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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생각

강영안 교수 '하나님 없는 인문학은 헛된 것' 과연 그럴까요?

'렉티오 디비나'를 강연하시는 분이 이런 말을 하실 수 있을까요? 


강영안 교수, 하나님 없는 인문학은 헛된 것
전도서를 통해 본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

승인 2015.10.30  07: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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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신학에 새 물결을 일으키기 원하는 새물결 아카데미가 지난 19일 개원 예배를 드리고 출발했다. 새물결 아카데미 최경환 연구원에 의하면, 새물결 아카데미는 당산동에 위치한 새물결 아카데미 북 카페에서 저자와 번역가 그리고 독자들이 만나 이야기하고 토론함으로 새로운 출판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물들을 유통시키는 종합적인 지식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식 공동체라고 한다. 시니어 학자들과 주니어 학자들, 은퇴 교수님들과 대학원 학생들이 만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젊은 친구들이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오픈하고, 대중들을 위한 기독교 지식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힘을 보태는 새물결 아카데미가 되겠다고 소개했다.


▲ 개원 인사하는 김요한 대표
하천운 목사(자유교회)의 사회 시작된 개원예배는 이철규 박사(치의학 박사)가 기도하고 전도서12장 12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강영안 교수(고려학원이사장)가 “공부론”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M&P 챔버 오케스트라의 축가에 이어, 이장호 목사(높은뜻광성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에 김요한 대표(새물결아카데미 원장)가 다음과 같이 인사했다. “요즈음 다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있는데 출판업이 어렵고, 학술 기관들이 어렵고, 카페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어렵다는 세가지를 모두 열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탈탈 털어서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한국교회를 위해서 의미 있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30년을 내다 보고 시작합니다. 우리는 지나갈지라도 우리 후대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 전도서 강론하는 강영안 교수
‘공부’하면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강영안 교수는 전도서 강론을 통해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피력함으로 참가한 크리스천들의 인문학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강 교수는 “‘공부’하면 무엇을 떠올리십니까?”라고 질문하며 다음과 같이 강론을 시작했다.

여러분 공부하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했던 그런 공부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한번은 집에서 제 아이들과 논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유튜브(youtube)에서 어떤 어린 천재 기타리스트의 연주 동영상을 보면서 “제는 공부 안 해도 되겠다!”라며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유튜브에 나오는 저 아이도 공부해야 한다고 시비를 걸면서, 새벽 3시 까지 아이들과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공부와 제가 생각하는 공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는 글공부, 말 공부, 마음 공부, 인생 공부 등을 포함하여 평생 공부해야 하는 인문학적 공부를 의미하는 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공부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소위 국·영·수 위주의 단편적 공부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부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사실 제가 말씀드리는 큰 틀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을 빠는 것도 공부고, 어린 아이가 3000번 넘어지면서 걷기 위해 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입니다. 피아제(Piaget)의 책을 보면 아이들이 세계를 배워가고 점령해 나가는 과정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아제는 아이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단계별로 세세하게 서술하면서 그런 것들을 공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면, 노력, 열심을 뜻하는 라틴어 스튜디오(stúdio)에서 학생을 뜻하는 스튜던트(student)라는 말이 나왔는데 노력하는 사람이고 힘써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장례식에 가면 학생들이 많이 죽어서 이해를 못했습니다. 유교전통에서 학생은 누구입니까? 벼슬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학생이기 때문에 관 뚜겅에 學生 □□□ 라고 씁니다.
 

