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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이만열은 누구인가?

"'성경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이만열은 누구인가?

'성경 기독교'로 돌아가자?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실상은 어떨까요?
우선 기사를 읽어 보십시오. 


'성경 기독교'로 돌아가자
이만열 교수 개혁연대 봄 사경회서 "한국교회 성장 토대는 성경 보급과 사경회 운동"
데스크 승인 2013.04.19  16:15:23 임안섭 (lifeharmony)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교회개혁실천연대가 4월 18일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개최한 봄 사경회에서 이만열 교수는 '성경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한국 기독교 역사를 전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사경회 운동은 1903년과 1907년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을 가능하게 했고 일제 치하에서도 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인 성경 공부가 한국교회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박종운·방인성·백종국)가 4월 18일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개최한 봄 사경회에서 이만열 명예교수(숙명여대 한국사학과·개혁연대 고문)가 전한 말이다. '성경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제로 강의한 이 교수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전했다. 이 교수는 1900년대 초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경회에 온 신자들처럼 말씀으로 돌아가 한국교회 개혁에 동참할 것을 청중에게 권했다.

   
▲ 이만열 교수는 1900년대 초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경회에 온 신자들처럼 말씀으로 돌아가 한국교회 개혁에 동참할 것을 청중에게 권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개혁연대 회원·집행위원들을 비롯한 70여 명의 참석자는 이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이 교수는 먼저 성경이 한국에 전래한 역사를 훑었다.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가 한국에 오기 전(1885년)에 이미 성경이 들어왔다고 했다. 한글로 번역된 신약성경은 만주에서 활동했던 로스 선교사가 1870년대 후반~1880년대 번역한 것과 일본에 있었던 한국인 이수정 씨가 1880년대 초에 펴낸 것이 있었다. 이 교수는 한글 성경이 이미 188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1900년대 초 한글 신·구약성경을 만들면서 더 널리 보급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성장하게 된 중요 배경으로 성경 보급과 사경회 운동을 꼽았다. 성경 보급의 주역은 권서(勸書)였다. 권서는 1900년대 초 성경을 판매·보급했던 사람들로 전국을 다니며 성경을 반포했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성경 공부 모임인 사경회가 부흥할 수 있었다. 1908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 구역에서는 800여 회의 사경회에 5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했다.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 300리를 걸어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손때 묻고 닳은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 이 교수는 믿음의 선배들처럼 말씀으로 돌아가 한국교회를 갱신하는 데 참석자들이 함께하기를 바랐다.

이번 봄 사경회는 한국교회의 살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이 아닌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 개혁연대 봄 사경회에 참석한 70여 명의 청중은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이 아닌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아래는 이만열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요약·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이 교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사경회에서 '성경 기독교와 한국교회 성장'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성경 기독교'라고 한 것은 선교사들이 한국의 기독교를 두고 'Bible Christianity'라고 언급한 것을 단순하게 번역해서 이른 말이다. 강의에서는 한국이 성경과 접촉하게 된 데서부터 초기 성경 번역과 그 결과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아가 성경의 보급과 성경 공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기서는 성경 보급과 관련, 그 주역이었던 권서(勸書)와 성경 공부 모임인 사경회(査經會)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한국에서 성경이 보급된 상황을 보면, 대영성서공회(BFBS) 한국 지부는 1896∼1940년 총 2062만여 권(매년 45만 8255권)을 반포했고, 미국성서공회(ABS) 한국 지부는 1901∼1919년 총 266만 권(매년 14만 455권)을 반포했다. 성경이 보급됨으로 그것을 읽고 암송했으며, 성경 말씀은 생기와 영감이 없는 한국인들의 뼈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들을 새로운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들 성경 판매와 보급을 맡은 이들을 권서라고 했다. 이들은 '복음 짐(성경)'을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보급하고 복음의 내용을 전하기에 헌신했던 분들이다. 권서들의 노력으로 교도소와 병원, 나환자 수용소, 매춘굴, 도박판, 아편 소굴 그리고 궁궐과 가게 등 뚫고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들은 마치 수색대와 공병대처럼 활동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영국성서공회는 성경 보급의 약 85%를 차지했고, 미국성서공회는 약 98%를 보급했다. 한말 일제하의 성경의 반포는 권서들의 '복음 짐'과 '부르튼 발'에 의해 대부분 이뤄졌다. 한국의 권서들이야말로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바로 그 아름다운 발이었다(사 52:7). 한말 일제하 한국의 복음화에 기여한 공로는 이들 권서들에게 마땅히 돌려야 한다.

