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수_쉐마인성교육_김진섭 박사님의 서평은 과연 개혁신학적일까요?
현용수_쉐마인성교육_김진섭 박사님의 서평은 과연 개혁신학적일까요?
김진섭 박사, 현용수 저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전3권, 쉐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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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수 저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전3권, 쉐마)를 읽고
서평: 구약학적 입장
기독교 역사 2,000년에 나타난
교육의 문제점에 해답 제시
김진섭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원장, 구약학)
I. 서평과 만남의 복
지난 8월에 뜻밖에 현용수 박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본인이 91년 12월부터 97년 8월까지 미국 남가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목회와 교수 사역을 하면서 미주총신대학원에서 현 박사님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잠깐 교제가 있었지만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전혀 그분의 근황을 알지 못했던 차에 지금까지의 저술과 활동에 대해 전화상으로 꽤 긴 시간 동안 듣게 되었다. 그가 소포로 보낸 여러 저서 중에 가장 최신작인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에 관해 서평을 부탁해 왔다. 그가 주창하는 기독교교육 이론이 책 제목이 명시하는 대로 구약의 ‘쉐마’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 유대인 명문학교 드랍시(Dropsie) 대학원의 박사 과정에 십 수 년의 세월을 보낸 나로 하여금 서평을 쾌히 승낙하고 시간을 내어 꼼꼼히 읽어 보게 하였다.
본인은 1950-60년대에 13개의 시골교회의 당회장으로 목양하는 목사의 아들로 성장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라고 유행가를 읊조렸던 환경 속에 자랐지만, 매일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 3차례 가정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기도로 순종과 절대 헌신의 본이 되셨던 부친(김희도 목사)을 회상하면서, 이 책의 주창에 큰 공감을 가지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 이제는 모두 성년이 된 나의 세 자녀에 대한 지난 날의 신앙교육과 인성교육을 평가해 보면서, 한 가정의 3대가 함께 말씀을 대물림하는 철저한 기독교 가정교육이 궁극적으로 국내전도와 해외선교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따라서 본인은 170여 국가에 700만 한인 디아스포라 교포들을 향하여 “자녀가 곧 사도행전 1:8의 ‘땅 끝’이다”라는 명제로 연구하는 현용수 박사님의 쉐마교육선교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바이다.
II. 내용 요약
먼저 두 권(285쪽+286쪽 = 571쪽)에 걸쳐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제1권 제1부는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에 나타난 두 가지 지상명령의 내용과 그 필요성을 설명한다.
먼저 구약의 지상명령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물림하라는 쉐마의 수직적 선민교육이며, 둘째 신약의 지상명령은 주 예수님의 복음을 열방에 전파하라는 수평적 선민교육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구약의 지상명령의 목표는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하기 위해 적어도 3대가 말씀을 대물림하는 ‘쉐마’이며, 서기관들이 엄중하게 구약성경을 필사하고 보존하였기에 초대교회의 성경으로 애용될 수 있었고, 신약의 열방 선교를 향한 지상명령 완수에 쉐마가 왜 필요조건인지를 설명한다.
제2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개인에게 명한 창세기 18:19가 왜 구약 지상명령의 효시인가를 그 문맥적 배경(제1장)과 내용 분석(제2장)을 통해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이스라엘과 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언약하신 후, 그 성취를 위한 조건으로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손과 그 가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여 ‘여호와의 길’ 즉 ‘의와 공평’을 지키고 행할 것을 명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창세기 18:19를 구약의 지상명령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에게 이 명령을 전수하는데 어떻게 성공하였는지도 설명한다.
제3부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이 발전하면서 그 실체가 유대민족 전체가 모세언약 (엄밀히 말하면 모압언약)에서 받은 쉐마임을 밝힌다.
먼저 그 역사적 배경으로서의 시내산 언약과 쉐마의 관계를 설명한 후(제1장), 쉐마의 서론(신 6:1-3)과 쉐마의 내용(신 6:4-9; 11:13-21; 민 15:37-41)을 강론하며, 왜 그리스도인들도 신약의 열방선교적 지상명령과 함께 구약의 지상명령인 쉐마를 실천해야하는가를 논증한다(제2장).
제1권 부록에 소개된 세 분 목사님들의 쉐마교사대학 체험기는 저자의 주창이 얼마나 실제적인 감동과 결과를 사역 현장에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하여 독자들을 설득시킨다.
제2권은 제3부를 계속하면서 이스라엘 신정왕국의 출범인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신약교회의 출범인 성령강림이 왜 동일한 오순절인가를 쉐마의 관점에서 대비하여 설명한다(제3장).
