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수_쉐마인성교육_구약의 남은 자 사상?
현용수_쉐마인성교육_구약의 남은 자 사상?
현용수 박사님은 아직도 유대인들 중에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 중 남은 자는 현재에도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정통파 유대인들이다.
그들이 비록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 1권 p.200)
과연 그들이 "남은 자"들일까요?
다음 자료를 참고해 보시면 유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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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메시야 사상과 남은 자 사상
I. 들어가는 말: 8세기 예언자들의 민족통합의 신학
다윗-솔로몬 제국은 약 70년 간(BC 100-930) 고대 근동을 제패하였다. 그러나 그 제국은 솔로몬의 종교적 배교와 솔로몬-르호보암으로 이어지는 2대에 걸친 전제군주적 통치의 결과로 쇠퇴일로를 걷다가 급기야 주전 922/21년 경(혹은 931년 경) 남유다-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된다(왕상 11:1-13). 남북 분열 이후 약 170년 전후에 네 명의 위대한 “8세기 예언자들(아모스-호세아-이사야-미가)”이 등장한다. 이사야를 비롯한 8세기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신앗수르 제국의 제국주의적 위세가 절정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산악(앗수르의 북쪽 국경)족인 우라투(Uratu) 족속을 정복한 후 앗수르 제국은 페니키아-시리아-팔레스틴-애굽으로 이어지는 지중해 지역을 제패하기 시작하였다(BC 745-727년 재위하던 디글랏빌레셀 3세).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가 주도하던 번영의 시대가 쇠퇴하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전환기에 신학적인 예지(叡智)와 상상력으로 8세기 예언자들은 당대의 역사변동과 국내-국제정세를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의 빛 하에서 분석하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는 살길을 내 놓았다.
위에서 언급한 네 명의 예언자들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두 나라로 보지 않고 한 나라 안에서 각축하던 두 왕조로 보았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대부분 북왕국을 상대로 예언활동을 펼쳤지만 동시에 유다의 장래에 대한 예언을 잃지 않았으며, 거의 200년 동안 적대적 분단상태를 유지해 오던 유다와 이스라엘의 정치적 통합과 영적 일치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았다. 이들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출현한 이사야와 미가는 남유다의 예언자였지만 그들의 예언적 전망 안에서 남과 북 왕국은 항상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침략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존망지추의 위기라고 라고 주장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었던 하나님 백성들의 정치적 통합과 영적 일치가 그 존망지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요청되는 필수적인 단계라고 보았다. 특히 그들 모두는 북왕조의 멸망이 새로운 다윗 제국의 부흥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유다에 의한 북이스라엘 난민의 일방적 흡수로 이뤄지는 민족통합이 아니라 다윗적인 이상왕의 등극과 사사시대의 부족연맹체적 공평과 정의의 회복만이 진정한 민족화해와 통일의 길임을 믿었다(암 9:11-14; 호 2:14-23; 3:5; 사 9장; 11장; 32장; 미 5:2).
그 중에서도 이사야의 신학은 8세기 예언자들의 민족통합 및 통일신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은 이사야 메시야 예언시(9장과 11장)들과 남은 자 사상(10:20-23; 28:5-6; 4:2-6)속에 잘 집약되어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이사야의 “메시야 사상”과 “남은 자 사상”을 중심으로 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이사야의 소명 전후의 유다/이스라엘의 역사적-신학적 정황
이사야 1:2-6:13에서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유다를 계약파기의 죄로 기소하며 심판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계약적 불충성 때문에 이스라엘/유다를 심판하시지만 남은 자(심판을 거친 후 정결케 된 자)들이 미래 회복/구원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예루살렘이 악으로 얼룩진 도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죄인들을 심판할 것이며, 오로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살려진 남은 자가 의로운 백성들을 위하여 정화된 예루살렘의 거주자가 될 것이다(1:21-31). 새롭게 회복된 공동체는 다윗 같은 의로운 왕과 관리들이 백성들을 섬기는 나라가 될 것이다(9, 11, 32장).
2장은 정화된 시온의 세계사적인 사명을 말한다. 내적 정화를 거쳐 완전히 새롭게 된 예루살렘은 이제 세계적인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토라 공부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열방 백성들의 순례지가 될 것이다. 시온은 토라를 공부하는 영적 훈련의 도량이 됨과 아울러 세계분쟁과 국제갈등의 해결지점이 되며 열방이 서로를 향햐여 겨누던 살상용 무기들이 생산적인 농기구로 변형될 것이다. 이런 시온의 미래상이 실현되기 위하여 시온은 현재 그들의 오만과 얼룩진 영적 부패 때문에 철두철미한 영적 정화와 세척을 겪게 될 것이다(2:1-4:6).
그러나 이사야는 미래의 시온과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현실과 대면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를 주도할 시온과 이스라엘은 칼과 말과 군대를 믿는 군사대국화의 길로 일주하고 있다. 특히 야웨의 토라의 인도를 따라 걷도록 촉구받고 있는 야곱의 두령들(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유다 백성들은 전쟁준비와 이와 관련된 우상숭배 때문에 멸망당하고 있다(2:6-9). 특히 군사대국화 정책이라는 우상을 높이고 하나님을 굴욕적으로 대우한 북이스라엘 왕국 백성들은 이미 그들을 굴욕적으로 낮추실 하나님의 응징과 심판을 받았다(2:10-22).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멸망과정을 목격하면서도 유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길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야웨 하나님은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의 자기만족적인 오만(북이스라엘에 대한 상대적인 자기안전감)을 심판하실 것이다. 강대국을 의존하여 야웨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대파국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3:1-12).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여 전혀 다른 열매, 들포도를 맺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통하여 그들을 굴욕적으로 심판하실 것이다(5:8-30). 한 강력한 제국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유다를 덮칠 것이며, 이 강력한 심판도구는 잔인하고 철두철미하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신학적 오만을 갈아엎을 것이다(5:26-30). 그리하여 이스라엘/유다는 이방 땅으로 유배될 것이며 오로지 주님만 존귀케 될 것이다(5:13-17).
이런 심판과 정화 후에 번영과 축복의 날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남은 자들에 의한 소망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4:2-6). 야웨의 싹이 움돋아 낙락장송이 될 것이다(사 11장; 렘 23장; 슥 3:6). 땅은 다시 풍산(豐産)을 보증하며 하나님은 친히 보호하시는 임재로 그들 중에 계실 것이다(4:4-6).
이사야의 민족화해신학의 두 기둥인 메시야 사상과 남은 자 사상은 앗수르의 제국주의적인 침략 앞에 먼저 멸망한 북왕국의 해체기와 북왕국의 전철을 밟아가는 남왕국의 영적 정치적 전락 전야에 분출하였던 예언들이다.
III. “메시야 예언시(9:1-7)”에 나타난 이사야의 민족화해신학
메시야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 중 가장 급진적인 예언인 반면에 또 다른 한편 가장 보수적인 예언이다. 그것은 당대의 현실적인 유다 왕조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예언이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 다윗 왕조의 출범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던 다윗-시온 선택 신앙(삼하 7:12-16; 시 46-48; 132)을 한 차원 더 깊게 옹호한다는 점에서 매우 보수적이다. 이사야의 신학에서 왕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매개하는 구원사 드라마의 중앙무대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의 왕권은 이사야서 1-66장을 하나로 묶는 중심주제다. 소명묵시에서 이사야는 절대적으로 높이들린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왕 하나님을 본다(6장). 절대적으로 높은 보좌에 앉아계신 만군의 하나님 야웨를 왕으로 대면한 이사야의 소명묵시가 그의 메시야 예언(9, 11, 32장; 참조 사 33장)의 신학적 배경이다. 이사야서에 의하면 만군의 하나님 야웨의 왕국이 세계 속에 건설될 때 한 인간 대리자에 의하여 위임통치된다. 그 하나님의 대리자는 1-39장에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한 이상적인 왕이다(특히 사 11:1-4).그의 정치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통치와 그것을 매개할 메시야의 위임통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다(사 32장과 33장의 병립). 9:1-7은 이러한 신정통치적 이상이 메시야 위임통치에 의하여 실현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 1-39장에서 현저하게 부각되는 야웨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있는 갈등과 긴장은 메시야 예언들에서 해소된다. 메시야 예언들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단/계획은 이미 집행이 완료된 것으로 전제되며 그것은 하나님의 미래적 구원의지(salvific zeal)로 치환된다. 메시야 예언들에서 묘사되는 이상사회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추구해야 할 대안-대조공동체라고 제시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메시야 예언들은 현실 비판 및 초극의 기능을 한다.
이사야서의 1부격인 1-12장은 두 차례에 걸친 앗수르 제국의 대범람(the Assyrian deluge)과 그것의 결과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한다(8:8-10; 17:12-14; 참조 사 54:9). 2-5장, 7-11장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앗수르 제국의 1차 범람(BC 832-722/21)과 남왕국 유다에 대한 앗수르 제국의 2차 대범람 사건(BC 701)을 하나의 연속적 사건(a sequential event)으로 보고 그것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끼친 파괴적 및 창조적 결과들을 기록한다.
메시야 예언시 단락인 9-11장(9장 다윗에 의한 민족국가-10장 북이스라엘 멸망+앗수르 멸망-11장 다윗에 의한 세계국가)은 다윗과 같은 이상적 왕에 의하여 다시 통일될 이스라엘, 즉 공평과 평화의 왕국을 앗수르의 야만적 세계 정복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9장은 앗수르에게 병탄당한 북이스라엘 지파들을 구원할 한 위대한 다윗적인 왕의 등극을 찬양하고 그의 메시야적인 통치를 예기하는 메시야 예언시다. 10장은 자신에게 맡겨진 위임사명의 한계를 넘어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켜 버린 오만한 세계제국, 앗수르 제국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11장은 앗수르 제국의 몰락이 남기고 간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대안적 세계국가, 메시야 왕국을 제시한다. 9-11장에는 다윗-솔로몬의 민족주의(제국주의)와 하나님 나라의 보편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되고 있다(역사적 가현설의 경계). 하나님의 대안적 국제질서는 다윗과 같은 이상왕이 남북 이스라엘 지파들을 통일하여 인근 족속들을 아우르는 메시야적 국제질서다(사 11:13-16; 16:5). 블레셋, 암몬, 에돔, 모압은 다시 다윗왕같은 이상왕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혜택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앗수르 제국의 왕들은 피묻은 군복과 야만적인 군화로 세계를 강제로 병합하고 압제와 폭력으로 다스렸으나 이사야가 꿈꾸는 국제질서는 다윗 왕과 같은 공평과 정의의 왕이 다스리는 세계다.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가 평화의 행렬을 주도하는 세계다(사 11:6).
이사야 12장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이 주도하는 포로들의 고토귀환을 즐거워하는 노래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찬양이다. 12장은 출애굽기 14장의 미리암의 찬양을 되울리는 찬양으로서, 앗수르로 끌려간 이스라엘/유다 포로들의 귀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노래다. 이제 이상왕 다윗의 후손에 의하여 주도되는 이스라엘/유다 포로들의 고토귀환은 열국에게는 하나님의 구원 대사(大事)의 절정이다(사 11:10-12).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사야 1-39장의 제 1부격인 이사야 1-12장이 제시하는 미래적 구원은 다윗적 이상왕에 의하여 주도되는 앗수르(바벨론)포로들의 고토귀환과 남북지파의 통일 및 주변민족에 대한 통일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배의 실현이다.
1. 본문 사역(私譯)
9:1b[MT 8:23b] 지난 날 그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굴욕적으로 낮추셨으나, 훗날에 요단강 건너 해변 길과 이방인들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2(1). 어둠 속을 걷던 백성들은 큰 빛을 보았다.
칠흑같이 깊은 어둠의 땅에서 살던 사람들, 그들에게 한 빛이 비취었다.
3(2). 당신께서 [그들의] 환희를 몇 곱절로 크게 하셨고
그들의 기쁨을 크게 더하셨다.
그들이 추수할 때처럼, 전리품을 나눌 때처럼 기뻐한다.
4(3). 그들이 짐진 멍에를, 그들의 어깨 위에 걸려있는 빗장을,
그들의 압제자의 몽둥이를, 당신께서 미디안을 치던 날처럼 부수셨다.
5(4). 유린하는 전사의 모든 군화들과
피로 뒤범벅된 모든 옷들이 불살라지며 소화(燒火)될 것이다.
6(5). 왜냐하면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기 때문이다.
권세가 그의 어깨 위에 걸려있다.
그는 환상적 지략가, 강력한 용사,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방백으로 불린다.
7(6). 그의 권세가 커질 것이며
다윗의 위(位)와 그의 왕국에는 끝없는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평과 정의로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탱함으로써.
만군의 야웨의 열심이 이루시리라.
2. 9:1-7의 역사적 배경과 삶의 자리(Sitz im Leben)
칼 마르티(K. Marti)를 필두로 하여 역사비평적 주석가들은 메시야 예언시의 역사적 진정성을 부인해 왔다. 크게 보면 언어적, 역사적, 그리고 교리적 근거에 의지하여 이사야의 친저성(親著性)을 부인한다.
언어적 논거는 빈약하다. 어떤 시대에도 가능한 언어들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르티나 그레이 둘 다 이 언어적 논거는 결정적일 수 없다고 인정한다.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의 예언은 거의 전적으로 위협적이고 심판적인 예언이었으며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는 포로기 이후에 추가된 것이라는 19세기 마르티의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주석가들마저도 이런 원칙이 이사야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Guthe). 극단적 역사비평가들마저도 인정하는 이사야의 진정성 예언 중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7장: 스알야숩, 임마누엘 예언).
또한 이사야가 하나님 자신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거나 정치적 의미가 퇴색한 종교적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는 하였지만 9:1-7과 같은 철두철미 정치적인 성격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종교적 의미가 거의 없는-은 선포하지 않았다는 마르티의 견해도 과장된 것이다. 이사야는 왕, 관리, 판관 등의 위계질서나 구체적 신정통치의 지상대리자들이 배제된 미래회복을 예언한 적이 없다(1:26). 본문에는 왕조의 단절을 전제하거나 포로살이로부터의 회복을 암시하는 어떤 말도 없다. 포로기 혹은 포로기 이후 어떤 시점에도 다윗 왕조의 회복을 꿈꾸는 예언자적 감수성이 이사야 9:1-7에서처럼 표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신학적 계기를 찾을 수 없다.
이상에서 우리는 9:1-7의 이사야적 진정성(Isaianic authenticity)을 부정하는 견해들이 거의 매우 희박하고 주관적인 추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예언시의 이사야적 진정성을 옹호한다. 첫째, 우리는 이 단락의 역사적 맥락이 주전 8세기 이사야의 예언활동의 맥락과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8:21-22(개역성경)은 명백하게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 북쪽 영토의 병탄과 정복을 전제하는 역사적 단초를 담고 있다. 두 번 째로 우리는 이 예언시의 신학적 모태가 다윗 왕조의 공식적인 신학이었던 왕정신학(다윗 언약)임을 주목한다. 왕정신학은 포로기 이전의 유다 왕조에서 옹호되던 신학이었다는 사실과 이사야의 많은 다른 진정성 있는 예언이 왕정신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본 단락의 이사야적 기원을 옹호한다.
8:19-23(특히 21-22)(개역 8:19-22)은 9:1-7의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이 예언시의 역사적 배경은 BC 732년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결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북쪽 지역이 앗수르의 속주(屬州)로 편입된 사건이다. 8:19-23은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전후에 북이스라엘 왕국을 지배한 정치적 위기와 영적 곤경을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이 재난의 발생과 경과를 목전에 두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죽은 자들을 찾는 것은 영적인 일탈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에 따라 지도하지 않고백성들을 영적으로 오도(誤導)한다(21-22절). 그래서 결국 앗수르는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을 궤멸시키는 과정에서 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여 앗수르의 속주로 편입시킨다. 9장은 앗수르의 병탄(倂呑)으로 흑암에 빠진 스불론, 납달리(갈릴리) 지파의 구원자로서 한 이상적인 다윗 계통의 왕이 등극하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은 백성들이 귀의(歸依)할 대안 공동체는 다윗과 같은 이상왕이 다스리는 통일 왕국임을 확신한다. 이사야는 당시의 유다 왕조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귀의할 만한 보금자리가 된다고 보지 않고 다윗과 같은 이상왕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 아래서만 분열 이전 시기, 12지파 통일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북이스라엘의 병탄된 지역의 지파들의 미래가 다윗 왕과 같은 이상왕의 군사적 정치적 수복 행위에 의하여 담보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예언시는 북이스라엘 왕국(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로 대표되는)이 앗수르의 속주로 병탄되어 앗수르의 무거운 폭력과 압제 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한편 양식비평적으로 분류하자면 9:1-7은 대관식 예언이다. 그것은 어떤 주석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왕자(왕)의 생물학적 출생을 다룬다기보다는 야웨의 아들로 태어나는 다윗계열 왕의 왕위 즉위식을 다룬다. 다윗 계열의 왕들의 즉위식 때는 메시야적 통치시대가 도래할 것에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시 72편). 9:1-7의 특이한 삶의 자리가 대관식이고 그것이 이사야의 생애에 선포된 대관식 예언이라면 그것은 히스기야의 왕위 대관식을 기점으로 선포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어떤 히스기야 연대에 따르더라도 히스기야는 BC 725년(성경자료를 근거로 계산한 클레멘츠의 주장)과 BC 715년(왕하 18:13과 앗수르 자료에 근거한 학자들과 필자의 주장) 사이에 왕위에 올랐음에 틀림없다.
