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가 되는 칼럼제목~도요타의 리콜과 하나님의 리콜
월간지에서 본 칼럼제목이다.
"도요타의 리콜과 하나님의 리콜" 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칼럼을 실었다.
물론 저자의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영적으로 큰 교훈을 줍니다.
즉 하나님의 리콜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이걸 알고 있으면서 이런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는 것은 상식으로 안맞다.
도요타의 리콜은 분명히 도요타의 문제성을 안고 있다는 말이다.
도요타가 만든 자동차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리콜을 했다.
제목을 카피해서 "하나님의 리콜"이라고 한 것은 무리가 많다.
저자의 의도를 넘어서 이미 그것은 하나님께서 문제성을 안고 있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말 속에 이미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성이나 충분성에 문제가 생긴다.
요즘 설교 제목이 그럴듯 해 보이기는 해도 너무 오버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더러 본다.
거룩한 낭비, 하나님의 불륜...,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지는 모르나,
본질을 훼손하는 제목들이다.
거룩한 헌신이요,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해야 한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야 있겠지만,
그러나 그 자유가 본질을 찬탈하는 경우가 일어나면 안된다.
특이한 제목을 짓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을 더욱 잘 드러내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자신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본문에서 제목을 찾는 것이 좋다.
'제목은 거창한데, 내용은 그럭저럭 하더라' 이러면 안된다.
제목이 좋으면 내용도 좋아야 한다.
더 좋은 제목으로 가기 보다는 더 깊은 내용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도요타의 리콜과 하나님의 리콜" 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칼럼을 실었다.
물론 저자의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영적으로 큰 교훈을 줍니다.
즉 하나님의 리콜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이걸 알고 있으면서 이런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는 것은 상식으로 안맞다.
도요타의 리콜은 분명히 도요타의 문제성을 안고 있다는 말이다.
도요타가 만든 자동차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리콜을 했다.
제목을 카피해서 "하나님의 리콜"이라고 한 것은 무리가 많다.
저자의 의도를 넘어서 이미 그것은 하나님께서 문제성을 안고 있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말 속에 이미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성이나 충분성에 문제가 생긴다.
요즘 설교 제목이 그럴듯 해 보이기는 해도 너무 오버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더러 본다.
거룩한 낭비, 하나님의 불륜...,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지는 모르나,
본질을 훼손하는 제목들이다.
거룩한 헌신이요,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해야 한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야 있겠지만,
그러나 그 자유가 본질을 찬탈하는 경우가 일어나면 안된다.
특이한 제목을 짓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을 더욱 잘 드러내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자신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본문에서 제목을 찾는 것이 좋다.
'제목은 거창한데, 내용은 그럭저럭 하더라' 이러면 안된다.
제목이 좋으면 내용도 좋아야 한다.
더 좋은 제목으로 가기 보다는 더 깊은 내용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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