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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생각

강영안 교수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자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라고 불리는 강영안 교수

강영안 교수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자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라고 불리는 강영안 교수

근래 강영안 교수의 발걸음이 꽤 바쁩니다.
그를 오라하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강영안 교수를 오라고 할까요?
그의 이름대로 '영안'이 밝아서 일까요?

세간에서는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자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2372405


'르네상스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네이버지식에 보면,
누가 '르네상스적 인간이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대답이 이렇습니다.


----(1)----------
르네상스 전의 인간들은 인간성을 잃어버린 
오직 신에게만 의존하는 사람들로 평가됩니다.
르네상스적 인간은 신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
인간성과 예술 즉 인간을 바탕으로 관념(생각)을 둔 사람입니다.( 출처 : 내책)

---(2)-----------
르네상스적 인간(Renaissance Man)이란 '르네상스적 교양인'이라는 뜻으로, 즉 '만능인'을 말합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인간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예로 들면, 그는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프랑스왕에게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는데 거기에 자신의 능력에 대해 쓰기를 「연금술사, 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법률가, 군인, 군사학자, 시인, 음악가, 가수, 건축가, 기계전문가」등 이십여 가지를 나열하고 맨 끝에 「취미로 그림도 조금 그림」이라고 썼습니다. 우리가 화가로 알고 있는 다빈치는 정작 자기 자신은 미술에 대한 재능을 자기의 재능 중 보잘것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명사들 대부분에 해당되는 것으로, 가령 알베르티의 경우 그는 '초인'이라 할 정도로 대단한 육체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다리를 벌리지 않고도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 앞에 선 사람의 어깨 위를 가뿐하게 넘을 수 있었으며 엄지손톱으로 은화를 튕겨서 자기가 지은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까마득한 꼭대기 천장에 쨍그렁 소리가 나도록 부딪치게 할 수 있었고 아무리 사납게 날뛰는 말이라도 그가 고삐를 잡고 당기면 질질 끌려갈 만큼 괴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음악가, 문학가, 법률가, 물리학자, 화가, 조각가로 이름이 남아 있는데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쌓았으며, 그가 설계하고 감독한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과 스트로치 궁전은 르네상스 건축의 빛나는 걸작들입니다.
명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는 미술작품 외에도 그의 '자서전'으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밖에도 미켈란젤로, 토마스 모어, 단테, 에라스무스, 아레티노 등 그 시대의 명사들은 모두 만능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나 둘 정도의 재능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재능들을 가지고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하긴 어지간해서는 중세유럽의 암흑에서 문예부흥을 이루기 어렵겠지요.
르네상스적 인간이란 폭넓은 지식과 교양의 소유자, 모든 학문과 예술에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팔방미인을 말하는 것이죠.
(자료출처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2&docId=58513867&qb=66W064Sk7IOB7Iqk7KCB&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n0T/U5Y7vwsstzi79lsssssss0-351793&sid=UPi6L3JvLDEAAEGeHMY)


2가지 답변이 잘 말해 주듯이, 르네상스적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고, 인간의 능력이 한이 없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인간중심주의, 인간중심의 문화, 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강영안 교수가 그렇게 불리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게 됩니다.
강연안 교수는 그런 인간중심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찰떡 궁합이 된다는 것입니다.


양희송 ‘삶 전체가 예배다’라는 측면은 잘 살펴보았는데, 이제 반대로 소위 ‘공예배’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수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평신도’가 설교를 하는 것이 가능하냐, 바람직하냐는 논란도 있었지요.
강영안 중요한 질문입니다. 목회와 일상의 관계를 내가 설명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평신도 사역자가 말씀으로 섬기는 일, 특히 전문적인 이슈를 가지고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목사님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이 어떠하며, 하나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임하고,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포괄적 내용만 다루어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좀더 세부적인 영역, 그러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세부 영역은 평신도 사역자가 섬길 수 있게 목회자들이 그들에게 섬길 공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평신도 사역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잘 못하고 있어요. 물론 일부 그런 전문가들이 있기는 하죠. 경제나 정치, 통일 문제에 충분한 지식을 갖춘, 그야말로 전문가적인 동시에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목회 영역에 들어와야 해요. 목회 영역에 들어와서 일반 성도들을 함께 훈련해야 합니다.
(자료출처 http://mall.godpeople.com/?G=1354167337-2)


강영안 교수는 전문가 영역의 사람들이 목회 영역에 들어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교회는 정치판이 되고 맙니다.
너무 간단한 결론일까요? 그것은 지나간 역사가 그래왔습니다.
교회가 지상의 일까지 간섭하고 손을 뻗치려고 했을 때 
교회는 권력과 타협하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 세상에서 최고로 더러워졌습니다.

강영안 교수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강영안 (중략) 지금까지 교회는 지적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지요. 흔히들 신학생들은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할 수 있게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예술이나 철학, 사회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전문분야의 그리스도인 일꾼을 키우고 지원하는 데는 인색했어요. 지금이라도 교회가 신학뿐만 아니라 그 밖의 전문 분야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성의 여러 분야로부터 기독교가 참담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기독교가 비기독교 지성인들을 담론의 영역, 토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지적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히 신뢰할 만한 신앙임을 보여 주는 기독 지성인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론적 무신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 기독교가 두려워해야 할 무신론은 기독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적 무신론’이지요.
양희송 ‘실제적 무신론’이란 어떤 것인가요?
강영안 ‘실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 또는 ‘실천적 무신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으로는 인정하고 종교행위에 참여하면서도 생각과 삶으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무신론이지요. 이런 무신론이 두려워해야 할 무신론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실제적 무신론이 우리한테 있다는 것을 모르거든요.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사실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고백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실천과 사고방식과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나 해요. _214~215쪽, ‘의심’에서
(자료출처 http://mall.godpeople.com/?G=1354167337-2)


강영안 교수는 ‘실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 또는 ‘실천적 무신론’을 말합니다.
그러면 강영안 교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요?
그렇게 강력하게 말하는 사람이 
종교통합운동 크리슬램의 핵심주동자 중에 한 사람인
미로슬라브 볼프의 책 '배제와 포용'(박세혁 역)이라는 책으로 열강을 할까요? 
(참고 크리슬램운동 http://www.yale.edu/faith/acw/acw.htm)
(자료출처 http://biblekorea.tistory.com/317)

그러니, 당연히
"우리 시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자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영광이라고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들이 여기에 빠져가니
교회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기실 죽어가고 있습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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