북이스라엘의 병탄당한 지파들에 대한 이사야의 고뇌와 동정어린 예언자적 열정이 히스기야 왕의 대관식 신탁시 속으로 편입되어 다시 창조적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예언시는 BC 732-715년 사이에 저작되고 히스기야의 대관식에 즈음하여 공표된 예언시일 가능성이 많다. 9:1-7은 다윗 왕의 한 후손(히스기야)이 왕위에 오를 때 다윗-시온신학의 신봉자인 이사야가 시 72편의 정신을 바탕으로 지은 예언시였을 것이다.
라버츠(J. J. M. Roberts)가 잘 지적하듯이, 9:1-7은 먼 미래를 위한 희망의 예언이 아니라 이제 막 왕위(다윗의 위)에 오른 새 왕의 치세에 대한 종교적, 정치사회적 기대를 표명한 하나의 정치신학적 신탁이다. 이 단락은 야웨 하나님께서 다윗과 다윗의 후손을 그의 지상 나라의 부왕(副王, 메시야)으로 영원히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유다의 왕정신학의 신학적 확신을 반영한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위에 오른 시기(BC 715년)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후(BC 722년)였다.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무엇인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이사야는 현재 유다 왕(아하스)말고 이상적인 다윗의 후손이야말로 남북통일과 앗수르의 압제로부터의 해방과 앗수르로 끌려간 북이스라엘 10지파의 포로귀환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앗수르의 압제적 통치 아래 신음하는 북쪽 지파들이 맛보게 될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 예언의 일부인 9:1-7과 북이스라엘 왕국의 주요 지도층의 임박한 앗수르 유배와 국가조직의 붕괴를 예고하는 9:8-21을 함께 읽어보면 우리는 9장 전체의 메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9장은 BC 733-732년, 혹은 BC 722-721년 어간의 북왕국의 상황을 배경으로 북왕국 전체의 운명과 부흥된 다윗 왕국의 관계를 다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해석
9:1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강제로 앗수르의 속주(Duru, Mugidu, Galuaza)로 편입된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굴욕적인 과거사가 메시야와 그의 왕국 등장의 전경(前景)이다. 1절 하반절은 요단 강 바다 길과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갈릴리 지역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노래한다. 9:21과 11:13을 고려해 볼 때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몰락과 굴욕을 남북왕국의 분열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였던 것 같다. 8:23b-9:1이 소개하는 짙은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는 백성들은 BC 732-722/721년 사이에 앗수르의 압제적 지배 하에 살던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앗수르의 지배라는 어둠과 절망 속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절망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비취어 올 “큰 빛”은 그들의 참담한 암흑의 운명을 끝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큰 빛” 은 한 위대한 왕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통치의 혜택을 가리킨다. 앗수르 왕의 막대기와 몽둥이 아래 학대를 당하던 백성들을 신원(伸寃)하러 한 왕이 오실 것이다(10:24-27).
3절은 흑암 속에 살던 사람에게 큰 빛이 끼칠 효과를 말한다. “당신께서 환희를 몇 곱절로 크게 하셨고 기쁨을 크게 더하셨다. 그들이 추수할 때처럼, 전리품을 나눌 때처럼 기뻐한다.” 추수할 때의 기쁨과 전쟁에서 승리하여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학대받던 백성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시 126). 왜 이렇게 기쁜가? 세 가지 세부적인 이유들이 제시된다.
첫째, 기쁨의 근원은 당신의 백성을 친히 속량(贖良)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이다. 2인칭 단수로 표현된 “당신(야웨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짐진 멍에를, 그들의 어깨 위에 걸려있는 빗장을, 그들의 압제자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던 날처럼 부수셨기” 때문이다(4절).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해방과 구원 사역이 대적에게 끼친 효과와 관련된다(5절). “유린하는 전사(戰士)들의 모든 군화들과 피로 뒤범벅된 모든 옷들이 불살라지며 소화(燒火)될 것이다”(5절). 결국 4-5절에서 흑암 속에 주저앉았던 백성들에게 베풀어 질 구원은 정치적 군사적 구원이다. 앗수르의 정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구원의 실체다. 앗수르 제국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키는 방법은 “야웨의 전쟁”(the holy war)이다. 즉 현실정치적 차원의 갈등이나 군사적인 대결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 이 말은 앗수르 제국을 현실세계에서 군사적으로 제압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편, 앗수르 제국의 분쇄는 하나님 자신의 전쟁 몫으로 유보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적수(敵手)로 여겨지는 외국 군대는 현실적 전쟁으로는 도저히 이길 가망성이 없는 거의 절대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이사야가 앗수르의 압제로부터 해방하는 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 이미지로 말한다는 말은, 이런 예언이 앗수르에 대한 대항정책이나 군사적 저항을 유도하는 데 사용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앗수르를 패배시키고 주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에 섣부른 앗수르 대항정책은 결코 사려깊은 믿음의 행위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앗수르 제국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분쇄될 것이며 인간의 예상과 기대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10:12, 25; 14:24-27; 30:27-33).
이사야는 여기서 앗수르 제국의 정치적 지배를 종식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은 갑작스런 구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북이스라엘 왕국(므낫세 지파)에 유명하게 알려진 기드온의 야웨 전쟁 전승에 호소한다(삿 6-7장). 기드온 사사 시대에 미디안 족속은 정규전으로는 이길 가능성이 없었던 적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지파의 가장 작고 소심한 기드온을 쓰셔서 미디안 세력을 격퇴하였다.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을 벌였을 때 도왔던 지파들이 바로 아셀, 스불론, 그리고 납달리 지파였다. 부분적으로는 이 예언시의 암묵적(가상적) 청중들인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들이 관련된 구원사 전승에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삿 6:31). 기드온의 예상 밖의 승전은 하나님의 승리로 기억되고 기념되어졌고 “미디안의 날”은 야웨의 전쟁 승리를 기리는 국경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 땅에서 패퇴하여 철수하는 길은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 즉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의 영원한 기념물은 다윗 제국이다. BC 10세기 약 80년 동안 시리아-가나안 일대를 제패한 다윗 제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의 위력을 영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기념물이다. 이사야는 지난 200 여 년간의 분열왕국 역사를 회고해 보면서 다윗 제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결과로 주어진 선물(구원)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9-12장은 이사야가 출애굽 전승-사사시대의 구원사 전승-다윗 제국의 구원전승(거룩한 전쟁 전승), 즉 통합이스라엘의 구원사 전승에 정통하였음을 보여준다. 미디안 족속에 대한 기드온의 거룩한 전쟁전승에 대한 호소는 이상적인 다윗의 후손,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의 도래에 대한 동경을 예기하며 이내 다윗 왕같은 이상왕에 대한 학수고대로 귀결된다. 찬탈자 베가(Pekah) 치하의 북이스라엘의 왕국이 아람의 하수인이 되어 유다를 압박할 때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기탄없이 예언하였지만(사 7:1-7; 17:3-11), 정작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환난에 대해서는 통절한 예언자적인 동정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익숙하게 알려졌을 므낫세 지파의 영웅 기드온 구원전승에 호소하며 다시 한번 “야웨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실제로 위로가 되었을 수가 있다. 이사야는 므낫세 지파로 대표되는 북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예언한다.
4-5절이 구원의 소극적 차원인 앗수르 제국의 정치적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데 비하여, 6-7절은 하나님 구원의 적극적 차원을 말한다. 앗수르의 채찍과 쇠빗장과 멍에로부터의 해방이 구원의 전부가 아니다. 6-7절이 말하는 적극적이며 영구적인 구원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다윗왕 같은 왕의 통치(나라)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이사야(11:1-9와 더불어)는 앗수르의 폭력적인 제국질서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이상화된 다윗 제국을 넌지시 대조한다. 비록 현실은 앗수르 제국의 군주들-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옷들을 입은-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사야는 한 아들, 한 아이가 다스리는 나라를 갈망한다. 이사야에게 다윗의 나라, 즉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나라는 앗수르 제국에 대하여 대항왕국이자 대안왕국(alternative kingdom)이다. 앗수르 제국은 폭력으로 세계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동체다. 약한 나라의 목과 어깨 위에 압제와 굴욕의 멍에를 짐지우고 자신의 자유를 무한히 확대하려는 권력의지(Wille zur Macht)가 앗수르 제국의 본질이다. 앗수르 제국은 하나님이 위임하신 세계심판 대행자의 위치를 크게 벗어나 인근 나라들의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였고 하나님 나라에 맞서는 자신 중심의 세계국가를 건설하려는 권력의지의 화신이다(10:7-19). 이런 앗수르 제국주의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아주 불안정한 공동체다. 자기권력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되는 나라다. 네루가 그의 <세계사 편력>에서 설파하듯이 세계역사는 제국들의 무덤이다. 이사야는 앗수르 제국의 존재론적인 취약성을 알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단죄한다(10:5-19).
이러한 앗수르 제국의 대항적 대안적 왕국인 나라는 하나님의 부왕(副王), 다윗의 후손이 대리적으로 다스리는 나라다. 기쁜 소식은 새롭게 태어난 아들에 관한 소식이다. 그런데 6절은 왕세자(a royal prince)의 생물학적 출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아이/아기의 “탄생”은 한 다윗 계열의 왕의 왕위등극을 가리킨다. 다윗의 위에 오르는 왕은 다윗 계열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다(시 2:7; 시 72편; 참조. 시 89, 132편; 삼하 7:12-16). 7절이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아이는 “탄생”하자마자 권위를 덧입고 공의의 허리띠와 정의의 요대(腰帶)를 착용함으로써 왕의 의관을 갖춘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새 왕의 등극은 항상 기쁜 소식이었다. 대사면령이 내려지고 희년과 같은 경제적 정치적 부채탕감이 선포되기도 하였다(메소포타미아의 mesharum 전통).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정신학의 핵심은 왕은 가난한 자의 구원자요 고아와 과부의 재판관이라는 규정이었다. 왕은 신의 구원을 정치경제적으로 중개하는 신의 대리자였다. 그래서 폭력으로 다스리는 자(막 10:41-45)의 쇠빗장 아래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왕의 탄생(등극)은 기쁜 소식이다.
앗수르 왕들은 자신의 원정일지 및 연대기 통치일지들(국제종주봉신 조약들)에서 자신들을 항상 땅 사방의 천하를 다스리는 대왕으로 부르며 온갖 수사학을 동원하여 자신을 “큰 자, 위대한 자”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다윗의 나라는 한 아기, 아들의 성품을 가진 왕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 “아이,” “아기”라는 칭호는 다윗의 후손이 왕위 대관식 때 하나님을 향하여 아들(메시야)로 입양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대리자임을 강조한다. 앗수르 왕이 권력의지의 화신이라면 다윗의 후손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부인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결국, 6절에서 구원의 기쁨이 크게 더하여 진 세 번째,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제시된다. 그것은 앗수르 제국과 전혀 다른 나라를 건설하실 왕의 등극이다. 이사야가 이런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할 즈음에는 유다의 다윗 왕조 자체의 존속자체가 의문시되던 시대였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한 가지 목표는 유다 내에서 다윗 왕조의 법통을 단절시키고 아람 출신 벤다브넬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었다(사 7:5-6)는 것을 고려해보면 다윗의 적법한 후손이 유다의 왕위에 오른다는 일이 얼마나 큰 구원의 안도감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즉 아직도 다윗 계약이 유효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7절의 “지금부터 영원까지”라는 표현은 왕위계승에 관한 하나님의 계약적 사랑과 투신을 영속적으로 보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한 아들(왕위 계승자)의 탄생(수동태로 표현)”은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지(다윗 왕조 유지의지)의 산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악한 계획(사 7:5)들을 무력화시키고 좌절시키는 하나님의 대항계획인 셈이다. 다윗의 후손 왕위계승자는 비록 인생막대기와 채찍에 맞아 징계와 연단을 받을지언정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윗계약의 핵심조항은 결코 폐기되지 않았다. 이사야 7:14에서 이사야는 이미 임마누엘 이름예언을 통하여 다윗 계약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적 투신과 사랑을 확증하였다.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다윗-시온신학의 전통적인 공식신조였다(시 46-48편). 임마누엘 예언은 다윗 왕조의 법통(法統)을 단절시키고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을 원천무효로 만들려던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악한 계획의 임박한 좌절을 확증한 예언이었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은 유다 내에 다윗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현저하게 약화시켰을 것이다. 심지어 유다 왕 및 지배층들도 유다 왕조와 야웨 하나님 사이에 있다고 믿어진 다윗 계약의 유효성을 크게 의심하였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유다 안팎의 신학적-정치적 위기에 대한 대답은 임마누엘 예언과 그것의 시적 해설과 같은 9:1-7이었을 것이다. 이사야는 이상적인 다윗 계열의 왕, 즉 메시야를 생생한 시적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다윗 왕조를 뒤흔든 정치적-신학적 위기를 돌파하였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다윗 왕조는 신인 과두(diarchy) 체제임을 주장하는 시편 89:3-4, 19-37의 주장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님의 우주적 나라는 다윗 왕조의 정치적 역량에 의하여 대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의 탄생 선언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다윗(다윗의 후손) 사이에 정립된 양두(兩頭)정치체제적 관계다(시 89). 이 양두체제 관계는 다윗-솔로몬 왕정신학의 뼈대 중의 하나다. 다윗-솔로몬의 유다 왕정신학은 세계가 하나님과 그 아들 다윗적인 왕의 공동 통치영역이라고 본다(특히 시 89:27-28).
7절의 “다윗의 위(位)”는 사무엘하 7:12-16의 다윗 계약(the Nathan oracle)을 즉각적으로 상기시키는 말이다. 여기서 “다윗 왕조는 반드시 다윗의 적법한 후손에 의하여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이 상기된다. 이사야는 다윗 왕조에게 준 나단의 예언-다윗계약-의 충실한 신봉자였다(사 7:3-4). 이사야는 ‘왕’이라는 중보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역사 속에 구체화(materialize)시킬 수 있는 섭리적 도구가 된다는 왕정신학의 신봉자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사야가 다윗의 위를 언급한 첫째 맥락은 최근에 일어난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에 의한 다윗 왕조 멸망시도에 대한 야웨의 응답을 들려주려는 맥락이었다. 다윗 언약의 한 가지 핵심은 다윗의 후손에 의한 다윗의 위의 항속적 유지였음을 생각해 보면 다윗의 위에 한 이상적인 왕이 등극한다는 것은 다윗 왕조에 대한 야웨의 전폭적인 투신을 웅변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울러 이사야는 이 예언시를 통하여 “다윗의 위”를 언급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이 대부분 몰락하고 멸망되어 가는 역사적-신학적 위기에 모종의 응답을 주려고 한 것 같다. 즉 10지파의 실체가 끝끝내 완전히 해체될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이사야는 분열왕국 이전의 다윗 통일왕국적 기상 회복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윗 제국과 같이 포용력 넘치고 정의로운 나라 건설이 오히려 남은 북왕국 백성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역대하 30장; 참조.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의 잔존에 대한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의 편린을 보려면 시 78:67-68을 보라). 그래서 이사야는 북왕국의 남은 백성들과 남왕국 유다 사이에 진정한 형제자매적 우애가 회복되기를 열망하고 예언한다(9:21; 11:13-14). 참다운 다윗 제국의 회복은 지파간의 내분, 동포들간의 분쟁과 적개심을 청산하고 형제자매적 우의와 사랑을 회복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였다. 앗수르 제국을 진정으로 제압하는 길은 앗수르 제국적인 폭력과 탐욕과 적개심으로 분열되어 싸웠던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형제자매적 우의와 사랑을 회복하여 앗수르 제국이 감히 실현할 수 없었던 가치와 덕을 구현하는 데서 발견된다고 보았던 것 같다. 다윗적 통일왕국과 사사시대적(12지파 통일적) 계약공동체적인 가치실현과 평화와 의에 입각한 삶의 질을 구현함으로로써 앗수르적 폭력과 야만질서를 초극하는 것이 길이었다.
다윗의 후손 왕이 왕위 즉위식 때 부여받았던 영예로운 칭호들이 그의 통치의 방향에 대한 이러한 예언자적 기대가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다스림은 북왕국의 남은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사 12장). 그 이상왕은 열국으로 흩어졌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의 이산한 자와 포로들이, 돌아가야 할 기준과 깃발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보인다(11:10-12). 이런 통일이스라엘적 재결합과 회복의 지도자인 메시야의 통치의 특징은 “권세”의 정당한 사용을 통한 무한한 “평화”의 창조다. 새 왕에게 주어진 이 네 가지 이름들은 그의 권세의 근거와 그가 창출할 평화의 질과 범위에 대하여 말해준다. 새 왕에 대한 이러한 네 칭호들은 고대 이집트의 왕위 즉위식 때 받았던 다섯 가지 영예로운 칭호들과 견주어 진다(왕상 3:1; 7:8; 9:16).
“그는 환상적 지략가(ץעוי אלפ), 강력한 용사(רובג לא),
영원한 아버지(דעיבא), 평화의 방백(םולשׁ-רשׂ)으로 불린다.”