제4부는 ‘자녀 신학’이란 관점에서 자녀 생산은 ‘말씀 맡은 자’(롬3:2)의 번성이므로 유대인들은 산아제한을 하지 않으며(제1장), 따라서 13세의 남자가 갖는 유대인 성년식(바르 미쯔바)의 뜻, 과정, 특권과 의무, 그리스도인과의 관계 등을 자세히 조명한다. 특별히 성년식이 왜 13세인가에 대한 교육학적 11가지 이유를 상술한다(제2장).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와 쉐마교육 선교전략’(제3장)은 ‘2세 교육은 땅 끝 선교’라는 명제와 함께 4단계의 세계선교 전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제5부는 두 권에 걸친 쉐마연구의 역사적 사명을 다시 정리하는 결론과 요약 부분으로 ‘구약의 지상명령의 발전 과정’(210쪽)과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 비교’(216쪽)를 제시한다. 부록 1은 네 분의 쉐마교사대학 체험기를 소개하며, 부록 2는 사진으로 보는 쉐마교사대학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부록 3은 쉐마 국악 찬양 2편(‘쉐마 3대 찬양’과 ‘쉐마 효도 찬양’)을 제공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은 후 먼저 자신의 자녀를 말씀으로 제자삼아 3대를 대물림하며, 우리 민족의 2세를 복음으로 구원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별된 교육과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세계 선교를 위한 ‘쉐마교육 운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III. 탁월하게 공헌하는 점
흔히 “날카로운 질문은 선명한 해답을 낳는다”는 말처럼 이 책은 우리가 반드시 이 시대에 물어야 할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가정교육과 교회교육 그리고 세계선교의 사활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오랜 연구와 실습을 통하여 저자 자신이 체득한 해답을 확신을 가지고 설득하는 다음 질문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만드는 탁월한 공헌이다.
1.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후(주전 2166년 - 75세 = 주전 2091년) 현재까지 4,200년간 유대인(특히 정통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손대대로 전수하는데 성공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초대교회로 출발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소아시아, 로마 및 유럽의 폐허된 교회 유적지가 고발하는 대로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선교에는 주력하여 괄목할만한 진보가 생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에서 적어도 3대가 함께 대물림하여 영속적으로 전수함에는 실패해 왔는가?
2.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교육이 천문학적인 투자에 반해 대부분 실패하며, 약 700만을 헤아리는 디아스포라 교포들의 자녀들이 대학졸업과 함께 대부분 교회를 떠나는 원인과 그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3.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의 21세기 한국교회의 비전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장 성경적이고 검증된 확실한 기독교 가정교육은 무엇인가?
첫째로, 저자는 이러한 사활적인 질문들의 해답을 개혁신학의 골격인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
특히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모압-세겜으로 이어지는 모세 언약이 주 예수님 안에서 완성된 새 언약과 어떻게 그 다양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지를 구약의 쉐마와 신약의 지상명령과 결부하며 고민한다. 또한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구속사, 즉 ‘하나님의 우주창조’(창 1-2장), ‘인간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창 3장 - 계 20장), ‘하나님의 완성’(계 21-22장)의 시각에서 구약의 쉐마가 어떻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지를 논증한다. 저자가 가진 올바른 성경신학적인 틀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해석하며 오늘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훌륭한 실례를 보여준다.
둘째로, 기독교교육학자로서 그는 4,200년간 정통파 유대인의 가정이 ‘쉐마’를 중심으로 3대가 토라를 대물림하는 엄연한 현실을 주시하며, 창세기 18:19의 아브라함 언약을 지상명령의 역사적 근원으로 이해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인 발견이다. 이를 근거로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목회가 이 ‘쉐마’ 정신에 기초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것은 기독교회사 2,000년 동안의 가정교육의 결과론적 문제점과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한 것으로서 상당한 고무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셋째로, 이 책의 핵심 용어인 ‘쉐마’를 독자들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이론적 골격으로 작용하는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의 본문 해석과 함께 어떻게 이것이 정통파 유대인의 가정에서 특별히 잘 보존 전수되고 있는지의 비법을 자세한 현장 체험 학습으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방인인 우리의 눈에는 오랜 전통의 비전(秘傳)으로 비쳐온 유대인만이 가진 삶의 철학의 근본을 파헤치는 교육신학(가정, 아버지, 어머니, 자녀, 효도, 고난의 역사)의 필독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넷째로, 원칙상 이방인에게 닫혀 있는 정통파 유대인의 가정과 초등학교에서 예쉬바(랍비 양성 예비학교)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학교 및 유대인 역사박물관의 현장 체험 학습과 함께 쉐마교육의 도구인 테필린, 메주자, 찌찌트, 두루마리 토라, 쇼파르(양각 나팔), 촛대, 쩨다카 상자, 경문(phylacteries) 등을 통하여 최대의 시청각적 충격과 확신을 심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부인과 이미 장성한 4 아들들과 함께 자신이 알고 믿는 바를 가정에서 직접 실천하면서 쉐마교육의 위력을 검증하고 시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교학자 랄프 윈터(Ralph Winter)의 문화 언어를 기준한 4단계 전도/선교 전략 이론에 근거하여 한국교회, 특별히 디아스포라 교포교회가 당면한 자녀교육의 해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의 시대적 비전과 사명 완수에 대한 실제적인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는 ‘기독교와 쉐마교육선교 전략’(제2권 제3장)은 이 책의 백미로서 독자에게 큰 반향을 주고 있다.