“교회와 아카데미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오늘 본문의 공부(לַהַג)라는 히브리 표현도 애쓰다, 힘쓰다, 땀흘리다 는 뜻입니다. 히브리 전통에서도 공부는 애쓰고 힘쓰는 일입니다. 전도서에도 책을 가지고 공부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책을 쓰려면 글을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은 글에 대해서 애매한 입장을 취합니다. 디모데 후서3:16의 말씀에서 바울은 “모든 성경(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말씀하면서 성경을 기록한 글자를 하나님의 감동의 결과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3:16에서는 “의문(문자)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함으로 글자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부정적 표현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플라톤(Plato)에게서도 똑같은 입장이 발견됩니다. 플라톤은 문자는 망각의 도구라고 하며, 문자를 사용하면 외우지 못하고 따라서 제대로 전승받지 못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플라톤이 글을 쓸 때 대부분 대화 형태로 썼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대화 속에 영이 깃들고 그래야 참된 것을 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도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하면서 글 혹은 문자, 책이 죽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자 혹은 철학이나 학문에 극단적 입장을 취한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교회와 아카데미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글 혹은 문자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으로부터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플라톤이 사용한 희랍어 아카데미아(academia) 라는 말은 사실 지명이었습니다. 아카데미아는 선생과 학생들이 같이 공부하는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선배와 후배들이 함께 살며 공부하는 학문과 생활의 공동체였습니다. 삶의 공동체이고 학문 공동체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였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아에는 교재가 없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질문, 즉 문제였습니다. 아카데미아는 어떤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 공동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와 아카데미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터툴리안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전도서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전도서12장 12절은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글을 구상하고, 원고를 쓰고, 일관된 모습을 갖춘 형태의 책으로 만들어 내고 출판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이런 책들을 공부하는 것이 몸을 피곤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전도서12:12의 책과 공부에 대한 말씀은 전도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두 가지 모티브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도서의 첫 번째 모티브는 전도서1:2부터 시작되는 ‘헛되다’는 모티브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2:17에서는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서 12:8에서도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저도 많은 책을 출판하고, 100편이 넘는 논문을 썼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전도서의 말씀처럼 헛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 헛된 것입니까? 여기서 전도서의 또 다른 모티브가 등장합니다. 전도서2:10 말씀에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전도자는 모든 수고를 기뻐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저도 논문 한편을 쓰기 위해서 책을 한가득 싣고 서울 근교의 수도원에 가서 일주일 내개 책과 씨름하며 논문을 한편 써서 내러 오면서 기뻐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는 전도서3:13의 말씀처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새물결 아카데미 개원 예배 현장
인문학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지나가는 헛된 것

글과 책으로 사람과 세상을 공부하며 논하는 것을 인문학이라 할 때, 인문학에 대한 전도서의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의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헛되다는 관점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관점입니다. 불가타(Vulgate) 성경을 번역한 제롬(Jerome)은 이 세상의 수고를 멸시하면서 인문학과 같은 세상의 수고는 모두 ‘헛되다’고 단정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기 이 세상을 떠나 수도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런 사상이 중세 1000년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종교 개혁자 루터가 이것을 뒤집은 것입니다. 루터는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전도서의 가르침이라고 해석함으로 신학과 인문학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내고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즐거워하고 기뻐해야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고, 지나가는 것이고 헛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공부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크리스천들에게 인문학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지나가는 헛된 것입니다.

 

전국을 강타하는 인문학 열풍의 원인을 찾아라!

요즈음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인문학 열풍이 전국적으로 불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첫째는 스티브 잡스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회사에서 기술과 인문학의 접촉을 강조하면서, “인문학 하면 스티브 잡스처럼 돈 버는 거 구나!”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문(humanities)이라는 것은 돈버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 남긴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문학을 해야 돈을 번다고 생각했던 기업인들이 근본적으로 사람을 알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이 점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히 ‘신학과 인문학은 다르다’는 것이 교회의 의견처럼 보이는데,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신학을 하겠습니까?

두 번째는 전국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한국의 “피로사회”와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노동과 업적 중심의 문화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 좀 쉬고 싶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을 주도하는 큰 관점은 ‘내려놓아라’ ‘하지 말아라’는 노장철학의 입장입니다. 이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이 있습니다. 기독교적 인문학 성찰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신학과 인문학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개발 세대 산업화 일군들이 이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땀 흘리며 수고하며 살아온 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아보려는 시도 때문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새물결 아카데미가 기독교 인문학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피로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돈을 따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경이 말씀하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제시하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 할 수 있는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새물결 아카데미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이 일을 감당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영안 교수는 전도서 강론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문학은 헛된 것이라고 단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인문학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피로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메는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다가가 성경이 말씀하는 삶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며 하나님을 만나게하는 지혜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28


 강영안 교수는 '렉티오 디비나'를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새로 나온 청어람아카데미 가을학기 DVD 
[1] 강영안 교수 
"네 읽는 것을 깨닫느뇨?" 주자의 독서법과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 10,000원 (착불 배송)
http://www.bluelog.k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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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uelogshop.tistory.com/m/post/6



연세대 연합신대원, 미래목회컨퍼런스
기사승인 [710호] 2009.06.20  00:00:00

- ‘회복해야 할 영성’ 모색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원장 이양호 교수)은 오는 22~25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회복되어야 할 영성(The spirit)’이란 주제로 미래교회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한국교회 강단의 균형된 영성을 추구하는 이번 컨퍼런스는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원로)의 개강예배 설교를 시작으로 최일도 목사(다일공동체)의 ‘영성과 사회적 실천’, 유해룡 교수(장신대)가 ‘기도운동과 영성’, 강영안 교수(서강대)의 ‘영성과 렉티오 디비나’ 등의 영성을 위한 다양한 강좌가 마련되었다.
또한 성서적인 영성의 기초를 확인하기 위해 서중석 교수(연세대 부총장)와 왕대일 교수(감신대)가 강사로 나서며, 이재돈 교수(가톨릭대)가 천주교회의 영성도 소개한다
http://m.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61


강영안 교수의 '렉티오 디비나' 강의는 다음 기사에 나옵니다.