환상적인 지략가(智略家, ץעוי אלפ[펠레 요에츠])는 정책결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탁월한 통치능력을 발휘하는 왕을 가리킨다. 다윗의 후손 왕이 환상적인 지략가가 되는 이유는 이사야 11:2에서 발견된다. “야웨의 영, 지혜와 통찰의 영이 그 위에 머물리라. 지략과 용맹의 영, 지식과 야웨를 경외하는 영이[그 위에 머물리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선포된 또 다른 메시야 예언시인 11:1-9은 이사야 9:1-7과 이부작(doublet)을 이룬다. 야웨의 영을 상징하는 감람유가 대관식에 참석한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부왕(副王)에게 한량없이 쏟아 부어진다. 그래서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חישׁמ)가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상적인 지략가는 전쟁의 도모와 계획에서 신적 재능을 과시하는 왕이다. 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이 칭호는 전쟁수행의 전문가요 탁월한 전략가를 의미하였다(사 36:5: 모략[הצע]과 용맹[הרובג, 그부라]의 대구어로 사용). 사무엘상 17장부터 사무엘하 10장까지는 적어도 다윗이 어떤 점에서 펠레 요에츠의 범례적 인물로 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숱한 승전기록을 열거한다. 결국 고대 근동사회(이스라엘/유다)의 왕에게 펠레 요에츠(ץעוי אלפ)라는 칭호는 최고의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 칭호는 펠레 요에츠의 두 번째 의미를 강화시키는 시적 평행어다. “강력한 용사”(רובג לא, 엘 기뽀르)는 전쟁시 용맹을 발하는 군사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거룩한 전쟁”을 영도하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현실적인 군사작전을 무모하게 추진하는 돈키호테식 무골형(武骨型) 지도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고대 이스라엘/유다 사회에서 왕은 전시사령관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이었다. 믿음으로 무장한 군사 지도자가 엘 기뽀르다. 또 한편 이 칭호는 재판과정에서 신적 지혜를 과시하는 재판관이라는 뜻도 가능할 것이다(시 82:6와 출 22:28[요 10:34]은 엘/엘로힘을 재판관이라는 의미로 사용; 참조 사 10:21). “환상적인 지략가”이자 “강력한 용사”인 메시야 부왕(副王)은 인근 나라들을 정복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평과 정의의 확장과정이다(사 16:5; 참조 11:14; 이사야 11장 1-9절). 그들은 군사적 정복자를 넘어서 공평과 정의의 재판관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해방시키는 거룩한 전쟁수행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아버지(דעיבא, 아비아드)는 가정을 돌보는 가장으로서의 자애로움과 근면한 행정관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메시야는 아버지로서의 먹이는 책임과 돌봄의 책임을 완수하는 지도자다. 아비아드는 압제자의 이미지와 전혀 거리가 멀다. 섬기는 종, 청지기같은 지도자가 바로 아비아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부왕은 “평화의 방백”으로 불린다. םולשׁ-רשׂ은 전제권력을 휘두르는 권력남용형 지도자가 아니라 축소된 지방행정관 같은 방백이다. 메시야 나라에서 왕위에 오른 지도자는 하나님의 부왕으로 자신을 급진적으로 축소시키고 부정한 사람이다. 권력의지를 부인하고 종과 지방행정관과 9급 공무원같은 청지기 정신을 가진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메시야 왕국에 근사치적으로 근접하는 공동체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하나님의 부왕의 왕좌는 굳건해지며 그의 왕국은 확고부동하게 세워질 것이다.
“그의 권세가 커질 것이며 다윗의 위(位)와 그의 왕국에는 끝없는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왕국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평과 정의로 굳게 세워지며 지탱되리라.”
메시야의 왕국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확고부동해 질 것이다. 평화는 공평과 정의의 토양에서 피는 꽃이기 때문에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다윗 제국은 지리적으로 끝이 없고 시간적으로 끝이 없는 평화를 이 세상에 가져올 것이다(사 32:16-20). 이런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자적 상상력을 점화시킨 역사적 실체는 공평과 정의로 다스렸다고 증언되는 다윗 제국이었다. 삼하 8:15와 삼하 23:3은 다윗 통치의 특징이 공평과 정의의 실행이었다고 증언한다. 솔로몬이 공평과 정의를 집행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모략을 하나님께 일 천 번이나 간구하였을 때 그의 왕국은 견고해졌다(왕상 3:6; 참조 왕하 2:36). 공평과 정의는 하나님 보좌의 기초석이기 때문에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공동체만이 하나님의 다림줄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한 왕조나 공동체가 안정성있는 구조물/건축물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줄과 추를 사용하여 가늠하신다. 공평과 정의가 부서진 곳은 하나님의 심판의 타격에 의하여 무너지게 된다(사 5:7; 5:16; 28:16-17; 시 89:12-13, 15). 공평과 정의의 기초석 위에 건축된 공동체만이 항구적으로 존속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사야의 메시야 정치신학의 핵심논지다. 다윗의 후손, 메시야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한 그의 나라는 결코 붕괴되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강성해지고 견고해져 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이스라엘은 어떠했던가?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은 이런 메시야적 기준에 아득히 못 미치는 현실,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채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진동하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초극(超克)한다(5:25; 9:12, 17, 21; 10:4).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들이 꿈꾸는 묵시의 세계로부터 눈을 다시 현실로 돌려보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최근에 북이스라엘 왕국 백성들은 극단적인 위기에 내몰리자 신접한 자들을 찾아다니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려고 하였고 왕과 하나님을 동시에 저주하였다(개역 8:19-21).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그림자는 여전히 북이스라엘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에브라임은 지파간의 내전, 유다에 대한 형제상잔적 전쟁, 우상숭배와 외교적 파탄, 중대한 영적 정치적 오판으로 인하여 거의 침몰직전의 기선과 같은 처지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매를 맞고도 각성에 이르지 못한 채 중대한 영적-정치적 위기를 임시변통적 미봉책으로 대응한다(9:8-21). 이사야는 북왕국의 중심구성원들이 앗수르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예언한다(9:14-16). 그들의 앗수르 유배는 계속적인 불신실함과 야웨께로 돌아오는 회개 거부로 인하여 자초된 운명이었다(9:8-10:4).
그렇다면 유다는 또한 어떠한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포용할 만큼 충분히 성숙한 메시야 나라를 이루었던가? 이사야서는 의도적으로 메시야적 기준에 못미치는 현실적인 다윗의 후손인 아하스 왕과 9장의 이상왕을 대조시킨다. 9장의 이상왕은 아하스 왕에 대한 대안적인 왕인 것이다. 부분적으로 히스기야의 정치는 다윗 왕적인 선정(善政)에 의하여 특징지워지는 것처럼 보이나, 히스기야의 반(反)앗수르 저항정책-친애굽동맹 정책(사 22:8-11; 28:14-22; 29:15-16; 30:1-5, 6-8, 15-17; 31:1-3)은 메시야적인 평화와 안정(구원)이 아니라 자가추진적 구원방책을 강구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대파국적 재난으로 몰아갔다(사 6:11-13; 7:18-25; 참조. 5:26-30). 이사야는 이런 메시야 예언시를 통하여 현실을 비판하며 초극해 보려고 하였다. 현실의 다윗 왕가가 그러한 메시야적 통치를 선취(先取)하도록 촉구하였다(사 28:12, 16-17; 30:15; 33:14-15; 참조. 1:21-26; 32:1-8).
그럼 누가 이런 미래를 기획하고 실체화할 것인가? 이사야의 대답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는 미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책임을 사상(捨象)시키거나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없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종말론적 차원이 있다는 말이다. 종말론적인 차원 혹은 하나님의 구원의지에 맡겨진 미래 등의 말들은 이런 비젼(vision)이 역사의 중간시기에는 어쩌면 실현될 수 없는 꿈에 머물 수도 있다는 겸허한 시인이 들어있다. 오로지 “만군의 야웨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군의 야웨가 과시할 열심은 인간의 자발적인 선취적(先取的) 실천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주도권은 인간적인 실천의지와 사명감을 한층 더 고양시킨다.
그러나 히스기야나 어떤 유다의 왕도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통치를 지상에 구현하는 데 실패하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영속적이고 이상적인 제왕의 덕목을 가진 한 이상왕을 제시하는 이사야 9:1-7는 종말론적인 해석에 열린 예언시로 남아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예언시는 현실초극의 예언시였으면서 동시에 미래에 오실 한 종말론적 이상왕에 대한 희망의 노래로 남게 된다.
4. 소결론: 메시야 예언의 기투적 읽기- 갈릴리에서 오신 이, 나사렛 예수
이사야 9:1-7은 다윗의 한 아들이 와서 이방민족(앗수르)의 압제에서 고달픈 백성을 구출하는 자신의 구원사역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곳이 바로 스불론-납달리-갈릴리 지역임을 증언한다. 따라서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전승에 의하면 메시야는 갈릴리에서 그의 구원사역(큰 빛)을 착수하여야만 한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오신 메시야라는 점을 강조한다(마 4:12-16; 참조 2:23).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다윗의 위에 앉을 이상왕이 앗수르의 제국주의적인 통치 아래 신음하는 백성(이스라엘)들을 구출해 주듯이 나사렛 예수, 다윗의 위에 앉은 나사렛 예수는 갈릴리에서부터 이상왕의 구원활동을 시작하심으로써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다윗의 아들, 이새의 줄기에 나온 싹(네제르)(마 4:23, 나사렛 사람)임을 입증하신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무정부 상태 아래서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에 대한 대안임을 선포하신다(막 1:14-15). 주기도문에도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지상 건설이 으뜸되는 청원대상이 된다(사 33:5; 참조 창 18:19). 모든 나라들과 왕국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로 흡수되고 병탄될 것이다(요한계시록 11:15).
이사야 9:1-7은 현실비판적 예언임과 동시에 메시야적 미래를 향하여 스스로 기투(企投)하는 존재가 되도록 초청한다. 이사야에게 메시야적 미래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야웨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는 메시야 왕국의 실현이다. 그것은 역사의 중간기에서 실현되지 못한 채 종말의 시점으로 유보된다. 메시야 왕국 예언의 실현이 종말의 시점으로 유보된 까닭은 청중/독자들로 하여금 그런 미래를 현재 속으로 끌어들이도록 촉구하는 하나님 자신의 선교활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결국 메시야 예언을 현재 시점에서 실현하려고 기투하는 사람은 종말을 현재 속에 앞서 끌어들이는 사람이다.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에 대해 가장 적확하게 응답한 사람이 바로 나사렛 예수시다.
나사렛 예수는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의 언어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메시야의 길을 발견하였다. 나사렛 예수는 종말의 한 시점으로 실현을 유보한 메시야적 예언들을 자신의 현재 속에 선취(先取)함으로써 메시야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는 메시야로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 예언들에 자신을 결박하고 순종함으로써 메시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셨다.
IV. “남은 자” 사상에 나타난 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
두 차례에 걸친 앗수르의 침략으로 거의 초토화된 후 멸망해 버린 9와 1/2지파의 땅, 북왕국 백성들은 총체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다(BC 732, 722).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고유한 하나님의 백성이자 모든 족장 약속의 정통적인 계승자였던 9와 1/2지파는 이제 영원히 소멸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용도폐기되고 마는가? 이러한 신학적 질문들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은 남은 자 사상이다. “남은 자” 사상은 한마디로 “난민(難民)신학”이요 해체당한 공동체의 창조적 미래를 기도(企圖)하는 신학이다. 이사야는 “남은 자 신학”을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난민들을 신학적으로 흡수, 포용하여 사사시대적인 이상사회, 즉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는 미래를 꿈꾸었다. 이사야는 한편으로는 메시야 사상을 통하여 다윗 왕국적인 통합의 논리를 제시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왕이 시작되기 이전의 사사시대적 평등적이고 형제우애적인 이상사회를 통하여 통합의 논리를 제시한다(4:2-6 참조).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을 다루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BC 732-722/1년의 이스라엘 멸망기의 재난(전쟁 및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그 미래에 대하여 언급하는 본문들이다(7장 3-4절; 10장 20-23절; 28장 5-6절). 둘째, 남유다의 “남은 자”에 대하여 말하는 본문이다(1장 8-9절과 30장 17절). 셋째, 남유다 및 북이스라엘의 포괄적인 남은 자와 그 미래를 언급하는 본문들이다(6장 11-13절; 4장 2-6절). 남은 자 사상은 시적인 암시의 형태로 이사야의 소명묵시에서 이미 발견되다. 그러나 그의 예언자적 목회활동의 연대기적 순서로 보면,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남은 자 사상을 통한 희망적 미래예언을 촉발시킨 첫 역사적-신학적 계기가 되었다. BC 732-722/1년이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예언의 역사적 시점이라고 볼 수 있고, BC 701년 산헤립의 유다침략과 거의 전국토의 초토화는 남유다의 “남은 자” 및 남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연합에 대한 예언의 배경을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BC 701년 전후의 남은 자 사상을 드러내는 4:2-6은 다루지 않고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해체기 전후의 남은 자 사상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그의 긴 예언활동 동안에 그 자체 안에서 하나의 발전을 겪는다. 이사야의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 처음에는 그다지 깊은 신학적 차원을 갖지 않으나(처음에는 군사적 의미만 부각) 시간이 갈수록 신학적 사상/개념으로 발전해 간다.
이사야의 소명묵시에서 묘사된 “거룩한 씨” 예언은 좀 더 뒤에 발전된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의 남은 자들의 미래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자적인 전망의 출발점이 된다.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에 대한 조감도격인 6:9-13은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의 남은 자들은 거룩한 씨로 보존되어 다음 세대의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인간편의 동반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다.
1. 이사야의 소명묵시에 있어서 “남은 자,” 거룩한 씨(6:9-13)
6:11-13은 대파국적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남은 자들임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불가피한 대파국적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거룩한 씨며, 이 거룩한 씨는 다음 세대의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전진을 위하여 선택된 인간 동반자들이다.
비록 그 땅 안에서 10분의 일의 땅에 남아 있을 지라도,
그것마저 불타게 될 것이다. 베임을 당하더라도 그루터기를 남기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처럼, 거룩한 그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다(6:13).
13절의 전체 문맥인 11-13절은 BC 701년의 앗수르의 산헤립의 유다 침공을 내다보는 예언이다. 결국 이사야의 “강퍅케 하는 소명”(the hardening commission)은 BC 705-701년의 히스기야의 반(反)앗수르 봉기와 이에 대한 산헤립의 유다 침공으로 종료되는 “앗수르 위기”(the Assyrian crisis)라는 역사적인 재난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이사야 6:9-10의 관점에서 보면 주전 701년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백성들의 마음을 무디게 한 이사야의 사역의 결실이다. 그러나 앗수르의 침략에 의한 성읍과 도시 및 가옥의 파괴, 국토의 황폐화와 거민들의 유배가 천상 어전회의에서 내려진 하나님의 결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13절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긍정적 효과를 암시적으로 언급한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참조 10:17-19) 그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넘치는 공의와 파멸의 심판을 행하시지만 (5:16; 10:22-23; 28:22; 33:5) 그 심판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낼 거룩한 씨를 남겨둔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의 궁극적인 사역은 거룩한 씨의 보존에 남긴 하나님의 변증법적인 계획/결단(הצע)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4-9; 4:2-6; 7:3-4; 10:20-23; 14:32; 28:5-6, 16; 30:14-17; 37:30-32).
여기서 거룩한 씨란 본래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만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청결한 의인들이 아니라 이사야 자신처럼 국가적인 재난의 형태로 집행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 거룩한 심판의 불길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하나님 결단의 신학은 단순히 앗수르의 제국주의에 대한 무기력한 인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및 신앙적인 책임을 천착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꿈꾸는 신학적 기도(企圖)였다(1:9-20; 30:17). 이 거룩한 씨의 보존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의 말씀은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4:2-6; 28:5-6; 10:20-23)-그것이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건 남유다의 남은 자건 상관없이-에 대한 예언적 전망으로 발전되었다. 심판의 불길을 통과한 하나님의 거룩한 씨들, 남은 자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구원의 열심(salvific zeal)에 의하여 향도(嚮導)될 것이다(9:6; 37:32).
2. “남은 자 사상의 발전”(7:3-4; 10:20-23; 28:5-6)
위에서 암시하였듯이,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발전한다. 처음에는 “남은 자”가 전쟁 및 군사적 대재난에서 살아 남은 자(사 30:17; 참조 1:8-9)를 가리키다가 나중에는 거룩한 씨로서의 남은 자,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성취하기 위한 남은 자(신학적 남은 자)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바뀐다. 이사야가 신학적 차원에서 남은 자에 대하여 처음으로 언급한 시점은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쇠락과 멸망 시점이다.
(1)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남은 자”들의 초라한 귀국(7:3-4).
이사야가 처음으로 “남은 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BC 735년 경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개전 초기였다. 왜냐하면 BC 733-32년 경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에게 포위된 아하스 왕을 도와주려고 만나러 갈 때 이미 그의 아들 스알야숩(“남은 자만 돌아가리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7:3-4는 스알야숩의 첫 등장을 시리아-에브라임 위기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배치한다.
가. 본문 사역(私譯)
3. 그래서 야웨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세탁자의 밭 옆에 있는 윗못 수로의 끝에서 아하스를 만나라.”
4. 그리고 너는 그에게 말하여라: “조심하여 진정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이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를 인하여,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의 격노를 인하여 네 마음이 낙담하지 않도록 하라.
