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수_쉐마인성교육_"구약의 지상명령과 그의 구속사적 위치"에 대하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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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지상명령
I. 아브라함이 받은 지상명령의 성경적 배경
1. 아브라함이 받은 지상명령의 성경적 배경과 제학설:
소돔인의 타락과 의인 아브라함의 선행 대조
구약의 지상명령은 어디에 나오는가?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 18:1-19:38)이란 주제에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인류 역사상 타락한 공동체의 표본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받은 표본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창 18:20)라고 말씀하셨다.
반면, 당시 아브라함은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창 12:1-3) 의인의 표상이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하나님의 선민 유대인의 조상이다. 그분의 족보를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구약의 지상명령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 18:1-19:38)이란 주제 중에서도 창 18:17-21절의 ‘아브라함과 소돔에 대한 신적 반응’이란 소주제에 포함되어 있다. 이를 더 작은 두 가지 소주제로 나눈다면, 첫째, 창 18:17-19절은 ‘아브라함의 언약 도덕성’이고, 둘째, 창 18:20-21절은 ‘소돔의 불의에 대한 언급’이다. 이 중에서도 필자가 쉐마교육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구약의 지상명령은 창세기 18:19절이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 18:19)
먼저 이 말씀을 강해하기 전에 이 주제를 구약 학자들이 연구한 문헌들을 찾아보면서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첫째,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 18:1-19:38)이란 중심주제와 구약의 지상명령 사이에 어떠한 상관 관계가 있는가?
둘째, 필자가 발견한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을 그들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지상명령으로 보았는가?
셋째, 창세기 18:19절을 유대인의 쉐마(신 6:6-9)와 연관한 자료가 있는가?
필자는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구약 신약의 주석들(Eisen, 2,000; Hamilton, 1995; Hirsch, 1990; Mathews, 2005; Rashi, 1994; Scherman, 1994; Waltke, 2001; Wenham, 1994; Westermann, 1995)과 저명한 구약학 저널들[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JSOT), Jewish Bible Quarterly, Journal of Law and Religion]을 참조했다.
[지면상 자세한 강해는 이곳에서 생략함.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현용수, 2006a), pp. 75-83 참조)]
2. 기존의 학계는 창 18:19절을 구약의 지상명령으로 해석했는가?
이상은 기존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란 주제와 관련하여 구약의 주석이나 학술 저널을 참고하여 연구한 내용이다(다음 학자들의 주석 참조: Eisen, 2,000; Hamilton, 1995; Hirsch, 1990; Mathews, 2005; Rashi, 1994; Scherman, 1994; Waltke, 2001; Wenham, 1994; Westermann, 1995).
결론적으로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어떠한 교훈을 주는가? 소돔과 고모라 사건의 원인은 윤리적인 타락이고, 그 결과는 불의 심판을 받은 멸망이었다. 반면, 아브라함은 의인의 표상으로 그의 후손이 장차 강대국이 될 것이며 그를 통해 만민이 구원 받을 것임을 예시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두에서 연구를 위한 세 가지 질문들 중 어느 하나에도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한다. 어느 학자도 창세기 18장 19절을 기독교교육학적인 측면에서 구약의 지상명령으로 설명했다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더구나 어느 곳에서도 이를 쉐마와 관련하여 연구한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필자도 위의 해석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지라도 필자는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는가에 대한 근본 이유를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찾을 것을 주장한다. 이를 찾아야 왜 창세기 18장 19절이 구약의 지상명령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연구를 위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첫째, 왜 창 18:19절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구약의 지상명령인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 질 수 없는가?
둘째, 아브라함이 받은 지상명령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출 19-24장)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셋째, 아브라함이 받은 지상명령은 시내산 언약을 지키는 교육학적 방법인 쉐마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도’, 즉 하나님의 율법(말씀)이 전수되어야 그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구약의 지상명령이 지켜져야 신약의 지상명령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구약 시대 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율법(말씀)이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자손 대대로 전수되어야 구원을 대물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율법(말씀)이 전수 될 때만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여”(창 18:19b) 죄를 범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 길만이 소돔과 고모라의 참혹한 심판을 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독자들은 본서를 읽는 동안 위의 세 가지 질문들의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II. 아브라함이 받은 지상명령의 내용
1.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왜 창 18:19절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구약의 지상명령인가? 이를 수직적 선민교육과 연관하여 자세히 알아보자. ‘수평적 선민교육’이 타인에게 복음을 전한 후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교육이라면, ‘수직적 선민교육’은 부모가 자녀를 말씀의 제자로 삼는 교육이다. 즉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낳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전수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교육하느냐 하는 선민교육이다.