IV. 서평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현용수 박사님에게 귀한 사명과 은사를 주셔서 기독교교육학 학자로서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잊었거나 소홀했던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를 발견하게 하여 성경적 교육신학의 틀을 마련하게 하셨다. 가정교육과 교회교육의 근본 대안을 되찾게 되었다.
현 박사님의 탁월한 성경적, 개혁신학적 학설의 주창으로 오늘날 교육 부재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의 비전과 사명을 구현해야 한다. 가정을 살리자는 교육신학은 일반 은총적으로 불신자들에게도 유효할 뿐 아니라, 특별 은총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 누구에게나 민족과 언어와 국가와 백성에 관계없이 가정의 치유와 개혁에서 시작된 교회, 사회, 국가, 세계에로의 ‘주 예수님의 영광스런 구원의 복음’이 가진 위력을 나눔에 있어서 이 책이 목회자와 신학도들에게 적극 알려지고 애용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구약학, 신약학, 교회사, 조직신학, 선교학 등의 신학 전반에서 관심 있는 학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전공 분야에서 쉐마를 더 연구하여 토론하고 발전시키어 세계 신학계에 내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 교회를 살려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자료출처 http://shemaiqeq.com/index.php?mid=book_reading&document_srl=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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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이 과연 옳은 서평일까요?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진섭 박사님께서는 이 서평을 통하여,
현용수 박사님의 '쉐마교육'에 동참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이 잘못되었다면, 굉장히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분들이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과 동참에 많은 의지와 동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김박사님의 서평에 대한 재조명으로, 그 서평이 잘못 된 것이라면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김진섭 박사님께서는,
"구약의 쉐마가 어떻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지를 논증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개혁신학의 골격인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연 개혁신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을까요?
최대의 쟁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Pre-Evangelism 관점
입니다.
전체적인 것들을 한 꺼번에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용수 박사님의 Pre-Evangelism 관점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관점입니다.
김진섭 박사님께서 현용수 박사님의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에 대한 서평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Pre-Evangelism 관점은
현용수 박사님의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 1권 29-33페이지에 나옵니다.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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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을 믿기 전
왜 인성교육은 Pre-Evangelism인가?(인성교육 노하우 시리즈)
저자는 앞서 유대인의 인성교육에 관한 책을 3권으로 펴낸 바 있다(2005년).
기독교교육학을 연구하면서 현대인에게는 전도하기도 힘들거니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헌신도가 매우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올바른 인성교육을 시키지 않고
수평문화에 물들게 방치하고 IQ교육만 시킨 결과다.
그래서 자녀들의 마음 밭이 황폐화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 인간이 태어나 복음을 접하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인성교육을 잘 받아, 마음 밭이 옥토가 되면
복음을 영접하기도 쉽거니와 구원을 받은 후 예수님을 닮는 제자화도 쉽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린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깊은 생각을 하게 하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13세 이전의 인성교육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를 'Pre-Evangelism'(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복음적 토양교육)이라 이름했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인성, 즉 옥토의 마음 밭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쓴 책이 저자의 「유대인의 인성교육 노하우」전 3권이다.
본서를 통해 노벨상 30%의 비밀 뒤에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인성교육의 원리와 방법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성교육 편에서는 13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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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을 곧바로 지적하면,
"Pre-Evangelism으로 옥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진섭 박사님께서 현용수 박사님의 책을,
"개혁신학의 골격이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개혁신학적인 차원에서 옥토에 대한 이해는 무엇일까요?
현용수 박사님의 견해에 동의하시는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 역시 과연 개혁신학적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안 될까요?
Pre-Evangelism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인성교육으로, 그것도 유대인의 교육방식을 따르는 인성교육으로는 절대로 옥토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What is more, I consider everything a loss compared to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for whose sake I have lost all things. I consider them rubbish, that I may gain Christ(Php 3:8, NIV)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빌 3:8, KJV)
한글 성경에서는 "배설물"로, NIV에서는 "rubbish"로, KJV에서는 "dung"으로 번역했습니다.
호크마 주석을 참고해 보겠습니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헤구마이(*, '해로 여김')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자신이 해로 여기고 있는 확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며(Kent) '모든 것'은 7절의 유익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Martin, Bonnard, Dibelius). '가장 고상함'의 헬라어 '휘페레콘'은 '탁월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가장 뛰어난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한다. 한편 '내 주'는 그리스도와 바울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 그를 위하여'라 함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지금까지 그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는 그의 회심의 때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배설물'의 헬라어 '스퀴발라'(*)는 개에게 던지는 것으로 '똥'이나 '음식 찌꺼기' 또는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후 그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버렸는가를 시사한다(Hawtho-rn, Martin).
---------- 호크마 주석 끝 ----------------
이런 참고 자료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대주의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그것을 '똥'처럼 여기고 철저하게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그런 동족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논지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용수 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를 통해서도 결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안 된다고 한 것을 현용수 박사님은 된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주의에 쩔어 있었던 사람이지만,
현용수 박사님은 출신이 한국사람입니다.