나. 해석
7:1-14은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명백한 심판의 예언인 반면에 다윗 왕조에 대한 우호적인 예언이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시에 이사야는 시종일관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심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대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야웨께서는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오직 남은 자만 돌아가리라)의 이름 예언을 상기시키며 아하스 왕에게 보내어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스알야숩”의 문자적 뜻은 “오직 남은 자만 돌아가리라”라는 뜻이다. 전쟁과 재난(홍수)의 상황에서 “남은 자”를 언급할 때 그것은 대부분 전쟁과 재난에서 살아남은 작은 수를 가리킨다. 따라서 스알야숩 예언은 두 연합군 군사 중 오직 소수의 군사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인 셈이다(17:1-7을 참조). 스알야숩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적어도 3-4세는 되었을 것이다. 본문 중(3절)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을 강조한 것을 보면 이사야가 벌써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이 형성되는 초기부터(3년 전부터) 이 군사동맹의 실패와 좌절을 예언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정통신학인 이 다윗-솔로몬 왕정신학 전통의 계승자였기 때문에 다윗 왕조가 끊어진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팔레스틴을 정치적으로 장악하기 위하여 시리아-에브라임 반앗수르 동맹군을 분쇄하려는 앗수르 제국의 정치적 야심에 대한 현실정치적 통찰 위에 이러한 신학적 확신까지 겸하여 가진 이사야는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필연적 실패와 좌절을 확신하였다. 이사야의 “오직 남은 자만(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 중에서) 살아서 돌아가리라”는 이 “스얄야숩” 예언은 1년이 못되어 실현되었다. 실제로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은 BC 732년에 앗수르에게 치명적으로 패배당한 후 두 나라 군대 모두 극히 일부만 살아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시리아는 앗수르의 속주로 병합되어 정치적 실체를 상실하였고 북이스라엘은 영토 3분 1이상을 앗수르에게 병탄당하였고 “남은 자”만 간신히 생존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2) 이스라엘의 남은 자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께 돌아오라(10:20-23)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동안에 이사야는 베가 치하의 북이스라엘을 단죄하는 예언을 하였으나 급기야 BC 722/1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자 북이스라엘에 대한 신학적 복권을 서두르며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동정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10:20-23과 28:5-6이 이사야의 이러한 태도를 보여준다. 먼저 우리는 10:20-23을 “남은 자가 돌아간다”(בושׁי ראשׁ)는 선언의 신학적 차원을 살펴본 후에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준비된 미래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가. 본문 사역(私譯)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가문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에게 기대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야웨를 진정 의뢰하리라.
21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리라!
22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 중에서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흘러넘치는 공의로 파괴가 선언되었도다!
23왜냐하면 주 만군의 야웨께서 온 땅에 이미 끝났다고 선언되고 작정된 일을 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 해석
19절의 스알(ראשׁ)과 20-22절의 스알(ראשׁ)의 연결을 고려해 보면 10:16-19과 10:20-23 단락 사이에 대조적 대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 단락은 앗수르 제국은 거의 희소한 수의 나무를 남긴 채 작벌당하는 삼림처럼 멸당당할 것을 예언하고, 10:20-23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한 북이스라엘 왕국이 남은 자를 통하여 명맥을 이어갈 것을 예언한다. 앗수르가 붕괴되고 작벌당하는 바로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가문의 피난한 자들”이 자신들을 친 세계 열방들을 의뢰하지 않고, 오로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께로 돌아올 것이다. 본문과 10:24a(“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를 동시에 고려해 보면 이 예언이 기원한 시점은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아직 건재한 히스기야 시대임을 알 수 있다. 북이스라엘의 군사적 패배를 예고하던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예언이 본문에서는 신학적-현실정치적 의미로 재전용(再轉用)된다. 20절은 이사야의 초기 스알야숩 예언의 재적용(adaptation)의 한 예를 보여준다. 20절은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과 남은 자들이 남유다로 쇄도하는 정경을 그린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쇠락과 멸망이 이뤄진 BC 732-722년 동안에 많은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남유다로 밀려왔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히스기야 왕실의 복속 노력도 진지하였다. 왕세자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음으로써 북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을 한 백성으로 품으려는 정치적 배려도 베풀었고 또 북이스라엘 왕국의 유월절 역법에 맞춰-남유다보다 한 달 늦게 유월절을 기림-유월절을 열고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유월절 초청장을 보냈다(대하 30장).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분열이전 시기, 즉 12지파의 일치와 연합시기를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역사적 기념물이었다. 이사야와 히스기야 등 남유다의 야웨주의자들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앗수르 제국으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은 야웨 하나님께로 귀의함으로써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깨닫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앗수르의 왕으로 즉위하여 초기 4-5년간을 Uratu지역 진압 문제, 바벨론 반란 그리고 자체 제국 문제 해결을 위하여 힘을 쏟는 동안에 시리아-팔레스틴 일대에 지역패권주의를 확립하였다. 블레셋의 에그론의 왕 파디(Padi)를 자신의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예루살렘 감옥에 투옥시키기도 하면서 에그론, 가자, 아스켈론 등 블레셋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제압하였다(대상 4:39-43; 왕하 18:8; 참조 사 11:13-14). 어떤 의미에서 히스기야는-적어도 군사적으로는-다윗 흉내를 내면서 다윗 제국의 옛 영광을 회복하려고 분투하였다. 히스기야는-적어도 정치적으로는-북이스라엘의 남은 지역을 복속시키려고 노력하였다. 10:20-23은 히스기야의 정치적 노력에 신학적 차원을 가미한 셈이다. 이사야는 유다 왕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전망할 뿐만 아니라 촉구하였다.
결국 이 짧은 예언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께”(한편으로 히스기야-“강력한 용사”[엘기뽀르]라는 칭호는 대관식 때 새 왕 히스기야에게 붙여진 이름) 돌아올 것을 격려하고 남유다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곤경과 국가적 패망을 신앙적 및 정치적으로 포용할 것을 촉구하는 예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는 비록 현실 유다 왕조가 북이스라엘의 난민들, 혹은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능히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심하였을는지 모르나, 히스기야 왕실 또한 그의 예언적 전망에 호응하려고 노력한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이사야는 어떤 점에서 북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해체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이상적으로 승화된 다윗 왕조(유다 왕실의 이상화된 상태) 아래서 통일 이스라엘 부흥이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데 쓰임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22-23절은 북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끌려갔다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족장약속: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를 바다 모래처럼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창 12, 15, 21, 32장])이 폐지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양보절에 의하여 도입되는 22절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유효한데 남은 자들에게 유효한 약속으로 남아있게 될 것을 예언한다(롬 9-11장에서 구사되는 바울의 논리는 이사야의 논리 모방). 22-23절은-비록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제적으로는-이사야의 하나님 결단의 신학을 되울린다(“작정”, “행하다”). 하나님 결단의 신학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흘러넘침-앗수르 제국의 흘러넘침과 대응-의 결과임을 인정한다. 적어도 23절의 ץרח(에차)와 השׂע(마아세[일])는 이사야 6장 11-13절의 소명 묵시와 주제적으로 상응한다고 보여진다. 즉 다시 말해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능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결정과 집행으로 형성된 정치적 파멸상태에서 기대될 수 있는 일이다. 자손의 번성에 관한 족장약속을 부정적인 맥락에서 언급하는 22절을 고려해 보면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족장약속의 선별적 제한적 실현을 인정한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 중에서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따라서 이스라엘의 많은 지파들이 앗수르로 유배당하거나 애굽으로 망명을 떠나 다시는 옛날의 지파연합을 회복할 가망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계승되며 실현될 것이다. 이 남은 자는 하나님의 은총의 유효성을, 즉 족장약속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증인들이다(암 5:15b).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족장약속(창 32:13; 참조 호 1:10; 2:1)의 변증법적 해석범주인 셈이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족장약속 자체가 폐기되지는 않았다. 다만 조건적 약속으로 수정되었다.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과 남은 자들 중에서 야웨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써 남은 자가, 즉 족장약속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남은 자가 참 이스라엘이다. 누가 남은 자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 하나님과 능하신 하나님께로 귀의하는 자가 참으로 남은 자다. 남은 자는 돌이키는 자다. 그런데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킬 수 있는가? 이사야 6:9은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에 의하여 이사야의 청중들은 돌이킬 능력을 잃은 것처럼 말한다. 28:12과 30:15는 이사야가 그의 청중들에게 돌아오라고 촉구하지만 그들은 파국적 재난을 당하기 전에는 도저히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대파국적 재난을 겪은 후에 돌이킬 기회를 얻을 뿐이다. 이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은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정치적 멸망은 그들이 야웨 하나님께로 돌이킬 기회가 된다고 주장하였다(대하 30:1; 참조 대상 9:1).
(3).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는 야웨(28:5-6)
28:5-6은 에브라임의 멸망의 원인을 분석한 단락(28:1-8)의 일부이며 에브라임의 남은 백성을 향한 야웨의 돌이킴에 대하여 말한다.
가. 본문 사역(私譯)
5 그 날에 만군의 야웨께서 그의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리라. 6 재판하러 앉은 자에게는 공평의 신이 되실 것이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용력(勇力)이 되시리라.
나. 해석
28:1-8은 에브라임의 멸망의 근인(根因)-오만과 영적인 감수성의 결여[술취함]-을 제시하며 그 남은 백성과 야웨의 관계에 대하여 예언한다. 에브라임은 취한 자요, 사마리아는 그 교만한 에브라임의 자랑거리(요새?)요 면류관이었다. 그것은 기름진 골짜기에 세운 성채였으나(살만에셀 V세가 포위하였지만 3 년간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살만에셀의 아들 사르곤 II세 의하여 함락) 그것은 쇠잔해 가는 꽃과 같은 헛된 영광에 도취하다가 망하였다. 하나님은 우박과 파괴적인 광풍, 대파국적 홍수같은 심판으로 에브라임을 굴욕적으로 낮추셨다.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처럼 앗수르의 손에 의하여 신속히 따먹힌 열매였다(사 18:3-6).
28:1은 에브라임(북왕국) 혹은 에브라임의 오만한 정치지도자들을 “교만한 면류관”이요 “영화로운 관”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왕조의 멸망)은 땅에 떨어졌고 북이스라엘은 정치적 실체를 상실하였다. 바로 그 날에, 야웨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친히 면류관(왕)이 되시며 영예로운 왕관이 되어 주실 것이다. 즉 야웨께서 친히 왕이 되어 주실 것이다. 각각 네 보어들 앞에 붙어 있는 전치사 ל는 야웨께서 본질적으로 각각의 관계로 발전되어 갈 것임을 보여준다. 야웨가 단지 영화로운 왕관이요 공평의 신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그런 관계로 발전되어가고 구현되어 간다는 진술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야웨의 영화로운 왕관이 되어준다는 말은 이상적인 부왕(메시야)를 통한 위임통치까지 포함한 야웨의 통치를 말한다. 이사야의 왕정신학(메시야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메시야의 대리통치도 야웨의 왕적 통치와 사실상 동연적(同延的)이다(효과와 질에 있어서 동일하다).
여기서 결국 우리는 다시 북이스라엘의 국가적 멸망은 야웨의 왕적 통치, 즉 메시야의 위임통치 아래 복속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보는 이사야의 예언자적 관점을 간취(看取)한다. 북이스라엘 왕국이 정치적 실체를 박탈당한 그 사건이 오히려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은 백성이 야웨의 왕적 다스림(혹은 이상적인 다윗계열의 왕의 다스림) 아래 복속되는 길을 열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왕적 통치 사건을 너무 먼 종말의 사건으로 파악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야웨의 왕적 통치가 어떻게 매개되고 구현되는가? 공정한 재판을 지도하고 주장하는 공평의 신(판결)이 되어 주심으로, 성문을 향하여 쳐들어오는 적군을 격퇴하는 군인들의 힘(군사력)이 되어주심으로써 에브라임의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은 지혜와 총명의 신, 재능과 지략의 신으로 가득찬 왕이다. 그는 공평과 정의로 재판할 것이다. 야웨가 재판하는 자에게 공평의 신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이 공평의 영으로 가득찬 메시야적 왕과 관리들에 의한 메시야적 통치의 후견인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성문에서 전쟁을 격퇴하는 자에게 용력을 준다는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쟁을 다시금 떠올린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공정한 재판과 튼튼한 안보(군사적 안전보장)에서 실체화된다. 여기서 우리는 공평한 재판을 하는 나라야말로 하나님에 의한 안전보장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브라임이 멸망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가 재판을 굽게 하고 고아와 과부의 소송을 멸시한 일이었다(암 5:7, 10, 12).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나라의 성문은 늘 외적의 침입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이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신념이었다. 하나님께서 공평의 신이 되어주심으로써, 성문을 지키는 용사들에게 군사적 용력이 되어주심으로써 친히 에브라임의 왕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편에서 어떤 선행적(先行的)이거나 자발적인 돌이킴이 강조되지 않는다. 야웨 자신의 호의적인 돌이킴이 부각된다(호 11:8-9과 일맥상통). 이사야는 에브라임의 남은 자에게 밝고 긍정적인 미래상을 제시한다. 야웨 하나님 자신의 돌이킴이 에브라임의 남은 백성에게 복음이 될 것이다. 이 짧은 단원 안에는 하나님 일방적인 구원의 측면이 부각되어 있다.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굴욕적인 북이스라엘의 패망은 에브라임의 남은 자에게 하나님의 왕적인 다스림을 덧입을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사야를 비롯한 BC 8세기 예언자들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파멸이 하나님의 친정통치(=메시야 통치)의 도래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였다.
V. 요약 및 결론
이상의 연구에서 우리는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9, 11장)과 초기 남은 자 사상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정에서 발생한 난민들, 포로민들, 이산민(離散民)들을 붙들기 위한 신학적-목회적-정치적 응답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사야의 예언활동이 이뤄진 BC 738-701년 기간은 남북 분열 왕국 모두에게 형용키 어려운 재난의 시기였다. 그 민족분단의 상처와 그것의 비극적 결말이 최고조에 도달한 시점에 그는 다윗 왕국적 대통합의 논리와 남은 자 사상을 주창하며 쓰러져가는 북이스라엘의 난민들을 지탱하고 남유다가 직면한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려고 하였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BC 732년과 BC 722(721)년에 앗수르의 제국과의 전쟁에서 치명적으로 패배하였다. BC 732년에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종결과정에 북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이 앗수르의 속주로 병탄되어 버렸고 BC 722/21년에는 호세아 왕과 사마리아의 3 년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더 이상의 회복의 가망도 없이 사르곤 II세에게 멸망당하였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포도원을 잠시 유린하고 짓밟는 징벌적인 원정을 하도록 허용을 받았을 뿐이었는데 자신의 세계제국건설의 야심으로 하나님의 고유한 위임을 위반하였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국가적 정체성을 상실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끌려가거나, 애굽으로 피난갔거나 아니면 유력자들은 남유다로 도망쳤다. 이사야는 이런 전무후무한 민족적 재난의 근인 중 하나를 우상숭배와 그것의 결과인 왕국 분열로 파악하였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사건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 북이스라엘 왕국을 구성했던 12 지파 중 9와 1/2 지파의 상실을 의미하였다(열왕기서는 북왕국만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름). 이러한 예기치 않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돌연한 쇠락과 멸망(시리아-에브라임의 전쟁 후폭풍과 BC 722/21년 사마리아의 완전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태도는 두 줄기의 구원예언에서 발견된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은 이사야에게 모종의 신학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신학적 의미의 남은 자 사상은 누가 참 이스라엘이며 족장 및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어진 신학적 자산을 상속받을 자인가를 묻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절대 다수인 10지파가 멸망당한다면 이스라엘은 이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이 앗수르로 유배되어 앗수르 제국내의 다른 민족들과 회복의 가망성이 없는 수준으로 뒤섞여 버리고 다시는 기억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지파로 구성된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마리아의 멸망으로 끝나버렸는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선택과 계약과 가나안 땅 정복의 전승은 앗수르 제국주의의 군사적 시위 앞에 끝나버리는가?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아 있는 백성들의 신학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들은 여전히 고대 이스라엘에게 수여된 약속들(구원사 전승들, 족장약속들)의 합법적인 상속자인가? 누가 진정 이스라엘인가? 과연 앗수르 제국으로 유배당한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이사야의 신학적 응답이 “남은 자 사상”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어떻게 계속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때때로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하여 말한다(사 10:20-23; 참조 렘 5:10; 욜 2:32[3:5]). 앗수르의 군사적 북이스라엘 왕정정복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계약백성으로 삼으신 구원사의 전진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그들이 진실로 이스라엘이다. 이런 방식의 신학사상의 마지막에 신약공동체가, 종말의 남은 자 공동체[쿰란 공동체의 경우도 비슷]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탄생-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통하여 행하실 원래 구원사적 계획을 성취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혈통적 정치적 실체로서의 이스라엘 대신 신학적 실체로서의 이스라엘 개념을 참 이스라엘로 등장시키는 과도기 신학사상이다(겔 37:15-17). 그래서 이사야를 비롯하여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에서 이스라엘은 예언서에서 야웨께 신실하게 남아있는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된다(바울에게서 우리는 다시 이런 예언자적인 남은 자 사상의 계승을 본다). 그 남아있는 백성들은 여전히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장정(長征)을 이끌었던 족장들의 약속들의 상속자다.
요약하자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원래 이스라엘에게 준 약속들의 상속자라고 정의함으로써 이사야는 앗수르 대범람에서 살아남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팔레스틴에 남은 자들과 해외로 도망치거나 유배당한 자 모두 포함)을 위한 두 가지 예언적 미래전망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남은 이스라엘 유민들의 다윗왕조(유다가 아니라)아래로의 복귀이며, 나머지 하나는 앗수르 및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가거나 혹은 스스로 도피한 북이스라엘 이산민들이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영도자의 지도력 하에 이스라엘 고토로 회복되는 미래 전망이었다. 요약하자면,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이 한 이상적인 다윗 계열의 왕의 다스림 아래서 통일되어 다시 팔레스틴 일대를 아우르며 옛 다윗왕국을 회복하는 그 날에 대하여 예언한다. 결국 이사야는 남은 자 사상과 메시야 예언으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초래한 신학적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는 역사적 재난이 민족화해와 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는 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았던 신본주의적 낙관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oon4832/13289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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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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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수 박사님은 아직도 유대인들 중에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 중 남은 자는 현재에도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정통파 유대인들이다.
