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물결'성품운동"2_성품운동이 과연 '성령운동'인가?
제4의 물결'성품운동"2_성품운동이 과연 '성령운동'인가?
자료출처 기독교보 955호 2010년 10월 23일 토요일자 신문 19면)
(기사에 나오는 이 목사는 이동원 목사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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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품이 기독교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 왜 의미가 있는가?
이 목사는 그 이유를 첫째로 성품운동은 성령운동이라고 했다.
이 시대의 괄목할만한 운동 중에 하나가 성령운동을 들지만 신학자는 제3의 물결운동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일반세상에서는 제3의 물결을 앨빈토플러가 농경사회에서 지식사회의 의미로 사용했지만 우리시대 성령운동이야말로 새롱누 물결운동이다. 그것은 은사운동을 넘어서 잔 윈버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성령운동이 능력지향적 운동을 전했다. '파워'라는 말이 등장했고, 전 세계는 이 영향을 받았다. 성령운동의 진원지가 한국교회이기도했다는 이 목사는 그러나 성령운동은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령운동하는 사람이 예의바르고 얌전하고 착한 이미지가 얼른 안떠오르는 것은 역기능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성령운동의 반성이 다시 일어나면서 성령운동은 은사만 지향하고 열매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성령운동은 현상만 지향했다. 현상은 은사이고 유익한 것도 사실이지만 성령운동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초가 성령의 열매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령은사는 인격지향적인 것이며, 성령의 열매를 기억해야 한다는 이 목사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희락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추성 온유 절제, 이 성령의 9가지 열매라고 한다. 히랍어 원문에서는 열매는 단수이며 성령의 열매는 한 인격을 지향하는 것이다. 단일 인격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이 목사는 9가지 성령 열매는 한 인격 안에 들어가야할 성품이라고 주장했다. 이 한 인격 성령의 열매는 누구의 인격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말 온유하셨던 분이며, 스스로도 이렇게 선포하셨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사랑이 먼저 강조됐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으로 시작된다는 이 목사는 요한복음 15장은 열매장이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열매니"우리가 만들어내야할 것으로 제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열매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의 순서상의 강조와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성령운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방향은 인격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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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운동이 과연 '성령운동'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성품운동은 비성경적인 운동이다.
왜 비성경적인가? 성품운동은 마치 인디아나존스의 영화에 나오는 '성배'와 같다.
'성배'를 차지해서 마시는 사람이 '영생'을 누린다.
그럼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없는 영생이다. 결과만 있다.
그런 것을 원하는 자들은 악한 세력들이다는 것을 세상 영화도 말한다.
(물론 인디아나존스의 영화는 추천할 영화가 아니다.)
성품운동이 성령운동이라 주장하는 자들은 성배를 차지하려고 하는 자들과 다를바가 없다.
기독교보가 이런 글을 싫어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하는지 의문스럽다.
과연 이동원 목사가 한국교계와 고신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로 인해 한국교회는 썩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 나오듯이, '잔 윔버'를 언급하고 있다.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는 그들 세력과 무관하지 않다.
교단이 빈야드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글을 싣는 기자의 저의가 궁금하다.
소위 유명한 목사가 하는 '운동'(?)은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잔 윔버'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인가?
이동원 목사가 하는 말을 보라.
"성령운동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초가 성령의 열매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령운동의 기초가 성령의 열매라?
과연 그런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운동의 기초가 성령의 열매란 말인가?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성령님께서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저런 류의 사람들은 운동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할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운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몰아가지 않았다.
성경은 성령의 오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기초가 무엇인가?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초다. 그러면 성품은 무엇인가? 그 결과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시며 그 언약에 신실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만들어내시는 그 결과다.
또한 이동원 목사는 부러 성경을 뜯어 고친다.
"요한복음 15장은 열매장이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열매니"우리가 만들어내야할 것으로 제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열매임을 강조했다."
왜 목사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 고치는가?
성경에는 어떻게 나오는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성경은 절대로 우리는 곧바로 열매로 가도록 말씀하시지 않는다.
자기가 무슨 권위로 예수님의 말씀을 뜯어 고치는가?
제4의 물결 성품운동은 성경을 뜯어고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쓴 기자의 의도와 생각에 대해서 심히 궁금하게 하는 것은
이동원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다.
"이 목사는 성령운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방향은 인격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령운동은 무슨 운동인가?
앞에 글에서 언급한 '잔 윔버'의 성령운동이다.
그것을 계속하라고?
교단에서는 이단이라고 하고 교단신문에서는 그걸 계속하라고 하고?
그러면 성도들은 어쩌라는 말인가?
이런 것은 완전히 전시용으로 새롭게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성품교육은 절대로 성령운동이 될 수가 없다.
왜 안되는가?
좋은나무 성품학교는 세상의 심리학을 교회에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왜 심리학을 가르치는가?
그것은 성경만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누가 포기했는가?
목사가 포기했다.
성도가 포기했다.
성품교육은 교회를 죽인다!!!
반드시 교회를 죽인다!!!
교회는 성품교육을 하지 말고
예수님을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성품이 나온다.
썩은 세상 심리학으로 가르치면 세상성품이 나온다.