아무리 현용수 박사님께서 유대인의 관점을 연구했다고 하더라고,
유대주의 중에서도 골수 유대주의자였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도바울만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안 될까요?
왜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로도 안 될까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생각하는 바가 본래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이런 오해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대한 오해에서 생겨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 1-9절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10-23절을 통하여 친히 그 비유를 해석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천국 복음이 뿌려지나 소수가 영접하며, 다수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맥락에서 그 소수는 누구를 말할까요?
인간 스스로 옥토가 된다면 그것은 성경의 원리와 맞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니고데모는 밤 중에 찾아왔습니다.
대화 중에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3-8)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 그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옥토가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요한복음 1장을 보십시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인간은 빛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둠입니다!!!
현용수 박사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인성, 즉 옥토의 마음 밭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쓴 책이 저자의 「유대인의 인성교육 노하우」전 3권이다.
본서를 통해 노벨상 30%의 비밀 뒤에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인성교육의 원리와 방법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성교육 편에서는 13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Pre-Evengelism은 거짓복음입니다!!!
「유대인의 인성교육 노하우」의 출판사 리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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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성교육에도 원리와 공식이 필요한가? 현대 교육의 근본 문제와 해결 방안
기획의도
인성교육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킵니까
“인성교육이 뭡니까?”
모 대학에서 700여 명의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뒤 한 식사를 하는데 한 교수님이 이렇게 제게 물었습니다.
“모르면서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킵니까?”
제가 되물었습니다.
“그냥 이름 있는 분들을 초청하여 학생들에게 좋은 좋은 말씀을 듣게 해 주죠.”
그 교수님은 솔직하기라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넘깁니다.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인성교육이 무엇이냐고 묻자 ‘회초리’라고 대답했습니다. 회초리가 없어지면서 인성이 파괴되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정문에 ‘깊은 생각, 바른 행동’이라는 큰 표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은 ‘얕은 생각, 제멋대로 행동’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인성을 앞세우지 않는 학교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인성이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갑니까? 가장 큰 이유는 인성교육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인성교육의 원리는 물론 그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성교육이란 무엇인가
인성교육은 자녀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고 이에 근거한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즉 내면적으로는 깊이 생각하고, 밖으로는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 틀을 마련하여 인성의 각 요소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행하여 지킬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교육은 인성교육에 꼭 필요한 다음 2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자녀들을 바른 행동을 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 2가지 질문에 교육학적, 철학적, 문화인류학적으로 답하고자 합니다.
왜 유대인의 자녀교육을 배워야 하는가
30여 년 간 미국에서 살아 온 저자는 특히 한국인 2세들의 자녀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평신도 시절부터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 현대 교육은 점점 발달하는데 인간은 점점 더 타락하는가?” “왜 신학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교회의 성장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가?”
이때 자신들의 신앙과 뿌리문화를 지키면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유대인들에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연구를 거듭하면서 현대 교육의 허점과 해독을 발견했고, 유대인 자녀교육의 우수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성경 말씀을 지키며 세대차이가 거의 없는 민족입니다. 그 뒤 학문적 자료를 모으면서 정통파 유대인의 삶을 일일이 확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이 그 결실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yes24.com/24/goods/311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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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세의 문제점이 현대교육의 허점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해결점이 유대인 자녀교육의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안 될까요?
유대인은 그들만의 교육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고 배웁니까?
예수는 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지금 지옥의 똥물에서 펄펄 끓고 있다. (Gittin. 57a footnote #4)
오직 유대인만이 인간이다. (Baba Mezia 114b)
모든 비유대인의 아이들은 짐승이다. (Yebamoth. 98a)
유대인들은 기독교도들의 책들(신약성서)을 파괴해야 한다. (Shabbath. 116a)
기독교도들의 말살은 필수적인 제물이다. (Zohar, Shemoth)
경전에 쓰여진대로 토라를 공부하는 비유대인은 죽어야 마땅하다. 모세는 이 율법을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남겼지 저들을 위해 남긴 것이 아니다. (Sanhedrin. 59a, Exhibit 60)
더 많은 글들은 탈무드의 예수....과연 탈무드를 우호적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을 참고하십시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esesang91.com/board.php?board=kkkcolumn&command=body&no=177
이래도 정말 유대주의 교육법으로 인성교육으로 옥토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이 김진섭 박사님의 말씀대로,
"개혁신학의 골격이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단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예, 맞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됩니다.
누구를요? 하나님의 사람을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교육으로도 옥토의 마음 밭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오직 예수!!!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용수 박사님의 쉐마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살아가십시오.
아이들에게 인간이 죄인임을 가르치며,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며,
인간의 삶이 변하는 것도
삼위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일이라고 가르치십시오.
하버드 안 가도 좋습니다.
서울대 안 가도 좋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이 말하는 삼류 아니 백류 대학을 가더라도
예수만 잘 믿고 산다면 그보다 더 바랄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세상 것 버려도 예수 십자가만 붙들고 살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
죄에 빠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피로 살리신 예수님!