그들이 비록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 1권 p.200)
과연 그들이 "남은 자"들일까요?
다음 자료를 참고해 보시면 유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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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메시야 사상과 남은 자 사상
I. 들어가는 말: 8세기 예언자들의 민족통합의 신학
다윗-솔로몬 제국은 약 70년 간(BC 100-930) 고대 근동을 제패하였다. 그러나 그 제국은 솔로몬의 종교적 배교와 솔로몬-르호보암으로 이어지는 2대에 걸친 전제군주적 통치의 결과로 쇠퇴일로를 걷다가 급기야 주전 922/21년 경(혹은 931년 경) 남유다-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된다(왕상 11:1-13). 남북 분열 이후 약 170년 전후에 네 명의 위대한 “8세기 예언자들(아모스-호세아-이사야-미가)”이 등장한다. 이사야를 비롯한 8세기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신앗수르 제국의 제국주의적 위세가 절정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산악(앗수르의 북쪽 국경)족인 우라투(Uratu) 족속을 정복한 후 앗수르 제국은 페니키아-시리아-팔레스틴-애굽으로 이어지는 지중해 지역을 제패하기 시작하였다(BC 745-727년 재위하던 디글랏빌레셀 3세).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가 주도하던 번영의 시대가 쇠퇴하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전환기에 신학적인 예지(叡智)와 상상력으로 8세기 예언자들은 당대의 역사변동과 국내-국제정세를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의 빛 하에서 분석하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는 살길을 내 놓았다.
위에서 언급한 네 명의 예언자들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두 나라로 보지 않고 한 나라 안에서 각축하던 두 왕조로 보았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대부분 북왕국을 상대로 예언활동을 펼쳤지만 동시에 유다의 장래에 대한 예언을 잃지 않았으며, 거의 200년 동안 적대적 분단상태를 유지해 오던 유다와 이스라엘의 정치적 통합과 영적 일치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았다. 이들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출현한 이사야와 미가는 남유다의 예언자였지만 그들의 예언적 전망 안에서 남과 북 왕국은 항상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침략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존망지추의 위기라고 라고 주장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었던 하나님 백성들의 정치적 통합과 영적 일치가 그 존망지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요청되는 필수적인 단계라고 보았다. 특히 그들 모두는 북왕조의 멸망이 새로운 다윗 제국의 부흥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유다에 의한 북이스라엘 난민의 일방적 흡수로 이뤄지는 민족통합이 아니라 다윗적인 이상왕의 등극과 사사시대의 부족연맹체적 공평과 정의의 회복만이 진정한 민족화해와 통일의 길임을 믿었다(암 9:11-14; 호 2:14-23; 3:5; 사 9장; 11장; 32장; 미 5:2).
그 중에서도 이사야의 신학은 8세기 예언자들의 민족통합 및 통일신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은 이사야 메시야 예언시(9장과 11장)들과 남은 자 사상(10:20-23; 28:5-6; 4:2-6)속에 잘 집약되어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이사야의 “메시야 사상”과 “남은 자 사상”을 중심으로 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이사야의 소명 전후의 유다/이스라엘의 역사적-신학적 정황
이사야 1:2-6:13에서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유다를 계약파기의 죄로 기소하며 심판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계약적 불충성 때문에 이스라엘/유다를 심판하시지만 남은 자(심판을 거친 후 정결케 된 자)들이 미래 회복/구원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예루살렘이 악으로 얼룩진 도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죄인들을 심판할 것이며, 오로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살려진 남은 자가 의로운 백성들을 위하여 정화된 예루살렘의 거주자가 될 것이다(1:21-31). 새롭게 회복된 공동체는 다윗 같은 의로운 왕과 관리들이 백성들을 섬기는 나라가 될 것이다(9, 11, 32장).
2장은 정화된 시온의 세계사적인 사명을 말한다. 내적 정화를 거쳐 완전히 새롭게 된 예루살렘은 이제 세계적인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토라 공부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열방 백성들의 순례지가 될 것이다. 시온은 토라를 공부하는 영적 훈련의 도량이 됨과 아울러 세계분쟁과 국제갈등의 해결지점이 되며 열방이 서로를 향햐여 겨누던 살상용 무기들이 생산적인 농기구로 변형될 것이다. 이런 시온의 미래상이 실현되기 위하여 시온은 현재 그들의 오만과 얼룩진 영적 부패 때문에 철두철미한 영적 정화와 세척을 겪게 될 것이다(2:1-4:6).
그러나 이사야는 미래의 시온과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현실과 대면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를 주도할 시온과 이스라엘은 칼과 말과 군대를 믿는 군사대국화의 길로 일주하고 있다. 특히 야웨의 토라의 인도를 따라 걷도록 촉구받고 있는 야곱의 두령들(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유다 백성들은 전쟁준비와 이와 관련된 우상숭배 때문에 멸망당하고 있다(2:6-9). 특히 군사대국화 정책이라는 우상을 높이고 하나님을 굴욕적으로 대우한 북이스라엘 왕국 백성들은 이미 그들을 굴욕적으로 낮추실 하나님의 응징과 심판을 받았다(2:10-22).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멸망과정을 목격하면서도 유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길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야웨 하나님은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의 자기만족적인 오만(북이스라엘에 대한 상대적인 자기안전감)을 심판하실 것이다. 강대국을 의존하여 야웨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대파국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3:1-12).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여 전혀 다른 열매, 들포도를 맺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통하여 그들을 굴욕적으로 심판하실 것이다(5:8-30). 한 강력한 제국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유다를 덮칠 것이며, 이 강력한 심판도구는 잔인하고 철두철미하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신학적 오만을 갈아엎을 것이다(5:26-30). 그리하여 이스라엘/유다는 이방 땅으로 유배될 것이며 오로지 주님만 존귀케 될 것이다(5:13-17).
이런 심판과 정화 후에 번영과 축복의 날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남은 자들에 의한 소망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4:2-6). 야웨의 싹이 움돋아 낙락장송이 될 것이다(사 11장; 렘 23장; 슥 3:6). 땅은 다시 풍산(豐産)을 보증하며 하나님은 친히 보호하시는 임재로 그들 중에 계실 것이다(4:4-6).
이사야의 민족화해신학의 두 기둥인 메시야 사상과 남은 자 사상은 앗수르의 제국주의적인 침략 앞에 먼저 멸망한 북왕국의 해체기와 북왕국의 전철을 밟아가는 남왕국의 영적 정치적 전락 전야에 분출하였던 예언들이다.
III. “메시야 예언시(9:1-7)”에 나타난 이사야의 민족화해신학
메시야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 중 가장 급진적인 예언인 반면에 또 다른 한편 가장 보수적인 예언이다. 그것은 당대의 현실적인 유다 왕조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예언이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 다윗 왕조의 출범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던 다윗-시온 선택 신앙(삼하 7:12-16; 시 46-48; 132)을 한 차원 더 깊게 옹호한다는 점에서 매우 보수적이다. 이사야의 신학에서 왕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매개하는 구원사 드라마의 중앙무대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의 왕권은 이사야서 1-66장을 하나로 묶는 중심주제다. 소명묵시에서 이사야는 절대적으로 높이들린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왕 하나님을 본다(6장). 절대적으로 높은 보좌에 앉아계신 만군의 하나님 야웨를 왕으로 대면한 이사야의 소명묵시가 그의 메시야 예언(9, 11, 32장; 참조 사 33장)의 신학적 배경이다. 이사야서에 의하면 만군의 하나님 야웨의 왕국이 세계 속에 건설될 때 한 인간 대리자에 의하여 위임통치된다. 그 하나님의 대리자는 1-39장에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한 이상적인 왕이다(특히 사 11:1-4).그의 정치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통치와 그것을 매개할 메시야의 위임통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다(사 32장과 33장의 병립). 9:1-7은 이러한 신정통치적 이상이 메시야 위임통치에 의하여 실현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 1-39장에서 현저하게 부각되는 야웨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있는 갈등과 긴장은 메시야 예언들에서 해소된다. 메시야 예언들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단/계획은 이미 집행이 완료된 것으로 전제되며 그것은 하나님의 미래적 구원의지(salvific zeal)로 치환된다. 메시야 예언들에서 묘사되는 이상사회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추구해야 할 대안-대조공동체라고 제시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메시야 예언들은 현실 비판 및 초극의 기능을 한다.
이사야서의 1부격인 1-12장은 두 차례에 걸친 앗수르 제국의 대범람(the Assyrian deluge)과 그것의 결과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한다(8:8-10; 17:12-14; 참조 사 54:9). 2-5장, 7-11장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앗수르 제국의 1차 범람(BC 832-722/21)과 남왕국 유다에 대한 앗수르 제국의 2차 대범람 사건(BC 701)을 하나의 연속적 사건(a sequential event)으로 보고 그것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끼친 파괴적 및 창조적 결과들을 기록한다.
메시야 예언시 단락인 9-11장(9장 다윗에 의한 민족국가-10장 북이스라엘 멸망+앗수르 멸망-11장 다윗에 의한 세계국가)은 다윗과 같은 이상적 왕에 의하여 다시 통일될 이스라엘, 즉 공평과 평화의 왕국을 앗수르의 야만적 세계 정복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9장은 앗수르에게 병탄당한 북이스라엘 지파들을 구원할 한 위대한 다윗적인 왕의 등극을 찬양하고 그의 메시야적인 통치를 예기하는 메시야 예언시다. 10장은 자신에게 맡겨진 위임사명의 한계를 넘어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켜 버린 오만한 세계제국, 앗수르 제국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11장은 앗수르 제국의 몰락이 남기고 간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대안적 세계국가, 메시야 왕국을 제시한다. 9-11장에는 다윗-솔로몬의 민족주의(제국주의)와 하나님 나라의 보편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되고 있다(역사적 가현설의 경계). 하나님의 대안적 국제질서는 다윗과 같은 이상왕이 남북 이스라엘 지파들을 통일하여 인근 족속들을 아우르는 메시야적 국제질서다(사 11:13-16; 16:5). 블레셋, 암몬, 에돔, 모압은 다시 다윗왕같은 이상왕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혜택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앗수르 제국의 왕들은 피묻은 군복과 야만적인 군화로 세계를 강제로 병합하고 압제와 폭력으로 다스렸으나 이사야가 꿈꾸는 국제질서는 다윗 왕과 같은 공평과 정의의 왕이 다스리는 세계다.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가 평화의 행렬을 주도하는 세계다(사 11:6).
이사야 12장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이 주도하는 포로들의 고토귀환을 즐거워하는 노래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찬양이다. 12장은 출애굽기 14장의 미리암의 찬양을 되울리는 찬양으로서, 앗수르로 끌려간 이스라엘/유다 포로들의 귀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노래다. 이제 이상왕 다윗의 후손에 의하여 주도되는 이스라엘/유다 포로들의 고토귀환은 열국에게는 하나님의 구원 대사(大事)의 절정이다(사 11:10-12).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사야 1-39장의 제 1부격인 이사야 1-12장이 제시하는 미래적 구원은 다윗적 이상왕에 의하여 주도되는 앗수르(바벨론)포로들의 고토귀환과 남북지파의 통일 및 주변민족에 대한 통일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배의 실현이다.
1. 본문 사역(私譯)
9:1b[MT 8:23b] 지난 날 그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굴욕적으로 낮추셨으나, 훗날에 요단강 건너 해변 길과 이방인들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2(1). 어둠 속을 걷던 백성들은 큰 빛을 보았다.
칠흑같이 깊은 어둠의 땅에서 살던 사람들, 그들에게 한 빛이 비취었다.
3(2). 당신께서 [그들의] 환희를 몇 곱절로 크게 하셨고
그들의 기쁨을 크게 더하셨다.
그들이 추수할 때처럼, 전리품을 나눌 때처럼 기뻐한다.
4(3). 그들이 짐진 멍에를, 그들의 어깨 위에 걸려있는 빗장을,
그들의 압제자의 몽둥이를, 당신께서 미디안을 치던 날처럼 부수셨다.
5(4). 유린하는 전사의 모든 군화들과
피로 뒤범벅된 모든 옷들이 불살라지며 소화(燒火)될 것이다.
6(5). 왜냐하면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기 때문이다.
권세가 그의 어깨 위에 걸려있다.
그는 환상적 지략가, 강력한 용사,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방백으로 불린다.
7(6). 그의 권세가 커질 것이며
다윗의 위(位)와 그의 왕국에는 끝없는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평과 정의로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탱함으로써.
만군의 야웨의 열심이 이루시리라.
2. 9:1-7의 역사적 배경과 삶의 자리(Sitz im Leben)
칼 마르티(K. Marti)를 필두로 하여 역사비평적 주석가들은 메시야 예언시의 역사적 진정성을 부인해 왔다. 크게 보면 언어적, 역사적, 그리고 교리적 근거에 의지하여 이사야의 친저성(親著性)을 부인한다.
언어적 논거는 빈약하다. 어떤 시대에도 가능한 언어들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르티나 그레이 둘 다 이 언어적 논거는 결정적일 수 없다고 인정한다.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의 예언은 거의 전적으로 위협적이고 심판적인 예언이었으며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는 포로기 이후에 추가된 것이라는 19세기 마르티의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주석가들마저도 이런 원칙이 이사야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Guthe). 극단적 역사비평가들마저도 인정하는 이사야의 진정성 예언 중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7장: 스알야숩, 임마누엘 예언).
또한 이사야가 하나님 자신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거나 정치적 의미가 퇴색한 종교적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는 하였지만 9:1-7과 같은 철두철미 정치적인 성격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종교적 의미가 거의 없는-은 선포하지 않았다는 마르티의 견해도 과장된 것이다. 이사야는 왕, 관리, 판관 등의 위계질서나 구체적 신정통치의 지상대리자들이 배제된 미래회복을 예언한 적이 없다(1:26). 본문에는 왕조의 단절을 전제하거나 포로살이로부터의 회복을 암시하는 어떤 말도 없다. 포로기 혹은 포로기 이후 어떤 시점에도 다윗 왕조의 회복을 꿈꾸는 예언자적 감수성이 이사야 9:1-7에서처럼 표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신학적 계기를 찾을 수 없다.
이상에서 우리는 9:1-7의 이사야적 진정성(Isaianic authenticity)을 부정하는 견해들이 거의 매우 희박하고 주관적인 추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예언시의 이사야적 진정성을 옹호한다. 첫째, 우리는 이 단락의 역사적 맥락이 주전 8세기 이사야의 예언활동의 맥락과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8:21-22(개역성경)은 명백하게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 북쪽 영토의 병탄과 정복을 전제하는 역사적 단초를 담고 있다. 두 번 째로 우리는 이 예언시의 신학적 모태가 다윗 왕조의 공식적인 신학이었던 왕정신학(다윗 언약)임을 주목한다. 왕정신학은 포로기 이전의 유다 왕조에서 옹호되던 신학이었다는 사실과 이사야의 많은 다른 진정성 있는 예언이 왕정신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본 단락의 이사야적 기원을 옹호한다.
8:19-23(특히 21-22)(개역 8:19-22)은 9:1-7의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이 예언시의 역사적 배경은 BC 732년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결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북쪽 지역이 앗수르의 속주(屬州)로 편입된 사건이다. 8:19-23은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전후에 북이스라엘 왕국을 지배한 정치적 위기와 영적 곤경을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이 재난의 발생과 경과를 목전에 두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죽은 자들을 찾는 것은 영적인 일탈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에 따라 지도하지 않고백성들을 영적으로 오도(誤導)한다(21-22절). 그래서 결국 앗수르는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을 궤멸시키는 과정에서 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여 앗수르의 속주로 편입시킨다. 9장은 앗수르의 병탄(倂呑)으로 흑암에 빠진 스불론, 납달리(갈릴리) 지파의 구원자로서 한 이상적인 다윗 계통의 왕이 등극하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은 백성들이 귀의(歸依)할 대안 공동체는 다윗과 같은 이상왕이 다스리는 통일 왕국임을 확신한다. 이사야는 당시의 유다 왕조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귀의할 만한 보금자리가 된다고 보지 않고 다윗과 같은 이상왕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 아래서만 분열 이전 시기, 12지파 통일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북이스라엘의 병탄된 지역의 지파들의 미래가 다윗 왕과 같은 이상왕의 군사적 정치적 수복 행위에 의하여 담보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예언시는 북이스라엘 왕국(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로 대표되는)이 앗수르의 속주로 병탄되어 앗수르의 무거운 폭력과 압제 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한편 양식비평적으로 분류하자면 9:1-7은 대관식 예언이다. 그것은 어떤 주석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왕자(왕)의 생물학적 출생을 다룬다기보다는 야웨의 아들로 태어나는 다윗계열 왕의 왕위 즉위식을 다룬다. 다윗 계열의 왕들의 즉위식 때는 메시야적 통치시대가 도래할 것에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시 72편). 9:1-7의 특이한 삶의 자리가 대관식이고 그것이 이사야의 생애에 선포된 대관식 예언이라면 그것은 히스기야의 왕위 대관식을 기점으로 선포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어떤 히스기야 연대에 따르더라도 히스기야는 BC 725년(성경자료를 근거로 계산한 클레멘츠의 주장)과 BC 715년(왕하 18:13과 앗수르 자료에 근거한 학자들과 필자의 주장) 사이에 왕위에 올랐음에 틀림없다.
