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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생각

상담목회는 과연 새로운 새로운 목회패러다임인가?

상담목회는 과연 새로운 새로운 목회패러다임인가?

기독교보 1032호(2012년 6월 23일 토요일자 19면)에
상담목회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사 자료 인용 시작 ---------------------
상담목회, 상처에 귀 기울이며 시작
상담목회자협 등 4단체, 상담목회 필요성 모색

한국상담목회자협회(회장 강영만 목사)는 한국목회상담협회, 한국목회상담학회, 한국교회상담실연합회와 함께
지난 6월 11일 서울 연지동 연동교회당에서 '21세기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 상담목회'란 주제로 
제1회 상담목회 컨퍼런스를 열고 상담목회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모색했다.
손운산교수(이화여대)는 '상담목회,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상담목회는 상처입은 영혼을 돌보고 치료하는 목회다"고 전제하고,
"상담목회는 상입은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절망과 외로움에 소통하면서 시작된다"며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마음을 슬프고 아프며,
상처는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영혼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상담목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손교수는 "한국교회는 이 땅의 상처입은 영혼들을 치유하고 상처입은 사회를 치유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며
"절대 의존했던 엄마의 품에 안겼던 아기는 영원자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회가 불안, 외로움, 절망은 감추고 승리, 기븜, 희망을 이야기 하라고 하기에
교인들은 더 불안하고 외로우며 절망한다"며
"목회자는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그와 마주 앉아 그의 절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 김대동 목사(분당구미교회)가 '상담목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제강연했으며,
이상억 교수(장신대)가 '상담목회 설교', 오성춘 목사(광장교회)가 '상담목회 심방',
심수명 교수(국제신대, 한밀교회)가 '상담목회 공감'에 대한 주제로 각각 워크숍을 펼쳤다.
(자료출처 기독교보 1032호(2012년 6월 23일 토요일자 19면)
------------- 기사 자료 인용 끝 ---------------------

과연 손운산교수의 말은 과연 옳은 것일까요?
상담목회가 상처 입은 영혼을 돌보고 치유하는 목회라고 하는 말은
심리학에 오염된 변질된 목회입니다.
 
왜 그것이 변질된 목회일까요?
손교수의 말은 성경의 본질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말할 때 먼저 "상처입은 영혼"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상처입은 영혼"이라는 개념은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은 먼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 밖에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만일 "상처입은 영혼"으로 인간을 세우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
그것은 믿음의 선조들인 청교도들의 "죄 죽임"보다는
계몽주의 사조에 오염된 이성이 실력을 발휘하는 "나 살리기"가 자리를 차지 하게 됩니다.
 
이것이 손운산 교수에게 정확하게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요?
손운산 교수는 "2001년 남부연회 산상성회에서 손운산(이화여대)교수가 특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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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치유와 성장을 위한 목회 
1) “나”가 존중받고 살아나는 교회
교회는 일반적으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것은 잘못이다.  교회에서 세상에서 약해지고 망가진 “나”가 살아나야 한다.  이것은 최고의 존중과 이해받음과 인정받음에서 비롯된다.  교회는 언제나 문제된 “나”를 숨기게 했다. 교회에서 아프고 슬픈 “나”가 마음놓고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죄로 망가진 “나”가 용서받고 허물로 수치스러운 “나”가 은혜로 용납받고 상처입은 “나”가 고침받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는 “나”를 죽이고 숨기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나”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나”로 살아나는 곳이어야 한다.
------------- 자료 인용 끝 ---------------------

이런 말은 성경에 대한 오해와 부족한 이해에서 나오게 됩니다. 
교회에서 "나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하신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결코 비기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손운산 교수는 "이것은 잘못이다"고 말합니다.
또한 손교수는, "교회에서 세상에서 약해지고 망가진 '나'가 살아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손교수가 예수님의 말씀과 심리학을 섞어서 말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입니다.
 
한국목회자상담협회 11차 학술대회에서,
회장인 손운산교수는 "용서에 대한 목회 신학적 고찰"이라는 주제을 했는데,
강연과 함께 "‘교회생활과 용서’, ‘가족치료와 용서’, ‘심리치료와 용서’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자료출처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9352)
 
손운산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더욱 놀라게 합니다.
 
------------- 자료 인용 시작 ---------------------
2) “삶”이 이야기되어 지는 교회
교회는 삶의 이야기 마당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예수님의 이야기들, 교회의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교회는 삶을 이야기하고, 축하하고, 감사하는 축제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교리, 윤리, 교훈, 훈계, 임무, 사명 등은 너무 많이, 때론 아무런 의미 없이 남발되었고, 필요이상 강조되었다.  이젠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살아난다.  삶이 이야기되어져야 한다. 설교에서 기도에서 성경공부에서 그룹활동에서 삶의 다양한 주제들이 이야기되어져야 한다. 성경구절을 외우게 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하나의 단어로, 문장으로, 시로, 이야기로 말하게 해야 한다.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냥 거기에 그대로 흙처럼 누워 있는 단순한 사건들을 재료로 삼아, 어떤 주제 즉 이미지를 따라 빗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창조의 작업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야기함으로 “나”가 만들어지며, “나”가 숨쉬기 시작하며, 다른 사람의 “나” 즉 “너”를 만나고 싶어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지고 이해될 때,  눌려 있던 자아가 살아난다.  한 사람의 관심과 문제가 존중될 때, 그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비교되지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 최고로 존중받을 때, 그의 자긍심은 올라간다. 그래야 삶이 충만해 진다.
------------- 자료 인용 끝 ---------------------
정말로 교회 안에서 교리, 윤리, 교훈, 훈계, 임무, 사명등이 너무 많이,
그리고 마무런 의미없이 남발되었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었을까요?
오늘날 현대교회는 이런 손운산 교수의 말과는 거의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눈으로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손운산 교수 말 대로 그렇게 교리와 윤리가 강조되었더라면,
과연 오늘날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냉대를 받으며 조롱을 받게 되었을까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는
손운산 교수가 말하는 심리학으로 오염된 상담목회 이전에
이미 영혼을 하나님 앞에 세워가는 일에 충성되이 섬겨왔습니다.
 
문제는 상담을 목회에 적용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교회가 말씀의 본질오 가느냐 안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가 불안, 외로운, 절망을 말하는 곳이 되어야 하기 위하여
심리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목회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안 되는데,
심리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된다면 그것은 목회가 아니라
상담을 해 주는 단체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런 상담목회가 중심이 된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언약에 신실한 삶으로 가는 언약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 존중과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그룹활동을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카페공동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손운산 교수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손교수는, "목회자는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그와 마주 앉아 그의 절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손교수의 말대로 하는 목회자는 상담자로 성도는 내담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망한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희망이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의 문제는 인간이 헤아리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깊로 넓으며 많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헤아릴 수 없는 문제의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심리학적인 도구와 방법들을 동원하는 목회자와 성도는
결국 심리학적인 해결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 해결책이란 "나"가 살아야 하고, "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나"가 살고 "나" 중심의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심리학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비현실적인 인간에게만 존재합니다.
 
상담목회는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이 아니라
교회를 죽이고 성도들을 죽이는 오래된 반기독교적인 방법입니다.
목회의 패러다임은 세상 학문에서 배워 올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길어 올려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늘도 삼위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그 은혜를 구하며
영혼들을 위하여 애타하는 목회자의 마음은 오고 오는 세대에
변하지 않는 목회의 패러다임 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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