그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 6:67-68)
아멘!!! 아멘!!! 아멘!!!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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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 박사, 현용수 저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전3권, 쉐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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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수 저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전3권, 쉐마)를 읽고
서평: 구약학적 입장
기독교 역사 2,000년에 나타난
교육의 문제점에 해답 제시
김진섭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원장, 구약학)
I. 서평과 만남의 복
지난 8월에 뜻밖에 현용수 박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본인이 91년 12월부터 97년 8월까지 미국 남가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목회와 교수 사역을 하면서 미주총신대학원에서 현 박사님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잠깐 교제가 있었지만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전혀 그분의 근황을 알지 못했던 차에 지금까지의 저술과 활동에 대해 전화상으로 꽤 긴 시간 동안 듣게 되었다. 그가 소포로 보낸 여러 저서 중에 가장 최신작인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에 관해 서평을 부탁해 왔다. 그가 주창하는 기독교교육 이론이 책 제목이 명시하는 대로 구약의 ‘쉐마’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 유대인 명문학교 드랍시(Dropsie) 대학원의 박사 과정에 십 수 년의 세월을 보낸 나로 하여금 서평을 쾌히 승낙하고 시간을 내어 꼼꼼히 읽어 보게 하였다.
본인은 1950-60년대에 13개의 시골교회의 당회장으로 목양하는 목사의 아들로 성장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라고 유행가를 읊조렸던 환경 속에 자랐지만, 매일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 3차례 가정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기도로 순종과 절대 헌신의 본이 되셨던 부친(김희도 목사)을 회상하면서, 이 책의 주창에 큰 공감을 가지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 이제는 모두 성년이 된 나의 세 자녀에 대한 지난 날의 신앙교육과 인성교육을 평가해 보면서, 한 가정의 3대가 함께 말씀을 대물림하는 철저한 기독교 가정교육이 궁극적으로 국내전도와 해외선교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따라서 본인은 170여 국가에 700만 한인 디아스포라 교포들을 향하여 “자녀가 곧 사도행전 1:8의 ‘땅 끝’이다”라는 명제로 연구하는 현용수 박사님의 쉐마교육선교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바이다.
II. 내용 요약
먼저 두 권(285쪽+286쪽 = 571쪽)에 걸쳐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제1권 제1부는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에 나타난 두 가지 지상명령의 내용과 그 필요성을 설명한다.
먼저 구약의 지상명령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물림하라는 쉐마의 수직적 선민교육이며, 둘째 신약의 지상명령은 주 예수님의 복음을 열방에 전파하라는 수평적 선민교육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구약의 지상명령의 목표는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하기 위해 적어도 3대가 말씀을 대물림하는 ‘쉐마’이며, 서기관들이 엄중하게 구약성경을 필사하고 보존하였기에 초대교회의 성경으로 애용될 수 있었고, 신약의 열방 선교를 향한 지상명령 완수에 쉐마가 왜 필요조건인지를 설명한다.
제2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개인에게 명한 창세기 18:19가 왜 구약 지상명령의 효시인가를 그 문맥적 배경(제1장)과 내용 분석(제2장)을 통해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이스라엘과 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언약하신 후, 그 성취를 위한 조건으로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손과 그 가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여 ‘여호와의 길’ 즉 ‘의와 공평’을 지키고 행할 것을 명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창세기 18:19를 구약의 지상명령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에게 이 명령을 전수하는데 어떻게 성공하였는지도 설명한다.
제3부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이 발전하면서 그 실체가 유대민족 전체가 모세언약 (엄밀히 말하면 모압언약)에서 받은 쉐마임을 밝힌다.
먼저 그 역사적 배경으로서의 시내산 언약과 쉐마의 관계를 설명한 후(제1장), 쉐마의 서론(신 6:1-3)과 쉐마의 내용(신 6:4-9; 11:13-21; 민 15:37-41)을 강론하며, 왜 그리스도인들도 신약의 열방선교적 지상명령과 함께 구약의 지상명령인 쉐마를 실천해야하는가를 논증한다(제2장).
제1권 부록에 소개된 세 분 목사님들의 쉐마교사대학 체험기는 저자의 주창이 얼마나 실제적인 감동과 결과를 사역 현장에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하여 독자들을 설득시킨다.
제2권은 제3부를 계속하면서 이스라엘 신정왕국의 출범인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신약교회의 출범인 성령강림이 왜 동일한 오순절인가를 쉐마의 관점에서 대비하여 설명한다(제3장).