묵상을 통한 말씀 읽기
청어람 가을학기 공개강좌
2008년 09월 27일 (토) 23:08:55 정현경 기자  heaven@allthatnews.co.kr
   
25일 열린 청어람아카데미 공개강좌에는 10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청어람아카데미가 가을학기 강좌에 앞서 25일 공개강좌를 실시했다. 특강에 나선 서강대 철학과 강영안 교수는 ‘주자(朱子)의 독서법과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라는 주제로, 문자와 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기독교에서 독서법과 신앙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 교수는 책 읽기가 공부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책 없이 공부할 수는 없다면서 독서법 논의의 이유를 말했다. 그는 주자의 독서법을 소개하고 수도원 중심으로 행해진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영적인 읽기에 대해 논했다.
   
강영안 교수. 영적 읽기란 우선 소리내어 읽고(lectio) 묵상하고(meditatio) 읽고 묵상한 것을 가지고 기도하고(oratio) 삶 속에서 실천하면서 자신을 살펴보는(contemplatio) 일이다. 루터는 시편 119편을 통해 신학하는 방법으로 배운 세 가지를 기도(oratio), 묵상(meditatio), 적용(tentatio)으로 꼽았다. 강 교수는 신자들의 삶에서 필요한 세 층위는 경건, 이론적 공부,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청어람아카데미는 29일 연세대 신학과 김상근 교수의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기독교’  강의에 이어 10월6일부터 가을학기를 시작한다. ‘바울과 제국: 성서학과 정치철학의 만남’ 등의 세미나 프로그램과 서양미술, 영화 속에 나타난 기독교의 모습을 논의하는 문예아카데미 프로그램 등이 11월28일까지 8주간 펼쳐진다.
http://www.newscj.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1399


이렇게 렉티오 디비나를 강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영안 교수는 알고 강의할까요? 모르고 강의할까요?

렉티오 디비나는 왜 위험할까요? 다음 글을 읽어 보십시오. 

렉시오 디비나의 정체와 위험성 (Faith)
편집위 코너/Faith의 믿음묵상 2012.09.27 01:08 Posted by 김삼

원제: 렉시오 디비나: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위험한 까닭
번역: Faith (편집팀)
출처: 미국 '등대길'(LHT) 9월 11일 영문 뉴스레터


오늘날 렉시오 디비나(또는 렉치오 / 렉티오 디비나)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상당히 많은 관련 도서들이 발행되었거나 발행될 예정이고, 점점 더 많은 수의 복음주의권, 기독교권 사람들도 그런 책을 쓰거나 승인하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렉시오 디비나는 단순히 특정 성구를 천천히 읽고 (혹은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그 말씀을 깊이 숙고하거나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렉시오 디비나의 한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신비가나 관상가들에게 묻는다면-그들보다 누가 더 잘 알겠는가?!-그들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가 성경의 한 구절(혹은 딴 글이어도 좋다고 함)을 천천히 읽고 난 후 묵상하고 있는 그 구절에서 하나의 단어나 간략한 문구를 얻을 때까지 계속 되뇌는 것이 항상 포함된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성경 구절로부터 뽑아낸 주문(만트라) 비슷한 단어나 문구를 다루게 되는데, 관상가들에 의하면 이것을 수 분간 반복하면 사고를 멈추고 잡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어, 소위 말하는 '하느님/신의 음성'을 듣고 그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관상 신비주의의 선구자의 한 명인 토마스 키팅은 무엇이 렉시오 디비나가 아닌지를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전통적인 성경 연구가 아니며, 이해와 깨달음을 위한 성경 읽기도 아니다. 또한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하느님/신의 현존에 들어가기 위해 집중할 요량으로 성경에서 단어나 문구를 뽑아낼 때는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렉시오 디비나의 한 형태가 될 수는 있지만 말이다.) "
키팅은, 렉시오 디비나는 더 깊은 훈련—관상기도와 향심기도를 위한 개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렉시오 디비나가 단지 성경을 천천히 읽는 것 뿐이라며 그게 뭔 문제냐고 하겠지만, 진짜 위험은 한 단어나 작은 문구에 집중하고 반복함으로써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이 수월케 된다는 점이다. 확실히 성경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숙고하며 읽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숙고한다고 말하지만, 동양식 명상에서 (그리고 관상 기도에서) 생각은 적이다. 
앤터니 데 멜로(Anthony De Mello, 동양신비가, 미국 예수회 사제, 심리요법사)는 생각에 관한 이러한 문제를 자신의 책 "사드하나: 신에게 이르는 길"에서 묘사하고 있다:
 