소위 유명하다는 자들을 따라가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교회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제4의 물결 성품운동은 이 땅에 희망을 심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심는 것이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자료출처 기독교보 955호 2010년 10월 23일 토요일자 신문 19면)
(기사에 나오는 이 목사는 이동원 목사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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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품이 기독교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 왜 의미가 있는가?
이 목사는 그 이유를 첫째로 성품운동은 성령운동이라고 했다.
이 시대의 괄목할만한 운동 중에 하나가 성령운동을 들지만 신학자는 제3의 물결운동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일반세상에서는 제3의 물결을 앨빈토플러가 농경사회에서 지식사회의 의미로 사용했지만 우리시대 성령운동이야말로 새롱누 물결운동이다. 그것은 은사운동을 넘어서 잔 윈버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성령운동이 능력지향적 운동을 전했다. '파워'라는 말이 등장했고, 전 세계는 이 영향을 받았다. 성령운동의 진원지가 한국교회이기도했다는 이 목사는 그러나 성령운동은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령운동하는 사람이 예의바르고 얌전하고 착한 이미지가 얼른 안떠오르는 것은 역기능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성령운동의 반성이 다시 일어나면서 성령운동은 은사만 지향하고 열매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성령운동은 현상만 지향했다. 현상은 은사이고 유익한 것도 사실이지만 성령운동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초가 성령의 열매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령은사는 인격지향적인 것이며, 성령의 열매를 기억해야 한다는 이 목사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희락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추성 온유 절제, 이 성령의 9가지 열매라고 한다. 히랍어 원문에서는 열매는 단수이며 성령의 열매는 한 인격을 지향하는 것이다. 단일 인격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이 목사는 9가지 성령 열매는 한 인격 안에 들어가야할 성품이라고 주장했다. 이 한 인격 성령의 열매는 누구의 인격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말 온유하셨던 분이며, 스스로도 이렇게 선포하셨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사랑이 먼저 강조됐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으로 시작된다는 이 목사는 요한복음 15장은 열매장이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열매니"우리가 만들어내야할 것으로 제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열매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의 순서상의 강조와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성령운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방향은 인격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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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운동이 과연 '성령운동'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성품운동은 비성경적인 운동이다.
왜 비성경적인가? 성품운동은 마치 인디아나존스의 영화에 나오는 '성배'와 같다.
'성배'를 차지해서 마시는 사람이 '영생'을 누린다.
그럼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없는 영생이다. 결과만 있다.
그런 것을 원하는 자들은 악한 세력들이다는 것을 세상 영화도 말한다.
(물론 인디아나존스의 영화는 추천할 영화가 아니다.)
성품운동이 성령운동이라 주장하는 자들은 성배를 차지하려고 하는 자들과 다를바가 없다.
기독교보가 이런 글을 싫어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하는지 의문스럽다.
과연 이동원 목사가 한국교계와 고신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로 인해 한국교회는 썩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 나오듯이, '잔 윔버'를 언급하고 있다.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는 그들 세력과 무관하지 않다.
교단이 빈야드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글을 싣는 기자의 저의가 궁금하다.
소위 유명한 목사가 하는 '운동'(?)은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잔 윔버'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인가?
이동원 목사가 하는 말을 보라.
"성령운동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초가 성령의 열매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령운동의 기초가 성령의 열매라?
과연 그런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운동의 기초가 성령의 열매란 말인가?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성령님께서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저런 류의 사람들은 운동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할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운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몰아가지 않았다.
성경은 성령의 오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기초가 무엇인가?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초다. 그러면 성품은 무엇인가? 그 결과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시며 그 언약에 신실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만들어내시는 그 결과다.
또한 이동원 목사는 부러 성경을 뜯어 고친다.
"요한복음 15장은 열매장이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열매니"우리가 만들어내야할 것으로 제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열매임을 강조했다."
왜 목사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 고치는가?
성경에는 어떻게 나오는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성경은 절대로 우리는 곧바로 열매로 가도록 말씀하시지 않는다.
자기가 무슨 권위로 예수님의 말씀을 뜯어 고치는가?
제4의 물결 성품운동은 성경을 뜯어고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쓴 기자의 의도와 생각에 대해서 심히 궁금하게 하는 것은
이동원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다.
"이 목사는 성령운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방향은 인격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령운동은 무슨 운동인가?
앞에 글에서 언급한 '잔 윔버'의 성령운동이다.
그것을 계속하라고?
교단에서는 이단이라고 하고 교단신문에서는 그걸 계속하라고 하고?
그러면 성도들은 어쩌라는 말인가?
이런 것은 완전히 전시용으로 새롭게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성품교육은 절대로 성령운동이 될 수가 없다.
왜 안되는가?
좋은나무 성품학교는 세상의 심리학을 교회에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왜 심리학을 가르치는가?
그것은 성경만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누가 포기했는가?
목사가 포기했다.
성도가 포기했다.
성품교육은 교회를 죽인다!!!
반드시 교회를 죽인다!!!
교회는 성품교육을 하지 말고
예수님을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성품이 나온다.
썩은 세상 심리학으로 가르치면 세상성품이 나온다.
소위 유명하다는 자들을 따라가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교회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제4의 물결 성품운동은 이 땅에 희망을 심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심는 것이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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