제4부는 ‘자녀 신학’이란 관점에서 자녀 생산은 ‘말씀 맡은 자’(롬3:2)의 번성이므로 유대인들은 산아제한을 하지 않으며(제1장), 따라서 13세의 남자가 갖는 유대인 성년식(바르 미쯔바)의 뜻, 과정, 특권과 의무, 그리스도인과의 관계 등을 자세히 조명한다. 특별히 성년식이 왜 13세인가에 대한 교육학적 11가지 이유를 상술한다(제2장).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와 쉐마교육 선교전략’(제3장)은 ‘2세 교육은 땅 끝 선교’라는 명제와 함께 4단계의 세계선교 전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제5부는 두 권에 걸친 쉐마연구의 역사적 사명을 다시 정리하는 결론과 요약 부분으로 ‘구약의 지상명령의 발전 과정’(210쪽)과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 비교’(216쪽)를 제시한다. 부록 1은 네 분의 쉐마교사대학 체험기를 소개하며, 부록 2는 사진으로 보는 쉐마교사대학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부록 3은 쉐마 국악 찬양 2편(‘쉐마 3대 찬양’과 ‘쉐마 효도 찬양’)을 제공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은 후 먼저 자신의 자녀를 말씀으로 제자삼아 3대를 대물림하며, 우리 민족의 2세를 복음으로 구원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별된 교육과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세계 선교를 위한 ‘쉐마교육 운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III. 탁월하게 공헌하는 점
흔히 “날카로운 질문은 선명한 해답을 낳는다”는 말처럼 이 책은 우리가 반드시 이 시대에 물어야 할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가정교육과 교회교육 그리고 세계선교의 사활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오랜 연구와 실습을 통하여 저자 자신이 체득한 해답을 확신을 가지고 설득하는 다음 질문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만드는 탁월한 공헌이다.
1.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후(주전 2166년 - 75세 = 주전 2091년) 현재까지 4,200년간 유대인(특히 정통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손대대로 전수하는데 성공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초대교회로 출발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소아시아, 로마 및 유럽의 폐허된 교회 유적지가 고발하는 대로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선교에는 주력하여 괄목할만한 진보가 생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에서 적어도 3대가 함께 대물림하여 영속적으로 전수함에는 실패해 왔는가?
2.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교육이 천문학적인 투자에 반해 대부분 실패하며, 약 700만을 헤아리는 디아스포라 교포들의 자녀들이 대학졸업과 함께 대부분 교회를 떠나는 원인과 그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3.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의 21세기 한국교회의 비전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장 성경적이고 검증된 확실한 기독교 가정교육은 무엇인가?
첫째로, 저자는 이러한 사활적인 질문들의 해답을 개혁신학의 골격인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
특히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모압-세겜으로 이어지는 모세 언약이 주 예수님 안에서 완성된 새 언약과 어떻게 그 다양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지를 구약의 쉐마와 신약의 지상명령과 결부하며 고민한다. 또한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구속사, 즉 ‘하나님의 우주창조’(창 1-2장), ‘인간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창 3장 - 계 20장), ‘하나님의 완성’(계 21-22장)의 시각에서 구약의 쉐마가 어떻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지를 논증한다. 저자가 가진 올바른 성경신학적인 틀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해석하며 오늘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훌륭한 실례를 보여준다.
둘째로, 기독교교육학자로서 그는 4,200년간 정통파 유대인의 가정이 ‘쉐마’를 중심으로 3대가 토라를 대물림하는 엄연한 현실을 주시하며, 창세기 18:19의 아브라함 언약을 지상명령의 역사적 근원으로 이해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인 발견이다. 이를 근거로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목회가 이 ‘쉐마’ 정신에 기초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것은 기독교회사 2,000년 동안의 가정교육의 결과론적 문제점과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한 것으로서 상당한 고무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셋째로, 이 책의 핵심 용어인 ‘쉐마’를 독자들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이론적 골격으로 작용하는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의 본문 해석과 함께 어떻게 이것이 정통파 유대인의 가정에서 특별히 잘 보존 전수되고 있는지의 비법을 자세한 현장 체험 학습으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방인인 우리의 눈에는 오랜 전통의 비전(秘傳)으로 비쳐온 유대인만이 가진 삶의 철학의 근본을 파헤치는 교육신학(가정, 아버지, 어머니, 자녀, 효도, 고난의 역사)의 필독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넷째로, 원칙상 이방인에게 닫혀 있는 정통파 유대인의 가정과 초등학교에서 예쉬바(랍비 양성 예비학교)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학교 및 유대인 역사박물관의 현장 체험 학습과 함께 쉐마교육의 도구인 테필린, 메주자, 찌찌트, 두루마리 토라, 쇼파르(양각 나팔), 촛대, 쩨다카 상자, 경문(phylacteries) 등을 통하여 최대의 시청각적 충격과 확신을 심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부인과 이미 장성한 4 아들들과 함께 자신이 알고 믿는 바를 가정에서 직접 실천하면서 쉐마교육의 위력을 검증하고 시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교학자 랄프 윈터(Ralph Winter)의 문화 언어를 기준한 4단계 전도/선교 전략 이론에 근거하여 한국교회, 특별히 디아스포라 교포교회가 당면한 자녀교육의 해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의 시대적 비전과 사명 완수에 대한 실제적인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는 ‘기독교와 쉐마교육선교 전략’(제2권 제3장)은 이 책의 백미로서 독자에게 큰 반향을 주고 있다.
IV. 서평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현용수 박사님에게 귀한 사명과 은사를 주셔서 기독교교육학 학자로서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잊었거나 소홀했던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를 발견하게 하여 성경적 교육신학의 틀을 마련하게 하셨다. 가정교육과 교회교육의 근본 대안을 되찾게 되었다.