북이스라엘의 병탄당한 지파들에 대한 이사야의 고뇌와 동정어린 예언자적 열정이 히스기야 왕의 대관식 신탁시 속으로 편입되어 다시 창조적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예언시는 BC 732-715년 사이에 저작되고 히스기야의 대관식에 즈음하여 공표된 예언시일 가능성이 많다. 9:1-7은 다윗 왕의 한 후손(히스기야)이 왕위에 오를 때 다윗-시온신학의 신봉자인 이사야가 시 72편의 정신을 바탕으로 지은 예언시였을 것이다.
라버츠(J. J. M. Roberts)가 잘 지적하듯이, 9:1-7은 먼 미래를 위한 희망의 예언이 아니라 이제 막 왕위(다윗의 위)에 오른 새 왕의 치세에 대한 종교적, 정치사회적 기대를 표명한 하나의 정치신학적 신탁이다. 이 단락은 야웨 하나님께서 다윗과 다윗의 후손을 그의 지상 나라의 부왕(副王, 메시야)으로 영원히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유다의 왕정신학의 신학적 확신을 반영한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위에 오른 시기(BC 715년)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후(BC 722년)였다.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무엇인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이사야는 현재 유다 왕(아하스)말고 이상적인 다윗의 후손이야말로 남북통일과 앗수르의 압제로부터의 해방과 앗수르로 끌려간 북이스라엘 10지파의 포로귀환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앗수르의 압제적 통치 아래 신음하는 북쪽 지파들이 맛보게 될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 예언의 일부인 9:1-7과 북이스라엘 왕국의 주요 지도층의 임박한 앗수르 유배와 국가조직의 붕괴를 예고하는 9:8-21을 함께 읽어보면 우리는 9장 전체의 메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9장은 BC 733-732년, 혹은 BC 722-721년 어간의 북왕국의 상황을 배경으로 북왕국 전체의 운명과 부흥된 다윗 왕국의 관계를 다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해석
9:1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강제로 앗수르의 속주(Duru, Mugidu, Galuaza)로 편입된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굴욕적인 과거사가 메시야와 그의 왕국 등장의 전경(前景)이다. 1절 하반절은 요단 강 바다 길과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갈릴리 지역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노래한다. 9:21과 11:13을 고려해 볼 때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몰락과 굴욕을 남북왕국의 분열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였던 것 같다. 8:23b-9:1이 소개하는 짙은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는 백성들은 BC 732-722/721년 사이에 앗수르의 압제적 지배 하에 살던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앗수르의 지배라는 어둠과 절망 속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절망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비취어 올 “큰 빛”은 그들의 참담한 암흑의 운명을 끝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큰 빛” 은 한 위대한 왕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통치의 혜택을 가리킨다. 앗수르 왕의 막대기와 몽둥이 아래 학대를 당하던 백성들을 신원(伸寃)하러 한 왕이 오실 것이다(10:24-27).
3절은 흑암 속에 살던 사람에게 큰 빛이 끼칠 효과를 말한다. “당신께서 환희를 몇 곱절로 크게 하셨고 기쁨을 크게 더하셨다. 그들이 추수할 때처럼, 전리품을 나눌 때처럼 기뻐한다.” 추수할 때의 기쁨과 전쟁에서 승리하여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학대받던 백성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시 126). 왜 이렇게 기쁜가? 세 가지 세부적인 이유들이 제시된다.
첫째, 기쁨의 근원은 당신의 백성을 친히 속량(贖良)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이다. 2인칭 단수로 표현된 “당신(야웨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짐진 멍에를, 그들의 어깨 위에 걸려있는 빗장을, 그들의 압제자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던 날처럼 부수셨기” 때문이다(4절).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해방과 구원 사역이 대적에게 끼친 효과와 관련된다(5절). “유린하는 전사(戰士)들의 모든 군화들과 피로 뒤범벅된 모든 옷들이 불살라지며 소화(燒火)될 것이다”(5절). 결국 4-5절에서 흑암 속에 주저앉았던 백성들에게 베풀어 질 구원은 정치적 군사적 구원이다. 앗수르의 정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구원의 실체다. 앗수르 제국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키는 방법은 “야웨의 전쟁”(the holy war)이다. 즉 현실정치적 차원의 갈등이나 군사적인 대결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 이 말은 앗수르 제국을 현실세계에서 군사적으로 제압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편, 앗수르 제국의 분쇄는 하나님 자신의 전쟁 몫으로 유보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적수(敵手)로 여겨지는 외국 군대는 현실적 전쟁으로는 도저히 이길 가망성이 없는 거의 절대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이사야가 앗수르의 압제로부터 해방하는 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 이미지로 말한다는 말은, 이런 예언이 앗수르에 대한 대항정책이나 군사적 저항을 유도하는 데 사용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앗수르를 패배시키고 주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에 섣부른 앗수르 대항정책은 결코 사려깊은 믿음의 행위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앗수르 제국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분쇄될 것이며 인간의 예상과 기대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10:12, 25; 14:24-27; 30:27-33).
이사야는 여기서 앗수르 제국의 정치적 지배를 종식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은 갑작스런 구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북이스라엘 왕국(므낫세 지파)에 유명하게 알려진 기드온의 야웨 전쟁 전승에 호소한다(삿 6-7장). 기드온 사사 시대에 미디안 족속은 정규전으로는 이길 가능성이 없었던 적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지파의 가장 작고 소심한 기드온을 쓰셔서 미디안 세력을 격퇴하였다.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을 벌였을 때 도왔던 지파들이 바로 아셀, 스불론, 그리고 납달리 지파였다. 부분적으로는 이 예언시의 암묵적(가상적) 청중들인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들이 관련된 구원사 전승에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삿 6:31). 기드온의 예상 밖의 승전은 하나님의 승리로 기억되고 기념되어졌고 “미디안의 날”은 야웨의 전쟁 승리를 기리는 국경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 땅에서 패퇴하여 철수하는 길은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 즉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의 영원한 기념물은 다윗 제국이다. BC 10세기 약 80년 동안 시리아-가나안 일대를 제패한 다윗 제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의 위력을 영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기념물이다. 이사야는 지난 200 여 년간의 분열왕국 역사를 회고해 보면서 다윗 제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결과로 주어진 선물(구원)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9-12장은 이사야가 출애굽 전승-사사시대의 구원사 전승-다윗 제국의 구원전승(거룩한 전쟁 전승), 즉 통합이스라엘의 구원사 전승에 정통하였음을 보여준다. 미디안 족속에 대한 기드온의 거룩한 전쟁전승에 대한 호소는 이상적인 다윗의 후손,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의 도래에 대한 동경을 예기하며 이내 다윗 왕같은 이상왕에 대한 학수고대로 귀결된다. 찬탈자 베가(Pekah) 치하의 북이스라엘의 왕국이 아람의 하수인이 되어 유다를 압박할 때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기탄없이 예언하였지만(사 7:1-7; 17:3-11), 정작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환난에 대해서는 통절한 예언자적인 동정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익숙하게 알려졌을 므낫세 지파의 영웅 기드온 구원전승에 호소하며 다시 한번 “야웨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실제로 위로가 되었을 수가 있다. 이사야는 므낫세 지파로 대표되는 북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예언한다.
4-5절이 구원의 소극적 차원인 앗수르 제국의 정치적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데 비하여, 6-7절은 하나님 구원의 적극적 차원을 말한다. 앗수르의 채찍과 쇠빗장과 멍에로부터의 해방이 구원의 전부가 아니다. 6-7절이 말하는 적극적이며 영구적인 구원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다윗왕 같은 왕의 통치(나라)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이사야(11:1-9와 더불어)는 앗수르의 폭력적인 제국질서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이상화된 다윗 제국을 넌지시 대조한다. 비록 현실은 앗수르 제국의 군주들-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옷들을 입은-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사야는 한 아들, 한 아이가 다스리는 나라를 갈망한다. 이사야에게 다윗의 나라, 즉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나라는 앗수르 제국에 대하여 대항왕국이자 대안왕국(alternative kingdom)이다. 앗수르 제국은 폭력으로 세계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동체다. 약한 나라의 목과 어깨 위에 압제와 굴욕의 멍에를 짐지우고 자신의 자유를 무한히 확대하려는 권력의지(Wille zur Macht)가 앗수르 제국의 본질이다. 앗수르 제국은 하나님이 위임하신 세계심판 대행자의 위치를 크게 벗어나 인근 나라들의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였고 하나님 나라에 맞서는 자신 중심의 세계국가를 건설하려는 권력의지의 화신이다(10:7-19). 이런 앗수르 제국주의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아주 불안정한 공동체다. 자기권력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되는 나라다. 네루가 그의 <세계사 편력>에서 설파하듯이 세계역사는 제국들의 무덤이다. 이사야는 앗수르 제국의 존재론적인 취약성을 알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단죄한다(10:5-19).
이러한 앗수르 제국의 대항적 대안적 왕국인 나라는 하나님의 부왕(副王), 다윗의 후손이 대리적으로 다스리는 나라다. 기쁜 소식은 새롭게 태어난 아들에 관한 소식이다. 그런데 6절은 왕세자(a royal prince)의 생물학적 출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아이/아기의 “탄생”은 한 다윗 계열의 왕의 왕위등극을 가리킨다. 다윗의 위에 오르는 왕은 다윗 계열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다(시 2:7; 시 72편; 참조. 시 89, 132편; 삼하 7:12-16). 7절이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아이는 “탄생”하자마자 권위를 덧입고 공의의 허리띠와 정의의 요대(腰帶)를 착용함으로써 왕의 의관을 갖춘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새 왕의 등극은 항상 기쁜 소식이었다. 대사면령이 내려지고 희년과 같은 경제적 정치적 부채탕감이 선포되기도 하였다(메소포타미아의 mesharum 전통).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정신학의 핵심은 왕은 가난한 자의 구원자요 고아와 과부의 재판관이라는 규정이었다. 왕은 신의 구원을 정치경제적으로 중개하는 신의 대리자였다. 그래서 폭력으로 다스리는 자(막 10:41-45)의 쇠빗장 아래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왕의 탄생(등극)은 기쁜 소식이다.
앗수르 왕들은 자신의 원정일지 및 연대기 통치일지들(국제종주봉신 조약들)에서 자신들을 항상 땅 사방의 천하를 다스리는 대왕으로 부르며 온갖 수사학을 동원하여 자신을 “큰 자, 위대한 자”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다윗의 나라는 한 아기, 아들의 성품을 가진 왕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 “아이,” “아기”라는 칭호는 다윗의 후손이 왕위 대관식 때 하나님을 향하여 아들(메시야)로 입양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대리자임을 강조한다. 앗수르 왕이 권력의지의 화신이라면 다윗의 후손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부인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결국, 6절에서 구원의 기쁨이 크게 더하여 진 세 번째,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제시된다. 그것은 앗수르 제국과 전혀 다른 나라를 건설하실 왕의 등극이다. 이사야가 이런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할 즈음에는 유다의 다윗 왕조 자체의 존속자체가 의문시되던 시대였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한 가지 목표는 유다 내에서 다윗 왕조의 법통을 단절시키고 아람 출신 벤다브넬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었다(사 7:5-6)는 것을 고려해보면 다윗의 적법한 후손이 유다의 왕위에 오른다는 일이 얼마나 큰 구원의 안도감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즉 아직도 다윗 계약이 유효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7절의 “지금부터 영원까지”라는 표현은 왕위계승에 관한 하나님의 계약적 사랑과 투신을 영속적으로 보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한 아들(왕위 계승자)의 탄생(수동태로 표현)”은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지(다윗 왕조 유지의지)의 산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악한 계획(사 7:5)들을 무력화시키고 좌절시키는 하나님의 대항계획인 셈이다. 다윗의 후손 왕위계승자는 비록 인생막대기와 채찍에 맞아 징계와 연단을 받을지언정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윗계약의 핵심조항은 결코 폐기되지 않았다. 이사야 7:14에서 이사야는 이미 임마누엘 이름예언을 통하여 다윗 계약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적 투신과 사랑을 확증하였다.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다윗-시온신학의 전통적인 공식신조였다(시 46-48편). 임마누엘 예언은 다윗 왕조의 법통(法統)을 단절시키고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을 원천무효로 만들려던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악한 계획의 임박한 좌절을 확증한 예언이었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은 유다 내에 다윗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현저하게 약화시켰을 것이다. 심지어 유다 왕 및 지배층들도 유다 왕조와 야웨 하나님 사이에 있다고 믿어진 다윗 계약의 유효성을 크게 의심하였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유다 안팎의 신학적-정치적 위기에 대한 대답은 임마누엘 예언과 그것의 시적 해설과 같은 9:1-7이었을 것이다. 이사야는 이상적인 다윗 계열의 왕, 즉 메시야를 생생한 시적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다윗 왕조를 뒤흔든 정치적-신학적 위기를 돌파하였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다윗 왕조는 신인 과두(diarchy) 체제임을 주장하는 시편 89:3-4, 19-37의 주장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님의 우주적 나라는 다윗 왕조의 정치적 역량에 의하여 대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의 탄생 선언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다윗(다윗의 후손) 사이에 정립된 양두(兩頭)정치체제적 관계다(시 89). 이 양두체제 관계는 다윗-솔로몬 왕정신학의 뼈대 중의 하나다. 다윗-솔로몬의 유다 왕정신학은 세계가 하나님과 그 아들 다윗적인 왕의 공동 통치영역이라고 본다(특히 시 89:27-28).
7절의 “다윗의 위(位)”는 사무엘하 7:12-16의 다윗 계약(the Nathan oracle)을 즉각적으로 상기시키는 말이다. 여기서 “다윗 왕조는 반드시 다윗의 적법한 후손에 의하여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이 상기된다. 이사야는 다윗 왕조에게 준 나단의 예언-다윗계약-의 충실한 신봉자였다(사 7:3-4). 이사야는 ‘왕’이라는 중보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역사 속에 구체화(materialize)시킬 수 있는 섭리적 도구가 된다는 왕정신학의 신봉자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사야가 다윗의 위를 언급한 첫째 맥락은 최근에 일어난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에 의한 다윗 왕조 멸망시도에 대한 야웨의 응답을 들려주려는 맥락이었다. 다윗 언약의 한 가지 핵심은 다윗의 후손에 의한 다윗의 위의 항속적 유지였음을 생각해 보면 다윗의 위에 한 이상적인 왕이 등극한다는 것은 다윗 왕조에 대한 야웨의 전폭적인 투신을 웅변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울러 이사야는 이 예언시를 통하여 “다윗의 위”를 언급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이 대부분 몰락하고 멸망되어 가는 역사적-신학적 위기에 모종의 응답을 주려고 한 것 같다. 즉 10지파의 실체가 끝끝내 완전히 해체될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이사야는 분열왕국 이전의 다윗 통일왕국적 기상 회복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윗 제국과 같이 포용력 넘치고 정의로운 나라 건설이 오히려 남은 북왕국 백성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역대하 30장; 참조.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의 잔존에 대한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의 편린을 보려면 시 78:67-68을 보라). 그래서 이사야는 북왕국의 남은 백성들과 남왕국 유다 사이에 진정한 형제자매적 우애가 회복되기를 열망하고 예언한다(9:21; 11:13-14). 참다운 다윗 제국의 회복은 지파간의 내분, 동포들간의 분쟁과 적개심을 청산하고 형제자매적 우의와 사랑을 회복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였다. 앗수르 제국을 진정으로 제압하는 길은 앗수르 제국적인 폭력과 탐욕과 적개심으로 분열되어 싸웠던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형제자매적 우의와 사랑을 회복하여 앗수르 제국이 감히 실현할 수 없었던 가치와 덕을 구현하는 데서 발견된다고 보았던 것 같다. 다윗적 통일왕국과 사사시대적(12지파 통일적) 계약공동체적인 가치실현과 평화와 의에 입각한 삶의 질을 구현함으로로써 앗수르적 폭력과 야만질서를 초극하는 것이 길이었다.
다윗의 후손 왕이 왕위 즉위식 때 부여받았던 영예로운 칭호들이 그의 통치의 방향에 대한 이러한 예언자적 기대가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다스림은 북왕국의 남은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사 12장). 그 이상왕은 열국으로 흩어졌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의 이산한 자와 포로들이, 돌아가야 할 기준과 깃발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보인다(11:10-12). 이런 통일이스라엘적 재결합과 회복의 지도자인 메시야의 통치의 특징은 “권세”의 정당한 사용을 통한 무한한 “평화”의 창조다. 새 왕에게 주어진 이 네 가지 이름들은 그의 권세의 근거와 그가 창출할 평화의 질과 범위에 대하여 말해준다. 새 왕에 대한 이러한 네 칭호들은 고대 이집트의 왕위 즉위식 때 받았던 다섯 가지 영예로운 칭호들과 견주어 진다(왕상 3:1; 7:8; 9:16).
“그는 환상적 지략가(ץעוי אלפ), 강력한 용사(רובג לא),
영원한 아버지(דעיבא), 평화의 방백(םולשׁ-רשׂ)으로 불린다.”
