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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생각

하나님의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이런 말이 성경적인지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갑이 을을 섬기는 세상을 함께 꿈꾸며
[성서한국 전국 대회 초대의 글] 공동대회장 오세택 목사
데스크 승인 2013.06.17  22:09:47 오세택 (edit)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성서한국이 8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간 '하나님나라와 청년 공동체, 같이' 를 주제로 전국 대회를 개최한다. 사진은 2009년 성서한국 대회. (사진 제공 성서한국)

올해 성서한국 전국 대회 '하나님나라와 청년 공동체, 같이'의 공동대회장으로 섬기고 있는 오세택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은 주님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가슴 벅차게 하지만, 하루하루 현실을 살아 내야 하는 일상 속에서 그 꿈을 펼쳐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맨몸으로 사회와 부딪히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는, 가서 주의 복음을 위해 싸우라는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대회에 앞서,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강한 능력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인 성도들을 긴장하게 합니다. 포스코 에너지 상무의 항공기 여승무원 폭언 사건,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횡포와 이에 항의하는 점주를 향한 폭언 사태,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혐의 사건 등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소위 '갑의 횡포'라 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입니다. 이 갑의 횡포가 힘들어 편의점주들이 올 들어 네 명이나 죽음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입니다.

갑의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현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가장 정확히 담고 있는 성경에 보면 갑과 을의 차별과 횡포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곤비한 땅',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하며,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해도 멸한다'는 말들과 반면에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좋은 포도원을 갖고 희락하는 성읍', '큰 망대를 갖고 기뻐하는 궁전과 성읍'이란 말들을 통해서 갑의 횡포와 을의 비참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갑의 횡포를 막는 대안을 찾느라 법석을 떱니다. 정치권에서는 갑을 관계가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가 되도록 구조를 바꾸겠다고 합니다. 또 현행법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만 가지고 있는데 이를 폐지하고 중기청이나 감사원도 고발권을 갖도록 하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겠다고 소리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을'이 연대해서 공동으로 소송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갑이 횡포를 부릴 때 몇 배가 되는 배상을 하도록 강력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수많은 '갑'들의 인식 변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협력 업체, 하청 업체 등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을이 있어야 갑도 있다는 갑을 상생 의식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우리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갑을상생이라는 법과 의식에 대해서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이미 언급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명백하게 제시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법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법입니다(레 24:17~22). 소위 '동해보복법'입니다. 갑이 을의 눈을 뽑았다면 갑의 눈도 뽑아야 한다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법을 주시고 이 백성들로 인하여 이 땅의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갑과 을과 같은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도 이 법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법입니다.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다운 법입니까! 이 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법으로 인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법의 한 글자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법으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탐욕적이고 완악한 존재인지가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인가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 이야기는 바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한 가지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1~11) 한 왕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공의로 통치하시고 그 방백들, 그 휘하에서 왕의 권한을 위임받아 함께 통치할 성도(교회)들이 정의로 다스릴 때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같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타자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고후 5:14~17).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버림으로 타자를 복되게 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빌 2:5~11).

모세를 통해 '갑과 을이 동등한 세상'을 여셨다면 왕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방백들인 성도들을 통해서는 '갑이 을을 섬기는 세상'을 여셨다는 뜻입니다. 이 일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가능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갈 3:26~28).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갑과 을의 차별이 사라지고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갈 5:24).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인간이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욕과 탐심의 육체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 지음을 받았습니다(갈 6:15).

이처럼 구원이란 갑이 되어 을을 학대하던 존재를 넘고, 갑으로서 을과 상생하던 존재를 넘어, 갑으로서 을을 섬기는 존재, 을이지만 갑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존재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과 을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마른 땅에 냇물이 되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므로 평안과 안전이라는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기업으로 삼으신 영광의 풍성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번 성서한국 전국 대회를 통해 함께 이 약속을 향해 열려 있는 참된 믿음을 경험합시다. 청년들이 깨어 믿음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면 하나님나라의 윤곽이 드러나는 일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서한국 전국 대회는, 여러분이 청년 공동체로서 어떻게 하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인가를 이야기할 것이고, 여러분은 같이 그 소망을 살아갈 공동체적 비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올 여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같이 누려갈 뜻 있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겠습니다. 성서한국 대회에서 만납시다.