성경이 광범하게 반포되자 한국의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성경을 읽기 위해서 '국문 공부'운동이 일어났다. 초대교회 자료에서 예수 믿고 난 뒤에 국문을 깨쳤다고 하는 기록은 자주 보인다. 또 성경을 읽게 됨으로 성경 공부 모임인 '사경회'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경회 운동은 1903년과 1907년에 일어난 한국교회 부흥 운동을 가능하게 했고, 일제하에서도 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왔으며, 해방 후도 한국교회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사경회는 초기에 선교사와 그 부인들, 한국인 조사와 장로들 및 권서들이 담당했으나, 뒤로 가면 주로 한국인 지도자들이 부흥회를 할 때 사경회를 겸했다. 사경회가 어느 정도로 성행했는가 하면, 1908년 미 북장로교 선교 구역에서만 800여 회의 사경회가 열렸고 거기에 5만여 명이 참석했으며 신자들의 60% 정도가 매년 사경회에 참가했다. 1917년에는 겨울마다 12만 5000명이 성경 공부에 참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20세기 초 사경회에 참석한 신자들의 열심에 관한 감동적인 기사들이 많다. 1901년 평양에서 개최된 여성 사경회에는 압록강 가의 삭주 창성 지방에서 머리와 등에 필요한 물품을 갖고 300리 길을 걸어왔고, 그 이듬해 400여 명이나 모인 평양의 '사나이' 사경회에는 멀리 전라도의 목포 무안 지방에서 왔다. 1909년 10일간의 성경 공부를 위해 한 자매는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 300마일을 걸어왔고, 다른 이들은 거기에다 아이들까지 업고 왔는데, 그들은 손때 묻고 닳은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

신앙의 자유가 제약당하던 한말 일제 치하의 상황에서 줄기차게 계속된 사경회는 세계 교회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한국교회 성장의 요인을 해명해 준다. 이는 사도행전 기자가 초대교회의 성장·발전의 핵심적인 요인을 '말씀의 흥왕(행 6;7, 12;24, 19;20)'에서 찾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 교회의 성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던 선교사들은 사경회의 열심이 한국교회의 성장 요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마펫트(S. A. Moffett, 마포삼열)는 복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성경은 한국에서는 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이 분명하다고 했고, 스코틀란드성서공회 1930년도 연례 보고서에서는 "한국교회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관찰한 사람들의 확신이다"고 언급했다.

한국교회가 점차 쇠락하는 상황에서,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 말씀의 흥왕을 다시 체험했으면 한다.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외우게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솔선해서 먼저 외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초대교회의 선배들이 손때 묻고 닳은 성경책을 남겼듯이 우리도 자손들에게 손때 묻고 닳은 성경을 남기면서 "너희들도 나와 같이 후손들에게 손때 묻고 닳은 성경을 남겨 주렴" 하고 부탁하는 운동을 일으키자. 열흘 내외의 성경 공부를 위해 얼음과 눈 덮인 300리 산길을 무릅쓴 믿음의 어머니들처럼, 평양에서 모이는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 무안에서 험난한 길을 떠난 믿음의 아버지들처럼, 또 성경 공부를 위해 300마일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쌀자루를 이고 거기에다 아이들까지 들쳐 업고 길을 떠난 믿음의 조상들처럼 이제 한국교회도 '성경 기독교'의 열심과 영성을 회복하는 각오를 새롭게 해 보자.
(자료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3974)


이만열은 교회개혁실천연대의 고문입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조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조직에 나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대략 알아두는 것이 전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제 자료를 통해서 이만열이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조갑제 닷컴에서 이만열에 대한 자료를 퍼왔습니다.


북한 가짜교회 감싸는 이만열 前국사편찬위원장
김일성 부자를 神으로 만들어 놓은 사악한 북한정권에 대해선 한 없이 너그럽고, 한국의 교회와 정부에 대해선 더 없이 잔인하다.
金成昱     
이만열 前국사편찬위원장(사진)은 북한의 봉수·칠골교회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李 前위원장의 바램(?)과는 다르게, 북한은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많이 탄압하는 체제이다. “하나님” “예수님”을 입에만 올려도 공개처형하거나 수용소로 끌고 가는 곳이다. 
  