수직적 선민교육은 대부분 구약 성경의 ‘쉐마’와 관련이 있다. 유대인은 가정에서 부모가 혈통적 자녀에게 율법(말씀)을 전수시켜 그들을 ‘말씀 맡은 자’(롬 3:2)로 키워 영적인 말씀의 제자로 삼는 선민교육을 가장 잘 실천한 민족이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의 비밀이다. 유대인에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수평전도는 거의 없고,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수직적 선민교육만 있을 뿐이다.
수직적 선민교육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언제 누구에게 수직적 선민교육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가? 흔히 모세의 때부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창 18:19, 표준 새번역)
첫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를 위한 질문 5]
보조 질문 5-1: 교육신학적 입장에서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가정교회와 신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신약 교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아브라함)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치기 위함이다”(창 18:19aa).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가? 아브라함이 ‘자식들과 자손’을 가르치는 일이다. 무엇을 가르치는가? 교육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에 더 발전된 내용이 유대인 자녀교육의 대명사인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신 6:4-9)의 말씀이다. [쉐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현용수, 쉐마, 2006a), 제3부 ‘하나님이 유대 민족에게 주신 지상명령, 쉐마’ 참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4-9)
‘지상명령’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명령’이란 단어가 필수다. 아브라함이 자녀와 후대에게 하라고 한 단어가 바로 ‘명령’이다(Gen. 18:19b). 따라서 창 18:19절의 중심 아이디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하신 이유는 그가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수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Scherman & Zlotowitz, 2005, p. 82).
중요한 사실은 구약의 지상명령이 수행되는 교육의 장은 가정이고, 교사는 부모, 학생은 자녀라는 점이다. 그리고 즉 교육신학적 입장에서 구약의 지상명령이 수행되는 가정은 거룩한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이 되고, 부모는 교사 혹은 목회자가 되고, 교인 혹은 학생은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다. 가정이란 성전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때는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가정예배 시간이다. 그 전형적 모형이 바로 유대인의 안식일 절기 식탁이다. [자세한 것은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현용수, 1999a) 제3부 제4장 ‘유대인의 교육 장소’ 참조] 물론 유대인 부모는 시간만 나면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친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가정이 성전이라면 예루살렘 성전과 그 기능이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에 만들어진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제사장을 통해 제사(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기본적으로 말씀을 전수받는 교육의 장소가 아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두 가지 성전;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가정 성전과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제사(예배)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것처럼, 신약 시대에도 가정 성전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게 하고 교회에서는 믿음의 공동체가 예배드리는 성전의 기능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성경신학적으로 신약 교회의 모델은 구약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아담과 하와)을 창조하신 이후 두 가지 중요한 기관(성전)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가정이란 성전이고, 둘째는 공동체(회중)가 예배드리는 교회를 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교육의 대상이 ‘이웃전도나 세계선교’가 아니고 ‘자식들과 자손’이라는 점이다. 즉 교육의 중심지가 신약의 교회가 아니고 가정이란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부모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도록 교육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따라서 구약의 지상명령은 가정이란 성전에서 지켜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가정사역의 기본이 된다.
이에 대조적으로 신약의 지상명령이 지켜지는 곳은 어디인가? 가시적인 교회당(건물)이란 교회다. 따라서 신약시대는 교육의 장은 교회이고, 교사는 목사이고, 학생이 교인이 된다. 그리고 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이웃전도와 세계선교가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은 가정에서 자식들에게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하고”(창 18:19ab), 옳고(charity), 바른 일(justice)을 하도록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할 의무가 있다(창 18:19ac).
둘째, 아브라함은 왜 자녀와 후대에게 자신의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도록 명령했는가? (연구를 위한 질문 6)
아브라함은 자녀와 후대에게 그들이 자녀를 낳으면 그들을 말씀의 제자 삼도록 명령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함이다(창 18:19b).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땅의 모든 족속이 너(아브라함)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셨다(창 12:3). 아브라함의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는 것”(창 22:17-18)이다.
셋째, 하나님은 언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셨나? 구약시대인가? 신약시대인가? (연구를 위한 질문 7)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 2,000년간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수많은 이방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의 씨가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유대인이 되며,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갈 3:6―9). 아브라함의 시작은 지극히 미약한 아들 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은 실로 창대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시겠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열국의 아비’(창 17:5)가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도 바꾸어 주셨다. ‘아브라함이라는 단어는 ‘아브’와 ‘라함’이란 두 단어의 합성어다. ‘아브’는 ‘아버지’란 뜻이고, ‘라함’은 ‘열국’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열국의 아비(father of a multitude of nations)’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창세기 17장에 ‘아브람’이란 이방의 일개 ‘아람의 아버지’란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창 17:5).