   "마음을 침묵시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여,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 생각을 만들어내는 마음을 잠재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인도의 힌두 도사들이 한 말이 하나 있다. '하나의 가시는 다른 가시로 제거된다'. 이것의 의미는 하나의 생각을 슬기롭게 이용하여 마음에 꽉찬 모든 딴 생각들을 지워버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문구, 문장, 또는 낱말로써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것이다." (28쪽. 이하 숫자는 쪽수)
 
영성계발 지도자인 잰 잔슨은 자신의 책, '영혼이 귀 기울일 때: 관상기도를 통한 안식과 방향 찾기'에서 생각은 방해거리가 되며 마음은 반드시 잠잠해져야 한다고 썼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관상기도는 생각과 감정들을 잠잠케 하고, 오직 하느님/신에게만 집중하게 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하느님/신의 현존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 상태로 머물게 하며, 하느님/신의 음성, 교정, 인도와 지시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16)
 
(검증가) 레이 영엔은 관상 신비가들이 추구하는 이 침묵을 이렇게 설명한다:
 
   "리처드 포스터가 말하는 침묵은 외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책 '기도: 마음의 참 고향을 찾아서'에서 포스터는 한 낱말이나 짧은 문구를 골라서 호흡에 맞추어 되풀이하는 호흡기도를 장려한다(122). 이것은 고전적인 관상적 신비주의이다....[같은 책에서] 포스터는 한 신비가의  "당신은 하나의 생각으로 마음을 묶어야 한다"는 조언을 인용한다...한 번은 내가 포스터의 호흡기도법을 과거 뉴에이지 수련자였다가 지금은 크리스천이 된 사람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녀는 놀라워하면서 '그건 제가 바로 아쉬탕가 요가를 할 때 썼던 방법이네요!'라고 하여, 뉴에이지와 호흡기도의 관계성을 확인해주었다." 
(배교의 시대 / A Time of Departing, 75)
 
렉시오 디비나에서 낱말이나 문구를 되뇌면, 결국 그 의미를 잃게 되고 되풀이되는 그 소리는 수련자를 변형된 마음 상태(곧 암시에 걸려들기 쉬운 상태)로 돌리기 시작한다. 
영엔은 말한다: 

   "마음을 오직 하나의 생각에 못박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진실한 성찰 및 기도와는 반대된다. 단순논리로 봐도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아무런 이성적 가치가 없다. 예를 들어, 만약 누가 전화를 걸어와서 내 이름이나 한 문구만을 계속해서 말한다면, 나는 거기서 뭔가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 당연히 아니다!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라고 달리 느끼실까?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현존이 아니라면, 명상할 동안에 빛으로 나타나 내면의 신성이라는 가짜 감각을 주입하는 이 현존은 도대체 무엇인가?"(ATOD, 76)
 
영엔은 신자들에게 "기도의 목적은 신비적 트랜스('입신') 상태로 가기 위해 마음을 한 낱말이나 문구로 묶는 것이어선 안 되고,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고 권고한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여러 교회에 한 조언이다. 마음과 뜻을 담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가운데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살후 1:11)' (ATOD, 75)
 
독자가 아끼는 사람들을 관상 영성과 영적 속임수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렉시오 디비나가 사람들을 완숙한 (동양적) 명상 수련으로 이끄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낱말이나 문구를 되뇌면서 (또는 호흡이나 한 대상에게 집중할 때) 나타나는 "고요한" 변형된 정신 상태에 있는 동안 닿게 되는 그 "현존"은 참 하나님의 현존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신비경험을 일으키려고 토마스 키팅이 렉시오 디비나라 부르는 것과 같은 그런 "특수과정"이나 방식을 수행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신 18:9-11). 따라서 우리는 렉시오 디비나에 관한 충분한 경고가 이미 주어졌다고 믿는다. 
 http://truthnlove.tistory.com/1311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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