  북한을 지배하는 주체사상은 김일성·김정일을 神(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김일성·김정일이 영생한다며 수 만 개의 永生塔(영생탑)을 세워놓고 김일성 동상을 3만8천여 개나 세워 놓고 우상화·신격화한다. 
  
  88년 세워진 봉수·칠골교회는 “조선사람 하나님을 믿자”며 주체사상을 더 악랄한 소위 주체신학으로 가공하여 세워졌다. 이곳의 소위 목사들은 “김일성이 곧 하나님(···)김일성을 더 잘 믿고 더 잘 따라야 한다”고 고백한다. 
  
  황당한 것은 한국 교회 내 소위 改革(개혁)을 말하는 이들의 ‘외눈박이 시각’이다. 주체사상-주체신학, 김일성 부자를 신으로 만들어 놓은 사악한 북한정권에 대해선 한 없이 너그럽고, 한국의 교회와 정부에 대해선 더 없이 잔인하다. 가짜교회인 봉수·칠골교회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이만열 前위원장은 한 세미나에서 “남북교회 진위 논쟁은 승자 없는 게임”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신앙을 입으로 시인하는 이에게 ‘당신은 가짜’라고 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와 종교의 자유를 바라는 진정한 태도가 아니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강영섭 위원장과 손효숙 목사(봉수교회)·장승복 목사(칠골교회) 등은 남측 인사들 앞에서 그들의 신앙을 입으로 시인한다. 입으로 시인하는 이상 신앙은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2005년 10월28일 ‘한민족열린포럼’/ 출처 : 뉴스앤조이)”
  
  李 前위원장은 “입으로 시인하는 이상 신앙은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라며 북한 가짜교회 비판을 피하지만, 한국 교회에 대해선 가혹하다. “형식상 진짜교회의 모습을 하고도 교회를 세습하고 재산 때문에 폭력배를 예배당에 불러들이기까지 하는 남쪽 교회 모습” 운운하며 “북쪽이 남쪽 교회에 대해 진위 논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출처: 上同)”이라고 비난한다. 자유가 없는 북한과 자유가 있는 남한을 같게 보는 지독한 兩非論(양비론)이다. 
   
  李 前위원장 지적처럼 한국교회가 부끄러운 모습일지 모르지만, 700만 민족의 학살자인 김일성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봉수교회와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세계적 부흥과 선교의 실례인 한국교회를 김일성 우상숭배와 동일시하는 것은 북한정권을 감싸기 위한 억지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교회개혁을 명분으로 勢(세)를 확장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의 단면이다. 
  
  李 前위원장의 북한 가짜교회 옹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글을 통해 북한 가짜교회와 한국 NCCK 등과의 회합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교회의 만남”으로 격찬한다. 
  
  李 前위원장은 이 같은 회합을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민족통일운동사에 큰 의의를 남겼다고 할 것이다”라고 평가하며 그 사례로 평화협정 체결과 미군철수 등을 결의한 1990년 회의를 예로 들기도 한다. 
  
  아래는 ‘2005년 성서한국특강’강연자료로 이 전위원장의 작성한 ‘한국 기독교인의 통일운동(Reunification Movement of Korean Christians)’ 논문 중 일부이다. 
   
  《3. 남북교회의 만남 - 글리온 회의 
  
  남북교회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2년마다 세 차례에 걸쳐 스위스 글리온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를 글리온 회의라 하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제2차 글리온 회의’는, 1988년 2월 서울에서 K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과 4월 인천에서 ‘세계기독교 한반도 평화협의회’가 있은 후, 11월 23일-25일까지 역시 글리온에서 <제2차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협의회>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예배와 교제, 성경연구와 성만찬을 같이 하고 평화통일의 여러 선교적 과제들을 토의하였다. 회의는 “NCC평화통일선언을 지지하고 1995년을 통일의 희년으로 함께 선포했으며, 매년 8󈽋직전 주일을 ‘평화통일주일’로 정하고 ‘공동기도문’을 채택” 했다.(···) 
  