환상적인 지략가(智略家, ץעוי אלפ[펠레 요에츠])는 정책결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탁월한 통치능력을 발휘하는 왕을 가리킨다. 다윗의 후손 왕이 환상적인 지략가가 되는 이유는 이사야 11:2에서 발견된다. “야웨의 영, 지혜와 통찰의 영이 그 위에 머물리라. 지략과 용맹의 영, 지식과 야웨를 경외하는 영이[그 위에 머물리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선포된 또 다른 메시야 예언시인 11:1-9은 이사야 9:1-7과 이부작(doublet)을 이룬다. 야웨의 영을 상징하는 감람유가 대관식에 참석한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부왕(副王)에게 한량없이 쏟아 부어진다. 그래서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חישׁמ)가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상적인 지략가는 전쟁의 도모와 계획에서 신적 재능을 과시하는 왕이다. 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이 칭호는 전쟁수행의 전문가요 탁월한 전략가를 의미하였다(사 36:5: 모략[הצע]과 용맹[הרובג, 그부라]의 대구어로 사용). 사무엘상 17장부터 사무엘하 10장까지는 적어도 다윗이 어떤 점에서 펠레 요에츠의 범례적 인물로 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숱한 승전기록을 열거한다. 결국 고대 근동사회(이스라엘/유다)의 왕에게 펠레 요에츠(ץעוי אלפ)라는 칭호는 최고의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 칭호는 펠레 요에츠의 두 번째 의미를 강화시키는 시적 평행어다. “강력한 용사”(רובג לא, 엘 기뽀르)는 전쟁시 용맹을 발하는 군사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거룩한 전쟁”을 영도하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현실적인 군사작전을 무모하게 추진하는 돈키호테식 무골형(武骨型) 지도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고대 이스라엘/유다 사회에서 왕은 전시사령관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이었다. 믿음으로 무장한 군사 지도자가 엘 기뽀르다. 또 한편 이 칭호는 재판과정에서 신적 지혜를 과시하는 재판관이라는 뜻도 가능할 것이다(시 82:6와 출 22:28[요 10:34]은 엘/엘로힘을 재판관이라는 의미로 사용; 참조 사 10:21). “환상적인 지략가”이자 “강력한 용사”인 메시야 부왕(副王)은 인근 나라들을 정복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평과 정의의 확장과정이다(사 16:5; 참조 11:14; 이사야 11장 1-9절). 그들은 군사적 정복자를 넘어서 공평과 정의의 재판관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해방시키는 거룩한 전쟁수행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아버지(דעיבא, 아비아드)는 가정을 돌보는 가장으로서의 자애로움과 근면한 행정관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메시야는 아버지로서의 먹이는 책임과 돌봄의 책임을 완수하는 지도자다. 아비아드는 압제자의 이미지와 전혀 거리가 멀다. 섬기는 종, 청지기같은 지도자가 바로 아비아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부왕은 “평화의 방백”으로 불린다. םולשׁ-רשׂ은 전제권력을 휘두르는 권력남용형 지도자가 아니라 축소된 지방행정관 같은 방백이다. 메시야 나라에서 왕위에 오른 지도자는 하나님의 부왕으로 자신을 급진적으로 축소시키고 부정한 사람이다. 권력의지를 부인하고 종과 지방행정관과 9급 공무원같은 청지기 정신을 가진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메시야 왕국에 근사치적으로 근접하는 공동체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하나님의 부왕의 왕좌는 굳건해지며 그의 왕국은 확고부동하게 세워질 것이다.
“그의 권세가 커질 것이며 다윗의 위(位)와 그의 왕국에는 끝없는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왕국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평과 정의로 굳게 세워지며 지탱되리라.”
메시야의 왕국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확고부동해 질 것이다. 평화는 공평과 정의의 토양에서 피는 꽃이기 때문에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다윗 제국은 지리적으로 끝이 없고 시간적으로 끝이 없는 평화를 이 세상에 가져올 것이다(사 32:16-20). 이런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자적 상상력을 점화시킨 역사적 실체는 공평과 정의로 다스렸다고 증언되는 다윗 제국이었다. 삼하 8:15와 삼하 23:3은 다윗 통치의 특징이 공평과 정의의 실행이었다고 증언한다. 솔로몬이 공평과 정의를 집행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모략을 하나님께 일 천 번이나 간구하였을 때 그의 왕국은 견고해졌다(왕상 3:6; 참조 왕하 2:36). 공평과 정의는 하나님 보좌의 기초석이기 때문에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공동체만이 하나님의 다림줄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한 왕조나 공동체가 안정성있는 구조물/건축물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줄과 추를 사용하여 가늠하신다. 공평과 정의가 부서진 곳은 하나님의 심판의 타격에 의하여 무너지게 된다(사 5:7; 5:16; 28:16-17; 시 89:12-13, 15). 공평과 정의의 기초석 위에 건축된 공동체만이 항구적으로 존속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사야의 메시야 정치신학의 핵심논지다. 다윗의 후손, 메시야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한 그의 나라는 결코 붕괴되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강성해지고 견고해져 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이스라엘은 어떠했던가?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은 이런 메시야적 기준에 아득히 못 미치는 현실,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채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진동하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초극(超克)한다(5:25; 9:12, 17, 21; 10:4).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들이 꿈꾸는 묵시의 세계로부터 눈을 다시 현실로 돌려보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최근에 북이스라엘 왕국 백성들은 극단적인 위기에 내몰리자 신접한 자들을 찾아다니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려고 하였고 왕과 하나님을 동시에 저주하였다(개역 8:19-21).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그림자는 여전히 북이스라엘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에브라임은 지파간의 내전, 유다에 대한 형제상잔적 전쟁, 우상숭배와 외교적 파탄, 중대한 영적 정치적 오판으로 인하여 거의 침몰직전의 기선과 같은 처지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매를 맞고도 각성에 이르지 못한 채 중대한 영적-정치적 위기를 임시변통적 미봉책으로 대응한다(9:8-21). 이사야는 북왕국의 중심구성원들이 앗수르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예언한다(9:14-16). 그들의 앗수르 유배는 계속적인 불신실함과 야웨께로 돌아오는 회개 거부로 인하여 자초된 운명이었다(9:8-10:4).
그렇다면 유다는 또한 어떠한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포용할 만큼 충분히 성숙한 메시야 나라를 이루었던가? 이사야서는 의도적으로 메시야적 기준에 못미치는 현실적인 다윗의 후손인 아하스 왕과 9장의 이상왕을 대조시킨다. 9장의 이상왕은 아하스 왕에 대한 대안적인 왕인 것이다. 부분적으로 히스기야의 정치는 다윗 왕적인 선정(善政)에 의하여 특징지워지는 것처럼 보이나, 히스기야의 반(反)앗수르 저항정책-친애굽동맹 정책(사 22:8-11; 28:14-22; 29:15-16; 30:1-5, 6-8, 15-17; 31:1-3)은 메시야적인 평화와 안정(구원)이 아니라 자가추진적 구원방책을 강구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대파국적 재난으로 몰아갔다(사 6:11-13; 7:18-25; 참조. 5:26-30). 이사야는 이런 메시야 예언시를 통하여 현실을 비판하며 초극해 보려고 하였다. 현실의 다윗 왕가가 그러한 메시야적 통치를 선취(先取)하도록 촉구하였다(사 28:12, 16-17; 30:15; 33:14-15; 참조. 1:21-26; 32:1-8).
그럼 누가 이런 미래를 기획하고 실체화할 것인가? 이사야의 대답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는 미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책임을 사상(捨象)시키거나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없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종말론적 차원이 있다는 말이다. 종말론적인 차원 혹은 하나님의 구원의지에 맡겨진 미래 등의 말들은 이런 비젼(vision)이 역사의 중간시기에는 어쩌면 실현될 수 없는 꿈에 머물 수도 있다는 겸허한 시인이 들어있다. 오로지 “만군의 야웨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군의 야웨가 과시할 열심은 인간의 자발적인 선취적(先取的) 실천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주도권은 인간적인 실천의지와 사명감을 한층 더 고양시킨다.
그러나 히스기야나 어떤 유다의 왕도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통치를 지상에 구현하는 데 실패하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영속적이고 이상적인 제왕의 덕목을 가진 한 이상왕을 제시하는 이사야 9:1-7는 종말론적인 해석에 열린 예언시로 남아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예언시는 현실초극의 예언시였으면서 동시에 미래에 오실 한 종말론적 이상왕에 대한 희망의 노래로 남게 된다.
4. 소결론: 메시야 예언의 기투적 읽기- 갈릴리에서 오신 이, 나사렛 예수
이사야 9:1-7은 다윗의 한 아들이 와서 이방민족(앗수르)의 압제에서 고달픈 백성을 구출하는 자신의 구원사역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곳이 바로 스불론-납달리-갈릴리 지역임을 증언한다. 따라서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전승에 의하면 메시야는 갈릴리에서 그의 구원사역(큰 빛)을 착수하여야만 한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오신 메시야라는 점을 강조한다(마 4:12-16; 참조 2:23).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다윗의 위에 앉을 이상왕이 앗수르의 제국주의적인 통치 아래 신음하는 백성(이스라엘)들을 구출해 주듯이 나사렛 예수, 다윗의 위에 앉은 나사렛 예수는 갈릴리에서부터 이상왕의 구원활동을 시작하심으로써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다윗의 아들, 이새의 줄기에 나온 싹(네제르)(마 4:23, 나사렛 사람)임을 입증하신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무정부 상태 아래서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에 대한 대안임을 선포하신다(막 1:14-15). 주기도문에도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지상 건설이 으뜸되는 청원대상이 된다(사 33:5; 참조 창 18:19). 모든 나라들과 왕국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로 흡수되고 병탄될 것이다(요한계시록 11:15).
이사야 9:1-7은 현실비판적 예언임과 동시에 메시야적 미래를 향하여 스스로 기투(企投)하는 존재가 되도록 초청한다. 이사야에게 메시야적 미래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야웨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는 메시야 왕국의 실현이다. 그것은 역사의 중간기에서 실현되지 못한 채 종말의 시점으로 유보된다. 메시야 왕국 예언의 실현이 종말의 시점으로 유보된 까닭은 청중/독자들로 하여금 그런 미래를 현재 속으로 끌어들이도록 촉구하는 하나님 자신의 선교활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결국 메시야 예언을 현재 시점에서 실현하려고 기투하는 사람은 종말을 현재 속에 앞서 끌어들이는 사람이다.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에 대해 가장 적확하게 응답한 사람이 바로 나사렛 예수시다.
나사렛 예수는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의 언어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메시야의 길을 발견하였다. 나사렛 예수는 종말의 한 시점으로 실현을 유보한 메시야적 예언들을 자신의 현재 속에 선취(先取)함으로써 메시야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는 메시야로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 예언들에 자신을 결박하고 순종함으로써 메시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셨다.
IV. “남은 자” 사상에 나타난 이사야의 민족화해 신학
두 차례에 걸친 앗수르의 침략으로 거의 초토화된 후 멸망해 버린 9와 1/2지파의 땅, 북왕국 백성들은 총체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다(BC 732, 722).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고유한 하나님의 백성이자 모든 족장 약속의 정통적인 계승자였던 9와 1/2지파는 이제 영원히 소멸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용도폐기되고 마는가? 이러한 신학적 질문들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은 남은 자 사상이다. “남은 자” 사상은 한마디로 “난민(難民)신학”이요 해체당한 공동체의 창조적 미래를 기도(企圖)하는 신학이다. 이사야는 “남은 자 신학”을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난민들을 신학적으로 흡수, 포용하여 사사시대적인 이상사회, 즉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는 미래를 꿈꾸었다. 이사야는 한편으로는 메시야 사상을 통하여 다윗 왕국적인 통합의 논리를 제시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왕이 시작되기 이전의 사사시대적 평등적이고 형제우애적인 이상사회를 통하여 통합의 논리를 제시한다(4:2-6 참조).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을 다루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BC 732-722/1년의 이스라엘 멸망기의 재난(전쟁 및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그 미래에 대하여 언급하는 본문들이다(7장 3-4절; 10장 20-23절; 28장 5-6절). 둘째, 남유다의 “남은 자”에 대하여 말하는 본문이다(1장 8-9절과 30장 17절). 셋째, 남유다 및 북이스라엘의 포괄적인 남은 자와 그 미래를 언급하는 본문들이다(6장 11-13절; 4장 2-6절). 남은 자 사상은 시적인 암시의 형태로 이사야의 소명묵시에서 이미 발견되다. 그러나 그의 예언자적 목회활동의 연대기적 순서로 보면,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남은 자 사상을 통한 희망적 미래예언을 촉발시킨 첫 역사적-신학적 계기가 되었다. BC 732-722/1년이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예언의 역사적 시점이라고 볼 수 있고, BC 701년 산헤립의 유다침략과 거의 전국토의 초토화는 남유다의 “남은 자” 및 남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연합에 대한 예언의 배경을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BC 701년 전후의 남은 자 사상을 드러내는 4:2-6은 다루지 않고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해체기 전후의 남은 자 사상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그의 긴 예언활동 동안에 그 자체 안에서 하나의 발전을 겪는다. 이사야의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 처음에는 그다지 깊은 신학적 차원을 갖지 않으나(처음에는 군사적 의미만 부각) 시간이 갈수록 신학적 사상/개념으로 발전해 간다.
이사야의 소명묵시에서 묘사된 “거룩한 씨” 예언은 좀 더 뒤에 발전된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의 남은 자들의 미래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자적인 전망의 출발점이 된다.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에 대한 조감도격인 6:9-13은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의 남은 자들은 거룩한 씨로 보존되어 다음 세대의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인간편의 동반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다.
1. 이사야의 소명묵시에 있어서 “남은 자,” 거룩한 씨(6:9-13)
6:11-13은 대파국적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남은 자들임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불가피한 대파국적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거룩한 씨며, 이 거룩한 씨는 다음 세대의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전진을 위하여 선택된 인간 동반자들이다.
비록 그 땅 안에서 10분의 일의 땅에 남아 있을 지라도,
그것마저 불타게 될 것이다. 베임을 당하더라도 그루터기를 남기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처럼, 거룩한 그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다(6:13).
13절의 전체 문맥인 11-13절은 BC 701년의 앗수르의 산헤립의 유다 침공을 내다보는 예언이다. 결국 이사야의 “강퍅케 하는 소명”(the hardening commission)은 BC 705-701년의 히스기야의 반(反)앗수르 봉기와 이에 대한 산헤립의 유다 침공으로 종료되는 “앗수르 위기”(the Assyrian crisis)라는 역사적인 재난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이사야 6:9-10의 관점에서 보면 주전 701년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백성들의 마음을 무디게 한 이사야의 사역의 결실이다. 그러나 앗수르의 침략에 의한 성읍과 도시 및 가옥의 파괴, 국토의 황폐화와 거민들의 유배가 천상 어전회의에서 내려진 하나님의 결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13절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긍정적 효과를 암시적으로 언급한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참조 10:17-19) 그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넘치는 공의와 파멸의 심판을 행하시지만 (5:16; 10:22-23; 28:22; 33:5) 그 심판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낼 거룩한 씨를 남겨둔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의 궁극적인 사역은 거룩한 씨의 보존에 남긴 하나님의 변증법적인 계획/결단(הצע)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4-9; 4:2-6; 7:3-4; 10:20-23; 14:32; 28:5-6, 16; 30:14-17; 37:30-32).
여기서 거룩한 씨란 본래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만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청결한 의인들이 아니라 이사야 자신처럼 국가적인 재난의 형태로 집행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 거룩한 심판의 불길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하나님 결단의 신학은 단순히 앗수르의 제국주의에 대한 무기력한 인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및 신앙적인 책임을 천착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꿈꾸는 신학적 기도(企圖)였다(1:9-20; 30:17). 이 거룩한 씨의 보존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의 말씀은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4:2-6; 28:5-6; 10:20-23)-그것이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건 남유다의 남은 자건 상관없이-에 대한 예언적 전망으로 발전되었다. 심판의 불길을 통과한 하나님의 거룩한 씨들, 남은 자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구원의 열심(salvific zeal)에 의하여 향도(嚮導)될 것이다(9:6; 37:32).
2. “남은 자 사상의 발전”(7:3-4; 10:20-23; 28:5-6)
위에서 암시하였듯이,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발전한다. 처음에는 “남은 자”가 전쟁 및 군사적 대재난에서 살아 남은 자(사 30:17; 참조 1:8-9)를 가리키다가 나중에는 거룩한 씨로서의 남은 자,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성취하기 위한 남은 자(신학적 남은 자)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바뀐다. 이사야가 신학적 차원에서 남은 자에 대하여 처음으로 언급한 시점은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쇠락과 멸망 시점이다.
(1)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남은 자”들의 초라한 귀국(7:3-4).
이사야가 처음으로 “남은 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BC 735년 경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개전 초기였다. 왜냐하면 BC 733-32년 경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에게 포위된 아하스 왕을 도와주려고 만나러 갈 때 이미 그의 아들 스알야숩(“남은 자만 돌아가리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7:3-4는 스알야숩의 첫 등장을 시리아-에브라임 위기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배치한다.
가. 본문 사역(私譯)
3. 그래서 야웨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세탁자의 밭 옆에 있는 윗못 수로의 끝에서 아하스를 만나라.”
4. 그리고 너는 그에게 말하여라: “조심하여 진정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이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를 인하여,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의 격노를 인하여 네 마음이 낙담하지 않도록 하라.