오세택 / 두레교회 담임목사, 성서한국 공동대회장
(자료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4441)


 


하나님이 사라지고 있다
목회자들, ‘목회 성공’ 위해 신도들의 ‘종교 소비주의’와 야합
[887호] 2006년 10월 16일 (월) 09:09:55 오세택(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목사)
   
 
ⓒ시사저널 안희태
개신교 목사들이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기 위한 구국 기도회를 열고 있다.  
 
한국 교회는 양적 침체와 질적 얄팍함, 그리고 사회적 냉대라는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이런 현실에 처하게 된 것은 제도의 모순이나 정열의 부족, 사회적 억압 때문이 아니다. 제도나 정열, 사회적 조건으로 치면 지금은 개신교 1백20여 년 역사 가운데 가장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암울하다. 왜일까. 

여러 가지 진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국 교회에 하나님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대신 그 자리에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자아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과거 한국 교회 100여 년 동안 그나마 중심에 있던 하나님은 이제 주변부로 밀려나서 자아를 만족시키는 부속물 정도로 취급 받고 있다. 

이렇게 된 일차적 책임은 이른바 교회 지도자라고 하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있다. 신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그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끌지 않고 목회 성공이라는 자신의 우상을 좇기 위해서 그들의 종교적 소비주의와 야합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1980년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자아를 숭배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 물결은 거대한 종교적 필요가 되어 교회로 밀어닥쳤는데 목회자들이 여기에 편승한 것이다. 

오늘의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와 같다. 자신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더 잘살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님을 찾아 오늘은 이 교회, 내일은 저 교회로 ‘교회 쇼핑’을 다닌다. 발 빠른 목회자들은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최대한 소비자들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개발하고 선전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요즘 대형화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하는 말이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의 근본적인 부패성과 타락성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그런 설교에 종교 소비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떠나 버린다.” 

신도의 기호 만족시킬 하나님 개발·선전
대안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없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한다. 자기 만족과 자기 축라는 열망을 하나하나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철저하게 자기 추구라는 본성을 가진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이 도움이야말로 교회가 흔히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구원이란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다. 오늘 대다수 한국 교회 교인들은 이런 수준으로 구원을 이해하고 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미신적인 해석인가!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자기 만족과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성경적 증거가 산상보훈이라는 예수의 설교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산상보훈에서는, 세상의 모든 모순과 갈등을 해결한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인간의 욕구들을 하나씩 내려놓음으로써 가능하며 이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아 만족, 자아 성취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만족과 하나님 성취, 이것은 철저하게 타자를 중심으로 하는 정의와 평화, 즉 타자를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변화를 구원/거듭남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렇게 변화해 이 땅 사람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자료출처 http://www.protest2002.org/bbs/view.php?id=data_4&page=8&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8)




▶개인묵상과 공동체 나눔에 대해
영등포두레교회 오세택목사/ 매일성경 11.9,10월호 인터뷰에서
(고신측)
좋은 글이라 발췌 인용함 :
1.구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2. 개인영성과 공동체적 나눔
 
 
"바른 성경읽기"를 말하려면 구원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 믿는 것을,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죄 용서받고 천당가는 것만으로 이해해요.
이것은 구원의 일곱 요소중에 단 두 개만 아는 겁니다.
 
그럼 나머지는 뭔가?
"새롭게됨"에 있어요.
구원에 있어서 새롭게 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살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타자를 위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장소적 관점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장소의 이동 즉 지옥갈 사람이 천당간다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새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령을 통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된 사람들은,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의 윤리를 실현해갈수 있어요.
그러면 공동체를 통해 성도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개인영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공동체적으로 나눔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에스겔 35장 말씀의 핵심입니다.
 
 
* 기타 :
-구역모임을 두레모임이라 하는데, 두레모임에 큐티나눔을 한다.
설교까지 매일성경 본문을 따라서 하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대외활동을 하고 있음.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Holy를 원하셨는데 솔로몬은 Great를 추구했어요.
그러다가 Holy를 잃어버리게 된 거죠.
하나님 나라는 위대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추구한다는 것을 늘 설교하기에 이것에 공감해주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지금까지 함께해준 성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출처] Note> 영등포두레교회 오세택목사-구원과 새롭게 됨|작성자 deric123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deric123/14013936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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