  ‘제2차글리온회의’ 후, 그 이듬해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교회의 만남과 세계교회와의 유대는 계속되었다. 남북교회는 1989년 4월 23일-26일, 미국NCC가 주최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워싱톤 협의회’에서 그리고 같은 해 9월 29일-30일에는 일본 NCC가 주최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회의 사명 협의회’에서 다시 만났다. (···) 
  
  1990년 12월 2일-4일, ‘제3차 글리온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모임은 “이제까지 있었던 남북 기독자의 만남 중에서 가장 전진된 회의였고 그 내용도 풍부하고 구체적”이었다. 남북교회는 상호방문, 남북당국간 상호불가침선언 채택 촉구, 사업추진 실무기구 설치 등한 9개항의 ‘희년 5개년 공동작업계획’에 합의했다.
  
  이러한 거듭된 만남은 1995년을 통일을 위한 희년으로 설정하고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민족통일운동사에 큰 의의를 남겼다고 할 것이다.(···) 
   
  5-3. 계속되는 남북교회의 만남: 1990년 7월 10일부터 13일까지 일본의 동경에서는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교인 동경회의’가 열려 ‘평화통일 희년을 향한 동경회의 합의문’을 채택했다. 그 내용은 쌍방의 화해와 공존의 자세 견지, 교류 확대를 위한 제반 장애 철폐, 군축과 평화협정으로의 전회, 미군철수 및 핵무기 철거, 불가침선언 채택, 선교협력을 위한 남북교회의 왕래 노력 등이다.(···) 
  
  1991년 3월 14일부터 19일까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의 평화통일에 대한 전망’이라는 주제로 남북교회학자 심포지움이 열렸다. 1991년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미국 뉴욕 스토니 포인트에서는 ‘북미 기독학자회 제 25차 연례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북에서는 고기준․이성봉․최옥회․김혜숙․한시해․박승덕․김구식․로철수가, 남에서는 지명관․박순경․송건호․노명식․한완상․변홍규․이만열 등이 참석하여, <새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우리의 사명>이란 주제로 활발한 의견교환과 토론을 벌였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역대하 19:2)"
  (자료출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0900&C_CC=AZ)


 채널A홈페이지에서 퍼온 자료입니다. 

從北이 끝까지 없다고 우기는 자들도 있다.
글쓴이 이순주 게시일 2013.04.19 07:55:07 조회수 97

從北이 끝까지 없다고 우기는 자들도 있다. 소위 진보세력에 대한 비방이며 북한정권 역시 화해·협력·통일의 파트너라고 강변한다. 공산주의 정권, 주체사상 체제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미래의 통일된 체제가 무엇인지는 함구한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대 명예교수도 그런 류다. 지난 1월21일 유코리아라는 인터넷매체에 “종북 타령 그만하고, 공북(共北)·화북(和北)으로 가자”는 이만열 前위원장의 글이 올랐다.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3)

이만열 前위원장은 “종북은 대북 햇빛 정책 이후에 나타나 주로 진보적인 세력을 엮어 공격하는 ‘테러적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억울해한다. 이어 “‘화북(和北)’ ‘공북(共北)’을 거쳐 ‘화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며 “‘공북(共北)’은 북과의 공존을, ‘화북(和北)’은 북과의 평화를 모색하는 길이다. 공존하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것, 이것이 평화통일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종북 타령 그만하고,공북하자"는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대긍모-대한민국 긍정파들의 모임) 


이만열은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함석헌학회 학회장이신 이만열 선생은 ‘천안함사건’을 언급하면서 “거짓은 나라를 위하는 경우에라도 말해서는 안 된다”(〈진실과 국익〉) “미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꾸며가며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의 전직대통령을 평화기도회에 초청한 기독교단체는 정신이 있는 건지 아닌지〈부시와 ‘평화기도회’가 어울릴 수 있을까.〉라고 힐란하였다. 그리고 그 공동선의 중심사상은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라고 했다. 
(자료출처 http://blog.ohmynews.com/hamsh01313/tag/%EC%9D%B4%EB%A7%8C%EC%97%B4)


