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목사의 시편 23편 강해 중에서 에디 스피노사의 CCM 인용에 관해
(자료출처 김남준 목사의 시편 23편 강해 282페이지)![]()
존 윔버 빈야드 시리즈 세트(전3권)▒ 본 DVD에는매리 베넷(Marie Varnett), 대니 대니얼스(Danny Daniels), 에디 에스피노사(Eddie Espinosa), 그리고 데비 스미스-테베이(Debby Smith-Tebay) 등 워십 리더들의 출연이 포함되어 있다.
왜 이런 글을 올려야 할까요???
김남준 목사는 자신을 비판하는 어느 사람의 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c. 가스펠송을 많이 부른다는 불평에 대해또 그대는 열린교회의 찬양을 “무절제한 가스펠송의 남발 ... ”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주위에 있는 새중앙교회를 비난하였습니다. “개혁주의적인 시편 찬송은커녕 가스펠로 감정을 자극하고 ... ” 라고 하였습니다.나는 그대의 이러한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은 얼마든지 그 시대의 곡조와 언어로 고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통과 자기 시대의 변화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대가 칼빈이 좋아한 대로 왜 시편 찬송은 안 부르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편 찬송을 부르면 교회가 개혁이 됩니까? 찬송가의 상당 부분이 시편으로 되었다는 것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이미 우리가 가진 찬송가 중 시편으로 된 찬송가만 부르십니까? 시편을 사랑하십니까? 그대가 지금 애창하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예배용 찬송가가 이전 시대의 가스펠송이었던 것은 알고 계십니까? 그러면 이 아름다운 찬송가를 남겨준 사람들이 시편 찬송 말고 왜 우리에게 이것을 남겨 주었냐고 비난을 받아야 됩니까? 나는 칼빈(John Calvin)을 사랑하고 그의 신학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수 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시편 이외에는 찬송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존 칼빈의 의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가 다시 살아나서 ‘나의 의도는 그렇다’고 답변한다면 나는 ‘당신과는 신학적인 판단이 다르다’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시편을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교회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게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우리도 그 곡들 중 좋은 것은 보급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교회가 시편만 부르지 않는 교회를 단지 그것 하나 때문에 개혁주의를 버리고 칼빈을 배신한 사람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심지어 이 문제로 목회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까지 하더군요. 교인들의 영혼은 회심이 없고 삶으로는 칼빈의 주권사상을 짓밟고 있는데, 그러한 교회의 영적 상황 때문에는 자신에 대하여 얼굴을 붉힌 적이 없는 사람들이 찬송가 형태 하나 가지고 싸우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만한 비개혁주의입니다. 그리고 반청교도적입니다.나는 그대에게 염려스러운 것이 신앙의 단편적인 지식들을 자기 이념으로 삼아서 지나치게 확대하여 밀고 나가 그것으로써 모든 교회들을 판단하고 심지어 자신의 지체들을 정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개혁신학의 원리가 아닙니다.더욱이 그대는 이웃교회를 마치 진리 없이 세속적인 노래만 부르는 교회인 것처럼 비난했습니다. 새중앙교회에서 설교를 들어보셨습니까? 그 교회의 예배에서 찬양하는 것을 보신 적 있습니까? 더 이상한 것은 그대의 의견에 공감을 보였다는 어느 지체입니다. (그대가 상황을 정확히 옮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스펠송을 많이 부는 것이 새중앙교회를 옮기는 원인이 되었다면 그분이 왜 열린교회를 택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아직도 가스펠송은 물론 악기조차 사용하지 않는 교회들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데 말입니다. 더욱이 우리 교회는 공적인 예배 순서 안에서는 가스펠송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스펠송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대의 비난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판단에 기포하고 있으며, 현대문화에 대하여 반문화주의적인 앙심 같은 것을 품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 교회를 사랑하고 돕지는 못할망정 공개적으로 이름을 거론하며 비난을 하여 또 다른 지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제가 강단에서 어느 교회를 거론하며 욕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너무 개혁주의적인 교인은 덜 개혁주의적인 교회를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난해도 됩니까? 이 점에 대하여는 그대가 진지하게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자료출처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kvSj&fldid=RkzJ&datanum=16647&contentval=&docid=kvSjRkzJ1664720101125163224)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3) “내용은 깊지 않은데...”그대는 지적하기를 “내용은 깊지 않은데 ... 좀 짜증이 나더군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대는 나의 책의 신학적 깊이를 의심하였습니다. “머리 나쁜 우민이라서” 다섯 페이지도 못 읽고 책을 덮었다고 고백한 그대가 내 책의 학문적 깊이를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판단하였는지 궁금합니다.모든 설교 준비가 그러하듯 나는 남의 책을 펴놓고 설교 준비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새해사경회를 준비하며 이 설교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하여 미국에 특별히 주문하여 급히 도착한 박사논문(UMI의 doctoral dissertation service)을 8편이나 읽고 설교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그대가 내 책에 별로 없다고 하는 내용의 깊이가 도대체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수준을 기대하는 것인지 내가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 이미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되었거나 혹은 이제 막 그 길을 들어서기 위해서 교부들과 성경의 근거들을 가지고 이 특정한 논문 주제에 대해서 논문을 쓰기 위해 짧으면 5년에서 길면 10년까지 헌신한 학자들의 논문을 8편(약 1,600쪽 분량)이나 탐독한 후에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진술한 설교 내용입니다. 나는 그 책 중 어느 부분이 그대에게 깊지 않은 상식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용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그리고 그대가 신약 성경과 이레나이우스(Irenaeus) 그리고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까지 가깝게는 종교개혁자들에게 까지 연결되는 기독교의 유산, 사랑의 교회론(the Ecclesiology of caritas)에 대해서 얼마나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기에 나의 책을 내용에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깊이 없는 책을 왜 다섯 페이지도 이해를 못하는지 묻고 싶습니다.내가 보기 그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교인보다 그 책이 담고 있는 진리의 내용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 전체가 그대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러한 행동이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반항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에 현저히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책이 바로 그대처럼 무지와 은혜의 결핍 속에서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 참된 교회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이지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대는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스스로 그 책을 거절하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책이 그대를 거절한 것입니다.)(자료출처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kvSj&fldid=RkzJ&datanum=16647&contentval=&docid=kvSjRkzJ1664720101125163224)
그러면,
에디 스피노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reworship/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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