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난 개혁주의_내가 하면 개혁주의 네가 하면 안개혁주의인가?
늦바람난 개혁주의_내가 하면 개혁주의 네가 하면 안개혁주의인가?
한 해가 저물어 가면서 저마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계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을 개탄해 하며
교회가 어떻게 교회다워야 하느냐의 고민 섞인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참 우스운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말이
과연 어떤 신학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개혁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그 속에는 이미 신복음주의로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리학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교회 안에는 심리학에 기초한 수많은 가정사역 프로그램과
내적치유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해결이 안 되는 분들은
여기 저기에서 행하는 내적치유 세미나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울고 불고 치유를 받았다고 간증을 합니다.
평생을 예수 믿으면서도 그들이 가르치고 말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분별하지 못하도록 교회가 목사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성도들보다 목사가 더 앞장 서서 심리학을 쫓아가고
가정사역이랍시고 떠벌리면서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로이드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또 다른 전제적인 추세는 "개인 대 개인 간의 사역"(Personal Work),
소위, "상담"이란 것을 점점 더 강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여기서 다른 일들과 같이 그래프를 그려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설교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상담은 상승하는 똑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이 점은 금세기에 들어와서 크게 만연된 것입니다.
특별히 제1차 대전 후에 더 심합니다...,
설교나 의식을 집어치우고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관심을 보이고
사람들을 이해하며 그들의 처지가 되어 그들 가운데 정착하여
그들의 일과 문제를 토론한다는 것이지요.
현재 이것은 복음을 듣게끔 예배장소에 사람들을 모으는 수단으로
그것을 사용할 뿐 아니라 또는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훨씬 더 훌륭한 방식으로 여러 나라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우리들의 답변은 무엇이냐는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이런 것은 잘해야 2차적인 문제, 2차적인 문제도 아니고
전혀 고려대상이 아닐 수 있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최대로 생각해서 2차적인 문제입니다.
교회나 기독교 목사의 제일 첫째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될 것입니다.
(로이드존스 지음, 목사와 설교, 서문 강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p. 21-24)
과연 이 시대의 목회자들은 목사의 제일 첫째 임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데 동의할까요?
정말로 거기에 동의한다면,
왜 인본주의 심리학과 뉴에이지에 기초한 가정사역과 내적치유에 마음을 빼앗기고
예수님을 극도로 저주하는 현대 정통파 유대인들의 쉐마를 배워서 가르치려고 할까요?
그것은 교회 성장이라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한다면
세상의 것을 섞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 신학과 심리학이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은 늦바람난 개혁주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하면 개혁주의가 되고 네가 하면 안개혁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는 말로만 하는 개혁주의가 아니고,
칼빈의 심장이 우리의 심장이 되고
칼빈의 부르짖음이 우리의 부르짖음이 될 때에
비로소 개혁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목회의 성공을 위하여 세상의 온갖 심리학과
뉴에이지 사상에 물든 프로그램들을 수용하는 것이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내게 맡겨 주신 양무리의 영혼을 위하여 세상의 온갖 더러운 사상을 막아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오직 예수님! 오직 성령 하나님! 오직 십자가!만을 외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주의 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한 해가 저물어 가면서 저마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계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을 개탄해 하며
교회가 어떻게 교회다워야 하느냐의 고민 섞인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참 우스운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말이
과연 어떤 신학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개혁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그 속에는 이미 신복음주의로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리학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교회 안에는 심리학에 기초한 수많은 가정사역 프로그램과
내적치유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해결이 안 되는 분들은
여기 저기에서 행하는 내적치유 세미나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울고 불고 치유를 받았다고 간증을 합니다.
평생을 예수 믿으면서도 그들이 가르치고 말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분별하지 못하도록 교회가 목사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성도들보다 목사가 더 앞장 서서 심리학을 쫓아가고
가정사역이랍시고 떠벌리면서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로이드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또 다른 전제적인 추세는 "개인 대 개인 간의 사역"(Personal Work),
소위, "상담"이란 것을 점점 더 강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여기서 다른 일들과 같이 그래프를 그려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설교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상담은 상승하는 똑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이 점은 금세기에 들어와서 크게 만연된 것입니다.
특별히 제1차 대전 후에 더 심합니다...,
설교나 의식을 집어치우고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관심을 보이고
사람들을 이해하며 그들의 처지가 되어 그들 가운데 정착하여
그들의 일과 문제를 토론한다는 것이지요.
현재 이것은 복음을 듣게끔 예배장소에 사람들을 모으는 수단으로
그것을 사용할 뿐 아니라 또는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훨씬 더 훌륭한 방식으로 여러 나라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우리들의 답변은 무엇이냐는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이런 것은 잘해야 2차적인 문제, 2차적인 문제도 아니고
전혀 고려대상이 아닐 수 있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최대로 생각해서 2차적인 문제입니다.
교회나 기독교 목사의 제일 첫째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될 것입니다.
(로이드존스 지음, 목사와 설교, 서문 강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p. 21-24)
과연 이 시대의 목회자들은 목사의 제일 첫째 임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데 동의할까요?
정말로 거기에 동의한다면,
왜 인본주의 심리학과 뉴에이지에 기초한 가정사역과 내적치유에 마음을 빼앗기고
예수님을 극도로 저주하는 현대 정통파 유대인들의 쉐마를 배워서 가르치려고 할까요?
그것은 교회 성장이라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한다면
세상의 것을 섞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 신학과 심리학이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은 늦바람난 개혁주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하면 개혁주의가 되고 네가 하면 안개혁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는 말로만 하는 개혁주의가 아니고,
칼빈의 심장이 우리의 심장이 되고
칼빈의 부르짖음이 우리의 부르짖음이 될 때에
비로소 개혁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목회의 성공을 위하여 세상의 온갖 심리학과
뉴에이지 사상에 물든 프로그램들을 수용하는 것이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내게 맡겨 주신 양무리의 영혼을 위하여 세상의 온갖 더러운 사상을 막아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오직 예수님! 오직 성령 하나님! 오직 십자가!만을 외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주의 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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