왜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 즉 ‘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어 주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창 18:19b)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조건으로 약속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연구를 위한 질문 8)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배운 대로 행하는 조건이다(창 18:19c).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선조에게서 내려오는 말씀(율법)을 전수받고 그대로 행했을 때라는 조건을 붙이셨다. 만약 그의 자손이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일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위하여 필수적으로 해야 할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다섯째,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은 어떻게 구약의 지상명령을 완수했는가? (연구를 위한 질문 9)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를 통하여 어떻게 지상 명령을 완수했는가? 오직 하나뿐인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과 믿음을 잘 가르쳐 전수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귀한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를 몸소 실천하여, 믿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행함의 본을 보여 주었다(창 22:1-24).
아무리 믿음이 있는 신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몸소 칼로 찔러 죽인 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실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믿음으로 실천하였다(히 11:17).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롬 4:11-12, 16). 전자가 교육의 내용이라면, 후자는 교육의 실천이다. 교육에는 항상 두 가지가 병행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약 2:17).
아들 제2대 족장인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대로 그의 아들 야곱에게 똑같이 가르쳐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 그리고 행함을 잘 가르쳐 전수하였다.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열두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 그리고 행함을 잘 가르쳐 전수하는 데 성공했다. 즉 아브라함, 이삭 및 야곱 3대가 세대차이 없이 여호와의 말씀과 신앙 및 행함을 전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전수한 말씀들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내용에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기록된 천지 창조, 남자와 여자의 창조, 인간의 타락, 가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및 바벨탑 사건 등의 모든 기사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선대로부터 전승해 내려오는 이러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수고는 누가 했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였기 때문이다(수 24:2).
이 모든 정보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어 야곱의 열 두 아들들에게 전수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야곱의 식구 70인이 흉년 때문에 가나안을 떠나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었던 애굽에 건너가 살면서도 대를 이어 계속 전수되었을 것이다. 그 후 유대인이 400년의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대를 이어 전수한 결과 모세의 손에 이 정보들이 입수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모세오경의 첫 책인 창세기를 쓰게 되었다. 만약 한 세대라도 이 말씀들이 전수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모세가 창세기를 쓸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예수님께서 오실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진행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성경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매 시대마다 한 가정에서 3대에 걸쳐 세대차이가 없으면 영원히 세대차이가 없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정체성을 말씀하실 때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15-16, 6:8)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대 신앙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자녀와 손자 그리고 자손들에게 대를 이어 과거의 역사와 토라를 전수하고, 믿음으로 행함을 실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그 자손들은 계속 부모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는 3대 가정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지켜 행하여 그들의 구약성경을 2,200년간 자손 대대로 전수하여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의 손에까지 전수하는 데 성공했다. 유대인이신 예수님도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나시지 않았는가?(마 1:1) 그리고 아버지 요셉을 통하여 토라(구약의 율법)를 전수받으셨다.
2. 아브라함은 평생 몇 명 목회했는가?: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의 차이
연구를 위한 질문 10: 아브라함은 평생 몇 명 목회했는가?
