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수_쉐마인성교육_"신앙의 명가 이렇게 세워라(1)"의 서평에 대하여2
현용수_쉐마인성교육_"신앙의 명가 이렇게 세워라(1)"의 서평에 대하여2
고용수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과연 이런 말이 성경적으로 맞는 말일까요?
1) "가정성전"이라는 말이 옳은 것일까요?
신약을 사는 성도들에게 아직도 "성전"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맞을까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로 설명해야 합니다.
쉐마인성교육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성전"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신학이 아직도 구약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증합니다.
2) 구약의 지상명령과 신약의 지상명령이 다를까요?
이렇게 명령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과 언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지상명령과 신약의 지상명령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옛언약과 새언약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신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복음의 열정으로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고,
구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는 것은 모순일까요?
이런 오류는 2)번에서 나옵니다.
성경을 쉐마인성교육으로 풀어가려고 하는
편협적이고 일방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오류입니다.
그러면 성부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안 하셨으니
구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을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 우스운 논리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황당한 논리를 말하고 있는데도,
한국교회는 '놀토대안' '인성교육' 운운하며
순전한 목회자와 성도들은 따라가고 있습니다.
고용수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자료 인용 시작 ------------------------
신약시대 200년간 많은 주님의 사역자들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이유는
가정성전을 등한시하고 공동체 교회와 세계선교 사역에만 지나치게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결혼하여 가정이 있는 사역자가 신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한 복음의 열정은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아야 하지만,
구약의 지상명령적인 입장과 가정신학적인 입장에서 결혼을 하지 않아
가정이 없는 예수님이나 바울을 본받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가정이 있는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가정신학의 획기적인 발견이다.
(자료출처: 현용수, 쉐마, 신앙명가 이렇게 세워라 1, 2011, pp. 17-18)
--------------------- 자료 인용 끝 ------------------------
과연 이런 말이 성경적으로 맞는 말일까요?
1) "가정성전"이라는 말이 옳은 것일까요?
신약을 사는 성도들에게 아직도 "성전"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맞을까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로 설명해야 합니다.
쉐마인성교육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성전"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신학이 아직도 구약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증합니다.
2) 구약의 지상명령과 신약의 지상명령이 다를까요?
이렇게 명령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과 언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지상명령과 신약의 지상명령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옛언약과 새언약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신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복음의 열정으로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고,
구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는 것은 모순일까요?
이런 오류는 2)번에서 나옵니다.
성경을 쉐마인성교육으로 풀어가려고 하는
편협적이고 일방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오류입니다.
그러면 성부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안 하셨으니
구약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을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 우스운 논리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황당한 논리를 말하고 있는데도,
한국교회는 '놀토대안' '인성교육' 운운하며
순전한 목회자와 성도들은 따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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