노교 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루살렘 공의회의 회의 원리는, 어느 시대나 그대로 해야 될 원리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5:28절과 16:4을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의 원리가 후대의 교회에게도 표준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회중교는 말하기를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도들의 중심이 되었던 만큼 그런 회의의 원측이 사도가 없는 오늘 날에 꼭 같은 법으로 교회 회의를 성립시킬 법규는 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 대하여 장노 교회는 대답하기를, 행 15장에 나타난대로 그때에 사도들이 사도권으로 작정한 것이 아니고, 장노들과 함께 회의하여 문제를 해결한 것인 만큼, 그것은 후대의 일반 교회 회의가 답습(踏襲)하여야 할 치리회 원측 이라고 한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파수꾼 88호(1959년 7월호) 부산고려신학교
행 15장을 보면, 기독자도 할레를 받아야 된다는 문제로(다시 말하면 교리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과 그 밖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있는 사도들과 장노들로 더불어 의론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에 기준하여후대의 기독교 각파에서 치리회의 원리를 위요하고 서로 논쟁 하였다. 로마교회는 예루살렘 공의회의에서 베드로를 수반으로 하여 논쟁 하였다고 생각하여 법황 주의의 정치가 옳다고, 영국 국교에서는 여기서 예루살렘교회감독 야고보가 지도자적 입장을 취하였다고 하여, 감독국의 정치가 옳다 한다. 위에 두 교파에서 생각하는 견해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옳치 않다. 이에 주요하게 연구할만한 의견들은 회중교의 의견과 장노교의 의견이다. 회중교는 얘루살렘 공의회가 후대의 교회 정치에 관계하는 바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대론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도 중심의 희의였으니, 사도가 없는 후대엔 상관없다 한다. 그러나 장 장노교는 말하기를, 예루살렘 공의회 원리에 기준하여 장노교 정치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이제 회중교와 장노교의 논쟁을 생각하여 보자.
1. 예루살렘 공의회에 모였던 사도들과 장노들의 처지
장노교는 말하기를, 이 때에 사도들과 장노들은 서로 같은 처지에서 같은 권한을 가지고 회의를 하였다고 한다. 사도들은 영감(靈感)에 의하여 명령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다만 장노들로 더불어 함께 의론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사도나 장노의 차별이 없이 동등 지위에서 의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회중교는 말하기를, 그때에 사도들이 사도의 권위로 그 회의에서 처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장노교의 견해처럼 사도행전 15장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2. 교회 권세의 규준(規準)
교회의 치리회는 무엇에 기준하여 그 권세를 가지는가? 그것은 오직 성령에 기준한다. 예루살렘 공의회서 나타난 대로, 베드로는 그때 교리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에 기준하였고, 야고보는 구약 선지자의 말에 기준하였다. 그런고로 교회치리자의 권위는 성경에만 기준 한다고 생각된다. 이 점을 지적함에 있어서 컨닝함은 야고보의 방식을 명시(明示)된 원리로 생각하였다.
3. 교회 직분들의 권위
예루살렘 공의회를 보면 교회의 문제건에 있어서, 교직자들만이 의논 하였다. 이렇게 교회의 치리는 교직자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는 조건적이다.
(1) 그들의 권세는 교회 일에만 관계된 것이며, 또한 권세를 쓰는 것이 아니고 다만 봉사적 의미에서 사역하며 그리스도에게 종속할 뿐이다.
(2) 교회 직분들이 작정한 것은, 무오유한 절대적의 것은 아니다.
(3) 직분들의 성경 해석은 독점적인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분들의 작정한 것이 확실히 잘못된 것이 판명 되기 전에는 평신도로서 반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집이나 개인적 유익을 위하여 치리회의 작정을 반대 하여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말하기를,
치리회의 작정은
① 하나님 말씀으로 되어야 하며, ② 그것이 성경과 부합하며 순종하여야하며
③ 그것이 성경과 부합하는 경우에는 누구든지 그것을 합법적의 것으로 알찌니
곧,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생각하여 경외함으로 받아야된다고 하였다.
4. 평신도들의 처지
행 15:12과 22을 보면, 일반 신자들의 무리는 그 회석에 있기는 있었으나, 회원 자격으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다만 그 회에서 하는 일에 찬성하는 정도였다. 헨델센과 길레스피라는 두 학자에 의하면, 교회 역사 상에서 볼 수 있는대로, 웨스트민스트 신경 작성 원리들이 개혁자들보다 민주주의적이 못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 신자의 무리는 교회 치리에 있어서 권리를 못가지는 원리를 그들이 더욱 고조 하였다는 말이다.
5. 교회 치리회의 층등(??)에 대하야
행 15장은 확실히 하회가 상회에 종족할 것을 가르친다. 안디옥 교회는 그때 교리상 쟁의를 예루살렘에서 뭏일 공의회에 상고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장노교 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루살렘 공의회의 회의 원리는, 어느 시대나 그대로 해야 될 원리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5:28절과 16:4을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의 원리가 후대의 교회에게도 표준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회중교는 말하기를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도들의 중심이 되었던 만큼 그런 회의의 원측이 사도가 없는 오늘 날에 꼭 같은 법으로 교회 회의를 성립시킬 법규는 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 대하여 장노 교회는 대답하기를, 행 15장에 나타난대로 그때에 사도들이 사도권으로 작정한 것이 아니고, 장노들과 함께 회의하여 문제를 해결한 것인 만큼, 그것은 후대의 일반 교회 회의가 답습(踏襲)하여야 할 치리회 원측 이라고 한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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