여기서 함석헌 학회 학회장이라고 나오는데,
함석헌은 누구일까요? 그는 퀘이커이단입니다. 
그런 퀘이커이단의 학회장이 이만열입니다. 
이만열이가 말하는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퀘이커이단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참고로, 퀘이커에 대한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퀘이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창설자 조지 폭스
퀘이커(Quaker)는 17세기에 조지 폭스가 창시한 개신교의 교파이다. 친우회(형제들의 단체, Society of Friends)란 뜻을 가지며,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친우회'라고 칭한다. 퀘이커라는 이름은 하느님(하나님) 앞에서 떤다는 조지 폭스의 말에서 유래했다. 1650년대에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제창한 명상운동으로 시작하였다. 퀘이커는 영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았으나, 퀘이커 신도 윌리엄 펜이 불하받은 북아메리카 식민지 영토에 도시(현 미국 펜실베이니아)를 세움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허용받았다.

명칭
퀘이커란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친우회'라고 칭했다. 창시자 조지 폭스의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떤다"는 말에 따라 퀘이커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종교친우회'라고 명명하고 있다.

신앙
퀘이커 교도들은 청교도와는 달리 칼빈주의의 예정설과 원죄 개념을 부인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기르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되고, 그렇게 신성만 기른다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1] :99

예배
퀘이커의 예배특징은 침묵의 예배로써, 퀘이커 각자는 침묵을 통해 내면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장소는 특정한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며, 예배를 이끌어가는 별도의 성직자나 목사를 두지 않는다.

아메리카의 퀘이커
영국에서 인기가 없었던 퀘이커 교도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그들의 피난처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극히 일부는 뉴잉글랜드나 캐롤라이나로 이주했으나 대부분의 퀘이커 교도들은 자기들만의 식민지를 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경멸섞인 눈초리를 받아온 종파였기 때문에 궁정에서 영향력 있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왕으로부터 식민지 건설에 필요한 특허장을 얻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제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퀘이커 교도이다. [1]:99

한국의 퀘이커
대한민국의 유명한 퀘이커로는 함석헌 선생,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박성준 교수(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 등이 있다.
(자료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80%98%EC%9D%B4%EC%BB%A4)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퀘이커는 이단입니다!!!

이 이만열을 누가 높여주고 있을까요? 바로 김동호 목사입니다.
어떤 블로그에서 퍼온 자료와 김동호 목사의 페이스북에서 퍼온 자료를 읽어 보십시오.

김동호 목사님이 올린 이 글에 대한 견해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기독교 이런 식으로 하다가 어디까지 내려갈까 저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이만열 교수의 '반공' 부정. '이승만' 폄훼, '종북' 용인...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공산주의에 저항하고 교회를 지켜왔는지 안다면 이렇게는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용공화, 기독교 종북화가 어디까지 가고,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가 더욱 숨죽이며 바라보게 되겠지요. 이런 상황은 어떻게 저항해 나가야 되는 건가요? 김동호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 부탁 드립니다.
 이만열 장로님이 '신사참배'에 대한 연구한다고 김동호 목사님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모금운동을 하시는 군요. 민족을 그렇게 생각하시는 두 분에게 몇 가지만 여쭤보고 싶습니다. 
 
1. 굶어죽고 맞아죽고 팔려다니는 저 사람들은 우리 민족 아닙니까?

2. 김일성 주체사상도 사상이고 종교니 인정하고 기독교인도 김일성 동상에 절하라는 사람들에게는 한 치의 의분도 못 느끼면서 '신사참배' 연구한다구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자발적이고 굴욕적인 신사참배는 어떻게 하구요?

3. 김동호 목사님. 무슨 이유로 이만열 장로님이 기독교계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십니까? 공산주의에 저항하고, 눈물과 고통으로 말없이 교회 만들어온 이름 없는 믿음의 선배들을 존경해야지요? 반공 때문에 기독교 망쳤다는 분이 어떤 이유로 존경스럽습니까? 

4. 김일성 김정일에게는 왜 그렇게 너그러우면서, 공산주의로 부터 이 나라를 지킨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왜 그리 못 마땅한가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섭리적 현실에 까막눈인 것은 아닌가요? 

5. 두 분께 저는 에스겔서 13장을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후원금보다 훨씬 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via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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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목사 페북 2013. 2. 28. 목요일.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오늘 이 글을 꼼꼼히 한 번 읽어 봐 주세요.>

1.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우리 한국 기독교의 어른 중 한 분은 이만열 장로님입니다. 장로님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아주 존경받는 우리나라의 역사학자이십니다.