현 박사님의 탁월한 성경적, 개혁신학적 학설의 주창으로 오늘날 교육 부재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의 비전과 사명을 구현해야 한다. 가정을 살리자는 교육신학은 일반 은총적으로 불신자들에게도 유효할 뿐 아니라, 특별 은총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 누구에게나 민족과 언어와 국가와 백성에 관계없이 가정의 치유와 개혁에서 시작된 교회, 사회, 국가, 세계에로의 ‘주 예수님의 영광스런 구원의 복음’이 가진 위력을 나눔에 있어서 이 책이 목회자와 신학도들에게 적극 알려지고 애용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구약학, 신약학, 교회사, 조직신학, 선교학 등의 신학 전반에서 관심 있는 학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전공 분야에서 쉐마를 더 연구하여 토론하고 발전시키어 세계 신학계에 내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 교회를 살려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자료출처 http://shemaiqeq.com/index.php?mid=book_reading&document_srl=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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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이 과연 옳은 서평일까요?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진섭 박사님께서는 이 서평을 통하여,
현용수 박사님의 '쉐마교육'에 동참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이 잘못되었다면, 굉장히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분들이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과 동참에 많은 의지와 동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김박사님의 서평에 대한 재조명으로, 그 서평이 잘못 된 것이라면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김진섭 박사님께서는,
"구약의 쉐마가 어떻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지를 논증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개혁신학의 골격인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연 개혁신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을까요?
최대의 쟁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Pre-Evangelism 관점
입니다.
전체적인 것들을 한 꺼번에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용수 박사님의 Pre-Evangelism 관점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관점입니다.
김진섭 박사님께서 현용수 박사님의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에 대한 서평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Pre-Evangelism 관점은
현용수 박사님의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 1권 29-33페이지에 나옵니다.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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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을 믿기 전
왜 인성교육은 Pre-Evangelism인가?(인성교육 노하우 시리즈)
저자는 앞서 유대인의 인성교육에 관한 책을 3권으로 펴낸 바 있다(2005년).
기독교교육학을 연구하면서 현대인에게는 전도하기도 힘들거니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헌신도가 매우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올바른 인성교육을 시키지 않고
수평문화에 물들게 방치하고 IQ교육만 시킨 결과다.
그래서 자녀들의 마음 밭이 황폐화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 인간이 태어나 복음을 접하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인성교육을 잘 받아, 마음 밭이 옥토가 되면
복음을 영접하기도 쉽거니와 구원을 받은 후 예수님을 닮는 제자화도 쉽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린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깊은 생각을 하게 하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13세 이전의 인성교육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를 'Pre-Evangelism'(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복음적 토양교육)이라 이름했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인성, 즉 옥토의 마음 밭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쓴 책이 저자의 「유대인의 인성교육 노하우」전 3권이다.
본서를 통해 노벨상 30%의 비밀 뒤에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인성교육의 원리와 방법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성교육 편에서는 13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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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을 곧바로 지적하면,
"Pre-Evangelism으로 옥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진섭 박사님께서 현용수 박사님의 책을,
"개혁신학의 골격이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개혁신학적인 차원에서 옥토에 대한 이해는 무엇일까요?
현용수 박사님의 견해에 동의하시는 김진섭 박사님의 서평 역시 과연 개혁신학적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안 될까요?
Pre-Evangelism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인성교육으로, 그것도 유대인의 교육방식을 따르는 인성교육으로는 절대로 옥토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What is more, I consider everything a loss compared to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for whose sake I have lost all things. I consider them rubbish, that I may gain Christ(Php 3:8, NIV)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빌 3:8, KJV)
한글 성경에서는 "배설물"로, NIV에서는 "rubbish"로, KJV에서는 "dung"으로 번역했습니다.
호크마 주석을 참고해 보겠습니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헤구마이(*, '해로 여김')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자신이 해로 여기고 있는 확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며(Kent) '모든 것'은 7절의 유익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Martin, Bonnard, Dibelius). '가장 고상함'의 헬라어 '휘페레콘'은 '탁월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가장 뛰어난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한다. 한편 '내 주'는 그리스도와 바울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 그를 위하여'라 함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지금까지 그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는 그의 회심의 때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배설물'의 헬라어 '스퀴발라'(*)는 개에게 던지는 것으로 '똥'이나 '음식 찌꺼기' 또는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후 그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버렸는가를 시사한다(Hawtho-rn, Martin).
---------- 호크마 주석 끝 ----------------
이런 참고 자료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대주의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그것을 '똥'처럼 여기고 철저하게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그런 동족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논지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용수 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를 통해서도 결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안 된다고 한 것을 현용수 박사님은 된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주의에 쩔어 있었던 사람이지만,
현용수 박사님은 출신이 한국사람입니다.
아무리 현용수 박사님께서 유대인의 관점을 연구했다고 하더라고,
유대주의 중에서도 골수 유대주의자였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도바울만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안 될까요?