나. 해석
7:1-14은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명백한 심판의 예언인 반면에 다윗 왕조에 대한 우호적인 예언이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시에 이사야는 시종일관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심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대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야웨께서는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오직 남은 자만 돌아가리라)의 이름 예언을 상기시키며 아하스 왕에게 보내어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스알야숩”의 문자적 뜻은 “오직 남은 자만 돌아가리라”라는 뜻이다. 전쟁과 재난(홍수)의 상황에서 “남은 자”를 언급할 때 그것은 대부분 전쟁과 재난에서 살아남은 작은 수를 가리킨다. 따라서 스알야숩 예언은 두 연합군 군사 중 오직 소수의 군사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인 셈이다(17:1-7을 참조). 스알야숩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적어도 3-4세는 되었을 것이다. 본문 중(3절)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을 강조한 것을 보면 이사야가 벌써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이 형성되는 초기부터(3년 전부터) 이 군사동맹의 실패와 좌절을 예언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정통신학인 이 다윗-솔로몬 왕정신학 전통의 계승자였기 때문에 다윗 왕조가 끊어진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팔레스틴을 정치적으로 장악하기 위하여 시리아-에브라임 반앗수르 동맹군을 분쇄하려는 앗수르 제국의 정치적 야심에 대한 현실정치적 통찰 위에 이러한 신학적 확신까지 겸하여 가진 이사야는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필연적 실패와 좌절을 확신하였다. 이사야의 “오직 남은 자만(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 중에서) 살아서 돌아가리라”는 이 “스얄야숩” 예언은 1년이 못되어 실현되었다. 실제로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은 BC 732년에 앗수르에게 치명적으로 패배당한 후 두 나라 군대 모두 극히 일부만 살아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시리아는 앗수르의 속주로 병합되어 정치적 실체를 상실하였고 북이스라엘은 영토 3분 1이상을 앗수르에게 병탄당하였고 “남은 자”만 간신히 생존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2) 이스라엘의 남은 자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께 돌아오라(10:20-23)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동안에 이사야는 베가 치하의 북이스라엘을 단죄하는 예언을 하였으나 급기야 BC 722/1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자 북이스라엘에 대한 신학적 복권을 서두르며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동정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10:20-23과 28:5-6이 이사야의 이러한 태도를 보여준다. 먼저 우리는 10:20-23을 “남은 자가 돌아간다”(בושׁי ראשׁ)는 선언의 신학적 차원을 살펴본 후에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준비된 미래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가. 본문 사역(私譯)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가문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에게 기대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야웨를 진정 의뢰하리라.
21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리라!
22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 중에서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흘러넘치는 공의로 파괴가 선언되었도다!
23왜냐하면 주 만군의 야웨께서 온 땅에 이미 끝났다고 선언되고 작정된 일을 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 해석
19절의 스알(ראשׁ)과 20-22절의 스알(ראשׁ)의 연결을 고려해 보면 10:16-19과 10:20-23 단락 사이에 대조적 대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 단락은 앗수르 제국은 거의 희소한 수의 나무를 남긴 채 작벌당하는 삼림처럼 멸당당할 것을 예언하고, 10:20-23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한 북이스라엘 왕국이 남은 자를 통하여 명맥을 이어갈 것을 예언한다. 앗수르가 붕괴되고 작벌당하는 바로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가문의 피난한 자들”이 자신들을 친 세계 열방들을 의뢰하지 않고, 오로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께로 돌아올 것이다. 본문과 10:24a(“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를 동시에 고려해 보면 이 예언이 기원한 시점은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아직 건재한 히스기야 시대임을 알 수 있다. 북이스라엘의 군사적 패배를 예고하던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예언이 본문에서는 신학적-현실정치적 의미로 재전용(再轉用)된다. 20절은 이사야의 초기 스알야숩 예언의 재적용(adaptation)의 한 예를 보여준다. 20절은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과 남은 자들이 남유다로 쇄도하는 정경을 그린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쇠락과 멸망이 이뤄진 BC 732-722년 동안에 많은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남유다로 밀려왔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히스기야 왕실의 복속 노력도 진지하였다. 왕세자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음으로써 북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을 한 백성으로 품으려는 정치적 배려도 베풀었고 또 북이스라엘 왕국의 유월절 역법에 맞춰-남유다보다 한 달 늦게 유월절을 기림-유월절을 열고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유월절 초청장을 보냈다(대하 30장).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분열이전 시기, 즉 12지파의 일치와 연합시기를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역사적 기념물이었다. 이사야와 히스기야 등 남유다의 야웨주의자들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앗수르 제국으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은 야웨 하나님께로 귀의함으로써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깨닫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앗수르의 왕으로 즉위하여 초기 4-5년간을 Uratu지역 진압 문제, 바벨론 반란 그리고 자체 제국 문제 해결을 위하여 힘을 쏟는 동안에 시리아-팔레스틴 일대에 지역패권주의를 확립하였다. 블레셋의 에그론의 왕 파디(Padi)를 자신의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예루살렘 감옥에 투옥시키기도 하면서 에그론, 가자, 아스켈론 등 블레셋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제압하였다(대상 4:39-43; 왕하 18:8; 참조 사 11:13-14). 어떤 의미에서 히스기야는-적어도 군사적으로는-다윗 흉내를 내면서 다윗 제국의 옛 영광을 회복하려고 분투하였다. 히스기야는-적어도 정치적으로는-북이스라엘의 남은 지역을 복속시키려고 노력하였다. 10:20-23은 히스기야의 정치적 노력에 신학적 차원을 가미한 셈이다. 이사야는 유다 왕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전망할 뿐만 아니라 촉구하였다.
결국 이 짧은 예언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께”(한편으로 히스기야-“강력한 용사”[엘기뽀르]라는 칭호는 대관식 때 새 왕 히스기야에게 붙여진 이름) 돌아올 것을 격려하고 남유다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곤경과 국가적 패망을 신앙적 및 정치적으로 포용할 것을 촉구하는 예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는 비록 현실 유다 왕조가 북이스라엘의 난민들, 혹은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능히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심하였을는지 모르나, 히스기야 왕실 또한 그의 예언적 전망에 호응하려고 노력한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이사야는 어떤 점에서 북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해체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이상적으로 승화된 다윗 왕조(유다 왕실의 이상화된 상태) 아래서 통일 이스라엘 부흥이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데 쓰임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22-23절은 북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끌려갔다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족장약속: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를 바다 모래처럼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창 12, 15, 21, 32장])이 폐지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양보절에 의하여 도입되는 22절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유효한데 남은 자들에게 유효한 약속으로 남아있게 될 것을 예언한다(롬 9-11장에서 구사되는 바울의 논리는 이사야의 논리 모방). 22-23절은-비록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제적으로는-이사야의 하나님 결단의 신학을 되울린다(“작정”, “행하다”). 하나님 결단의 신학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흘러넘침-앗수르 제국의 흘러넘침과 대응-의 결과임을 인정한다. 적어도 23절의 ץרח(에차)와 השׂע(마아세[일])는 이사야 6장 11-13절의 소명 묵시와 주제적으로 상응한다고 보여진다. 즉 다시 말해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능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결정과 집행으로 형성된 정치적 파멸상태에서 기대될 수 있는 일이다. 자손의 번성에 관한 족장약속을 부정적인 맥락에서 언급하는 22절을 고려해 보면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족장약속의 선별적 제한적 실현을 인정한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 중에서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따라서 이스라엘의 많은 지파들이 앗수르로 유배당하거나 애굽으로 망명을 떠나 다시는 옛날의 지파연합을 회복할 가망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계승되며 실현될 것이다. 이 남은 자는 하나님의 은총의 유효성을, 즉 족장약속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증인들이다(암 5:15b).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족장약속(창 32:13; 참조 호 1:10; 2:1)의 변증법적 해석범주인 셈이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족장약속 자체가 폐기되지는 않았다. 다만 조건적 약속으로 수정되었다.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과 남은 자들 중에서 야웨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써 남은 자가, 즉 족장약속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남은 자가 참 이스라엘이다. 누가 남은 자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야웨 하나님과 능하신 하나님께로 귀의하는 자가 참으로 남은 자다. 남은 자는 돌이키는 자다. 그런데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킬 수 있는가? 이사야 6:9은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에 의하여 이사야의 청중들은 돌이킬 능력을 잃은 것처럼 말한다. 28:12과 30:15는 이사야가 그의 청중들에게 돌아오라고 촉구하지만 그들은 파국적 재난을 당하기 전에는 도저히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대파국적 재난을 겪은 후에 돌이킬 기회를 얻을 뿐이다. 이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은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정치적 멸망은 그들이 야웨 하나님께로 돌이킬 기회가 된다고 주장하였다(대하 30:1; 참조 대상 9:1).
(3).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는 야웨(28:5-6)
28:5-6은 에브라임의 멸망의 원인을 분석한 단락(28:1-8)의 일부이며 에브라임의 남은 백성을 향한 야웨의 돌이킴에 대하여 말한다.
가. 본문 사역(私譯)
5 그 날에 만군의 야웨께서 그의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리라. 6 재판하러 앉은 자에게는 공평의 신이 되실 것이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용력(勇力)이 되시리라.
나. 해석
28:1-8은 에브라임의 멸망의 근인(根因)-오만과 영적인 감수성의 결여[술취함]-을 제시하며 그 남은 백성과 야웨의 관계에 대하여 예언한다. 에브라임은 취한 자요, 사마리아는 그 교만한 에브라임의 자랑거리(요새?)요 면류관이었다. 그것은 기름진 골짜기에 세운 성채였으나(살만에셀 V세가 포위하였지만 3 년간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살만에셀의 아들 사르곤 II세 의하여 함락) 그것은 쇠잔해 가는 꽃과 같은 헛된 영광에 도취하다가 망하였다. 하나님은 우박과 파괴적인 광풍, 대파국적 홍수같은 심판으로 에브라임을 굴욕적으로 낮추셨다.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처럼 앗수르의 손에 의하여 신속히 따먹힌 열매였다(사 18:3-6).
28:1은 에브라임(북왕국) 혹은 에브라임의 오만한 정치지도자들을 “교만한 면류관”이요 “영화로운 관”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왕조의 멸망)은 땅에 떨어졌고 북이스라엘은 정치적 실체를 상실하였다. 바로 그 날에, 야웨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친히 면류관(왕)이 되시며 영예로운 왕관이 되어 주실 것이다. 즉 야웨께서 친히 왕이 되어 주실 것이다. 각각 네 보어들 앞에 붙어 있는 전치사 ל는 야웨께서 본질적으로 각각의 관계로 발전되어 갈 것임을 보여준다. 야웨가 단지 영화로운 왕관이요 공평의 신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그런 관계로 발전되어가고 구현되어 간다는 진술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야웨의 영화로운 왕관이 되어준다는 말은 이상적인 부왕(메시야)를 통한 위임통치까지 포함한 야웨의 통치를 말한다. 이사야의 왕정신학(메시야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메시야의 대리통치도 야웨의 왕적 통치와 사실상 동연적(同延的)이다(효과와 질에 있어서 동일하다).
여기서 결국 우리는 다시 북이스라엘의 국가적 멸망은 야웨의 왕적 통치, 즉 메시야의 위임통치 아래 복속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보는 이사야의 예언자적 관점을 간취(看取)한다. 북이스라엘 왕국이 정치적 실체를 박탈당한 그 사건이 오히려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은 백성이 야웨의 왕적 다스림(혹은 이상적인 다윗계열의 왕의 다스림) 아래 복속되는 길을 열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왕적 통치 사건을 너무 먼 종말의 사건으로 파악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야웨의 왕적 통치가 어떻게 매개되고 구현되는가? 공정한 재판을 지도하고 주장하는 공평의 신(판결)이 되어 주심으로, 성문을 향하여 쳐들어오는 적군을 격퇴하는 군인들의 힘(군사력)이 되어주심으로써 에브라임의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은 지혜와 총명의 신, 재능과 지략의 신으로 가득찬 왕이다. 그는 공평과 정의로 재판할 것이다. 야웨가 재판하는 자에게 공평의 신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이 공평의 영으로 가득찬 메시야적 왕과 관리들에 의한 메시야적 통치의 후견인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성문에서 전쟁을 격퇴하는 자에게 용력을 준다는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쟁을 다시금 떠올린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공정한 재판과 튼튼한 안보(군사적 안전보장)에서 실체화된다. 여기서 우리는 공평한 재판을 하는 나라야말로 하나님에 의한 안전보장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브라임이 멸망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가 재판을 굽게 하고 고아와 과부의 소송을 멸시한 일이었다(암 5:7, 10, 12).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나라의 성문은 늘 외적의 침입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이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신념이었다. 하나님께서 공평의 신이 되어주심으로써, 성문을 지키는 용사들에게 군사적 용력이 되어주심으로써 친히 에브라임의 왕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편에서 어떤 선행적(先行的)이거나 자발적인 돌이킴이 강조되지 않는다. 야웨 자신의 호의적인 돌이킴이 부각된다(호 11:8-9과 일맥상통). 이사야는 에브라임의 남은 자에게 밝고 긍정적인 미래상을 제시한다. 야웨 하나님 자신의 돌이킴이 에브라임의 남은 백성에게 복음이 될 것이다. 이 짧은 단원 안에는 하나님 일방적인 구원의 측면이 부각되어 있다.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굴욕적인 북이스라엘의 패망은 에브라임의 남은 자에게 하나님의 왕적인 다스림을 덧입을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사야를 비롯한 BC 8세기 예언자들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파멸이 하나님의 친정통치(=메시야 통치)의 도래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였다.
V. 요약 및 결론
이상의 연구에서 우리는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9, 11장)과 초기 남은 자 사상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정에서 발생한 난민들, 포로민들, 이산민(離散民)들을 붙들기 위한 신학적-목회적-정치적 응답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사야의 예언활동이 이뤄진 BC 738-701년 기간은 남북 분열 왕국 모두에게 형용키 어려운 재난의 시기였다. 그 민족분단의 상처와 그것의 비극적 결말이 최고조에 도달한 시점에 그는 다윗 왕국적 대통합의 논리와 남은 자 사상을 주창하며 쓰러져가는 북이스라엘의 난민들을 지탱하고 남유다가 직면한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려고 하였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BC 732년과 BC 722(721)년에 앗수르의 제국과의 전쟁에서 치명적으로 패배하였다. BC 732년에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종결과정에 북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이 앗수르의 속주로 병탄되어 버렸고 BC 722/21년에는 호세아 왕과 사마리아의 3 년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더 이상의 회복의 가망도 없이 사르곤 II세에게 멸망당하였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포도원을 잠시 유린하고 짓밟는 징벌적인 원정을 하도록 허용을 받았을 뿐이었는데 자신의 세계제국건설의 야심으로 하나님의 고유한 위임을 위반하였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국가적 정체성을 상실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끌려가거나, 애굽으로 피난갔거나 아니면 유력자들은 남유다로 도망쳤다. 이사야는 이런 전무후무한 민족적 재난의 근인 중 하나를 우상숭배와 그것의 결과인 왕국 분열로 파악하였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사건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 북이스라엘 왕국을 구성했던 12 지파 중 9와 1/2 지파의 상실을 의미하였다(열왕기서는 북왕국만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름). 이러한 예기치 않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돌연한 쇠락과 멸망(시리아-에브라임의 전쟁 후폭풍과 BC 722/21년 사마리아의 완전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태도는 두 줄기의 구원예언에서 발견된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은 이사야에게 모종의 신학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신학적 의미의 남은 자 사상은 누가 참 이스라엘이며 족장 및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어진 신학적 자산을 상속받을 자인가를 묻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절대 다수인 10지파가 멸망당한다면 이스라엘은 이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이 앗수르로 유배되어 앗수르 제국내의 다른 민족들과 회복의 가망성이 없는 수준으로 뒤섞여 버리고 다시는 기억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지파로 구성된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마리아의 멸망으로 끝나버렸는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선택과 계약과 가나안 땅 정복의 전승은 앗수르 제국주의의 군사적 시위 앞에 끝나버리는가? 북이스라엘 왕국의 남아 있는 백성들의 신학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들은 여전히 고대 이스라엘에게 수여된 약속들(구원사 전승들, 족장약속들)의 합법적인 상속자인가? 누가 진정 이스라엘인가? 과연 앗수르 제국으로 유배당한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이사야의 신학적 응답이 “남은 자 사상”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어떻게 계속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때때로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하여 말한다(사 10:20-23; 참조 렘 5:10; 욜 2:32[3:5]). 앗수르의 군사적 북이스라엘 왕정정복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계약백성으로 삼으신 구원사의 전진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그들이 진실로 이스라엘이다. 이런 방식의 신학사상의 마지막에 신약공동체가, 종말의 남은 자 공동체[쿰란 공동체의 경우도 비슷]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탄생-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통하여 행하실 원래 구원사적 계획을 성취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혈통적 정치적 실체로서의 이스라엘 대신 신학적 실체로서의 이스라엘 개념을 참 이스라엘로 등장시키는 과도기 신학사상이다(겔 37:15-17). 그래서 이사야를 비롯하여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에서 이스라엘은 예언서에서 야웨께 신실하게 남아있는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된다(바울에게서 우리는 다시 이런 예언자적인 남은 자 사상의 계승을 본다). 그 남아있는 백성들은 여전히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장정(長征)을 이끌었던 족장들의 약속들의 상속자다.
요약하자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원래 이스라엘에게 준 약속들의 상속자라고 정의함으로써 이사야는 앗수르 대범람에서 살아남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팔레스틴에 남은 자들과 해외로 도망치거나 유배당한 자 모두 포함)을 위한 두 가지 예언적 미래전망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남은 이스라엘 유민들의 다윗왕조(유다가 아니라)아래로의 복귀이며, 나머지 하나는 앗수르 및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가거나 혹은 스스로 도피한 북이스라엘 이산민들이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영도자의 지도력 하에 이스라엘 고토로 회복되는 미래 전망이었다. 요약하자면,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이 한 이상적인 다윗 계열의 왕의 다스림 아래서 통일되어 다시 팔레스틴 일대를 아우르며 옛 다윗왕국을 회복하는 그 날에 대하여 예언한다. 결국 이사야는 남은 자 사상과 메시야 예언으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초래한 신학적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는 역사적 재난이 민족화해와 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는 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았던 신본주의적 낙관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oon4832/13289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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