2. 이 장로님께서 어제 제 사무실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후원 부탁을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장로님은 '신사참배 자료집 편찬'을 하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3. 장로님이 작성해 오신 청원서의 내용을 조금 길 수 있지만 이곳에 옮겨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읽으시면 저와 같은 마음이 드실 겁니다.

4.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드립니다. 글을 올리는 것은 신사참배 문제 자료집 간행을 위해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5. 일제 말기 신사참배 강요로 한국 교회가 극심한 고통을 당했고 수 많은 순교자가 배출 되었습니다. 그런 빛나는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그 믿음의 후예들은, 선교사들의 보고를 중심으로 한 영문자료집 2권을 간행한 것 외에,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집을 간행하지 못했습니다.

6. 한국 교회의 무딘 역사 의식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7. 이에 저희 기념사업회에서는 전문가의 협조를 받아 국가기록원과 일제 때의 신문 잡지 등의 기록을 찾아, 3개년 계획으로 자료집 여러 권을 간행하고자 합니다.

8. 이 작업에 소요되는 재정은 출판비 포함 약 5천 만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9. 앞서 간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리고 신사참배 반대의 역사의식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적극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0. 장로님은 제가 그 5천 만원을 다 마련해 주면 여기서 끝내고 아니면 몇 군데를 더 다녀 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 죄송하지만 그 5천 만원을 제가 다 준비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준비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2. 장로님이 돌아가신 후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연세도 많으신 장로님을 이곳 저곳 후원을 받기 위하여 돌아다니시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 신사참배 문제 자료집 간행은 장로님이 책임지시고 그 비용 모금은 제가 대신 책임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 저는 제 페이스 북에 매일 글 올리는 것이 나름 새로운 제 목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facebook을 faithbook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이 공간은 faithbook church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들을 교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5. 여러분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벌써 여러번 이 공간에서 모금(저는 헌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도 했었습니다. 작년 1월에는 말라위 모기장 모금, 작년 3월에는 현대종교후원모금. 그리고 작년 6월에는 말라위 전기 끌어오기 모금, 그리고 9월에는 교회세습반대운동을 위한 모금이 있었습니다.

16. 평균 3개월에 한 번 꼴로 모금을 했는데 매번 친구 여러분들이 적극 참여해 주셔서 정말 보람있는 일들을 후원할 수 있었습니다.

17. 신사참배 반대로 수 많은 순교자를 내고 그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우리 자랑스러운 한국교회가 정작 신사참배 반대 자료집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는 것은 참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8. 우리 faithbook 교회가 그 책임을 감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있는 높은 뜻 연합선교회 이름으로 통장 하나를 어제 급히 만들었습니다. 통장 이름만 빌렸을 뿐 이 계좌로 모여지는 헌금은 모두 전액 페이스 북 교회 이름으로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20. 148-043169-01-367 기업은행 높은 뜻 연합선교회.

21. 장로님은 5천 만원이라고 하셨지만 3년 동안 작업을 하실 분량인데 그것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심껏 모아 전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22. 여러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 주세요. 전처럼 송금하신 후 '송금완료'라고 댓글 달아 주실래요? 이번 일이 끝난 후 그 동안 모든 모금과 활동에 대한 보고를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3. 이런 우리 한국교회 자랑스럽고도 역사적인 기록을 우리 페이스북 교회 친구들의 헌금으로 남길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참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24. 굿모닝 여러분.
[출처] 김동호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 부탁 드립니다. 무슨 이유로 이만열 장로님이 기독교계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십니까? 반공 때문에 기독교 망쳤다는 분이 어떤 이유로 존경스럽습니까? |작성자 비비크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cmmm&logNo=140182262206)



이만열은 키리졸브 훈련 중단을 외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왜 이들은 반대할까요? 조갑제 닷컴에서 퍼온 자료입니다.

