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수_쉐마인성교육_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유대교
현용수_쉐마인성교육_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유대교
다음 글을 읽어 보시면,
구전이 변질된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유대교탈무드는 구전 율법의 총화이며, 근 1,000 년의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유대교의 경전이다. 그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기관(학사) 에스라에 이른다. 바벨론 포로의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 토라를 지키지 않은 데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말씀 운동이 탈무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에스라 9:7 참조).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주전 538년)후 81년만에, 그리고 귀환한 공동체가 주전 515년 제2성전을 봉헌한 지 58년 만에 에스라가 소수의 무리를 데리고 바벨론에서 귀환한다(주전 457년). 그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서기관(쏘페르)으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스7:10). 에스라 이전에 토라를 가르치는 자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호세아 4장 6절에 의하면 제사장들이 토라를 가르쳤다. 이는 신명기 31장 9절과 33장 10절 등에서 확인이 된다(신명기에서 레위인과 제사장은 동일시된다). 그러나 에스라의 경우에 있어서 특별한 점은 율법(토라)을 연구(다라쉬-여기서 미드라쉬가 나왔다)하여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에스라 이전에도 율법을 가르치는 레위인 혹은 제사장들이 있었고,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혼을 내는 예언자들이 있었다.그러나 포로기 이후 제2성전 시대가 되면서 율법을 지켜야 할 실제 삶의 정황이 많이 달라지면서, 율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지를 몰라서 지키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게 된다. 에스라는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백성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율법을 연구”하였고, 연구(해석)된 율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의 가르침이 바탕이 되어 경건한 사람들(소위 “하씨딤”)이 나왔다. 프톨레미 왕조 중.후반기(주전 3세기 중.후반)에는 경제적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많은 평신도 서기관들이 등장하게 된다.이러한 하씨딤과 평신도 서기관들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종파가 바리새파이다. 주전 167년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의 유대교 말살 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막카비 혁명에 이들 하씨딤과 서기관들이 가담하면서 이들은 독자적인 종파를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기들 이전의 조상들의 율법 해석들(가르침)을 ‘구전 율법’으로 중시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문 율법을 주실 때, 성문 율법의 이면에 ‘구전 율법’을 숨겨 두셨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들의 해석은 구전 율법을 낳은 모태가 되었다. 이들의 해석의 중점이 성문 율법 혹은 (구약) 성경의 이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었으므로, 이들은 자연히 성문 율법 혹은 (구약) 성경에 문자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신앙 내용(사상)도 주장하게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육체의 부활과 내세 사상이며, 이런 사상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파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였다.(정태홍 목사의 해석)
현용수 박사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모르겠지으나,예수님께서도 예수님 오시기 이전에 쓰여진 탈무드를 인정하셨다고 주장합니다.그러나 이 글에서 보듯이, 주전 167년부터 탈무드는 변질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그들은 육체의 부활과 내세사상를 부정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과 매우 격렬하게 논쟁하신 부분입니다.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인정하셨다고 하면 성경과는 맞지 않습니다.주후 70년후 열심당파는 물론 사두개파와 에세네파도 사라지면서 바리새파는 오늘날 랍비 유대교의 뿌리가 되었다. 이들은 야브네에서 무너진 유대교를 재건하고 주후 200년경에는 그간의 구전 율법들을 정리하여 미쉬나를 편집하였고, 주후 400년경에는 미쉬나에 해석(게마라)을 더하여 예루살렘(팔레스틴) 탈무드를, 그리고 이들 이스라엘 땅의 바리새파 후예들(랍비들)의 영향으로 바벨론 공동체에서는 주후 500년경에는 바벨론 탈무드를 편집하였다.서기관과 바리새파는 랍비 유대교의 뿌리인 동시에 기독교의 사상적 모판이기도 하다. 이들은 비록 복음서에서 예수님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비판의 동기에 대해서 새로이 조명되어야 하는 동시에, 이들에 대한 연구는 기독교의 뿌리와 배경 연구를 위해서 그리고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를 위해서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자료출처 http://cafe.daum.net/mylovegalilee/79zr/162?docid=1vzg79zr16220081213080816)
(정태홍 목사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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