보조 질문 10-1: 교육신학적 입장에서 구약과 신약의 목회의 목적과 대상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흔히 많은 주의 종들이 강단에서 설교할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고 설교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온 믿음의 조상이라고 역설한다. 그의 행적을 본받자고 강조한다. “그는 제단 쌓는 믿음을 가졌다”(창 12:7, 13:18). “십일조를 드렸다”(창 14:20).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다”(창 22장). 등이다. 맞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무엇을 가장 중심적으로 본받자는 말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열매를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마 7:16-20)? 그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의 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최종적인 열매는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에게 자신의 믿음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들과 자신이 친히 경험하고 수집한 모든 성경의 정보들을 철저하게 전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이런 행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그가 아들 이삭에게 철저하게 말씀을 가르쳐 말씀의 제자 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후대의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의 열매인 이삭을 보고 그가 믿음의 조상임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신약시대의 기독교인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와 일평생 동안 함께 몇 명을 목회했는가? 오직 한 명이다. 그가 몇 천 명 혹은 몇 만 명씩 모아 큰 목회를 하여 유명해졌는가? 아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말씀 맡은자로 잘 키웠기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받고 자손 대대로 모든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 ‘아브라함’하며 그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삭은 그의 아내 리브가와 함께 일평생 동안 몇 명을 목회했는가? 야곱 한 명이다. 야곱은 그의 네 부인들과 함께 몇 명을 목회했는가? 12명이다. 구약 시대는 일부 예외(요나의 니느웨 전도)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이방전도가 없었다. 자녀를 많이 낳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현용수, 쉐마, 2006b), 제4부 ‘쉐마와 유대인 자녀의 개념(자녀신학)’ 참조]
이제 기독교인의 삶의 목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독교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고 강조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는 것인가? 물론 그의 의로운 행위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자녀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가 아들을 말씀의 제자 삼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말씀의 제자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때 믿음의 가문의 맥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항상 가문의 역사를 유대인처럼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누구든지 이웃 전도나 세계 선교를 일평생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세계선교 헌금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의 아들 하나에게라도 확실하게 말씀을 잘 전수했다고 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신약의 기독교인이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을 본받는다고 하여 부모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는 교육만 본받으면 되겠는가? 아니다. 신약의 예수님의 지상명령도 본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지상명령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구약성경의 창세기 18장 19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와 가족(household)에게 말씀을 가르쳐 자손 대대로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다. 즉 쉐마교육이다.
둘째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을 말씀의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다.
전자가 하나님이 구약의 유대인에게 분부하신 지상명령이라면, 후자는 예수님이 신약의 기독교인에게 분부하신 지상명령이다. 전자가 가정 사역인 ‘쉐마’의 사명이라면, 후자는 이웃 전도와 세계 선교의 사명이다. 전자가 수직전도라면 후자는 수평전도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목회의 목적과 대상의 차이다.
신약의 기독교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인가?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을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성취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약교회는 수평전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2,000년간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성공했을지라도 자신의 가정과 민족교회는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 왔다.
3.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에는 쉐마도 포함되어야 한다
연구를 위한 질문 11: 신약의 지상명령에는 구약의 지상명령이 포함되지 않았는가?
왜 신약 시대의 초대교회는 자손 대대로 살아남는 데 실패했는가? 부모들이 자손 대대로 자녀들을 말씀의 제자 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지상명령(마 28:19-20)을 잘못 이해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이제 수평적 선민교육과 수직적 선민교육의 측면에서 예수님이 명령하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a)는 말씀을 다시 조명해 보자.
예수님은 먼저 모든 족속의 구원을 위하여 세계선교를 명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다. 즉 ‘가르치는 것’과 ‘지키게 하는 임무’, 즉 교육의 내용을 가르치고 이를 지켜 행하게 하는 임무를 주셨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 이후에는 성도들에게 성화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에게 가르쳐 지켜 행하도록 해야 할 교육의 내용은 무엇인가? 즉 무엇을 가르쳐 지키게 할 것인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교훈을 뜻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교훈’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4복음서의 내용이고 넓은 의미에서 다음 세 가지, 첫째 복음의 내용, 둘째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의 진리의 말씀들, 셋째 구약에 근거한 유대인의 선민교육, 즉 ‘쉐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요 1:14)이기 때문이다[부모여 자녀를 제자 삼아라(현용수, 2002a), 제1장 IV. 질문 3, “구약만 강해해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인가?” 참조]. 그리고 예수님도 쉐마를 말씀하셨다(마 22:37; 막 12:30; 막 12:33).
위의 세 가지 교육 내용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복음은 영혼 구원을 위한 내용이다.
둘째,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진리의 말씀들은 성도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영적 양식이다.
셋째, 구약에 근거한 유대인의 선민교육(쉐마)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여 자손 대대로 자녀를 말씀의 제자로 삼는 데 필수적인 교육의 내용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지상명령(창 18:19)임을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교육의 내용은 본인의 영성개발과 타인을 제자 삼는 수평적 선민교육에 유익하고, 세 번째 내용은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여 자녀를 제자 삼는 수직적 선민교육에 필요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신약시대에 2,000년 간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미워한 나머지 예수님이 명하신 가정과 교회에서 가르쳐 지켜 행하여야 할 교육의 내용 중 유대인의 선민교육(쉐마)은 알려고 하지를 않았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고 실천하겠는가? 그리고 대부분 복음과 신구약 성경 말씀에 의한 영성 개발에만 주력하였다.
그 결과 어느 민족이나 이웃과 타민족에게 복음은 전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정과 민족의 후대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데 실패하였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러한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 오실 때까지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세계선교도 더 오래 할 수 있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hemaiqeq/71)
( 퍼온 글 자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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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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