"키리졸브 훈련 중단" 외치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
공의정치포럼(대표: 이만열, 홍정길), 성서한국(대표: 김명혁, 박종화, 손봉호, 이동원, 이만열, 이승장, 홍정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박은조, 백종국, 임성빈, 전재중) 등등
金成昱     
일부 기독교인들의 거짓 평화·가짜 평화 선동이 지나치다. 소위 한반도 평화 구호 아래 선악(善惡)도, 국가(國家)도 사라져 버린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인 지난 해 3월1일 공의정치포럼(대표: 이만열, 홍정길), 성서한국(공동대표: 이만열, 홍정길, 손봉호, 이동원, 김명혁, 박종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사장 : 홍정길, 공동대표: 박은조 外) 등 개신교 단체들은 韓美연합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었다(사진 참조).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기독교 3.1선언’으로 나온 이 성명은 “남북 간 대화의 문은 닫힌 지 오래며, 벼랑 끝까지 가 있는 북핵문제는 언제 풀릴지 요원하다”며 “서해(西海) 충돌의 단초가 된 키 리졸브 한미합동훈련이 봄철로 예정되어 있어 작년 연평도 포격사태와 같은 불행한 참화가 있을까 심히 염려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북한의 도발이 아닌 소위 “西海충돌”로 정의한 뒤 한 걸음 더 나가 “西海충돌의 단초가 된 키 리졸브 한미합동훈련”으로 표현, 마치 韓美연합군사훈련이 평화를 파괴한 것인 양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 “한국정부는 올해 더 큰 위기를 부를 키 리졸브 군사훈련 계획을 중단(中斷)하고, 일촉즉발의 위기가 상존하는 서해의 공동협력방안 등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또 “남북화해협력사업들은 하나같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포석으로 주목되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은 정체되었거나 중단되었으며,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던 남북이상가족상봉사업조차 중지되었다”며 “한국정부는 어떠한 이유로든 쌀을 포함한 대북(對北)인도적 지원을 멈추지 말고 즉각(卽刻), 그리고 대량(大量)으로 재개하여 남북화해의 기틀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요컨대 무조건-무작정-무차별적 대북(對北)지원, 즉 북한 정권과 체제를 도와야 한다는 요지였다. 
  
  성명은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화해와 협력이 동서독 통일의 밑바탕이 되었음을 기억할 때, 그동안 한국교회가 목숨 걸고 사랑과 관용의 길을 걷지 못했음을 참회하며,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서독의 對동독 지원은 동독 정권과 주민의 분리를 통한 ‘인권 개선’과 ‘개혁 개방’이 목표였다. 특히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대가를 받지 못하면 주지 않는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동독이 요구하기 전에는 주지 않는다’는 3불(不) 원칙을 지켰다. 
  
  돈을 주고 자유를 사 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절정판이었다. 62년 ~ 89년 사이 동독이 억류한 정치범 3만4천여 명과 가족 25만 명을 서독으로 데려와 자유를 누리게 했다(출처: 통일연구원 통계). 동독주민은 서독의 TV를 시청하고 왕래하며 통일을 꿈꿨다. 동독 영토 한 가운데 위치한 서베를린은 서독을 알리는 창구였다.
  
  한국의 종교인들은 “사랑과 관용의 길”을 말하며 수많은 금품을 주고도 정치범은커녕 납북자 한 명 데려오지 못했다. 개혁 개방도, 인권 개선도 이루지 못했다. “정치범수용소 해체” “공개처형 중단” “탈북자 영아살해·강제낙태” 등 북한정권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하지 않았다. 북한주민은 한국의 TV 시청은 물론 왕래도 못한다. 소위 인도적 지원이 북한정권을 맹목적으로 유지·연장·강화시켜왔을 뿐이다. 
  
  위의 성명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즉각 포기하라”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는 한 마디 언급이 있을 뿐 골자는 무조건-무작정-무차별적 대북(對北)지원이다. 그리고 “양측 정부는 남북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활성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전향적으로 나설 것”과 “대통령과 정부, 정치인과 정당들은 당리당략을 넘어 민족화해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큰 구상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 공산주의 정권·주체사상 체제, 악(惡)에 대한 비판도, 한국을 상대로 한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비판도 전무한 채 한국의 자위적 대응 중단만 촉구한다. 북한주민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것과 무관한 對北지원을 가련한 주민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가장(假裝)한다. 이 모든 미혹을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 사랑 실천”이라고 결론짓고 그렇지 않은 분별(分別)은 “동포에 대한 증오와 대결, 남북한 당국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자존심대결”로 몰아간다. 
  
