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은혜받고 치유받았는데 왜 뭐라 하십니까?"
"내가 은혜받고 치유받았는데 왜 뭐라 하십니까?"
오늘날 현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절충주의복음에 대하여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거의 구분을 못합니다.
이단에 대하여서는 단호히 대처하려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교회성장이라는 미명하게 들어온 절충주의적인 복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옳은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로
오로지 자신에게 체험을 주었기 때문에 무작정 옳다고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내가 은혜받고 치유받았는데 왜 뭐라 하십니까?"라고 말입니다.
"나는 내적치유 세미나에 가서 변화 되엇습니다. 그런데 왜 내적치유를 뭐라 하십니까?"
"나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학교를 뭐라 하십니까?"
"나는 댄스치료를 통해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댄스치료를 뭐라하십니까?"
"나는 독서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를 통해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치료를 비판하십니까?"
그 외에도 수많은 방법을 통해 변화를 받고 치유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한 것은 무조건 옳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은혜받고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의 방법은 옳다고 말합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참된 복음' '진정한 복음'을 외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을 말하지만,
내가 은혜받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은 옳다고 말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는 반기독교적이며 샤마니즘과
뉴에이지에 물든 심리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적인 심리학의 영향이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를 죽이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반기독교적인 모습을 가장하고 마치 좋은성품을 가르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적치유로 가장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교회는 점점 심리학에 안방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런 심리치료의 기초를 제공하는 프로이트와 칼 융의 실체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신학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 심리학, 기독교상담학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심리학과 상담학이란 기독교와 세상심리학을 섞는 것입니다)
아예 상담대학원을 세워 놓고 심리학을 가르칩니다.
한 해에도 수 백 명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상담을 배우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 심리학이 그 상담학이 십자가로 구원한 성도들의 숨통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기에는 성경만으로는 안 된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심리학이 필요하다.'
이 말의 의미가 얼마나 반기독교적이고
십자가의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일인 줄 아십니까?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성경만으로 부족하다면
기독교는 죽었습니다!!!
성경만으로 안 되는 목사, 성경만으로 안 되는 성도는
이미 복음으로부터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은혜를 받았느냐', '내가 얼마나 변화가 되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변화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와 영성단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들도 삶이 변화되고 그들도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들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변화가 과연 성경적일까요?
입으로 십자가를 외치면서
같은 입으로 반기독교적인 심리학을 가르치는 일은 사라져야만 합니다.
불교에서나 로마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심리학과
똑같은 심리학을 가르치면서도
기독교라는 말만 살짝 덧씌우기를 한 교묘한 술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오늘날 현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절충주의복음에 대하여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거의 구분을 못합니다.
이단에 대하여서는 단호히 대처하려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교회성장이라는 미명하게 들어온 절충주의적인 복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옳은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로
오로지 자신에게 체험을 주었기 때문에 무작정 옳다고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내가 은혜받고 치유받았는데 왜 뭐라 하십니까?"라고 말입니다.
"나는 내적치유 세미나에 가서 변화 되엇습니다. 그런데 왜 내적치유를 뭐라 하십니까?"
"나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학교를 뭐라 하십니까?"
"나는 댄스치료를 통해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댄스치료를 뭐라하십니까?"
"나는 독서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를 통해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치료를 비판하십니까?"
그 외에도 수많은 방법을 통해 변화를 받고 치유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한 것은 무조건 옳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은혜받고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의 방법은 옳다고 말합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참된 복음' '진정한 복음'을 외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을 말하지만,
내가 은혜받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은 옳다고 말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는 반기독교적이며 샤마니즘과
뉴에이지에 물든 심리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적인 심리학의 영향이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를 죽이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반기독교적인 모습을 가장하고 마치 좋은성품을 가르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적치유로 가장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교회는 점점 심리학에 안방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런 심리치료의 기초를 제공하는 프로이트와 칼 융의 실체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신학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 심리학, 기독교상담학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심리학과 상담학이란 기독교와 세상심리학을 섞는 것입니다)
아예 상담대학원을 세워 놓고 심리학을 가르칩니다.
한 해에도 수 백 명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상담을 배우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 심리학이 그 상담학이 십자가로 구원한 성도들의 숨통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기에는 성경만으로는 안 된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심리학이 필요하다.'
이 말의 의미가 얼마나 반기독교적이고
십자가의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일인 줄 아십니까?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성경만으로 부족하다면
기독교는 죽었습니다!!!
성경만으로 안 되는 목사, 성경만으로 안 되는 성도는
이미 복음으로부터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은혜를 받았느냐', '내가 얼마나 변화가 되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변화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와 영성단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들도 삶이 변화되고 그들도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들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변화가 과연 성경적일까요?
입으로 십자가를 외치면서
같은 입으로 반기독교적인 심리학을 가르치는 일은 사라져야만 합니다.
불교에서나 로마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심리학과
똑같은 심리학을 가르치면서도
기독교라는 말만 살짝 덧씌우기를 한 교묘한 술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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