왜 「잃어버린 지상명령 쉐마」로도 안 될까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생각하는 바가 본래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이런 오해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대한 오해에서 생겨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 1-9절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10-23절을 통하여 친히 그 비유를 해석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천국 복음이 뿌려지나 소수가 영접하며, 다수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맥락에서 그 소수는 누구를 말할까요?
인간 스스로 옥토가 된다면 그것은 성경의 원리와 맞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니고데모는 밤 중에 찾아왔습니다.
대화 중에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3-8)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 그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옥토가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요한복음 1장을 보십시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인간은 빛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둠입니다!!!
현용수 박사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인성, 즉 옥토의 마음 밭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쓴 책이 저자의 「유대인의 인성교육 노하우」전 3권이다.
본서를 통해 노벨상 30%의 비밀 뒤에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인성교육의 원리와 방법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성교육 편에서는 13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Pre-Evengelism은 거짓복음입니다!!!
「유대인의 인성교육 노하우」의 출판사 리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 퍼온 자료 시작 ----------------------------
왜 인성교육에도 원리와 공식이 필요한가? 현대 교육의 근본 문제와 해결 방안
기획의도
인성교육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킵니까
“인성교육이 뭡니까?”
모 대학에서 700여 명의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뒤 한 식사를 하는데 한 교수님이 이렇게 제게 물었습니다.
“모르면서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킵니까?”
제가 되물었습니다.
“그냥 이름 있는 분들을 초청하여 학생들에게 좋은 좋은 말씀을 듣게 해 주죠.”
그 교수님은 솔직하기라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넘깁니다.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인성교육이 무엇이냐고 묻자 ‘회초리’라고 대답했습니다. 회초리가 없어지면서 인성이 파괴되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정문에 ‘깊은 생각, 바른 행동’이라는 큰 표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은 ‘얕은 생각, 제멋대로 행동’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인성을 앞세우지 않는 학교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인성이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갑니까? 가장 큰 이유는 인성교육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인성교육의 원리는 물론 그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성교육이란 무엇인가
인성교육은 자녀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고 이에 근거한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즉 내면적으로는 깊이 생각하고, 밖으로는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 틀을 마련하여 인성의 각 요소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행하여 지킬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교육은 인성교육에 꼭 필요한 다음 2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자녀들을 바른 행동을 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 2가지 질문에 교육학적, 철학적, 문화인류학적으로 답하고자 합니다.
왜 유대인의 자녀교육을 배워야 하는가
30여 년 간 미국에서 살아 온 저자는 특히 한국인 2세들의 자녀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평신도 시절부터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 현대 교육은 점점 발달하는데 인간은 점점 더 타락하는가?” “왜 신학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교회의 성장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가?”
이때 자신들의 신앙과 뿌리문화를 지키면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유대인들에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연구를 거듭하면서 현대 교육의 허점과 해독을 발견했고, 유대인 자녀교육의 우수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성경 말씀을 지키며 세대차이가 거의 없는 민족입니다. 그 뒤 학문적 자료를 모으면서 정통파 유대인의 삶을 일일이 확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이 그 결실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yes24.com/24/goods/3114163)
------------------------ 퍼온 자료 끝 ----------------------------
한국 2세의 문제점이 현대교육의 허점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해결점이 유대인 자녀교육의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안 될까요?
유대인은 그들만의 교육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고 배웁니까?
예수는 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지금 지옥의 똥물에서 펄펄 끓고 있다. (Gittin. 57a footnote #4)
오직 유대인만이 인간이다. (Baba Mezia 114b)
모든 비유대인의 아이들은 짐승이다. (Yebamoth. 98a)
유대인들은 기독교도들의 책들(신약성서)을 파괴해야 한다. (Shabbath. 116a)
기독교도들의 말살은 필수적인 제물이다. (Zohar, Shemoth)
경전에 쓰여진대로 토라를 공부하는 비유대인은 죽어야 마땅하다. 모세는 이 율법을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남겼지 저들을 위해 남긴 것이 아니다. (Sanhedrin. 59a, Exhibit 60)
더 많은 글들은 탈무드의 예수....과연 탈무드를 우호적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을 참고하십시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esesang91.com/board.php?board=kkkcolumn&command=body&no=177
이래도 정말 유대주의 교육법으로 인성교육으로 옥토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이 김진섭 박사님의 말씀대로,
"개혁신학의 골격이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맥락에서 찾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단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예, 맞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됩니다.
누구를요? 하나님의 사람을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교육으로도 옥토의 마음 밭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오직 예수!!!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용수 박사님의 쉐마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살아가십시오.
아이들에게 인간이 죄인임을 가르치며,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며,
인간의 삶이 변하는 것도
삼위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일이라고 가르치십시오.
하버드 안 가도 좋습니다.
서울대 안 가도 좋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이 말하는 삼류 아니 백류 대학을 가더라도
예수만 잘 믿고 산다면 그보다 더 바랄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세상 것 버려도 예수 십자가만 붙들고 살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
죄에 빠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피로 살리신 예수님!
그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 6:67-68)
아멘!!! 아멘!!! 아멘!!!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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