  이 섬뜩한 성명을 발표한 개신교 단체는 아래와 같다. 
  
  개척자들(대표: 송강호), 공의정치포럼(대표: 이만열, 홍정길), 교회개혁실천연대(백종국, 오세택, 정은숙), 교회2.0목회자운동(실행위원장:신형진),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박은조, 백종국, 임성빈, 전재중), 기독청년아카데미(원장: 오세택), 담쟁이숲아카데미(대표: 김형일), 생명평화연대(대표: 최철호), 성서한국(공동대표: 김명혁, 박종화, 손봉호, 이동원, 이만열, 이승장, 홍정길), SFC사회변혁국, 평통기연(상임대표: 박종화, 손인웅, 이규학, 이영훈, 홍정길), 평화누리(공동대표: 고상환, 김애희), 하나누리(대표: 방인성), 희망정치시민연합(대표: 강경민, 백종국), 희년함께(공동대표: 김경호, 김영철, 방인성, 이대용, 이해학, 전강수, 허문영, 현재인) 이상 15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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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기독교 3.1선언 
  
  2012년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동북아 안보질서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해다. 
  
  2012년은 미국 대통령, 중국의 5세대 지도부, 러시아 대통령을 모두 새로 뽑게 되는 중요한 해다. 더욱이 우리 대한민국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 지도자를 뽑는 해이며, 북한도 작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이미 새로운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상황이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 변화는 각국이 냉전과 대치를 벗어나 한반도와 동북아 공동번영과 새로운 협력관계로 나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가능성일 뿐, 그러려면 남북 간 긴장완화와 평화의 분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반도 상황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다. 남북간 대화의 문은 닫힌 지 오래며, 벼랑 끝까지 가 있는 북핵문제는 언제 풀릴지 요원하다. 또한 서해 충돌의 단초가 된 키 리졸브 한미합동훈련이 봄철로 예정되어 있어 작년 연평도 포격사태와 같은 불행한 참화가 있을까 심히 염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화해협력사업들은 하나같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포석으로 주목되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은 정체되었거나 중단되었으며,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던 남북이상가족상봉사업조차 중지되었다. 또한 최악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쌀 등 식량과 생필품, 의약품 등의 인도적 지원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그러는 동안 힘없는 어린이와 노약자 등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북한은 더욱더 중국 정부에 종속되어 가고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우리는 분단된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 국민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 사랑을 실천해야 할 기독교인으로서 이 땅의 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 동포에 대한 증오와 대결, 남북한 당국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자존심대결로 인해 거둘 수 있는 것은 민족공멸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화해와 협력이 동서독 통일의 밑바탕이 되었음을 기억할 때, 그동안 한국교회가 목숨 걸고 사랑과 관용의 길을 걷지 못했음을 참회하며,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일제의 탄압과 압박 속에서 신음하던 민족과 백성을 살리기 위해 대동단결했던 3.1절을 맞아 우리는 부끄럽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한국정부는 올해 더 큰 위기를 부를 키 리졸브 군사훈련 계획을 중단하고, 일촉즉발의 위기가 상존하는 서해의 공동협력방안 등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 
  
  하나, 한국정부는 어떠한 이유로든 쌀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멈추지 말고 즉각, 그리고 대량으로 재개하여 남북화해의 기틀을 마련하고, 시름에 빠진 우리농민들의 고통도 덜어주어야 한다. 
  
  하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협정을 준수하여 진행 중인 핵개발을 동결, 폐기할 협상에 나서고,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즉각 포기하라. 또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고,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생존과 삶을 개선함으로써 인민을 위한 정부임을 스스로 증명하라. 
  
  하나, 양측 정부는 남북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활성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전향적으로 나서라. 
  
  하나, 총선과 대선을 앞둔 대통령과 정부, 정치인과 정당들은 당리당략을 넘어 민족화해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큰 구상과 실질적 정책들을 마련하여 국민 앞에 제시하고, 그 능력과 진정성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으라. 
  
  하나, 남북 7천만 겨레는 대동단결의 3.1정신으로 되돌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고, 한국교회 또한 거국적 결단의 현장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라. 
  
  2012년 3.1절 103주년을 맞아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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